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두뇌

 

마음의 구조 : Ray Jackendoff 지음, 이정민.김정란 옮김, 태학사, 2000 (원서 : Patterns in the mind : language and human nature, BasicBooks, 1994), page 235 ~ 257.

 

현대의 두뇌과학은 어디까지 와 있는가

두뇌손상에 의한 언어장애

미국수화에서의 실어증

두뇌의 차이와 유연성

 

현대의 두뇌과학은 어디까지 와 있는가

4 장에서 나는 언어에 대한 기능주의적 접근 방법을 소개하였는데, 이는 두뇌가 언어의 구조를 실제로 어떻게 표시하는가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언어구조의 추상적인 구성체계를 연구하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언어학자들은 기능주의적 입장에서 연구를 하며, 이제까지의 우리의 논의 역시 기능주의적인 관점을 취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식은 커다란 미스터리를 남긴다. 두뇌는 그 일들을 과연 어떻게 수행하는 것일까? 내재문법의 구조는 실제로 뉴런 (신경세포) 속에서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가? 영어 화자의 두뇌는 프랑스어 화자의 두뇌 - 혹은 미국수화 화자의 두뇌와 어떻게 다른가? 화자가 길고 복잡한 구조를 갖는 문장을 형성하기 위해 레고 블록처럼 언어적 형태를 여러 개 결합시킬 때 뉴런은 무슨 일을 하는가?

이런 종류의 질문은 내재문법에 대한 주장과 관련되어 있다. 선험지식에 대한 주장과 관련하여, 또 언어학습과 관련하여 선험지식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서도 비슷한 질문이 떠오른다. 어린이가 언어학습 과정에서 사용하는 지식인 보편문법은 두뇌구조상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가? 어린아이가 언어를 배울 때 두뇌는 어떻게 변화할까? 두뇌구조가 성장하는 형태는 언어습득의 단계를 어떻게 설명해 주는가? 또 결정적 시기의 끝 무렵에 가면 두뇌가 어떻게 변화하기에 언어학습이 힘들어 지는 걸까?

지난 이삼십 년 동안 두뇌과학의 놀라운 진보가 이루어졌는데, 신문 방송을 통해서 사람들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두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게 될 거라는 인상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긴 하지만, 신경과학의 주요 연구 방향은, 비록 놀랍기는 해도, 내가 방금 전에 이야기했던 그런 종류의 질문을 다룰 수 있는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다고 난 느낀다. 이러한 연구가 얼마나 진전되었는지를 여기서 간략히 소개하도록 하겠다.

우선 좋은 소식부터 말할까 한다. 두뇌가 그저 커다란 일반목적용의 장치가 아니라는 것, 두뇌의 많은 기능들이 고도로 영역화되어 있음 (특정 기능이 특정한 두뇌영역에 의해서 수행되는 것) 이 충분히 밝혀졌다. 언뜻 보기에는 분화 (分化) 되지 않은 균일한 과정으로 보이는 시각 (視覺) 조차도 사실은 수많은 하위기능으로 (혹은 4 장에서 나온 단원으로) 나뉘어져 있고, 이들 각각의 단원은 두뇌에 자기 자리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주위에 있는 사물들의 위치, 모양, 색깔을 알아내는 데 쓰이는 두뇌영역이 각각 따로 있고, 이들은 시신경의 뉴런과 연결되어 있다. 심지어는 아는 얼굴을 인식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라고 생각되는 영역도 있다. 15 장에서 이 기능의 목적에 대해서 논의할 것이다.

이들 영역이 우연히 그 부분에 위치하는 것이 아닌 또한 분명하다. 특정 영역이 정확히 어디에 위치하는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모양을 인식하는 영역은 언제나 전두엽 (前頭葉) 에 있고 위치를 인식하는 영역은 언제나 두정엽 (頭頂葉) 에 있어 이 두 개의 위치가 바뀌는 경우란 없다. 그리고 비슷한 기능을 가진 두뇌영역은 영장류에서도 비슷한 위치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두뇌구조와 기능의 미세한 분화는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듯하다.

그런데 이들 영역을 어떻게 알아낼까? 가장 잘 알려진 기법은 CAT (computerized axial tomography 컴퓨터 단층 촬영법) 과 MRI (magnetic resonance imagery 자기 공명 영상법), 그리고 PET (position emission tomography 양전자 방사 단층 촬영법) 이다. CAT 사진과 MRI 사진은 두뇌의 해부학적 구조를 정교한 영상으로 보여준다. PET 사진은 덜 자세하지만, 보고 듣고 말하고 암산을 하는 등의 여러 가지 인지활동을 수행할 때 두뇌의 어떤 부분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PET 사진은 외견상 분명히 같아 보이는 활동 사이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 준다 : 예를 들어 소리내어 수를 셀 때 활동하는 뇌의 부위가 속으로 수를 셀 때 활동하는 부위와 다르다. PET 사진은 또한 정신분열증 같은 비정상적인 두뇌활동을 알아내는 데도 쓰일 수 있다.

두뇌의 영역화를 알아내기 위한 낡은 기법으로는 EEG (electro - encephalogram 전자 뇌수 X - ray 사진) 가 있고, 좀 으스스하긴 하지만 환자의 뇌를 열어 놓은 가운데 의식이 있는 환자의 뇌의 여러 부분에 전기자극을 가하는 방법이 있다 (두뇌 자체는 통증을 느끼는 수용체가 없으므로 고통스럽지는 않다). 동물실험은 또한 전극을 두뇌에 심는 방법을 가능케 하는데, 이렇게 하면 동물이 활동하며 돌아다니는 동안 개개의 뉴런의 활동을 기록할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두뇌의 영역화에 대한 가장 흔한 접근 방법은 부상이나 뇌졸중, 종양, 뇌 수술 (예를 들어 간질 발작의 진원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 등의 이유로 두뇌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을 연구하는 것이다. 지금은 어디가 손상되었는지를 CAT 이나 MRI 사진으로 알아낼 수 있지만 옛날에는 죽은 후에 검시하는 수밖에 없었기에 연구하기가 훨씬 더 어려웠다. 두뇌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알아내는 수많은 실험기법이 그 동안 고안되었다.

이들 기법에 의해서 발견된 장애 중 일부는 꽤 놀라운 것이다. 예를 들어서 뇌 뒤에 스트라이에이트 피질 striate cortex 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눈에서 전해지는 시각적인 입력을 맨 처음 받아들이는 부분 중의 하나이다. 두뇌 어느 한 쪽이 이 부위에 손상을 입으면 반대쪽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손상을 입은 사람에게 눈이 먼 쪽을 사용해야만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게끔 하여 물체를 보여 주면, 그들은 자신이 무언가를 보고있다는 것을 강력히 부인한다. 그러나 실험자가 "음, 그냥 재미 삼아서 말이지요, 여기 뭔가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러면 그 물체가 어디에 있게 될까요? 물론 말이 안 되는 얘기지만, 그렇지만 한번 지적해 주실래요?" 이런 식으로 자극을 주면 그들은 놀랄 정도로 잘 맞춘다. 이 "맹목시 (盲目視)" 현상에 대한 최근의 발견은 신경과학자뿐 아니라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데, 이것이 본다는 것과 의식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인 개념에 도전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훨씬 많이 알려진 것은 발작을 억제하기 위해서 뇌량 (腦梁) corpus callosum, 즉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섬유질 다발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은 사람들의 경우이다. 좌측 시야에 야한 사진을 보여주면 그들은 얼굴을 붉히거나 낄낄거리는 등 그에 걸맞은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으면 아무 것도 안 보았다고 대답한다. 좌뇌에 위치한 언어부위가 좌측 시야를 담당하고 있는 우뇌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의 행동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이들은 두 개의 독립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의식이 깃들 수 있는 두 개의 독립적인 자리를 갖고 있는 것인가? 혹은 우뇌에 의식이 없는 것인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그 외에도 이 문제의 여러 다른 측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많은 얘기를 했다.

두뇌과학을 대중화시킨 많은 연구들이 좌뇌는 "분석적" analytic 이고 우뇌는 "전일적" holistic, 심지어는 "감정적" emotional 이라고 주장하면서 좌뇌와 우뇌의 비대칭성에만 거의 전적인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또한 지적하고 싶다. 여기에 어느 정도의 진실이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좌뇌와 우뇌는 훨씬 더 세부적인 부분으로 나뉘어지며, 그들의 일부는 비대칭적이고 또 일부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서 언어는 대개 좌뇌에, 또 얼굴 인식은 오른쪽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하급의 시지각 과정, 촉각, 운동적 통제는 양쪽 뇌에 거의 대칭적으로 나뉘어져 있다. 게다가 좌 - 우 비대칭의 문제에 더해서 신경과학자들은 뇌의 위와 아래, 또 앞과 뒤의 "스타일"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결국 그 동안 많이 대중화된 좌 - 우 구분의 문제는 뇌와 관련된 여러 가지 구분 중의 하나일 뿐이다.

두뇌의 영역화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그 동안 기능주의적 입장에서 언어를 연구하면서 우리가 갖게 된 전반적인 견해와 궤를 같이 한다. 만약 두뇌가 전반적으로 수많은 전문화, 특수화된 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리고 이러한 특수기능이 유전적인 통제 아래 발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선험지식에 대한 주장을 유전적으로 결정된 언어를 위한 특수장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로 삼아도 그리 무리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언어가 (혹은 다른 기능이) 두뇌 속에서 분화 (分化) 되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밝힌다 해도, 그 다음 세부사항으로 들어가면 우리의 지식은 조악한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들 기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모른다. 어떤 사람이 TV 수상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 "이 기계 속에는 여러 개의 특수화된 장치가 들어 있습니다. 안테나에서 신호를 받아서, 당신이 채널을 돌리면 그에 반응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은 또 다른 부분으로 신호를 전달하지요. 거기서는 받은 신호를 소리와 화상으로 나눕니다. 음성신호는 다시 다른 부분으로 전달되는데…." 이 경우 "어느 정도 이 설명이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첫 번째 부분은 어떻게 신호를 받아들이며, 또 다음 부분은 신호를 어떻게 분리하는지요?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모르겠군요" 라고 불평한다해서 우리를 나무랄 사람은 없으리라.

두뇌의 영역화 연구에 대해서도 나는 똑같은 생각이 든다. 두뇌의 전문화된 언어영역은 어떻게 발화음을 결합하여 음절을 만드는가? 그리고 어떻게 형용사와 명사를 결합하여 명사구로 만드는가? 뉴런은 "바나나" 라는 말을 - 이 단어의 음운구조와 이것이 명사라는 사실을 어떻게 저장하는가? 명사가 뇌 속에서 저장되는 방식은 동사와 어떻게 다른가? 등등. 두뇌의 여러 기능들이 영역화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마도 명사와 동사가 저장되어 있는 장소는 냄새나 맛이 저장되어 있는 장소와 다르다는 것을 - 심지어는 명사와 동사도 서로 다른 장소에 저장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명사와 동사가 그 특수화된 영역 내에서 어떻게 신경학적으로 작동하는지, 혹은 어떻게 뉴런이 명사와 동사를 합쳐서 우리가 문장을 만들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두뇌 연구에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또 하나의 분야는 신경전달물질이라 불리는 화학물질을 다루는 분야이다. 신경전달물질은 각기 다른 종류의 뉴런에 영향을 주어 기분, 주의력, 신체적 통제면에서 전반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잘 알려진 경우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자율신경을 관장하는 핵중추 basal ganglia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도파민의 공급에 문제가 있거나 고갈되면 파킨슨병이라는 동작장애가 일어난다. 이런 종류의 연구는 대단히 흥미롭고 의학적으로도 중요한 연구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목적에 이용되기에는 너무 단위가 크다. 우리는 "발화영역이 전반적으로 자극되는가 혹은 억제되는가" 하는 것보다는 좀더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내재문법의 작동을 알기 위해서는 발화영역 내의 보다 세밀한 구조를 연구해야 한다.

신경계의 세부구조에 대한 연구는 어떤가? 개개의 뉴런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것이 알려져 있다 : 뉴런이 점화할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또 시냅스를 통해서 뉴런에서 뉴런으로 어떻게 신호가 전달되는지, 새로운 입력형태가 주어졌을 때 어떻게 뉴런이 자신의 행동형태를 바꿀 수 있는지 (즉 학습의 신경적 기초) 등등. 그러나 앞서와 마찬가지로, 매우 매혹적이기는 하지만 이런 연구는 몇몇 지나치게 단순한 가설을 배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외에는, '어떻게 뉴런이 언어행위를 만들어 내는가' 라고 하는 질문에 대해서 우리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언어의 어떤 측면도 뉴런 한 개와 거기 달린 시냅스보다는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아이스크림" 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특정한 세포가 있어서 그 단어를 듣거나 생각할 때마다 이 세포가 점화되는 그런 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문제는 보다 큰 세포의 집합이 어떻게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연구는 우리의 목적에 이용되기에는 너무 단위가 작다.

내재문법에 대한 신경차원의 설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뉴런의 집합들이 서로 결합하여 어떻게 행동하는가 - 일단 (一團) 의 뉴런 (수백? 수천? 혹은 수백만 개?) 속에 있는 하나 하나의 뉴런이 서로에게 어떻게 반응하는가, 또 조직 전체에 주어진 입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이해하여야 한다. 이러한 연구는 아주 초보적인 단계에 있다. 상호작용하는 수십 개의 뉴런으로 구성된 체계 하나를 자세하게 이해하는 일은 지금으로서는 전적인 묘기 (妙技) 이다. 소위 "신경망" 이라 불리는 보다 큰 체계는 컴퓨터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이 계통의 연구는 "연결주의" connectionism 혹은 "병렬 분포적 처리" parallel distribution processing 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분야의 학자들은 그 동안 기능주의적 관점 하에서 밝혀진 언어의 풍부한 내용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지금 지난 수십 년 동안 신경과학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발전들을 깎아 내리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언어의 구조와 학습에 대한 연구에 의해서 제기된 것과 같은 그런 질문에 우리가 답하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먼 듯해서 하는 말일 뿐이다. 물론 그렇다해도 우리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하고, 어디서 답이 나올까 관심을 갖고 신경과학이 제공하는 힌트를 얻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살펴야 한다.

두뇌손상에 의한 언어장애

모든 단서조항을 달아 놓았으니 이제는 언어와 두뇌에 대해서 알려진 것을 간략히 정리하고, 우리가 이로부터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알아보자.

두뇌손상에 의한 언어장애에 대한 연구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실상 언어의 영역화는 최초로 영역화가 발견된 사례 중 하나였으며, 다른 두뇌 연구에 주요한 자극제로 작용하였다.

1864 년 프랑스의 외과의사인 브로카 Paul Broca 는, 생전에 특정한 언어장애를 가진 환자를 검시한 결과 좌뇌 전두엽의 특정 부분에 손상이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는 또한 우뇌의 똑같은 부분에 가해진 손상을 말하는 데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이 문제의 부분은 브로카 영역 Broca's area 으로, 이 때의 증상은 브로카 실어증 Broca's aphasia 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브로카 실어증 환자는 다른 사람의 말은 알아듣는 듯하지만, 그들 자신의 말은 느리고, 힘이 들며, 발음이 불분명하다. 그들은 단어를 찾는 데 분명히 어려움을 겪는다. 다음의 인용은 브로카 실어증 환자의 것으로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내가 입수할 수 있었던 이 자료에서는 발음상의 문제는 기록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단지 문장을 느리게 말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문장에서 단어들을 연결시켜 주는 문법적인 조직, 예를 들어 관사라든지, 조동사, 시제 등이 몽땅 빠진 것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브로카 실어증 환자의 증세를 문법결함 실어증 agrammatism 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브로카 실어증 환자는 때때로 유창하게 욕설을 하고 노래도 곧잘 부를 수 있다).

이와는 상당히 다른 일련의 증세가 1874 년에 카알 베르니케 Karl Wernicke 에 의해서 확인되었다. 베르니케 실어증 Wernicke's aphasia 을 겪고 있는 사람은 브로카 영역은 말짱한 반면, 좌뇌 측두엽의 베르니케 영역 Wernicke's area 이라 불리는 곳에 손상이 있다. 베르니케 실어증 환자의 말은 아주 유창하다 - 유창하다 못해서 아주 단숨에 말을 쏟아 놓는 식이다. 그러나 몇 개의 단어를 따로 놓고 보면 어느 정도 말이 되는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는 말이 안되고, 무의미한 말을 자주 끼워 넣기도 한다.

         베르니케 실어증 환자는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건네는 말도 잘 알아듣는 것 같지 않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경우 이 사람들은 지시를 잘 따르지 못한다. 자신의 장애를 고통스럽게 잘 의식하고 있는 브로카 실어증 환자와는 대조적으로 베르니케 실어증 환자들은 자신의 말이 의미가 안 통한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고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그림 11.1  좌뇌의 언어와 관련이 있는 부위들

두뇌손상에 의한 언어장애에는 그 외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 무단어 실어증 anomic aphasia 은 낱말을 생각해낼 수 없는 장애인데, 이는 우리가 모두가 가끔 경험하는, 어떤 단어나 이름을 생각해 낼 수 없는 상태가 보다 심하게 나타나는 증세이다. 전도 (傳導) 실어증 환자 conduction aphasic 는 상대적으로 유창하고 의미 있는 말을 하지만 발음상의 오류가 많고, 이상하게도 딴 사람의 문장을 따라하는 데 어려움을 보인다. 읽기에 문제를 보이는 장애도 여럿 있다 : 말할 수는 있어도 읽지 못하는 사람, 읽기는 하지만 쓰지 못하는 사람, 쓸 수 있어도 읽지를 못하는 사람 (자기가 쓴 것조차도!) 등등. 정말 이상한  (내가 보기에는 말이다) 증세 중의 하나로 심층 난독증 deep dyslexia 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환자에게 "사과" 라는 단어를 읽으라고 하면 "과일" 이나 "꽃" 이라고 한다 - 관련은 있지만 틀린 단어로 읽는 것이다. 관련 있는 단어가 의식 속에 들어 와서는 출력에 영향을 미치는데, 말하는 사람이 이것이 맞는 응답인지를 점검하지 않는 (또는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실제에 있어서는 이들 증세가 전적으로 "깨끗한" 경우란 거의 없다 : 뇌졸중이 일어날 때 한 영역만 손상을 입고 그 주변의 다른 영역은 다치지 않는 그런 경우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두뇌영역의 경계가 "깨끗" 한지도 확실치 않다. 그러나 관련문헌의 대부분이 제시하는 방향을 따라 일단은 이러한 이상적인 분류를 받아들이기로 하자.

뭐가 잘못되어 이런 실어증이 생기는 것일까? 널리 알려진 접근 방식 중 하나는 실어증을 일반적인 개념적 사고에 장애가 생긴 것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인지적 기능의 전반적인 저하를 가져오는 백치증 dementia 이라는 병이 있는데 이것은 가령 알츠하이머병 같은 것으로 인해 두뇌가 광범위하게 쇠퇴한 결과로 생기는 병이다. 이 병은 단어 찾기나 몸짓으로 흉내내는 능력, 의도적인 동작, 기억, 논리 등에 동시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실어증은 다르다. 많은 경우 실어증은 비언어적인 능력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와 반대로, 두뇌손상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다른 인지기능은 상실했지만 문법적인 문장을 만드는 능력은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이 사실은 언어능력이 일반목적적인 인지기능과 상당히 다른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원주 : 언어의 특수성에 대한 이 증거는, 9 장에서 논의한 여러 가지 유전적인 언어장애에서 끌어낸 증거와 유사하다.).

베르니케 자신은 실어증을 달리 설명했다. 그는 베르니케 영역이 청각과 관련된 영역에 가깝다는 것과 브로카 영역은 발성기관을 운동적으로 통제하는 영역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는 베르니케 영역은 단어의 청각적인 기억을 저장하고, 브로카 영역은 단어를 어떻게 발음하는가에 대한 기억을 저장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베르니케 실어증 환자가 말을 할 수는 있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심지어는 자신의 말까지도) 과 브로카 실어증 환자는 그 반대인 것을 잘 설명해 준다.

그러나 베르니케의 설명은 비록 언어능력이 분화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적절한 설명은 못된다. 언어는 그저 단어의 소리와 그것을 어떻게 발음하는가를 아는 지식이 아니다. 오히려 청각적 능력과 운동적 능력은 언어의 가장 피상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흥미로운 부분은 언어생성과 언어지각을 구성하는 추상적인 음운적, 통사적 형태에 들어 있다. 베르니케의 이론은 이들 능력이 어떻게 뇌 속에서 발현하며 어떻게 이 능력에 문제가 생기는가에 대해서 아무런 쓸모 있는 대답을 주지 못한다 (원주 : 그렇다 해도 베르니케를 탓할 수는 없다. 1874 년에는 언어의 심리학에 대해서 거의 알려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어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볼 때, 두뇌를 다룬 최근의 텔레비전 시리즈에서처럼 베르니케의 가설을 가지고 실어증을 설명하는 것을 오늘날에는 용서하기 힘들다.).

베르니케식 설명의 심각한 문제는 1970 년대에 발견되었다. 그 때까지는 브로카 실어증 환자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은 알아듣긴 하지만 말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브로카 실어증은 단순히 언어생성의 문제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브로카 실어증 환자는 남의 말을 이해하는 데도 역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문제는 사실상 이들이 말을 할 때 전형적으로 빼먹곤 하는 것, 즉 문법적인 구조를 표시하는 부분에 있었다.

그들의 이해력 장애를 드러내는 실험 한 종류를 여기에 보이겠다. 브로카 실어증 환자에게 소년이 소녀를 때리고 있는 그림과 소녀가 소년을 때리고 있는 그림을 보여준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는 그에게 묻는다 : "Which of these pictures goes with the sentence I'm now going to say to you?" (이 그림 중에서 제가 이제 말하는 문장에 해당하는 것은 어느 것이죠?) 그리고서는 문장 (3a) 를 말하면 이 환자는 맞는 그림을 고르지만, 문장 (3b) 를 말하면 환자는 아무 그림이나 고른다.

분명히 수동태 문장 (1b) 의 "was" 와 "by" 라는 기능어가 이들에게 문제가 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브로카 실어증 환자는 문장 (4a) 와 (4b) 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분명히 기능어 "the" 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며, 따라서 이들에게는 두 문장이 다 (4c) 처럼 들린다.

브로카 실어증은 대개 이해력과 생성능력을 동시에 손상시키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공유하고 있는 내재문법의 어떤 부분 - 음운적 혹은 통사적 구조의 처리장치에 손상이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베르니케 실어증 환자들은 언어와 사고를 연결하는 부위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에도 역시 이해력과 생성 능력 모두가 다 영향을 받는다. 앞서 우리가 간략하게 언어의 구성을 나타낸 기능주의적인 그림으로 다시 돌아가서, 대략 그림 11.2 에서 표시된 부분에 이들 실어증을 위치시킬 수 있겠다.

그림 11.2  브로카 실어증과 베르니케 실어증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언어적 정보의 부위

이것을 더 분명히 밝히려는, 즉 내재문법 중의 정확히 어떤 부분에 손상이 왔는가를 알아낼 수 있는 이론을 만들려는 시도에서 이루어진 아주 흥미로운 실험이 그 동안 많이 있었다. 비록 이들 실험으로부터 브로카 실어증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는 있었지만, 이 이론 중 어느 것도 아직까지는 전적으로 만족스러운 것으로 판명되지 않았다. 여기서 그들 여러 이론을 소개하고 그들이 서로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한다면 너무 장황해 질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브로카 실어증 환자가 음운론적인 문제와 동시에 통사론적인 문제를 갖고 있으므로 - 그리고 음운론이나 통사론 어느 한쪽으로 더 구체적인 장애를 보이는 경우는 그리 자주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 브로카 실어증에 대해서 단일한 문법적인 문제를 찾으려 노력하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 차라리 어떤 연구자들은 브로카 실어증이 언어구조의 정교한 세부사항을 처리하는 능력에 있어서의 일반적인 장애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한, 음운적 능력과 통사적 능력이 브로카 영역에 밀접하게 분포되어 있어서 어느 한 부분에 손상이 오면 다른 쪽도 반드시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일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집중적인 연구가 이루어진 브로카 실어증의 경우에서조차도 우리는 장애증상과 손상당한 두뇌영역, 그리고 기능주의적인 문법 조직 사이의 분명한 관계를 알아내기가 힘들다. 그러니 신경언어학자들이 그보다 훨씬 덜 관심을 보여 온 다른 실어증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다.

미국수화에서의 실어증

지난 십 년 간 이루어졌던 가장 놀라운 발견 중의 하나는, 브로카 실어증과 베르니케 실어증이 미국수화 사용자로서 두뇌손상을 입은 사람들 가운데도 나타나며, 이들 역시 같은 두뇌영역에 손상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수화를 쓰는 브로카 실어증 환자는 천천히 수화를 하며, 동작의 위치와 스타일에서 모든 문법적인 어형변화를 빼먹곤 한다. 또 미국수화를 쓰는 베르니케 실어증 환자는 유창하게 그러나 혼란스럽게 수화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데 뚜렷이 문제를 보인다. 그리고 수화 실어증 환자는 언어장애에도 불구하고 팬터마임을 만들 수도 있고 이해할 수도 있으며 언어적인 목적 외로 손을 쓰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것 뿐이 아니다. 공간에 대한 이해에 장애를 가져오는 우뇌의 손상이 있는데, 보통 좌측 무시 left neglect 라고 불리는 증세를 낳는다. 이 장애를 가진 사람은 시야의 왼쪽에 있는 물체를 보지 못하고, 그림을 그려도 왼쪽을 그리지 못하며, 옷을 입을 때도 몸 왼쪽에는 옷을 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미국수화의 화자일 경우, 미국수화의 통사적 목적으로 수화를 할 때만은 자기 앞에 있는 왼쪽 수화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또 어떤 종류의 우뇌손상은 얼굴표정을 만드는 능력을 앗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손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수화를 하는 환자는 미국수화의 문법에 관련된 얼굴표정을 똑같은 근육을 사용해서 만들어낸다.

이들 각각의 사례에서 장애가 선택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이것이 운동적 마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 환자들이 근육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여기서 손상을 입은 것은 일관된 동작을 위하여 근육의 사용을 조직하는 부위이다. 그리고 미국수화의 동작을 조직하는 두뇌부위는 일반적인 동작을 조직하는 부위와 다른 것이다.

이 결과가 왜 그토록 우리의 흥미를 끄는지 아마 당신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결과는, 우리가 그 동안 기능주의적인 방식에 기초하여 미국수화에 대해서 주장한 거의 모든 것을 두뇌손상에서 나온 증거를 통해 확인시켜 주고 있다.

1. 미국수화는 언어이며, 팬터마임과 얼굴표정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팬터마임과 얼굴 표정과는 달리 언어영역에 영역화되어 있다.

2. 미국수화에서의 공간사용은 문법적이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제스처의 집합이 아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위해서 공간을 사용하는 기능은 미국수화에서 문법적으로 공간을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영역에 영역화되어 있다.

3. 미국수화의 문법은 몇 개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구어 문법과 전적으로 유사하다. 그리고 영어 사용자와 미국수화 사용자에게서 일어나는 두뇌손상은 동일한 장애를 초래한다.

4. 수화와 구어가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은 내재문법이 추상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내재문법은 청각기관이나 발성기관의 기능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수화 실어증이 존재한다는 것은 언어영역에 대한 베르니케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 즉 언어영역이 청각·음성적 방식과 특별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언어적 기능과 관련이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구어와 수화를 막론하고 실어증에 대한 연구들은 정말 놀랍다 - 두뇌손상을 입은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일관된 실험결과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연구들도 역시 다른 신경과학 분야의 연구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비록 우리가 기능상의 특정 장애가 두뇌의 특정 부분에 대한 손상 때문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할지라도, 이 사실은 그 두뇌부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 그런 작업을 위해서 뉴런이 어떤 식으로 프로그램되어 있는가를 우리는 모른다. 궁극적으로 언어가 (혹은 그 외 다른 어떤 것이라도) 뇌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두뇌의 차이와 유연성

언어의 영역화에 대해서 내가 그 동안 말한 것은 집안에 왼손잡이가 없는 오른손잡이 성인의 경우에 가장 잘 적용된다. 다른 그룹 - 어린이, 왼손잡이, 왼손잡이 친척 (가족) 이 있는 오른손잡이 등 - 의 경우에는, 좌뇌의 "언어" 영역에 가해진 손상으로 인한 실어증의 정도가 확률상 그리 심하지 않고, 회복될 확률도 더 높다 (원주 : 어떤 학자들은 언어의 영역화에 대한 일반론의 "예외" 에 여성을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그에 대한 확고한 증거는 없다.).

어떤 차이일까?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이들의 경우에는 (1) 언어기능이 좌뇌의 보다 넓은 부분에 흩어져서 있을 가능성, 혹은 (2) 언어기능이 좌뇌뿐만 아니라 우뇌에도 어느 정도 있을 가능성, 혹은 (3) 이 두 가지가 다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그것이다. 이 중의 어느 것이 옳든지간에, 언어능력과 관련한 자연 대 (對) 환경이라는 우리의 주제와 관련하여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친척 중에 왼손잡이가 없는 오른손잡이라 해서, 왼손잡이나 친척 중에 왼손잡이가 있는 오른손잡이와 다른 무엇을 경험하며 자랐을 거라고 - 최소한 언어의 영역화의 차이와 관련해서 -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차이는 분명히 유전적인 입력과 관련이 있다.

게다가 심지어는 갓난아기까지도 (대부분의 부위에서) 좌뇌와 우뇌의 크기가 다르며, 특히 좌뇌의 언어영역이 눈에 띄게 크다. 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언어가 왼쪽에 있게 된 것이 크기만의 문제인 것으로 추측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비대칭은 원숭이의 경우에도 나타나므로 이것은 아마도 전적으로 언어하고만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 언어가 왼쪽에 있게 된 것은 보다 더 일반적인 이유에 기인하는 것 같다.

언어기능은 얼마나 우뇌에 분포하고 있을까? 여기에 대한 좋은 테스트로서, 전에 언급했던 뇌량이 절단되어 양쪽 뇌가 통하지 않게 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있다. 이들은 뇌량이 절단되었기 때문에, 왼손이 한 일은 우뇌만으로 이해하여야 하고, 좌측 눈으로 본 것에 대한 언어적인 반응은 우뇌로부터만 나와야 한다. 우뇌의 언어능력은 사람에 따라 상당히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우뇌가 실질적으로 아무런 언어적 반응을 보이지 못하며, 어떤 사람들은 이해는 하나 말로 나타내지 못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말도 하고 심지어는 단어 몇 개를 쓸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법구조를 이해하는 능력은 이들에게서 거의 나타나지 않아, 좌뇌가 특수화된 언어기능이 자리잡고 있는 위치라는 것을 이를 통해 다시 한번 알 수 있다.

그 사실은 어린아이의 두뇌가 더 적응력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 그러나 어린아이의 두뇌가 더 적응력이 있다는 것은 분명 환경의 탓이 아니다. 어린아이가 자람에 따라 두뇌의 유연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오히려 두뇌발달의 생물학적인 패턴 (즉 자연적 요소) 라고 보여진다. 게다가 두뇌손상을 입은 어린아이가 어떤 식으로 회복되느냐 하는 것은 아이들이 어떤 대우를 받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풍부하고 동기유발적인 환경을 제공하여 자연이 자신의 예정된 코스를 갈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것뿐이다. 즉 좋은 대우, 좋은 환경이 회복을 촉진시킬 수는 있어도, 손상 받은 부분을 두뇌의 어느 부분이 대치할 것인가를 환경 그 자체가 결정하자는 않는다. 이것도 역시 자연적인 요소이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로든 좌뇌가 몽땅 수술로 제거된 아이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런 아이들도 말을 배우지 않습니까.

좌뇌가 없는 어린아이들은 단순한 관찰자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는 듯이 보이는 언어발달을 보인다. 그러나 좀더 자세하게 검사해보면 좀 이상한 결손을 드러낸다 - 예를 들어, 시의 운율을 못맞춘다거나 브로카 실어증 환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그런 테스트 (이번 장에서 앞에 소개했던 그런 예들) 를 해내는 데 곤란을 겪는다. 결국 우뇌가 언어능력을 상당 부분 넘겨받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대치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현재 내게 가장 그럴 듯해 보이는 가설은 이렇다. 몸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두뇌 역시 유전적으로는 기본적으로 좌우가 같도록 (언어영역조차도)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유전적으로 곳에 따라 약간씩 좌우가 다르게 구성되어 있어 어떤 과제를 수행하는 데는 좌뇌가 조금 더 낫고 어떤 일에는 우뇌가 조금 더 낫다. 특히 좌뇌는 언어 면에서 약간 유리하다. 정상적인 두뇌의 경우 이 잇점이 발전하여 완전한 비대칭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좌뇌가 더 많은 언어기능을 학습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심지어는 좌뇌가 우뇌의 언어학습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뇌의 "언어영역" 은 어떻게 되는가? 우뇌의 언어영역은 퇴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 영역들이 자신의 특수화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여분의 작업공간으로 이 부위를 사용한다. 놀랍게도 바로 이런 일이 선천성 청각장애자에게 일어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은 어떤 종류의 시각적 입력, 특히 측면 시야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에 정상인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보통 사람들의 경우 청각정보 처리에 사용되는 이 부위가 청각장애자의 경우에는 정상적인 입력이 주어지지 않아 시각체계에 의해 전용 (轉用) 되는 것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결국 이들의 민감성은 시각정보 처리에 더 많은 수의 뉴런을 사용하는 것으로서 설명될 수 있다 (원주 : 이 주장은 동물실험에 의해서 확인되었다. 동물실험에서는 여러 다른 두뇌부위의 민감성을 조사하기 위해서 두뇌 속에 미세전극을 삽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날 때부터 청각자극이 결여된 동물들을 대상으로 실험하였는데, 이들에게 시각적 입력을 주면 보통의 경우 청각영역으로 쓰이는 부위에서 신경세포가 점화되는 것이 관찰되었다.).

좌뇌가 없는 아이의 경우, 우뇌의 언어영역이 좌뇌에 의해서 억제되지 않으며 또 이 부위가 언어를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두뇌부위가 된다. 그 결과 이 부위는 우뇌에 유리한 다른 목적을 위하여 전용되는 대신, 언어처리장치로서 그것이 가진 모든 가능성을 발휘하는 쪽으로 발달하게 된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우뇌의 언어영역은 상당히 훌륭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그러나 좌뇌만큼 되지는 못한다. 이보다 좀 덜 극단적인 경우로, 왼손잡이들은 아마 좌뇌와 우뇌가 좀더 대칭적인 상태로 태어났을 것이다. 그래서 우뇌의 언어기능의 억제가 덜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좌뇌와 우뇌에 대한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너무 대략적인 것이다. 언어기능은 좌뇌 전체에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부위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이 자료를 개략적으로나마 소개하는 것은, 이것이 언어와 두뇌의 관계가 어떤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는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뇌가 정확히 어떻게 언어지각과 언어생성을 이루어내는지, 또 내재문법이 어떤 식으로 뉴런에 저장되는지 등의 좀더 깊은 문제에 대해서는 불행히도 이 논의가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수준에서도 우리는 성인 언어의 구성체계와 합치하고 언어습득의 연구에서 얻어진 결과와 합치하는 두뇌에 대한 이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두뇌 속에는 언어를 위해 특수화된 기관, 특히 문법구조를 위한 장치가 존재한다. 물론 이 기관이 제대로 발달하려면 적절한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언어기능이 두뇌의 저 부분에서 발달하지 않고 이 부분에서 발달한다는 것 (구어에서 뿐 아니라 수화에서도!), 그리고 언어학습자가 내재문법을 구성하기 위하여 환경에서 딱 맞는 자료를 뽑아낸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이 사실들은, 환경의 역할이란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의 유전적 상속물의 일부인 복합적인 "정신적 기관" 이 자연적으로 발달할 수 있도록 영양을 제공하는 것일 뿐임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