헴펠의 행위설명이론에 대한 비판

 

과학적 설명과 비단조 논리 : 정영기 지음, 엘맨, 1996, Page 54~75

 

1. 헬펠의 행위설명이론에 대한 비판유형

2. 인지론의 기본입장

3. 필리신의 설명개념

4. 표상의 설명적 기능

     (1) 표상이란 무엇인가?

     (2) 표상의 설명적 기능 

 

1. 헬펠의 행위설명이론에 대한 비판유형

헴펠의 행위설명 이론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세 가지 방향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해석론자들 (interpretativists) 이다. 그들은 인간의 의도적인 행위에 대한 설명은 법칙에 호소하는 인과적 (또는 다른) 설명과 전적으로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해석론자들은 이유와 행위를 연결시키는 경험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한다. 그들은 그런 법칙이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논리적인 오류라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윈치 (Winch), 딜타이 (Dilthey), 콜링우드 (Collingwood) 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둘째, 법칙 회의론자들 (nomological skepticists) 이다. 그들은 포괄법칙형 설명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법칙이 사회과학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한다. 법칙 회의론자들 중 일부는 법칙을 발견하는 가능성을 인정하지만 일부는 그런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 태도를 취한다. 적절한 법칙 발견에 대한 그들의 회의는 해석론자들의 논리적 관심과는 대조적으로 화용론적이다. 법칙 회의론자들은 인간 해위의 변화 가능성과 복잡성이 일반화를 구성하는 실제적인 장애 요인이라고 믿고 있다. 이 견해는 데이빗슨이 주장한다.

셋째, 비판이론가들 (critical theorists) 이다. 그들은 인간행위의 법칙적 설명을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 비판이론가들은 우리가 무의식적인 물리적 대상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려는 시도의 윤리적 의미에 대해 걱정한다. 이런 견해는 칼 오토 아펠 (Karl-Otto Apel), 그륀바움 (Grünbaum) 등이 주장하고 있다.

이상 세 종류의 주장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행위 설명의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논쟁은 일반법칙의 문제로 모아진다. 첫째 주장은 일반법칙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견해이며, 셋째 주장은 일반법칙이 인간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견해이다. 이 경우 일반법칙은 보편법칙으로 또는 확률법칙 또는 준법칙적 언명으로 해석되는데, 필자는 그것을 강한 의미의 법칙과 약한 의미의 법칙이라고 말하고 싶다.

헴펠은 설명할 때 법칙적 언명에 호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헴펠 자신도 역사적 설명이나 사회과학적 설명에서 자연과학적 법칙과 같은 엄밀한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헴펠은 확률법칙이나 통계적 법칙이나 준법칙적 언명을 말하고 있으며 설명스케치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설명스케치와 관련된 법칙과 조건들은 다소 애매하게 표시되어 있으며 그것을 자격이 충분한 설명으로 봐주기 위해서는 더 특정한 진술에 의해 메우기 과정이 필요하다.

역사적 설명은 보편법칙보다 확률법칙에 기초해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것은 경험과학의 다른 분야들에서 주어지는 많은 설명들에도 확장될 수 있다고 헴펠은 말한다. 필자는 자연현상과 인간 행위의 설명이 인과적 설명이며 (강한 의미 또는 약한 의미에서) 법칙에 의한 설명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설명구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방법론적 일원론을 주장하는 헴펠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헴펠의 행위설명에 대한 세 가지 비판의 공통적인 특징은 헴펠의 포괄법칙모델을 강한 의미의 법칙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필자는 포괄법칙 모델을 약한 의미의 법칙으로 해석하면 위의 비판들이 해결되거나 약화된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지적한 바대로 법칙회의론자인 데이빗슨은 약한의미의 법칙이 발견될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데이빗슨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행위를 설명할 때 우리가 참이라고 알아야 하거나 생각해야 하는 덜 엄격한 법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판이론가들의 주장처럼, 약한 의미의 법칙이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확률법칙은 일정한 조건 하에서 특정한 행위를 해야한다는 결정론적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헴펠은 어떤 종류의 설명이든 법칙적 언명에 호소해야 함을 지적하는 것이고 역사적 설명에서도 법칙은 일정한 기능을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인지과학의 등장으로 행위설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인지과학은 인간의 행위 설명에 새로운 방식을 제공해 준다. 인지과학은 인간 행위를 설명할 때 정보처리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인지과학은 컴퓨터와 뇌와 마음을 연결시켜 주는 새로운 종합과학이며, 마음의 문제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지과학자들은 인간의 마음과 컴퓨터가 동일한 상징조작체계로서 환경에서 정보를 받아 이를 부호화하여 상징으로 저장하고 저장된 정보를 활용하여 출력을 내어 놓는 정보처리 체계로 본다 (주석 : 인간의 마음과 컴퓨터가 정보를 처리하는 정보처리체계라는 견해는 다음과 같은 몇 개의 가설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인간의 마음은 정보를 처리하는 체계이다. 둘째, 정보처리는 계산, 기호를 조작하는 과정이다. 세째, 컴퓨터의 프로그램은 기호를 조작하는 체계이다. 네째, 인간의 마음은 컴퓨터의 프로그램으로 모형화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세 가지 비판을 논외로 하고 인지과학적 입장에서 헴펠의 행위설명을 비판해 보고자 한다.

2. 인지론의 기본입장 (주석 : 여기에서 인지론은 인지주의 (cognitivism) 를 말한다. 마골리스 (J.Margolis) 는 인지론을 가장 간결하고 잘 정리하여 설명한 사람은 호글랜드라고 말하고 있다.)

철학과 심리학에서 인지론의 입장은 지적인 행위는 내적인 인지적 과정에 호소하여 설명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호글랜드 (J.Haugeland) 에 의하면 인지론은 합리적인 전통의 상속자이다. 합리론자들은 인지를 인간의 본질로 간주한다. 지적이라는 것은 유사-언어적인 표상을 처리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인지론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가정을 한다. 첫째, 사물을 지적으로 다루는 우리의 능력은 사물을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 때문이다. 둘째, 사물을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능력은 내적인 자동적 기호처리 능력과 같다.

인지론은 기본적으로 통속심리학적인 설명방식의 틀을 받아들이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인지론이나 통속심리학이나 모두 행위의 규칙성과 행위에 관한 일반화를 얻기 위해서 내적인 믿음이나 바램의 내용을 나타낼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지론은 통속심리학의 경험적인 일반화가 체계적으로 될 수 있고 엄밀해 질 수 있다는 희망에서 출발하고 있다. 인지론이 통속심리학과는 달리 엄밀한 경험적인 설명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컴퓨터의 작동에 관한 이론을 참조한 결과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은 세계에서 발생하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므로 이해와 더불어 설명은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특히 과학적 설명은 상식적 설명보다 더 정확하고, 더 자세하며, 더 일반적이며, 설명들이 상호 통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과학적 설명은 다양하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드러나는 일련의 특징을 상술함으로써 이루어지는데, 그 특징들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항상 얻어지는 규칙성이나 관계를 가정하거나 앎으로써 성립한다. 전제된 규칙성이 법칙에 의해 정식화되는 설명을 철학자들은 연역적-법칙적 설명 (deductive-nomological explanation) 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호글랜드는 다른 형태의 설명이 두 가지 더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 설명을 위해 섬유광학 (fiber optics) 의 예를 든다. 섬유광학의 한 묶음은 어떤 상 (image) 이든 가질 수 있는데 그 상은 한쪽 끝에서 나와 다른 쪽 끝으로 전달될 수 있다. 이 예가 이해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그 묶음들은 길고 가느다란 많은 섬유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섬유들은 하나씩 하나씩 밀접하게 담겨 있으며 그 묶음의 전 길이를 따라 다른 섬유와 관련하여 같은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다. 둘째, 각 섬유는 빛을 그대로 전달하는 관이다. 섬유의 한쪽 끝으로 들어온 빛은 모두 같은 섬유의 다른 쪽 끝으로 나간다. 셋째, 투사된 상은 정밀하게 포장된 점들로 이루어진 빛의 연쇄로 생각할 수 있으며, 밝기와 색깔은 다르다. 넷째, 각 섬유의 끝은 점과 같으므로 그 묶음의 한 쪽 끝에 상을 보내면 다른 쪽 끝은 동일한 지점에서 동일한 색깔과 밝기의 점으로 빛나게 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연역적-법칙적 설명이 아니라고 호글랜드는 말한다. 첫째, 여기에서 설명되는 것은 어떤 대상의 성향이나 능력이다. 둘째, 그 설명은 두 가지 기본적 전제에 의존한다. 하나는 문제의 대상이 어떤 형식이나 구조를 가진 것은 모두 어떤 성향이나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셋째, 전제된 방식으로 구조화된 대상은 모두 그 능력이 설명되도록 할 것이다. 호글랜드는 이러한 설명을 형태학적 설명 (morpological explanation) 이라고 부른다. 이 설명의 특징은, 한 능력이 특정한 구조에 호소하고 그렇게 구조화된 것의 특정한 능력에 호소함으로써 설명된다는 것이다. 과학에서 형태학적 설명은 가끔 "모델" 이라고 불려지지만 호글랜드는 그 용어가 너무 넒은 의미를 지닌다고 거부한다.

다른 예로 자동차 엔진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설명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형태학적 설명을 시도할 경우 그 설명은 특정한 체계와 그렇게 체계화된 것의 일정한 성향이나 능력에 호소한다. 그러나 그 외에 그 설명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서로 의존적인 상호작용의 복잡하게 조직화된 패턴을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가 있다. 엔진의 다양한 부분들은, 다른 부분들이 단독으로 할 수 있었던 일과는 매우 다른 결과를 얻기 위해서 많은 다양한 일들을 수행한다. 상호작용을 자세하게 언급하는 것은 설명에 중요하고 상호작용은 별개의 상호작용자 (interactor) 를 요구하기 때문에 체계적인 설명을 얻는 능력을 가진 대상은 별개의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호글랜드는 이러한 설명을 체계적인 설명 (systematic explanation) 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체계 (주석 : 호글랜드는 체계를 회사에 비유한다. 그 회사의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역할들을 수행하는데 대부분은 조직화된 상호작용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최종 결과를 산출하는데 기여한다.) 는 체계적으로 설명되는 능력을 가진 대상이며, 기능적 구성요소 (functional components) 는 설명에서 그 상호작용이 인용되는 별개의 부분이라고 하자. 한 체계에서 상술된 구조는 본질적으로 기능적인 구성요소의 배열이기 때문에 그 구성요소들은 상술된대로 상호작용할 것이다. 형태학적 설명과 체계적인 설명의 차이는 체계화된 협동적인 상호작용의 부가적인 요소이다. 호글랜드는 체계적인 설명만 인지심리학에 직접적으로 관계된다고 주장한다. 인지론에서는 인간의 인지적 행동들을 구조지어진 내적 체계로부터 나타난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하면 인지론자의 설명은 체계적이다.

호글랜드에 의하면 모든 설명의 공통적인 측면은 무엇인가를 전제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설명은 일반적인 규칙성을 전제한다. 그러나 그 규칙성은 자체적으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더 기본적인 것에 호소하여 설명될 수 있다. 호글랜드는 그러한 설명을 환원 (reduction) 이라고 말한다. 형태학적 설명과 체계적인 설명이 전제하는 규칙성은 주로 구체적인 방식으로 구조화된 것의 성향이나 능력이다. 그러므로 형태학적 환원과 체계적인 환원은 그 능력에 대한 설명이다. 체계를 설명하면서 전제된 모든 규칙성은 인접한 구성요소와 상호작용하는 개별적인 구성요소의 능력이다. 복잡하고 상호 의존적인 조직화는 체계의 핵심이기 때문에 개별적인 구성요소에게 요구되는 능력 자체는 매우 세련되고 전문화되어 있다. (체계적인 설명에서) 그 능력은 다양하고 구별된 기능적 구성요소의 조직화된 상호작용으로부터 결과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호글랜드에 의하면 심리학은 정량적인 법칙에 관심갖지 않으며 심리학적 이론은 물리학적 이론과 같지 않다. 따라서 심리학적 설명은 체계적이어야 하며 법칙적-연역적이어서는 안된다.

3. 필리신의 설명개념

인지과학적 입장에서 행위설명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사람은 필리신 (Z.W.Pylyshyn) 이다. 필리신에 의하면 과학에서 설명은 일반화를 포착하여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다. 필리신에 의하면 인지과학은 인지적 용어를 사용하여 포착될 수 있는 일련의 일반화가 존재한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주석 : 우리는 이 일반화를 물리적으로 실현가능한 메카니즘과 관련시킬 수 있는데, 이 때 계산 (computation) 이 중요한 연결 기능을 할 수 있다. 계산은 표상의 규칙지배적인 변형이다.). 이러한 일반화가 존재한다면 일반화를 포착하는 것은 과학의 중요한 목적이다 (주석 : 행위의 규칙성을 설명하려면 우리는 거의 알지 못하는 의식상태와 똑같이 작용하는 과정과 정신상태를 가정할 필요가 있다.). 그는 설명이 특정한 어휘 (vocabulary) 와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인지심리학에서 행위의 규칙성과 일반성은 그 행위와 선행조건이 분류하는 용어에 의해 기술될 경우에만 포착된다 (주석 : 필리신에 의하면 심리학에서 설명의 문제는 행위 분류방식을 선택하는 문제이다.). 설명은 설명되는 현상을 기술하는 방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필리신은 말한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낯선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일련의 사건을 목격하였다고 가정하자. 행인이 인도를 따라 걷고 있다. 갑자기 행인이 방향을 바꿔 길을 가로질러 건너기 시작한다. 동시에 차는 행인을 행해 길 아래로 빠르게 질주하고 있다. 차의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는다. 차가 미끄러지며 길 옆으로 벗어나서 전주와 부딪친다. 행인은 머뭇거리며 건너가서는 차 안의 운전자 쪽을 바라본다. 그는 길모퉁이의 전화 박스로 뛰어가서 9 와 1 번을 돌린다.

필리신은 우리가 행위를 설명할 때 기술의 진실성에 관심갖기 보다는 일반화를 포착하려는 다양한 기술의 능력과 다양한 어휘 속에 표현된 설명이 적절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앞의 예에서 설명이 적절하려면 무엇보다 다음과 같이 언급해야 한다.

그 행인은 충돌을 지각하였으며, 그것을 사건으로 분류하여 인식하였으며, 상해가 있을 것이라고 추리하였으며, 어떤 사람이 실제로 상해를 입었다고 결론을 내렸으며, 자신이 목격한 것으로부터 그 결론이 맞다고 연역하였으며, 상해입은 사람을 적절하게 처리하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에 기초하여 도움을 구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옆에 전화박스를 발견하였으며, 긴급구조 번호를 상기하고 도움을 구하려는 의도로 번호를 돌렸다.

우리가 아무리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설명을 하더라도 그 행인이 그 사건을 긴급상황으로 지각하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지 못하고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전체 상황은 매우 달라지게 된다. 앞의 예에서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어떤 현상은 어휘로 표현된 설명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필리신은 이러한 어휘들이 그 사건의 이유와 내용과 방법을 설명하는데 실제로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인지적 용어들이며 많은 철학자들은 그것을 지향적 용어 (intentional term) 라고 부른다. 이 지향적 용어가 심리학적 설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필리신의 지적이다. 이러한 용어들이 필요한 이유는 동일하게 규칙적이며 조직적인 다른 행위절차도, 그 사람에게 이용가능한 정보를 변경시킴으로써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사실적 경우들 -- 일어날 수 있는 것들 -- 에 대한 관심이 설명의 관건이다. 더구나 반사실적 사태를 야기할 수 있는 방식은 인지적 체계의 한 특징을 구성한다.

행위 설명이 인지적 용어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많은 이유가 있다. 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인지적 용어를 사용하여 포착될 수 있는 규칙성과 일반화가 행위적 또는 물리적 용어를 사용한 기술로는 포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석 : 포더 (J.A.Fodor), 퍼트남 (H.Putnum), 데이빗슨 (D.Davidson), 데넷 (D.C.Dennett) 등이 이러한 종류의 논의를 하였다. 결국 필리신이 주장하는 것은 인지과학에 속하는 일반화와 다른 과학에 속하는 일반화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지적 용어로 설명하는 것이 좀더 지적으로 만족스러운 설명을 제공하는 것만은 아니다. 인지적 용어에 의한 설명은 적절한 일반화를 포착하기 때문에 더 예측적이다.

앞의 예를 상기해 보자. 행인이 전화박스로 가서 9 와 1 번을 돌렸다. 그렇다면 그는 다음에 무엇을 행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그 상황이 특정한 용어를 사용하여 기술될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 행인은 긴급번호가 911 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상황을 긴급상황으로 인지하였기 때문에 그는 분명히 1 번을 돌릴 것이다. 그 상황을 이렇게 기술하는 방식은 그러한 예측을 가능케 한다. 체계적 설명이, 그 행인이 다음에 행하는 것은 1 번을 돌리는 것이라는 예측과 자극조건을 연결시키는 것이라면, 그 설명은 다음과 같이 언급해야 할 것이다. 즉 행인은 그 상황을 사건으로 해석하였으며, 긴급 전화번호를 알거나 기억하며, 행인의 행위는 '구조요청전화' 라는 범주의 사례가 언급되어야 한다.

이것이 옳다는 것은 다른 가능성, 즉 반사실적 가능성을 고려함으로써 알 수 있다. 그 예측이 유효하지 않지만 물리적으로 동일한 상황이 있다. 예를 들어, 그 거리에서 TV 쇼의 리허설이 있다는 것을 그 사람에게 미리 알리는 경우이다. 그리고 그 예측이 유효하고 물리적으로 매우 다른 상황이 있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이 상해입은 운전자를 보는 대신 도움을 요청하는 운전자의 외침을 듣거나 누군가가 다쳤다는 것을 통행인에게 듣는 경우이다. 중요한 것은 동일한 일반화가 실현되지만 물리적으로 매우 다른 방법이 많다는 것이다. 그 일반화를 인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중요한 규칙성을 잃어버린다.

행위를 설명할 때 인지적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또다른 이유는 인간의 행위가 매우 유연하다 (plastic) 는 점이다. 이 특색은 행위가 자극-독립적이라는 점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의 행위는 물리적 또는 생리학적 조건의 변화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비행동주의자에 의하면, 인간의 행위가 자극-독립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간의 행위는 그 순간에 믿고 있는 것과 그 순간에 그 상황을 어떻게 지각하느냐 하는 것과 자신들의 행위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에 의존한다. 행위가 자극-독립적이라는 것은 행위가 자의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행위가 다양한 원칙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기체는 환경에 대해 선택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유기체는 환경으로부터의 자극에 대해 지각을 이용하여 반응을 한다. 행위의 심리학적 규칙성을 결정하는 것은 지각이다. 지각 안의 모든 것이 추리를 포함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극을 범주의 한 사례로 인식하거나 확인하는 것은 추리를 포함한다. 우리는 빨간불을 교통신호로 보았을 때 멈춘다. 우리가 빨간 불을 교통신호로 보는 것은 우리 문화의 관습에 대한 지식에 의존한다. 이것은 자극의 물리적 속성이 행위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행위할 때 갖고 있는 의도와 그 행위의 결과 사이에 분명한 관련이 있음이 분명한데, 그 관련은 사회적이고 자연적인 환경에서 얻어진다. 인간의 행위를 결정하는 요인은 물리학에 의해 기술되기보다는 행위주체에 의해 해석된 (또는 인식된) 환경이나 선행사건이다. 그리고 행위적 규칙성에 포함되는 것은 객관적인 자연과학에 의해 기술된 행위라기보다는 의도를 가지고 수행된 행위이다.

필리신은 행위의 규칙성을 설명하는 방식을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 종류의 설명 (형태 1) 은 인지적 또는 지식의존적 설명이라고 불린다. 이 방식은 인간의 행위를 인간이 신념과 목적을 소유한 결과로 설명한다. 형태 1 의 설명방식의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유기체가 목적 G 를 갖고 있고 A 를 행하는 것이 G 를 얻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유기체가 A 를 행하는 경우이다. 이 설명방식은 심리학의 분야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이때 의사결정 (decision-making) 이 중요한 과정으로 간주된다고 필리신은 말한다. 둘째 종류의 설명 (형태 2) (주석 : 필리신은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형태 2 라고 명명한다. 형태 2 의 설명 방식은 헴펠의 설명방식을 말한다.) 은 자연주의적 또는 기계적-인과적 설명이라고 불린다. 이 방식은 인간의 행위를 법칙적으로 작용하는 내적인 성질을 인간이 소유한 결과로 설명한다. 형태 2 의 설명은 문제의 성질이나 규칙성을 생물학적 원리로부터 도출하지만, 우리는 그 규칙성을 기능적인 수준에서 특징짓는 것으로 만족한다.

두 형태의 설명은 행위의 규칙성을 설명할 때 차이가 난다. 필리신은 인간의 의도적 행위가 목적과 신념과 추리에 의해 설명되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도적 행위는 행위 주체에게 어떤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일관되고 명확한 방식으로 변경될 수 있다. 그 변경은 정보가 전달되는 물리적 형식과는 무관하다. 사람이 어떤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방식이 무엇인가를 듣거나 봄으로써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 있으면, 자극과 반응의 과정을 야기하는 해석과 추리와 의사결정의 단계가 분명히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단계는 주체가 믿고 있는 것에 기초한 결정을 포함해야 하므로 형태 1 의 설명을 요구한다.

형태 1 과 형태 2 를 구별하는 것은 인지적 현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고 필리신은 말한다. 규칙과 표상으로부터 발생하는 전체 과정의 성질과 기초적인 매개물의 생물학적인 성질로부터 발생하는 전체 과정의 성질을 구별하지 못하면, 다음의 두 가지 현상을 결과한다. 첫째, 우리는 관찰된 입력과 출력의 행위를 흉내내는 미봉적인 계산적 가설을 구성하게 된다. 둘째, 우리는 행위의 규칙성에 대한 발견을 정신적 메카니즘의 성질에 대한 발견으로 취급하게 된다. 그러나 행위의 규칙성에 대한 발견은 실제 세계의 성질에 대한 주체의 암묵적인 지식에 대한 발견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4. 표상의 설명적 기능

(1) 표상이란 무엇인가?

필리신에 의하면 인지적 설명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표상 (representation) 개념이다 (주석 : 인지적 설명에서 행위의 원인은 예기된 미래의 사건이나 다른 의도적 대상이 아니라 사물의 내적인 표상이다.). 여기에서 표상은 심리적 표상이나 정신적 표상을 말한다. 표상은 무엇인가를 나타내는 (또는 대표하는) 어떤 것이다. 표상은 표상하는 세계와 표상되는 세계가 존재함으로써 가능하다. 표상되는 세계는 외부세계만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세계일 수도 있다. 표상하는 세계가 하는 일은 표상되는 세계의 어떤 측면을 만들어질 필요도 없으며 표상하는 세계의 모든 측면들이 표상되는 세계의 한 측면을 만들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한 세계가 다른 세계를 표상한다면 그들간에 대응하는 어떤 측면이 있을 것이다.

모든 표상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점은 표상은 표상하는 세계에 대한 어떤 정보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표상하는 세계가 포함하는 정보는 동일할 수도 있다. 대조적으로, 표상하는 세계가 포함하는 정보는 다를 수 있지만 표상되는 세계에 대한 동일한 정보를 반영할 수도 있다.

표상하는 세계의 기능은 표상되는 세계에 관한 정보를 보유하는 것이다. 정보를 보유하는 것은 두 세계 사이에 대응하는 관계를 갖는 것과 일치한다. 표상은 기능상으로 분리된 두 세계 사이에 일종의 관계를 요구한다. 이 관계는 작용에 의해 정의된다. 작용관계란 표상을 해석하는 과정에 의해 정의되는 것을 말한다. 표상의 본질은 표상된 세계의 대상으로부터 표상하는 세계의 대상에로의 대응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표상된 세계 안의 어떤 관계는 표상하는 세계 안에 구조적으로 보존된다.

심리적 표상에는 언어적 표상과 비언어적 표상이 있다. 언어적 표상은 언어적으로 형상화된 표상이고, 비언어적 표상은 언어화, 개념화, 명제화되기 이전의 표상이다. 언어적 표상은 구체적 사실과 개별적 사실을 표현해 주는 것만이 아니라 일반적 사실이나 추상적 사실까지도 표현해 준다. 언어적 추상화에 의거하여 우리 인간은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다양한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의 행위에 대해서도 행위를 하게 하는 신념이나 욕구 같은 것을 통해 행위를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다.

언어적 표상 중에서 명제적 표상은 지향적 성격을 갖는다. '믿는다', '원한다', '욕구한다' 는 동사는 구체적인 명제에 대한 태도이다. 가령 '믿는다' 는 '달이 지구의 주위를 돈다고 나는 믿는다' 에서 처럼 무엇에 대한 신념이다. 마찬가지로 '원한다' 와 '욕구한다' 는 무엇을 원하거나 무엇을 욕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동사는 지향성을 지닌다. 즉 그런 동사들은 무엇을 지향하거나 그 자신을 넘어서 있는 어떤 것을 지시한다. 따라서 태도동사는 지향적 술어라고도 불린다.

명제태도로서의 표상은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는데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창수는 경주의 첨성대를 보기 원한다' 에서 '원한다' 는 지향적 술어는 창수의 심리상태를 표상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심리상태에 의해 창수가 첨성대를 보기 위해 경주에 간다면, '원한다' 는 표상 (지향적 술어) 은 창수의 행위의 이유를 설명한다.

(2) 표상의 설명적 기능

어떤 체계 안의 행위의 규칙성을 설명하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 체계에 본질적인 성질이나 메카니즘에 호소하거나 그 체계의 기능적 능력에 호소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체계가 어떤 규칙에 의해 조작되는 표상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필리신은 우리가 체계 안의 행위의 규칙성 (체계의 행위의 경험적 규칙성을 관찰한다면 우리는 그 체계가 왜 그렇게 행위하는가에 대한 설명을 세 가지로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지향적 또는 표상적 설명이다. 체계는 믿음과 목적 때문에 일정한 방식으로 행위한다. 둘째, 기능적 구조 설명이다. 체계는 정보를 코드화하고 그 코드를 처리하도록 구조지어진 방식 때문에 그렇게 행위한다. 세째, 아날로그식 설명이다. 체계는 일반법칙을 예증하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행위한다.) 을 설명하려면 표상의 내용에 호소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행위설명을 위해 표상을 가정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둘째, 어떤 조건 하에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행위의 규칙성은 행위자에게 약간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체계적이고 일관된 방식으로 변경될 수 있다.

표상에 호소하여 얻게 되는 인지적 일반화는 표상의 의미론적 내용을 언급함으로써 포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나는 현재 나의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문장들을 타이핑하거나 다른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나는 아래로 아파트 앞동을 바라보고 있으며, 뒤로는 조그만 야산을 생각하고 있다. 또한 나는 연구를 하는 대신, 식사 후에 왜 산보를 하지 않는가라고 자문하고 있다. 나의 현재 행위는 현재의 목적과 생각에 의해 야기되었다. 목적은 이 논문을 완성시키겠다는 것이고, 생각은 내 뒤의 조그만 야산을 산보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 완성된 논문이나 조그만 야산에 의해 야기되었다는 것이 의미있다면, 나의 행위는 뇌의 어떤 상태에 의해 야기되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왜 그 상태가 구체적인 문장을 타이핑하도록 야기했는가를 설명하는 방법은, 뇌의 상태와 언급된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의 뇌의 상태는 산보나 야산과 인과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다. 그 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라 의미론적 관계이며 일종의 내용이다. 뇌의 상태는 어떤 움직임을 야기한다. 이 움직임이 '야산을 산보하는 것에 대한 문장을 쓴다' 와 같이 기술된 일련의 행위의 구성요소로 간주된다면, 뇌의 상태는 산보와 야산 같은 것에 대한 표상이나 코드를 구체화하는 것으로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행위는 어떤 코드의 표상적 내용과 규칙에 의해 합리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이라고 간주될 수 있다.

필리신에 의하면, 표상적 상태를 갖는 것은 기억의 한 부분에 기호적 표현을 갖는 것이다. 그 표현은 의미론적 해석을 코드화 (encode) 하며, 배합적 구조는 하위표현의 내용 사이의 관계를 코드화한다 (주석 : 이에 관한 자세한 부분들은 지금 논의 중에 있지만 전체적인 윤곽은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필리신은 말한다.) 가 일정한 방식으로 행위하도록 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의미론적 내용과 대응하는 기호적 표현이 있다면, 우리는 기능적 상태와 표상적 상태가 일대일 관계에 있다고 예측할 수 있으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의미론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가진 일련의 코드 (즉 유사한 표현) 가 있을 수 있다. 그 코드는 기능적으로는 구별되지만 의미론적으로는 동일할 수 있다. 내용상의 차이와 구조상의 차이의 문제이다. 둘째, 의미론적 내용을 코드화한 기호적 표현으로는 행위를 유발시키기에 불충분하다. 필요한 것은 일련의 메카니즘인데, 이 메카니즘은 체계가 작용하게 하거나 기호를 해석하도록 야기한다. 필리신은 이 메카니즘을 "기능적 구조" (functional architecture) 라고 부른다 (주석 : 인지과학의 목적은 행위의 규칙성을 기술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 규칙성을 유기체의 인과적 메카니즘과 관련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기능적 구조가 다르더라도 표상은 같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표상적 상태 (즉 동일한 목적, 신념과 욕구 등) 를 가진 두 체계는 기능적으로 구별될 수 있다. 동일한 목적과 신념을 가진 두 사람도 기능적으로 다를 수 있다. 인간의 행위는 신념과 목적 등과 같은 내용 이상의 것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행위는 통제구조와 모든 사용 가능한 메카니즘을 포함하는 기능적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표상적으로 동일한 상태는 예측적으로 다른 행위를 야기할 수 있다. 표상 내용을 언급함으로써 포착된 일반화는 다르다. 표상의 의미론적 내용에 의해 표현된 일반화는 "의미론적 수준의 일반화" 이고, 기능적 구조의 성질들에 의해 표현된 일반화는 "기호 수준의 일반화" 이다 (주석 : 뉴웰 (Newell) 은 "의미론적 수준의 일반화" 를 지식 수준의 일반화" 라고 말한다.).

필리신은 표상적 수준 (또는 의미론적 수준) 과 기능적 수준과 물리적 수준을 구별한다. 표상은 기능적 수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기능적 상태가 의미론적으로 해석되었다고 말할 때 우리는 기능적 구조가 아니라 기능적 상태의 기호적 코드의 일부분을 언급하는 것이다. 기능적 수준의 차이는 행위에 영향을 주지만 내용의 차이와 관련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필리신은 인간의 지적인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세 가지 수준의 조직화에 호소해야 한다고 말한다.

필리신에 의하면 표상의 의미론은 체계가 어떤 방식으로 행위하도록 야기할 수 없다. 오직 표상의 물질적 형식만이 인과적으로 효력을 가진다. 우리가 목적 G 를 바라거나 P 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어떤 행위를 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표상에 인과성을 부여한다. 물론 그렇게 야기하는 것은 내용이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야기하는 것은 표상적 상태의 물리적 성질이다.

필리신은 여기에서 정신적인 사건이 내용을 가지도록 야기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정신적인 내용이 어떤 사물을 표상하는 것은 그 내용이 사물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X 의 이미지가 X 를 표상하는 이유는 정신적 표상이나 이미지가 X 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한 사물이 다른 사물과 유사하냐 여부는 물리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에 의존한다. 가령 대부분의 새들은 서로서로 유사하다. 그러나 새를 기르는 사람에게는 새들이 오리와 토끼처럼 다르게 보인다. 유사성은 정신적 표상의 의미론적 내용에 어떤 기초도 주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표상이 의미론적 관계라는 것이다. 의미론적 관계는 인과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

앞에서 우리는 어떤 종류의 일반화를 설명하기 위해 표상 내용에 호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포더 (J.A.Fodor) 에 의하면 표상은 의미론적으로 구분된 (해석된) 내적 상태들이다. 포더는 내적 상태를 언어적 표현들과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데, 그래서 그것들에 구문론적인 속성들과 의미론적인 속성들을 부여할 수 있다고 본다. 내적 상태에 부여된 구문론적인 속성은 행위를 야기하는 인과적 힘을 설명할 수 있는 토대가 되며 의미론적 속성은 어떤 행위의 합리적인 의미연관이 다른 사람에게도 이해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인지과학에 의하면 인지상태는 표상이며 인지 과정은 표상의 변형이다. 필리신에 의하면 표상에 의한 설명 방식에서 작용원리는 합리성의 원리이다. 그는 합리성을 원리적인 측면에서 생각하고 있다. 합리성은 추리를 이끌어 내는 것이나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나 어떤 과정 중에 진리값을 보존하는 것과 관련된 원리이다. 합리성의 원리는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는데 불가결한 것이다. 필리신에 의하면 우리는 합리성의 원리를 사용함으로써 행위의 규칙성을 설명할 수 있다. 합리성의 원리가 없다면 우리의 행위는 경험적 일반화의 무원리적인 집합에 불과할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필리신은 행위 설명의 수준을 세가지로 구별한다. 그것은 의미론적 수준과 기호론적 수준과 물리적 수준이다. 합리성은 세 가지 수준에서 의미론적 수준에 해당한다. 그에게서 합리성의 원리는 기능적인 설명만으로는 행위의 규칙성을 포착할 수 없으며 따라서 새로운 차원의 수준이 필요하다는 신념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 기능적인 수준이나 물리적인 수준에서 설명될 수 없는 규칙성은 의미론적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의미론적 수준의 규칙성은 목적과 신념과 행위를 합리적인 방식으로 결합시키는 규칙성이다. 이렇기 때문에 목적과 신념을 언급하는 인지과학자들은 합리성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한다. 필리신은 인지론적 방식으로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며 합리성 개념을 강조하였다. 필리신은 합리성의 원리 없이 우리가 행위 설명을 하지 못할 것임을 강조하며 합리성을 규칙지배적인 원리로 해석한다.

필리신은 행위의 규칙성을 설명할 때 표상에 호소한다 (주석 : 필리신은 마음에 관한 현대 이론을 두 가지로 나눈다. 표상론자 (representationist) 와 제거론자 (eliminativist) 이다. 표상론자들은 표상적 상태를 가정하는 것은 인지이론에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표상론자들에 의하면, 세계의 상태를 코드화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마음 상태가 있다는 것이다. 제거론자들은 표상과 같은 의미론적 개념이 심리학 이론에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제거론자들에 의하면, 심리이론을 위한 적절한 어휘는 신경학적이거나 형태적이거나 구문론적이다. 마음의 표상이론 (representational theory of mind : RTM) 을 주장하는 필리신에게 표상이 불필요하다는 제거론자들의 주장은 결정적인 비판이 된다. 스티취 (S. Stich) 는 표상을 상정하지 않고도 인간의 행위를 충분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이다.). 이 때 표상은 인과적 관계가 아니라 의미론적 관계이다. 이런 측면에서 필리신의 합리성은 의미론적 정합성 (semantic-coherence) 이다. 그러나 이 이상의 어떤 것도 제시하지 않았으며, 그는 합리성 개념에 대해 체계적인 또는 깊이 있는 견해를 제시하지 않았다.

필리신은 인지론적 입장에서 표상에 의한 행위설명방식을 주장하며 헴펠을 비판하지만 결국 합리성 개념에 호소하게 된다. 표상과정은 의미관계이므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의미와 의미를 연결시켜주는 것을 합리성 개념이다. 인지과학적 입장에서 헴펠의 행위설명을 하더라도 합리성 개념이 필요하다는 점이 밝혀졌다. 행위설명에서 합리성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제까지는 추상적으로 언급되었는데, 필리신에 의해 구체적으로 지적되었다. 필리신의 지적에 의해 행위설명에서 합리성 개념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은 밝혀졌지만 과연 어떤 종류의 합리성을 전제해야 하는가? 먼저 헴펠이 제시하는 합리성을 기대효용이론 중심으로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