John von Neumann

 

(헝가리 수학자 컴퓨터과학자 1903-1957)

.......... John von Neumann 은 헝가리 미국 독일 유태계의 수학자로서 양자물리학 (quantum physics), 함수해석학 (functional analysis), 집합이론 (set theory), 컴퓨터과학, 경제학과 많은 수학분야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

  1. 일생 동안 약 150여 편의 논문을 썼고 60여 편은 순수 수학, 20여 편은 물리학, 60여 편은 응용 수학 관련.
  2. 냉전 찬성론자, 소련에 대한 선제 공격 및 핵실험 찬성론자.
  3. 무엇이든 한 번만 읽으면 다 외워버렸던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 전화번호부를 순식간에 외워버림. 암산 능력 역시 경이적이어서 6살 때 8자리 숫자끼리의 나눗셈을 암산으로만 해냄.
  4. 8살 때 calculus를 마스터, 12살 때 전문 수학자들이 읽는 저작을 읽기 시작했고 당시 이미 "비쟌틴 역사", "남북전쟁", "쟌다르크" 등에 관한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보유.
  5. 직장을 염려한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헝가리 부다페스트 대학 학부에서 화학 전공, 대개 수학을 공부하면서 보냄. 베를린과 부다페스트를 왕래하면서 아인슈타인의 강의를 들으며 수학 공부 병행.
  6. 19살 때, 집합론을 창시한 칸토어(Cantor)를 능가하는 서수(ordinal number)의 현대적 정의를 다룬 2번째 수학 논문 발표. 25살 때까지 10편의 중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서른 살 무렵까지 약 서른 여섯 편의 논문 발표.
  7. 서른 살에 아인슈타인, 괴델 등이 재직하던 Institute of Advanced Study 에 6명의 수학 교수 중 한 명으로 참여.
  8. 최초로 경제학을 전략과 게임의 관점에서 분석해서, 심리학의 영역에 있던 인간의 경제적 행동을 수학적 분석이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온 책, "The Theory of Games and Economics" 를 Morgenstern 과 공저.
  9. 2차 대전 중에는 오펜하이머의 맨하튼 프로젝트에 top mathematician으로 참여해서 원폭 개발에 관여.
  10. 디지틀 컴퓨터의 prototype을 만드는 데 활용되는 수학적 이론 창안. ...................... (존 폰 노이만)

폰노이만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유태인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적 수학의 신동이었으며 후에 그의 시대에서 가장 뛰어난 수학자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6살 때 암산으로 8자리 나눗셈을 할 수 있었으며, 8살에는 미적분학을 마치고, 12살에는 대학원 수준의 수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17살에 베를린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였으며, 이어서 취리히 대학에서 화공을 공부하였고, 이이서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였다. 1926년 그가 23살 때 취리히 대학에서 화공학 박사학위를, 부다페스트 대학에서는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후 3년간 그는 주로 수학의 오퍼레이터 이론을 양자론에 적용하는 연구를 하였다. 1930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Princeton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1932년 고등연구소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가 설립되자 수학분야의 6명 전임교수중 한 사람이 되었다. (6명에는 Einstein도 들어 있었다.) ..........

폰노이만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컴퓨터 (Computer) 의 발전에 대한 공헌으로 유명하다. 그는 '프로그램-저장 컴퓨터'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폰 노이만은 그의 논문인 "전자계산기의 이론 설계 서론"에서 프로그램 내장 방식을 발표하였으며, 이를 구체화하여 폰 노이만 기계를 고안하고, 그 후에 펜실베니아 대학과 협력하여 ENIAC 을 기초로 해서 프로그램 내장 방식을 채택한 EDVAC 을 완성하였다. 이것의 중요한 두 가지 구성요소는 정보저장과 메모리에 저장된 프로그램에 따라서 메모리에서 서로 다른 '레지스터' 사이의 전달을 조직화하는 조종단위이었다. 그래서 순차적으로 작업이 수행되는 컴퓨터를 흔히 '폰노이만 기계(von Neumann machines)' 라고도 한다. 오늘날 이 개념은 당연한 방법으로 인식되나 1945년 당시에는 획기적인 돌파구였다. 그의 보고서에 기인하여 이 개념은 일반적으로 폰 노이만의 업적으로 평가되나, 몇몇 역사가나 당시 관계자들은 에커트가 폰 노이만보다 한 두 해 앞서 그 개념에 대하여 언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장프로그램 개념의 원조가 누구냐 하는 문제를 떠나, 이 개념으로 인하여 전자식 계수형 컴퓨터계에 보다 많은 활동을 위한 막이 열리게 되었다.

그는 미국의 원자탄계획 (Manhattan project) 에도 참여하였는데 J. L. Tuck와 함께 원자탄 계획에 필수적인 '고폭발성 렌즈'를 개발하였다. 또 그는 수학의 다른 방면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게임이론 (Game Theory) 으로서 그가 선구자적 업적을 남긴 분야이다. 이것은 전쟁 전략 뿐 아니라 실제 생활의 전략에도 적용되고 있다. 말년에 그는 원자핵 사용의 선두적 지지자가 되었다. 그는 미국수학회장을 지냈고, 원자력위원회 위원도 지냈다.

...... 그런데 이제 암이 그의 생명을 요구하며 나타난 것이다. 그는 의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제 정말 올 것이 왔습니까?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지요?" 의사의 답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하라' 였다. 그 기간 동안 두 가지 일이 그에게 걸려 있었다. 하나는 죽음의 공학인 무기 개발에 관련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비교적 추상적인 성격의 것으로 생명 공학에 대한 것이었다.

첫 번째 일은 그가 정부를 위해 해야 할 임무였다. 암 진단을 받기 불과 석 달 전에 폰 노이만은 엄숙한 선서를 하고 원자력 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위원의 주된 임무는 미국의 원자 폭탄 개발에 대해 과학적 견해를 대표하는 일이었다. 그가 이 위원회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인물이었는지는, 미국 탄도 미사일 위원회가 폰 노이만 그룹이라고 불린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수학자는 그 가공할 무기의 이용에 대한 옹호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그의 가족들이 공산 치하의 헝가리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사실이 작용했을 것이며, 실제로 그는 방어적 측면에서의 핵전이라는 발상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암에 걸린 사실을 안 후에도 일을 계속했고, 마지막으로 입원했을 때도 그는 냉전을 주도한 두뇌 집단들과의 1 급 비밀 회의에서 컨설팅 역을 맡았다.

그의 과학적 추구는 그가 원자 폭탄 개발 과정에서 맡았던 역할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그는 자연의 운행 원리와 컴퓨터의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미래의 컴퓨터) 유사성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다. 그의 목표는 자연의 생물학과 인공의 생물학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하나의 이론을 창안하는 것이었다 (인공생명 (Artificial Life)). 살아 있는 유기체의 행동을 기계류의 움직임과 등가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은 폰 노이만과 같은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세계는 논리적 원리라는 토대 위에 세워져 있다. 만약 당신이 어떤 현상의 군더기를 모두 없애고 그 정수만 남긴다면, 그 본질은 그 현상을 일으키는 공리 (자명한 이치) 일 것이다......... 폰 노이만은 오토마톤 이론을 자신의 가장 큰 성과로 간주했다. 그리고 그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을 발간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원고는 완성되지 못했다 - 그리고 생물과 기계가 중첩되는 새로운, 그 이전까지 아무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던 영역에 대한 그 밖의 탐험들도 끝을 맺지 못했다.

1956 년 4 월, 폰 노이만은 월터리드 군 병원에 입원했다. 그가 병원에 갖고 온 논문들은 예일 대학에서 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컴퓨터와 뇌' 라는 제목의 강연 원고들이었다 (뇌 (Brain)). 강연의 핵심 주제는 컴퓨터와 인간이 오토마타 (Automata) 의 서로 다른 종류라는 점이었다. 노이만은 그 강연을 통해 컴퓨터와 인간 양자를 보다 깊게 이해하기 위해 서로를 비교할 계획이었다. 원래 그는 5 일간 강연을 하기로 약속했다. 입원한 후에도 그는 휠체어를 타고 축약된 형태로라도 강연을 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런 소망은 자신의 병세에 대한 지나친 낙관이었다. 그는 다시는 병원을 떠나지 못했다. ................. (약속의 땅 : Steven Levy)

term :

John von Neumann    컴퓨터 (Computer)   오토마타 이론 (Automata Theory)   경영과학 (Operation Research)   게임이론 (Game Theory)   뇌 (Brain)   인공생명 (Artificial Life)   

site :

Wikipedia : John von Neumann

John Louis von Neumann : Virginia Tech    John von Neumann : St Andrews 대학

존 폰 노이만 : 이명헌 경영스쿨

paper :

video :

폰 노이만 - 정보화시대 1부 : 강연 : 열린연단 : 장병탁 : 2017/07/21

 

폰 노이만 - 정보화시대 2부 : 토론 : 열린연단 : 장병탁 : 2017/07/21

 

John Von Neumann Documentary : Mathematical Association of America : 2014/04/24

 

The Martian's Daughter - A Memoir : Author Marina von Veumann Whitman in conversation with John Hollar : 2013/05/13

 

John Von Neumann Interview : 2010/07/16

 

The Moment in Time : The Manhattan Project  : 2008/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