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학과 인지과학

 

한국어와 인공지능 : 고창수 편저, 태학사, 1999, Page 159~170

한국 과학 기술원, 시정곤

 

1. 배경

2. 인지과학의 역사

  (1) 인지과학 형성이전 : 철학과 행동주의 심리학

  (2) 6인의 개척자

  (3) 인지주의의 발전

  (4) 인지과학의 성장

  (5) 한국의 인지과학

3. 인지과학, 인공지능, 연결주의

  (1) 인지과학과 인공지능

  (2) 인지과학과 연결주의

 4. 정보처리체계 : 표상과 절차

  (1) 마음은 정보처리 장치?

  (2) 인지과학의 접근방법

  (3) 마음의 연산-표상적 이해

5. 인지과학과 언어문제

  (1) 인지과학과 언어과학

  (2) 언어이론의 이해 : 최소이론

  (3) 언어능력의 주요부문

6. 인지과학의 응용 가능성

  (1) 뇌 연구과제

  (2) 소프트과학

7. 한국어학의 역할과 전망

 

1. 배경

인지과학이란? : 인간의 마음에 대한 연구는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주로 철학의 관심 분야였고, 행동주의 심리학이 등장하던 20세기 초까지도 과학의 영역밖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950년대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사정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이후 계속된 컴퓨터 혁명으로 인해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은 바야흐로 21세기 과학의 최대 과제가 되었다.
인지과학은 인간의 마음(mind)과 지능(intelligence)을 탐구하기 위해 심리학을 위시하여 철학, 인공지능, 언어학, 신경과학, 그리고 인류학 등과 같이 여러 학문분야가 서로 협동하는 학제간(interdisciplinary) 연구를 뜻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 또는 자연과학 등의 학문 분류에 익숙해 있는 사람이나, 과학기술하면 아직도 물리학이나 생물학, 또는 공학 등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아마도 몇 십년 전의 과학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인지과학은 인간과 물질, 마음과 기계를 하나로 통합하고자 하는 새로운 과학의 패러다임이며, 인지적 세계관을 표방한다. 따라서 아래 그림 1에서 알 수 있듯이 인지과학은 마음, 두뇌, 컴퓨터의 본질과 그 상관성을 찾고, 이러한 새로운 관점으로 인간과 세상을 설명하고 재구성하려는 신과학적 인식의 틀로 이해할 수 있다(이정모, 1996).

 

그림 1

언어학의 중요성 : 인지과학의 특성이 마음과 두뇌와 컴퓨터에 대한 학제간의 연구에 있다고 할 때, 학제간의 연구라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제까지 인지과학의 개별 학문 분야들이 나름대로 의미있는 결과를 낳으며, 각각 마음의 정체를 해명하는 데 일조를 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학문 분야들의 결과를 단순히 합한 것이 인지과학의 참 모습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접근법들과 학문 분야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이를 통해 마음의 모든 요소와 기능을 올바로 파악하는 한편, 그것들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에서 상호 관련을 맺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인지과학에 접근하기 위한 학제간의 연구는 3가지 측면에서 고려해 볼 수 있다(타가드, 1996). 먼저 제반 관련 분야들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키고, 두번째로 문제해결, 기억, 학습, 언어 등과 같은 마음의 여러 기능들을 중점적으로 고찰하며, 세번째로 인지과학자들이 옹호하고 있는 심적표상의 주요 이론들(논리, 규칙, 개념, 추리, 상, 연결(인공신경망) 등)을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평가하는 방법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이론적 접근을 통해 인지과학의 통일된 방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각 학문분야의 학생이나 전문가들이 갖고 있는 기초지식이 서로 다르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이제까지는 서로의 학문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연산절차에 관심있는 학생들은 철학이나 심리학과 같은 인문학에는 접근하기 어려웠고, 반대로 심리학이나 철학에 관심있는 학생들은 연산에 문외한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언어학은 인지과학의 학제간 연구에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언어학은 인문학과 이공계 학문의 중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격은 한편으로는 역사적으로 언어학이 철학과 심리학에서 분리되어 나왔다는 점과 다른 한편으로는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인공언어와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매개자로서 언어학의 중요성이 한층 강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인지과학과 한국어학의 관련성과 의미를 검토해보기 위해 먼저 인지과학의 성격을 개괄적으로 점검해 보는 것에 초점을 두고, 다음으로 인지과학 안에서 언어가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지를 덧붙여 보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를 위해 본고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2장에서는 인지과학의 역사적 배경과 흐름을 통해 인지과학의 성격을 알아보고 한국의 인지과학의 현황도 살펴본다. 3장에서는 인지과학과 인공지능 그리고 연결주의의 관련성을 통해 이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방향을 점검하며, 4장에서는 마음과 컴퓨터, 그리고 뇌의 정보처리체계를 살펴보고, 5장에서는 인지과학에서 언어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점검한다. 그리고 6장에서는 인지과학의 응용가능성을 통해 한국어학이 어떤 면에서 인지과학에 참여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고, 7장에서는 앞서 언급된 내용을 정리하면서 전망을 덧붙이고자 한다.

2. 인지과학의 역사

(1) 인지과학 형성이전 : 철학과 행동주의 심리학

정신과 마음의 문제는 고대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에서부터 합리론과 경험론을 통합한 칸트에 이르기까지 주로 철학의 관심사였으며, 19세기 이후 실험심리학이 발달하면서 행동주의(behaviorism)가 만연할 때까지도 심리학의 목표는 주로 관찰가능한 자극과 반응의 관계를 실험하는 것이었지, 의식이나 심적 표상(mental representation)과 같은 문제는 과학의 중심과제가 아니었다.

(2) 6인의 개척자

인지과학의 역사는 심적 표상에 대해 제시된 다양한 이론들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1950년대 중반에 이르러 몇몇 분야의 학자들이 복합표상과 연산절차(computational procedure)에 기초하여 마음의 이론을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이 단계는 수학, 컴퓨터, 심리학, 언어학, 철학 등의 분야에서 대화의 광장이 형성되어 종래의 학문적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과학의 가능성이 열린 시기이다. 먼저 심리학자 밀러는 1956년의 "The magical number seven"이라는 논문에서 인간의 사고능력이 제한되어 있음을 최초로 밝혔다. 그리고 이 시기가 인지과학의 발달에 매우 의미있는 것은 이때 초기 컴퓨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또한 맥카시, 민스키, 뉴웰, 사이먼 등은 수학, 논리, 문제해결 등에 관심있는 소장 학자들로 1956년 여름에 다트머스 대학에 모여 인공지능학(AI)을 창립하고 문제해결, 패턴인식, 게임, 논리적 추론을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기하였다.
이와 더불어 인지과학의 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 1956년 9월 11일에 MIT에서 열린 정보이론(information theory)에 대한 발표회이다. 이 발표회에서 두 편의 중요한 논문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뉴웰과 사이먼의 "Logic Theory Machine"이고 다른 하나는 촘스키의 "Three models of language"이다. 전자는 컴퓨터 과학 논문으로 계산 기계에서 사용되는 일반원리의 증거들을 제시한 것이고, 후자는 새넌의 정보ㆍ이론적 접근이 자연언어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점에서 변형문법의 당위성을 주장한 논문이다. 이후 촘스키(1957, 1959)에서는 스키너의 행동주의에 반대하면서 규칙으로 이루어진 심적문법(mental grammar)으로 인간의 언어능력을 설명하려 하였다.
한편 이러한 개척자들의 연구와 관련하여 다른 분야에서도 인지과학의 기반을 닦기 위한 기초연구가 진행되었다. 신경과학분야에서는 연구팀이 생겼으며, 인류학에서는 인지인류학이 태동하기 시작하였으며, 철학에서는 프린스턴 대학의 철학자 퍼트남이 튜링머신(Turing-machine)의 개념을 발달시켰다.

(3) 인지주의의 발전

1960년대와 1970년대는 인지주의가 급성장하여 인지과학의 기초가 확고히 다져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뉴웰과 사이먼 등의 보편목적적 상징조작체계 이론을 중심으로 한 정보처리 패러다임이 공고화된 단계이다. 새로운 언학, 인지심리학, 인공지능학의 대두와 급속한 발전 등이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에서 이러한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부르너와 밀러는 1960년 『행동 계획과 그 구조(Plans & the Structure of Behavior)』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인지 연구를 위해 하버드 센터를 설립하였다. 심리학자 네이서는 『인지 심리학(Cognitive Psychology)』을 1967년에 발간하면서 인지심리학의 출범을 아렸으며, 사이먼은 1969년 『인공 과학(The Science of the Artificial)』이라는 책에서 시뮬레이션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또한 1977년 노만 등을 중심으로 하는 인지과학회(Cognitive Science Society)가 미국에서 창립되었고, 잡지출간(1979)이나 대학에서의 인지과학 학과와 연구소 개설 등에 의해 인지과학이 하나의 학제적 학문으로 정식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4) 인지과학의 성장

1980년대 이래 실험적이고 계산주의적 연구도 괄목할 만큼 대두되었다. 무엇보다도 최근의 주목할 만한 모델로 심적 표상에 관한 연결주의(connectionism)의 등장을 손꼽을 수 있다. 이전까지의 인지과학적 연구 흐름은 주로 뉴웰의 물리적 상징체계로 대표되는 논리주의적 상징체계 중심의 접근이었는데 반해, 신연결주의는 비상징적, 미시적 신경단위를 중심으로 생리적, 생물적 기초 위에서 심적표상과 뇌의 신경망이론들을 연구하려 했다. 당분간은 이 신연결주의적 접근과 뉴웰 등의 고전적 인지주의적 접근이 인지과학의 주류를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는 60개 이상의 대학들이 인지과학과나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있다.

(5) 한국의 인지과학

우리나라에서도 1980넌대 초부터 인지심리학, 인공지능학, 언어학 등을 중심으로 인지과학에 대한 학제간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맨처음에는 언어학자와 인공지능학자의 협동으로 기계번역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이를 통해 인지과학의 학제적 연구 가능서이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85년 12월 창립된 인공지능연구회는 컴퓨터 과학자와 언어학자, 그리고 인지심리학자 등이 모인 자리로 인지과학 연구의 촉진제 역할을 하였다. 또한 1986년 6월 대우재단의 지원 하에 국내 최초의 인지과학 공동연구모임이 탄생하여(인지심리학 4인, 인공지능학 3인, 철학 3인, 사회학 1인) 1년간에 걸쳐 연구를 수행하고, 연구 결과로 『인지과학 : 마음, 언어, 계산』을 발간하였다. 이 인지과학 연구 그룹은 1987년 6월 "한국인지과학회"를 창립하게 된다. 이후 1995년부터는 국내 최초로 부산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등에서도 인지과학 프로그램이 대학원 협동과정으로 개설되었으며, 1996년에는 인지과학연구소가 연세대학교에 설립되어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3. 인지과학, 인공지능, 연결주의

(1) 인지과학과 인공지능

1940년대에 탄생한 정보이론과 컴퓨터의 기술적 실현, 그리고 1950년대에 언어이론과 제어이론이 추가되면서 정보과학을 위한 확고한 기초가 구축되었다. 이 시기는 뇌와 컴퓨터 등에서, 지적기능의 정체를 모색하던 시기이다. 앞서 인지과학의 역사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인공지능(AI)의 연구가 시작된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당시 지적기능을 인공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접근방안이 고려되었는데, 하나는 인간의 뇌를 거울삼아, 정보처리가 뇌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병렬 정보처리 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논리와 알고리즘의 효율성을 내세워 그 당시 발전하던 컴퓨터를 이용하여 기호조작을 구사하는 직렬 정보처리 방식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첫번째 방안을 택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있었다. 뇌에 대한 연구는 지지부진한 상태였고, 그 본질은 좀처럼 규명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번째 방안인 인공지능을 통해 지적 기능을 탐구하려는 시도가 탄생한 것이다. 인공지능의 경우 컴퓨터라는 훌륭한 도구가 있었고, 직렬의 알고리즘을 통해 지능을 연구해 가는 것이 당시로서는 유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컴퓨터는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한 번에 하나의 명령으로 정보를 변환하고, 또 이 정보를 기초로 하여 다음 행동을 결정한다. 즉 한 번에 하나의 명령어가 처리되는 직렬 정보처리가 그 특징이다. 따라서 모든 정보는 0, 1의 숫자에 의해 기호로 표현되고 프로그램에 의해 처리, 변환되며, 이러한 기호조작은 컴퓨터 정보처리의 기본이 되며, 그 밑바탕에는 수리논리학이 깔려 있다.
수학자 튜링은 인간의 정보처리인 사고과정을 연구하여 그 원리를 규명하는 데 힘썼다. 그는 순서에 의해 계산이나 논리조작이 이루어지는 알고리즘에 착안하여 이를 실행하는 장치로 튜링머신이라는 가공의 기계를 고안하였다. 한편 이와 더불어 튜링은 함수 가운데에는 튜링머신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함수나, 알고리즘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이론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도 관련된다.
인지과학에서는 행동주의 심리학을 탈피하여 마음의 본체를 탐구하고자 하였는데,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컴퓨터가 바로 그 도구였으며, 인공지능이 그 수단이었던 것이다. 즉 인간의 마음은 논리적 추론을 통해 작동되며, 인간이 의식적으로 하는 추론이나 행동 결정 등이 모두 직렬의 순서로 해명될 수 있었다. 따라서 컴퓨터를 통해 기호조작의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인간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모델을 구축하고, 그 특성을 조사함으로써 실제 인간의 마음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델을 구축하는 부분은 인공지능과 일치한다. 이와 같이 인공지능과 인지과학은 손을 마주잡고, 논리, 알고리즘, 기호조작을 축으로 하여 1970년대부터 대약진을 시작한다.

(2) 인지과학과 연결주의

인간의 뇌는 다수의 뉴런이 복잡하게 연결된 연결망을 가지고 있어서, 정보가 들어오면 그것을 수용한 뉴런이 흥분하여, 이 흥분이 다른 뉴런에 전달된다. 뉴런간의 결합에는 흥분성과 억제성의 두 종류가 있는데, 이러한 상호작용이 뇌 전체에 퍼져, 동시에 병렬적으로 흥분상태의 활동이 진행된다. 이것이 뇌의 정보처리 과정이다. 연결주의의 기본 가정은 이와 같이 다수의 기본요소가 상호작용하여 정보처리가 진행된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어떠한 정보 원리가 실현가능한가를 탐구하는 것이다.
1980년대 인공지능에서는 전문가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인공지능이 실용화단계에 접어들었으며, 본격적인 인공지능시대가 펼쳐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그것은 학습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만들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것은 직렬식 논리적 추론의 한계이며 연결주의의 등장을 알리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이런 원리를 규명하기 위해 신경회로망이라는 수리모델이 만들어졌다. 뉴런의 상호작용 활동을 고차원의 연립 미분방정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뇌의 동작을 컴퓨터에서도 모사할 수 있게 되고, 계산가능성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뇌도 컴퓨터와 동일하게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인지과학에서도 연결주의의 관점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인간의 의식과정이란 뉴런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으로 파악한다. 생물학적 측면에서도 연결주의는 타당성을 얻는다. 즉 신경회로라는 형태로 정보처리장치를 진화시켜 온 생물은 확실히 연결주의를 실현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이 지적능력을 획득하면서 인간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기호조작에 의한 직렬정보처리도 어느 정도는 필요했었으리라. 인간은 지적기능을 발달시키기 위해 언어라는 기호를 발명하고 이를 이용하여 사고를 기호화하였으며, 이를 통해 순차적 기호처리가 가능해지고 논리가 싹트고 지적기능을 얻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사람은 뇌라는 병렬 하드웨어 위에 갖은 노력 끝에 직렬 기호처리 과정을 심어 놓은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현재 컴퓨터의 알고리즘으로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컴퓨터가 직관적 사고나 학습의 능력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래의 지적 기능 실현은 인간처럼 순차형과 병렬형의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는 정보처리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4. 정보처리체계 : 표상과 절차

인지과학에서는 마음의 지식이 정보의 단순한 축적이 아니라 논리, 규칙, 개념, 추리, 상, 연결망 등과 같은 심적 표상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심적 표상에 작용하는 심적 절차를 통해 사고나 행동이 이루어진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규칙이나 개념과 같은 여러 가지의 심적표상들이 여러 가지 심적 절차를 조장한다.

(1) 마음은 정보처리 장치?

인간의 마음은 어떠한 조건에서 작용하게 되는 것일까?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조건을 찾고, 거기에서 마음이 어떻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가를 끊임없이 연구해 왔다. 이때 마음을 드러나게 하는 조건들을 자극이나 입력이라 하고, 이에 마음이 작용하여 마음의 본질이 밖으로 드러난 형태를 반응, 또는 출력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자극과 반응, 또는 입력과 출력 사이의 관계에서 마음의 내용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2 마음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

위와 같은 추론에서 입력과 출력 사이에 있는 마음을 어떠한 입장에서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 마음에 대해 추론된 내용은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과학으로서 심리학이 출발한 이래, 여러 가지의 서로 다른 접근 방법들이 제기되었고 그에 따라 상이한 '마음의 모델'이 제시되었다. 이제는 이러한 접근방법을 간략히 살펴보자.
이러한 접근방법 가운데에서 1960년대까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온 것은 행동주의 심리학이었다. 행동주의 심리학은 마음을 기계적인 자극과 반응의 중계장소일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즉 수동적인 스위치 연결 장소로 마음을 간주하였다. 다음 그림을 보자.

그림 3 행동주의의 접근

이러한 입장은 근원적으로 마음의 본질을 추론하기 위하여 실증적인 입장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본래 심리학의 목표인 마음의 본질을 배제하고 입력과 출력의 관계에만 집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정보처리적 인지심리학은 행동주의 심리학과는 달리 현실적인 인간의 마음의 구조와 작용을 반영하는 시각을 중시한다. 즉 이들은 입력과 출력 사이에 어떠한 심리적 과정이 일어나기에 이러한 연결이 가능하게 되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내용에 대한 추론 및 설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그들은 마음을 정보처리체계(Information Processing System : IPS)로 간주한다. 자극에서부터 정보를 추출하고, 이를 상징화하여 조직하고 처리하며 상징구조로 저장하고, 저장된 정보를 활용하여 처리결과를 산출하는 일련의 시스템을 가정한다.
정보처리 이론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마음이라는 정보처리체계(IPS)를 여러 개의 처리구조와 과정들의 통합체로서 본다. 처리구조라는 개념은 대체로 정보처리체계 내의 구성요소를 지칭하는데, 물리적 구성요소라기보다는 기능적 구성요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보처리과정에서 어떤 한 시점 또는 단계에 개인이 지니고 있는 정보, 즉 표상의 상태에 의해 규정되는 추상적인 구성요소라고 정의할 수 있다.
처리과정이란 이러한 구성요소 내의 기능, 또는 구성요소들 사이의 정적 또는 동적 관계성을 의미하며 이러한 것들이 심적조작(mental operations)으로서 실제로 구현되는 것을 가리킨다. 즉 구성요소들에 근거하여 정보, 즉 표상이 실제로 처리되는 활동들을 말한다. 이러한 처리과정의 대표적 예는 부호화(encoding), 저장, 인출(retrieval), 반응산출(response production) 등의 과정이 있다. 이러한 구조들과 처리과정의 개념을 사용하여 정보처리적 시각의 모델을 다시 표현하면 그림 4와 같다.

그림 4 정보처리이론의 접근

이와 같이 정보처리적 인지심리학은 인간의 인지과정을 중심으로 작업을 수행해 나가는데, 여기에 밑거름 역할을 한 것이 언어학과 컴퓨터과학이었다.

(2) 인지과학의 접근방법

이러한 심적 표상과 절차를 밝혀내기 위해 인지과학자들은 각각 학문분야에서 다양한 접근방법을 시도하였다(타가드, 1996). 인지심리학자는 인간의 심적 작용에 접근하는 심리실험을 강조하는데, 실험은 심적 표상과 절차를 가정하는 이론적 틀 안에서 이루어지며 이론적 틀을 구축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심적 작용과 유사한 연산절차를 만들어 시험해보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실험을 통해 인지과학의 목표에 다다르고자 하였다.
인공지능분야의 관심사는 이러한 인간의 마음의 여러 측면들에 대한 연산모델(computational model)을 개발하는 것이다. 즉 연산절차를 설계하고, 구상하고, 실험하는 일련의 과정이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마음의 작용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한다. 언어학자는 이러한 심리실험과 연산모델을 더욱 발전시켰다. 촘스키는 인간언어의 기본구조를 제공하는 문법원리의 정체를 표상과 연산절차로 설명하려고 한다. 신경과학자들은 뇌실험(brain scanning)을 통하여 인간의 정신활동시에 뇌의 어느 부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관찰하여 궁극적으로 심상과 언어이해과정을 고찰한다. 철학자들은 실험적 관찰이나 컴퓨터 모델을 거의 사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실험이나 연산방법의 기저에 깔려 있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시하면서 인지과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예를 들어 표상과 연산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는 과연 어떤 작업을 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등과 같은 마음과 신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고찰한다. 앞의 연구자들이 "인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접근한다면 철학자들은 "인간은 왜 생각하는가?"에 초점을 둔다고 할 수 있다.

(3) 마음의 연산-표상적 이해

인지과학의 기본가정은 인간의 사고는 마음의 표상구조와 연산절차에 의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표상과 연산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만, 마음의 연산-표상적 이해(이하 CRUM)가 최상의 방법이라고 가정한다. CRUM은 컴퓨터, 마음, 뇌 등의 3가지가 복합된 유추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타가드, 1966).

컴퓨터프로그램

마음

연결주의

요리

자료 구조
+ 알고리즘
= 프로그램 가동

심적표상
+ 연산절차
사고

뉴런/뉴런연결
+ 뉴런의 활동촉진
= 정보이동

재료
+ 조리법
= 요리

그림 5 연산의 방법

우리가 요리를 할 때의 과정을 고려하면 심적표상과 연산절차 관계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요리를 위해서는 엄선된 재료가 필요하고 이 재료를 요리할 수 있는 조리법이 필요하다. 이때 재료에 해당되는 것이 심적표상이라면 조리법은 연산절차라고 볼 수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의 경우도 자료 구조와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료구조는 여러 가지 형태구조를 가질 수 있고 알고리즘은 이를 처리하기 위한 기계적 절차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인지이론적 접근에서는 일련의 표상구조와 연산절차의 상관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연산모델의 접근에서는 표상구조와 연산절차 자체보다는 이를 컴퓨터프로그램에 비유하여 더 구체화하고 정밀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3+28=?'이라는 물음을 놓고 '어린이가 어떻게 덧셈을 배우는가"에 대해 고찰한다고 하였을 때, 인지이론적 측면에서는 먼저 '어린이가 어떻게 숫자를 표상하며, 덧셈을 하기 위해 어떻게 이 표상을 처리하는가'를 가정하고, '과연 '13'이 단일구조인가(13?) 복합구조인가(10+3?)', '어떻게 41이 나오는가'에 대한 절차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연산모델의 측면에서는 컴퓨터 연산과 인간의 덧셈연산을 비교하고 실험하면서 이들의 관계를 점검해 나간다.

5. 인지과학과 언어문제

인지과학은 마음의 구조를 밝히는 과학이며, 인간 마음의 상태와 움직임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다름아닌 인간의 언어이다. 그러므로 언어의 구조와 기능을 밝히는 것은 인지과학의 목표에 잘 부합되는 일이다. 이 장에서는 인지과학의 일부분으로서 언어의 문제를 바라보고, 최소주의 이론이 인지과학의 기본개념과 어떻게 부합되는지 고찰하기로 한다.

(1) 인지과학과 언어과학

언어학이란? 언어학은 인간언어와 관련된 인지과학의 한 분야로, 그 목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이해하는 것이다(스틸링스 외, 1995).

따라서 언어는 물리적 기호(physical signal : sound, gesture, mark on paper)를 가지고 의미를 표현하는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정보처리체계는 정보를 기호형식으로 나타내는 장치를 말하는데, 이때 기호표상이 새로운 표상을 만들기 위해 조작되고 변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보처리체계는 연산적(computational) 성격을 띤다. 이와 같이 언어를 인지체계의 일부분으로 간주하는 좁은 의미의 정의도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언어는 단지 특별한 인지체계일 뿐만 아니라 고도로 복잡한 행동형식이기도 해서, 개인의 인격이나 감정상태, 개인간의 상호작용, 문화적 발달, 그리고 사회구조 등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좁은 의미에서 언어를 다루고자 하며, 이러한 관점을 유지할 때 언어지식이 인간활동의 다른 측면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를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문법이란? 이러한 협의의 관점에 입각하면 문법이란 언어지식에 대한 형식적 이론이며, 문법의 역할은 언어의 양극단인 물리적 기호와 의미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규명하고, 이들이 상호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답도 제공하는 것이다. 한편 언어는 모국어화자가 갖고 있는 언어지식에 대해 과학적 가설을 구성할 수 있는 규칙과 원리들의 체계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을 유지하면 '언어=문법=규칙과 원리의 집합=언어능력(linguistic competence)'이라는 잠정적 도식도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문법의 규칙들이 결정하는 것은 언어구조이지, 실제 언어행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장기게임에서 장기의 규칙이 장기알 하나하나의 이동영역을 결정하지만 장기게임 자체의 성격을 규정하지는 않는 것과 같다.
언어생리학? 현대언어학에서는 언어학습기제나 정보처리의 속성들이 언어습득이나 문법의 형식을 설명할 수는 없다. 오히려 문법습득의 문제는 생리학적 측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즉 언어습득은 인간의 뇌조직에 내재하는 유전자의 속성을 통해 언어학습자가 습득하는 강력하고도 특별한 원리들에 의해 설명된다. 다시 말하면, 유전자에 내재하는 것은 일련의 원리들이고 이들이 언어를 발달시킬 때, 뇌의 언어담당조직을 통제하며, 개별언어의 규칙체계의 형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육체성장에 비유한 '언어성장'이라는 개념은 설득력을 갖는다.

(2) 언어이론의 이해 : 최소이론

촘스키(1993, 1994, 1995)의 최소이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기본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위에서 질문 ①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진다. 하나는, 인간 뇌의 인지체계 가운데 어떤 장소에서 어떤 조건들이 인간의 언어능력에 작용하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성이나 경제성, 대칭성, 비잉여성 등의 독립적인 개연성을 가진 개념적 자연성(Conceptual naturalness)을 고려해 볼 때, 과연 어떤 조건들이 인간의 언어능력에 작용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 최소이론에서 기본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사항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그림 6을 통해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개별언어(L), 음성형태(π), 논리형태(λ)를 가정하면 언어구조의 생성절차는 연산과정 CHL로 나타낼 수 있으며, 이는 다시 배번집합(N)에서 쌍(π, λ)으로의 투사과정으로 이해된다.

그림 6 최소이론의 문법체계

* 연산부=Computational Component/ PF(Phonetic Form)=음성형태/LF(Logical Form)=논리형태 Articulatory-Perceptual System=조음-지각체계/Conceptual-Intentional System=개념-의도 체계

(3) 언어능력의 주요부문

어휘부 : 인지과학적 측면, 특히 신경학적 측면에서 보면 문법의 규칙들은 뉴런의 연결망으로 계산될 수 있다. 다음은 어휘부에서 영어의 굴절접사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핀커, 1994 참조). 그림에서 O는 뉴런 모형을 뜻하고, 화살표는 시냅스(synapse)를 나타낸다. 어휘부에는 여러 뉴런집합과 연결을 담당하는 시냅스들이 있는데, 이들은 기본적인 논리관계(AND, OR, NOT)를 이용하여 정보를 연결하고 전달한다. 그림에는 사전에서 각 어휘를 담당하고 있는 뉴런집합과 굴절자질을 담당하는 뉴런집합, 그리고 어간과 접사의 발음을 담당하는 뉴런 집합이 있으며, 이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굴절화연산이 이루어진다.

그림 7 어휘부의 굴절접사화과정

음운부 : 문법의 음운부는 언어표상들이 어떻게 발음되는가를 결정하는 규칙을 포함하며, 일련의 음운적 지식을 가진 단어로 구성된다. 이때 단어는 청각영상과 같은 발음형태를 갖고 있는데, 청각영상은 어떻게 발음해라 하는 지시들과(조음체계) 그것을 인식하는 법에 대한 지시를(지각체계) 담고 있다. 기저음운표상에 음운규칙이 적용되어 음성표상이 도출되는 과정을 연상하면 조음-지각체계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통사부와 의미부 : 통사부는 통사구조의 연산체계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정보처리의 실질적 과정에 비유될 수 있다. 의미부는 최소이론에서는 기초적인 의미해석을 위한 자리이지만, 인지과학에서는 여러 분야에 걸친 공동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철학, 언어학, 심리학, 인공지능 등 모든 분야에서 나름대로 의미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언어 의미론자들은 화자들이 논항구조를 평가하고 모순된 문장과 애매한 문장을 구별하며 관용적 표현들을 사용하는 것 등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철학자들은(특히 분석철학에서) 의미분석을 통해 언어의 문제를 논리학과 연관지어 연구하며, 심리학자는 개념형성, 추론, 기억 등과 관련하여 의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인공지능연구자는 전문가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 의미정보의 표상에 관한 일련의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6. 인지과학의 응용 가능성

이 장에서는 인지과학과 관련하여 진행되는 신경과학과 소프트과학에서의 연구과제 현황을 통해 인지과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여기에서 한국어학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1) 뇌 연구과제

신경과학(Neuro-Science)이란 뇌를 연구하는 분야인데, 이 연구야말로 여러 과학분야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정신이란 무엇인가, 마음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의 열쇠가 바로 뇌의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다. 신경 과학의 연구 대상은 뇌의 모든 국면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뇌의 구조, 뇌의 발달, 뇌의 뉴런-신경세포에서 화학적 전기적 현상, 여러 뉴런간의 상호작용 등-이 모든 것이 신경과학의 대상이다.
미국의 뇌연구 :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뇌 연구 프로젝트는 미국과 일본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뇌 연구의 10년(1990년 부터 2000년)"이라는 기치 아래 연간 8천억 원 이상의 연구비가 투자된 'Human Brain Project'가 유명하다. 미국내 유명 연구그룹들이 참여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레이건 행정부에 의해 시작된 뇌 연구의 가장 큰 규모이다.
일본의 뇌연구 : 일본의 경우도 뇌 연구에서는 상당히 발전되어 있다. 일본 과학기술청은 1996년 7월 4일 20년간 2조엔(약 14조 2천억원)을 뇌 연구에 투입키로 하면서 국가 차원에서 본격적인 뇌 연구에 착수하고 있다. 이는 90년대를 "뇌의 10년"으로 선포한 미국의 뇌 관련 연구비를 내년부터 10배로 늘여 일본 최대연구소인 이화학연구소 산하에 연구원 2천 명 규모의 뇌과학 종합연구소를 설립해 사고와 기억 등 뇌의 다양한 기능과 뇌 기능 계측장비, 인공지능 등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기로 했다.
한국의 뇌연구 : 우리의 경우도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 뒤질 수 없다는 인식으로 과학기술처에서 뇌 연구개발 기본계획 "브레인텍21"을 98년부터 시행하기로 하였다. 뇌 연구는 아직 개발 단계에 있는 기술이므로 선, 후진국 사이의 차이가 크지 않고 산업화에 따른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핵심 원천기술분야이므로, 적정 연구지원을 통한 기술확보를 통해 분야별로 비교우위를 확보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국내의 분석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98년부터 10년 동안 총 9,260억 원을 투자해 뇌 연구에 본격 나서기로 했다. 그 내용을 보면 인간의 두뇌작용을 모방해 '인간다운 기능의 기계'를 만들고자 하는 '뇌과학'과 각종 뇌관련 질환을 정복하기 위한 '뇌의약학' 등 두 분야이다. 뇌과학 분야는 인간의 식별능력과 학습능력을 공학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신경회로망'과 '초고속 병렬컴퓨터'의 개발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는 두개의 분야로 나누어 추진되는 뇌연구를 위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뇌과학센터'를, 국립보건원에 '뇌의약학연구센터'를 각각 설립키로 하였다. 이와 같이 앞으로 뇌 연구과제는 미래의 핵심적인 사업이며, 특히 뇌과학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이나 정보처리면에서 한국어학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2) 소프트과학

신경과학 외에도 인지과학이 활용될 수 있는 분야는 많다(이건효, 1997). 첫째 인간의 감각능력을 센서공학을 들 수 있다. 이는 감각과정 가운데서도 가장 초기과정에 속하는 신호탐지 기능을 공학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는 환경안에서 인간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대한 연구로 감성공학을 꼽을 수 있다. 이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 인간 수행의 효율성 및 오류에 대한 연구로 인간공학, 인지공학과 더불어 이루어지며, 최근 선진 7개국 진입을 위한 과학기술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셋째는 인간의 느낌, 동시, 정서에 대한 연구를 제품에 활용하는 방안이다. 미래의 제품들은 지능적이어야 함은 물론 인간에게 적절한 느낌과 정서를 제공해 줄 수 있어야만 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경우 과학기술처에서는 국책기술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96년부터 "소프트과학기술개발사업"을 추진 시행하고 있다. '인터페이스 기술 및 지능형 기계의 인지요소의 응용기술 확보'라는 목표를 가지고 인간과 기계와 환경의 상호작용의 기반 및 응용기술을 확보하고, 지능형 기계의 인지요소 기반구축과 응용기술 확보를 위해 인지과학과 산업디자인, 그리고 인간공학과 자연과학 등의 학제간의 협동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7. 한국어학의 역할과 전망

미래의 정보화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우리는 학제간의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인지과학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인지과학은 지능의 정보처리체계의 확립과 신경과학적 기초를 제공하며,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의 원리에 대한 해답을 과학적으로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초적 연구의 바탕에는 언어라고 하는 부분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마음과 컴퓨터, 그리고 뇌의 정보처리과정을 고려해 볼 때, 그 핵심적인 내용은 언어가 담당하고 있으며, 이 언어를 통해서 그 본질과 모델이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본고에서 인지과학에서 언어가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본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이제 언어의 문제는 더 이상 추상적이고 관념론적인 연구대상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제 언어학은 관념론의 철학적 울타리 속에 유몰론적 가치관을 포함시켜 명실상부한 언어의 본질을 해명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었다거나 언어는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정신작용의 결과라든가 하는 가정도 이제는 그리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언어와 마음에 대해 심리학적 측면보다도 신경학적, 생리학적 측면이 더욱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진정한 마음과 언어의 본질은 이러한 여러 가지 측면을 모두 갖고 있는지도 모르며, 이것이 바로 인지과학이라는 학제간의 종합학문이 탄생한 배경일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필자는 많은 한국어학자가 이러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지금도 자연언어 처리나 한국어정보화과제에 많은 국어학자들이 직ㆍ간접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현재의 시대적 사명과 정신을 고려해 볼 때 한국어학은 이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첫째로 언어가 인지과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실로 엄청나기 때문이고, 둘째는 우리의 인지과학은 한국어를 통해 가능하고 한국어에 대한 올바른 과학적 인식없이는 그 어떠한 체계적인 인지과학적 연구도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