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과학과 인공지능

 

과학사상29호(1999년-여름) : 김기현 (서울시립대 교수 · 철학), 범양사 출판부, Page 93~116

 

1. 마음의 신비와 인공지능

2.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관점들

3. 인공지능의 기본 전제들

4. 인공지능의 두 조류

5. 고전적 인공지능

   1) 인지과정의 단선적 성격

   2) 인지상태의 구성적 구조

6. 고전적 인공지능의 몇 가지 함축들

    1) 비생물학적 마음관

    2) 특수과학으로서 인지과학

7. 연결주의

8. 연결주의의 특성들

    1) 기계론적 계산

    2) 연결도를 통한 정보 저장

9. 고전적 인공지능과 연결주의의 논쟁

 

오늘날 통합 학문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각기 나름대로의 학문영역을 주장하면서 남들의 침범을 경계하던 태도는 이제 시대착오적인 생각처럼 간주된다. 인지과학은 이러한 조류의 선봉에 서면서 나타난 연구영역의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인지과학에 속하는 분야들은 인공지능, 전산학, 인지심리학, 철학, 언어학, 신경생리학, 동물학 등을 망라한다. 이러한 통합 학문으로서 인지과학 형성의 핵심에는 인공지능이라는 이제 겨우 50년 남짓의 역사를 가진 학문이 놓여 있다. 이 글은 인공지능의 발전을 추적함으로써 인지과학의 핵심적 면모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마음의 신비와 인공지능

아주 오래 전에 철학자들은 마음이 가슴이나 심장에 있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마음이 있는 곳은 가슴이 아니라 두뇌라는 것이 밝혀졌다. 우리는 마음이 있는 곳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가슴이건 두뇌건 마음이 있는 곳의 기계적 작동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여전히 신비로운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과학적 발전에 따라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에 대하여 우리는 더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지만 마음의 '본성' 은 여전히 신비로운 것으로 여겨진다. 도대체 무엇이 마음을 신비로운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며, 이들 중의 어떤 것이 신비의 베일을 벗었던 것일까?

마음의 신비는 마음에는 물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성들이 발견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고통, 기쁨 등의 심리현상들은 일정한 느낌을 동반하며, 이러한 느낌이 이들 심리상태의 본성을 이룬다고 간주된다.1)  이러한 느낌은 우리의 인식에 떠올라 존재한다. 믿음, 욕구와 같은 심리상태들도 고통, 기쁨처럼 느낌을 동반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우리의 인식에 떠오르곤한다. 이 경우 의식에 떠오르는 것은 느낌이라기보다는 그 믿음 또는 욕구의 내용이다. 이러한 '의식 (consciousness)' 이 심리현상의 첫째 특성으로 꼽힌다. 물리현상들에서는 의식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한국의 초대 대통령이 이승만이라는 나의 믿음을 보자. 이 믿음은 '한국의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이다' 라는 내용에 내가 '믿음'이라는 관계를 맺음으로써 성립한다. 비가 오기를 바라는 나의 욕구는 비가 온다라는 내용에 내가 '바람' 이라는 관계를 맺음으로써 만들어진다. 믿음과 욕구가 이렇게 일정한 내용을 갖고 있는 특성을 철학자들은 '지향성 (intentionality)' 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지향성 역시 물리현상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듯이 보인다.

위의 두 특성들은 개별적인 마음상태들이 갖고 있는 성질들이다. 세 번째 특성은 개별적 마음 상태에서가 아니라, 마음의 작용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은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기쁨이나 고통 등의 반응을 일으키고, 외부의 상황을 일정한 형태로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어진 조건에서부터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138 더하기 111 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249 라는 답을 용케 내놓는다. 어제 본 어머니의 모습과 오늘 본 어머니의 모습이 동일할 수가 없는데도, 우리는 쉽게 그 두 존재의 동일성을 알아맞춘다. 그리고 한 대상이 부분적으로 가려져서 그 전체의 모습을 선명히 볼 수가 없는 경우에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맞춘다. 이것을 우리는 마음의 똑똑함 또는 '지능 (intelligence)' 이라고 부른다. 물질의 세계에는 이러한 지능이 없다. 물질의 세계에서는 모든 현상들이 주어진 조건에 대하여 기계적으로 반응하여 발생할 뿐이다.

위에서 제시한 것들 외에도 마음에 대한 고유한 성질들은 또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의 세 가지만으로도 우리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기에 충분하다. 위와 같은 마음의 성질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들은 어떠한 물질적인 성질이나 과정에 의하여 설명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이원론자가 된다. 데카르트가 이런 생각을 한 대표적인 사람으로서 그는 세상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형태의 존재자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데카르트 이후에 급속도로 발전한 자연과학은 이러한 이원론적인 사고에 압박을 가하게 된다. 자연계에 대한 이해가 진전되면서 모든 것이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에 의하여 설명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커지게 된 것이다.2)  이전에는 단순한 물체들의 운동에 의하여 설명될 수 없을 것 같았던 여러 현상들이 역학적으로 설명되기에 이르렀다. 열현상이 분자들의 평균 운동에너지에 의하여 설명되고, 번개가 전기의 방전에 의하여 설명되며, 색이 파장에 의하여 설명되었다. 마음에서 발생하는 현상들도 이와 유사하게 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볼 만하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마음의 작용을 물리적으로 해명하고자 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성숙한 가운데 컴퓨터 공학의 발전은 마음을 접근하는 방식에 커다란 전환점을 제공하게 된다. 위에서 열거한 마음의 특성들 가운데 지능이 일차적 공격대상으로 포착되기에 이른 것이다. 즉 컴퓨터 공학의 발달과 더불어 사람의 마음이 하는 지능적인 작업을 컴퓨터가 대신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인공지능이란 바로 이러한 시도를 하는 것, 즉 문자 그대로 인공적인 시스템 (컴퓨터) 을 통하여 마음이하는 여러 가지 지능적인 일을 하게끔 하려는 것이다.

2.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관점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현대의 컴퓨터는 사람이 하는 여러 가지 지능적인 작업을 수행하게 되었다. 컴퓨터는 프로그램에 의하여 움직인다. 프로그램에 의하여 운영되는 컴퓨터와 그에 의하여 수행되는 지능적인 작업을 여러 가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우선은 이런 인공지능을 단순히 '기술 공학적인 관점' 에서 볼 수 있다. 이 관점은 인공지능의 작업과 그를 수행하는 컴퓨터를 사람의 실제적인 심리적인 과정과 전혀 무관하게, 단지 사람의 작업을 돕기 위한 보조적인 장치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인공지능 종사자들은 인공지능이 단순한 실용적 유용성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해와 직 · 간접적으로 연관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마음의 이해와 관련된다는 후자의 관점은 그 구체적인 내용에서 또다시 두 가지 다른 과정으로 나뉜다. 이 두 관점은 각기 '약한 인공지능 (weak artificial intelligence)' 과 '강한 인공지능 (strong artificial intelligence)' 으로 불린다.3)  약한 인공지능에 따르면, 컴퓨터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심리학) 이론을 검증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사람의 인지작용에 대한 가설이 제세되었을 때, 우리는 이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입력하여 실행시켜볼 수 있다. 실행한 결과가 사람의 인지행위와 유사하게 나타나면, 즉 사람과 유사하게 성공적이면서 사람이 범하는 유사한 실수를 범한다면, 이는 그 가설이 사람의 인지작용에 대한 올바른 이론임을 지지하게 된다. 반면, 결과가 사람의 인지행위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면 이는 그 가설이 틀린 것임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약한 인공지능의 관점은 컴퓨터를 사람 마음의 이해에 적용한다는 점에서는 앞서의 관점과 일치한다. 강한 인공지능에 따르면, 지능적으로 작동하는 컴퓨터는 마음을 이해하는 도구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마음을 갖는다. 이 입장에 따르면, 프로그램된 컴퓨터는 단지 심리학적 설명을 검증하기 위한 도구를 넘어서 그 자체가 마음에 대한 설명으로 간주된다.

약한 인공지능의 입장에 서 있건 강한 인공지능의 입장에 서 있건 간에, 중요한 사실은 이제 인공지능은 단순히 기술공학적인 관심을 넘어서 사람의 지능에 대한 모델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통하여 사람의 인지에 접근하는 이러한 방법론이 일반화되면서 현대에서 컴퓨터과학과 인지심리학은 밀접한 연관을 맺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 컴퓨터의 프로그램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생각이 받아들여지게 되고, 사람의 인지과정을 연구하는 인지심리학은 인지에 관한 이론의 발전 및 검증을 위하여 컴퓨터 과학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현대의 인지심리학자들은 대부분 인공지능학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경향이 통합학문으로서 인지과학의 발전적 모태를 이루게 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하여 인공지능이 사람의 인지에 대한 연구와 결합되어 인지과학의 모태가 되었음을 보았다. 이제 인공지능이 인지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보자.

3. 인공지능의 기본 전제들

 1) 인공지능은 인지를 문제해결 능력으로 파악한다.

시각의 경우를 예로 살펴보자. 외부의 사물이 우리의 망막을 자극하여 일정한 상을 맺는다.

이 영상은 우리의 시각체계에 하나의 단서로 작용하며, 우리의 시각장치는 단서에서 출발하여 단서를 제공한 외적인 대상이 무엇인가를 알아맞추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은 구조가 열두 고개의 수수께끼와 유사하다. 이 놀이에서 문제를 내는 사람은 일정한 대상을 염두에 두고서 문제를 푸는 사람에게 단서들을 제공한다. 문제를 푸는 사람은 주어진 단서들을 사용하여 문제를 내는 사람이 염두에 두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가를 알아맞히는 작업을 시작한다. 이러한 놀이의 과정이 문제해결 능력 (problem_solving ability) 을 사용한 놀이이듯이, 시각도 일종의 문제해결 능력으로 볼 수 있다. 인공지능은 이와 같이 시각을 비롯한 모든 인지과정을 문제해결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2) 인공지능은 표상주의를 받아들인다.

인공지능은 인지의 과정을 주어진 단서에서 출발하여 일종의  '추론' 을 거쳐 달에 도달하는 과정으로 본다. 여기서 단서와 결론은 모두 일정한 내용을 갖고 있는 인지적 상태다. 시각의 경우를 다시 보면, 망막에 맺혀지는 입력은 비록 이차원적인 정보이기는 하지만 일정한 내용들을 표상한다. 일정한 형태, 색채, 일정한 음영을 '표상' 한다. 시각체계는 이러한 정보를 사용하고, 또한 세계에 대한 여러 (기억에 상주하는) 지식들을 활용하여 이러한 내용의 입력을 산출하는 대상이 무엇인지에 관한 판단을 출력으로 산출한다. 이러한 판단 역시 "이것은 책상이다" , "이것은 나무다" 등의 표상적 내용을 갖는다. 인공지능과 인지과학은 인지를 표상적 인지상태에서 표상적 인지상태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그에 고무된 인지과학을 표상주의 (representationalism) 로 규정하는 것은 단서를 필요로 한다. 표상주의가 인공지능과 인지과학에서 강력한 조류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표상주의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두 진영의 사람들이 표상주의에 반대한다. 하나는 제거주의를 옹호하는 철학자들의 진영이고, 다른 하나는  상황화된 로봇공학 (situated robotics) 를 발전시켜 전혀 새로운 인공지능의 체계를 고안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진영이다. 제거주의는 외부세계에 대한 내적인 표상을 인지의 기본적 단위로 간주하는 체계가 인지의 성공을 설명하는 데에 여러 가지 한계를 갖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고서는 내부적 표상을 가정하지 않는 이론을 인지에 대한 우월한 설명으로 제시한다.4)   한편 상황화된 로봇공학 (situated robotic) 에 관심을 갖는 인공지능학자들은 여러 프로그램에 의하여 조종되는 일반 목적의 컴퓨터보다는, 구체적인 환경에 적응하는 자동적인 체계를 강조한다. 이들은 시각, 계획, 운동 등 각각에 대응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이들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인지체계를 구성하는 것보다는 감각-운동을 포괄하는 전체 체계를 구성하여 이것이 자체적으로 환경에 적응하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둔다.5)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인공지능과 인지과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고전적 인공지능과 연결주의에 논의를 집중할 것이며, 이들이 모두 표상주의를 받아들이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다만 이에 반대하는 경향들이 있다는 것만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하지 않겠다.

4. 인공지능의 두 조류

컴퓨터를 통하여 사람의 지능적인 일을 하게 하는 인공지능의 토대는 맥쿨러치 (McCulloch) 와 피츠 (Pitts) 의 작업에 의하여 마련되었다.6)  이들은 명제논리에서의 연언구조를 단순한 세 개의 뉴런으로 이루어진 조직망을 통하여 실현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엇다. 연언이란 그를 구성하는 두 연언지가 모두 참일 때만  참이 되는 그러한 진리함수를 나타낸다. 연언이란 그를 구성하는 두 연언지가 모두 참일 때만 참이 되는 그러한 진리함수를 나타낸다. 맥쿨러치와 피츠는 두 개의 뉴런들이 모두 폭발할 때만 제 3 의 뉴런 (이들은 이것을 맥쿨러치-피츠 뉴런이라고 불렀다) 이 폭발하게끔 세 개의 뉴런들을 연결시킴으로써 연언을 실현한 것이다.

이들의 작업은 이후에 발전한 인공지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인공지능은 고전적 인공지능 (classical AI) 과 연결주의 (connectionism) 의 두 조류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들의 작업은 이들 두 조류 모두에 선도적 역할을 하게 된다. 우선 맥쿨러치와 피츠의 연구는 폰 노이만 (von Neumann) 이 이진법 대수와 이진법 논리를 사용하여 디지털 컴퓨터를 고안하는데 영향을 미치면서 고전적 인공지능의 모태를 이루게 된다. 한편, 위 체계에서 뉴런들이 상호간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폭발하는 구조에 주목하면서 이를 확장시킨 것이 연결주의라고 할 수 있다.

5. 고전적 인공지능

고전적 인공지능은 전통적 인공지능, 기호체계 (symbolic system), 규칙에 근거한 체계 (rule-based system)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이들이 왜 이렇게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지는 고전적 인공지능의 내용을 살펴가면서 밝혀질 것이다.

1) 인지과정의 단선적 성격

고전적 AI의 형성에는 기호논리학의 발전이 핵심적 배경을 이룬다. 다음과 같은 매우 단순한 기호논리학의 증명을 보자 :

1. 철수는 학생이거나 교사다.                                                           (A ∪ B)

2. 철수는 교사가 아니다.                                                                  ~ B

3. 만약 철수가 학생이라면, 그는 지금 도서관에 있을 것이다.                A  ⊃ C

   따라서, 철수는 지금 도서관에 있을 것이다.                                    / C

증명 :

4. 철수는 학생이다.                                A   1과 2로부터 '선언삼단논법' 에 의하여

5. 철수는 지금 도서관에 있을 것이다.       C   3과 4로부터 '전건긍정법' 에 의하여

위에서 선언삼단논법과 전건긍정법의 규칙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증명법은 흔히 자연 연역 체계에 의한 증명이라고 불린다. 이 방법에 '자연' 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우리의 일상적 사고과정이 그러한 규칙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고에서 나타나는 실제적 추론이 위와 같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고전적 인공지능은 이러한 생각을 우리의 인지과정 전체에 확장하여 적용하는 견해다. 우리의 인기과정은 외부세계를 일정한 방식으로 표상하는 인지적 상태 (위 논증의 전제들) 를 입력으로 하고 일정한 규칙 (선언삼단논법과 전건긍정법) 을 사용하여 그로부터 현명한 결론을 추론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고전적 인공지능이 받아들이는 인지의 구조가 '규칙에 근거한 체계'라고 불린다. 규칙에 근거한 체계에서는 한 시점에서는 한 규칙에 입력으로 사용되고, 다음 시점에서는 또다른 규칙 하나만이 사용된다. 이 과정이 단선적 (sequential) 으로 적용되어 최종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2) 인지상태의 구성적 구조

고전적 인공지능의 또 다른 특성은 인지상태들이 부분-전체로 연관된 '구성적 구조 (constituent structure)' 를 갖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위의 예에서 '철수는 학생이거나 철수는 교사다' 라는 믿음과 '철수는 교사가 아니다' 라는 믿음으로부터 '철수는 학생이다' 라는 새로운 믿음을 이끌어내는 추론을 보자. 고전적 인공지능은 첫 믿음에 해당하는 문장이 후자의 두 문장들을 부분으로 포함하듯이, '철수는 학생이거나 철수는 교사다' 라는 믿음의 물리적 구조가 '철수는 학생이다' 라는 믿음의 물리적 구조와 '철수는 교사다'라는 믿음의 물리적 구조가 구성성분으로 참여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복잡한 구조를 지닌 믿음이 있고, 그것의 한 부분인 '철수는 교사가 아니다' 라는 믿음이 부정됨으로써 다른 한 부분을 이루는 '철수는 학생이다' 라는 믿음이 결론으로 도출된다는 것이다. 고전적 인공지능은 우리의 심리 상태들은 문장들의 논리적 결합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단순한 심리상태에서 복잡한 심리상태로 부분 - 전체의 관련을 통하여 구성되는 것으로 보며, 이러한 구성방식이 바로 심리적 추론의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본다.

3) 통사적 성질에 의한 인지과정

위의 논리적 증명에서 반영되는 심리적 추론을 보면 전제를 이루고 있는 인지상태들이 어떠한 내용을 갖고 있는가는 추론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전건긍정법, 선언삼단논법의 규칙은 전적으로 전제들의 형식적 특성에만 주목한다. 전건긍정법의 특성은 두 전제 중 하나가 조건문의 형식을 지닌 복합적 심리상태로 되어 있으며 다른 전제가 그 조건문의 전건에 해당하는 부분을 긍정하는 모습을 갖고 있을 경우에, 그로부터 그 조건문의 후건을 결론으로 도출하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선언삼단논법은 선언문이 있고 그와 더불어 그 선언문의 한 선언지에 대한 부정이 있으면 다른 선언지를 결론으로 도출하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부분 - 전체의 관계를 구성하면서 심리상태들 사이에 추론의 토대가 되는 논리적 또는 형식적 특성은 '통사적' 성질 (syntactic properties) 이라고 불린다. 그렇다면 고전적 인공지능의 핵심적 특성은, 인지상태들은 통사적 성질과 의미론적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인지상태들에 규칙이 적용됨으로써 인지과정이 성립하되, 이 인지과정을 지배하는 규칙은 인지상태들의 통사적 성질과 관계한다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고전적 인공지능은 연역뿐 아니라 귀납에 대하여도 위와 유사한 설명을 제공한다. 연역논리학에 대응하는 귀납논리학이 구성될 수 있으며, 귀납논리학을 통하여 우리의 귀납적 추론을 모델링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 때에도 추론은 귀납적 추론을 구성하는 인지적 상태들의 통사적 성질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고전적 인공지능은 우리의 인지구조와 위와 같은 명제적 추론의 경우뿐 아니라 시각, 청각, 후각 등의 지각의 작용과 행위의 계획 (planning) 등도 모두 이러한 구조로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4) 사고 언어 가설과 통사가 운전하는 의미론적 엔진

인지구조에 대한 위와 같은 견해를 포더는 '사고 언어 가설 (language of thought hypothesis)' 로 요약한다.7) 그 요지는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부연하자면, 우리의 자연 언어는 일정한 의미를 가짐 (의미론적 성질을 가짐) 과 동시에 일정한 통사적 성질을 갖는 언어들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의미론적 성질과 통사적 성질을 동시에 갖는 것들은 기호 (symbol) 라고 불린다. 그렇다면 우리의 자연 언어는 기호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의 이합집산은 통사적 문법에 해당한다. 사고 언어 가설에 따르면 우리의 인지를 지배하는 사고는 개념에 의하여 구성되며, 개념들 역시 의미론적 성질과 통사적 성질을 동시에 갖는 기호들이다. 개념들의 이합집산의 규칙은 그들의 통사적 성질에 의하여 지배되며, 이러한 사고 언어의 문법이 소위 프로그램을 통하여 포착되는 것이다.8)

고전적 인공지능의 핵심에 해당하는 사고 언어 가설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람의 인지작용은 주어진 인지상태에 해당하는 기호를 주어진 통사규칙에 따라 조작하여 추론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고전적 인공지능이 인지구조에 대한 견해는 '기호체계' 라고 불린다. 같은 이유에서 인지과정에 대한 고전적 인공지능의 관점은 '기호 조작적 견해 (symbol manipulating view) ' 또는 '기호 바스러뜨리는 견해 (symbol crunching view)'라고 불린다. 이렇게 인지과정이 통사적 성질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기계적으로 진행되지만, 이 과정을 의미론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 과정은 주어진 정보를 처리하여 꽤나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인식과정 (문제해결 과정) 으로 나타난다.9)  사람의 인지에 대한 이러한 견해를 인지과학자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려 요점적으로 표현하자면, 인지란 '통사가 운전하는 의미론적 엔진 (syntax - driven semantic engine)' 이다.

6.  고전적 인공지능의 몇 가지 함축들

1) 비생물학적 마음관

고전적 인공지능에 따르면, 인지란 단지 통사적 규칙을 지배하는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가 마음이란 인지를 수행하는 체계라는 견해와 결합하면, 한 체계가 인지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한 그것은 마음을 갖는다는 결과가 따른다. 이미 컴퓨터 과학에서는 인지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실현하고 있으며, 사람의 인지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이 아무리 복잡하다 하더라도 이 프로그램이 컴퓨터에 실현되지 못한다고 믿을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다. 더 나아가 동일한 프로그램이 기성 컴퓨터와 전혀 다른 소재를 지닌 체계에 의하여 실현될 수 있으리라는 예측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다면 마음 또는 인지는 더 이산 사람 내지 그와 비슷한 소재로 이루어진 유기체의 전유물일 수 없다.10)   고전적 인공지능의 이러한 함축은 마음의 존재가 소재의 특성으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의미에서 마음의 복수실현성 (multiple realizability) 이라고 부를 수 있다.11)   이는 고전적 인공지능의 마음관이 본질적으로 비생물학적임을 보여준다.

2) 특수과학으로서 인지과학

고전적 인공지능의 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한 인지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이 '무엇을 하는가' 가 우선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풀이 과정으로서의 인지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과정이 어떤 문제를 푸는가가 규명되어야 한다 (계산의 차원 the level of computation). 이러한 문제를 규명하는 과정은 바로 그 체계가 어떠한 인지적 함수를 계산하는가를 해명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한 계산기의 지능적 작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덧셈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뺄셈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곱셈을 하는 것인지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이러한 차원의 해석이 이루어지면, 다음 단계에서는 이러한 계산이 어떤 규칙들을 통하여 수행되는가가 이해되어야 한다 (알고리듬의 차원 the level of algorithm). 한 인지과정이 덧셈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나면, 이 덧셈의 계산이 십진법을 통하여 수행되는지, 아니면 이진법을 통하여 수행되는지가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차원은 규칙에 따른 계산이 한 물리적 체계 (컴퓨터이든 사람의 두뇌이든) 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를 기술하는 것이다 (실현의 차원 the level of implementation).

인지과정에 대한 설명을 위와 같이 명확히 구분된 세 차원으로 나누어보는 관점은 시각에 대한 마 (David Marr) 의 연구에서 명확히 제시되었으며,12)   유사한 견해가 데넷 (Daniel Dennett)에 의하여 옹호된다.13)  인지과정을 설명하는 고전적 인공지능의 전형적인 틀로 간주되는 위와 같은 틀은 왜 고전적 인공지능의 인지에 대한 접근법이 비생물학적인가를 다시 한 번 명확히 보여준다. 위 틀에 따르면 인지과정에 대한 설명은 인지함수와 그를 수행하는 알고리듬 또는 규칙들을 규명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인데, 이는 두뇌가 이러한 함수의 규칙이 어떻게 구현되는가에 대한 설명 없이 진행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지함수와 규칙의 해명이 인지심리학의 과제라고 한다면, 그들이 두뇌의 체계에서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해명하는 것은 신경생리학의 과제다. 따라서 고전적 인공지능은 인지심리학이 신경생리학과 독립적으로 진행된다는 견해를 옹호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지과학은 본성적으로 톱-다운 (top-down) 의 접근법을 택하게 된다. 우선 상위 차원에서의 인지함수와 그와 관련된 알고리듬의 해명이 주된 연구과제가 되며, 이것이 밝혀진 연후에 이에 따라 이들이 사람의 두뇌에서 어떻게 실현되는가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 단계에서 신경생리학이 개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지과학에 대한 고전적 인공지능의 이와 같은 관점으로부터 인지과학의 방법에 대한 흥미로운 귀결이 따른다. 인지과학에서의 설명은 한 체계가 우리가 이해하는 일정한 인지적 함수를 실현함으로써 현명한 문제풀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요지를 조금 어렵지만 그 일반성을 포착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한 체계 내에서 나타나는 물리적 상태들 사이에 동형관계 (isomorphism) 를 맺음으로써 단순한 물리적 체계가 인지적 함수에 의하여 표현되는 인지능력을 실현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 인지과학에서의 설명이다.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자면, 인지과학에서의 설명은 한 물리적 체계에 의미 또는 내용을 부여한 결과 그 체계가 의미 또는 내용 사이의 연관을 표현하는 프로그램을 실현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인지과학의 설명은 기능적 분석 (functional analysis) 또는 의미론적 해석 (semantic interpretation) 이라고 불린다. 이 설명에 있어 물리적 상태들 사이의 진행이 어떻게 인과적으로 발생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은 부차적 중요성을 지니며,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순수히 양적인 용어와 대립되는 의미를 함유하는 질적 용어에의 호소가 본질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인지과학의 설명은 기초과학 (basic science (물리학)) 의 대표적 설명 모델로 흔히 제시되는 연역 - 법칙론적 구조와 전혀 다른 모습을 띤다.14)   이러한 이유에서 포더는 심리학에서 사용되는 법칙은 물리학과 같은 기본과학에서 사용되는 법칙으로 환원될 수 없으므로 심리학은 특수 과학들 (special science) 중의 하나라고 주장한다.15) .16)

7. 연결주의

연결주의의 핵심을 이해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연결주의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두 관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첫째 관점은 신경생리학에 의하여 발전한 사람의 두뇌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인지를 파악하려 한다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사람의 두뇌는 뉴런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의 상호 인과작용을 통하여 인지작용이 수행된다. 둘째 관점은 흄 (David Hume) 이나 제임스 (William James) 가 받아들였던 연상심리학의 틀을 통하여 인지에 접근한다는 것이다.17)    불의 관념과 연기의 관념 사이의 연합은 흔히 흄의 연상심리학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이 설명에 따르면, 불과 연기는 연이어서 발생하고 그 결과로 우리의 인지체계 내에서 불의 관념과 연기의 관념이 이어서 발생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게 되면 불의 관념과 연기의 관념 사이에 연합이 발생하게 된다. 이제 우리가 불을 보게 되면 연기를 기대하게 되고, 이러한 기대가 충족되면서 두 관념 사이의 연합은 강화된다. 연결 주의는 우리의 인지과정이 이런 방식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본다.

위의 두 가지 관점이 결합된 것으로 해석하면, 연결주의는 다음과 같이 간략히 요약될 수 있다. 인지의 구조는 뉴런과 같은 단위들로 구성되며, 이들 단위들이 연상심리학에서 관념들과 결합 같은 방식으로 결합함으로써 인지과정이 형성된다. 연결주의의 단위들은 비활성화된 상태에서 자극을 받아 활성화된 상태로 이행하고 이것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비활성화된 상태로 돌아가는 그러한 성질을 갖는다. 이는 우리의 관념들이 비활성화된 상태에 있다가 활성화되어 우리의 인식체계에 의하여 사용되며, 이후에 다시 비활성화된 상태로 돌아가는 것과 유사하다. 단위들의 활성화는 외부의 자극과 이웃한 단위들의 활성화 여부에 의하여 결정된다. 우리의 관념의 활성화가 외부의 자극 및 이웃한 관념들의 활성화 여부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과 유사하다. 여기서 이웃한 단위들 사이에 활성화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은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 또는 연상심리학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관념이 떠오르는 것은 남자의 관념의 활성화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여자의 관념의 활성화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이러한 관념의 활성화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연결된 이웃한 단위를 사이에서도 그 연결의 정도가 상이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남자의 관념은 사람의 관념과 이성적임의 관념 모두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겠지만, 전자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후자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보다는 강할 것이다. 또한 범죄자의 관념이 포유류의 관념과 유순함의 관념에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겠지만, 전자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더 강할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연결주의에서 단위들 사이의 연결방식을 연상심리학에서 관념의 연합을 통하여 설명한 것은 비유적 설명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연결주의자들 중에는 한 개념을 연결주의의 한 단위와 대응시키면서 (국지적 해석 도식 localized interpretative scheme) 인지과정을 모델링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 개념을 하나의 개별적 단위를 통하기보다는 여러 단위들의 일정한 배치와 대응시키면서 (distributed interpretative scheme) 인지과정을 모델링한다. 이제 연결주의의 구조를 연상심리학과의 유비를 넘어서서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위의 그림은 시각을 바라보는 연결주의의 구조를 아주 간략하게 나타낸 것이다.

연결주의에 의하면, 인지의 구조는 단위들이 무리지어서 구성되는 층들이 몇 개로 결합되어 형성된다. 자극은 하위층에서 상위층으로 퍼져나간가. 시각의 경우에 최하위층 (입력층) 은 망막에 해당한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따라 망막에 자극되는 현상이 다르듯이, 외부의 자극에 따라 활성화되는 입력층 단위들의 조합은 다르게 나타난다 (앞의 그림에서 입력층의 검게 나타난 단위들의 조합). 이들 활성화된 단위들을 바로 상위층의 단위들을 활성화하고, 이 과정은 최상위층인 출력층에 다다름으로써 끝난다. 출력층에서 활성화된 단위들의 특정한 조합 (앞의 그림에서 출력층의 검게 나타난 단위들의 조합) 이 특정한 시각판단과 대응한다. 앞의 그림에서 실선은 긍정적 연결 (활성화 excitation) 을 나타내며, 점선은 부정적 연결 (금지 inhibition) 을 나타낸다. 그리고 앞 그림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각 점선과 실선에서 나타난 연결의 정도가 다를 수 있다.

앞의 그림에서 나타난 연결주의의 기본 도시기만 해도 연결조의가 상당히 발전하면서 나타난 것이다. 초기에는 이보다 훨씬 단순한 형태로 연결주의의 구조가 제시되었다. 예를 들어 입력층 (input laayer)과 출력층 (output layer)의 두 층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조에 은닉층 (hidden layer)을 끼워넣은 것은 연결주의 구조의 계산능력을 엄청나게 증진시킨 혁명적인 발전으로 간주된다. 초기에는 이보다 훨씬 단순한 구조로 연결주의가 제시되었으며, 오늘날의 연결주의로 발전하기까지 연결주의는 상당한 부침을 겪어왔다.

1950 년대와 1960 년대에는 각기 지각과 문자 의식에 관한 로젠블라트 (Rosenblatt)18) 와 셀프리지 (Selfridge)19)  의 연결주의 이론들이 주목을 끌면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1969 년에 민스키(Minsky)와 패퍼트 (Pappert)가 로젠블라트의 퍼셉트론 (perceptron) 과 더불어 연상심리학의 기본틀을 강력히 비판함으로써20)  연결주의는 거의 사망선고를 받게 된다. 동시에 고전적 인공지능의 틀이 인지의 설명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면서 이제 연결주의는 자취를 감추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1980 년대에 들어서면서 연결주의는 다시 주목을 받게 왼다. 이러한 배경에는 고전적 인공지능이 명제적 추론과 같은 상위의 인식능력을 설명하는데는 많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형태재인 (pattern recognition) 과 같은 하위의 인식능력을 설명하는데에서 한계를 보인다는 것, 이들에 대한 대안으로 연결주의가 다시 모색되었다는 것, 신경생리학이 그 기간에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 또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문제들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연결주의의 이론들이 세련화하는 과정을 겪었다는 것,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면서 자연과학 전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 홉필드 (John Hopfield)21) 가 연결조의를 옹호했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부침의 결과로 오늘날에는 연결주의가 많은 호응을 받고 있으며, 고전적 인공지능과 더불어 서로 경쟁하고 상호 보완하면서 발전하는 상황에 있다. 이제 연결주의의 특성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8. 연결주의의 특성들

1) 기계론적 계산

고전적 인공지능과 구분되는 연결주의의 가장 큰 특성은 정보가 표상되는 방식의 차이 및 그에 따른 인지과정을 이끌어나가는 방식의 차이에 있다. 고전적 인공지능에서는 인지상태들 사이에 부분-전체로 이오지는 구조적 연관성이 존재하며, 이러한 구조적 연관성이 인지상태들 사이의 추론적 연관성을 결정한다. 연결주의는 표상들 사이의 이러한 구조적 연관성을 부정한다. 각 인지적, 표상적 상태는 하나의 물리적 상태에 불과하며 이들은 뉴런들의 조합에 의하여 구성된다. 한 조합으로서의 인지적 상태에서 다른 조합으로서의 인지적 상태로의 이행은 뉴런들의 작동방식에 의하여 규정되며, 이들의 작동방식은 뉴런들이 어느 정도의 활성상태에 도달하고, 이 활성 상태에 따른 각 뉴런의 폭발 여부, 그리고 이것이 어느 정도의 연관성을 지닌 연결선을 통하여 이웃 뉴런에게 그 활성도가 전달되는가에 의하여 결정된다. 따라서 연결주의에서의 '추론' 은 순수히 인과적 과정으로서, 이 과정은 통사적 규칙에 따른 프로그램에 의하여 묘사되기보다는 뉴런 사이의 전기화학적 반응에 관한 순수히 기계적인 방식으로 묘사된다. 이런 의미에서 고전적 인공지능에서 인지체계가 계산하는 것은 통사적 규칙에 따른 기호적 계산이라고 한다면, 연결주의에서의 계산은 뉴런의 활성과 그것의 확산에 관한 역학적 계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학적 예산은 통사적 규칙이 아니라 미분방정식에 의하여 묘사된다.

2) 연결도를 통한 정보 저장

우리의 인지체계는 반복된 경험과 그에 따른 학습을 통하여 그 능력이 향상된다. 고전적 인공지능에 따르면, 이러한 새로운 지식은 두뇌의 특정한 구조를 통하여 또는 비트 (bit) 라는 형상을 통하여 두뇌의 특정 지역 (장기 기억 영역 long-term memory) 에 저장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렇게 명제와 유사한 형태로 저장된 정보는 유관성이 있는 입력이 들어오게 되면 작업 기억 영역 (working memory) 으로 이끌어내져서 추론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연결주의에 따르면, 학습과 그에 따른 능력의 향상은 두뇌의 일정 지역에 저장되는 정보를 통한 것이 아니라, 단위들 사이의 연결선이 강도 (connection strength) 의 수정에 의한 것으로 설명된다. 따라서 인지적 능력의 향상이 새로운 정보의 기억에 의한 것이라고 하다면, 이러한 기억은 연결주의에서는 단위들 사이의 연결도에 저장된다고 할 수 있다.

9. 고전적 인공지능과 연결주의의 논쟁

지금까지 우리는 고전적 이공지능과 연결주의의 기본적 구조, 그리고 그 차이를 살펴보았다. 이제 각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자신의 틀이 갖는 상대적 장점으로 내세우는 것이 무엇인가를 간략히 살펴보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고전적 인공지능은 인간의 믿음체계가 갖는 두가지 특성인 '생산성 (productivity)' 과 '체계성 (systematicity)' 에 주목함으로써 자신의 이론틀이 연결주의에 비하여 우월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우리의 믿음체계가 생산적이라 함은 우리가 가질 수 잇는 믿음의 유형이 잠재적으로 무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명제는 원칙적으로 무한하며, 이는 이전에 전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문장들을 마주칠 때에도 전혀 어려움이 없이 이해한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포더는 우리의 인지구조 자체가 자연언어와 같은 조합적 성격을 갖는다고 할 때, 이러한 생산성이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연 언어는 유한수의 어휘와 그들의 결합에 관한 유한수의 규칙을 갖고 있다. 유한의 어휘에 규칙들이 반복적으로 적용되면 새로운 문장들이 무한히 산출될 수 있다. 포더는 우리의 사고구조도 언어처럼 되어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즉 사고 언어 가설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무한한 믿음들을 산출할 수 있는가를 어려움 없이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산성에 의한 논증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믿음들의 유형이 무한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데, 이러한 전제는 이상화 (우리의 삶이 무한하다는 것을 포함한) 를 포함하고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포더는 이를 의식하고 이상화를 포함하지 않는 새로운 논증을 제시한다. 여기서 그가 주목하는 것은 우리가 언어를 이해하고 산출함에 있어서 보이는 체계성이다. 그가 체계성으로 의미하는 것은 한 문장을 산출하고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은 많은 다른 문장들을 이해하고 산출하는 능력과 본래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철수가 영희를 사랑한다" 라는 문장을 산출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영희가 철수를 사랑한다" 라는 문장을 산출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한사람이 이 중의 한 문장을 이해하면서 다른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는 아직 한국어에 통달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체계성은 언어가 조합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의하여 가장 잘 설명된다. 한편, 체계성은 언어능력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사고 역시 이러한 특성을 갖고 있다. 위의 이야기에서 '문장에 대한 이해' 대신에 '믿음' 을 대입하면 우리의 사고가 갖는 체계성이 도출된다. 포더는 이로부터 일종의 유비논증을 통하여 우리의 사고 역시 언어와 같은 조합적 성격을 갖는다는 결론을 내린다.22)

연결주의가 갖는 장점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연결주의가 받아들이는 인지고조가 인간의 신경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연결주의는 흔히 신경망이론 (neural network theory)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외관성의 유사성만으로 고전적 인공지능보다 연결주의가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난점이 있다. 연결주의가 사람의 인지구조에 대한 신경계 차원에서의 모델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자신 연결주의자인 스몰렌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연결주의 접근법에서 모색되는 인지의 원칙을 신경적 차원에서의 원칙으로 보지 '않는' 것이 더 낫다. 물론 연결주의의 적절한 대우 (PTC : proper treatment of connectionism) 에서 채택되는 분석의 차원은 전통적인 기호적 패러다임의 차원보다는 저층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PCT의 차원은 신경적 차원보다 기호적 패러다임에 더 명시적으로 연관되어 있다.23)

연결주의의 모델은 외관상 사람의 신경계와 유사할 뿐 실제로는 상당한 추상화가 포함되어 있어, 오히려 고전적 인공지능의 모델에 가깝다는 것이다.

연결주의자들이 내세우는 다른 장점들은 외관상의 유사성이 아니라 사람의 인지의 작동과 연결주의 체계의 작동 사이에 있는 유사성에 주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연결주의가 여러 가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는 병렬적 정보처리 (parallel processing) 를 쉽게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전적 인공지능의 체계에서는 한 시점에 한 가지 규칙만을 적용할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이 단선적으로 이어짐으로써 인지과정이 진행된다. 그러나 사람의 행위는 이와 같이 단선적이지 않다.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신문을 읽을 수 있으며, 음악을 들으며 논문을 읽을 수 있다. 연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체계가 이러한 병렬적 처리를 잘 실현할 수 있음을 자랑거리로 삼는다. 물론 고전적 인공지능의 체계에서도 단선적 정보처리를 하는 체계를 동시에 여럿 가동함으로써 병렬적 정보처리를 실현할 수는 있지만, 이것은 연결주의에 비하여 덜 효과적이며 부자연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이외에도 연결주의자들은 우리의 인지체계에 손상이 왔을 때, 우리의 인지체계는 전반적으로 작동을 멈추지 않고 서서히 쇠퇴한다는 특징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특성을 몇 가지 규칙이 손상되면 전체적으로 작동을 멈추는 고전적 인공지능의 체계보다 자신들의 체계와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지적한다.

위에서 우리는 전통적 인공지능과 연결주의 사이에 진행되는 몇 가지 논쟁점들을 단편적으로 살펴보았다. 위에서 제시한 논증들은 한 체계는 할 수 잇지만 다른 체계는 할 수 없는 작업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또는 한 체계에서 작업을 수행하는 방식이 다른 체계에 비하여 사람의 방식과 더 유사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소개한 논증들 이외에 대부분의 논증들도 이러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논쟁은 확실한 승자를 가리기에는 부족하다. 고전적 인공지능의 체계와 연결주의의 체계는 아직도 발전하고 있으며, 이러한 발전을 통하여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고전적 인공지능과 연결주의를 상호 병존 가능한 방식으로 결합하는 가능성을 고려해볼 만하다. 이러한 병존 가능성을 모색하는 한 방식은 고전적 인공지능을 인지의 거시적 구조에 대한 서술로 보고 연결주의를 인지의 미시적 구조에 대한 서술로 보는 것이다. 이 경우에 고전적 인공지능과 연결주의는 동일한 대상에 대한 상이한 차원에서의 서술로 간주되어 상호 공존할 수 있게 된다.24)   이것이 진정으로 가능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많으며, 또한 고전적 인공지능의 체계와 연결주의가 더 발전되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

1) 의식이 심리상태의 독자적 본성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철학자들도 있다. 타이 (Michael Tye) 와 드레츠키 (Fred Dretske) 같은 철학자들은 의식은 아래서 설명하는 지향성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참조 :  Michael Tye, Ten Problems of Consciousness (Cambridge : MIT Press, 1995) ; Fred Dretske, Naturalizing the Mind (Cambridge : MIT Press, 1995)

2) 이러한 통일과학 (unified science) 에 대한 기대는 논리실증주의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다.

3)  John Searle, " Minds, Brains, and Program ", in John Haugeland ed., Mind Design (Cambridge, MA : MIT Press, 1981), pp. 282 ~ 283.

4) 처치랜드 (Churchland) 는 신경생리학적인 단위를 기본으로 체계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며, 스티치 (Stich) 는 단순히 통사적 성질을 통하여 인지의 기본 단위를 규정할 것을 제안한다. 참고 :  Patricia Churchland, Neuropfilosophy  (Cambridge : MIT Press, 1986) ; Paul Churchland, A Neurocomputational Perspective (Cambridge : MIT Press, 1989)  ; Stephen Stich, From Folk Psychology to Cognitive Science (Cambridge : MIT Press, 1983).

5) Maes, Designing Autonomous Agent (Cambridge : MIT Press, 1991).

6) A Logical Calculus of the Idea Immanent in Nervous Activity, " Bulletin of Mathermatical Biophysics, 5 (1943), pp. 115 ~ 133 ; Anderson and Rosenfeld (eds.), Neurocomputing : Foundation of Research (Cambridge : MIT Press, 1988) 에 재수록, pp 18 ~ 27.

7) Jerry Fodor, Psychosemantics (Cambridge : MIT Press, 1986 ), pp. 135 ~ 154.

8) 위와 같은 사항이 왜 언어학이 인지과학의 한 분과를 이루게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에 의하여 발전된 인지과학이 결과적으로 인간의 사고를 언어적인 것으로 보게 됨으로써 언어학이 인지과학과 관련을 맺게 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인지과학의 발전에서 언어학이 차지하는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촘스키의 언어학과 그에 따른 마음관이 기호논리학의 발전과 더불어 고전적 인공지능의 성립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9)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도 이미 기호논리학에 의하여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 연역논리의 특성은 진리치 보전에 있는데, 진리치를 보존하는 타당한 (현명한?) 추론은 의미론적인 모델 이론뿐만 아니라 통사적인 증명이론 (proof theory) 에 의하여도 수행될 수 있음이 이미 밝혀졌다.

10) 탄소 소재가 아니라 실리콘 소재로 이루어진 인조인간은 마음을 가질 것이라는 통찰이 위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사용될 수 있다.

11)마음이 복수실현적 (multiply realizable) 이라고 해서 아무 소재나 마음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무 소재나 프로그램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기로 프로그램을 실현하는 체계를 만들 수 있는지 상상해보라. 복수실현성은 프로그램 실현 여부와 관련 없이 소재 자체의 특수성이 마음의 성립에 필수적이라는 주장만을 거부한다.

12) David Marr, Vision (New York : Freeman Press, 1982)

14) 기능적 분석에 대한 상세한 논의를 위하여 다음을 참고하라. Robert Cummins, "Functional Analysis," Journal of Philosophy , 72 (1975). pp. 741 ~ 760 과 The Nature of Psychological Explanation (Cambridge : MIT Press, 1984) ; John Haugeland, "The Nature and Plausibility of Cognitivism," Behavioral and Brain Science, 2 (1987), pp. 215 ~ 260과 Mind Design (Cambridge : MIT Press, 1981)

15) Jerry Fodor, "Special Science : or Disunity of Science as a Working Hypothesis," Synthese, 28, pp. 97 ~ 115.

16) 심리학을 특수과학으로 보는 것에 반대하면서, 심리학은 궁극적으로 신경생리학으로 환원되어야 하며 그렇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를 보기 위해서는 다음을 보라. Patricia Churchland, Neurophilosophy (Cambridge : MIT Press, 1986) ; Paul Churchland, A Neurocomputational Perspective (Cambridge : MIT Press, 1989).

17) 물론 현대의 연결주의자들이 흄과 제임스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연결주의를 발전시켰다는 것은 아니다.

18) "The Perceptron : A Probabilistic Model for Information Storage and Organization in the Brain," Psychological Review, 65, pp. 368 ~ 408, 그리고 The Principles of Neurodynammics (New York : Spartan Publishing Co., 1962).

19) "Pandemonium : A Paradigm for Learning," in Symposium on the Mechanization of Thought Processes (London : HMSO).

20) M. Minsky and S. Pappert, Perceptrons (Cambridge : MIT Press, 1969).

21) "Neural Networks and Physical Systems with Emergent Collective Computational Abilitie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 79, (1982) pp. 2554 ~ 2558 ; Anderson and Rosenfeld (eds.), Neurocomputing : Foundations of Research (Cambridge : MIT Press, 1988) 에 재수록, pp. 460 ~ 464 와 "Neurons with Graded Response Have Collective Computational Properties like Those of Two State - Neuron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 81 (1984) pp. 3088 ~ 3092 ; Anderson and Rosenfeld (eds.), 위의 책에 재수록, pp. 579 ~ 583.

22) 생산성과 체계성을 통하여 사고의 조합적 구조를 옹호하는 포더의 논증을 보기 위해서는 다음을 보라. Jerry Fodor, Psychosemantics (Cambridge : MIT Press, 1988), pp. 147 ~ 151과 Jerry Fodor and Zenon Pylyshyn, "Connectionism and Cognitive Architecture : a Critical Analysis," Cognition, 28 (1988), pp. 3 ~ 71, Steven Pinker and Jacques Mehler eds., Connections and Symbols (Cambridge : MIT Press, 1988)에 재수록.

23) Paul Smolensky, "On the Proper Treatment of Connectionism," Behavioral and Brain Science, 11 (1988), pp. 1 ~ 74.

24) 이러한 견해를 보기 위해서는 다음을 보라. Rumelhart, Smolensky, McClelland, and Hinton, "Schemata and Sequential Thought Processes in PDP Models," in McClelland, Rumelhart and PDP Research Group, Parallel Distributed Processing : Explorations in the Microstructure of Cognition, Vol. 2 : Psychological and Biological models (Cambridge : MIT Press, 1986), pp. 7 ~ 57. 포더와 필리신은 연결주의를 비판한 후에, 연결주의는 고전적 인공주의의 틀 내에서 실현의 차원을 서술하는 것으로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실현의 차원은 물리학의 관심사이지 심리학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참조 : Fodor and Pylyshyn, "Connectionism and Cognitive Architecture : a Critical Analy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