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를 통한 학습
역동적 기억: Roger Schank 저서, 신현정 역, 시그마프레스, 2002 (원서 : Dynamic Memory Revisited, Cambridge Univ. Press, 1999), Page 267~282
모든 실제 학습은 행위를 통한 학습을 수반한다. 그렇다면 행위를 통하여 학습할 때 사람들은 무엇을 학습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것인가? 언뜻 보기에 학습은 의식적 과정인 것처럼 보인다.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면, 그 사람은 듣고 그것을 학습한다 - 순수하고도 단순한 의식 아닌가! 이야기를 듣고서 학습한다는 생각은 학습의 논의에서 압도적이다 (Strauss & Shilony, 1994). 그렇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어떤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부분은 실제로는 비의식적 (nonconscious) 인 것이다. 나아가서 사람들이 비의식적인 대상들을 의식적으로 학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상당히 명확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비의식적 학습과 의식적 학습간의 구분은 연구해 볼 만한 중요한 과제가 된다.
지식에 대한 많은 개념화들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만 알 수 있다는 사실을 함축하는 접근방식을 수반한다. 이러한 개념화에 뒤따르는 생각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기를 원하는 것을 단지 이야기만 해주면 그 지식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diSessa, 1982; Bruer, 1993; Bransford et al., 1989). 어느 면에서 이것은 참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구구단을 외워서 학습한다. 그렇지만 외우기는 진정한 가치를 갖는 많은 지식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행위를 통한 학습의 지지자들은 (즉, 듣기를 통한 학습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학교시스템이 사람들은 학습의 기본방식으로서 행위를 통하여 학습한다는 생각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개탄해왔다. 예컨대, John Dewey 는 1916 년에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주입식 교육, 수동적 흡수 학습이 전면적으로 비난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러한 교육과 학습방식이 실제로는 그렇게 공고한 것인가? 교육은 말을 하고 듣는 사건이 아니라 적극적인 구성과정이라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하나의 원리로 받아들여지는 반면에 실제 교육장면에서는 전반적으로 부정되고 있다. 이렇게 개탄할 만한 상황은 그 원리가 단지 말만 앞세운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겠는가? … 그렇지만 실제로 이 원리를 적용하려면 학교 환경이 행위를 할 수 있는 장치들로 채워져야만 하는데 … 거의 달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Dewey 가 깨닫지 못한 것, 실제로 많은 학교시스템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행위를 통한 학습이 가르치는 것은 주입식 교육이 가르치려고 시도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행위를 통한 학습은 비의식적 지식을 가르치는 반면, 주입식 교육은 의식적 지식을 가르친다. 한 가지 중요한 물음은 "어느 지식이 보다 중요한가?" 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비의식적 지식은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행위를 통하여 학습할 때 학습하는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물음해 보아야만 한다.
많은 교육학자나 심리학자들은 행위를 통한 학습의 인지적 기반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왔으며, 이들은 이 방식에 근거한 교육을 교실에서 구현하는 데 동의하기를 주저해 왔다. 그렇게 주저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행위를 통한 학습이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물론 행위를 통한 학습이 근본적으로 사실 (fact), 즉 "사실들을 훈련시키고 검사하라"를 내세우는 교육학파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온 사실들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기는 하다). 역동적 기억이론은 행위를 통한 학습이 가지고 있는 장점에 대한 통찰을 제공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지식을 의식하는 대상이라고 믿는 한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의식하고 있는 지식을 가르칠 수밖에 없다. 한편 만일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지식이 비의식적인 것이라고 인식한다면, 가르칠 때 비의식적 마음의 문을 두드릴 필요가 있다. 언뜻 보기에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비의식적 학습은 가장 보편적인 학습형태이다; 단지 학교에서만 전혀 보편적이지 않을 뿐이다. 비의식적 학습은 획득하는 MOP 와 TOP 에 들어 있으며, 이것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일상적 경험을 통해서 끊임없이 발달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MOP 와 TOP 를 획득하는가? 이 물음의 답은 매우 간단하다 - 계속해서 연습함으로써 학습한다. 기대가 실패하고, 그 실패를 스스로 설명하며, 적절한 MOP 를 변경함으로써 학습한다. 요컨대, 행위를 함으로써 MOP 와 TOP 를 학습하는 것이지, 무엇인가를 시도하거나 암기함으로써 학습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비의식적 학습과정이 작동하는 방식이며, 바로 역동적 기억이다.
사람들이 무엇이든 처음 해볼 때는,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과거 경험의 발견에 크게 의존한다. 생각나기는 사례기반 추리 (case - based reasoning; 예컨대, 규칙을 적용함으로써 추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기억에 이미 저장한 경험사례에 의존하여 추리하는 것) 가 일어나는 과정이다. (사례기반 추리에 대해서는 제 12 장에서 상세하게 다룬다.)
무엇인가를 이해하려고 시도할 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기억에서 그것과 충분히 유사한 것으로 보이는 것을 찾아서 처리에 도움을 받으려고 시도한다. 생각나기 과정은 항상 새로운 경험을 옛 경험과 비교하도록 함으로써 두 경험의 접합점으로부터 일반화를 이끌어 내도록 만들어서 학습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생각나기 과정이 항상 의식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일반화를 하였다든가 아니면 기대를 수정하였다는 것을 항상 자각하지는 못한다.
비의식적 비교과정에서는 두 가지 중 하나가 일어난다. 마음은 새로운 경험이 그것을 비교하려는 기존의 경험과 상당히 다르다거나 아니면 아주 닮았다고 인식한다. (여기서 나는 중간에 해당하는 사례를 무시하겠다.) 새로운 경험이 기억에서 가장 근접한 것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 그 경험에 해당하는 새로운 사례를 생성하여야 한다. 예컨대, 사람들은 기차 여행에 대한 기존지식을 사용하여 첫 번째 비행기 여행 경험을 처리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비교가 최초의 처리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비행기 여행은 자체적인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사례라는 것을 깨닫게 됨으로써, 결국에는 비행기 여행을 전혀 새로운 대상으로 취급하게 된다.
비의식적 처리자인 마음이 처음부터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마음이단 한번의 비행기 여행에 근거하여 비행기 여행을 기차 여행의 특수한 사례로 취급하지 않게 되겠는가? 그렇지만 열 번쯤 비행기 여행을 하게 되면 진작에 기차 여행과 비행기 여행간의 차이를 찾으려는 것과 같은 비교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오히려 비행기 여행들을 서로 비교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비행기 여행 일반의 특징을 예측하는 $-비행기 여행 스크립트를 생성하게 된다. 여기에는 많은 음식이 주어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정보와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이것은 물론 차이를 찾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공통점을 찾으려는 비교과정이다. 새로운 경험이 기존의 경험과 아주 유사하다는 사실을 찾아냄으로써 마음이 스크립트를 구성하게 된다 (Fivush, 1984; Hudson & Nelson, 1986; Hudson, Fivush & Kuebli, 1992) . 스크립트를 구성함에 따라서 그 스크립트가 근거하는 경험의 세부사항들에 관한 기억은 상실되기 시작한다. 공통 스크립트를 공유하는 일화의 세부사항들은 점차 기억에서 사라지며, 그 세부사항들을 회상하고자 할 때는 그것들이 스크립트 - 보편적 내용으로 대치되기가 십상이다 (Hudson &Nelson, 1986; Farrar & Goodman, 1990, 1992).
따라서 사람들은 새로운 사례를 기억저장고에 첨가해야 할 새로운 자료로 사용하거나 아니면 상세한 스크립트 지식을 구성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물론 새로운 사례를 과거에 여러 번 경험하였던 것과 동일한 것이라서 전혀 흥미를 끌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 경우에는 어떤 학습도 일어나기가 어렵다.
학습은 어느 기억구조에서든 일어날 수가 있다. 기억구조는 본질적으로 교체 가능하다 (McKoon & Ratcliff, 1992; Wattenmaker, 1992; Ross, 1996b). 그렇기는 하지만, 식당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 학습할 때, 학습하는 것이 식당 자체에 대한 것이어서 M-식당을 변경해야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불하기"와 같이 식당 일반을 넘어선 중요성을 갖고 있는 측면에 대한 것인지를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후자의 경우라면, 장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단지 식당에서 일어난 사건으로써 그 사건이 일어난 MOP 나 장면과는 무관한 어떤 것을 변경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동일한 시점에 동일한 장소에서 작동하고 있었던 보다 추상적인 MOP (예컨대, 당황스러움이나 로맨스 등) 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도 변경시켜야만 한다.
행위를 통한 학습의 목표는 스크립틀릿의 획득이다. 사람들의 능력에 대해 물을 때 지칭하는 기술은 거의 항상 스크립틀릿이다. 이것을 설명하도록 해보자.
사람들의 능력은 스크립틀릿의 제약을 받는다. 무엇인가를 할 줄 안다고 말할 때 흔히 지칭하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획득한 스크립틀릿들이다. 이것들은 대체로 무의식적이다. 상응하는 스크립틀릿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해주기는 쉽지가 않다. 흔히 스크립틀릿은 수년간에 걸쳐 수없이 연습한 매우 낮은 수준의 기술들로 구성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연습이 저절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들이 스크립틀릿을 연습하는 이유는 동일한 목표를 반복해서 추구하기 때문이다. 목표를 달성하려는 목적 이외에 스크립틀릿을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 (물론 학교라는 예외적인 상황이 있기는 하다. 학교에는 탈맥락적 기술의 기계적 반복 연습이 현실적인 가치를 갖는 퇴행적 생각이 존재한다).
스크립틀릿의 두 가지 좋은 예로 "녹화하기 위해서 VTR을 설치하기" 그리고 "전자우편 보내기"를 들 수 있다. 전자우편이 사용된 지난 25 년 동안 나는 아마도 10 가지 다른 시스템을 사용해야만 하였다. 각 시스템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들었지만, 스스로 시도를 할 때까지 그 말을 기억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누군가가 내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고 있을 때는 그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다음 번에는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시스템들에 대한 나의 실제 학습은 반복적인 연습과 시행착오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즉, 전자우편을 실제로 사용함으로써 그것을 학습하였던 것이다. 나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두 시스템에 아주 능숙하다. 그렇지만 어느 시스템이든 그 세부특징들을 다 알고 있지는 못하다. 그 시스템들이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단지 전자우편을 보내고 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이러한 목표가 나로 하여금 익숙해질 때까지 그 시스템을 시도해 보도록 만들었다. 모든 시행은 사용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별도의 연습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이것은 동기화된 행위를 통한 학습 (motivated learning by doing) 의 사례이다
보다 일상적인 사례는 VCR (Video cassette Recorder) 의 사용이겠다. 나는 VCR 의 가장 초기 모형 중의 하나를 가지고 있었으며, 세월이 지나면서 여러 다른 모델들도 가지게 되었다. 이것들은 모두 녹화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아무튼 나는 모두 작동시킬 수 있다. 사용하는데 짜증이 나지만, 나는 영화를 녹화해 두었다고 보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사용법을 학습하였다. 그렇지만 만일 내가 그 기계들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작동법을 잊어 버릴 것이다. 스크립틀릿은 사용하지 않으면 기억에서 소멸하는 경향이 있다. 다행히도 나는 VCR의 작동법에 대한 보편적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 지식이 필요한 스크립틀릿을 재학습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여기서도 내가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이 사례에서는 VCR 을 이용해서 녹화하는 기술) 그 기술은 행위를 통하여 학습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위와 같은 진술을 하는 이유는 단순한 것이다. 학생들이 예외적인 사례들을 알도록 해주려는 것인데, 학생들은 그러한 사례를 통해서 새로운 상황에 대해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학생들이 일을 해내는 방법을 알게 만들며 일련의 기술을 습득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획득하기를 원하는 "기술" (skill) 에 대해서 언급할 때, 그 용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점에서 혼란에 빠질 수가 있다. 여기서 의미하는 기술이란 학생들이 알고 있기를 원하는 것이거나 (예컨대, 산수 기술), 아니면 제대로 처신하는 방법에 대한 것인지 (예컨대, 개인적 사교기술), 그들이 해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diSessa, 1982; Bransford et al., 1989; Reif & Larkin, 1991; Strauss & Shilony, 1994).
학생들은 스크립틀릿을 획득하여 그 속에 들어있는 행위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관심을 갖는 목표를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획득할 수 있는 스크립틀릿들은 쉽게 학습될 수 있다. 목표는 정보를 기억에 저장하고 인출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Dweck, 1986; Seifert, Abelson & McKoon, 1986; Hudson, 1988; Bruer, 1993). 이것이 바로 "행위를 통한 학습" 이 추구하는 모든 것이다.
학교 그리고 교과과정은 재설계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경험을 하는 방식과 같이 자연스럽게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학생들이 사례들, MOP 와 TOP, 그리고 스크립틀릿들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며, 생각나기가 일어나도록 그리고 기대가 실패하였을 때 자신의 설명을 구성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학생들이 기대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 처하도록 만들어서 무엇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구성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Chi, 1989). 기억에서 기대, 기대 실패, 그리고 그 실패에 대한 설명간에는 명백한 연계가 있다. 게다가 이 세 가지 모두는 생각나기를 위한 결정적인 단서로 작동한다 (Read &Cesa, 1991). 요컨대, 학생들이 미래의 삶에서 실제로 행할 것들과 관련되어 있은 실제 맥락에서 무엇인가를 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diSessa, 1982; Bransford et al., 1989; Bruer, 1993; Lampert, 1995; Wiley & Voss, 1996).
따라서 교과과정의 재설계 과정은 어떤 것이든 학생들이 학습하기를 원하는 기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와 함께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 기술을 하나의 시나리오가 구성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상황 속에 포함시켜야 한다. 시나리오가 한 가지 형태만을 취해야 할 필요는 없다. 부분적으로는 선생이 이끌어갈 수도 있으며, 아니면 전적으로 학생들이 주도할 수도 있다. 시나리오는 설계자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길어질 수도 있다. 단 하루에 학습할 수 있는 수업일 수도 있으며, 수주일에 걸친 작업을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시나리오와 그에 수반되는 사례집 (학생들이 실패할 때 사용하는 전문가의 이야기) 은 책일 수도 있고, 비디오테이프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직접 소프트웨어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전문가 (실제 인물이거나, 테이프에 녹화된 것이거나, 아니면 책자로 소개된 전문가) 가 필요할 때 즉시 가용해야만 한다.
기술을 획득하도록 가르치는 데 적절한 방법을 사용해야만 한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기술이 도대체 무엇이며, 기술이 아닌 것은 무엇인지를 평가하는 일이다. 그런 이유로 기술을 스크립틀릿으로 간주하는 것이 꽤나 도움이 된다. 광의적으로 표현하면, 스크립틀릿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목이 있다: 인지적, 지각적, 그리고 물리적 스크립틀릿.
지금까지 나는 인지적 스크립틀릿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여기에는 당연히 물리적 구성성분들이 들어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아무 것도 일어날 수가 없다). 따라서 VCR 스크립틀릿은 인지적 의미에서 무엇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처방이며, 물리적 측면은 단지 버튼 누르기가 된다. 마찬가지로 전자우편 스크립틀릿에는 물리적 수준에서 단지 마우스 클릭하기와 키보드 자판 치기가 수반된다.
순수한 물리적 스크립틀릿도 일어난다. 타자 치기와 리모콘의 버튼 누르기가 두 가기 예다. 보다 흥미를 끄는 예로는 자전거 타기, 자동차의 브레이크 페달 밟기, 그리고 이빨닦기 등이 있다.
지각적 스크립틀릿에는 사물의 재인이 수반된다. 예컨대, 사람들의 얼굴을 재인하는 것, 위험한 상황을 알아차리는 것, 야구방망이로 공을 칠 때의 지각적 성분 등을 들 수 있다.
지금의 논의에서 누군가가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의 의미는 그가 일차적 기능을 담당하는 인지적 스크립틀릿 그리고 부가적으로 물리적인 것과 지각적인 스크립틀릿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스크립틀릿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구분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니며, 나는 스크립틀릿이라는 용어를 세 가지 유형의 스크립틀릿들을 모두 수반하는 심적개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할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보편적 진술이 가능하다: 인지적 스크립틀릿 (cognitive scriptlet) 은 사용에 관한 지식을 지칭한다. 이 지식은 일반적으로 의식된다. 즉, 그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만일 "철수는 X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라는 문장이 X의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면, X는 인지적 스크립틀릿이 된다.
물리적 스크립틀릿 (physical scriptlet) 은 작동에 대한 지식을 지칭한다. 이 지식은 일반적으로 의식되지 않는다. 물리적 스크립틀릿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없다. 만일 "철수는 X 가 작동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라는 문장이 X 의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면, X 는 물리적 스크립틀릿이 된다.
지각적 스크립틀릿 (perceptual scriptlet) 은 관찰에 대한 지식을 지칭한다. 이 지식은 일반적으로 의식되지 않는다. 지각적 스크립틀릿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없다. 만일 "철수는 X 를 재인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라는 문장이 X 의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면, X 는 지각적 스크립틀릿이 된다.
내가 여기서 지칭하고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술 (skill) 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다.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그리고 내가 이 단어의 사용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 단어가 명확한 정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수학을 숙달하였다거나, 숙련된 협상가라거나, 기본적 언어기술을 숙달하였다거나 요리에 능숙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이 기술을 언급할 때는 흔히 어떤 사람이 "작동방법을 알고 있다" 고 믿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진술은 모든 것이 기술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인간의 행위나 능력은 어느 것이든 기술이라고 지칭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저 기술을 가르치려고 한다고 말할 때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려주는 것이 거의 없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아무 것이나 가르치려고 한다고 말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빠져 버린다.
여기서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예컨대, 생물학 용어 목록을 암기하는 것이 기술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이것도 기술일 수 있다. 왜냐하면 학생들에게 암기할 것을 요구할 수 있으며, 어떤 학생은 다른 학생들보다 암기를 더 잘할 수 있으며, 그 학생이 생물학에 더 숙달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획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스크립틀릿의 측면에서 볼 때, 그 기술은 암기를 수반하는 인지적 스크립틀릿이다. 만일 누구에겐가 이 스크립틀릿을 가르치고자 한다면 암기하는 방법을 가르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사람은 생물학이 아니라 암기능력에서 우수해지는 것이다.
기술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한 가지 문제점은 "철수는 수학을 할 줄 안다" 또는 "철수는 생물학을 할 줄 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할 줄 안다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기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십상이라는 점이다. 수학이나 생물학이 할 줄 알게 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예컨대, 직원들이 시스템을 설치하거나 또는 다른 직원들을 관리할 줄 안다고 기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기술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각각은 수많은 스크립틀릿들의 집합일 뿐이다. 누구에겐가 이것들을 가르치는 경우를 상상해보면 이 사실이 더욱 명확해진다.
생물학을 하도록 가르칠 수는 없지만, 개구리를 해부하는 것은 가르칠 수 있으며 (물리적 스크립틀릿), 영양소를 생물학적 기능과 관련시킬 수 있으며 (인지적 스크립틀릿), 화학방정식을 해석할 수는 있다 (지각적 스크립틀릿). 실제로는 이러한 스크립틀릿들도 많은 소규모의 스크립틀릿들로 (예컨대, 칼 다루기)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수학을 하도록 가르칠 수는 없지만, 더하기를 가르치거나 심지어는 평면 기하학에서 어떤 정리 (theorem)를 증명하는 방법을 가르침으로써,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인지적 스크립틀릿을 지각적 스크립틀릿으로 변화시킬 수는 있다.
사업을 하는 경우라면 이것은 관리기법이나 의사소통기법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중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 기법들은 스크립틀릿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기법들을 고등학교에서 생물학을 암기해야 하는 사실들로 가르치는 방식대로 가르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내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방식은 오직 암기방법만이 학생들에게 숙달 시키려는 스크립틀릿일 때에만 적절성을 갖는다. 만일 학생들을 관리하기나 의사소통하기에서 유능하게 만들고자 한다면, 다른 것들을 가르쳐야만 한다.
가르칠 수 있는 기술과 본질적으로 가르칠 수 없는 기술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물학 하기나 직원 관리하기가 무엇이든지간에, 이것들이 단 하나의 기술일 수는 없다. 다양하면서도 상당히 무관한 스크립틀릿들의 집합이다. (예컨대, 생물학 하기에는 칼을 적절하게 사용하기와 현미경을 적절하게 다루기 등이 수반된다. 이 기술들은 때때로 동시에 발생한다는 점에서만 관련된다.) 만일 학습할 스크립틀릿들을 기술의 집합과 혼동하게 된다면 우리가 설계하려는 교과과정은 초점을 잃게 될 것이다.
스크립틀릿들이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는 기술의 집합을 확인하는 것이 교과과정 재설계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예컨대, 만일 생물학 하기를 학습하기 위해서 어떤 계산을 학습할 필요가 있다면, 이 문제에 접근하는 데는 두 가지 상이한 방법이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기술 집합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분리하여서 생물학에 앞서 수학을 선수과목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이 방법이 가지고 있는 일차적인 문제점은 기술들을 분리하여 묶음으로써 학생들의 흥미를 빼앗아 버릴 위험성이 있다는 점이다. 생물학 전공학생에게 화학이나 대수학을 수강하게 하는 것은 관심도 없고 재능도 없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도록 함으로써 자라나는 생물 학자의 싹을 잘라 버릴 위험성이 있다. 두 번째 위험성은 이러한 선수과목에서 가르치는 많은 부분들은 생물학 전공학생에게는 전혀 필요없는 내용일 수가 있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많은 내용들은 장차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Bransford et al. 1989; Reif & Larkin, 1991; Lampert, 1995). 수학의 강의내용은 생물학 전공학생들을 유능한 생물학자로 키우려는 계획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생물학자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수학의 측면들을 수학자들이 강조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실제로 생물학자는 자신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수학에서만 진정한 전문가일 가능성이 높다. 수학자는 생물학자에게 필요한 수학을 가르치기보다는 수학의 배경이 되는 이론을 가르치기가 십상이다.
이 문제는 학문으로서의 심리학과 인적 자원 관리간의 관계에서 보다 명백하게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은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이 인적 자원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심리학 강의에서 그런 내용을 가르쳤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주제에 학생들이 원천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겠다. 일반인들은 심리학 전공자들이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인간관계를 이해하는 방법을 학습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심리학 전공자들은 축소판 심리학자가 되는 방법을 학습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실험을 수행하는 방법, 적절한 통계분석을 실시하는 방법, 심리학에서 다양한 하위 분야들을 평가하는 방법 등을 배우는데, 그 어느 것도 사람들을 이해하거나 그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방법과는 별 관계가 없다 (Wiley & Voss, 1996).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전통적인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교과과정에 얽매이지 않고 학생들이 실세계에서 정말로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가르치며, 필요성에 근거하여 이러한 작업과 관련되는 기술이나 스크립틀릿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의 공통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양하면서도 관련되지 않은 많은 스크립틀릿들의 학습을 수반하는 목표기반 시나리오를 생성할 수 있게 된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스크립틀릿은 다음과 같은 대화상황에 적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a1: 나는 철수에게 X 를 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b1: 철수는 X 를 할 줄 모른다.
a2: 그렇다면 철수에게 X 를 하도록 가르치자.
b2: 말은 쉽다; X 를 할 수 있도록 학습하려면 경험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요점 중의 하나는, 특히 사업에 있어서 만일 X 가 "인적자원 관리" 라면 이러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 a1 과 b1 은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만일 X 가 "누군가를 해고하는 것" 이라면 위의 대화는 의미를 갖는다. 나아가서 누군가를 해고해보지 않고는 해고시키는 것을 학습할 수 없다는 말도 의미를 갖는다. 이것이 스크립틀릿을 획득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스크립틀릿을 학습하는 유일한 방법은 실제로 그것을 연습하거나 실행해 보는 것이다. 이 말이 시사하는 것은 스크립틀릿을 가르치는 최선의 방법이 연습상황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를 해고하는 것" 을 가르치고자 한다면, 연습시나리오를 만들어서 실제로 해고시키는 행위를 하기 전에 그러한 능력을 학습하고 경험을 해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조망하면, 생물학은 스크립틀릿이 아닌 반면, 개구리 해부는 적절한 스크립틀릿이 된다. 물리학은 스크립틀릿이 아니지만, 물리학 실험에서 필요한 계산을 하는 것은 스크립틀릿이다. 사람을 관리하는 것은 스크립틀릿이 아니지만, 작업이 주어진 예산범위내에서 제때에 수행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스크립틀릿이다. 편지를 쓰는 것은 스크립틀릿들의 집합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많은 스크립틀릿들로 구성된다 (예컨대, FORTRAN에서 루프를 작성하는 것과 같이, 루프의 사용법은 하나의 스크립틀릿이다). 재무보고서를 읽는 것에는 엄청난 수의 스크립틀릿들이 수반된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에도 수많은 스크립틀릿들이 수반된다. 요컨대, 만일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학습해야만 하며, 전문가들은 학습자가 제대로 수행하였는지의 여부를 비교적 쉽게 판단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의 스크립틀릿 또는 스크립틀릿둘의 자연스러운 집합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일차적 직업분류 (또는 일차적 학문영역 분류) 가 정확하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수많은 스크립틀릿들로 구성되어 있은 데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기술인 것처럼 언급할 때 혼란이 야기된다.
필요한 스크립틀릿들이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결정하려고 시도하다 보면, 그것이 어려운 과제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기술이라는 용어에 대한 일반적인 언어용법 때문만이 아니라 교과목들을 가르치는 전통적인 방식 때문에도 그렇다. 사람들은 생물학, 경제학, 역사학, 또는 심리학이라는 교과목에 익숙해 있다. 이 교과목들의 내용을 스크립틀릿과 관련된 견지에서 바라다보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 정의가 스크립틀릿과는 무관하게 내려져 있다 (Strauss &Shilony, 1994).
불행하게도 교과목들은 흔히 스크립틀릿과는 전혀 무관한 많은 논제들을 수반한다. 첫째, 교과목에는 거의 항상 성적이 수반된다. 이것은 양화할 수 있는 측정치를 갖는 시험을 의미하기가 십상인데, 시험은 실제 성취의 측정보다는 어휘의 측정치를 의미한다. 때때로 시험이 스크립틀릿을 측정하기도 한다. 예컨대, 수학에서 이러한 일이 자주 일어나기는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시험이 그러한 스크립틀릿들의 사용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요구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에 시험은 학생들로 하여금 가르치는 사람의 견지를 반복하도록 꾸며지며, 이것은 스크립틀릿이라는 용어를 왜곡시켜서 보지 않은 한에 있어서 결코 스크립틀릿이라고 할 수가 없다.
둘째, 교과목들은 학생들을 일종의 어린 학자로 만들려고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 가르치는 사람은 학생이 영문학 과목을 수강하면서 찰스 디킨스의 작품들을 읽지 않거나, 철학과목을 수강하면서 플라톤을 모르거나, 아니면 경제학 과목을 수강하면서 맬더스를 모르게 되는 것을 걱정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교과목들은 특정 분야의 역사를 가르치려는 방향으로 심각하게 편향되어 있다. 그렇게 됨으로써 스크립틀릿에 할애할 시간을 까먹게 되며 (따라서 실제로 해보는 것이 무시된다), 더욱 중요하게는 초점을 학문이라는 방향으로 이동시키게 된다. 학문으로의 초점이동이 의미하는 것은 교과목들이 사실 (fact) 들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학자가 주장한 것을 아는 것 그리고 그의 견해를 특정한 조건과 조화시키거나 대립되는 학자의 견해와 대비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 그 강의 그리고 학점을 주기 위한 시험의 핵심이 되어 버리고 만다.
교과목에서의 강조점은 주제 영역에서의 연습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실제로 해내는 방법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에 대한 글을 읽는 것 그리고 그 주제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논쟁을 벌릴 수 있게 되는 것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철학 과목은 학생들에게 "철학하기" 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을 하였던 사람들에 대해서 읽기를 요구한다. 철학의 경우에는 이것이 그렇게 나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위대한 철학자들이 있어왔으며, 세상은 본질적으로 중요한 측면에서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으며, 모든 중요한 문제들이 이미 언급되었는지에 대해서 논쟁을 벌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철학의 스크립틀릿들은, 비록 그것을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극히 지엽적인 것으로만 가르치고 있다. 나는 이 스크립틀릿들이야 말로 독자적으로 추론된 사고이며 논쟁거리라고 생각한다.
논의대상이 되고 있는 교과목이 웅대한 사상들은 모두 명료하게 고찰되지 못하였고 아직도 많은 것들이 밝혀져야 할 분야에 관한 것일 때 문제는 더욱 악화된다. 여기서 경제학과 심리학이 머리에 떠오른다. 학생들에게는 이 분야에서 수행된 중요한 연구들을 읽도록 요구하지만, 읽은 것을 말해보도록 하는 것 이외에는 학생들에게 무엇인가를 하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주장하려는 것은 학생들이 "경제학 하기" 나 "심리학 하기" 를 학습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그렇게 명확하지가 않다. 바로 이 점이 한 가지 문제가 된다.
물론 이러한 분야에 대해 냉소적이어서 가르칠 스크립틀릿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비록 통계학과 같은 다른 주제영역과 관련된 것일지라도, 수많은 스크립틀릿들을 사용하고 있다. 아무튼 실무자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스크립틀릿들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을 만큼 그 일을 수행하는 방법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가정할 근거는 없다. 그리고 비록 그들이 그 스크립틀릿들을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심리학이나 경제학의 한두 과목만을 수강하려는 학생들이 그 스크립틀릿들을 학습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의 여부를 물음하는 것은 계속해서 타당성을 갖는다. 그렇다면 학습하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학생들이 결코 사용하지도 않을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스크립틀릿들을 가르치려고 시도하지도 않은 채 그 분야에서 이루어진 연구들을 개관하도록 하는 것만으로는 학생들이 나아질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갈등의 핵심이다 : 교육 일반에서는 한 분야의 기존 연구를 개관할 것이냐 아니면 그 분양에서 실무자가 되는 법을 학습할 것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나의 입장은 단순하다: 개관 강의는 시험 보기 위해 가르치며, 가르치는 사람의 견지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으며, 몇 년이 지난 후에는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 학습하였던 내용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남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개관 강의는 전반적으로 시간의 낭비이다.
한편 스크립틀릿은 간단하게 검사할 수 있으며, 가르치는 사람의 견지로 편향되지 않으며, 오랫동안 학생들의 기억에 남아있으며, 그 기술을 보유한 위대한 명인들의 연구를 감상하고 존경할 수 있게 되는 틀걸이를 마련해 준다. 더군다나 학교에서 스크립틀릿의 완전숙달은 자신감을 제공하며 보다 쉽게 동기화시킬 수 있으며, 숙달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된다 (Trzebinski & Richards, 1986; Seifert, 1990).
한 가지 예로 음악교율을 생각해 보자. 여기서 나의 입장은 음악교육이 악기 연주를 학습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하며, 악기와 관련된 많은 스크립틀릿들이 학습된 후에는 학생들이 앞서간 음악가들의 작품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동일한 눈으로 만일 학생들에게 음악이론을 이해시키려 한다면, 우선 학생들이 스스로 작품을 만들어 보아야만 한다.
이것은 그렇게 극단적인 생각처럼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많은 음악학교가 바로 그렇게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러한 주장은 고등교육으로 올라갈수록 평가절하되기 십상이다. 고등교육에서는 음악학자들이 연주자들과 확연히 구분되며, 교과목을 가르치는 사람은 음악학자들이다. 게다가 고등학교 교과목, 그리고 심지어는 초등학교의 몇몇 교과목들에도 대학수준의 음악학 교수들의 편향이 남아있어서, 일련의 스크립틀릿들을 아주 쉽게 정의할 수 있는 주제영역에서조차 '행위를 통하지 않는 학습' (non - learning - by - doing) 교과목을 만들고 있다.
많은 초등학교들은 현명하게도 학생들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치고 있다. 반면에 아동의 교육에서 보다 핵심적인 주제들에서는 불행하게도 그렇지가 못하다. 학생들에게 물리학을 해보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diSessa, 1982). 실제로 사람들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조차도 알지 못한다. 학생들에게 수학을 해보도록 허용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왜 그것을 허용하는 것인지는 간과한다. 나는 스크립틀릿들이 확인될 수 있을 때 학교가 정말로 그것들을 가르치려고 할 것인지가 의심스럽다. 스크립틀릿은 측정하기가 쉽기 때문에 시험지향적 사회에 잘 들어맞는다.
그렇다면 스크립틀릿을 확인하기가 어려울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학생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학생들이 그렇게 하기 위해 언제 필수적인 스크립틀릿들을 갖게 되는지를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학생들이 읽고 있는 내용이 전혀 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때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삼차방정식을 풀 수 있는지의 여부는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인지적 스크립틀릿이다), 학교는 수학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요점은 비록 관련된 스크립틀릿들을 확인해 내는 작업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스크립틀릿을 가르치도록 용의주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스크립틀릿이야말로 가르치기 아주 쉬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적절한 (relevant) 스크립틀릿들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적절하다는 의미는 그 스크립틀릿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말이다. 따라서 교과과정을 설계하려고 덤벼들기 전에 어떤 실질적인 목적에서 어떤 스크립틀릿들이 필요한지를 알아내는 것이 좋은 생각이겠다.
학교는 교과과정 (curriculum) 으로 채워져 있다. 즉, 교과과정 설계자가 생각하기에 학생들이 주어진 분야에서 "자질을 갖춘" 것으로 판단되기 위해서 학습해야만 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일련의 합의된 교과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에 대한 교과과정은 그 교과과정의 설계자가 적절하다고 판단한 프랑스 언어, 문화, 그리고 역사의 특정 측면들을 다룬다. 수학 교과과정은 초등학교 3학년에서는 특정한 내용을 다루고, 고등학교에서는 기하학의 특정내용을 다루는 식으로 구성된다.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학생에게 4 년간의 수학교육을 요구한다고 할 때 의미하는 것은 수학의 특정 측면에 대한 공부를 요구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일정한 햇수동안에 학습할 수 있는 것이며 그 기간이 끝날 때 일정한 시험을 치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학교간에는 이러한 교과과정에서 약간의 가변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 차이는 별로 크지 않으며, 특히 표준화된 시험이 예정되어 있을 때는 더욱 차이가 없게 된다.
교과과정이라는 생각은 주어진 주제에 대해서 무엇을 학습해야 할 것이냐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학교가 권한과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데 근거한다. 여기에 심각한 문제점이 들어 있다. 교과과정이라는 생각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논지로부터 교과과정은 획득해야 할 스크립틀릿의 집합일 뿐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뒤따른다. 다시 말해서 만일 실제 지식이 행위로부터 오는 것이며, 행위에서 학습하는 것이 스크립틀릿이라면, 교과과정이나 교과목 또는 교육프로그램은 더도 덜도 말고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스크립틀릿을 획득하는 방식, 즉 연습을 통해서 그 스크립틀릿을 획득하도록 해주는 일련의 연습이어야만 한다. 물론 여기에는 동기의 문제가 있다. 필요한 과제들을 해내려는 진정한 동기가 없는 한, 어느 누구도 스크립틀릿을 학습하기는커녕 연습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Dweck, 1986; Ames,1990). 예컨대, 앞에서 언급하였던 스크립틀릿들인 'VCR 설치하기' 와 '전자 우편 보내기' 를 다시 보도록 하자. 이것들은 내재적으로 보상적인 행위가 아니다 ; 그 행위를 학습하는 것은 그 행위가 초래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다. 교과목 설계자는 바로 그러한 결과가 스크립틀릿을 획득하려는 실제 동기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조망 하에서 교과과정이라는 생각은 아주 명백해진다. 스크립틀릿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하도록 만들어준다. 스크립틀릿을 학습하도록 학생들을 동기화시키려면, 적어도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는 참이어야 한다 : 학생이 스크립틀릿의 결과가 내재적으로 보상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해야만 한다 ; 그 스크립틀릿은 내재적으로 보상을 주는 스크립틀릿 패키지의 부분이어야 한다; 또는 그 스크립틀릿은 내가 학습을 위한 정렬이라고 부르는 것의 실례이여야만 한다.
스크립틀릿을 학습하는 것이 모두 내재적으로 보상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전자우편을 보내거나 VCR 를 설치하는 것이 내재적으로 보상적인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주어지는 결과를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른 내재적 보상 스크립틀릿으로는 "토스토 만들기", "전화 걸기", 또는 "골프 치기"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스크립틀릿을 학습하는 이유는 그것이 보다 큰 패키지의 부분이기 때문이거나 다른 무엇을 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많은 스크립틀릿들이 함께 묶일 수 있다. 어느 것도 독자적으로는 존재할 수가 없다. 예컨대, 내가 나중에 M-식당으로 재분류하였던 고전적인 $-식당 가기 스크립트도 주문하기, 지불하기 등을 포함하는 있는 스크립틀릿의 집합이다. 자동차 운전하기는 시동걸기, 브레이크 밟기, 차선 바꾸기 등을 포함하는 스크립틀릿들의 집합이다. 야구 하기는 땅볼 수비하기, 커브볼 치기, 슬라이딩 하기 등을 포함한 스크립틀릿들의 집합이다. 이것들 중에서 어느 것도 그 자체만을 위해서 수행되지 않는다. 그렇기는 하지만 모든 스크립틀릿들이 연습을 필요로 하며, 연습을 통해서 그것들을 학습하지 못할 때 야기 될 수도 있는 다양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숙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연습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내가 실제적 요구와 맥락을 벗어난 연습을 권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는 너무나 자주 학생들이 실제로 무엇인가를 해보기도 전에 기술을 연습하도록 요구함으로써 동기와 맥락 모두를 제거해 버리고 만다.)
기억구조의 예들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는 S-주문하기와 S-지불하기를 언급하였으며MOP 가 이러한 장면들을 묶는다고 주장하였다. 장면과 스크립틀릿은 혼동되기가 십상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혼동해서는 안되겠다. 내가 광의적 의미를 갖는 기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 스크립틀릿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스크립틀릿에서 내가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기술이란 단어의 한 측면, 즉 장면과 스크립틀릿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관련된 측면이다. S-식당에서 지불하기는 그 속에 $-지불하기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 스크립틀릿은 단지 신용카드 용지에 적절하게 서명하는 방법을 아는 기술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 장면은 $-지불하기와는 전혀 무관한 다른 속성들도 (웨이트리스의 존재나 조그만 플라스틱 접시의 사용 등) 가지고 있다. 스크립틀릿은 하나의 장면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 자신의 역할의 일부로 학습하는 일련의 행위를 지칭한다.
스크립틀릿을 그 자체로 언급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토스트 만드는 방법을 안다거나 자동차 바퀴를 갈아끼우는 법을 안다거나, VCR 을 설치할 줄 안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자동차 시동 거는 방법을 안다거나 식당에서 계산할 줄 안다고 말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이것들은 모두 하나의 스크립틀릿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다. 스크립틀릿의 두 번째 범주는 스크립틀릿 패키지의 구성성분으로써, 결코 내세울 만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패키지의 성분이라는 이유 때문에 학습하는 유형이다. 패키지 자체는 내세울 만한 것이지만, 성분 스크립틀릿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따라서 야구를 잘 한다거나 유능한 인적자원 관리자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이러한 능력을 대표하는 단일 스크립틀릿은 존재하지 않으며, 실제에 있어서도 그 스크립틀릿들은 결코 "능력" 이 아니다. 오히려 능력은 스크립틀릿 패키지에 해당하는 것이며, 단일 스크립틀릿은 어느 것도 그 자체로써 언급할 만한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각 스크립틀릿은, 그것이 패키지에 들어 있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동일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그 특성들을 연습을 통해서 학습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만일 그것들을 가르치려고 작정한다면, 특성들 간에 존재하는 중요한 차이점을 명심해야만 한다. 홀로 존재할 수 있으며 내재적으로 보상을 주는 것들은 자체적으로 가르칠 수가 있다. 토스트 만드는 방법이나 VCR 을 설치하는 방법은 다른 행위나 동기가 없는 상황에서도 학습할 수가 있다. 스크립틀릿 패키지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야구에서 슬라이딩 훈련은 옷이 더러워지는 것이 내재적으로 보상이 되는 사람에게는 재미있을 수도 있지만, 신용카드 용지에 서명하는 방법에 대한 훈련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며, 운전 연습을 하는 상황도 아니면서 브레이크 밟는 훈련을 받으려고 할 사람도 없다. 패키지의 부분이 되는 스크립틀릿은 그 패키지의 맥락에서 가르쳐야만 한다. 이것이 어째서 문제가 되는 것인지를 뒤에서 보게 될 것이다.
스크립틀릿의 세 번째 범주는 다른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 학습한 스크립틀릿이다. 이것은 패키지에 들어있는 각 스크립틀릿에도 해당되지만, 패키지에 들어있지 않은 스크립틀릿 그리고 패키지 자체에도 해당된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내재적으로 보상을 주는 또 다른 어떤 것을 학습하기 위해서 스크립틀릿을 학습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아니면 또 다른 목표를 달성하려는 보다 큰 패키지의 부분으로써 특정 목표를 갖는 작은 패키지를 학습할 수도 있다. 스크립틀릿은 장기적 목표와 관련될 때에만 유용하다는 생각은 교과과정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생각이 된다.
예컨대, 정사각형 면적을 계산하는 능력은 모든 어른에게 필요한 유용한 기술이라는 데 모두 동의할 것이다. 학교도 그러한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있으며, 그러한 교육을 수학 교과목에 포함시키고 있다. 스크립틀릿이라는 개념 (그리고 장면, MOP, TOP 도 포함하여) 은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수학 교과목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나의 주장을 지지한다. 오히려 정사각형의 면적을 계산하는 스크립틀릿이 포함된 수학 스크립틀릿들은 의미있는 교과과정 내에서 가르칠 필요가 있다. 정사각형 면적 계산은 내재적으로 보상을 주지도 않으며, 상호의존적인 스크립틀릿 패키지의 부분도 아니다. 그 자체로서는 아무도 학습하고자 원하지 않는 독자적인 스크립틀릿일 뿐이다. 따라서 심각한 동기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보다 중요하게는 사용의 문제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스크립틀릿이 어떤 실제적 맥락과도 분리된 채 학습되기 때문에, 그 스크립틀릿 그리고 그것을 포함하고 있는 장면을 다른 관련된 장면들과 연계시키는 MOP 속에 집어 넣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그 스크립틀릿을 강제로 학습시킨다고 하더라도 학생은 장차 적절한 시점에서 그것을 찾아 내서 활성화시킬 수가 없게 된다. 실제로 학생은 새로운 맥락에서 그 정보를 회상하도록 요구받더라도 전혀 엉뚱한 생각나기를 할 수가 있다 (Medin & Edeldon, 1988)
그러한 상황에서 한 가지 가능성은 그 스크립틀릿을 학습하는 것이 중요한지의 여부를 재고찰하는 것이다. 만일 중요하다면 좋은 교과과정은 보상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그 스크립틀릿을 학습해야만 하는 상황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만일 정사각형 면적의 계산을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그것을 예컨대 나무 위에 놀이집을 짓는 계획 속에 끼워넣어야 한다. 이 경우에 그러한 계산을 여러 번 할 필요가 있으며,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 학습이 된다. 만일 이 상황이 보상적이라면, 학생은 적절한 스크립틀릿을 학습할 것이다. 반면에 만일 이 스크립틀릿을 자연스럽게 포함하면서 학생에게 보상적인 상황을 찾을 수 없다면, 그 학생에게 있어서 그 스크립틀릿을 학습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모든 학생들이 모든 스크립틀릿을 숙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재무보고서를 읽는 방법 (이것은 스크립틀릿 패키지에 해당한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다면, 그 지식이 문제가 되는 맥락을 찾아보아야 한다. 재무보고서를 읽는 데 들어 있는 다양한 스크립틀릿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의사결정을 학생에게 내려보도록 만드는 것은 관련된 스크립틀릿을 정말로 획득하는 것과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 단순 암기하는 것간의 모든 차이를 드러내 준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이 있다. 스크립틀릿이 역할을 담당하는 맥락을 찾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그 스크립틀릿들이 빈번하게 역할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연습은 스크립틀릿 획득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에서 기계적 반복연습을 하는 것처럼 동일한 스크립틀릿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교과과정에서 동일한 스크립틀릿이 사용되는 상황들이 계속됨으로써 연습이 연습같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교과목은 스크립틀릿 (또는 스크립틀릿 패키지) 들이 내재적으로 보상을 주는 것이 아닐 때 그 스크립틀릿들을 획득하게 해주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교과목은 학생이 어떤 목표를 달성하려면 그 스크립틀릿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모든 스크립틀릿을 획득하도록 상황을 구성해야 한다. 이 설계에서는 학생이 목표의 진행과정을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학생은 시나리오 자체를 엮고 있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원하여야 하며, 최종 목표의 달성으로 이끌어가는 하위 목표들을 이해하여야 하며, 어떻게 각 스크립틀릿이 다양한 하위 목표들을 달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인지를 이해하여야 한다. 의미있는 교과과정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목표기반 시나리오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시나리오는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된 스크립틀릿들로 구성된다 (목표기반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뒤에서 상세하게 다룬다).
교과과정의 설계에서 목표는 스크립틀릿들을 획득하도록 해주며 숙달된 스크립틀릿 기반 상황에 처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어려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관련 경험들을 충분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다양한 경험 속에서 학생들이 차이를 알 수 있도록 지도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학생은 언제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한지, 언제 예외적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더 많은 생각이 요구되는 것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Chi et al., 1989).그렇다고 해서 학생이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선생은 학생에게 필요한 지식을 지적해 주거나, 새로운 데이터를 따져보거나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도록 제안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리고 학생이 질문을 하였을 때, 반복경험을 통해서는 쉽게 추론하거나 획득할 수 없는 사실들을 제공함으로써 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을 올바른 경험으로 안내할 수 있도록 항상 그곳에 있어야 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학생이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것을 알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훌륭한 선생이라면 학생을 충분히 많은 상황에 노출시켜서 스스로 학습하려고 할 만큼 학생의 호기심을 높여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목표기반 시나리오에서 선생의 역할은 흥미진진한 문제를 벌려 놓고 학생이 그 문제를 풀겠다고 요청할 때 문제해결을 위한 도구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목표의 달성은 그 자체가 보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교과과정은 학생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학습한다는 생각을 지향해야 하며 또한 그 생각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이 호기심을 갖게 됨으로써 기상천외한 사례뿐만 아니라 관례적인 스크립틀릿들도 학습하게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만일 성취의 측정이 용이해야 한다는 생각을 포기한다면, 개방적 문제 (open - ended problem) 를 가지고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학습하는 것과 같은 교육목표를 설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성취는 측정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관찰하게 되면 그 성취를 알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어떻게 가르칠 것이냐 그리고 어떻게 교육을 실시할 것이냐의 문제는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된다. 실제 내용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만일 학습하는 방법, 알려져 있는 것을 찾아 내는 방법, 그리고 옛 생각이 낡았을 때 포기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새로운 지식영역에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stasz et al., 1990).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좋은 답변보다는 좋은 질문을 개발하는 방법을 가르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하는 것을 도와주는 방법을 찾아서 가르치자는 것이다.
목표기반 시나리오가 중요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방식이나 아니면 보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는 주제 하나를 선택하여 위의 생각을 펼쳐보기로 하자. 포도주에 대한 학습을 생각해 보자. 이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내가 포도주에 대해서 우연히 조금 알 게 되었으며 동시에 어른들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즉, 포도주 교육은, 특별히 그러한 교육을 요청하였으며 그 교육을 받기 위해서 수강료를 지불한 어른들을 제외하고는,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포도주 학교로 가보자.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포도주 학교는 아니지만, 학교나 다른 많은 공식적 훈련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4 권의 책장를 나누어 주는 것으로 포도주 교육이 시작된다. 하나는 지리책으로, 버건디와 미국에서 포도 재배지역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며, 예컨대 버지니아, 뉴욕, 그리고 텍사스주의 포도주 생산공장을 소개하고 있다. 두 번째 책자는 농업책이다. 다양한 포도 품종과 그것들이 어느 지역에서 생산되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며, 토양조건, 기후문제, 최적 수확기 등을 논의하고 있다. 세 번째 책자는 포도주 생산과정에 대한 책이다. 발효, 저장, 배합 등의 과정이 포함되며, 샤또 포도주의 소유주가 누구인지 등을 포함한 포도주 사업에 관한 논의도 포함되어 있다. 네 번째 책자는 역사책으로, "로마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포도주를 즐겼는가?" , "누가 코르크 마개를 만들어 냈는가?" , "최적의 저장방법은 어떻게 찾아졌는가?" , "영국인들은 왜 보르도산 포도주를 선호하는가?" , "로마시대에는 프랑스에 포도주 생산지가 어디에 있었는가?" 와 같은 물음에 답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영역에 대한 교육이 끝나면, 시험이 시작된다. "지난 30 년 동안 최상품의 보르도산 포도주가 만들어진 해는 언제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샤또성의 소유주는 누구인가?" , "무톤 - 로쓰쉴드 포도주가 생산량 1 위를 기록한 해는 언제인가?" , "오레곤주에서 생산되는 포도는 어떤 종류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 "프랑스와 미국이 최초로 합작하여 포도주를 생산한 벤처회사는 무엇인가?" , "여러분은 지도에서 로니 계곡의 샤또네 뒤 빠쁘 지역을 확인해 낼 수 있는가?"
여기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이것이 학교에서 대부분의 과목을 가르치는 방법이다. 학교는 시험으로 검사할 수 있는 정보를 가르친다, 시험을 칠 수 없다면 어떻게 학교는 학생들이 무엇인가를 학습하였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겠는가? 시험이 교과과정을 이끌어가며, 그래서 사람들은 원래의 목적을 망각하고 만다. (단순 암기나 읽기를 제외한) 어떤 스크립틀릿도 이러한 교과목에는 실질적으로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란다. 학생들의 목표, 즉 사실들을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포도주를 마시려는 욕구와 관련되어 있을 그들의 목표는 무시되었다. 나는 그런 학교가 오랫동안 문닫지 않고 운영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만일 학교나 교육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이 유사한 상황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더라면, 아마도 대부분이 떠나고 말았을 것이다.
계속 운영하기를 원하는 학교라면 포도주에 대한 강의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포도주에 대해서 가르친다는 것은 그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지 포도주에 대한 사실들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포도주에 대해서 보다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포도주를 음미하는 것이야말로 무엇인가 학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포도주를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있게 되는 것, 많은 상이한 경험을 통해서 일반화하는 것은 새로운 사례 (예컨대, 유별나게 좋은 포도주는 기억될 것이다) 들과 새로운 일반화 (예컨대, 특정한 지역이나 연도에 만들어진 모든 포도주가 다른 지역이나 연도에 생산된 포도주와 대비해서 공유하는 공통특성을 경험하는 것)를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습자는 보다 광범위한 문제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학습에는 무엇보다도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를 아는 능력이 수반된다 (Graesser, Baggett & Williams, 1996).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충분한 사례나 스크립틀릿들을 갖게 되면 그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고 새로운 사례들과 스크립틀릿의 개선을 추구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지식이 획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의 획득이 흥미를 끌게 되는 것은 오직 이 방법뿐이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사실들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학생이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 사실을 찾아보려고 함으로써 그 사실을 유용한 것으로 만드는 방법뿐이다.
내가 로니 포도주에 대해서 또는 영국인들이 보르도산 포도주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서 (한 때는 영국이 그 지역을 소유했었다) 생각하기 시작할 때까지는 포도주를 마시기 시작한 후 여러 해가 걸렸다. 나는 대략 언제 샤또 마르고의 소유주가 바뀌었는지를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 품질이 소유주가 바뀐 시점에서 두 차례에 걸쳐서 급격하게 변화하였으며 (한번은 형편없어졌으며 다시 좋아졌다) 내가 샤또 마르고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어느 연도 제품을 피해야 하는지를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그 유명한 샤또 마르고를 방문하였으며, 그 지역과 거기서 맛본 포도주를 정말로 좋아했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원천적으로 포도주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분에게 성지가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은 한, 그것은 성지가 아니다). 지금 나는 보르도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왜냐하면 샤또 마르고에 가기 위해서는 지도에서 보르도의 위치를 찾아야 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해 동안 보르도산 포도주를 마시면서도 보르도지역이 프랑스 남서쪽 어디엔가 있다는 사실말고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였다.) 만일 내가 적절하지 않은 시점에서 보르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면, 모든 사실들은 무의미하고 쉽게 망각되었을 것이다. 적절한 시점이란 내가 그 사실들을 알고자 원하였던 시점이며, 그 시점은 선생의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결정하였던 시점인 것이다.
행위를 통한 학습은 어린 아동을 위한 학교이든 아니면 어른을 위한 학교이든 모든 학교가 채택해야 할 올바른 방법이다. 오늘날 기업들은 사원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데 보다 많이 투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기존의 교수방법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향이 있어서, 원천적으로 문제를 야기하는 결점 투성이의 교육시스템을 엉성하게 모방하는 소위 사내대학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직원들은 거의 불평을 토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교육 시스템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어른들은 강의를 통해서 이론을 학습하고 선다형 시험을 통해서 자신의 지식을 증명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실제로 학습을 초래할 것이라고 스스로 망상에 잠기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기업에서 일어나는 진정한 학습은 업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직원이 주어진 상황에서 보다 많은 경험을 할수록 그 상황에서 보다 효율적인 직원이 된다. 따라서 직원을 가르치는 최선의 방법은 가르치려고 시도하는 기술을 요구하는 업무를 직접 수행하도록 만드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결국 그 직원은 그 기술을 획득하게 된다. 그렇다면 훈련의 역할은 무엇인가? 어째서 직원들이 현재 직무에서 벗어나 행위를 통한 학습을 하도록 가르치지 않는 것인가? 이 방법이 항상 작동하지 않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행위를 통한 학습은 위험할 수가 있다. 폭탄 제거하기 또는 제트기 비행하기를 학습하는 최선의 방법은 행위를 통한 학습임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훈련생들의 훈련은 실패가 사망이나 심각한 부상을 의미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실패는 행위를 통한 학습에서 핵심적 요소이다.
2. 행위를 통한 학습은 비용이 많이 들 수가 있다. 훈련생들이 의도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고 해서 그들을 모두 즉각적으로 써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숙한 훈련생을 실제 직무에서 일하게 하는 것이 그들을 훈련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훈련생의 형편없는 성과로 인해서 심각한 신체적 · 재정적 위험이 야기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훈련생은 학습하는 동안 별 쓸모 없게 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 직무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거나 그 직무에 오래 남아 있는 직원이 별로 없는 경우에는, 장기적인 훈련을 시킨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 되고 만다. 실패가 상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때는 - 고가의 장비를 망가뜨린다거나 부적절한 행동의 결과로 기업에 손실을 끼치게 될 때는 - 그 실패가 연습과정에서만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3. 행위를 통한 학습이 적절한 사례들을 제공하지 못할 수 있다. 직무훈련은 학습할 필요가 있는 많은 것들을 경험할 기회를 직원들로부터 박탈할 수도 있다. 진정한 행위를 통한 학습은 다양한 환경에서 무선적으로 일어날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실제 직무환경에서는 폭넓은 경험이 일어나지 않는다. 단지 모든 사람들은 그런 경험이 일어나기를 희망하고 있을 뿐이다.
4. 행위를 통한 학습은 아동에게 부적절할 수 있다. 아동은 성장한 후의 삶에서라면 할 수 있기를 원하게 될 기술을 연습하지 않으려고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아동은 결국 아동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동은 장차 사용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기술을 학습하는 데 요구되는 많은 양의 시간을 투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의 결론은 간단하다. 효율적 훈련의 목표는 훈련생에게 필요한 폭넓은 경험을 가능한 한 집중적으로,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비용을 많이 사용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시의적절하게 많이 반복시키는 것이다 (Watkins & Marsick, 1993; Brinkerhoff & Gill, 1994). 훈련은 훈련의 대상이 되는 직무와 똑같게 보이며 동시에 똑같게 느껴져야 한다.
아동 교육도 비로 직무지향적이지는 않더라도 실세계의 기술과 관련되어야 한다. 아동들에게 삶에서 하고 싶어하는 어른의 일들을 시도해 보도록 하라. 아동은 집놀이, 선생놀이, 의사놀이 아니면 아동이 쉽게 흉내낼 수 있는 모든 기술들을 자연스럽게 연습한다. 아동이 실생활의 기술들을 실제적인 방식으로 연습할 수 있는 좋은 모의상황들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어떤 것이 그러한 기술들인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으며, 아동이 흥미를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함으로써 행위를 통한 학습 교과과정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아동은 어른의 삶에서 유용성을 찾을 수 없는 것들을 학습하려고 들지 않는다.
행위를 통한 학습이 작동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의존하는 기본 기억과정의 정곡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기억은 스크립틀릿들과 그 일반화에 근거한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배우고 나면, 학습한 것이 어떻게 옳고 그른지를 알 게 된다. 언제 규칙들이 적용되는지 그리고 언제 그 규칙이 수정되어야 하는지를 학습한다. 언제 규칙들이 일반화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언제 예외적 사례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학습한다. 언제 규칙들이 영역제한적인 것인지 그리고 언제 영역과는 무관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학습한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하며 그 경험들을 (보다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그러한 경험들의 기억을) 기존의 기억구조에 통합시키려고 시도함으로써, 이 모든 것들을 행위를 통해서 학습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합과정은 새로운 데이터에 의존한다. 새로운 데이터는 경험에 의해서 제공된다. 새로운 데이터를 단지 듣기만 할 때에는 그것을 기억 어디에 집어넣어야 할지를 모르게 된다. 왜냐하면 그용도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데이터를 스스로 경험할 때는, 달성한 목표와 희망하였던 목표 등등에 대한 장면, 감각, 감정, 회상내용 등도 동시에 경험한다. 다시 말해서, 학습한 것들을 특징짓는 방법을 알아내도록 도움을 주는 충분한 맥락을 갖게 됨으로써, 그 데이터를 위한 기억 위치를 찾아 낼 수 있으며 일반화 과정과 차별화 과정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행위를 통하여 학습할 때 실제로 학습하는 것은 특정 영역에서 무엇인가를 달성하는 방법 (스크립틀릿) 의 세부사항들, 예컨대 영역과는 독립적인 방략 (처리방략) 들 그리고 장차 기억 시스템과의 가능한 통합을 기대하면서 예외적이 것으로 홀로 존재하는 사례들이다. 행위를 통한 학습이 작동하는 이유는 이것이 모든 중요한 기억의 문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며 동시에 비의식적 지식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