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아직 남은 것이 있는가?

 

인간지능의 수수께끼 : James Trefil 지음, 마도경 옮김, 현대미디어 (323-4483), 1999 (원서 : Are We Unique ? : A Scientist Explores the Complexity of the Human Brain, John Wiley & Sons, 1997), Page 327~353

 

문제 되짚어 보기

초인적인 계산기

E. O. 로런스와 초대형 입자 가속기

복잡성의 시스템에 괴델의 정리 같은 것은 없는가?

출구

터미네이터와 오빌로의 대결 : 만일 탈출로가 없다면?

인간의 지위

 

문제 되짚어 보기

이 PART 는, 두뇌는 하나의 물리적인 시스템에 지나지 않는다는 나의 믿음을 재확인함으로써 시작하려고 한다.

두뇌는 고도로 복잡한 시스템, 전기적이고 화학적인 의사전달수단을 갖고 있는 시스템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주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내부구조가 연결돼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이것은 여전히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진 하나의 시스템이다. 우리는 두뇌 혹은 의식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하여 억지로 영혼이나 기타 신비로운 존재들을 주장할 필요는 없다.

이런 입장에서 출발하면 유물론자들이 프로그램을 완성할 가능성 - 인공두뇌 혹은 인공의식을 창조할 가능성 - 을 부인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이미 앞에서 지적했듯이 두뇌와 똑같은 기계를 만드는 길을 향한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다. 이런 경우, 인간만이 독특성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오늘날 만들 수 있는 기계는 기능면에서 이런 수준의 근처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언젠가 만일 그런 기계들이 만들어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문제로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다. 이런 시나리오에서는, 호모 사피엔스는 아마 결국 동물과 실리컨에 바탕을 둔 새로운 지능체 사이에 놓인 과도기적 존재로 전락할 것이다.

사실, 일부 평론가들은 이런 슈퍼 기계류를 "생명체" 로 언급하는 정도까지 나아가고 있으며 6,500 만 년 전에 포유동물들이 공룡을 지구상에서 몰아낸 것처럼 이것들도 언젠가는 우리 인간을 몰아낼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런 결과를 모면할 길은 없을까? 나는 이 문제를 결정적으로 해결할 묘안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사람은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외관상 탄탄한 논리의 함정에 빠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보면 이것처럼 논리적이었고, 그 예언이 불가피한 듯 했지만 결국은 오류로 판명된 주장들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런 사례들을 조금만 살펴보아도 이같은 딜레머가 실제로 어떻게 마무리되는지를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빈틈없는" 주장들이 오류를 범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나는 하나씩 역사적인 사례를 곁들여서 설명하고자 한다. 이런 사례들을 소개하는 핵심목적은 유물론자들의 프로그램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지식수준에서는 겉보기에 풀 수 없는 딜레머가 나중 단계에서는 결국 오류 투성이 또는 빗나간 사실로 판명되는 경우가 잘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두뇌를 하나의 복잡성 적응 시스템으로 알고 있는 한 이것이 진보함에 따라 놀랄 만한 사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인 사례들을 통해 극단적으로 발전된 계산기가 존재할 때도 인간의 독특성을 설명할 수 있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인적인 계산기

아이작 뉴튼은 탁월한 질서와 규칙의 우주를 후계자들에게 남겼다. 그의 업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 우주를 일종의 시계로 생각하게 되었다. 즉, 신은 우주를 창조하면서 태엽을 감아 놓았으며 지금 째깍째깍 하며 바늘이 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시계의 운동을 연구함으로써 우주의 메커니즘과 우주가 창조될 때 조물주가 품었던 의도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또 뉴튼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서 모든 물리적인 시스템의 운동을 예상할 수 있다. 행성들의 광대한 궤도뿐만 아니라 혜성들의 진행방향, 대양의 조류, 태양계의 형성 등은 모두 이 시스템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뉴튼 물리학의 패러다임은 테이블 위에서 펼쳐진 당구공의 운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대학교에서는 전형적인 문제 - 이것은 모든 물리학과 신입생들이 강의 첫시간에 만나는 문제이다 - 이다. 교수는 당신에게 특정시점에서의 당구공의 질량, 위치, 속도 등을 일러준다. 그리고 당신에게 뉴튼의 법칙을 이용하여 미래의 특정시점에 나타날 당구공의 속도와 위치를 답하라는 문제를 내준다. 문제가 간단하면 - 예를 들어, 당구공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지 않으면 - 학생들은 쉽게 푼다.

이런 배경지식을 알고 나면 일부 뉴튼의 추종자들이 뉴튼 역학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믿는다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뉴튼 학파의 거두 중의 한 사람인 피에르 - 시몽 라플라스는 1812 년에 발표한 『개연성에 대한 분석이론 : Theorie analytigue des Probabilites』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눈에 철저하게 우연인 것처럼 보이는 현상도 최종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그 밑바탕에 어떤 규칙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의존하고 있는 눈에는 그런 규칙성이 보이지 않지만 일관된 원인들을 밝혀준다는 면에서도 그렇다.

라플라스는 무엇보다 조류이론, 그리고 별과 태양계 형성에 관한 이론을 제시한 뉴튼 학파의 거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류의 사고가 이 분야에서 대세를 이루고 있는 사상을 대변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뉴튼 학설에 의하면 이 세계에서 예측할 수 없는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이미 알려진 법칙에 따라 운동한다. 그러나 사실상 엄청난 톱니바퀴로 맞물려 있는 우주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뉴튼 학설을 추종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당신이 주어진 순간에 우주에 있는 모든 분자들의 위치와 속도를 알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우린ㄴ 당구공의 운동을 계산할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미래의 어느 시점에 우주에 있는 어떤 분자라도 위치와 속도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물론, 이것은 매우 어려운 계산일 것이며 라플라스 시대 (이 문제에 관한 한 오늘날에도) 에는 누구도 이런 계산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신이 신에게 호소한 끝에 이런 계산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초인적인 계산기" 를 손에 넣었다고 가정해보자. 뉴튼 학파의 과학자들도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런 기계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으며 이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관념에 대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그 이유는 이렇다. 만일 당신이 미래를 계산할 수 있는 그런 분자 가운데 하나가 우연히 당신의 엄지손가락 속에 있는 것이라 해줄 수 있으며 그것이 그 외의 다른 곳에 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음도 명백해진다.

따라서 자신의 미래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개념과 우주에 있는 분자의 운동을 설명하는 결정론적인 공식의 존재 사이에는 본질적인 모순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초인적인 계산기" 문제를 과학도가 아닌 일반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의시간에 즐겨 내곤 한다. 외관상 이것이 더욱 어려운 문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문제는, 우리가 유물론적 프로그램과 인간의 독특성 사이의 모순에서 나타나는 것과 똑같은, 지적인 반향을 갖고 있다. 이것은 마치 (뉴튼의 운동법칙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과학과 이성, 그리고 우리가 엄청나게 신경을 쓰고 있는 인간존재의 측면 (자유의지) 사이에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초인적인 계산기" 는 그릇된 이분법을 낳는 것으로 드러났다. 왜냐하면 뉴튼 학파가 그린 우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물질은 원자들로 구성돼 있으며 원자 자신은 전자와 양자같이 더욱 작은 입자들로 구성돼 있다. 이런 입자들의 운동은 뉴튼 법칙이 아닌 양자역학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반드시 뉴튼 법칙에 의해 원자를 설명해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뉴튼 법칙에 입각한 실험은 기본적으로 이보다 커다란 물체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의 법칙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하이젠베르크가 정식화한 양자역학의 원리. 위치와 운동량 또는 에너지와 기간 따위를 관찰할 수 있는 두 개의 양 중의 하나를 정확하게 측정하면 다른 하나의 측정에 불확정성이 생겨, 그 결과로서 두 분량의 불확정성의 곱은  와 같거나 그것보다 크다는 원리 - 옮긴이) 라는 것이 내포돼 있다.
이것은 실제로 개별적인 원자의 단위까지 내려갈 때 동시에 어떤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측정하기는 불가능하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과학자들이 자신 있게 우주에서 우연을 배제시킨 150 년 후에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의 법칙에 따르면 문제 전체가 의심의 영역으로 되돌아갔다는 사실이 발견됐다는 의미와 같다.

겉으로는 빈틈없이 보이는 옛 주장이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다. "만일" 당신이 특정시점에서 우주에 있는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이론상으로 우주의 전체적인 미래를 계산할 수 있다는 말은 아마 진실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이젠베르크의 원리에 의하면 특정한 시점에서 우주의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는 고사하고 단 한 개의 입자의 위치와 속도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이 발전했다고 해서 뉴튼 역학의 주장이 부인되지도 않았으며 초인적인 계산기와 관련된 문제가 그릇된 논리의 산물임이 증명되지도 않았다.

이같은 방식으로 유물론적 프로그램과 인간의 독특성 사이의 모순을 마무리지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 문제가 어떻게 풀릴 수 있을런지를 알려면 우리가 지금 검토하고 있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형태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두뇌와 같은 복잡한 시스템을 분석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복제할 수도 있다. 복잡성의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만일" 이라는 단어가 이끄는 절은 이론상으로도 실현될 수 없음을 깨달게 될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예를 들어, 우리가 일정한 수준의 복잡성을 정복하고 나면 하나의 시스템을 분석 - 모든 부분들이 어떻게 꿰맞춰지는지를 추적 - 하기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가정해보면, 복잡성의 과학은 우리의 딜레머가 초인적인 계산기처럼 미완의 문제가 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E. O. 로런스와 초대형 입자 가속기

1932 년, 미국의 물리학자인 어네스트 O. 로런스는 세계 최초로 입자 가속기 (원자의 핵변환이나 동위체 제조 따위에 쓰이는 가속장치의 일종 - 옮긴이) 를 만들었다. 당시 그는 버클리에 있는 캘리포니어 대학의 물리학과 건물 뒤편에 임시로 마련된 허름한 판자집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입자 가속기란 양자 (원자의 핵을 구성하는 입자의 하나) 를 높은 에너지로 가속하여 목표와 충돌시키는 기계이다. 과학자들은 그런 충돌에서 나오는 잔해를 연구함으로써 핵의 기본적인 구조와 핵 안에 존재하는 입자들의 정체를 밝히려고 했으며 실제로도 성공했다.

입자 가속기의 구조는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의 주요 파트는 커다란 자석 두 개이다. 그 모양은, 둥근 2 단 케익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분리하여 둘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생기게 한 것, 그리고 각각의 케잌을 다시 세로로 2 등분한 것과 비슷하다. 각각의 자석은 앨퍼벳 D 처럼 생겼으며 실제로도 "D" 라고 부른다. 따라서 자석은 모두 네 개이며 그 중 둘은 위에, 둘은 밑에 놓여있다.

양자들은 이 구조물의 한복판, 윗자석과 아랫자석들 사이에 투입된다. 양자같이 전기를 띤 입자들은 모두 자장의 영역에 들어가면 회전운동을 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이것은 북극광과 비슷한 현상이다. 이 경우, 자장은 지구 자체에서 제공된다.)

양자들은 입자 가속기 속에서 회전한다. 그러나 이 기계는, 양자들이 2 단 케익을 처음 분리했던 곳에 도달할 때마다 작은 충격이 가해지도록 장치되어 있다. 이런 충격 때문에 양자가 자석 사이에 있는 틈의 반대편에 도달할 때는 틈 속에 들어갈 때보다 약간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양자는 이런 빠른 운동 때문에 약간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돌아다니며 이것이 다음의 틈에 180 도 각도로 접근할 즈음에는 처음보다 약간 더 중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이때 양자는 다시 한번 가속되면서 더욱 커다란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반대편에 도달하고, 또 가속되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런 지속적인 가속의 결과로서 양자는 중심으로부터 나선형을 그리며 점점 빠른 속도로 멀어지다가 결국 자석의 끝부분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양자는 여기서 투석기를 떠난 돌처럼 직선으로 뻗어나가 목표지점에 부딪친다.

입자 가속기는, 좀 어울리지 않는 측면은 있지만 "원자 분쇄기" 라는 영예로운 명칭을 얻은 최초의 기계이다. 원자를 산산 조각낸다는 의미에서는 형광등도 원자들을 "분쇄" 할 수 있다. 입자 가속기를 "핵 분쇄기" 라고 했더라면 더욱 정확한 이름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학자적인 관점이라는 것을 나도 안다. 이해해주기 바란다.)

로런스가 만든 최초의 입자 가속기는 작은 물체였다. 손에 쥘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 기계는 핵에 관해 진지하게 연구하기에는 너무 적은 에너지를 가진 양자들을 방출했다. 그러나 1930 년대가 흘러감에 따라 로런스가 이끄는 연구 팀은 점점 커다란 입자 가속기들을 속속 개발해내게 되었다.

그들이 주로 쓴 방법은 자석들을 점점 크게 만듦으로써 가속도를 더욱 높이는 것이었다. 입자 가속기가 비록 최초로 핵을 인공적으로 쪼갠 기계는 아니었지만 핵물리학이 처음으로 탐구되기 시작했던 1930 년대의 과학연구에 견인차 역할을 수행했다. 사실, 로런스는 1939 년에 이 기계를 처음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상을 받았다. (그는 주립대학에 소속된 미국인 학자로서는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다.) 1930 년대 후반에 그는, 우리가 "초대형 입자 가속기" 라고 부를 만한 기계를 제작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제 2 차 세계대전 때 로런스는 그 세대의 모든 과학자들처럼 맨해튼 프로젝트에 종사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이 기계로 다시 돌아왔다.

로런스는 초대형 입자 가속기를 제작하는 적절한 방법은, 자신이 과거에 그토록 오랫동안 해왔던 일, 즉 그저 더욱 커다란 자석을 만드는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가 설계한 자석들은 직경이 4.5 m 가 넘었으며 무게는 4,000 톤 정도되었다. 이런 자석들 속에서 양자들은 1 억 볼트라는 전대미문의 에너지로 가속되도록 되어 있었다. 로런스는 산업계와 정부의 거불들을 찾아다니며 이 기계를 제작하는 데 드는 자금을 얻으려 했지만 당시만 해도 이론가들은 불명확한 한 이론 - 즉, 특수 상대성 이론 - 에 의하면 그런 기계를 당초 계획대로 제작하기란 불가능할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당신도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이론은 어떤 사물의 속도가 빛의 속도에 근접할 때 그 물체는 더욱 무거워지기 시작한다고 예상한다. 만일 이 사실을 입자 가속기를 지배하는 공식 속에 대입시키면, 양자가 일단 기계 주위를 일정한 숫자만큼 회전운동을 하면 더욱 불어난 질량 때문에 감속을 하게 되고 원운동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욱 늘어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전문적인 내용으로 깊이 들어갈 것도 없이 이런 사태가 일어나면 입자 가속기는 입자들을 더욱 큰 에너지로 가속시키기가 불가능해지는 (적어도 매우 어려운) 쪽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다. 결국, 로런스의 초대형 입자 가속기는 제작되지 못했다. 따라서 겉보기에 탄탄한 주장이 허물어지는 두 번째 사례가 여기 등장한다. 우리가 쓰는 말로 로런스의 주장은 "더 큰 자석을 만들 수만 있다면 초대형 입자 가속기를 만들 수 있다." 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이런 진술에서 첫 번째 부분은 비판할 여지가 없다. 우리는 오늘날 로런스가 필요로 했던 것보다 훨씬 큰 자석을 만드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 진술 가운데 두 번째 부분이 첫째 부분의 당연한 결과로 뒤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대성 이론에 대해 모르면 아무도 그런 결과를 예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것은 유물론적 프로그램이 어떻게 실패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예이다. 복잡성의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당신도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시스템을 복제할 수 없다는 새로운 법칙을 밝혀낼 수도 있다. 당신이 그 시스템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말이 나온 김에 나는 상대성 이론이 증명한 것은 가속기를 이용하여 입자들을 큰 에너지로 가속할 수 없다는 것이지 입자들이 전혀 가속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님을 지적하고 싶다. 사실, 오늘날 우리는 싱크로트론 (입자가속 장치 - 옮긴이) 을 이용하여 입자들을 로런스가 꿈꾸었던 것보다 훨씬 큰 에너지로 가속할 수 있다. 당신이 들어보았던 가속 장치들은 대개 이런 유형이다.

따라서 이런 역사적인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창조력은 자연이 놓은 장벽을 우회하는 길을 찾는다. 만일 복잡성의 이론이 일종의 한계를 가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하더라도 그런 한계는 영리한 공학자들에 의해 어떻게든 극복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복잡성의 시스템에 괴델의 정리 같은 것은 없는가?

표면적으로는 아무리 복잡한 시스템이라도 철저히 분석하고 복제할 수 있다는 개념보다 더 딱부러진 견해는 없는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내가 그 동안 보았던 복잡성에 관한 거의 모든 논의의 밑바탕에는 이러한 전제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대부분의 저술가들은 복잡한 시스템을 분석하는 데 있어 유일한 저해요소는 인간의 창조성, 그리고 가끔 컴퓨터 능력을 이용하는 것임을 암암리에 가정하고 있다. 예컨대 PART 12 에서 논의했던 아이디어들을 전개시키는 문제에서 철학자인 데이비드 차머스는 실리컨으로 뉴런을 하나씩 대체시키는 이른바 "합성두뇌" 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 아이디어는 자연적인 시스템과 합성 시스템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 주장에는 몰래 뒤에 숨어 있으면서 이 프로그램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기본적인 자연의 법칙은 없다는 가정이 담겨 있다. 실제로 1,000 억 개에 달하는데다 서로가 고도로 연결된 뉴런을 갖고 있는 두뇌에 비하면 가장 진보된 마이크로 칩의 복잡성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것은, 우리가 실리컨 시스템을 두뇌가 지닌 복잡성의 수준까지 밀어올리기 시작할 때 엄청난 추정 - 커다란 도약 - 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이 추정은 그 도약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전혀 보장해주지도 못한다.

여기서 또 다시 내 말의 의미를 증명해줄 역사적인 사례를 들어보겠다. 수학 시스템에서 모든 명제는 참 또는 오류, 둘 중의 하나로 증명될 수 있다는 진술보다 더 명확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이런 진술은 1900 년에 데이비드 힐버트가 그 유명한 23 가지 문제를 제기했을 때에도 물론 명백한 듯했다. 그러나 PART 11 에서 보았듯이 실제로 쿠르트 괴델은, 우리가 논리 시스템에서 어느 정도의 풍부성에 도달했을 때 거기에는 항상 증명될 수도 없고 반증될 수도 없는 진술들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았는가.

생물학자인 잭 코헨과 수학자인 이언 스튜어트는 공저 『카이어스의 붕괴 - 복잡한 세계에서 단순성을 찾아 : The Collapse of Chaos - Discovering Simplicity in a Complex World』에서, 복잡성 연구에서 괴델 정리 같은 것이 생길 가능성에 관해 믿을 만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시스템으로 간주할 수 있는 복잡한 시스템의 특성들은 컴퓨터로 모의실험을 할 수 있지만 (적어도 당장) 예견할 수는 없다. 이런 예는 우리가 앞에서도 보았듯이 흔히 일어난다.

코헨과 스튜어트는 증명할 수는 있지만 인간에게 무의미한 증거들이 포함돼 있는 시스템 내의 명제들의 존재와 이런 창발적인 현상이 서로 관련돼 있을지 모른다고 추정한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겠다.

만일 우리가 환원주의 (복잡한 데이터나 현상을 간단히 바꾸어 말하려는 이론 - 옮긴이) 적 법칙을 이용하여 고차원의 구조들을 설명하고 이해하고자 한다면 연역법을 따라야 한다. 만일 그 연쇄과정이 너무 길다면 우리의 두뇌는 설명의 끝을 놓치기 시작한다. 창발적인 현상은 이런 식으로 발생한다.

이것은 중요한 말로서 인간의 독특성에 대한 우리의 논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추정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특정기능 (예컨대 인간의 어떤 정신활동과 똑같은 기능) 을 수행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고 싶다면 지금 조립하고자 하는 조각들과 그 기계의 최종활동의 연관성을 이해해야만 한다.

코헨과 스튜어트가 추정하는 것처럼 만일 괴델 정리 같은 이론이 있어, 이런 연결고리가 너무 길고 복잡하기 때문에 두뇌가 그것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결론이 나온다면 기계 제작자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품들을 어떻게 조립해야 하는지를 알 도리가 없다. 이것은 우리가 카이어스 시스템을 다룬 PART 13 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카이어스적 시스템에서는 이론상으로 미래의 모습을 예측할 수 없었지만 실제로는 가능했다. 이것은 유물론적 프로그램을 저지하는 데 새로운 자연의 법칙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단지 창발적인 현상을 복제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는 점에서 초인적인 계산기 시나리오와는 다르다.

나는, 당신이 이것을 무리한 논리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이른바 "무법의 정리" 라는 것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이것은 "군 : 곱셈이나 덧셈처럼 결합법칙을 충족시키는 산법과 관련하여 폐쇄된 대수계에 있어서 다른 원에 작용해 그것을 바꾸지 않는 단위원이 있고 모든 원이 그것에 작용해서 그 결과가 단위원이 되는 오직 하나의 역원을 가진 것 - 옮긴이)" 이라고 부리는 수학적 구조의 분류계에 관한 정리이다.

이것을 증명하는 데만 해도 100 명 이상의 수학자들이 30 년 이상의 시간을 들였으며, 설명하는 데도 1 만 5,000 쪽 분량의 책이 필요하다. 이 작업을 지휘한 사람은 수학자 대니얼 고렌스타인으로서 그는 1992 년 타계함으로써 우리는 이것에 대해 완전히 알고 있는 마지막 사람을 잃은 셈이 되었다. 실제로 수학의 세계에서는 이렇게 복잡한 계산이 존재한다.

사실, 당신은 코헨과 스튜어트의 신념보다 훨씬 우수한 수준의 가설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 어떤 수학 시스템을 상상해보자. 거기에는 증명해야 할 일련의 진술이 포함돼 있으며 각각의 증명은 앞서의 증명보다 점점 길어지고 복잡해진다. 당신은 그런 증명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연속체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한계는 무한대로 길고 복잡한 하나의 증명이 될 것이다. 그 증명에 해당하는 진술은 본질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 복잡성의 이론에서 이것은 수학에서의 괴델의 진술과 유사한 것이 될 것이다.

출구

따라서 복잡성 이론이 "불가능성" 이라는 주장으로 우리를 이끄는 방식에는 적어도 세 가지가 있으며 각 방식은 이 주장, 즉 "우리가 두뇌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을 복제할 수도 있다." 는 주장의 각부분을 공략한다.

당신이 매우 복잡한 어떤 시스템을 접했을 때 이론적으로는 그 주체가 무엇이며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기가 불가능할 수 있다. 이것은 앞에서 초인적인 계산기에 대한 주장을 다루면서 개략적으로 설명한 시나리오와 비슷하다.

당신도 생각나겠지만 그 주장은, 만일 우리가 우주에 있는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안다면 뉴튼 법칙을 이용하여 전체적인 미래를 예측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배제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미완의 과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양자역학이 출현함으로써 입력정보를 얻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서 새로운 복잡성의 과학에는, 우리가 두뇌처럼 복잡한 시스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특징들이 담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반면, 우리는 매우 복잡한 시스템에 접했을 때 그 속에 절대 그것을 만들 수 없다고 말하는 법칙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또 하나의 "입자 가속기" 식의 시나리오일 것이다.

상대성 이론이 겉보기에는 아무 하자가 없는 건조방식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처럼 새로운 복잡성의 과학에도 앞에서 말한 진술 중 "그러면" 으로 시작되는 부분을 부정하는 법칙이 담겨 있을 수 있다.

끝으로, 당신이 매우 복잡한 시스템을 구성했다 하더라도 개별적인 부품들과 최종행동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기가 너무 복잡하여 실질적으로는 그 특성이 무엇인지를 예측하기가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날지 모른다. 이것은 괴델 식의 시나리오이며 코헨과 스튜어트의 추정과도 비슷할 것이다.

나는 다른 두 시나리오와는 달리 이것은 복잡한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일단 만들어졌을 때 우리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 주로 답하고 있다.

기술의 역사를 보면 사람들이 구조의 기능을 충분히 이해하지도 못한 채 조립했던 사례가 매우 흔하다. 예를 들어, 유럽의 위대한 사원들도 이런 식으로 건조되었다. 현재의 지식수준으로 보아 우리가 이들의 시나리오 중 어느 것 (혹은 모두) 이 앞으로 실현될 것인지를 단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이들 중의 하나가 현실화된다면 언젠가는 기계의 복잡성을 증가시킴으로써 야기되는 딜레머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탈출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과학적 세계관과 인간의 독특성이 모두 유지되는 방식으로 탈출구를 찾게 될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중 어떤 경우가 닥치더라도 인간의 두뇌는 궁극적으로 신체의 다른 시스템과 똑같은 법칙에 지배를 받는 물질적인 시스템이요, 동시에 인공두뇌를 제작하는 일은 불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터미네이터와 오빌로의 대결 : 만일 탈출로가 없다면?

물론, 복잡성의 과학이 이 시나리오들과는 전혀 다르게 발전할 가능성도 항상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유물론적 프로그램의 완성을 가로막을 만한 것이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 주제에 대해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대체로 상상력이 아주 적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만일 어떤 가능성이 있을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감을 잡고 싶다면 픽션이나 민요 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 훨씬 현명할 것이다.

물론, 인간이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물들을 창조하는 이야기들은 결코 적지 않다. 마법사의 도제 (프랑스의 작곡가 폴 듀카가 괴테의 전설을 바탕으로 만든 노래. 마법사를 위해 일하는 한 소년이 게으름을 피우며 자기 일을 마술을 이용해 하려다 빈번이 실패한다는 내용 - 옮긴이), 골렘 (유태 전설에서 나무점토 따위로 인간의 모습을 만들어서 생명을 불어넣은 인형 - 옮긴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등을 생각해보라.

20 세기의 SF 소설은 유물론적 프로그램이 완성되면 생길 법한 그런 두뇌를 가진 기계적인 창조물 - 즉 로버트 - 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로버트들은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으며 사실상 모든 특징 면에서 인간과 비슷하다. (비록 그들에게는 감정이 없거나 감정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흔한 주제이지만.) 물론, 그런 로버트 앞에서 펼쳐지는 인간성의 미래모습은 작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개의 공통적인 테마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위협적인 존재로서의 로버트이고 또 하나는 협력자로서의 로버트이다. 각각의 예를 들겠다.

SF 영화의 고전인 「터미네이터」에서 기계들은 자신의 창조자들에게 대들고 인류를 멸종위기로까지 몰고간다. 이에 대해 인간들은 반격하고 결국 승리의 문턱에 다다른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기계들이 승리를 이끌고 있는 인간 지도자의 과거 어머니를 살해하기 위해 로버트 암살자 (터미네이터) 를 과거로 되돌려 보내는 것을 축으로 - 시간여행이라는 고전적인 줄거리이다 - 전개된다. 이런 터미네이터 식의 시나리오에서는 생각하는 기계를 만드는 인간의 능력은 재앙의 서곡으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이런 시나리오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일단 기계들을 만들고 나면 그들이 우리를 파괴할 것이며 인류의 역사도 종말을 고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모든 터미네이터 류의 이야기들은 이 영화처럼 폭력을 동반하고 있지만 - 예를 들어, 때때로 로버트들이 우리를 간단히 제거해버림으로써 우리가 무대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 결과는 항상 똑같다. 이것은 생각하는 기계가 지배하는 미래의 모습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본 모습이다.

고 아이적 애시모프는 이보다는 좀 낙관적인 시각을 지닌 작가였다. 그는 로버트들을 협력자로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구세주가 되는 세계를 그렸다. 그의 시나리오를 보면 로버트들을 만들 때 "로버트 공학의 3 가지 법칙" 을 두뇌 속에 주입한다. 그 법칙은 이렇다. (소설에 나온 이 세 가지 법칙은 요즘 컴퓨터광들의 대화에서 놀랄 만큼 자주 등장한다.)

1. 로버트는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 인간이 해를 입는 것을 방관해서도 안 된다.

2. 로버트는 첫째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3. 로버트는 첫째와 둘째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애시모프 소설의 주인공은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만든 로버트인 R. 대닐 오빌로이다. (여기서 R 은 로버트를 뜻한다.) 그는 인간의 친구요, 협력자이자 일종의 충실한 보모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결국, 그는 인류 전체를 구원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맡은 그리스도 같은 인물로 변한다. 그는 터미네이터와는 상반된 인물, 즉 엄청난 힘을 이용하여 자신의 창조자들에게 파괴가 아닌 도움을 주는 피조물을 상징한다.

물론, 이 두 세계 사이에는 여러 종류의 가공의 미래모습들이 제시되고 있다. 예컨대 「스타 트랙」시리즈에 나오는 데이터라는 로버트는 극소수의 인간이 포함된 탐사반에서 유별나지만 재미있는 동료의 역할을 맡고 있다. 우리는 그의 엄청난 힘과 인간행동에 대한 큰 관심 때문에 비로소 그가 로버트임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의 관심은 인간과 같은 느낌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며 이것은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이렇게 우리의 기분과 인생관에 따라서 인간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사고능력을 가진 기계들과 공존하게 될 미래는 종말의 시작이 될 수도 있고, 황금시대의 시작이 될 수도 있으며, 그 중간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현실세계는 그런 미래와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지위

그러나 잠시 우리가 이 PART 에서 개략적으로 소개한 복잡성의 시나리오 중 한두 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유물론적 프로그램이 저지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은 이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에 대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이미 특정한 정신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토대로 인간과 동물왕국의 나머지 구성원들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앞 PART 에서 새로운 복잡성의 과학 덕분에 창발적 특성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독특성을 지지하는 주장이 가능해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진화과정을 일종의 계단으로 보는 것은 훌륭한 비유이다. 여기서 각각의 계단은 새로운 뉴런의 배열과 관련되어 발생하는 새로운 창발적 특성에 해당한다. 이런 구도에서 인간의 뇌하피질의 발달은, 동물의 왕국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와 인간을 구별시켜주는 마지막 계단임을 뜻한다.

이와 똑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지능, 심지어는 의식을 지닌 기계를 만들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기계와 인간에게 이런 단어들을 적용할 때 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제의했다. 예컨대 체스를 두는 기계 (컴퓨터) 는 결코 인간과 똑같은 방식으로 게임을 벌이지 않는다. 이런 차이는 앞에서 "지능 2" 같은 용어로 디프 블루 같은 기계의 기능을 지칭함으로써 두드러졌다.

나는 이런 류의 결론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고민거리를 안겨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도구를 만드는 능력은 인간만의 독특하고 뚜렷한 특징 중 하나이다. 우리는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가 인간보다 빠르게 "달릴" 있다는 이유로 위축되지는 않는다. 예컨대 인디어내펄리스 500 대회 (자동차 경주대회 - 옮긴이) 가 열리고 있기 때문에 올림픽 대회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체스를 둘 수 있지만 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기계들도 이와 같은 "비위협적인 범주" 에 속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계의 지능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보면 우리의 관심은 자연히 로마 숫자를 이용하여 "지능" 과 "의식" 들의 미세한 차이점을 정확하게 가리는 쪽으로 쏠리게 된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인간의 독특성과 연계시키는 사안들 - 예컨대 감정, 혹은 도덕체계를 수립하는 능력 등 - 이 바로 "의식 1" 과 나머지 모두를 구별하는 특징으로 밝혀질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그러나 이 말이 옳든 그르든 우리가 기계와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는 철학에서, 관찰에 바탕을 둔 과학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으며 이것은 이같은 논쟁의 정당성을 높여준다.

종류가 다른 여러 정신적 현상들이 혼재해 있는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논의할 때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각적인 비유법이 하나 있다. 이 비유법에서 인간은 여전히 진화의 사다리에서 꼭대기에 서 있으며 여기서 각 계단은 두뇌의 창발적 특성 중의 하나를 상징한다. 우리는 디프 블루 같은 것을 멀리 있는 또 하나의 봉우리 끝에 놓인 존재로 간주함으로써 기계들도 이 비유법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 봉우리에 "지능 2" 라는 꼬리표를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궁극적으로 우리의 풍경화에서 제각기 자신만의 고유한 봉우리를 차지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로마 숫자를 갖고 있는 그런 기계들을 많이 만들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는 계단 꼭대기에서 풍경 전체를 내다볼 것이며 우리가 진화의 독측한 산물로서, 우주에 있는 다른 모든 종류의 지능이나 의식과 비슷하지만 여전히 다른 존재임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서 있는 계단이 자연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한편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들을 가지고 "기념계곡" 을 만드는 일 역시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는 여전히 독특성과 할 일이 남아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