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는 왜 컴퓨터가 아닌가?

 

인간지능의 수수께끼 : James Trefil 지음, 마도경 옮김, 현대미디어 (323-4483), 1999 (원서 : Are We Unique ? : A Scientist Explores the Complexity of the Human Brain, John Wiley & Sons, 1997), Page 237~256

 

두뇌와 컴퓨터는 작동시간 단위가 다르다

두뇌와 컴퓨터는 서로 다른 강점을 갖고 있다

두뇌는 진화하지만 컴퓨터는 제작된다

두뇌는 화학 시스템, 컴퓨터는 전기 시스템

결론

 

독자들은 디지털 컴퓨터를 만들 수 있으며... 실제로 인간 컴퓨터의 행동을 아주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 앨런 튜링-

두뇌는 일반적인 용도의 컴퓨터와는 눈꼽만큼도 닮지 않았다.  - 프랜시스 크리크의 「놀라운 가설들」중에서 -

인간의 신경계를 본 사람들은 우리의 두뇌를 일종의 디지틀 중앙처리 장치로, 주변에 깔려 있는 신경조직은 일종의 입출력 통로로 보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지금은 이런 순진한 견해를 극복한 컴퓨터 공학자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이 주제를 즐겨 다루는 인기작가들은 많이 있다. 그들 사이에서는 이 이론이 여전히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이 이론에는 매력적인 요소가 많다. 우선 단순하고 그림을 보는 것처럼 사실적이며 이해하기가 쉽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것은 철저히 그릇된 이론이다. 이 장에서 나는 이런 일반적인 통념이 모든 면에서 잘못됐다는 근거, 즉 두뇌는 어느 면으로 보든지 컴퓨터와는 다르다는 점을 심층 탐구하고자 한다. 여러분은 어쩌면 이런 식의 결말에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두뇌와 유사한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처럼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장에서 나올 결론은, 내가 대학에 갓 들어온 신입생들과 수업할 때 반드시 언급하는 말과 비슷하다. 우리 사회에는 모든 현안들을 승용차 범퍼에 붙이는 스티커에나 어울릴 만한 단순한 슬로건으로 압축하려는 풍토가 있다. 나는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말한다.

"범퍼 스티커로 쓸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입니다."

이슈가 무엇인지에 관계없이 이 범퍼 스티커가 그 본질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두뇌의 본질이라는 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당신이 이 장의 내용을 다 읽은 다음 이 말에 동의하게 되기를 바란다. 어떤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든 두뇌와 디지틀 컴퓨터 사이에 어떤 면에서든 비슷한 점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반드시 의심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두뇌가 자전거와 비슷하지 않은 것처럼 컴퓨터와도 비슷하지 않다는 말은 사실 약간 과장된 표현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두뇌도 일종의 컴퓨터일 뿐" 이라는 주장이 너무 난무해왔고 따라서 우리의 의식 속에 너무 깊숙이 젖어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유사성이 성립되지 않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런 유언비어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한 인간의 독특성을 규명하는 신성한 작업에서 진정한 진보를 이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이 장을 쓴 진짜 의도는, 만일 1950 년대의 컴퓨터 과학자들이 두뇌의 기능을 보다 정확히 이해했더라면 처음부터 두뇌를 컴퓨터에 비유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며 우리가 이런 오해를 하는 일도 없었으리라는 점을 설득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일단 사회적으로 수용된 비유법의 힘은 대단히 강력하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오염되지 않은 순박한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우리의 두뇌는 계산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컴퓨터라는 식의 설명을 들어왔다. 따라서 옳든 틀렸든 이 생각에 대해 입증해야 할 책임은 반론을 제시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이 주제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명확히 해두고 싶은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가 PART 1 에서 보았듯이 학문의 세계에는, 인간의 정신기능 중에는 영원히 과학영역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있다고 줄기차게 믿는 학파가 있다. 이 학파에 속하는 어떤 사람들은 보편적인 물리 및 화학의 법칙으로는 인간의 두뇌를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PART 와 다음 PART 를 통해 인간의 두뇌는 컴퓨터와 다르다는 주장을 펼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우리의 두뇌가 보편적인 자연법칙에 지배받는 물질적인 시스템이 아니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다음 두 PART 의 내용은 두뇌가 특정한 형태의 컴퓨터와는 다르다는 주장을 더욱 진전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두뇌 - 컴퓨터 비유법은 두 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

1. 두뇌는 구조적으로 컴퓨터와 비슷한가?

2. 컴퓨터는 두뇌와 비슷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이 문제를 보다 분명히 해두기 위해 다른 비유를 들어보겠다. 어떤 사람이 길을 내려가고 있는 달구지와 활주로를 달리고 있는 비행기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가정해보자.

"둘 다 바퀴로 움직이는군. 따라서 저것들은 모두 같은 물건임에 틀림없어."

당신은 이 주장에 어떻게 반론을 제기하겠는가? 두 물체 사이의 모든 구조적인 차이점을 지적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비행기에는 날개가 있지만 달구지에는 없다, 비행기는 엔진의 힘으로 달리지만 달구지는 소가 끌고 있다 등 많은 차이점을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달구지는 할 수 없지만 비행기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즉, 비행) 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능의 차이에 근거를 둔 주장이다. 나는 두뇌 - 컴퓨터의 문제와 관련하여 이번 PART 에서는 구조적 차이점에 대해, 다음 PART 에서는 기능의 차이점에 근거를 둔 주장들에 대해 각각 설명할 것이다.

원칙적으로 기능적인 차이점에 근거를 둔 주장은 구조적인 차이점에 근거를 둔 주장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늘을 날고 싶어했던 고대인들의 열망을 생각해보자. 역사적으로 이 문제에 관해서는 두 가지 접근법이 있었다.

하나는 하늘을 나는 동물들의 비행방식을 관찰한 다음, 그것을 흉내내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설계한 환상적인 비행 물체들 (19 세기 말엽까지 제작된 실제의 비행기들도 마찬가지이다.) 은, 인간이 하늘을 날려면 자연의 선택이 낳은 본보기를 뒤쫓아야 한다는 가정을 실천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런 접근방법은 거의 결실을 맺지 못했다. 적어도 물질과학에서 이룩한 발전 덕택에 인간의 근육만을 동력으로 삼고도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는 기계를 제작할 수 있게 된 최근까지는 그렇다. 반면, 이와는 전혀 다른 두 번째 접근방법은 인간을 하늘로 올려보내는 것이었다. 비행선과 보잉 747 기를 생각해보라. 둘 다 새가 날아가는 방식으로 비행하지 않지만 둘 다 분명히 날지 않는가? 마찬가지 논리로 두뇌와 똑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생각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적인 차이점에 근거를 둔 주장은 결코 절대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달구지 - 비행기의 비유를 예로 들어보자. 아마 나라면 "비행기는 고무 타이어를 갖고 있는데 달구지는 나무바퀴를 갖고 있다." 는 식으로 말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 당신은 또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고무 타이어가 달린 달구지를 만들 수 있어."

그러면 나는 계속 말한다.

"하지만 비행기는 전기장치를 갖고 있지만 달구지는 그렇지 못해."

당신은 내 말에 이렇게 받아친다.

"그래, 지금은 그렇지.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전기장치가 달린 달구지를 만들 수 있다구."

이런 식으로 논쟁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내가 이 PART 에 나오는 여러 주장들을 동료들 (특히 컴퓨터 공학자들) 에게 전하면 위의 논쟁은 금방 이같은 대화의 수렁에 빠진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달구지에 타이어 달기" 논쟁이라고 부른다.

내가 이런 무익한 논쟁을 반복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서 다음 주장들을 소개하려는 것은 당신의 마음속에 인간의 두뇌와 컴퓨터와 그다지 유사점이 없다는 사실을 심어주기 위해서 이다.

두뇌와 컴퓨터는 작동시간 단위가 다르다

뉴런은 밀리초 (1/1000 초 - 옮긴이) 단위로 활동한다. 다시 말해 뉴런이 신경신호를 발사하고, 신경신호가 축삭을 따라 여행하며, 뉴런이 다시 신경신호를 발사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 데는 평균 몇 밀리초 정도가 소요된다. 반면, PC 속에 들어 있는 평범한 트랜지스터는 1/10 억 초 (즉, 뉴런보다 100 만 배 빠른 속도로) 에 켜지고 꺼지며 이보다 1,000 배나 빠른 속도로 작동하는 실험 모델도 나와 있다.

당신은 1/1000 초니 1/10 억 초니 하는 말이 잘 실감나지는 않을 것이다. 간단한 예를 통해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보다 100 만 배 빠른 속도로 작동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설명하겠다. 부하직원 중 어떤 사람이 하루에 끝낼 수 있는 일을 다른 사람이 맡으면 100 만 배 늦게 걸린다고 가정해보자. 앞의 사람이 24 시간 전에 그 일을 시작했다면 그는 지금쯤 그 일을 끝냈을 것이다. 동작이 느린 두 번째 사람이 지금쯤 그 일을 끝내려면 그는 기원전 770 년전쯤에 그 일을 시작했어야 한다. 이것은 평범한 트랜지스터가 뉴런보다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예이다.

한편, 우리의 두뇌는 또 특정한 일에는 매우 빠르게 기능을 발휘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라. 그리고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라. 당신이 이런 동작을 취하더라도 당신 눈에는 세상의 풍경이 여전히 수직으로 비친다. 즉, 고개를 기울였다고 해서 그림이 기울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이 동작은 너무 간단하고 전혀 힘이 들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일이 엄청난 계산능력이 소요되는 작업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기가 쉽다. 이런 작업은 오직 최근에 개발된 최첨단 컴퓨터만이 시간간격 없이, 즉 실시간 (Real Time : 물리적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실제 시간 - 옮긴이) 에 수행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바로 컴퓨터가 화상을 분석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인간의 두뇌가 취하는 방식과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시야를 만들기 위해 제작된 컴퓨터 시스템은 한 그림을 픽셀 (텔레비젼이나 사진전송에서 영상을 전기적으로 분해한 최소단위 - 옮긴이) 이라는 작은 단위로 쪼갠 다음, 그것들을 하나씩 분석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집에서 쓰는 TV 수상기에서 그림의 가로와 세로는 각각 525 개의 구획으로 나뉜다. 따라서 한 그림은 총 525 × 525 = 27 만 5,625 개의 픽셀로 구성된다. 그림을 한쪽으로 기울이려면 컴퓨터는 각 픽셀을 일일이 분석하고 바꿔야 한다. 이것은 아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우리 두뇌가 이런 작업을 그렇게 빨리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각각의 뉴런들의 느린 작업속도를 보상하고도 남는 특수한 운동방식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PART 5 에서 살펴보았듯이 실제로 인간의 두뇌는 고도로 전문화된 다수의 뉴런 집합체로 구성돼 있다. 이것은, 두뇌가 컴퓨터 학자들이 "대규모 평행법" 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우리 두뇌 속에서는 동시에 무수히 많은 그림 조각들이 결합되고 있다. 따라서 비록 개별적인 작업은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진전되지만 그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두뇌가 컴퓨터보다 더 뛰어난 기능을 보여주는 작업 (실제로 그런 사례는 많이 있다.) 에 부딪칠 때마다 언젠가 두뇌같이 똑똑한 기계를 개발하리라고 다짐한다. 그리고 당신은 아마도 이런 기발한 작동방식을 모방한 프로그램 (예컨대 평행 처리법 등을 이용함으로써) 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컴퓨터의 자연스러운 작동방식에 부합할지는 알 수 없다. 컴퓨터의 강점은 (기발한 작동방식이 아닌) 눈깜짝할 만큼의 속도로 문제를 제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우리를 두 번째 차이점으로 인도한다.

두뇌와 컴퓨터는 서로 다른 강점을 갖고 있다

심리학계와 컴퓨터 학계에는, 두뇌는 컴퓨터가 헤매는 일에 매우 뛰어나고 컴퓨터는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잘 처리한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다. 예를 들어, 컴퓨터는 아무렇게나 쓴 아주 긴 숫자열을 기억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심지어 지난 주 화요일 한 호텔에 투숙한 손님의 명단도 기억할 수 있다. 그런 정보를 머리 속에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바로 이런 능력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발명했다. 반면, 컴퓨터는 세살바기 아이도 문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이 쉽게 이해하고 사용하는 말과 관용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능력의 차이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컴퓨터의 위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1950 년대만 해도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 시절에 과학자들은 그림과 문장을 분석하는 것과 같은 일은 숫자의 계산과 데이터를 추적하고 유지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숫자의 계산과 데이터를 추적하고 유지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컴퓨터에게는 식은죽 먹기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실제로 MIT 대학의 교수이며 인공지능 분야의 사부처럼 추앙받고 있는 마빈 민스키는 여름방학을 맞아 한 학생에게 컴퓨터에 쓸 시각인지 프로그램을 개발하라는 숙제를 냈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 당시 사람들은, 우리가 오늘날 최첨단 컴퓨터와 최고의 두뇌로도 쩔쩔 매는 문제를 단 몇 달 만에 풀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는 뜻이다.

나는 실제로 컴퓨터가 더욱 발전할수록 우리는 그것을 인간두뇌를 보완하는 존재로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휴대용 컴퓨터의 이름들 - 예컨대 Notepad (메모장), Personal Assistant (개인보좌) 등 - 은 두뇌와 컴퓨터가 동반자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개념, 즉 상대방이 부족한 것을 서로 보충해주고 있다는 개념을 은연 중에 강조하고 있다. 나는 이런 결론이 좀더 일찍 알려졌더라면 아마도 두뇌를 컴퓨터에 비유하는 일은, 애초에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뇌는 진화하지만 컴퓨터는 제작된다

두뇌와 컴퓨터의 두 번째 중요한 차이는 이것들이 각각 어떻게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돼 왔는지를 살펴보면 쉽게 드러난다. PART 7 장에서 우리는 진화의 과정을 논의하면서 인간의 뇌하수체와 같은 것이 어떻게 진화돼왔는지를 살펴보았다.

우리는 이 논의를 통해 진화의 방식은, 공학자들이 설계하고 제작하는 방식과는 그다지 유사성이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의 눈에 영상을 만드는 최초의 "하드웨어" 는 실제로 망막 앞에 자리잡고 있어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진화의 방식은 어떤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 만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반드시 최고의 상태로 진화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두뇌를 구성하는 얼개에 관하여 아직 그다지 자세히 알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나는 두뇌 속의 뉴런 회로가 어떻게 설계됐더라면 "충분히 훌륭했을 것" 이라고 꼭 집어서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일단 "뚜껑을 열고 들어가서" 이런 회로의 작동방식을 알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런 훌륭한 설계의 예를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충분히 일리 있는 생각이다.

인간의 두뇌 (이 문제에 관한 한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가 작동하는 방식은 장구한 진화과정의 산물이지만, 이 과정이 처음부터 현재와 같은 고도의 인지능력을 발휘하도록 의도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두뇌의 구조와 두뇌 같은 기능을 발휘하도록 제작된 기계 (즉, 컴퓨터) 의 구조 사이에서 드러난 온갖 기능적인 차이점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것이 오히려 놀랄 일이다.

한마디로 두뇌는 진화의 논리가, 컴퓨터는 전자공학의 논리가 작용된 작품이다. (앞으로 "진화론적인 계산 프로그램" 이 발전함에 따라 이런 차이점을 약간 더 모호해질지는 모르겠지만.)

두뇌는 화학 시스템, 컴퓨터는 전기 시스템

컴퓨터의 운동방식은 한 가지, 즉 반도체 내에서 일어나는 전하의 움직임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무리 환상적으로 디자인됐든, 아무리 복잡한 메커니즘을 갖추었든지 간에 모든 컴퓨터는 똑같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컴퓨터는 전기적인 시스템이다. 반면, 두뇌는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화학적인 반응을 기본으로 하여 동작한다. 실제로 두뇌의 화학적 성질을 분명히 드러내는 예는 많이 있다. 한 가지만 들자면, 전기적인 신호 (신경신호) 는 특정한 신경전달 물질과 수용체에 의해, 즉 화학반응을 통해 한 뉴런에서 다음 뉴런으로 전송된다. 이것에 관해서는 PART 5 에 상세히 설명돼 있다.

사람들이 컴퓨터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던 1950 년대에는 뉴런에 대한 지식수준이 높지 않았다. 처음에 두뇌와 컴퓨터를 동일시한 개념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한 뉴런에서 다음 뉴런으로 신경신호가 전달되는 방식은 규명되지 않았다. 그때에는 두 개의 학파가 있었는데 뭉뚱그려서 하나는 "스파이크" 학파로, 또 하나는 "수프" 학파로 분류할 수 있다. "스파크" 학파에 속한 사람들은 뉴런의 접촉시 일어나는 전기적인 스파크에 의해 시냅스를 통한 전송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은 신경신호의 전송은 본질적으로 전기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수프" 학파의 추종자들은 신경신호의 전송은 전기적이 아니라 화학적 반응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생각이 옳았음은 물론이다.

만일 당신이, 신경신호가 본질적으로 전류의 흐름에 의해 한 뉴런에서 다음 뉴런으로 전송된다고 생각했다면 컴퓨터와 두뇌 사이에 분명한 유사성이 있다고 믿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비유는 일단 신경전달 물질의 본질을 이해하면 근거가 약해진다. PART 5 에서도 지적했듯이 뉴런은 신경신호의 발사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매우 복잡하고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그 신호들은 나름대로의 규칙에 의해 축삭을 따라 여행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뉴런은 트랜지스터보다는 일종의 스위치 같은 기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것은 켜질 수도 있고 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비유 역시 면밀히 분석해보면 허구가 드러난다. 한 가지 사실만 들어보자. 뉴런 사이의 간격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신경전달 물질이 이용된다는 것은, 시냅스 전신경 세포에 의해 수신된 신호는 그 신호를 받을 뉴런 속에 있는 특정한 수용체의 수용성에 따라 전달되거나 전달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실제로 정해진 신경전달 물질은 접속되는 수용체의 성질에 따라 자극성을 띨 수도 있고 반대로 신경작용을 억제할 수도 있다. 컴퓨터에는 이것에 비유할 만한 시스템이 없다.

두뇌의 화학적 성질을 보여주는 보다 중요한 측면은, 두뇌가 우리 인체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통신수단인 내분비계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점이다. 두뇌는 실제로 영원히 변화하는 화학물질로 채워진 "욕조" 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 물질에는 두뇌 자체 내에서 발생된 것과 인체 내의 다른 부위에서 생성된 것 모두가 포함돼 있다. 게다가 화학적인 욕조는 뉴런이 신경신호를 발사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듯하다. 화학적인 욕조를 구성하는 요소의 종류에 따라 특정한 입력신호가 뉴런의 발사를 잘 유도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이 화학적인 물질을, 뉴런 속에서 발사활동이 일어나는 경계지점을 결정하는 일종의 항온장치로 간주하자.

아미노산 신경전달 물질 (신경전달 물질의 한 종류) 은 자신을 방출한 뉴런을 널리 확산시킬 수 있고 근처에 있는 다른 뉴런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신경교 (중추 신경계의 주요조직을 지탱하고 결합하는 가느다란 섬유 - 옮긴이) 세포 (이것은, 뉴런은 아니지만 실제로 두뇌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세포이다.) 도 역시 뉴런의 신경 신호 발사에 영향을 끼치는 듯하다. 중추 신경계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몸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교신작용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PART 6 에서도 보았듯이 시상하부는 바로 뇌하수체에 연결돼 있으며 이것은 몸 안에서 분비되는 여러 호르몬의 양을 통제한다. 이런 호르몬들은 혈관을 통해 여행하며 두뇌의 활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체가 두뇌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에 관해 간단한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당신이 한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을 때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생각해보자. 우선 혈액 속에 함유된 당분의 양이 떨어지고 시상하부 속에 있는 뉴런들은 이런 변화를 감지한다. 그러면 신경신호들이 두뇌로 전달되고 온갖 종류의 복잡한 행위들이 조직된다. 그 결과로서 당신은 음식을 먹는다. 음식을 먹으면 바로 당분수준이 다시 올라간다. 이런 상승은 다시 시상하부에 의해 감지되고 그 신호들이 두뇌 속으로 전달되어 이제 허기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을 알려준다.

정신과 육체의 연관에 관한 예들은 이외에 또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깜짝 놀랐거나 몹시 기분이 상한 최근의 경험을 생각해보고 그런 정신상태에서 어떤 복잡한 계산문제를 풀려고 했을 때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상상해보라. (나는 유치원에서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사들을 괴롭히는 이 시험 스트레스증의 상당부분은 바로 신체의 호르몬 분비 시스템과 뇌하수체의 기능 사이에 존재하는 이런 종류의 상관관계 때문에 비롯되지 않나 생각한다.) 이런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예는 이외에도 많다.

정신상태는 몸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어떤 종류이든 병적인 공포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사실을 잘 안다. 예를 들어, 눈을 감고 지상에서 높은 지점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고 상상하면 오래지 않아 손에서 땀이 솟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페라 공연장에 가본 사람이라면 청중들이 조용히 앉아 뺨에 눈물을 흘리면서 음악을 듣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둘 다 어떤 외부의 자극 없이 순수하게 두뇌 속에 있는 뉴런의 신경신호 발사 활동에 의해 신체적 반응이 촉발된 경우이다.

뇌기능의 화학적인 성질은 신경생리 학자인 앤토니오 대미시오의 『데카르트의 실수 - 감정, 이성, 그리고 인간의 두뇌 : Descarte's Error - Emotion, Reason, and the Human Brain』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 속에 잘 요약돼 있다.

신경신호는 화학적 신호를 낳으며 이것은 다시 또 다른 화학적 신호를 낳는다. 이것은 또 많은 세포와 조직 (뇌세포와 뇌조직도 포함된다.) 의 기능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이런 연쇄반응 자체를 촉발한 통제회로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신체에 관한 이처럼 간단한 생화학적 진리는, 정신이라는 것이 우리 두개골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신체와는 별개로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개념을 영원히 잠들게 만든다. 두뇌는 몸에 영향을 끼치며 몸도 두뇌에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이 둘을 진정으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실제로 대모시오 같은 학자들은 이런 본질적인 상관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마음 - 정신" 이라는 합성어를 사용했다.

결론

디지털 컴퓨터와 인간두뇌 사이에서 나타나는 이런 본질적인 차이점을 감안하면 두뇌 - 컴퓨터 비유법은 애초에 생기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은 별로 놀랄 만한 일도 못 된다.

이 PART 의 도입부에서도 언급했지만 내가 이 PART 를 쓴 의도는 두뇌 - 컴퓨터 비유법이 성립될 수 없다는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런 비유법 자체가 허구일 수 있는 이유들을 지적하는 데 있다. 이 비유법이 틀렸다면 신경망 이론과 같이 그 동안 컴퓨터 과학에서 이룩된 발전을 어디에 활용할 수 있겠는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이런 발전된 이론들은, 인간이 두뇌의 기능을 흉내낼 수 있는 컴퓨터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기 이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소개하겠다.

지구에 온 한 외계인이 커다란 도시를 보았다고 가정해보자. 또 이 외계인이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유독 교통량과 수송수단의 개념에 주목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이 도시에 모든 종류의 교통수단이 존재하고 있다고 여기고 관찰을 시작할 것이다. 즉, 사람들은 차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기차와 버스는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운행하고, 트럭들은 물건을 실어 나르고... 등. 이 외계인은 이 도시가 일종의 수송체계라고 간단히 결론내릴지도 모른다.
이제 이 외계인은 인공도시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승용차, 버스, 기차 등을 운전할 한 떼의 로보트를 모아 시내에 풀어 놓는다. 물론, 결과는 진짜 도시의 교통상황과는 전혀 딴판이다. 이때 외계인은 기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진짜 교통 수단들이 운영되는 방식을 취하고 그에 맞추어 로봇로 하여금 그대로 흉내내도록 하자."
그래서 로봇들에게 일종의 신경망 같은 장치를 장착한다. 드디어 외계인은 학계로부터 위대한 업적을 인정받으면서 자신이 대전환기를 열었다고 선언한다. 그가 만든 도시는 러시아워 때 길이 엄청나게 막힌다.

로봇들이 수십년 동안 발전을 거듭한 끝에 어떤 면에서도 진짜 도시의 교통상황과는 전혀 다른 진보된 교통 패턴을 개발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이 모델을 "인공 도시화" 의 모델로 부를 수 있을까?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리라고 믿는다. 왜냐고? 비록 도시는 분명히 수송 시스템이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오직 수송 시스템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도시에서는 온갖 종류의 다른 활동들이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은 선거를 통해 정부를 선택하고 사랑하다가 깨어지며 가족을 부양하는 등... 끝이 없다. 이런 활동들은 모두 수송 시스템에 영향을 끼친다. 결국, 수송 시스템을 얼마나 훌륭하게 흉내냈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도시에는 그밖에도 많은 것이 있다. 나는, 우리가 이런 식으로 디지털 컴퓨터와 비슷한 두뇌의 측면에만 지나치게 정신을 쏟음으로써 보다 중요한 시스템의 다른 요소,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놓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 두뇌는 계산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이것을 일종의 컴퓨터라고 불러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두뇌가 "틀림없이" 컴퓨터와 똑같다는 뜻은 아니다. 다음 PART 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두뇌가 튜링 기계로 대표되는 표준적인 컴퓨터와 똑같다는 뜻도 아니다. 이런 주장에는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없어야 한다. 두뇌는 물리적인 법칙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스템일 수도 있겠지만, 두뇌는 곧 디지털 컴퓨터라는 단정은 여전히 성립되지 않는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결국 자전거도 자연법칙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