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과 복잡성

 

인간지능의 수수께끼 : James Trefil 지음, 마도경 옮김, 현대미디어 (323-4483), 1999 (원서 : Are We Unique ? : A Scientist Explores the Complexity of the Human Brain, John Wiley & Sons, 1997), Page 301~326 

 

복잡성의 개념

우리가 알아야 할 필수용어들 :  비선형    카이어스   복잡적응 시스템

정말 복잡성의 과학이 존재하는가?

창발적 특성으로서의 의식

동물의 의식

기계의 의식

용어에 대한 한마디

 

복잡성의 개념

한 알의 모래를 생각해보자. 이것이 그냥 탁자 위에 있으면 당신은 아무런 재미도 느끼지 못한다. 특히 당신이 "하늘과 땅" 이라는 어휘를 염두에 두고 있거나 모래 알갱이 속에서 춤추고 있는 원자들의 존재에 무지하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또 다른 모래 알갱이를 탁자 위에 올려놓아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계속 알갱이를 올려놓으면 점점 모습이 바뀌기 시작한다. 작은 모래 언덕을 쌓았을 즈음에는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거미줄" 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알갱이들은 제각기 옆의 알갱이들을 밀어내며 밀려난 알갱이는 중력에 의해 굴러 떨어진다. 더 많은 모래를 쌓을수록 힘의 거미줄은 더 복잡해진다. 드디어 당신이 한 알의 모래를 더 올려놓는 순간, 그것이 모래성의 측면을 타고 굴러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이런 사태는 오직 힘의 거미줄이 일정한 정도의 복잡성에 도달했을 때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모래성은 오늘날 "복잡한 시스템" 이라고 불리는 이론의 간단한 (아마도 사소한) 예에 지나고 않는다. 복잡성의 시스템은 많은 요소들, 또는 매개체를 지니고 있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매개체는 다른 매개체들과 상호작용을 한다. 모래성의 경우, 모래알은 매개체 그 자체이다. 그리고 각 모래알은 이 간단한 시스템에서 오로지 접촉활동을 통해 가장 가까이 있는 이웃 모래알에게 힘을 행사한다.

사태와 같은 현상, 즉 일정한 수준의 복잡성에 도달될 때만 발생하는 현상을 복잡성의 시스템이 지닌 "창발적인 특성" 이라고 한다. 나는 인간의 의식, 지능, 기타 고도의 정신기능 같은 것들은 모두 복잡성의 시스템이 지닌 창발적인 특성이며 여기서 "모래알" 은 뉴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모래성 같은 비교적 단순한 시스템에서조차 각 모래알에 가해지는 힘의 궤적을 추적하기란 아주 어렵다. 이것은 분명히 펜과 종이만 갖고 덤빈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오로지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데 엄청난 능력을 가진 디지털 컴퓨터만이 이런 종류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복잡성의 시스템에 대한 연구는 최근에 들어와 결실을 맺고 있다. 두뇌에 대한 이해가 궁극적으로 두뇌를 본뜨고자 하는 바로 그 컴퓨터에 의한 계산을 통해 얻어진다면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우리가 알아야 할 필수용어들

복잡성의 과학은 이렇게 신생학문이라서 여기에는 그 동안 중구난방으로 사용되는 바람에 - 특히 대중매체를 통해 - 바로 잡을 필요가 있는 새 용어들이 아주 많다. 그 중 당신이 자주 접할 만한 것들을 골라보면 다음과 같다.

비선형

오디오에는 볼륨을 조절할 수 있는 다이얼이 달려 있다. 이것을 일정한 숫자까지 돌리면 일정한 양의 볼륨이 나온다. 만일 그보다 두 배 더 돌리면 역시 두 배 많은 음량을 얻을 수 있다. 시스템의 반응 (이 경우에는 출력되는 볼륨) 은 입력시 가하는 변화 (이 경우에는 다이얼의 위치) 에 정비례한다. 이것을 "선형반응" 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오디오가 이런 식으로 작동되는 것을 "선형 시스템" 이라고 부른다.

금세기 중반 이전의 과학은 대체로 선형 시스템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두었다. 이유는 이렇다. 선형 시스템 (오디오 시스템을 구성하는 앰프따위) 을 설명하는 공식들은 비교적 풀기가 쉽다. 사실 선형 시스템은, 우리가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시스템이며 단순한 공식들만 가지고도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자들이 가장 먼저 이해한 시스템이 이것이라는 사실 역시 전혀 놀랍지 않다.

다시 오디오로 되돌아가보자. 계속해서 볼륨을 높이면 결국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왜곡되기 시작하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이 시점부터는 다이얼을 돌려도 더 이상 그것과 비례되는 반응이 아닌, 뭔가 좀 이상한 반응이 나온다. 볼륨이 부드럽게 증가하지 않고 끽끽대는 소리 같은 온갖 비틀어진 소리가 나올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이얼 회전에 대한 일종의 "비선형적인 반응" 이다. 오디오가 이런 식으로 작동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비선형적 시스템" 이라고 부른다.

자연에는 이와 같은 시스템들이 아주 많다.

고무 밴드를 생각해보자. 당신이 일정한 힘을 가해 고무 밴드를 잡아당기면 이것은 일정한 거리까지는 늘어날 것이다. 두 배의 힘을 가하면 늘어나는 거리는 두 배가 된다. 여기까지는 고무 밴드는 하나의 선형 시스템이다. 그러나 만일 고무 밴드를 훨씬 길게 늘리면 다시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고무 밴드가 신축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시점에서 당신이 행사하는 힘의 양과 그 결과로 생기는 늘어나는 정도 사이에 지금과는 매우 다른 관계가 생긴다. 따라서 이 경우, 고무 밴드도 간단한 비선형 시스템의 또 다른 사례라 할 수 있다.
내가 고무 밴드와 오디오 시스템을 비선형 시스템의 사례를 언급하는 것은 이런 과학적 효과에 대한 오해가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20 세기 전만 해도 과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시스템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실제로 고무 밴드를 설명하는 이론 - 이른바 신축성 이론 - 은 아이작 뉴턴이 생존해 있었던 17 세기에 시작되었다. 따라서 비선형적 성질에 대한 연구가 최근에 급속히 결실을 맺고 있지만 연구의 기원 자체는 오래된 셈이다.

상당한 예외가 있지만 비선형 공식에 대한 정확한 답은 종이와 연필을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으며 오로지 기계만이 갖고 있는 엄청난 계산능력을 동원해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1950 년대와 1960 년대에는 공학자들과 기술자들이 한 방에서 득실대며 마챈트 계산기를 이용하여 항공기의 날개 디자인 같은 문제에서 발생하는 비선형적 공식을 풀었다. 이 기계는 기본적으로 덧셈을 수행하는 유치한 단계의 컴퓨터였다. 이런 계산기들은 커다랗고 육중했으며 두 손으로 핸들을 돌려 작동시켜야 했다. (나는 옛날, 학생신분으로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중요한 국립 연구소에서 조수로 일한 적이 있다. 그때 나같이 보잘것없는 조수들은 자기 책상에 이런 괴물 같은 기계를 올려놓고 있는 것을 대단히 높은 지위의 상징물로 여겼었다.) 이런 기계들은 엄청난 노동력과 노력을 잡아먹고도 간단한 비선형 문제에 대해 고작 개략적인 답을 덜커덕거리며 토해낼 뿐이었다.

1960 년대에 들어와 이런 기계적인 컴퓨터는 대용량 계산기의 광범위한 보급에 힘입어 퇴역했고 비선형 시스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요즘에는 엄청나게 난해한 공식들 - 40 년 전 당시, 최고의 수학자들을 쩔쩔매게 만든 공식들 - 도 일상적으로 풀 수 있다.

모래성에서 사태가 시작되는 것은 고무 밴드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분명히 비선형적 효과의 일종이다. 둘 다 일정한 수준에 도달할 때 갑작스런 변화 - 그 전에 발생했던 것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변화 - 를 나타낸다. 실제로 모든 비선형적 시스템이 복잡한 것은 아니지만 모래성과 같은 모든 복잡성의 시스템은 비선형적이다. 따라서 비교적 최근에 복잡성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결실을 맺고 있는 것 역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는 10 년 전만 해도 이런 주제에 관해 생각할 만한 계산 능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을 뿐이다.

카이어스

나는 최근에 과학과 수학의 분야에서 이루어진 발견 중 카이어스 현상만큼 과대선전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카이어스 시스템은 비선형적이다. (대부분의 비선형적 시스템은 카이어스적이 아니지만.)

카이어스 시스템의 특징은, 어떤 시스템이 앞으로 겪을 진화는 최초의 조건에서 일어난 변화에 대단히 예민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두 개의 나무토막을 급류의 상류지점에 떨어뜨렸다고 가정해보자. 이것들이 하류에 도달할 때는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다. 이 시스템의 결과 (하류지점에서의 거리상 분리) 는 최초의 상태 (상류지점에서의 거리상 분리) 에 민감하게 좌우된다. 이것이 카이어스 시스템의 명확한 특징이다.

카이어스 시스템에 관한 또 하나의 예가 유명한 "나비 효과" 이다. 이것의 기본 아이디어는, 중국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면 이것이 대기 속에 미세한 소요를 일으키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리오 데 자네이루에 폭풍우를 일으킬 연쇄반응에 시동을 건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서 대기가 정말 카이어스적인 시스템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계에는 이런 종류의 민감성을 발휘하고 따라서 카이어스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당한 시스템들이 분명 있다.

진도를 나아가기 전에 카이어스적 시스템에 관하여 내가 지적하고 싶은 한 가지 사실은, 이것들은 예측이 불가능하지 "않다" 는 점이다. 실제로 카이어스 시스템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지식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나오며 여기에서 한 시스템의 시간에 따른 변화는 기존의 공식에 의해 계산된다.

어떤 카이어스 시스템의 초기 상태를 수학적으로 확실하게 알고 있으면, 또 무한대의 계산능력을 지닌 컴퓨터를 갖고 있으면 당신은 그 시스템이 미래의 특정시점에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실세계에서 그런 정밀한 측정능력과 고도의 계산능력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그런 예측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카이어스 시스템은 실제로는 예측할 수 없지만 이론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카이어스 이론의 발견이 정말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점 때문이다.

1980 년대까지 과학자들 사이에는 만일 어떤 시스템을 간단한 공식에 의해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의 미래상태도 계산할 수 없다는 무언의 가정이 팽배해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단순한 시스템들은 무조건 완전히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가정이었다. 카이어스 이론의 업적은 세상만사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앞에서 내가 언급했던 범퍼 스티커를 기억해보라. 비록 어떤 카이어스 시스템을 간단한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그것의 미래에 대해 의미있는 예측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복잡적응 시스템

앞에서 모래알로 쌓은 성은 복잡성 시스템의 사소한 예에 불과하다고 말했을 때 내 머리 속에는 몇 가지 생각이 있었다. 하나는 이미 말했듯이 하나의 모래알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모래알들에게만 힘을 행사한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특징은 - 아마 이것이 보다 중요한 점일 것이다 - 일단 모래알들이 모래성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차지하면 모래알이 보태지더라도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복잡성의 시스템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모래성 대신 접시꽃으로 성을 쌓고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내가 더 많은 접시꽃을 올려놓을수록 밑부분에 있는 접시꽃은 모양이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개체들이 다른 개체들에 작용한 결과로서 변할 수 있는 시스템들을 우리는 "복잡적응 시스템" 이라고 부른다. 이 시스템 사례 중의 진수는 뭐니뭐니 해도 애덤 스미스가 내놓은 고전적인 시장경제 이론이다. 여기서 시장활동을 하는 각 개인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 시장가격에 반응한다. 여기에는 끊임없는 움직임이 있으며 각 개체는 모든 다른 개체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동시에 모든 다른 개체들에 영향을 준다.

우리가 이미 두뇌의 기능에 관해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생가해보면 과학자들이 두뇌를 하나의 복잡적응 시스템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모든 뉴런은 수천 개의 이웃 뉴런들과 시냅스에 의해 연결돼 있다. 또 PART 11 에서 지적했듯이 뉴런펩티드의 방출은 각 뉴런이 자신과 연결돼 있지 않은 다른 뉴런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또 그것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원인이 된다. 게다가 PART 6 에서 보았듯이 두뇌는 학습과 기억의 활동이 진행됨에 따라 시냅스가 강화되거나 약화되기 때문에 자체의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복잡적응 시스템을 연구하는 데 있어 두뇌에 대한 규명을 궁극적인 과제로 보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정말 복잡성의 과학이 존재하는가?

복잡성의 과학에 대한 연구는 너무 새롭기 때문에 여기에는 우리가 아직 답을 제시할 수 없는 기본적인 의문점이 많이 있다. 그중의 하나 - 내 생각에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 는 모든 복잡 시스템을 지배하는 공통의 법칙이 있는지의 여부, 아니면 각각의 복잡 시스템은 그것만의 독특한 조건에 견주어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그렇다." 와 "아니다." 라는 대답에는 모두 역사적으로 풍부한 선례가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매우 다르게 보이지만 시스템의 성격상 동일한 법칙에 의해 지배를 받는 사례가 많이 있고 외견상으로는 같아도 전혀 다른 법칙에 의해 지배를 받는 시스템의 예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열대, 호수, 별의 세포보다 외면상으로 상이한 현상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하는 활동의 대부분이 에너지를 지배하는 법칙 - 우리가 열역학 제 1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 - 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별에서 일어나는 현상처럼) 수소가 헬륨으로 융합되는 과정, (호수에서 일어나는 현상처럼) 전파의 흡수, 또는 (세포에서 일어나는 현상처럼) 저장된 화학 에너지를 연소작용을 통해 방출하는 것이라도 상관없다. 이 모든 과정은, 에너지가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 현상일 뿐 에너지 자체는 결코 창조되거나 파괴되지 않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본질적인 통일성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의 모든 시스템이 다 이런 것은 아니다. 은하계의 모양, 허리케인을 찍은 위성사진, 커피에 넣는 크림을 보면 당신은 똑같은 종류의 소용돌이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이때 비슷한 현상들은 동일한 물리적 메커니즘에 의해 야기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은하계, 허리케인, 커피 속의 크림은 동일한 결과를 낳지만 철저하게 다른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인다. 이 경우, 우리는 서로 다른 법칙들이 비슷한 현상을 발생시키는 상황을 목격한다.

그렇다면 이런 척도에서 볼 때 복잡성의 시스템은 어느 범주에 속할까? 인간의 두뇌와 애덤 스미스의 시장경제 이론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고 우리가 일반이론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종의 "제 1 복잡성 원칙" 같은 것이 있을까? 아니면 은하계와 허리케인은 모두 나선형 같은 모양을 띤다는 특성을 갖고 있을 뿐 서로 상관없는 전혀 별개의 현상일까?

나는 우선 모든 복잡성의 시스템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일반법칙을 탐구하는 것은 아마 성공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밝혀야겠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언젠가는 두뇌와 경제 시스템이 별이나 열대호수보다는 허리케인이나 은하계와 훨씬 가깝다는 것이 밝혀지리라고 생각한다.

이와는 반대의 관점에서 매우 설득력 있고 정열적으로 설명된 견해를 원한다면 스튜어트 카프먼의 저서 『우주의 모든 것 : AT Home in the Universe』을 추천한다.

창발적 특성으로서의 의식

한 개의 뉴런에 대해 생각해보자. 단일 뉴런은 비록 한 알의 모래알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복잡하지만 제한된 종류의 기능만을 수행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뉴런은 활동전압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뉴런이 없으면 그 전압을 전달할 대상도 없는 셈이 된다. 단일 뉴런은 분명히 적을 인식하거나 계산문제를 푸는 것과 같은 고차원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단일 뉴런은 우리가 이 PART 의 도입부에서 소개한 모래알과 비슷하다.

이제 뉴런들을 하나씩 보태고 서로 연결시켜보자. 새 뉴런들이 보태질수록 뇌라는 시스템은 새로운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런 능력들이 발달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점점 더 많은 뉴런들이 보태짐에 따라 새로운 특성이 점진적으로 개발될 수 있다. 아니면 모래알의 예처럼 어떤 복잡성의 시스템에서 새로운 성질이 돌발적인 튀어나올 수도 있다.

물론, 우리는 실제로 이같은 실험을 실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래성처럼 간단한 사물이 돌발적인 행위를 보여줄 수 있다면 마땅히 뉴런의 집합체도 그러하리라고 추정하는 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따라서 나는 초기의 두뇌에 뉴런들을 보탬에 따라 다른 복잡성 시스템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현상을 볼 수 있으리라는 예상을 하나의 실제적인 가설로서 삼고자 한다. 우리가 일정한 수준의 복잡성에 도달하면 새로운 종류의 현상들이 자신의 존재를 명확하게 드러낼 것이다.

단일 뉴런의 복잡성 수준과 두뇌 속에 보이는 뉴런들의 연결정도를 감안하면 이 시스템을 특징짓는 돌발적인 성질이 하나 이상 있으며 이런 특성들이 상이한 차원의 복잡성을 드러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도 일리가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점점 더 많은 뉴런들이 시스템에 보태짐에 따라 많은 돌발적인 특성들이 마치 폭포같이 쏟아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뉴런들을 하나씩 첨가하여 뉴런의 집합체를 만든다면 이 시스템은 일련의 불연속적인 진화의 비약을 겪게 될 것이다. 여기서의 비약은 새로운 수준의 복잡성에 도달했을 때의 특징인 돌발적인 특성 - 즉, 새로운 "사태" - 이 낳은 결과이다. 이런 구도에서 의식과 지능 같은 현상은 보다 높은 차원의 폭포수에 나타나는 돌발적인 특성에 해당한다. 우리는 아마 어떤 종과 그 친척 종의 사이에서 커다란 정신적 능력의 격차를 볼 때마다 돌발적인 현상과 비슷한 것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불연속적 변화의 지속이라는 패턴은 자연 시스템에서 매우 흔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예를 들어, 물의 흐름에서 부드러운 흐름과 격렬한 난류 사이에는 여러 단계들이 놓여 있으며 여기서 각각의 단계는 좀더 고도로 조직화되고 복잡한 흐름의 갑작스런 시작에 해당한다.

동물의 의식

비록 우리는 연구소에서 뉴런들을 하나씩 꿰매는 실험을 할 수는 없지만 자연이 우리를 대신하여 이런 실험을 했었다는 감은 느낄 수 있다. 우리가 PART 3 에서 했던 "문" 을 통한 동물 왕국의 산책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말미잘의 뇌같이 비교적 단순한 신경 시스템도 꽤 복잡한 행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한 개의 뉴런은 외부의 적을 인지하거나 신경신호를 전달하여 적으로부터 달아나게 할 수는 없지만 수백 개의 뉴런이 합치면 그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우리가 뉴런들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시작할 때 처음 목격하게 될 돌발적인 특성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우리는 뉴런들을 계속 보탬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행동습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합쳐진 뉴런 시스템이 낳는 새로운 돌발적 특성들을 반영한다. 드디어 뉴런을 5 억 개쯤 합치면 학습, 기억, 그리고 시야에 대한 상당히 자세하고 포괄적인 분석 행위 등을 할 수 있게 된다. (문어는 이런 종류의 행위를 할 수 있으며 5 억 개의 뉴런이라면 대충 문어의 두뇌 사이즈에 해당된다는 것을 상기하라.)

이런 식의 두뇌발달은 실제로 인간이라는 종의 진화역사에서 나타나는 많은 특징들을 설명해준다. 우리는 PART 2 에서 유인원이 어떤 의미에서 "인간" 으로 변화한 특정시점 - 200 만 년 전 - 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호모 에렉투스의 출현이 뉴런의 집합, 즉 두뇌가 새로운 돌발적 특성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특정시점에 도달했다고 정의한 상태에서 나온 결과라면 그런 갑작스런 변화가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의식의 진화에 대해 논의할 때 어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에 충분할 만큼 복잡성이 갑자기 증가되는 단속적인 변화라는 관념을 상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관념은 또 인간 (결국 동물의 왕국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대뇌피질을 소유하고 있는 존재) 이 다른 동물들과 화학적 차원에서는 거의 동일하더라도 정신기능의 차원에서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이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동물의 의식을 논의하는 데 있어 흔히 의식의 원활하고 일관된 흐름은 두뇌의 크기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당연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이 함께 저술한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 : Shadows of Forgotten Ancestors』에서 발췌한 다음 문장을 살펴보자.

만일 (거미의) 두뇌 크기가 인간두뇌에 비해 100 만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면 거미가 감정과 의식에서도 인간의 100 만분의 1 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 않은가?

복잡성 시스템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면 거미가 인간에 비해 100 만분의 1 에 해당하는 의식을 갖고 있다고 믿을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모래알 하나가 100 분의 1 의 사태를 나타낸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동물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독특성은, 두뇌는 복잡한 적응 시스템이라는 관념에서 도출되는, 매우 타당성 있는 결론이다. 여기서 두뇌의 진화에 관한 여러 다른 개념들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한 가지 간단한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만일 두뇌가 더욱 복잡해졌는데도 돌발적인 특성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당신은, 해삼이 "호모 사피엔스" 로 진화해가는 과정을 그려볼 수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는 앞서 주어진 공식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가정이다. 반면, 돌발적인 특성이 작용하는 진화의 길은 계단처럼 보이기 쉽다. 이것의 각 계단은 하나의 새로운 돌발적인 특성이 나타날 때마다 이에 상응하여 발생하는 정신 능력 면에서의 갑작스런 변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을, 인간으로 바로 이어지는 단일계단이 아니라 구불구불 꼬여 있고 나뭇가지처럼 뻗친 여러 부수적인 계단들과 연결된 계단으로 상상하라. 여기서 부수적인 계단을 통해 다양한 환경에 놓인 동물들은 자연선택을 할 수 있다.)

이 독특한 풍경은 PART 1 에서 제기한 문제를 되짚어볼 다음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기계의 의식

그렇다면 컴퓨터 같은 기계는 의식을 지닐 수 있을까?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살펴보자.

트랜지스터로 어떤 시스템을 구성한다고 가정해보자. 앞에서 뉴런을 갖고 작업한 것처럼 트랜지스터를 하나씩 조립하면 우리는 뉴런을 사용할 때와 똑같이 이 시스템에도 돌발적인 특성이 나타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문제는 인간의 두뇌에서 진화가 이루어졌을 때와 똑같은 일련의 돌발적인 특성을 가진 기계를 만들 수 있는지 여부에 모아진다. 이것은 우리가 PART 1 에서 제기한 문제를 훨씬 뚜렷하게 정의한 것이다. 우리는 PART 1 에서 모든 작업을 다 완수한 후에도 궁극적으로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고 특징적인 성질이 남아있을까라는 문제를 제기했었다.

우리는 돌발적인 특성이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과학의 영역 바깥으로 나아가 해답을 구해야 하는 의무를 회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인간이 갖고 있는 의식과 본질적으로 똑같은 의식을 지닐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일이 궁극적으로 가능하리라고 밝혀질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의식적" 이라고 정의하는 특징을 갖고 있되 인간의 두뇌와는 닮지 않은 기계 - 의식은 하되 다른 방식으로 의식하는 기계 - 를 만들 수도 있다. 반면, 의식과 인간의 두뇌를 흉내내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전혀 불가능할 수도 있다. 나는 한 가지 사실, 즉 이것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는 사실만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의식의 이론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우리는 의식에 관한 완벽한 이론을 공표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즉, 우리는 이것과 연결된 많은 수수께끼부터 풀고 나서야 이 문제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울까 지금 이 책에서 탐구하고 있는 인간의 독특성이라는 문제와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 우리는 의식에 관한 이론이 밝혀지더라도 그것은 복잡성의 과학이라는 신학문, 특히 돌발적인 특성이라는 관념을 내포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만 알고 있으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을 기하기 위해 우리는 약간이 초보적인 의식 이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지금 사람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당신은 두뇌의 기능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지극히 미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PART 6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두뇌가 세상에 대한 시각적인 그림을 형성하는 것 같은 비교적 단순한 작업방식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도 그리 많이 진전하지 못했으며 의식의 생성이 이보다 훨씬 복잡한 작업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의식을 두뇌의 기능에 바탕을 두고 설명하는 이론들이 상당히 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그것들을 간략하게 설명함으로써 당신에게 그 이론들의 내용에 대한 감이라도 제공하고자 한다. (물론, 나의 짧은 설명만으로는 그 중 어느 것도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이론 중의 상당수는 두뇌와 신체 사이에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정보의 입출입 과정에 엄청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예컨대 신경 생리학자인 엔토니오 대머시오에게 있어 의식이란 신체의 상태에 대한 두뇌의 인식 (전기적으로, 동시에 화학적으로 전달되는 정보) 과 기타 고도의 인지기능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에서 생성되며 이것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여기에서 핵심 아이디어는, 두뇌는 끊임없이 온몸의 상태에 관해 스스로 갖고 있는 정보를 최신정보로 물갈이하며 이 복잡한 과정이 의식을 생성하는 기능에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제럴드 에덜먼에게 있어 의식은 두뇌 자체에 보다 큰 비중이 담긴 기능이다. 그는, 의식은 뉴런의 집단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보의 상호 흐름에서 생성된다고 추정하며 이런 흐름을 "지도" 라고 부른다. 에덜먼은 두뇌의 성장과정과 시냅스의 형성과정에 매우 주목하고 있다. 그는 진화과정의 자체를 상기시켜 주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두뇌가 성숙해감에 따라 뉴런 집단들이 선택된다고 추정한다. 그는 이런 기능을 위해 선택되지 못한 뉴런들은 죽어 사라지며 잘못 연결된 상당수의 뉴런들도 자살을 감행한다고 주장한다.

프랜시스 크리크와 그의 동료들은, 의식의 기원을 두뇌 속에서 일어나는 신경신호의 고주파 진동에 두고 있다. (우리는 PART 6 에서 시각기능과 관련된 이런 진동현상에 대해 논이했었다.) 그들은 의식의 발원지를 특정 뉴런들 사이에서 지속적이고 복잡하게 일어나는 상호작용 - 우리가 그런 진동 속에서 포착할 수 있는 상호작용 - 속에서 찾는다.

이런 이론들을 완전히 설명하려면 책 한 권 분량의 원고가 족히 필요할 것이며 실제로도 그렇다. 이 이론들은 모두 내가 지금까지 개략적으로 설명한 돌발적인 특성이라는 관념을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이론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난ㄴ 모든 저자들이, 우리가 뉴런의 기능에 바탕을 둔 완벽한 의식이론을 규명하기에는 아직 요원하다는 사실에 동의하리라고 생각한다.

용어에 대한 한마디

우리는 PART 3 에서 지능에 관하여 논의하면서 사람들은 일반적인 용어를 다루는 데 있어 종종 엄청난 곤란을 겪는다는 점을 지적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의식" 같은 단어를 사용할 때 그 말이 뜻을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우리가 모든 사람들은 그 단어를 "소유하고 있다." 라는 뜻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 단어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이 다른 사람의 사용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다고 느끼면 엄청난 논쟁에 빠져든다.

한가지 예를 들겠다.

나는 조지 메이스 대학의 크래스노 고등 연구소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의식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는 의식과 복잡성의 적응 시스템에 관한 일반적인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토론 그룹이 조직되었다. 그때도 어김없이 이같은 "소유권" 문제가 터졌고 따라서 나는 한 차례의 ㅌ론 회기를 할애하여 우리가 사용하는 다양한 용어들의 의미에 관한 의견의 일치를 이루어보자고 제의했다. 내가 그런 제의를 한 의도는 단지 우리가 무익하게 휩쓸려 들어가는 듯이 어휘의 의미를 둘러싸고 쓸데없는 논쟁을 하지 말자는 뜻에서였다.

나는 "두뇌" 부터 시작하여 "지능" 과 "의식" 을 거쳐 "자아인식" 에 이르기까지 많은 논쟁을 낳으면서 동시에 토론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는 정의들을 모았다. 나는, 우리가 곤경에 빠지리라는 것은 예상했지만 그날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내로라하는 교수와 학자들의 집단이 무려 두 시간이나 열띤 토론을 하고도 "의식" 이나 기타용어는 고사하고 "두뇌" 라는 단어를 정의하는 데조차 합의를 보지 못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이런 문제들은 언어가 안고 있는 괴상한 종류의 허약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능" 이라는 단 한 개의 단어를 갖고 있지만 이것은 문어에서부터 인간, 나아가 디프 블루 같은 컴퓨터 체스 선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두뇌를 아우르고 있다. 이래가지고는 능률적으로 토론할 수가 없다. 특히 우리가 개발 중에 있는 어떤 컴퓨터에 "지능이 있다." 라는 형용사를 붙이고 싶지만 이것이 인간이 두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나는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파괴적인 피해를 줄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제시하고자 하는 방법 (PART 3 에서 언급했듯이) 은 "의식" 같은 용어들을 광범위하고 극히 일반적인 의미 말고는 사용 자체를 자제하자는 것이다. 대신, 나는 특정 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듣는 사람의 판단에 맡기겠다.

우리는 이런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특정동물의 지능보유 여부라는 골치아픈 문제 (혹은 더 심한 경우, 추상적으로 "지능" 이라는 단어를 정의내리는 문제에 시달릴 필요없이) 에 맞부딪치지 않은 채 동물이 지능에 관하여 상당히 진지한 논의를 수행할 수 있었다.

나는 동물이든 기계든 의식에 관해 논의할 때는 이와 같은 접근법을 사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는 절대로 동물이나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을 짚어서 진술해서는 안 되며 그런 특정태도를 지닌 사물에 지능의식 또는 자아인식과 같은 관념을 적용하고자 하는지의 여부는 듣는 이들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우리는 애리조너 사막에 세워진 "바이오스피어 2" (인공적으로 만든 생태계 - 옮긴이) 라는 건물에 대해 생각해봄으로써 용어의 현명한 사용에 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 돔 식 건물을 처음 건축한 사람들은 폐쇄된 상태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고집스런 목표는 달과 화성에 건설할 식민지의 모형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결국 지구와 유사한 것, 즉 건축가들이 바이오스피어 1 이라고 부른 생태계를 낳았다.

그러나 그들은 바이오스피어 2 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그 인공 행성의 나머지 부분이 흡수토록 하는 방법을 취하지 않고 그 빌딩이 지하실에 있는 기계에만 몰두했다. 따라서 바이오스피어 2 는 바이오스피어 1 과 똑같은 결과를 일부 얻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방식을 작동한다.

두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하나는 아무도 너무 커진 그린 하우스를 진짜 기구로 착각하지 않았으며 아무도 그 빌딩의 이름에 화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우리가 지능과 의식과 같은 개념에 대해 논의할 때는 반드시 바이오스피어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프 블루 같은 기계가, 지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느라 쩔쩔매지 말고 그냥 인간은 지능 1 을 갖고 있고 디프 블루는 지능 2 를 갖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 어떨까?

이런 방법을 사용하면 우리는 기계 (컴퓨터) 도 부분적으로는 두뇌와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컴퓨터와 인간두뇌의 명백한 차이를 수용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연구하면 우리가 앞으로 지능 3, 4, 5 를 발견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할 근거가 없다.

의식에도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자는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바이오스피어 2 가 진짜 기구와 다른 것처럼 의식의 종류 중에는 인간의 의식과 전혀 닮지 않은 것이 있을 수는 있다. 그리고 우리는 궁극적으로 2, 3, 4 등을 선정하는 일을 하는 데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핵심문제는, 우리가 의식이나 지능을 지닌 기계를 만들 수 있는지 여부가 아니라 "의식 1" 과 "지능 1" 을 지닌 기계를 만들 수 있는지 여부이다. 사실, 이런 어휘는 우리로 하여금 인간두뇌가 수행할 수 있는 작업과 기계에 의해 수행된 작업의 차이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어쨌든 우리가 노력을 투입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