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포퍼 (Karl R. Popper)
20 세기를 움직인 사상가들 : Guy Sorman 지음, 강위석 옮김, 한국경제신문, 1991, Page 385~398
"어떤 시대나 상황에서도 진위의 구별은 가능하다."
1902 년 오스트리아 빈의 부유한 부르주아 가문에서 변호사인 부친과 음악가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빈 대학을 졸업한 그는 학창시절 참된 과학과 사이비 과학의 차이가 「반증가능성」에 있다고 규명하는 등 과학철학에 큰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1937 년부터는 뉴질랜드에서 생활하면서 연구활동을 계속한 그는 제 2 차 세계대전후 영국에 귀화해서 영국 여왕에게서 작위를 받았다. 비판적 합리주의라는 20 세기 철학사상 독특한 입장을 표명했던 그는 전후 미국과 영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폈으며, 과학철학과 사회철학에 큰 업적을 남긴 현대 서양철학의 거인이다. 주요 저서로 「열린 사회와 그 적들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추측과 반박 (Conjectures and Refutations)」과 「인식론의 두 가지 근본문제 (Die beiden Grundprobleme der Erkenntnistheorie)」등이 있다.
매우 왜소한 몸집에다 엷은 색깔의 눈동자, 듬성듬성 난 백발, 늙어 주름살은 잡혔지만 미소를 띈 다정한 얼굴을 한 그가 작은 시골집 현관 앞에서 나를 맞아준다. 우리는 지금 런던 중심부로부터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만큼 떨어진 켄리 (Kenley) 에 있다. 나는 그의 겸손한 용모를 내가 알고 있는 그의 인물됨이나 기념비적 저서와 합치시키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종류의 구분이 그 어떤 뜻이라도 갖는다면 포퍼 (Sir Karl R.Popper) 는 우리 시대에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현대 철학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내 심정이다. 지난 60 여년 동안 그의 저서와 강의는 오늘날의 과학적 연구방법에 대하여 엄청난 영향을 미쳐 왔다. 또 한편에서는 그의 저서와 강의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가진 동일한 철학적 뿌리를 처음으로 조명해 주었다. 끝으로 그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재등장에 결정적 공헌을 하였다.
포퍼에게는 수백권의 책과 세미나가 헌정되었다. 프랑스에서 포퍼가 알려진 것은 훨씬 늦어서였다. 그의 저서가 프랑스어로 처음 번역된 것은 1960 년대 초였는데 이것은 그의 생물학자 친구 모노 (Jacques Monod) 와 경제학자 친구 주벤느 (Bertrand de Jouvenes) 가 추진한 것이다.
그가 가진 지성계에서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포퍼는 이렇다 할 상을 받은 적은 없다. 그는 그런 것을 추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지금 그는 가족도 없이 혼자서 살고 있다. 포퍼는 내게 자기가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점에 대해 미안스러움을 표시했다. 『이렇게 고속도로에서 너무 떨어진 곳에 살아 사람들이 찾아 오기가 힘들지요.』라고 내게 말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떨어진 곳에 사는 것이 자기에게는 좋다고 말한다. 방해받는 것이 없이 책과 음악에 둘러싸여 평화롭게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몇 시간씩 그는 바흐 (Bach) 를 연주하고 그 자신 직접 푸가 (fuga) 를 작곡한다. 『난 언제나 도시와 쓸데없는 도시적 흥분을 피해 다녔어요.』금세기초 빈에서의 젊은 시절에는 천박성을 혐오했었다고 포퍼는 실토한다. 그는 빈에 있는 문학적 카페들을 기피하기로 작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1937 년에 그는 오스트리아를 떠났는데, 오스트리아에 관한 것으로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독일어 억양과 좀 장난기 어린 표정을 들 수 있을 뿐이다. 이런 표정은 어느 한 세대 전체의 빈 출신 지성을 특징짓는 천재성을 나타내는 반짝임이다. 포퍼는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 후 그는 개신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내게 말하기를 자기는 빈의 문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모순되고 표피적인 이론이 많이 나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자신은 계몽주의 (enlightment) 전통을 이어받은 노선을 지지하는 일원이었다고 천명한다. 그는 말한다. 『계몽주의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모토 「나는 내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에까지 시대를 거슬러 올라 갈 수 있습니다.』
86 세가 된 포퍼는 이 위대한 전통을 지키고 있는 드문 생존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아직도 집필을 계속하고 있다. 사실은 그의 저서를 출판하는 출판사들이 그의 집필량을 감당해내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1968 년 5 월 그의 지적 자서전의 결론 부분에 포퍼는 썼다. 『나는 내가 만나본 철학자들 가운데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지성인들 뿐만 아니라 그를 숭배하는 일부 사람들까지도 낭패하게 만들었던 이 역설을 그는 아직도 견지하고 있는 것일까. 철학자라면 우리들의 저주받은 시대, 특히 20 세기의 불운이 몰고 온 아픔을 한탄해야 하는 것이 그 사명이 아닐까. 그건 결코 그렇지 않다. 포퍼는 사실에 기초를 두고 성립된 그의 낙관론에 집착한다. 다만 사실만이 그의 흥미를 일으킨다. 그래서 그가 쓰는 문장은 대다수가 『사실은……』으로 시작된다. 객관적으로 말한다면 1945 년까지만 해도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던 문제의 대부분을 과학의 도움을 받아 이미 해결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나는 그 이유와 방법은 밝힐 수 없으나 이것은 사실입니다.』역사상 그 어느 때도 오늘날처럼 살기가 쉬웠던 사회는 없었다. 오늘날처럼 평화와 정의가 많았던 것은 일찍이 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 빈은 엄청난 풍요를 구가하고 있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오늘날의 인도와 비교될 만큼 가난했습니다.』라고 포퍼는 말한다. 이제 서유럽에서는 현실적으로 빈곤은 사라지고 없다. 과도한 사회적 불균형도 없다. 개인은 거의 무제한적인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교육은 장족의 진보를 이룩하였고 책임감도 매우 고양되어 있다. 실업률은 저하되었고 노예제도나 잔혹행위는 현실적으로 없어졌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은 대단히 짧은 시간 동안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사회개혁도 경제발전도 폭력을 통해서는 얻어낼 수 없다는 점을 알 게 되었습니다. 소련마저도 이 점을 깨닫게 되었어요.』그러나 가장 의미심장한 성취를 들자면 그것은 우리 사회를 개선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이 근거있는 비평이라면 여기에 귀를 기울이고 합리적인 제안이라면 이를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는 점이라고 포퍼는 보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이러한 진보를 측정하는 좋은 방법은 우리들 시대의 길이를 역사상 다른 시대의 길이와 비교해 보는 것이라고 한다. 이 차이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교육계와 언론계에 있는 지성인들뿐이다. 이 사람들만이 우리가 도덕적 연옥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사람들만이 공산주의를 옹호하고 있다. 이들은 서유럽이 누리고 있는 이 자유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핑계를 대고 우리가 나서서 그것을 파괴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왜 지성인들은 이렇게 병적인 안맹에 걸리게 되었나요?』
『당신의 질문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심리학적 설명이 문제가 될 수 없어요. 그건 사실입니다.』라고 포퍼는 되받는다.
포퍼의 역사적 낙관주의 (historical optimism) 는 인간에게는 사회의 악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관찰에다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우리는 파멸을 모면할 수 있다. 『그건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포퍼는 설명한다. 『나의 낙관론은 단지 현재에 대해서만이 유효합니다. 이 낙관론은 미래에 연장되어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필연적으로 장래에는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 사회는 완전한 상태를 향해서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사는 법칙에 의하여 지배받는다고 믿는 것, 개인은 역사진전의 필연성에 종속된다는 것, 이 모든 것이 포퍼가 역사주의 (historicism) 라고 부르는 것의 내용이다. 이것은 이념 전체의 중심부에 놓여있는 지적 혼란, 즉 정신착란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포퍼는 역사주의가 파시즘과 마르크스주의, 두 사상에 대한 공통되는 기초라고 강조한다. 미래는 현재에 의하여 조건지워진다고 믿는 것은 전적인 오류이다. 현재의 아무것도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해주지는 않는다. 왜? 실은 그 반대가 오히려 성립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에 의하여 흡인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현재 행동은 우리가 가진 미래에 대한 설계에 의하여 지배된다. 실제로 미래가 우리의 꿈대로 실현된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사건의 진로를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포퍼의 방법론을 극단적으로 요약한다는 것은 그의 인간과 저서에 옳은 일을 하는 것이 결코 못된다. 우선 들 수 있는 예로는 포퍼가 나의 질문이 잘못 짜여져 있음을 내가 깨달을 수 있도록 분명한 말로 지적한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미소가 이러한 훈계를 부드럽게 해준다. 『당신 질문을 바보같다고 내가 말한 것 때문에 젊은 양반이 쇼ㅛ크를 받았나요? 그렇지만 바보같은 질문을 하면 거기에 대한 대답도 바보같은 것이 될 수밖에 없지요. 당신 질문은 다음과 같이 했어야 합니다.』그리고는 그는 내 질문이 잠재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을 다시 14 개의 소질문으로 만든다. 내가 기초적인 것이라고 여기고 있던 점들이 갑자기 복잡한 것이 되어 있다. 나는 독일식 철학의 복잡함과 변화에 익숙해있지 않다.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를 두고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된다고 포퍼는 설명한다. 그래서 내가 『…무엇입니까』형의 질문을 시작할 때마다 그는 연민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시간을 허비하면서 기초적 단계에서만 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을 내가 깨달을 수 있도록 해준다. 철학자가 말할 수 있는 가장 바보같은 질문은 『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라고 포퍼는 덧붙인다.
그는 나의 질문을 일단 새로 구성시켜 놓은 다음 이 질문에서 파생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포괄하여 하나씩 대답을 내린다. 포퍼와의 면담은 장시간 계속되었다. 그는 나이가 나보다 두 배나 되지만 이 면담이 끝났을 때 나는 그보다 훨씬 더 지쳐 있었다. 그의 사상의 풍부함과 복잡성을 단 몇 페이지에다 재생시키기는 불가능하다. 기껏해야 그가 지닌 천재성에서 나오는 몇 줄기 섬광을 깨닫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분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의 철학의 요체는 비판주의 (criticism) 에 있다는 점이다. 철학자나 지성인은 진리를 찾아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오류를 펴보이는 사람이다. 포퍼가 가장 훌륭하게 보이는 때는 그가 나의 질문이나 주장을 하나하나씩 해체해 나갈 때이다. 그는 결코 『그것은 맞고』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맞지 않소』라는 말만 할 뿐이다. 철학적 과정을 반대방향으로 뒤집어 놓음으로써 포퍼는 과학적 연구의 방법에 혁명을 가져왔다. 마치 수학적 정리나 물리학적 이론이 과학상의 지식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과 같이 말이다.
20 세기의 지적 비등 속에 젊은 포퍼는 마르크스주의ㆍ자유주의ㆍ정신분석학ㆍ아인슈타인 물리학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었다. 그는 어떻게 거짓으로부터 참을 가려내느냐를 두고 고심하였다. 의사 과학으로부터 과학을 가려내는 기준은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여기에 대한 철학자들의 대답은 참이란 증명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 가지 사실이 과학적으로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려면 반복적 관찰이나 실험을 통하여 증명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포퍼는 반론을 펴기를 이 방법은 연구자로 하여금 그의 가설을 뒷받침하기에 유리한 관측결과만 선택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인슈타인의 이론 같은 것은 증명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거짓인가.
이 의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포퍼는 반증가능성 (falsificability) 의 기준을 사용한다. 그가 이것을 처음으로 정립했을 때 그의 나이는 30 세에 불과하였다. 이 개념은 20 세기의 과학계를 벌집쑤신 듯이 만들었다.
포퍼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자가 취해야 할 접근방법은 무엇보다도 우선 비판적이라야 한다. 과학자는 이론의 정당성을 증명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체시켜야 한다. 그리고는 가능한 한 많은 실험을 반복함으로써 그것이 가진 결점을 캐어내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이론이 이러한 정밀검사를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하면 그때는 그 이론이 과학적으로 유효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증명되거나 파기된 이론이라도 그 뒤에 이것을 다시 뒤집어엎는 새 이론이 나오면 그때는 물론 효력을 잃게 된다. 이런 식으로 과학은 발전해 왔다. 논박될 수 있는 성격을 가진 것만이 과학적이다. 논박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요술이나 신비주의의 영역에 속한다.
반증가능성이라는 개념은 실험이 불가능한 분야에서는 더욱 중요성을 가진다. 예를 들면 경제학 분야가 그러하다. 『비판주의만이 경제이론의 정당성을 판별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입니다.』만일 경제학을 엄밀과학의 일종으로 본다고 치더라도 (여기에 대해서 포퍼는 이의를 제기한다) 실제적인 경제학의 전개와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그는 말한다. 비록 현재 경제학을 마치 수학처럼 가르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경제이론은 실용성이 조금도 없다.
실제로 모든 연구분야에서 반증가능성의 원리는 하나의 지도원리가 되었다. 비록 몇몇 사람들은 (르네 톰은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 절대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 기준에 근거하여 포퍼는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을 그다지 지적 내용을 갖추지 못한 의사과학으로 분류한다. 이 둘은 모두 독단론 (dogmatism) 에 근거하고 있다. 왜냐하면 원천적으로 이 두 이론은 어떤 형태의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가들은 어떤 형태의 비평도 거부한다. 그들은 비평이란 것은 모두 억압의 한 표현이라고 무시해 버린다. 이와 유사하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들의 교리에 대한 모든 비평은 계급적 편견의 소산이라고 재빨리 응수한다. 비판적 태도를 갖는 것 자체가 반대측에 서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말도 거부되는 것이다.
반증가능성의 기준이 정치학에도 원용될 수 있을까. 거기에도 어떤 식별가능한 진리가 있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도덕적 및 지적 상대주의라는 이름 아래서 이것을 거부한다. 모든 것은 정당하고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모든 것은 문명의 문제이며 우리가 사는 시대 때문에 생긴 문제이다 ㅡ 라는 식으로 전개해 나간다. 그러나 포퍼는 상대주의를 우리 사회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라고 여기고 있다. 실제로 포퍼는 도덕적 상대주의에 대항하고 나선 우리 시대 최초의 철학자이다. 그는 이 일에서 미국의 붐 (Alan Boom) 이나 프랑스의 핀켈크로 (Alain Finkelkraut) 보다 훨씬 앞서 있다. 『내가 보기에 상대주의는 뿌리깊은 질병의 반영입니다. 두 개의 서로 반대되는 이론의 선택을 두고 아무 것이나 좋다고 하는 것은 병든 생각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은 진리가 양쪽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거나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할 방도가 없을 때나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해 낼 수 있는 능력이 갖춰져 있습니다. 행위의 규준과 규칙이 있습니다. 규준은 사실을 판단하는데 근거가 되어줍니다. 이러한 규준을 기초로 하여 정당한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를 가려낼 수 있습니다.』ㅡ 당신이 말하는 규준 (norm) 이란 것은 무엇입니까?
포퍼는 나의 질문이 잘못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철학자의 역할은 규준을 정의하는데 있지 않다. 왜냐하면 온 세계가 어떤 것이 규준인지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살인하지 말라』라든지 『잔인한 짓을 삼가라』등이 어째서 규준으로 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소용에 닿지 않는 일이다. 이런 것은 우리에게 전통과 이성과 상상력과 관찰을 통해 전승된 것들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규준에도 회색지역 (grey zone) 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포퍼는 설명한다. 『살인하지 말라』는 이론의 여지없는 규준이다. 그렇다면 안락사나 임신중절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그러나 이것 때문에 이 기본적 규준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로운 (포퍼는 개방적이라는 용어를 더 좋아한다) 회사를 특징짓는 것은 이러한 여러 가지 규준들을 원용하여 사실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그 자체이다. 포퍼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 규준은 『자신의 사상을 과대평가하지 말라』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규준은 때때로 다른 규준과 상충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가. 포퍼는 대답한다. 『물론 일으킵니다. 도덕상의 어떤 문제들은 이와 반대되는 원리가 일으키는 모순 때문에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칙들 사이에 서로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고 해서 이런 원칙들이 개별적으로 정당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으며 이들 원칙들이 총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이러한 모순의 범위를 축소시켜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모순을 전부 외면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모순들은 사회가 개방적이 되려면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개방사회는 항상 적대자들에 의하여 포위되어 있다.
우리들의 진정한 적은 이념상인이라고 포퍼는 말한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사회과학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다. 이념이 실상과 괴리되어 있어온 것은 그 전통이 플라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포퍼는 말한다. 플라톤은 포퍼가 이르는 「추상적 사회」를 창안하여 냈다. 이 개념은 19 세기에 이르러 헤겔 (Hegel) 과 마르크스, 이 두 독일 철학자의 덕분으로 반계몽주의 (obscurantism) 를 향해 결정적 도약을 하게 되었다. 헤겔이 인도한 곳은 부정직의 시대다. 헤겔 때문에 어떤 형태의 자유도 일체 용서될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이라도 어떻게든 가능해진 것이다. 사실에 대한 지적 해석의 자리를 밀어내고 속임수가 들어서게 되었다. 지성인들은 전반적으로 이 함정 속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헤겔 이전의 철학자들은 명백한 것만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평범성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나는 평범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고 포퍼는 말한다. 그러나 헤겔과 함께 나타난 것은 사물을 밝히기보다 복잡하게 만들어 놓는 나쁜 철학이었다. 헤겔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도 근대성이라는 이름 아래서 추상적 사상숭배 운동을 시작하였다. 그것이 「국가」숭배, 「민족」숭배, 「프롤레타리아」숭배로 이어져 갔다. 이데올로기가 인간을 사고로부터 해방시켜 주면 줄수록 이데올로기는 더욱 화려한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 의사과학적인 공식과 의식을 반복시킴으로써 단순한 사람들로 하여금 우주의 신비를 알아낸 듯 믿게 하였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역사는 일종의 강제적, 즉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법칙에 의하여 지배된다고 믿게 하려는 그것이다. 이것보다 더 위로가 될 만한 것이 또 있을까. 그렇게 되면 역사는 우리편이고 우리 적의 편이 아닌 것만 알면 만사가 충분하게 된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역사관이 부패시킨 것은 정치만이 아니라 그것은 예술마저도 부패시키게 되었다고 포퍼는 말한다.
젊었을 적 빈에 있던 때 그는 음악가가 되려고 했다고 포퍼는 말한다. 그는 위대한 작곡가인 쇤베르크 (Schönberg) 의 제자가 되기까지 했는데, 포퍼는 그를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선생의 음악을 들을 만한 것이 못되는 것으로 여겼을 뿐 아니라 포퍼는 쇤베르크가 아무런 예술적 야망도 없는 사람임을 알 게 되었다. 그가 원한 것이 있다면 빈의 부르주아들을 놀라게 하려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런 쇤베르크를 도운 것은 신문기자들이었다. 신문기자들은 쇤베르크의 음악은 사랑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썼다. 그의 음악이 아름답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시대에 앞서가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포퍼는 양보해서 말한다. 『그런 것을 예술이라고 부를 수도 있긴 있을 겁니다.』예술분야에서 진보라는 개념은 애당초 바그너 (Wagner) 가 만든 것으로서 예술적 불합리성을 야기시킨 책임을 져야 한다. 예술적 불합리성은 정치분야에서 발견되는 불합리성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포퍼는 아직도 바흐와 모차르트 음악에 충실하고 있는데, 그는 현대음악은 이들과는 결코 같은 것이 못된다고 말한다. 현대 예술가들은 이미 창조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선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며 마치 정당들처럼 활동한다. 지금 프랑스의 몇몇 새로운 철학자들은 겉으로는 포퍼의 지지자라고 자칭하면서도 포퍼가 비난하는 이 함정에 빠져 버렸다고 나는 포퍼에게 얘기한다. 예술과 마찬가지로 철학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오직 내실뿐이며 신기함이 아니라고 포퍼는 말한다. 포퍼를 보수적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나를 어떻게 부르든지 그건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게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라고 그는 대답한다. 철학자도 그렇지만 예술가도 유행을 따를 필요는 없는 것이다.
포퍼는 실토한다. 『이건 억지로 겸손해서 하는 소리도 아니고 허영에서 나온 이야기도 아닙니다만, 나는 계몽철학의 전통에 속하는 마지막 철학자입니다. 나는 하나의 체계를 이룩하거나 예언을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나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 이상의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나는 볼테르나 칸트 같은 사람의 철학을 찬성합니다. 이들은 그것이 철학이거나 수학이거나 물리학이거나 막론하고 모든 것을 이성의 정확한 시험 아래에 두었습니다.』
과학이 점점 복잡화되어 가고 있는 지금 세상에도 이것이 가능할 것인가. 『과학이 복잡해진다고 해서 옛날과 같은 기준을 학문에 적용시킬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라고 포퍼는 말한다. 대학은 어리석게도 지식을 세분된 학문분야로 쪼개어 놓았다. 이로 말미암아 학문들은 각기 특수한 의식과 전문용어를 따라 갖춘 채 여기저기로 흩어져 있게 되었다. 포퍼는 우리에게 지식의 세분화에 동참하지 말라고 호소한다. 우리 주위에 있는 정보에 압도당하지 말고 모든 사물을 직시하라고 그는 우리에게 권한다. 『서양세계가 주는 환멸감이나 역사적 비관론을 피하도록 하세요. 20 세기에 산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니까요. 결코 유행에 자신을 맡겨서는 안됩니다. 지성적 테러리즘이나 돈이나 권력에 빠져도 안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어디에서도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도록 자신을 연마하십시요.』켈리 (Kenley) 에서 런던으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나는 그가 내게 건네준 책이 가진 암호를 해독해 내려고 노력한다. 아직도 출판되지 않은 「확률과 성향 (Probalilities and Propensities)」이라는 그의 최근 저서의 사본이다. 이 난해한 연구는 확률적 계산을 생명의 기원에다 적용시켜 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는 이것이 철학자로서 자기에게 1930 년 이후 숙제로 남아온 것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이 우주를 일련의 인과관계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브로글리 (Brogli) 의 양자역학 (quantum mechanics) 이 나온 이래로 우리는 우리가 역학적인 우주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확장되어 가고 있는 확률적 우주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습니다.』이 우주는 어떤 확률에 의하여 지배되는 사건들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들 확률치는 일반적으로 고정된 값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성향을 띄게 된다. 다시 말해서 어떤 한 방향으로 자발적으로 움직여 나가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신은 그야말로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사위는 포퍼의 매우 극단적인 이론이며 단순히 용납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뜨거운 비판을 받고 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포퍼는 머지 않아 이 구대륙에서 모르는 사이에 잊혀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는 2,500 년전 희랍에서 태어난 철학자들 계열의 아마도 마지막 인물이며 런던의 남쪽 교외에서 조용히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뒤를 이을 사람은 누가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