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문학과 지식공학의 미래

 

한국어와 인공지능 : 고창수 편저, 태학사, 1999, Page 171~182

한성대 국문과, 고창수

 

1. 서론

2. 언어학적 지식의 표현 양상

3. 지식의 표현과 관련된 비언어학적 능력

4. 결론

 

1. 서론

지식공학이란 한 마디로 지식을 표현하는 기술이다. 이때 지식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능력의 원천이며, 체계화된 정보를 의미한다. 표현된 지식은 결국 지능적 활동의 논리적 모의이면서, 인공적인 지능 활동을 보장하는 자료 기반이 된다. 따라서 지식공학은 인공지능 구현을 위한 기반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가 사회 재화 창출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오늘의 정보 중심 사회에서 인공지능의 구현은 두 가지 의의를 갖는다. 하나는 인간의 언어로 컴퓨터와 인간이 자유롭게 의사 소통하는 컴퓨터체계의 변혁이며,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이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고도로 복잡해지고 정보팽창에 대처하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이다.
인공지능의 구현은 의사소통의 도구가 되는 인간 언어에 대한 지식이 튜링 논리에 부응하여 표현되어야 가능하다. 20 세기 중반 이후 이를 위한 많은 시도들이 있었으며, 자동 번역과 같은 분야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낳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계와 인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이나 기계 스스로의 정보가공 능력을 기대하는 일은 아직도 요원한 일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언어능력에 대한 지식 표현의 부재에서 온다. 그러나 이 밖에도 인간이 외계에 대해 반응하고 이를 재지식화 하는 절차에 대한 표현을 체계화할 수 없다는 점도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문제들이 궁극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든 아니든, 현 상황에서 요구되는 기계의 지적 능력에 대한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할 수 있는 지식의 표현에 대한 문제는 새롭게 제기되는 언어학이나 한국어학의 한 도전이다.
한국어학의 지식이 지능의 인공적 구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를 모색하는 오늘의 논의에서, 주제를 더 확장하여 한국어문학에 대한 지식을 문제를 삼는 것은 언어의 문제를 넘어 인공지능의 구현에 필요한 온갖 지식을 점검하고 협업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먼저 한국어학의 지식이 인공지능의 구현에 기여하고 있는 양상을 살펴보자.

 

2. 언어학적 지식의 표현 양상

지능의 인공적 구현에서 문제되는 언어학적 지식은, 인간의 두뇌를 배경으로 한 언어에 대한 지식을 사이버 환경에 그대로 이식 가능한 지식으로 환원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엄밀한 요구는 물론 매우 느슨한 요구조차 구현하기 어려운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로 언어학적 지식은 지능의 구현에 직접 적용되는 지식보다는 기반 자료의 조성에 활용된다. 이를 크게 네 가지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자.

①과 같은 분류는 사실 균형적인 것이 아니다. 정확한 의미에서는 언어학적 지식을 요구하는 인공지능의 관련분야에서 한글공학과 같은 분야는 제외되어도 좋을 것이고, 협소하게는 자연언어처리 분야만이 언어학적 지식을 요구하는 유일한 분야이기도 하다. 음성 인식이나 합성에 관련한 부분은 언어학적으로는 자연언어처리의 하위분야가 되는 것이 좋을 듯싶으나, 실제 시스템의 구축에서는 문자 인식, 향기 인식과 같은 신호처리와 한 분야를 이루기 때문에 독립된 항으로 놓았다. 아마 자연언어처리 기술이 향상되면, 음성 인식과 문법 분석이 한 시스템에서 협조하는 방식이 정착될 것이다.
우리가 중점적으로 문제 삼고, 또 지식공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분야는 자연언어처리 분야이다.

전문가 시스템은 전문가의 지식을 기계적으로 활용하도록 고안된 지능 시스템이다. 이는 컨설팅 시스템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자연언어를 매개로 하는 것과 단순히 정보만을 산출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질의/응답 시스템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질의/응답 시스템은 말 그대로 자연 언어로 기계와 인간이 대화 가능하도록 고안된 시스템으로 자연언어 프론트-엔드 시스템이나 대화형 시스템이라고도 한다.
자동 번역 시스템은 말 그대로 기계를 이용하여 특정한 언어를 번역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전문가 시스템과 대화형 시스템과는 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것은 시스템에 요구하는 인간적인 척도인데, 이를 '기계가 인간적이기를 요구하는 문제' 로 풀어보자. 자동 번역 시스템에 대한 인간적인 요구는 이른바 '중국어방 논변' 과 관련짓는다면, 시스템에 대한 최대의 요구가 될 수 있다. 즉 튜링 테스트를 번역 시스템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전문가 시스템이 인간적이기를 요구하는 것은, 시스템의 대응이 유연하기를 바라는 문제와 인터페이스의 언어 처리가 얼마나 완성도 있는가에 대한 문제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 시스템에 대한 최소의 요구는 주어진 문제의 해결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인간적이기를 바라는 것은 궁극적인 목표는 아닐지라도 더 개선된 시스템에 충분히 요구될 수 있다.
이상의 시스템과 달리 자연언어 질의/응답 시스템에 대한 최소의 요구는 인간적인 반응이다. 범용 대화 시스템으로 현재 상용화되고 있는 '별이' 를 예로 들어보자. 사용자는 먼저 '별이' 가 자신의 대화 상대로서 적절한가를 파악하려고 한다. 이를 위하여 간단한 인사말을 나누는 등의 시도를 통해 시스템의 언어 능력을 테스트하려고 할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별이' 의 지식 체계를 테스트한다. 즉 시스템이 과연 사용자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미국' 이라는 나라는 알고 있는지, '이순신' 이 조선의 훌륭한 장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를 묻는다. 마지막으로 사용자는 시스템이 자신의 대화 공리를 이해하고 따르는지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그는 "너는 과일을 좋아하니?" 와 같은 질문에 대해 시스템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고 "그러면 너는 야채는 좋아하니?" 와 같은 질문이 아까 던진 질문과 어떤 연관 속에서 대답이 산출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결국 사용자들이 범용 대화 시스템에 바라는 최소의 요구는 이 시스템이 하나의 인격적 대상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한 최소의 요구는 앞서 언급한 대로 언어학적인 의사소통 능력이다. 이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시스템이 해결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③ 과 같은 언어학적 능력이 어느 정도 성취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10만 단어를 내장한 시스템이나 1만 단어를 내장한 시스템이나, 사용자가 느끼는 언어학적 수준이 같을 수도 있지만, 단 한 단어를 알고 모르고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화 시스템의 설계에서 시스템의 언어학적 능력을 어떤 식으로 규정짓고, 그 능력의 단계를 어떻게 구획하여야 하는가의 문제는 앞으로의 언어학이 담당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이다. 단순히 어린이의 언어 습득에 대한 숙달도가 문제될지 혹은 외국어의 학습에 대한 숙달도가 문제될지, 혹은 전혀 다른 언어학적 숙달도가 문제될지 연구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울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제까지의 문법적 능력에 대하여 인간의 의사소통 능력에 대한 표준적 준거에 대해 숙고해야만 할 것이다.

 

3. 지식의 표현과 관련된 비언어학적 능력

범용 대화시스템의 지식 기반은 인간의 연역적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요인을 모의하여 이루어진다. 이 지식 기반은 백과사전과 같은 정보의 양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식을 저장하고 이를 활용하는 체계가 얼마나 인간과 유사한가를 묻는 것이다. 즉, 시스템에게 "나는 지금 밥을 먹었다" 와 같이 진술할 때, "그렇다면 배가 부르시겠군요?" 라고 반응한다거나, "나는 순이를 좋아하지만, 사랑하지는 않아" 와 같은 진술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원하는 따위이다.
지식 표현을 위한 인간의 비언어학적 능력을 모의하는 일은 언어적 능력을 모의하는 일보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식의 표현은 오직 처치 정립 (Church's thesis) 을 따르는 진술의 형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 지식의 내장이 실제로 수학적 표현에 부응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별도로, 우리 지식의 표현은 회귀적 진술이어야만 한다. 또한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 또한 구조주의적 체계성만이 유효하다. 현재로서는 이 방법을 넘어서는 논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통합적인 지식의 표현을 위해, 즉 시스템에 대한 인격적 요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인간의 언어학적 능력과 비언어학적 능력에 대한 연구가 동시에 진행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통합 과학적 요구는 최근 인지과학의 발전으로 그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오늘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통합 과학적 요구는, 언어 사용의 다각적 관찰을 통하여 더 세심하게 인간의 언어학적/비언어학적 능력에 대한 통합적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비언어학적 능력이 어떠한 것이든 결국 언어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고, 언어로부터 추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식공학의 연구에 어문학의 연구가 통합적으로 기대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식 표현에 관련된 비언어학적 능력은 실세계를 오감으로 감지하고 이를 체계화하는 지식의 표현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를 위하여 지식 기반의 구축이 문제된다. 지식 기반은 입출력되는 선언적 지식을 추론하기 위한 저장된 지식의 형태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지식의 형태는 선언적 지식과 개념적 지식으로 나눈다. 이는 대본 지식과 그물 지식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물 지식은 각 개념이 그물과 같이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틀로 표현된다.

④ 와 같은 그물 지식으로부터 '철수' 가 '사람' 이면, '생물' 이라는 것이 추론되며, '철수' 가 '순이' 의 남편이며, 동시에 '순이' 는 '철수' 의 '아내' 라는 사실이 추론된다. 또 이를 확장하여 '돌이' 가 '철수' 의 아들이라는 사실에서 '순이' 가 '돌이' 의 어머니라는 사실까지 추론할 수 있으며, 이론부터 새로운 그물코가 생성될 수 있다. 이와 같이 그물 지식은 인간의 논리적 지식을 다루는 일차적인 지식 기반을 형성하는 것이다.
대본적 지식은 주로 선언적 지식을 사용하여 요구되는 배경과 절차를 명시한다. 예를 들어 '철수가 밥을 먹었다' 와 같은 진술에 대해 가능한 대화 전개의 양상으로 '언제 먹었는지, 누구와 먹었는지, 어떤 밥을 먹었는지' 등의 정보를 채우려는 정보적 욕구를 충족하는 대본과 '기분이 좋겠다. 나도 먹고 싶다. 나중에 같이 먹자' 등의 정서적 욕구를 충족하는 대본이 가능하다. 이러한 대본은 시스템이 인간적이기를 요구하는 대화형 시스템에서는 필수적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식 표현과 관련한 비언어학적 능력에 초점을 더하여, 인간의 문학적 활동 혹은 문학에 대한 체계적 이해로부터 획득된 지식이 앞으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문학적 행위, 이는 하나의 문예물을 산출하고 이에 반응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이러한 행위는 크게 정서를 교감하고 정보를 획득하는 지능적 객관물을 대하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앞서 범용 대화시스템은 최소의 요구로 인간과의 근접성을 논하였는데, 이는 잘 된 소설에서 주인공의 성격에 대한 공감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소설을 특정한 인물의 성격과 그의 외계에 대한 반응의 진술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대화시스템 자체도 특정한 성격의 대본이며, 사용자와의 모든 대화가 비록 소설에 비해 역동적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대본적 진술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구현에 문학연구로부터 획득된 지식이 요구되는 이유는 바로 대화시스템과 소설 혹은 희곡 사이의 유비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식을 표현하는 세부적 과제는 다음과 같다.

어휘 사용과 주제 탐색에 대한 문제는 의미론이나 텍스트 언어학과 같은 언어학의 분과에서 다루기는 하지만, 문학적 지식으로부터 이들이 요구되는 것은 시스템과 인간의 교감을 훨씬 정서적으로 만들 필요로부터 제기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곶감' 이 단순히 '감' 의 변형체로 그물지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호랑이' 보다 무섭다는 해학을 환기하는 개념으로서도 그물 지식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또한 범용 대화시스템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인간인 사용자의 대화 상대로서 인격화된다. 시스템에 대한 사용자의 신뢰를 제고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시스템에 대본적 인격을 충실히 부여하는 일이다. 이때 부여되는 인격은 일관적이며 세밀하게 제어되어야 한다. 인격적 요구를 만족하는 시스템이 사용자와 충분히 정서적으로 교감될 것이라는 것은 예상 가능한 일이며, 바람직한 결과이기도 하다. 

4. 결론

지식공학은 인공지능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한 지식 표현을 다루는 응용 기술이다. 이는 결국 인간 지식이나 그 지능적 활동을 수학적 모형 안에서 구현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구체적 내용은 언어학적 지식과 비언학적 지식의 표현으로 양분할 수 있는데, 이들의 조화로운 결합은 지능 시스템의 유연성과 친숙성을 보장한다. 따라서 곧 다가올 미래의 지식공학을 위하여, 한국어문학 전공자들을 중심으로 관련된 연구가 통합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의 구현은 현재와 같이 정보가 범람하여 필요한 정보를 신속히 획득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환경에서, 시급히 해결되어야 하는 인류의 과제이다. 실제로 지능의 인공적 구현이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다양한 지식의 표현을 기계에 부여함으로써 우리는 근접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앞으로 개발된 시스템의 성격이 한민족의 정서에 부응할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지식공학의 발전에 한국어문학의 기여가 보다 이른 시기에 이루어질 것을 요구한다. 미래에 출현한 대화 시스템이 영어나 일어만을 이해하며 저들의 정서에만 교감하는 것이라면,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외래 문화의 부정적 양상을 뛰어 넘는 심각한 문제들이 야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