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기본개념

 

과학사상8호(1994년-봄) : Marvin Minsky, 이영의 (고려대 철학과 강사) 번역, 범양사 출판부, Page 172~191

 

1.1 마음의 에이전트

1.3 마음이라는 사회

4.1 자아

7.1 지능

16.1 정서

18.1 기계는 논리적이어야 하는가?

18.8 수학이 일을 어렵게 한다.

24.2 마음의 프레임

24.4 초기값 가정

28.5 마음과 세계

28.6 마음과 기계

 

(주석: 1927 년생. 인공지능 분야의 지도적 학자로서, Semantic Information Processing (1968) , Perceptrons : an Introduction to Computational Geometry (1969) 등의 편저서가 있다. 현재 미국 MIT 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다. 이 글은 짧은 글들의 모음집인  The Society of Mind (1985, Simon and Schuster) 에서 선별하였으며, 이영의 (고려대 철학과 강사) 씨가 변역했다.)

1.1 마음의 에이전트

좋은 심리 이론은 적어도 세 가지의 다른 시간을 측정해야 한다. 즉 우리의 뇌가 수십억년 동안 진화해왔던 동안의 느린 시간, 유아기와 아동기가 지나가는 동안의 빠른 시간, 역사를 통해 사상들이 성장해왔던 세계들 사이에 놓인 시간이 그것이다.

마음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없는 재료들, 즉 지능적이라고 생각되는 어떤 것보다도 더 단순한 부분들로부터 어떻게 마음이 구성되는가를 제시해야 한다. 자체적으로 사고나 감정을 갖지 못한 사물들에 의해 마음을 설명할 수 없다면, 순화논법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그러함 보다 단순한 입자들, 즉 마음을 구성하는 '에이전트 (agent)' 들은 무엇일까? 이 물음이 바로 이책의 주제다. 이를 염두에두고 과제를 살펴보자 대답해야 할 많은 질문들이 있다.

기능 : 어떻게 에이전트 들이 작동하는가?

구현 : 에이전트들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상호작용 : 어떻게 에이전트들은 교신하는가?

기원 : 첫 번째 에이전트는 어디서 발생하는가?

유전 : 우리는 모두 동일한 에이전트를 만들고 오래된 것을 교환하는가?

특징 : 가장 중요한 에이전트는 어떤 종류인가?

권위 : 에이전트들이 다투게 될 때 무엇이 발생하는가?

의도 : 어떻게 그러한 연결망들은 원하고 바라는가?

능력 : 개개의 에이전트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 에이전트의 그룹들이 할 수 있는가?

자아 : 에이전트들에게 통일과 개성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의미 : 어떻게 에이전트들은 이해할 수 있는가?

감수성 : 어떻게 에이전트들은 감정과 정서를 갖는가?

자각 : 어떻게 에이전트들은 의식하거나 자각하는가?

이러한 모든 개개의 질문들은 그것만으로는 대답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나의 심리 이론이 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개별적인 질문들이 다른 것들과 갖는 연결고리를 분리하면, 그 질문들은 대답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단 마음을 에이전트들의 사회로 보게 되면 개별적인 대답들은 여타의 대답들을 설명해줄 것이다.

1.3 마음이라는 사회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은 사고이며 당신이 행하는 모든 것은 자신에 의해 행해진다. 그러나 '당신' 은 무엇인가? 어떤 종류의 작은 실체들이 마음 내부에서 당신의 일을 하기 위해 협력하는가? 어떻게 마음이 사화와 유사한가를 보기 위해 다음과 같이 해보자. 한 잔의 차를 들어라!

당신의 붙잡음-에이전트는 컵을 꼭 잡고 있기를 원한다.

당신의 균형-에이전트는 그 차가 엎질러지지 않기를 원한다.

당신의 갈증-에이전트는 당신이 그 차를 마시기를 원한다.

당신의 움직임-에이전트는 그 컵을 입으로 가져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당신이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방안을 거닐 때 위의 에이전트들 중 어느 것도 당신의 마음을 모두 다 사용하지 않는다. 당신은 전혀 균형-에이전트를 생각하지 않고, 균형-에이전트는 붙잡음-에이전트와 관계가 없다. 또한 붙잡음-에이전트는 갈증-에이전트에 관심이 없고, 갈증-에이전트는 당신의 사회적 문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왜 그러한가? 그 이유는 에이전트들이 상호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만약 개별적인 에이전트들이 각자의 작은 일만 한다면 실제로 큰 일, 즉 차를 마심은 모든 에이전트 들에 의해 행해질 것이다.

찻잔을 잡고 그것의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과정들이 진행되는가? 손목과 손 바닥, 팔의 모양을 갖추기 위해서는 적어도 100 가지의 과정이 있을 것이다. 당신의 몸을 걸어다니게 만드는 모든 뼈와 관절을 관리하기 위해 또다른 1000 개의 근육계가 작동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그러한 개별적인 과정들은 다른 과정들과 교신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잘못해서 넘어지려고 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많은 다른 과정들이 재빨리 균형을 유지토록 노력한다. 그 과정 중 어떤 것들은 어떻게 몸을 구부리고 어디에 발을 놓을지에 관련된다. 다른 것들은 차와 관련된 일을 해야한다. 즉 당신은 자신의 손이 화상을 입기 원치 않으며,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당신은 재빨리 결정을 내릴 방법이 필요하다.

이 모든 일이 당신이 이야기하는 동안 발생하며, 그 증 어느 것에 대해서도 많은 사고가 필요치 않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도면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어떤 종류의 에이전트들이 단어들을 선택하여 당신이 의미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는가? 어떻게 그러한 단어들이 구와 문장으로 배열되고 그것들이 다음으로 연결되는가? 마음 내부에 있는 어떤 이이전시가 당신이 말한 모든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누구에게 말했는가를 기억하는가? 같은 말을 반복한다면, 청중들이 새롭다는 것을 확신하지 않는 한, 자신을 매우 어리석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항상 계획하고 걷거나 말하기와 같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 그리고 이 점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보이므로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들은 어떤 사람이 갑자기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기계장치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이 책의 다음 몇 절에서는 한 가지 평범한 활동, 즉 어린이들의 벽돌쌓기에 초점을 둘 것이다. 먼저 이러한 과정을 보다 작은 부분들로 나누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이러한 개개의 부분들이 다른 무든 부분들과 관련되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함으로써 우리는 갈릴레이와 뉴턴이 진자와 저울, 거울과 프리즘 같은 가장 단순한 것을 연구하여 많은 것을 배웠던 방식을 쫓고 있는 것이다. 벽돌쌓기에 대한 연구는, 예기치 못한 거대한 우주의 신비를 벗기기위해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대상에 현미경의 초점을 맞추는 것과 같다. 이는 오늘날의 많은 생물학자들이 커다란 사자나 호랑이가 아니라 미세한 병원균과 바이러스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것과 같은 이유다. 우리 세대의 학생들에게는 벽돌을 갖고 노는 어린이의 세계가 지능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프리즘 같은 역할을 한다.

4.1 자아

자아 명사. 1. 모든 인간 또는 사물의 동일성, 성격, 또는 본성.  2. 특정인의 동일성, 인격, 개성 등, 즉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그의 인격.《웨스터 영어대사전》

우리는 모두 마음이 자아라고 불리는 특별한 실재를 포함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특별한 실재가 무엇인가에 대한 일치된 의견은 없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전체적인 사람에 대한 일반적인 의미로 말할 때 '자아 '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개인의 동질성에 대한 보다 신비스러운 의미에 대해 말할 때는 관례에 따라 '자아' 를 그대로 사용하겠다. 다음은 사람들이 자아에 대해 말하는 몇 가지 사항들이다.

자아는 생각하고 원하고 결정하고 즐기고 고통받는 나의 부분, 즉 나의 마음의 부분이다. 자아는 모든 경험을 통해서 동일하게 남아 잇는 것이므로, 즉 모든 것을 함께 연결하는 동일성이므로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당신이 자아를 과학적으로 다룰 수 있는가의 여부는 관계없이 자아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자아는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아는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일 것이다.

이것이 대단한 정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다 나은 정의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때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무리하게 정의하려는 것은 오히려 해롭다. 단지 논리학과 수학에서만이 개념들은 정의에 의해서 완전하게 획득된다. 실제적인 삶에서 다루는 것들은 일반적으로 매우 복잡해서 치밀하고 간결하게 표현될 수 없다. 특히 마음을 이해하는 경우에 우리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심리학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조차 확신할 수 없을 정도다. 어쨌든 그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정의를 내리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자. 당신은 호랑이를 정의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비록 마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잘못일 경우에도 왜 그것을 우리가 믿는가를 이해하려고함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자아란 무엇인가?" 라고 질문하는 대신에 "자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무엇인가?" 라고 질문할 수 있다. 그 후에 "그러한 생각이 어떠한 심리적 기능을 하는가?" 를 질문할 수 잇다. 이러한 질문을 할 때 우리는 하나의 생각이 아니라 많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자아에 대한 생각은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믿음을 포함한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한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믿음을 포함한다. 문제를 풀거나 계획을 세울 때 우리는 언제나 이러한 믿음을 이용한다. 나는 그것들을 매우 애매하게 한 사람의 자아상이라고 칭할 것이다. 우리의 자아상 이외에도 자아에 대한 생각은 또한 우리의 무엇이되고 싶은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이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포함한다. 이러한 것들을 나는 한 인간의 자기이상이라고 부를 것이다. 자기이상은 아동기로부터 개개인의 성장에 영향을 끼치지만, 그것은 일반적으로 의식할 수 없기 때문에 표현하기가 어렵다.

7.1 지능

많은 사람들은 '지능' 에 대한 몇 가지 정의를 가질 것을 고집한다.

비판 : 어떻게 식물이나 돌, 폭풍이나 시냇물과 같은 사물들이 우리가 아직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지능적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그러한 사물들이 동일하게 되는 중요한 방식을 확신하지 못하는 한 다른 사물들에게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좋지 못한 생각이다. 식물과 시냇물은 지능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문제들을 능숙하게 해결하지 못한다.

비판 : 문제를 해결하는데 특별한 것은 무엇인가? 논의점에 의견이 일치할 수 있도록 '지능' 을 엄밀하게 정의하지 않는가?

그것도 역시 종은 생각이 아니다. 나의 임무는 단어들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하는 방식으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책의 몇 군데에서 '지능 '이란 단어가 등장하지만, 그것은 다니 사람들이 의미하는 것, 즉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의미할 뿐이다.

비판 : 그렇다면 '어려운' 문제가 의미하는 바를 정의해야 한다. 우리는 피라미드를 건설하기 위해서 많은 인간의 지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작은 산호초 동물은 보다 큰 규모로 인상적인 구조물을 짓는다. 그러므로 그들도 지능적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거대한 산호초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동물들이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단지 착각일 뿐이다. 어떠한 새도 날아가는 길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대신 개개의 새들은 파충류시대로부터 진화된 해결책을 이용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꾀꼬리나 수달이 둥지나 댐을 디자인하는 것을 어렵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어떤 꾀꼬리나 수달도 그러한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한 동물들은 스스로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복잡한 유전자로 만들어진 뇌에서 가능한 과정들을 이용할 뿐이다.

비판 : 그렇다면 지화가 날거나 산호초와 둥지를 만드는 문제들을 해결하므로 진화자체가 지능적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다 사람들은 또한 민첩함과 효율성을 강조키 위해 '지능 '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진화의 속도는 너무나 느리기 때문에, 설사 진화가 마침내 우리 자신이 만들 수 없는 놀랄 만한 일을 산출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지능적이라고 볼 수 없다. 어쨌든 '지능' 과 같은 오래된 애매한 단어가 어떤 확정적인 것을 정의한다고 여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그러한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말하는 대신에 어떻게 그 단어를 사용할 것인가를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좋다.

마음은 우리가 어렵다고 여기는 문제들을 풀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들을 포함한다. '지능' 은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그러한 과정들에 대한 명칭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단어의 의미는 우리가 심리학에 대해 다 많은 것을 알 게 되면 계속 변경되어야 하므로 이러한 '정의' 를 싫어한다. 그러나 생각으로는 그 점이 바로 위의 '정의' 를 정당화시켜준다. 왜냐하면 지능이란 개념 자체는 무대 위의 마술사의 술수와 같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미탐험된 지역' 이라는 개념처럼 그 단어는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자마자 곧 사라진다.

16.1 정서

왜 많은 사람들은 지능보다 정서를 설명하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항상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이론상으로 어떻게 컴퓨터가 추리에 의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를 이해한다. 그러한 어떻게 컴퓨터가 정서를 갖거나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가를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은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종종 노여움을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첼린저 교수의 시나리오에서 일함-에이전트가 잠-에이전트를 억제하기 위해 노여움-에이전트를 이용하는 방식은 손이 닿지 않은 곳에 있는 물건을 잡기 위해 막대기를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합리적이다. 일함-에이전트가 노여움-에이전트를 직접적으로 야기할 수 없다는 점만이 복잡할 뿐이다. 그러나 일함-에이전트는 첼린저 교수의 환상을 작동시킴으로써 간접적으로 하는 방식을 발견한다. 그것이 무엇이건 이는 정서적이라고 불리는 마음의 상태에 이른다. 일함-에이전트에게는 그것은 단지 자신에게 부여된 바를 수행하는 다른 방식이다. 우리는 항상 일상적으로 사고할 경우 이미지와 환상을 이용한다. 우리는 기하학 문제를 풀거나 친숙한 곳에서 산보하는 것을 계획하거나 또는 저녁식사에서 먹을 것을 선택하기 위해 '상상력' 을 사용한다. 그러한 개개의 경우 우리는 실제로 거기에 없는 것을 상상해야 한다. 환상이 정서적이건 아니건간에 모든 복잡한 문제풀이 과정에서 환상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우리는 항상 존재하지 않는 장면을 다루어야 한다. 가물들이 나타나는 방식을 마음이 바꿀 수 있을 경우에만 마음은 어떻게 사물들이 존재하는 방식을 변경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의 문화는 사고와 감정이 거의 별개의 세계에 있다고 잘못 가르친다. 실제로 그것들은 항상 뒤얽혀 있다. 다음의 몇 절에서는 정서를 일반적으로 사고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사고의 변종이나 또는 유형으로 보고, 개개의 정서는 특정한 사고영역에서 특수화된 다른 뇌기계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된다. 유아기에는 이러한 '원시전문가' 들이 상호간에 거의 관련이 없지만, 나중에 그것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용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즉 일함-에이전트가 잠-에이전트를 멈추기 위해 노여움-에이전트를 이용하는 법을 배우면서 함께 성장한다.

정서를 이성보다도 더욱 신비롭고 강력하다고 보는 또다른 이유는 이성이 하는 많은 것을 정서로 잘못 생각한다는데 있다. 우리는 일상적인 사고의 복잡성에 예민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식의 경이로움을 당연시한다. 누군가 특이한 것을 할 때마다 우리는 동기나 열정, 영감, 예민성과 같은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정서적인 요소의 탓으로 여긴다.

어쨌든 특정목표가 아무리 중립적이고 합리적일지라도 매우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그 목표는 결국 다른 것과 상충되게 될 것이다. 장기간의 계획도 경쟁하는 이해해 대한 방어가 없이는 수행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대부분의 지속적인 목표들 중에서 발생하는 갈등에 대한 정서적 반응을 산출한다. 문제는 지능적인 기계가 정서를 가질 수 있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정서가 없는 기계가 지능적이 될 수 있는가. 일단 기계에 자체의 능력을 변경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면, 그것에 모든 복잡한 제어와 균형을 제공해야 한다. '지능' 이라는 용어가 두 가지 상충되는 의미를 갖게된 것은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 하나는 완전히 냉담하고 무정하고 정서도 없이 모든 관심이 결여됨을 뜻한다. 다른 하나는 원인에도 집요하게 전념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각각의 의미는 비안간성뿐만 아니라 어리석음도 나타낸다. 너무 많은 실행은 단 하나의 일을 하는 것에 그치고, 너무 적은 고려는 목표가 없는 방황을 넣는다.

18.1 기계는 논리적이어야 하는가?

 만약 기계가 생각할 수 있다면 완전히 논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믿게 했던 오래된 논증에서 잘못된 점은 무엇인가? 그 논증에 따르면 본성상 모든 기계는 규칙에 따라 작동한다. 또한 기계는 단지 명령받은 것만을 정확히 수행할 수 있다. 게다가 기계는 단지 형식논리만을 다룰 수 있으며, 따라서 내연논리나 또는 유비추리와 같은 것을 다룰 수 없다.

대부분의 그러한 논증들은 에이전트와 에이전시를 혼동하는 것과 같은 실수에 근거를 두고 있다. 기계를 설계하고 제작할 때 우리는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 우리는 설계가 치밀하고 논리적 원칙에 근거하면 그 기계도 마찬가지로 치밀하고 논리적인 경향으로 행위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실수를 쉽게 저지른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기계가 그 안에서 하는 것, 즉 '어떻게 기계가 작동하는가' 를 '외부세계에 어떻게 기계의 부분이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와 혼동하는 것이다. 논리적 용어로 기계의 부분이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자동적으로 단순한 논리적 용어로 기계의 일련의 활동을 설명 가능케 하는 것은 아니다. 포 (E. A. Poe) 는 언젠가 체스경기 '기계' 는 항상 이기는 것이 아니므로 속임수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만약 그 기계가 정말로 기계라면 그것은 완전히 논리적이고 따라서 결코 실수를 저지를 수 없다! 이러한 주장에서 오류는 무엇일까? 그것은 비논리적 추리를 기술하기 위해 논리적 용어를 사용했다는데 있다. 어느 점에서는 기계가 설계된 것만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타당한 말이다. 그러나 일단 사고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알게되면, 이러한 사실 때문에 사고하는 기계를 설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적 삶에서 우리는 정말로 논리를 사용하는가? 논리는 사고를 단순화하고 요약하기 위해 사용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논증을 설명하고 그 논증이 타당하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논리를 사용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종종 문제를 풀거나 또는 새로운 생각에 '도달하기 '위해 논리를 사용한다는 점을 의심한다. 그대신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그것들을 구성하거나 발견한 후에 논리적인 용어로 논증과 결론을 형식화한다. 그것들이 처음 발생했을 때 사고와 생각의 스파게티처럼 엉킴으로부터 본질적인 부분들을 '세탁하기 위해 ', 즉 분리하기 위해 언어적 추리와 형식추리를 사용한다.

논리가 왜 나중에 발생하는가를 보기 위해, 생성-검사 방법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떠올려보자. 그러한 과정에서 논리는 단지 추리의 부분일 뿐이다. 즉 논리는 우리가 부당한 결론에 이르지 않도록 방지하는 검사로서 작용한다. 그러나 논리는 어떤 생각을 생성할 것인지 또는 어떤 과정이나 기억을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려줄 수 없다. 문법이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설명하지 못하듯이 논리는 어떻게 사고해야 할 것인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두가지 모두 문장이 적절하게 형성되었는지의 여부를 말해주지만 어떤 문장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지식과 의도가 밀접하게 연결되지 않는다면 논리는 지능이 아니라 광란에 이르게 된다. 목표가 없는 논리체계는 다음과 같은 거대한 끝없는 진리를 생성할 것이다.

A는 A를 함축한다.

P거나 P가 아니거나다.

A는 A 또는 A 또는 A를 함축한다.

만약 4 가 5 라면, 돼지는 날 수 있다.

18.8 수학이 일을 어렵게 한다.

그 이론은 무가치한다. 그것은 틀린 것도 아니다.   - 파울리 (W. Pauli)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항상 단순성을 추구한다. 그들은 각각의 새로운 것들이 이미 정의된 것에 의해 정의될 수 있으면 제일 행복해 한다. 만약 우리가 이를 계속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은 계속되는 층과 차원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수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수를 정의하는 방식에 해당된다. 수학자들은 0 을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니면 오히려 0 은 정의가 불필요하다고 가정하기도 한다. 그 다음 1 을 0 의 '계승자', 2 를 1 의 계승자 등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왜 그러한 빈약한 연속을 선호할까? 왜 그들은 개개의 수들이 가능하면 많은 다른 수들과 연결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가? 그 대답은 일종의 역설이다.

과학자로서 우리는 이론들이 가능하면 정교하고 무너지기 쉽기를 원한다. 우리는 사물들을 배열하기 좋아하고 그 결과 역간의 잘못이 있으면 모든 것이 동시에 붕괴된다.

왜 과학자들은 그러한 위태로운 전략을 사용하는가? 무엇이 잘못되기만 하면 그들이 맨처음 알 게 될 것이다. 과학자들은 취약함을 숭배하는데, 그 이유는 모든 중요한 증명으로 이루어진 완전한 그물에서 각각의 다음 단계를 거쳐서 그들이 좋아하는 중요한 증명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바로 취약함이기 때문이다. 그 증명과정이 실패할 지라도 그것은 새로운 발견을 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특히 수학의 세계에서, 수학이 거의 옳다는 것은 그것이 완전히 잘못이라는 것만큼이나 나쁘다. 어떤 의미로는 이는 수학이란 무엇인가. 즉 절대적인 무모순성에 대한 질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은 좋은 심리학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실제의 생활에서 마음은 후에 잘못으로 판명되는 신념을 참는다. 선생들이 아이들의 수학을 강건하고 상호연관된 망이 아니라 빈약하고 위태로운 탐의 연속으로 만들 게 놔두는 방법도 역시 좋지 않다. 연속은 어떤 고리에서도 끊어질 수 있고, 탑은 미약한 떠밈에도 쓰러질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바로 수학시간에 잠시동안 아름다운 구름을 쳐다보기 위해 주의를 다른데로 돌린 어린이의 마음에서 발생한다.

선생들은 학생들에게 방정식과 수식들이 일상적인 단어들보다 더욱 표현력이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려고 애쓴다. 그러나 수학언어를 사용하는데 숙달되려면 수 년이 걸리고 그때까지는 수식과 방정식은 대부분의 점에서 일상적인 추리보다 훨씬 덜 믿을 만한 것이다. 따라서 투자원칙은 수학교사의 말과 반대로 작용한다. 왜냐면 형식적인 수학의 잠재적 유용성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은 너무나 먼 훗날의 일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일상생활이나 수업 밖에서는 그들의 습관적인 방법만을 계속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언젠가 너는 수학이 유용하다는 것을 알 게 될 것이다"라든가 또는 심지어 "이것을 배우면 너는 매우 좋아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새로운 생각이 어린이 세계의 나머지와 관련되지 않는 한 그 지식은 쓸모가 없을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적인 목표는 가능하면 적게 관련성을 맺도록 일을 처리하기를 좋아하는 전문적인 수학자나 철학자들의 목표와 같지 않다. 왜냐하면 어린이들을 일상적 경험으로부터 자신의 생각들이 상호간에 관련이 많을수록 생각들이 더욱 더 유용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왜 많은 국민학생들이 그토록 수학을 배우는 것을 무서워하는가? 아마도 부분적으로는 가능하면 성기고 얇은 의미만으로 이르도록 고안된 형식적 정의를 가르치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용의주도하고 좁은 정의가 항상 어린이들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들은 일을 적당히 처리하는 것이 더욱 쉬울 것이다. 그 대신 우리는 그들이 자신의 머리 안에 더욱 강건한 연결망을 짓도록 도와야 한다.

24.2 마음의 프레임

 프레임이란 일조의 골격이며, 채워져야할 많은 빈칸과 구명이 있는 응시원서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빈칸을 터미널이라고 부를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다른 종류의 정보를 부여할 수 있는 연결점으로 이용한다. 예를 들어 '의자' 를 표현하는 프레임은 앉는 부분과 등받침과 다리를 표현하는 몇가지 터미널을 가질 것이다. 특정의자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등받침과 앉는 부분, 그리고 다리의 특별한 성질을 보다 자세하게 표현하는 구조로써 대응하는 프레임의 터미널을 채우면 된다. 앞으로 보게 되듯이, 실제로 어떠한 에이전트도 프레임의 터미널에 부여될 수 있다.

원칙적으로 프레임의 터미널을 다른 것에 부여하지 않고서도 프레임을 사용할 수 있다. 정상적으로 터미널은 이미 부여된 다른 에이전트와 함께 나타나며, 처음으로 차원-무리를 말할 때 이러한 터미널은 '초기값 할당' 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만약 당신의 사람-프레임 중의 하나가 활성화되고 실제로 어떤 팔과 다리를 보면, 그것에 대한 기술은 적절한 터미널에 할당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부분들을 시야 밖에 있기 때문에 볼 수 없다면 그 결여된 정보는 초기값에 의해서 채워질 것이다. 우리는 초기값 가정을 항상 이용한다. 즉 어떤 사람이 구두를 신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당신은 구두속에 발이 있다는 것을 '안다 '. 어디에서 그러한 가정이 유래하는가? 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할 것이다.

초기값 가정은 전형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해 우리의 프레임을 채운다.

당신은 '인간', '개구기', '의자' 와 같은 단어를 듣자마자 인간과 개구리와 의자의 '전형적' 인 종류의 세부적인 사항을 가정한다. 당신은 이를 언어뿐만 아니라 시각에서도 이용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당신으로부터 탁자를 가로질러 않아 있다면, 당신은 그가 앉은 의자의 어떤 부분도 볼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은 아마도 앉음-프레임을 활성화할 것이다. 그러나 앉음-프레임은 분명히 앉는 것에 대한 터미널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어떤 전형적인 의자에 대한 초기값이 할당될 것이다. 그 경우 시야에는 의자가 보이지 않지만 의자-프레임은 초기값에 의해서 제공될 것이다.

초기값 할당은 우리로 하여금 이전 경험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초기값 할당을 추리와 인식, 일반화와 예측, 기대가 무산되었을 때 해야 할 것을 알기 등에 이용한다. 프레임은 모든 사고와 우리가 하는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친다.

프레임은 과거의 겸험으로부터 도출되므로 새로운 상황에 완벽하게 맞지 않는다. 따라서 어떻게 프레임을 개개의 특정 경험에 적응시켜야 할 것인지를 배워야 한다. 주어진 상황이 동시에 여러 가지 다른 프레임과 밀접하게 대응된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그러한 갈등은 'locking-in' 협상에 의해 해소된다. 그 경우 갈등을 억제하는 프레임만이 다른 에이전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면에 다른 프레임은 무대 뒤에 숨어 중재할 기회를 기다릴 것이다.

24.4 초기값 가정

단지 예술에 의해서만 우리는 자신의 외부로 나갈 수 있다. 단 하나의 세계, 즉 우리 자신을 보는 대신에 다양한 형식으로 자신을 보고, 독창적인 예술가의 수와 동일한 수만큼의 세계를 우리 마음대로 갖게 된다. -프루스트 (M. Proust)

누군가 "존이 볼을 던졌다" 고 말할 때 당신은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색이나 크기, 무게와 같은 공의 모양과 성직의 집합을 가정한다. 이것이 차원-무리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도입했을 때 이야기한 초기값에 의한 가정이다. 그 공에 대한 당신의 가정은 오래 전에 지녔던 공으로부터 유래할 수도 있고, 아니면 새로운 공으로부터 유래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한 선택적인 세부적 사항은 실제의 분명한 뚜렷함에 대해 유지하기에 매우 약하므로 그 결과 다른 자극들이 그 사항들을 박탈하기 쉽다는 것이 이론의 골자다. 이는 왜 초기값 가정이 약한 이미지를 만들고 또한 그것이 잘못임이 드러날 때 왜 놀라지 않는지에 대한 이유다. 프레임의 터미널들은 그 가장자리가 기대치와 초기값을 표현하는 K-라인 에 가까운 차원-무리 내부에 놓이기 때문에, 프레임이 K-라인의 매우 많은 성질들을 공유한다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있는 것을 단순히 보는 대신에 왜 초기값 가정을 사용하는가? 그 이유는 그러한 가정을 하지 않으면 세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무작위의 점들을 동조가 안된 텔레비전 스크린에서 보는 것만큼이나 사물들이 '실제로 보이는' 것을 지각하는 것은 쓸모가 없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구별된 '대상' 에서 보았을 때, 뇌가 그것을 표현하는데 특별한 기계장치를 필요로 하는 이유다. 대상이라는 생각은 '말없이 진행 되는' 많은 가정을 하게 한다. 예를 들어 그것은 본질과 경계를 가지며 또한 그것은 우리가 보기 전에도 존재했고 그 이후에도 남아 있을 것이라는 가정, 즉 단적으로 그것은 다른 전향적인 재상처럼 행동할 것이라는 가정을 갖는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동시에 한 대상의 모든 측면을 볼 수 없지만, 항상 그것의 보이지 않는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정한다. 우리가 확실하게 완전히 알고 있는 것은 지극히 적기 때문에, 나는 우리가 아는 보다 많은 부분 또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보다 많은 부분들이 초기값 가정에 의해 표현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또한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초기값을 이용한다. 왜 매우 많은 사람들이 출생한 달에 의해 친구를 분류하는 점성술을 그토록 신뢰했는가? 아마도 점성술은 더 적은 것이 있다고 가정한 사람에게도 모든 사람을 단지 12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기 위한 전진 단계인 것처럼 보인다. 또한 어떻게 작가들의 기교가 그토록 생생한 극중인물을 불러내는가? 사람들이 그렇게 적은 몇마디 말로 묘사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대신 작가들은 이미 독자들의 마음에 있는 커다란 가정들의 연결망을 활성화시키는 구절들을 사용한다. 미지의 독자의 마음에 미지의 과정을 활성화시키고 그것을 자신의 목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러한 착각을 창안하는 많은 기교가 필요하다. 작가는 그렇게 하면서 사물을 실제보다 더 분명하게 만들 수 있다. 비록 단어들이 정신적 과정을 시작하기 위한 단순한 촉매이긴 하지만, 실제의 사물들도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물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감각할 수 없고 단지 그것들이 우리에게 환기시킨 것만을 감각할 수 있다. 프루스트가 다음과 같이 말했듯이.

개개의 독자들은 단지 자신 안에 이미 있는 것만을 읽는다. 책이란 독자들이 그것의 도움 없이는 찾아낼 수 없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작가가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기구다.

28.5 마음과 세계

우리는 삶을 여러 가지 영역에서 보낸다. 첫째는 시간과 공간에서 존재하는 '대상들' 의 일상적인 물리적 세계다. 대상들은 단순한 법칙을 따른다. 어떤 대상이 움직이거나 변화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것을 미는 다른 물체 또는 중력이나 바람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사람들과 가족, 회사와 같은 사회적 영역에서 산다. 그러한 개개의 실재들은 매우 다른 원인과 결과에 의해 규제된다. 한 사람이 움직이거나 변화할 때 우리는 그의 의도나 야망, 열중과 약속, 위협 등의 징표를 찾는다. 그러한 징표 중 어느 것도 벽돌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 우리는 또한 '의미', '생각', '기억' 이라고 부르는 실재가 있는 심리적 세계에 산다. 이것들 역시 다른 규칙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물리적 영역에서의 원인은 사회적 영역에서 작용하는 원인과 엄청나게 다른 것 같다. 그것들은 너무나 다르므로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점에서는 우리의 신체는 정확히 일상적인 대상과 같다. 즉 신체는 보고 만질 수 있는 형체를 지니며, 우리가 떨어지고 밀릴 때 변화하는 위치를 갖는다. 그러나 다른 방식에서 신체는 다른 사물들과 매우 다르며, 그 이유는 마음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도대체 마음이란 무엇인가?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마음과 신체간의 관계에 대해 고심해왔다. 어떤 철학자들은 너무나 절망적인 나머지 단지 정신적 세계만 실제적이며 실제의 세계는 환각이라고 제안했다 (그 생각은 문제를 더욱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 제안은 왜 물리적 세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상가들은 두가지 다른 종류의 세계, 즉 끈적거리는 재료가 따로 분리될 때 형성되는 필름과 덩굴손처럼 영적인 인과성이라는 다소 신비스러운 실로 연결된 물질의 세계와 마음의 세계를 그리는 상으로 종결했다. 어떤 현대 물리학자는 심신문제가 그들의 일반적인 인과성 개념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러한 연결이 물리학에서의 '불확정성 원리' 와 관련된 것으로 가정하기도 했다. 나로서는 심신문제가 전혀 신비스럽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에서 어떠한 장점도 찾아볼 수 없다.

마음은 단순히 뇌가 하는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마음에 대해 말할 때는 언제나 상태에서 상태에로의 뇌를 나르는 과정들을 말한다. 마음에 관한 관심은 실제로 상태들간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기 때문에 이 점은 우리에게 마음이 물리적 구현으로부터 분리된 것으로 보이게 한다. 그리고 관계는 실제로 상태 자체의 성질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이는 왜 만들기-에이전트와 같은 에이전트들의 사회가 에이전트의 물리적 구성에 대해 아는 바 없이 작동할 수 있는가를 설명해준다. 발생한 것은 단지 개개의 에이전트들이 이전 상태에 반응하여 자신의 상태와 연결된 다른 에이전트들의 상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의존한다. 그것 외의 다른 것, 적어도 우리가 감각하는 개개의 에이전트들의 색과 크기, 모양이나 다른 성질들은 어떠한 관련도 없다. 그러므로 마음은 물리적 존재로부터 분리된 것처럼 보인다. 에이전트가 무엇인가는 문제가 안 된다. 그것들이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무엇과 연결된 것인지만이 문제가 된다.

28.6 마음과 기계

마음은 왜 다른 종류의 사물과 다르게 보이는가? 첫째, 이미 말했듯이 마음은 사물이 아니다. 적어도 마음은 색이나 크기, 형태 또는 무게와 같은 사물의 일반적인 성질 중 어느 것도 공유하지 않는다. 마음은 청각과 촉각, 후각 및 미각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 있다. 그러나 마음은 사물이 아니지만 확실히 뇌라고 불리는 것과 중요한 연결을 갖는다. 그러한 연결의 본성은 무엇일까? 마음은 우리의 뇌와 같은 뇌에 의해서만 소유되는 특이한 실재인가? 아니면 마음의 여러 가지 성질들은 다양할 정도로 모든 것에 의해 공유되는가? 이제 우리가 "마음은 단순히 뇌가 하는 바로 그것이다." 라고 말할 때 "다른 모든 종류의 과정 역시 대응하는 마음을 갖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이 문제는 하나의 논증을 구성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사람은 잘 개발된 마음을 갖지만 벽돌이나 돌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는 단지 정도의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단지 사람만이-아마도 어떤 동물들도-마음을 갖는다고 주장하면서 분명한 경계를 긋고자 노력할 것이다. 어느 편이 옳은가? 그 주제는 사실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가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어떤 과정에 대해서만 '마음' 이라는 명칭을 유지하기 바라는 사람들은 그 이름에 맞는 과정을 규정해야 한다. 모든 과정들이 대응하는 마음을 갖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든 마음과 과정을 분류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과정을 분류할 만한 적절한 방식이 아직은 없다는 점이다.

왜 과정들을 분류하기가 어려운가? 옛날에는 일반적으로 기계와 과정들을 그것들이 원료를 완제품으로 변형하는 방법에 의해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치 기계가 자동차를 생산하는 방식처럼 뇌가 사고를 제조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차이는 뇌는 스스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사용한다는 것이며, 이 점은 우리가 그러한 과정을 뇌가 산출하는 제품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뇌는 특히 기억을 한다. 기억은 우리가 후속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뇌의 으뜸가는 활동은 스스로 변화한다는 점이다. 자기 수정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경험에는 새롭기 때문에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한 일상적인 판단을 아직은 신용할 수 없다.

뇌과학자에 대해 말한다면, 누구도 이전에는 수십억 개의 부분들을 갖고 있는 기계를 연구하려고 한 적이 없다. 설사 우리가 정확히 각 부분들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은 매우 어렵다. 그리고 현재의 기술은 아직도 고등동물의 뇌세포를-그것들이 실제로 작용하고 학습하고 있음에도-연구할 수 있을 만큼 발전하지 못했다. 이는 그러한 세포들이 극도로 작고 민감하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들이 함께 무리지어 있어 아직은 그것들의 상호관련성에 대한 지도를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가 좀더 좋은 기구와 이론을 갖게 되면 모두 해결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직면할 가장 어려운 문제는 뇌가 기계인가의 여부에 대한 철학적인 문제로부터 발생하지 않는다. 뇌가 물리적 법칙에 따라 완벽하게 작동하는 거대한 수효의 부분들을 가진 기계가 아닌 것을 의심할 하등의 근거도 없다. 누구나 말할 수 있듯이 우리의 마음은 단지 복잡한 과정일 뿐이다.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이전에는 그것에 대해 효율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미처 준비가 안 된 그러한 복잡한 기계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는 사실로부터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