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지능
과학사상8호(1994년-봄) : 박승수 (이화여대 교수 · 컴퓨터 공학), 범양사 출판부, Page 24~51
영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펜로즈 (R. Penrose) 는 그의 저서 《임금님의 새마음 The Emperor's New Mind1) 의 서문에서 우리에게 친근한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비유하여 컴퓨터에 마음을 부여하고자 하는 인공지능 및 인지 과학자들의 노력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무대는 미래의 어느 가상의 왕국. 이곳에서는 최근 완성된 새로운 초고성능 컴퓨터 모델-U를 선보이기 위한 행사가 곧 시작되려 한다. 모델-U는 이 나라의 왕이 여러 가지 국사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도움받기 위하여 엄청난 자금을 투여해서 만든 컴퓨터로서 무려 1017 개나 되는 회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이 왕국에 사는 모든 국민의 신경 세포수를 훨씬 능가하는 엄청난 숫자다. 행사장에는 왕을 비롯하여 모델-U를 먼 발치에서나마 한 번 보려는 관중이 많이 운집해 있다. 이윽고 팡파르가 울리고 왕비가 전원 스위치를 올림으로써 기념행사가 시작된다. 행사의 일환으로 설계 책임자가 나와서 모델-U의 가공할 능력에 대하여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하다. 이윽고 설계 책임자는 모델-U의 성능을 과시하기 위하여 관중들에게 아무 질문이나 던져보라고 권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혹시나 자신의 무지가 모든 사람들 앞에 탄로날까 두려워 아무 질문도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설계 책임자는 더욱 의기양양하게 관중들에게 질문을 재촉한다. 이때 앞줄에 잠자코 앉아 있던 한 천진난만한 소년이 손을 번쩍 든다.
"옳지, 꼬마야. 그래 알고 싶은 게 무엇이지? 우리 새친구 컴퓨터에게 아무거나 물어보렴."
"저······, 저는 그냥 이 컴퓨터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어요."
"······어떤 기분이냐고? ······ 기분이라 ······그것 참 재미있는 질문인데? 글세, 그건 나도 알고 싶다마는 ······ 어디 한번 물어나 볼까? ······ 이럴 리가! 거참 이상한데 ······ 질문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 "
관중들 사이에 조용한 웃음의 물결이 번지기 시작한다. 이윽고 행사장은 겉잡을 수 없는 웃음바다가 되고 만다. 소년은 자신의 질문이 초래한 이 사태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펜로즈는 그이 저서에서 컴퓨터의 원리를 이루고 있는 계산모형을 수학적 관점과 물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뒤, 사람의 마음은 어떠한 복잡한 계산이나 컴퓨터 알고리듬으로도 구현할 수 없는 비계산적인 면이 존재하고 그것은 어쩌면 영원히 물리학적으로 규명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결론으로써 마음의 본질에 대한 그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컴퓨터의 우둔함을 조롱하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매월 날아드는 0 달러짜리 컴퓨터 발행 청구서에 지친 한 고객이 수표에 0 달러라고 기입하여 납부했더니 고맙다는 통지와 함께 독촉이 끊겼다는 이야기, 20 대 초반의 청년이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해 은행대출을 신청했는데 직장경력 22 년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허가가 났다는 이야기, 또 의학 진단용 전문가 시스템에 장난으로 자신의 중고차 몸체에 생긴 황갈색 반점에 대하여 문의한 결과 '홍역' 이라는 진단이 나왔다는 이야기 등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계산을 순식간에 해치우는 컴퓨터, 수많은 전문가들도 예상하지 못한 경제현상을 정확히 예측하는 컴퓨터라는 등의 선입관에 합해지면서 묘한 혼돈감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컴퓨터를 지능적인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어른의 지적 영역, 즉 계산, 논리적 사고, 지식축적 등의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만 아이들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상식, 감정, 지각 등에 있어서는 어처구니없이 약점을 보이고 있다. 컴퓨터의 관점에서는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라는 시구가 그대로 성립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에 대한 펜로즈의 비판은, 좀더 냉정히 살펴보면 물리학자, 수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컴퓨터 및 그 계산이론, 즉 튜링 기계 (Turing Machine) 가 인간의 지능을 복제 혹은 모형화하는 것에 부적합하다는 것으로 그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철학자 설 (J. Searle) 에 의해서 제기된 '중국어 방 논변 (Chinese Room Argument)' 의 논점도 그와 비슷하다. 한자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방에 앉아서 한자로 주어지는 질문에 대하여 설명서에 지시된 대로 대답에 해당하는 한자를 찾아서 넘겨줄 때 비록 그것이 정확한 답이라 하더라도 방 밖에서 짐작하는 것처럼 그 방이 (혹은 그 안에 있는 사람이) 한자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즉 컴퓨터 프로그램에 있어서 '이해 (understanding)' 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더욱 신랄한 비판은 오히려 인공지능 연구의 선두주자 중의 한 사람으로부터 나왔다. 예일 대학교의 맥더모트 (D. McDermott) 는 <인공지능과 인간 우매의 만남>2) 이라는 글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공지능 연구가 대부분 문제의 핵심을 남겨둔 채 비켜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그 결과로 많은 비전문가들이 컴퓨터가 실제보다 훨씬 인간지능에 접근한 듯한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었다고 힐난하고 있다.
이 글에서 우리는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배경을 살펴보고 인공지능의 현주소를 진단해보고자 한다.
인간의 마음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떻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뇌에서 지각이라는 형이상학적인 현상이 일어나는가? 마음을 이루는 단면들, 즉 지각, 기억, 감정, 개성 들은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아마 "인생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 등과 더불어 인류 역사를 통하여 가장 많이 제기된 질문의 하나일 것이다.
마치 높은 산봉우리를 오르는 길이 하나가 아니듯이 인간의 마음을 규명하려는 노력도 매우 여러 각도에서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기원은 철학분야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철학자들은 수세기 전부터 유물론적인 입장과 이원론적인 입장이 서로 맞물려 끝없는 논쟁을 벌여왔다. 이원론자들은 정신과 육체는 전혀 다른 영역이므로 초월적인 정신현상을 눈에 보이는 과학적 현상으로 규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금세기 후반에 여러 가지 과학기술이 개발되면서 유물론적인 입장이 많은 동감을 얻게 되었다. 특히 신경과학, 인지과학, 컴퓨터 등의 발달은 인간의 마음을 새로운 각도에서 분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부터 마음의 신비가 하나씩 벗겨짐에 따라 인간의 마음도 초월적인 현상이 아니라 아직 우리가 알 수 없는 자연현상의 연장이고, 앞으로 충분한 과학발달이 이루어지면서 그것을 움직이는 법칙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기계적 분석에 반발하는 입장이 철학분야뿐 아니라 자연과학분야에서도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특히 앞에서 언급한 물리학자 펜로즈 같은 사람은 자연과학으로 규명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그 무엇이 마음을 움직이는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경과학자들은 온몸의 신경을 총괄하는 두뇌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하여 두뇌에서 일어나는 전자기적, 화학적 반응 등을 측정함으로써 신경 사이의 정보교환, 각 두뇌부위의 특성과 역학, 각종 지각과 사고에 따른 생리학적 반응 등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인간의 사고, 기억, 감정 등을 하나의 생화학적 현상으로 규명하려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마음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어떤 의미에서 마치 중세시대에 지구의 끝을 찾고자 하는 탐험가들의 노력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 두뇌의 자세한 지도를 만들어냄으로써 옛날에는 신비롭게만 여겨지던 지구의 끝이 이제는 명확하게 규명된 것처럼 인간의 마음도 그렇게 밝혀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예를 들면 감정 변화에 따른 뇌의 활동을 측정하기 위하여 혈액에 투입된 당분농도를 측정한 결과 희로애락의 감정뿐만 아니라 음악의 음계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두뇌의 부위가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지금까지 신비에만 싸여 있던 뇌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음의 본질을 규명함에 있어서 인공지능은 철학, 신경과학 등 다른 학문과는 전혀 다른 접근방법을 취하고 있다. 즉 그들 다른 학문에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마음이라는 현상을 놓고 그 본질을 규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인공지능에서는 마음 혹은 지능을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는가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어떤 사물을 분석함에 있어서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려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본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발상, 즉 지능을 인공적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비로소 가능하게 된 것이다. 기억이 가능하고 순서에 의한 계산수행이 가능한 컴퓨터라는 기계를 개발해낸 이들은 인간의 창의력을 이용하여 명령순서를 적당히 프로그램함으로써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컴퓨터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인간의 사고를 컴퓨터에 흉내내기 시작한 것이다. 초기에는 단순한 문제풀이에 사용되는 인간의 지능을 컴퓨터에 적용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차츰 그 영역을 넓혀가면서 폭넓은 연구를하게 되었다. 특히 마음의 속성 중에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추론능력을 논리계산을 이용하여 컴퓨터에 구현시키는 것에 성공한 이후 마음의 다른 영역에도 구현 가능한가를 타진하기 시작했다.
물론 컴퓨터가 지능을 만드는 도구로서 가장 적합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인공지능의 연구가 깊어질수록 지금 형태의 컴퓨터는 인간과 같은 형태의 지능을 구현하는 데 있어서 적적하지 못한 도구라는 것이 더욱 명백하게 부각되고 있다. 다만, 비록 그것이 지극히 원시적인 형태이더라도 인간의 지능을 컴퓨터로 만들어보려는 노력은 종래와는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인간의 마음을 분석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국내에도 소개된 한 영화에서는 콜라병을 우연히 발견한 어떤 미개인의 놀라움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이와 같이 어떤 미개사회에 우연히 비행기가 발견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처음에는 그것이 커다란 새일 것이라고 단정하겠지만 여러 가지 궁리를 통하여 제법 사실에 가까운, 즉 사람이 조종할 수 있는 어떤 불가사의한 기계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또, 엔진의 힘으로 날개를 이용하여 활강을 하고 날개의 운동변화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것도 언젠가는 알게될지 모른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원리를 알아냈다 하더라도 막상 그것을 만들어보려 한다면 그때에는 지금까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엄청난 문제들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그들에게 있는 기술이 나무를 다듬거나 흙을 빚는 것이 전부라면 그들은 나무나 흙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보려다 벽에 부딪히고 좌절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날개나 바퀴의 형상을 그럴 듯하게 복제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주 단순하여 쉽게 만들 수 있게 보였던 상자 속에서 복잡한 회로들이 쏟아져 나온다면 그 작업은 또 벽에 봉착할 것이다. 그때에는 어쩌면 지금까지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되던 나무나 흙에 대해서 회의를 갖게 되고 새로운 형태의 도구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비행기의 원리에 대한 통찰력이 배가될 수 있고 새로운 도구를 향한 노력이 촉진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비행기 바퀴를 흙으로 복재해보려는 과정에서 수레라는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고 날개를 만들어보려다 나무 등으로 엮은 행글라이더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지능을 컴퓨터로 만들어보려는 노력은 미개인들이 나무나 흙을 엮어서 비행기를 만들어보려는 노력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실제에 있어서는 이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비행기라는 기계가 인간의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이 작업은 시작되었고 곳곳에서 벽에 부딪히면서도 흙으로 빚은 수레와 같은 부산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실제로 인간의 지능을 복제해보기 위한 작업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펜로즈나 설 같은 사람들의 비판과는 달리 인공지능 학자들은 애당초 훨씬 소박한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이라는 학문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현재 가장 공감을 얻고 있는 정의 중의 하나는 '인간이 수행함에 있어 지능을 요하는 작업을 계산 모형하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 이라는 것이다. 이 정의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단어는 '지능 (intelligence)' 과 '계산 모형 (computational model)' 이다. 그리고 이 두 개의 핵심 단어는 인공지능의 범위를 교묘하게 규정짓고 있다. 우선 지능이라는 단어는 매우 애매해서 비록 그것을 개나 거머리의 지능이 아닌 인간의 지능으로 제한하더라도 이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신경과학의 관점에서는 신경단위 등을 이용하여 지렁이와 거머리의 지능을 비교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 절대적인 지능의 기준을 미리 설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어떤 행위를 본 후에야 그것이 지능적이라고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영국의 튜링 (A. Turing) 은 컴퓨터와 인간이 터미널을 통하여 대화하는 내용을 제삼자가 관측하게 하여 어느 쪽이 컴퓨터인지 알아낼 수 없으면 그 컴퓨터는 지능이 있다고 판정을 내리는 튜링 검사 (Turing Test) 라는 방법을 오래 전에 제안했으나 요즈음에는 앞에서 언급한 '중국어 방' 과 같은 논법에 그 설득력이 많이 약화되고 있다. 이와 같이 지능이라는 단어가 갖는 모호성 때문에 인공지능의 정의도 유동적인 면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인공지능에서 연구되던 것들이 어느 정도 뚜렷한 해결방법을 찾게 되면 이미 인공지능의 연구 영역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말도 그러한 연유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미 프로급의 실력에 접근한 서양장기 프로그램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인공지능의 정의에 언급된 두 번째의 핵심단어는 '계산 모형' 이다. 인공지능의 계산 모형은 이를 수행하는 컴퓨터의 계산 모형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된다. 종래의 폰 노이만 (von Neumann) 식 컴퓨터는 튜링 기계이론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 모형의 특징은 프로그램 형태로 기억된 명령과 데이터를 하나의 프로세서가 순차적으로 수행하는 것으로서 이 모형은 80 년대 중반 이후 신경망 모형, 데이터 플로 (data flow) 모형 등이 등장하기까지 거의 유일한 계산 모형이었다. 이러한 컴퓨터에서는 문제를 푸는 방법에 있어서 숫자 혹은 기호에 의한 계산에 의존하는데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특히 기호 계산 (symbolic computation) 이 많이 사용되었다.
초기 인공지능 연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계산 방법 (computational method) 은 탐색 (searching) 을 문제풀이의 기본으로 삼는 방법이다. 지식을 여러 가지 형태로 자료구조로 저장한 후 그 위에서 휴리스틱한 방법으로 답을 탐색해 나가는 방법으로서 서양장기 프로그램 등에서 주로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다. 지금도 탐색은 거의 모든 인공지능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로서, 탐색에 있어서 복잡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이 여러 각도에서 강구되고 있다. 인공지능을 실세계에서 적용하고자 할 때 마치 끝없이 펼쳐진 수많은 길 중에서 어떻게 하면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를 찾아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탐색 문제' 라 하여 인공지능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난제 중의 하나다.
초기 인공지능에 있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계산 모형은 포스트 (Post) 의 이론에 근거한 생성 시스템 (production system) 이다. 생성 시스템에서의 계산은 기호의 배열을 규칙에 의거하여 다른 기호의 배열로 변환시켜주는 방법으로 수행된다. 이 시스템에서는 지식을 규칙과 사실의 기호 형태로 저장해놓고 사실에 규칙을 적용하여 새로운 사실을 생성해나감으로써 지식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 모형은 규칙기반 시스템 혹은 전문가 시스템 등의 기본 모형으로서 지금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기호 계산 방법 중 가장 많이 연구되고 사용된 방법은 기호논리학을 이용한 방법이었다. 기호논리학은 이미 수세기 동안 지식의 표현방법으로서, 또 새로운 지식을 계산하는 방법으로서 오랜 연구가 있었기 때문에 적당한 지식표현 방법을 찾지 못해 고민하던 인공지능 학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논리학에서는 정리의 증명이 추론과 직결되기 때문에 일차논리의 각종 증명방법이 컴퓨터에 구현되기 시작했다. 특히 로빈슨 (Robinson) 에 의해 제안된 레졸루션 (resolution) 방법이 등장하면서 70 년대 인공지능 연구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되었다.
기호논리학은 진리 (truth) 를 체계적으로 탐구하려는 철학의 한 지류로서 자연어에서 흔히 발생하는 모순을 제거하기 위하여 모호성이 배제된 형태의 언어를 설정하고 그 언어 위에 정확한 의미체계를 부여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바탕 위에 엄격한 문장변환 규칙을 설정하여 문장이 변화할 때 그에 따라 변환되는 의미도 전체적인 체계를 따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특히 어떤 문장이 진리값을 갖는다면 그 진리값을 변화시키지 않는 문장변환을 함으로써 논증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즉 증명에 있어서 문장의 의미가 전혀 배제된 채 기호들의 변환규칙에만 따르더라도 결과적인 의미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첨단과학을 수행함에 있어 여러 가지 복잡한 고등수학 식을 계산하지만 그 기저에는 1 + 1 의 결과가 2 라는 기호로 표시되고 그 의미, 즉 물체 하나에 물체 하나를 더하면 물체 두 개가 된다는 것을 확인해보지 않아도 맞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 계산이 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다. 다만 숫자와 그밖에 수학의 기호들은 수적인 개념만을 그 의미로 가질 수 있지만 논리식은 일반적인 사실 전반을 표시할 수 있기 때문에 종래의 컴퓨터에 있어서 인공지능의 도구로서 논리학은 매우 매력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3)
이러한 동기에서 70 년대의 인공지능 연구에서는 논리식 계산 방법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연구는 제법 결실을 맺어 70년대 후반부터 80 년대에 걸쳐 논리 계산과 생성 시스템을 혼합한 형태의 각종 전문가 시스템이 등장하게 되었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 형태의 인공지능 시스템이 우리 생활에 파고들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성공이 오히려 기호계산학적 인공지능 (symbolic AI) 의 한계를 드러내는데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논리학에 근거한 계산 모형이 전문적인 지식의 추론 등에는 적합했지만 막상 우리 일반 생활에 필요한 인공지능 시스템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는 매우 부적합한 면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제한된 영역내에서 미리 정해 놓은 확실한 규칙을 적용할 수 있는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일상생활의 자유분방함 속에서는 그것이 무용지물임이 드러난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단순하고 상식적인 문제들이 규칙의 틀에 넣고자 할 때는 골칫덩어리로 바뀌는 것이다. 기존의 논리학 입장에서 볼 때 사람들의 실상적인 사고는 모순투성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논리학에 입각한 인공지능이 딜레마에 빠져 있을 때 한편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계산모형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으며 소개되고 있었다. 그것은 신경의 구조와 원리에 입각한 신경망 (neural net) 모형으로, 단순한 역할을 하는 수많은 신경단위들이 서로 연결되어 협력함으로써 하나의 작업을 해나간다는 원리다. 이 계산 모형은 특히 논리학적인 방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machine leaning), 즉 컴퓨터로 하여금 새로운 사실을 배우고 훈련할 수 있게끔 하는데 적합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좀더 근본적으로는 모든 생명체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힘이라고 볼 수 있는 적응력, 즉 새로운 환경 혹은 실패에 적응하는 능력을 컴퓨터에 심어줄 수 있는 방법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일상적인 대화의 이해, 손으로 휘갈겨 쓴 글자의 인식, 소리의 분별 등 일상생활 속에서의 인간의 인지활동 가운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러한 새로운 모형이 각광을 받게 된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배경이 있다. 이 계산 모형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종래의 컴퓨터에서는 매우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에 효용성이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오면서 컴퓨터의 하드웨어적인 개념에 있어서 중대한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컴퓨터의 가장 비싼 부분으로 알려졌던 CPU가 반도체의 개발과 함께 작은 칩의 형태로 쏟아져나오면서 가정용 개인 컴퓨터가 종래의 중형 컴퓨터이상의 능력을 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새로운 형태의 컴퓨터 하드웨어가 선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들 중에는 수백, 수천개의 프로세서들을 연결시킨 형태의 컴퓨터도 있었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컴퓨터에서는 반대로 그러한 컴퓨터에 적합한 계산 모형을 찾고 있었는데 신경망 모형은 그러한 필요성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아직은 여러 가지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대부분의 신경망 모형의 연구가 기존의 컴퓨터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머지 않아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컴퓨터가 상용화도리라고 예상된다.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하나의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꿈이란 마치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때로는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기괴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아톰과 같은 귀여운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인공지능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그러한 로봇에 지능을 부여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초기부터 지금까지 가장 큰 난제는 컴퓨터에 이해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어린아이들에게도 쉽게 이해되는 부분에 오면 벽에 부딪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지적 능력 가운데 인공지능의 입장에서 가장 신비로운 것은 융통성이라 할 수 있다. 똑같은 말도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변화되고 똑같은 형태도 주위 환경에 따라 믿음 상태를 변화해 나가는 것도 이러한 융통성의 결과다. 이러한 능력과 함께 상황에 따라 주의 집중이 변화하는 포커싱 (focusimg) 능력도 신비하다 할 수 있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자동차의 기계적 원리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고 눈 앞에 보이는 도로사정 혹은 경치 등에 주의를 두지만, 자동차에 이상이 감지되는 순간엔진 또는 브레이크 시스템의 원리를 떠올림으로써 문제의 원인을 추론하는 것이다. 다방에서 옆좌석에 앉은 사람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지만 그 대화내용 중에 자기가 아는 사람의 이름이 언급되면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들리게 된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와 같이 스위치처럼 켰다껐다 할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문제들은 모두 지식을 컴퓨터에 어떠한 형태로 저장할 것인가의 문제와 결부된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아직 이렇다 할 지식표현 방법이 나오지 않고 있다.
지식표현 방법은 인공지능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서 집중적으로 연구되어왔다. 지금까지 제안된 대표적인 것들로는 일차논리식, 의미망 (semantic net), 규칙 베이스 (rule base), 프레임, 개념 종속 (conceptual dependency), 등이 있는데 모두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을 다루기에는 적합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최근에는 컴퓨터에 융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이 다각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컴퓨터에 융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연구분야 중의 하나는 컴퓨터에 상식을 부여하는 연구로서 상식 추론 (commonsense reasoning) 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고 있다. 상식이라는 단어는 광범위한 개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상식을 부여하는 연구도 매우 여러 각도에서 진행되고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상식이라는 것에 특별한 원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관련지식 혹은 배경 지식을 많이 갖고 있으므로 비로소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상식에 해당하는 많은 문제가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동전을 던져서 승자를 고르는 경우에 갑이라는 사람이 을에게 "앞면이면 내가 이기고 뒷면이면 네가 진다" 고 선언했다고 가정하자. 을은 잠깐 어리둥절할지 모르지만 금세 상식적으로 그것은 자신이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컴퓨터에 논리적 계산으로 풀게하면 주어잔 말만 갖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선 이긴다는 말이 진다는 말의 반의어임을 알아야 한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동전을 던졌을 때 그것이 꼭 앞면이나 뒷면으로 떨어지지 옆면으로 서 있는 경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사람에게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컴퓨터에게는 동전이라는 것이 원통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사실이 컴퓨터에 주어져야만 컴퓨터는 올바른 답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점에 착안하여 미국의 유명한 연구소 MCC에서는 사이크 (CYC) 라는 10년에 걸친 프로젝트에서 컴퓨터에 상식을 부여하기 위하여 한 권짜리 백과사전과 신문 한부를 선정하여 이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엄청난 양의 모든 배경지식을 입력시키고 있다.
논리학 분야에서는 상식 추론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일차논리의 부적합성에서 기인한다는 가정하에 여러 가지 형태의 새로운 논리를 연구하고 있다. 그들은 상식을 분석한 결과 그것이 매우 다양한 형태의 추론들이 복합되어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각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논리 형식들을 제안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약간', '다소' 등과 같이 불확실한 개념을 표현하기 위하여 퍼지 논리 (fuzzy logic) 라는 것을 소개하였고, 참이 아니면 거짓이라는 다중치 논리(multi valued logic) 를 제안했으며, 기존 믿음에 상반되는 사실을 받아들였을 때 발생되는 모순을 방지하기 위한 비단조 논리 (nonmonototic logic) 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연구하고 있다. 또 다른 사람의 생각을 염두에 둘 수 있는 추론 형태도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추론 능력은 특히 로봇이 실세계에서 행동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운전 중에 다른 차의 운전자의 의도를 알지 못하면 안전한 운전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밖에도 많은 형태의 논리학이 여러 가지 목적하에 연구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수십년 전에 연구되다 중단되었던 것도 있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양상논리 (modal logic) 등과 같이 기존에 있던 논리체계를 목적에 따라 약간씩 변형시킨 것들이다. 이러한 여러 형태의 연구는 아직 뚜렷한 승자 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완성되더라도 또하나의 커다란 문제가 남는다. 이렇게 목적에 따라 여러 형태의 논리가 존재할 때 그들을 상식이라는 공통주제로 묶으려면 이들을 통합하는 문제도 무엇보다 심각하다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우리는 지능을 만들어보려는 인간들의 노력을 살펴보았다. 지난 약 30 년간의 인공지능 연구를 생각할 때마다 필자는 앞에서 소개한 '비행기를 만드는 미개인' 의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만큼 인간의 마음은 오묘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도구는 보잘 것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능을 만들어보려는 노력을 통하여 우리는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였고 마음에 대한 좀더 깊은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 그 중 하나는 인간의 마음이 하나의 커다란 원칙에 따라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 사고, 인식 등 마음의 여러 가지 단면들이 각각 독립적인 원칙에 따라 조정되며 그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스키 (M. Minsky) 는 이를 '마음의 사회 (society of mind)' 라고 부른다.
펜로즈의 조롱으로 시작된 이글을 '마음의 사회 '4) 에 나타난 민스키의 마음에 대한 통찰로서 마치고자 한다. 민스키가 제안한 마음의 모형은 신경망 모형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객체 지향 모형 (object oriented model) 에 근거한 계산 형태를 취하고 있다. 즉 여러 개의 독립적인 프로세서들이 연결되어 각각 자기가 맡은 일을 하면서 서로 형태의 메시지를 교환함으로써 하나의 공동작업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이기 위하여 그는 마음이라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지능이 생성될 수 있는가 하는 원초적인 질문부터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마치 우리가 생명체를 연구하기 위하여 세포라는 것을 연구하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을 이루는 기본인자를 구명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은 아주 작은 (지능이라는 것을 부여할 수 없는) 매체 (agent) 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매체들이 서로 협동하여 하나의 사회를 이룰 때 거기에서 지능이라는 것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말처럼 간단하지는 않다. 도대체 그 매체들은 무엇이고 각각은 어떤 기능과 특성이 있어야 하고 그것들이 어떤 식으로 협동해야 되나 하는 것은 마음이 포괄하고 있는 여러 측면들 (감정, 야망, 억압심리, 즐거움 등) 을 생각해볼 때 실로 엄청나게 복잡한 것이다.
주
1) Penrose, R., The Emperor's New Mind (Penguin Book, 1989).
2) McDermott, D., " Artificial Intelligence meets Natural Stupidity, " SIGART Newsletter, No. 57, 1976, reprinted in Mind Design (ed. Haugeland).
3) 박승수, <인공지능과 철학의 이중협주곡>, 《철학과 현실》, 1993 가을.
4) Minsky, M., The Society of Mind (Simon and Schuster,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