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기반 추리와 문제 해결 척도

 

역동적 기억: Roger Schank 저서, 신현정 역, 시그마프레스, 2002 (원서 : Dynamic Memory Revisited, Cambridge Univ. Press, 1999), Page 221~246

 

학습하기의 학습 (learning to learn) 은 오늘날 매우 흔한 구절이다. 나는 이 표현을 싫어하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이미 태어날 때부터 학습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MOP 와 TOP 를 힘들이지 않고 구성하며 기대실패에 대해서 설명을 구성함으로써 자동적으로 대처한다. "학습하기의 학습" 이라는 구절은 어떤 특정한 것을 할 수 있도록 학습하는 것이 그렇게 적절한 학습이 아니라는 생각을 나타내고 있다. 진정한 문제는 학생들을 흥분할 정도로 학습에 흥미를 느끼며, 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서 보다 많은 것을 학습하고 싶어하는 상태로 끌고가는 것이다. 또한 아동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학습할 수 있다고 믿어야만 한다. 학교에서의 실패를 자신이 똑똑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내면화 시킨 아동들에 있어서는 이것이 커다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Eckert, 1989). 그 아동들은 학습하기의 학습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단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자연적인 학습기제에 의존하기만 하면 된다.

일생에 걸친 학습 그리고 예리한 지성의 개발에는 태도가 결정적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폐쇄적이며 생각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그렇게 지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러한 사람은 역동적 기억을 가지고 있었을 수는 있지만, 점차적으로 변화에 무디어진 사람이다. 무엇이 지능이고 무엇이 지능일 수 없는지를 이해하려면, 지능에 대한 문제해결적 견해 (이 견해는 명시적으로 가르쳐준 규칙을 적용하는 방법을 얼마나 잘 학습하였는지에 근거하여 지능을 정의한다) 에서 벗어나서 사례기반 추리 (case - based reasoning) 를 지향하는 견해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사례기반 추리는 역동적 기억의 자연스러운 확장이다.

지능을 논의할 때, 문제해결이라는 생각이 대두된다. 묘하지만 결코 우연이 아니게, 인공지능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 그리고 이 분야에서 수행된 대부분의 연구도 문제해결과 관련된다. 예컨대, 침팬지의 지능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할 때, 흔히 "원숭이와 바나나 문제" 가 언급된다 (여기서의 논점은 원숭이가 올라설 수 있는 상자나 타고 올라갈 수 있는 막대와 같은 도구가 있는 상황에서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바나나를 어떻게 따먹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AI에 대한 초기 연구는 이러한 문제를 컴퓨터로 하여금 해결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문제해결은 지능검사에서 일차적 과제를 제시된다. 그 대상이 침팬지이든, 아동이든 아니면 컴퓨터이든 마찬가지다. 왜 그런 것인지 그리고 왜 그래야만 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지식에 대한 전혀 엉뚱한 암묵적 가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나는 제 11 장에서 전형적으로 지식을 진술하는 다섯 가지 방법을 언급하였다. 그것들은 합리적, 정서적, 하의식적, 물리적, 그리고 비의식적 지식이다. 어느 것이든 공식적으로 진술된 문제의 해결은 합리적 지식 (의식적으로 자각하고 있는 지식) 에 의존한다고 가정한다. 비록 원숭이의 심리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하더라도, "원숭이와 바나나 문제"를 해결하는 원숭이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알고 있는지의 여부를 물음하는 것은 흥미를 끈다. Charles Darwin 은 고등동물들이 독창적이고 합리적이며 의식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독창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원숭이가 그 문제의 해결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컴퓨터도 해결방법을 알고 있다고 믿을 것이라는 결론이 뒤따른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는 단지 규칙에 따라서 문제를 풀기 때문에 컴퓨터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사람들을 "육신론자" (fleshist) 라고 부르겠다. 즉, 어느 것이든 육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고하는 존재에 반대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일상적인 과제를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사고력을 기꺼이 부여하는 반면에, 기계에는 그러한 선심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안다는 것" 이라는 아이디어에 대해 강력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컴퓨터는 열어볼 수 있으며,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 속에 어떤 지식이 들어있는지 볼 수가 있다. 이상하게도 그러한 지식이 컴퓨터 속에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육신론자들은 컴퓨터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말하기를 불편해하거나 꺼린다.

원숭이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결론도 도출되지 못한다. 원숭이가 "어떤 도구는 대상에 도달하는 데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모든 실제 지식이 합리적 지식이라는 점을 함축한다. 그렇게 가정하게 되면, 원숭이에 대해서 알고 있는 중요한 사실, 흔히 "원숭이는 보고, 원숭이는 행한다" (Monkey see, monkey do) 라고 표현하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여기서 논쟁은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물음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원숭이의 지식이라는 문제가 논쟁을 벌일 만한 것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원숭이가 아니라 컴퓨터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논의를 시작할 때 상황은 더욱 묘한 것이 되어 버린다.

컴퓨터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논리적 규칙을 잘 준수한다. 물론 그것은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램을 작성한 방식이다. 컴퓨터가 규칙을 준수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규칙을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보같이 들린다.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사용방법에 대한 지시를 성공적으로 따라하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아무 지시도 없이 그 도구만 덜렁 주면, 동일한 행위를 수행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 행위를 수행하는 방법을 알았다가 나중에 알지 못하게 된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규칙을 결코 알지 못하였으며, 어떻게 하라고 지시를 받았을 때만 따라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겠는가? 컴퓨터는 계속해서 동일한 지시를 따를 수가 있다. 그런데도 컴퓨터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달라 보인다.

인공지능과 인지과학 분야에서 진행되는 전형적인 논쟁들이 있으며, 여기서 나는 후속되는 중요한 물음들을 제기하기 위해서 그 논쟁들을 사용할 것이다. 논쟁거리는 컴퓨터나 원숭이가 의식을 하는지 또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물음은 어떤 유형의 지식이 "원숭이와 바나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지 그리고 그러한 지식을 어떻게 획득하는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그 답은 컴퓨터인가 아니면 원숭이인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명백하다. 획득방법도 확실히 다르다. 또한 답을 하는 사람이 두 살배기 아동인가 아니면 어른인가에 따라서도 다르다. 2 세 아동은 모방적이라는 측면에서 원숭이에 가까우며, 어른은 어떤 일을 하도록 누군가가 말해주기를 원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컴퓨터에 가깝다. 교육이라는 조망에서 볼 때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른들은 학습하는 방법을 망각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컴퓨터는 그 방법을 전혀 모를지도 모른다). 지시의 본질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차이점들을 고찰하는 데서 시작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문제 (예컨대, 원숭이와 바나나 문제 또는 동물원의 코끼리가 야생에서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방식으로 자신의 몸통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관찰한 Darwin 의 예에서와 같이) 를 해결한 동물이 본능적으로 그렇게 하였다든가 아니면 합리적 추리를 통해서 하였다고 가정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위의 두 선택지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인가? 원숭이가 사용한 해결책은 문제해결을 위한 보편법칙에 대한 지식이 아니지만 동시에 본능도 아닐 수는 없는 것인가? 이것은 결코 극단적인 주장이 아니다. 결국, 테니스 경기에 대한 Gallwey 의 금언에 따라서 우수한 선수를 관찰하며, 불과의 상호작용에는 철저하게 주의를 기울이지만 팔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본능에 따라서 테니스를 치는 것도 아니며 볼을 치는 방법에 대해서 자각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지식을 사용하여 테니스를 치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차를 운전하면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은 본능에 따라 운전하는 것도 아니고 대화하는 것도 아니며 동시에 자각하고 있는 운전에 대한 지식이나 대화 구조나 언어에 대한 지식을 사용하여 그러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그 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그러한 일들을 해내는지를 보고할 수가 없다.물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엉성하나마 그러한 보고를 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AI 연구자라면 누구든지 지적할 수 있는 것처럼, 그 보고는 컴퓨터가 준수하는 규칙시스템과 비슷한 어떤 것도 내놓을 수가 없으며, 심지어는 보고하고 있는 행동과 유사한 행동을 내놓을 수도 없다. 실제로 인지심리학에서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전문가들이 사고의 모형으로써 준수하고 있는 규칙들을 보고하려는 많은 연구들이 수행되었다 (Newell, Shaw & Simon, 1958; Newell & Simon, 1972). 따라서 부적절한 내용들을 보고하는 것은 제쳐놓더라도, 사람은 어떤 일이든 하의식적이거나 비의식적이거나 아니면 물리적인 지식들을 사용하여 행하고 있는 것이다.

사례기반 추리 (case - based reasoning; CBR) 는 전문가의 추리에 대해서 전문가 시스템이라는 생각에 내포되어 있는 가설과는 정반대되는 가설이라고 할 수 있다. 사례기반 추리 시스템에서는 추리자가 현재 상황의 안내역으로 기능하는 과거 경험에 의존한다. 사례기반 추리는 이 책의 초판에서 다루었던 생각나기에 대한 연구결과에 의해서 독자적인 연구분야가 되었다. 사례기반 추리에는 일상적 추리에 역동적 기억을 적용하는 것이 수반된다. 이 책의 초판이 출판될 당시에는 전문가 시스템이 매우 유행하였다. 전문가 시스템이란 컴퓨터가 준수할 수 있는 규칙시스템을 말하며, 그 규칙시스템은 컴퓨터로 하여금 전문가의 의사결정을 흉내내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예컨대, Erman et al., 1980; Lindsay et al., 1980; McDormott, 1982; Buchanan & Shortliffe, 1984; Soloway, Bachant & Jensen, 1987). 예컨대, 의사가 진단을 할 때는 어떤 규칙시스템을 준수하며 그 규칙들은 전문가를 인터뷰함으로써 추출할 수 있다는 전제가 만들어진다. 그런 후에 규칙들이 컴퓨터에 주어지면, 그 컴퓨터가 전문가의 전문성을 갖게 된다. 전문가 시스템이 설득력 있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전혀 잘못된 생각이기도 하다. 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마음의 모형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단지 컴퓨터가 지능적으로 보이게끔 준수하는 규칙시스템을 만들려는 시도일 뿐일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러한 견해가 AI와 그 비판자들이 벌이는 논쟁의 근거가 된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규칙시스템이며 마음의 모형을 구축하는 과제는 단지 그러한 규칙을 찾아서 기계가 그 규칙들을 준수하도록 만드는 것뿐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논쟁의 다른 쪽 극단에는 마음은 너무나 복잡하여 규칙시스템만을 가지고는 특징 지을 수 없으며, 무엇인가 다른 것, 생득적 특성, 화학물질, 아니면 오직 신만이 알고 있는 것들이 마음에 포함되어야 하는데, 컴퓨터에서는 이것이 결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양측은 모두 틀렸다.

단지 규칙만으로 구성된 시스템은 어느 것도 마음을 모형화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마음이 너무나 신비로운 것이어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규칙은 마음의 주제를 적절하게 특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의식적 마음에 의존하는 것은 의식적 마음에 의존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규칙 시스템이 의식적 마음을 모형화 하도록 개발될 수는 있다하더라도 무의식적 마음을 모형화 하는 것도 또 다른 문제들을 제기한다. 둘을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무엇인가를 아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하여 과학자들이 합리적 지식에 의존할 필요가 있었던 것 모두가 문제를 야기한 근원이다.

원숭이가 처음으로 바나나를 따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격한다면, 그 원숭이가 상당히 지능적인 일을 해냈다고 주장하려는 충동이 강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문제, 즉 처음 접하는 문제의 해결은 항상 매우 지능적인 행위로 보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이 행위가 지능적인지의 여부에 대한 논쟁에는 관심이 없지만, 그러한 행위가 합리적 지식에 의존하였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것은 나에게 매우 흥미진진한 물음이다. 어째서 이것이 문제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문제해결에 대한 A. Newell 과 H. Simon (1963) 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보기로 하자.

GPS는 1957 년에 저자들과 J.  C. Shaw 가 처음으로 개발한 문제 해결 프로그램이다. … GPS 가 "General Problem Solver" 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유는 보편적 문제해결 기제를 포함하고 있는 시스템에서 과제독립적인 부분과 수많은 상이한 과제부분들을 명확하게 분리한 첫 번째 문제해결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며, 구조에 있어서는 본질적으로 유사한 다른 프로그램들이 상이한 문제들을 다루고 왔기 때문이다. … GPS 는 대상 (object) 들과 조작자 (operator) 들을 가지고 나타낼 수 있는 문제들에서 작동한다. …GPS 의 일차적 방법은 수단 - 목표 분석 (means - ends analysis) 의 발견법을 구현한 것이며 … 수단 - 목표 분석은 다음과 같은 상식적 진술로 잘 나타낼 수 있다: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려고 한다. 현재 나의 상태와 내가 원하는 상태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한 가지는 거리다. 거리는 어떻게 변화시키나? 자동차다. 그런데 자동차가 고장났다. 수리해야 한다. 수리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새 배터리가 필요하다. 어디서 새 배터리를 구할 수 있나? 자동차 정비소다. 정비소에서 배터리를 교체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정비소는 새 배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의사소통이 문제다. 어떻게 하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가? 전화다 … 기타 등등.

이러한 유형의 분석이 - 사물들을 기능에 따라서 분류하고, 목표와 요구되는 기능 그리고 그 기능을 수행하는 수단들을 왔다갔다 하는 것 - GPS 의 기본적인 발견법 시스템을 구성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수단 - 목표 발견법 시스템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가정한다:

1. 만일 원하는 것이 아닌 대상이 주어지면, 가용한 대상과 원하는 대상간의 차이가 탐지된다.

2. 조작자는 조작대상의 어떤 특성에는 영향을 주고 다른 것들은 그대로 둔다. 따라서 조작자는 생성되는 변화에 근거하여 특징지을 수 있으며 그 조작자기 적용되는 대상과 원하는 대상간의 차이를 제거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3. 만일 원하는 조작자가 가용하지 않으면, 그 조작자가 가용하도록 입력을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 어떤 차이는 다른 차이들보다 제거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따라서 덜 어려운 차이를 새롭게 초래하는 부담이 있더라도, "어려운" 차이를 제거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과정은 보다 어려운 차이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진전이 있는 한에 있어서 반복될 수 있다.

Newell 과 Simon 이 바나나를 따먹는 원숭이를 어떤 눈으로 바라다보았을 것인지를 이해하기는 쉽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원숭이가 수단 - 목표 분석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본다. 수단 - 목표 분석은 전적으로 합리적 지식에 의존한다. AI 연구자들이 GPS 와 같은 프로그램을 작성할 때, 모든 문제해결 행동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고 가정하고 있는 합리적 사고 과정을 흉내 내는 방식으로 기계들로 하여금 문제를 해결하도록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원숭이가 결코 수단 - 목표 분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든 아니면 다른 원숭이가 하는 것을 관찰한 것이든, 바나나를 따먹기 위해서 나타낸 과거의 행동을 복사하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훨씬 그럴 듯해 보인다. 결국 모든 원숭이가 개별적으로 도구 사용이라는 생각을 스스로 재개발할 필요가 없다고 상상하는 것은 그렇게 엉뚱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원숭이들은 후속 세대에게 도구 사용을 포함한 "원숭이 문화" 를 전달한다 (Jolly & Plog, 1986). 따라서 원숭이를 사례기반 추리자로 간주할 때, 그 원숭이는 단지 사례를 인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원숭이가 그러한 행동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원숭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단지 원숭이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컴퓨터에 대해서도 동일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컴퓨터가 훌륭한 문제해결자가되기 위해서는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문제해결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수단 - 목표 분석을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할 수 있다. 컴퓨터가 지능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려면 합리적 지식을 사용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GPS 와 같은 프로그램을 작성하고자 시도하면 된다.

실제로 GPS 는 연구 패러다임으로 그렇게 잘 작동하지는 못하였다. 결국 AI 연구자들은 문제해결에 대한 범목적적 지식이 아니라 영역 지식 (domain knowledge) 이 문제해결에서 중요한 문제하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만일 컴퓨터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영역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이미 알고 있다면 도움이 된다. 만일 목표가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려는 것이었다면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깨달음이다. 이것이 어느 것이든 AI 프로그램의 진정한 목표라고 가정할 수 있는데, 나는 GPS 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GPS 는 AI 초창기에 만들어진 프로그램인데, 그 당시에는 AI 의 목표가 보편적인 유용성을 갖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계 지능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나아가서 인간 지능의 본질에 대한 시사점을 얻으려는 것이었다. 실제로 Newell 과 Simon 은 후자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Newell 과 Simon 이 수행한 GPS 연구는 심리학에서 많은 중요한 후속 연구들을 촉진시켰다. 그러나 기계 지능을 주장한다는 측면에서 GPS 는 하나의 재앙이었다.

GPS 가 재앙인 이유는 많은 연구자들이 문제해결에 대한 연구방향을 잡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구를 수행하는 이유는 여전히 똑같다. 목표는 기계가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 즉 기계가 문제를 명시적으로 생각하고 지금까지 인간만이 보여 주었던 특성들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인간은 합리적이고 명시적인 지식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독창적 문제해결이 지능의 핵을 이룬다는 내재적 믿음이 있는 것이다.

Newell 과 Simon (물론 다른 많은 연구자들도) 이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많은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항상 독창적 문제해결에 감명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해결하는 데 실패한 문제의 답을 찾아 내는 사람을 존경하며, 독창적 문제 해결자에 감명 받지 않을 아무런 이유도 없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은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 할 때 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합리적이며 명시적인 지식을 사용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원숭이가 생애 처음으로 바나나 문제를 해결하였을 수 있지만, 여전히 다른 원숭이를 흉내내어 왔을 수도 있다. 아니면 처음으로 자기 힘으로 해결하였을 수 있지만, 다른 시점과 상황에서 사용하였던 해결책을 단지 약간만 수정한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는 독창성의 물음이 핵심이며, 나는 독창성이라는 측면에서 문제해결을 연구하는 AI 연구자들이 설정한 가정과는 정반대 되는 가정을 제안하고자 한다.

실생활의 문제해결 행동은 독창적인 경우가 거의 없다. 새로운 문제에 대한 거의 모든 해결책은 문제해결자가 이미 알고 있는 이전의 해결책을 수정한 것이다 (Johnson & Seifert, 1992; Kolodner, 1993; Gholson et al., 1996). 이 해결책, 각 사례에 대한 지식, 그리고 그 사례들이 찾아진 절차들은 전적으로 비의식적이다. 다시 말해서 거의 모든 인간의 문제 해결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지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문제해결에 대한 사례기반 추리적 접근 (예컨대, Lebowitz, 1986; Kolodner & Simpson, 1989; Kolodner & Mark, 1992; Kolodner, 1993; Hammond et al., 1996; Kolodner, 1997) 은 지능을 문제해결자에게 합리적 (의식적) 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지식에 의존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사례기반 추리 (CBR) 가 반드시 비의식적 과정일 필요는 없다. CBR 은 생각나기에 의존하기 때문에, 생각나기 과정과 동일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어떤 때는 사람들에게 생각나기가 선명하게 일어나기도 하며, 다른 때는 생각나기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과거에 여러 번 가보았던 맥도널드에 들어갈 때, "아이고 맥도널드가 생각나네!" 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을 추리할 필요가 있을 때, 과거에 무엇인가를 원해서 그것을 얻었던 때를 의식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사례들은 내면화되어서 의식적 생각나기를 억압시킨다. 이 사실은 누구에겐가 매력을 느낄 때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 사람으로 인해서 어머니나 옛날 여자친구, 또는 가지고 있는 어떤 이미지가 생각날 수가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매력을 사례기반 추리로 해석한다.

실제로 매력은 MOP 그리고 그 MOP 가 가르키고 있는 사례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남자가 여자를 만날 때, M-신체적 매력이나 M-사회적 상호작용을 포함한 다양한 MOP 들이 활성화된다고 가정할 수 있다. 나아가서 각각의 MOP 는 다양한 부가적 MOP 들을 가르키고 있는 포인터들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M-사회적 상호작용은 M-함께 식사하기를 포함할 수 있다. M- 함께 식사하기의 깊은 곳에는 예컨대 디저트 주문하기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을 수 있으며, 따로 따로 디저트를 주문하느냐 아니면 하나를 나누어 먹느냐에 근거하여 상대방을 판단할 수도 있다. 이러한 반응 그리고 상대방과 연합된 욕구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아무도 모르지만,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내가 먹고 있는 것을 한 입 깨물어 먹으려 한다면, 나는 방어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이 반응은 어렸을 때 아버지와 외식하던 경험에 대한 느낌으로부터 나온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또한 어느 날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할 때 빵에다 버터를 발라주었던 여자와 사랑에 빠질 뻔하였던 사실도 회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알지는 못한다. 개인적 MOP 들은  그 MOP 를 만들도록  해준 많은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때로는 그러한 사례들에 접근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지만, 비의식적 마음은 항상 그 사례들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사람들은 생각난 사례 그리고 과거 경험으로부터 학습하였던 지식을 현재의 경험에 적용하기 위하여 시도한 수정들을 잘 자각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CBR 상황을 보고할 때는 하나의 사례를 가지고 추리하는 것이 전형적인 경우다.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 그 사례를 어떻게 찾았는지는 알지 못한다. 따라서 심지어 단일사례 CBR 의 경우에도 사람들이 의존하는 지식, 알고 있는 것을 찾아내기, 그리고 적절성 여부를 결정하기는 비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예컨대, 한 대학생이 어느 과목을 수강할 것인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이 예를 사용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실제로 해결하는 전형적인 유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를 뒤에서 논의할 것이다.) 그 학생은 두 가지 상이한 과목에 관심이 있는 2 학년생이다. 그는 이 과목들과는 무관한 학교의 요구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며, 장차 수강하려는 과목들의 선수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요컨대, 한 학기에 수강할 수 있는 것보다 수강하고 싶은 과목이 더 많다면 어떻게 결정하겠는가? 한 과목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 과목이 세미나 강의이고 자신이 세미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른 과목은 강의 첫날 출석을 하고 교수가 멍청하다는 사실을 알고난 후에 취소한다. 세 번째 과목을 계속 수강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왜냐하면 그 과목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주관심사가 아니고 수강생이 많아서 강의실이 너무 비좁으며 교수의 특별한 주목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강의내용을 좋아하며 대학의 요구조건을 만족시키는 네 번째 과목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 과목을 잘 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섯 번째 과목은 선다형 시험을 치며 그러한 시험을 혐오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훌륭한 과목이다.

대학생활에서 아주 전형적인 이러한 상황은 사례기반 추리로 가득 차 있다. 예컨대, 세미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학생은 아마도 지금까지 한두 세미나 과목을 수강하였을 것이다. 그 과목들을  좋아하기는 하였지만, 교수나 주제를 좋아한 것일 수도 있다. "세미나" 이면서 "따라서 재미있는" 것으로 분류하였던 한 사례를 찾아서 선택하려는 세미나 강의를 과거의 것과 대응시켰다. 다른 과목의 교수가 멍청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과목을 수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만일 교수의 멍청함을 과목에 대한 자신의 무관심에 대응시킨다면 그러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것은 합리적인 대응이지만, 사례기반 추리의 또 다른 사례가 된다. 학생은 멍청한 교수가 별볼 일 없는 강의를 할 것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러한 결론이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학생이 자신의 경험에서 교수가 멍청했던 모든 과거 사례들을 들여다보고 그 멍청함이 그 과목의 즐거움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따져보아서 그 상황을 정확하게 평가 하였느냐는 데 있다.

학생은 이 사례에서 비의식적 CBR 을 사용하였을 수 있다. 예컨대, 학생은 "멍청하다" 고 말했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교수가 자신이 혐오하는 어떤 사람, 옛날 선생님, 아니면 삼촌이나 어릴 때의 친구 등을 생각나게 한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그 학생은 교수가 삼촌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에 수강하고 싶은 과목을 수강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나 아니면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하의식적 사례기반 추리가 작동하는 것이며, 의사결정자에게 항상 명백하거나 선명하지 않은 채 의사결정 과정에서 발현된디

그 학생은 마찬가지로 사례기반 추리를 통해서 대형강의 과목을 선택하거나 선다형 시험을 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과거에 수강하였던 과목 중에서 이렇게 평가된 특성들과 대응되는 과목을 찾아서 과거에 그 과목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근거하여 수강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문제는 만일 "특정한 강의실" 이나 "영숙이도 그 수업을 듣는 것" 이나 아니면 "멍청하게 보이는 교재를 사용하는 것" 들도 중요하게 평가 된 특징들이라면" 선다형 시험을 치는 것" 이나 "대형 강의" 를 한 과목의 일차적 특징으로 찾게 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요컨대, 사람들은 추리의 근거로 사용하기 위해서 과거의 사례를 선택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과거의 어떤 사례를 왜 선택하였는지를 말할 수는 있지만, 엉터리일 가능성이 크며 기껏해야 대응되는 특징들에 대한 지극히 엉성한 밑그림만을 가지고 있기가 십상이다. 사례기반 추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지식에 의존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례기반 추리는 하나의 사례에 의존한다. 세미나 강의가 좋은 이유는 과거에 수강하였던 어떤 한 세미나 강의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멍청한 교수를 싫어하는 이유는 과거에 멍청한 교수 때문에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이 각 경우에 하나 이상의 사례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백 개의 사례를 경험한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일 사례 기반 추리에서는 추리자가 과거사례의 선택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즉, 그 학생은 어떻게 과거의 세미나 강의를 결정의 근거로서 찾아 낸 것인지는 모를 수도 있지만, 자신이 선택한 근거가 그 세미나 강의였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 단일사례 CBR 에서 인출에 관여하는 특징 (즉, 표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지식에 의존하기가 십상이다. 추리하는 사람은 생각하고 있는 새로운 과목을 표지 "X" 의 사례로 의식적으로 특징지으며, X 의 표지가 붙어 있는 과목들의 예를 기억에서 찾으려한다. 그렇게 해서 한 사례를 찾게 되면, 실제로는 기억 속에 보다 많은 사례들이 있다 하더라도, 기존 사례의 결과를 찾은 것에 근거하여 새로운 사례의 결과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결정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단일사례 CBR 은 멍청한 것일 수 있다. 사람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추리하는 것이 참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그렇게 정밀한 것은 아니다. 지능의 측정에 관심이 있는 AI 연구자들이 이러한 유형의 추리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며 또한 반드시 좋은 방법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아무튼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례기반 추리는 단일사례에 의존하지 않는다. 한 영역에서의 전문가는 수백 수천의 사례들을 알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올바른 사례를 찾는 일은 현상적으로 복잡한 과정이며, 그 과정은 의식될 수가 없다. 따라서 복잡한 상황에서 전문가들이 수행하는 독창적인 사고는 교육을 통해서 명시적으로 획득된 지식에 의존할 가능성이 없으며, 명시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 지식을 사용할 가능성도 없다.

예컨대, 25 년간 학생들을 가르쳐온 선생을 생각해 보자. 학생이 자문을 구하려고 선생을 만나러 온다. 선생은 주의 깊게 듣고는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선생은 어디에서 그러한 제안을 얻는가? 유사한 상황에 처했던 다른 학생의 사례를 인용할 수도 있으며, 학생의 이야기로 인해서 생각난 삶에 대한 주먹구구식 생각을 갖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25 년간의 교사생활과 수많은 학생지도 상황을 겪은 후에, 선생은 어느 특별한 과거 사례에 대한 생각없이 무엇을 충고해줄 것인지를 그저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이 암묵적으로 그러한 과거 사례들을 참조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것도 마음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구축한 MOP와 TOP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이것들을 구축하게 만들어 준 경험들은 이미 오래 전에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처음의 기대실패와 그 실패를 해결해 준 설명은 선생이 진작에 만들었던 역동적 기억의 가공물일 뿐이다. 남은 것은 세상을 바라다보는 조망이지, 그러한 견해를 갖는 데 공헌한 기억들이 아니다. 아직도 설명을 기다리고 있는 매우 특수하고 중요한 일화들만이 예외로 남아있는 것이다 (Paralano & Seifert, 1994; Slackman & Nelson, 1984; Hudson & Nelson, 1986; Hudson, 1988; Farrar &Goodman, 1992; Hudson, Fivush & Kuebli, 1992).

최근 나는 마케팅 분야에 종사하고 싶다고 말하는 학부생을 지도한 적이 있었다. 그 학생은 왜 그 일을 하고 싶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부모의 이혼 그리고 그 이혼이 자신에게 초래한 어려움 등에 관하여 긴 이야기를 나에게 하였다. 나는 곧 그의 아버지는 사업가였고 어머니는 심리학자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나는 마케팅 분야가 부모 모두가 관여하는 두 영역의 접합점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관찰하였으며, 그 학생이 부모 모두를 동시에 만족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이 가능할지를 물음하였다. 그 학생은 그럴 수 있다고 답하였다. 나는 그 학생에게 부모의 기대와는 별도로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도록 조언하였으며, 그 학생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마케팅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내가 이 예를 사용하는 것은 진정한 추리가 어떤 것인지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위의 학생은 어떻게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에 도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하였다. 그 학생은 비의식적 지식을 사용하여 추리하였으며, 의식적 추리를 비호할 수 있는 의식적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물론 제삼의 관찰자에게는 그 학생의 진정한 이유가 언급한 이유와 같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나도 추리를 하고 있었다. 집안식구들이 모두 의사이기에 그 압력을 이겨낼 수가 없어서 자기도 의사가 되려고 대학원에서 전공하던 컴퓨터과학을 포기하였던 학생이 생각났다. 또한 수많은 사례들에 근거하여 학생의 선택은 그 자신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 결정된 것이라는 나 자신의 견해도 생각났다. 또한 그 학생이 한 가지 사실 (직업 선택) 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나서 다른 사실 (부모의 이혼) 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그 학생이 의식적으로 생각했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후자가 전자에게 상당한 중요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였다.

그러한 견해가 내 마음 속에서 의식되고 있음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내가 자각하고 있는 것은 MOP 와 TOP 들이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것들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 버렸거나 아니면 겨우 흔적만 남아 있는 수많은 사례들로부터 온 것이다. 수많은 경험에 근거하여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였다는 것이 명백한 데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있는 사례기반 추리를 나 자신조차도 의식하지 못한다. 이러한 견해 (보다 정확하게는 "주먹 구구식 규칙" 이지만, 독자들이 규칙이라는 단어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혼란스럽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를 초래하는 과정은 무의식적 과정이다. 학생에게 해주는 나의 조언을 나 자신이 듣고는 비로소 나의 조언이 의식되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한 말을 의식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도록 만든 원래의 생각은 비의식적이다.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 과거의 사례들을 채로 치듯이 훑고 있는 진정한 추리과정은 의식적 관찰에 노출되지도 않는 과정이다. 나는 수천 가지의 사례를 경험하였고 그 사례들을 해석하는 많은 방법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지만, 그것들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추리할 사례가 하나도 없었다면, 아마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조차 못하였을 것이다.

핵심은 내가 학생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 학생들이 선택한 것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것들을 학습해 두었다는 점이다. 각 학생들에 대해서 학습하고 결론을 내렸다. 때때로 이러한 지식이 합리적 지식과 추리로부터 도출되기 때문에 의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지식과 추리는 의식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교육에서 중점을 두어야 할 많은 지식은 비의식적 지식이다. 학습 자체는 결코 명시적으로 자각하지 못하는 지식에 근거하며, 또한 그러한 지식을 생성하는 것이다. "오늘 X 를 배웠다" 라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날 X 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학습하였을 것이다. 학습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모든 경험의 합성으로부터 이루어지며, 이러한 학습은 의식적 처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심적 작업을 요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스크립틀릿을 포함한 많은 기억구조들을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즉, 작업 부하량을 줄이려는 것이다.

역동적 기억은 부분적으로 이러한 인지적 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존재한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서 본질적으로 유사한 과거경험들을 요약할 수 있는 것이다 (Fivush, 1984; Adams & Worden, 1986; Ratner, Smith & Dion, 1986; Ross & Kennedy, 1990; Ross, Perkins & Tenpenny, 1990; Farrar & Goodman, 1992; Ross, 1996a). 사람들은 유사한 상황들을 재인하여 모든 개별적 사례들을 기억에 저장하는 대신에 전형적인 표상을 도출한다.

지능에서 핵심적 논제가 학습이다. 만일 문제해결이 지능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 논제가 되어야 한다면, 그 이유는 어떻게 문제를 풀었느냐를 연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푸는 방법을 어떻게 학습하였느냐를 연구하기 때문일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것이다. (Reif & Larkin, 1991; Lampert, 1995).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문제해결 방략들을 사용하는 방법을 학습하여야 한다. (Chi, Feltovich & Glaser, 1981; Reimann & Chi, 1989; Chi & Bédard, 1992). 따라서 어떻게 사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학습하는지를 측정하려면, 지능에서 현재 평가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결정적인 논제를 연구하여야만 한다. 동일한 실수를 반복적으로 저지르거나 성공을 반복하지 못하는 지능시스템은 지능적이라고 불릴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는 사람은 그 문제가 다시 주어졌을 때 해결책을 회상해 낼 수 있다. (Gick & McGarry, 1992; Johnson & Seifert, 1992; Gholsen et al., 1996). 마찬가지로 원숭이에 대해서 던질 핵심적 물음은 그 원숭이가 바나나를 얻을 수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그 문제를 다시 해결하려고 시도하지 않고도 그 바나나를 얻을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동일한 상황에 재차 직면할 때 단지 해결책을 회상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따라서 사람이든 아니면 원숭이이든 지능에서 핵심적 논제가 학습이 된다. 그런데 컴퓨터의 경우에는 그 컴퓨터가 경험을 통해서 학습할 수 있는지의 문제와는 무관하게, 어떤 사람들은 의학적 진단능력을 보이는 기계가 "전문가" 라는 명칭을 부여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전문가 시스템은 학습하지도 않으며, 학습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규칙시스템일 뿐이지, 경험 시스템이거나 사례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나나를 얻을 만큼 똑똑한 원숭이는 다음 번에도 그렇게 한다. 왜냐하면 원숭이는 과거 경험을 회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동일한 상황에 또 다시 직면할 때 인출할 수 있고 참조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사례" 를 저장해 놓았기 때문이다. 사례가 사용되는 이유는 그 사례에 수반된 대부분의 지식이 실제로 비의식적이기 때문에 정의상 전적으로 규칙기반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논의해 온 논제의 측면에서 야기되는 세 가지 물음이 있다. 첫째, 사례시스템은 학습하는 반면 규칙 시스템은 학습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 규칙시스템은 합리적 지식의 부분인 반면 사례시스템은 비의식적 지식의 부분인 이유는 무엇인가? 셋째, 그 이유는 문제해결과 지능간의 관계성에 대해서 무엇을 알려 주는가?

두 번째 물음이 의식적 지식과 비의식적 지식간에 존재하는 차이의 정곡을 찌르고 있다. 사람들은 주먹구구식 규칙 (소위 발견법 heuristic) 들을 동원할 수가 있다. 각자는 자기가 사용하는 개인적 규칙들을 동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로서의 문화는 일반적으로 격언이라고 하는 규칙을 가지고 있으며 동원할 수가 있다. 이러한 규칙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진정한 규칙이 아니라 TOP 들이다. 여기에는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통적인 TOP를 가지고 있는 기억들을 가리키는 포인터들의 집합이다. 실제로 모든 문화는 격언을 가지고 있으며 (물론 이것들을 명시적으로 의식되는 TOP 들이다), 그 격언들은 문화에 따라서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격언은 실제로 매우 흥미진진한 지식이다. 그러한 격언을 동원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것이 의식적 지식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한편 추리에서의 실제 사용은 주어진 상황에서 격언의 적절성을 결정하는 비의식적 지식에 달려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의식적 지식과 비의식적 지식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사람들은 항상 서로서로 조언을 하며, 그러한 조언은 격언의 형태이거나 아니면 (제 5 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야기의 형태로 주어진다. 조언을 위해서 이야기를 하거나 격언을 인용하는 것은 실제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심적 과정이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조언자는 조언을 구하는 사람이 서술하는 상황을 조언자의 마음에 이미 존재하는 정보에 대한 표지로 작동하는 심적 구성체에 따라서 규정할 필요가 있다.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학생이 이미 알고 있는 것 위에 새로운 것을 구축하도록 가르치고 (Bruer, 1993; Linn et al., 1994),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설명을 구축하도록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Chi et al., 1989; Brown & Campione, 1994).

이 사실을 들여다보는 한 가지 방법은 조언자의 마음 속에는 이미 나중에 조언으로 제시할 격언이나 이야기가 들어있으며, 그의 이해과정이란 단지 가장 적절한 이야기나 격언을 찾아내려고 시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여기서 적절성은 조언을 구하는 사람의 이야기와 조언자의 마음 속에 이미 들어있는 이야기에서 공통점을 대응시킴으로써 형성된다. 이 과제를 달성하려면 조언자는 과거 어느 시점에서 들었거나 아니면 직접 경험하였던 상황을 기억에 저장하기 위해서 사용하였던 것과 상당히 동일한 이야기들에 근거하여 자신이 듣고 있는 이야기를 분해하여야 한다. 어느 방법을 사용하든, 대응은 마음에서 표지로 작용하는 공통 속성들에 근거하여 만들어진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추출된 표지들에 의해서 적절한 처리구조들이 활성화되며, 이러한 구조들은 유사한 경험들의 회상을 촉발시킨다. 왜냐하면 처리구조들은 저장을 위해 사용되는 구조들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 물음은 도대체 그러한 표지들이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이냐는 물음이다. 표지의 본질은 어느 것이든 격언을 조사해 봄으로써 쉽게 볼 수 있다. "태양이 빛날 때 건초를 만들어라" (Make hay while the sun shines) 에서 표지는 "건초" 나 "태양" 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물론 바보같은 사람이라면 이 격언이 "건초" 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은 대화 중에 건초에 관한 문제가 등장할 때마다 이 격언을 되뇔 수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이 격언이 건초 만들기를 넘어서서 적용될 가능성을 보지 못하였다는 측면에서 그 격언을 잘못 이해하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유용한 표지는 격언의 심층적 의미를 지칭한다. 이 경우에 해당하는 표지는 계획세우기이며, 특히 성공을 위한 조건이 제대로 마련되었을 때 계획을 집행하는 적절한 시점이 된다. "계획을 집행하는 적절한 시점" 과 같은 생각은 마음이 경험들을 특징짓기 위해서 사용하는 표지이어야 한다.

그러한 표지가 마음의 기능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은 명백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의식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내가 한 것처럼 의식적이게 만들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대상을 특징지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며, 이러한 방식으로 과거 경험들을 저장하였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며, 경험하였던 상황들을 특징짓기 위해서 사용하는 표지들을 말할 수도 없으며, 올바른 격언이나 이야기가 떠오르도록 하기 위해서 어떤 인출방법을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이 모든 것들은 비의식적 지식이다. 내가 이 책 전반에 걸쳐 여기저기서 제시하였던 생각나기 예들을 통해서 보여 주었던 것처럼 어떤 것들은 자각하도록 만들 수도 있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의식적으로 자각되지 않는다. 심적 표지에 의존하고 있는 사례기반 추리는 의식적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믿고 있는 주먹구구식 규칙을 의식적으로 동원하기가 십상이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취하라" 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훨씬 직선적인 표현이며,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이다. 이 규칙은 합리적 지식의 부분이다. "c 다음에 나오지 않는 한 e 앞에 있어야 한다." 또는 "나누기에 앞서 추정하라" 와 전혀 다르지 않은 규칙이다. 이러한 규칙은 암기하거나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적절한 시점에 튀어나올 수 있는 방식으로 합리적 의식에 제공될 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규칙들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생각해낼 수 없는 한에 있어서는 그 규칙들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누군가가 그 규칙을 의식에 이야기해 주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추리에 사용하는 몇 가지 규칙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거나 전형적인 방법은 아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그러한 규칙 없이도 잘 살아갈 수가 있다.

도대체 누가 그러한 규칙을 의식에 알려주는 것이냐고 물을 수 있다. 이 물음은 자기 1 이 자기 2 에게 테니스 치는 방법을 말해 준다고 Gallwey 가 언급할 때 기술하였던 내용과 다르지 않다. 비의식적 마음이 의식적 마음에게 말을 하지만, 단지 의식적 마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만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비의식적 마음이 의식적 마음에게 계획의 시의적절한 수행에 대해서 그렇게 쉽게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러한 개념이 인간사에서 매우 최근에야 이름을 부여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단지 단순한 일상의 은유로 말을 할 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비의식적 마음이 의식적 마음에게 무엇을 말하느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심적 작업을 하는 것은 의식적 마음이며, 비의식적 마음은 의식적 마음의 이야기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비의식적 마음에 물음을 던지는 것은 그 마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무의식적 마음에 미국의 50 개 주 이름을 모두 대보하고 요구해보았자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목록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미국의 지도를 상상하라고 요구할 수는 있으며, 그렇게 되면 지도를 읽으려고 시도할 수 있다. 마음이 사용하는 심적 구조를 이해하게 되면, 마음에 대해서 더 잘 물음할 수 있게 된다.

Gallwey 의 예를 다시 한번 사용하면, 테니스볼을 특정한 방식으로 치도록 자신에게 말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숙이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좋겠다고 자신에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다. 비의식적 마음이 비록 특정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튼 주어진 언어정보를 분해하여야 한다), 그 언어로 비의식적 마음에게 직접 말을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MOP 와 TOP 에 수반되어 있는 신념시스템은 기대실패와 사례에 기반한 설명에 근거하지 않고는 변경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진술은 다소 복잡하기는 하지만, 문제해결과 지능간의 관계에 대하여 내가 진작에 제기하였던 물음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것이다. 만일 의식적 마음과 비의식적 마음간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본다면, 문제가 오직 사례기반 추리 문제인 한에 있어서만 문제해결이 지능을 검증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학교나 지능검사 또는 AI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규칙기반적인 것들이다. 올바른 규칙들을 암기하고 그 규칙을 처방된 방식으로 적용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규칙기반 상황에서 "독창적" 이려면, GPS 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규칙을 넘어선 일반화를 사용하도록 시도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규칙이 적용되는 문제는 일반적으로 지극히 인위적인 것들이다. 그 문제들은 수백만년에 걸쳐 발달해 온 지능에 걸맞는 유형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 (그리고 동물들도) 들의 자연스러운 문제 해결 능력이 사례기반적이라고 전제한다면, 그리고 이 능력은 과거의 개인적이거나 문화적인 경험에 의한 적응을 수반한다면, 근본적인 논제는 과거 지식의 인출이 된다. 이것은 비의식적 문제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알지 못하며, 해결책을 찾아 낼 수 있은 경우에도 그 능력은 쉽게 측정될 수가 없다.

비의식적 능력이 아니라 의식적 문제해결 능력에 초점을 맞춘 결과를 인공지능 연구, 지능검사에 관한 연구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육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측면에서) 에서 감지할 수 있다. 만일 연구자들이 지능에서 비의식적 과정의 주도적 역할에 제대로 초점을 맞추어 왔더라면 이 모든 분야들은 지금과는 엄청나게 다른 역사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이 분야 각각을 논의하도록 하겠다.

인공지능은 합리적 지식의 우위성 (낡은 인식론) 이라는 착각에 의해서 심각하게 퇴보하고 말았다. 이 사실은 내가 "인공적 문제해결" 이라고 부르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저절로 드러난다. AI에서는 문자산수풀이, 하노이탑 문제, 선교사와 식인종 문제, 체스, 바둑, 그리고 정리(定理) 증명하기 등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이러한 문제들은 인위적인 것들이다. 인간의 지능은 수백만 년에 걸쳐서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검증되지 않고서도 스스로 진화되어 왔다. 인간 지능이 대처하도록 진화된 유형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과거 경험의 사용에 의존한다. 실세계의 문제해결에서는 과거 상황들의 일반화가 잘 작동하는 반면, 인공세계의 문제해결에서는 그러한 일반화가 문제해결 행동 자체에 대한 것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인공적 문제해결에서 유능성을 보이기 위해서는 명시적으로 학습한 규칙들을 의식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러한 규칙을 명시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바로 학교교육이 지향하는 것이다. 따라서 해결책은 낡은 인식론, 즉 합리적 지식의 명시적 교육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세계의 상황에서는 비의식적 지식이 문제해결 능력의 핵심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호랑이를 피하는 최선의 방법을 결정할 때 학습한 어떤 규칙을 적용하려고 시도하는 장면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한 경우에서는 지난 번에 잘 작동하였던 방법이 알고 있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AI에서의 주장은 항상 만일 인간이 수행하려면 지능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기계도 적절하게 수행한다면, 그 기계는 지능적이라는 것이었다. 체스나 하노이탑과 같은 문제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인 주장은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제 지능이 요구되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는 컴퓨터도 실제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진정한 논제는 인간에게는 지능이 별로 요구되지 않는 문제가 컴퓨터에게는 더 어려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에 틀림없다. 예컨대, 수학의 복잡한 정리를 증명할 수 있는 컴퓨터는 대학에서 수학 과목을 수강할 것인지 아니면 물리학 과목을 수강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보통의 대학생이 하는 선택이 컴퓨터에게는 그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 된다. 그 컴퓨터는 자신이 증명할 수 있었던 정리가 논의되고 있는 수학 강의에서 학생으로서든 아니면 선생으로서든 그 내용을 이해하거나 수업에 도움이 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체스를 세계챔피언 수준으로 두는 프로그램이 바둑에서는 단 하나의 바둑알도 놓을 수가 없으며, 행마에 대한 설명을 이해할 수가 없다.

AI 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전형적으로 어느 컴퓨터도 이러한 유형의 일들을 해낼 수 없으며, 따라서 AI 는 시간낭비라는 사실을 증명해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AI 가 몇 가지 심각한 과오를 저질러왔으며, 진정한 진보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오가 수정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과오의 수정이란 낡은 인식론이 부과하는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만일 인간 지능의 일차적 측면이 합리적 지식에 의존한다면, 그러한 지식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면서도 수행하기 어려운 과제를 찾아 내는 일이 AI 에서 일차적 과제가 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반면에 만일 인간 지능의 중요한 측면이 비의식적인 것이라면, AI 는 합리적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 과제의 수행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특히 만일 인간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관심을 가진다면, 논제는 하노이탑과 같은 문제를 연구할 것이냐 아니면 대학생이 수강과목을 선택하는 것과 같은 문제를 연구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 된다. 각각에 있어서 해결책은 상당히 다르게 되며, 지능에 대해서 알 게 되는 지식도 매우 다른 것이 되어 버린다. 왜냐하면 AI는 합리적 지식이 지능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가정하여 왔으며, 하노이탑과 같은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왔기 때문이다.

규칙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그것이 필연적으로 합리적 지식의 부분이라는 데 있다. 지식은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타내게 된다. 예컨대, 나는 미식축구공을 아주 잘 던진다. 만일 나에게 어떻게 던지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공을 쥐는 법, 공을 손에서 놓는 법, 공의 촉감을 느끼는 법 등등에 대한 모든 종류의 규칙들을 언급할 수 있다. 이 모든 규칙들을 말할 수는 있지만, 내가 실제로 그러한 규칙들을 사용할 가능성은 미약하다. 그저 공을 던질 뿐이다. 공을 던지는 방법에 대한 지식은 내가 합리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을 내보일 수 있도록 무슨 말이든지 하라고 요구한다면, 공 던지는 것을 스스로 관찰한 후에 본 것을 말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알고 있는 것은 동일하지 않다. 전문가시스템의 구축을 위해 인터뷰의 대상이 되는 전문가는 규칙을 말하겠지만, 아마도 그는 자신이 상세하게 언급하는 규칙의 따라서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학습하지 못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서 나아지지 않는 사람은 전문가라고 간주될 수 없다. 항상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결코 개선되지 않는 사람을 누가 존경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칙기반 전문가 시스템은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규칙시스템에서 실수가 일어나면, 잘못은 한두 개의 규칙에 있거나 아니면 독자적으로는 올바른 규칙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있게 된다. 만일 전문가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것이 전문가가 기술한 규칙들뿐이라면, 규칙 중 하나가 실패할 때 또 다시 그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야 한다. 그 전문가가 다음과 같이 반응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래요. 내가 그 규칙을 말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조건하에서만 작동하는 것이지요, 내가 그만 그것을 말하지 않았군요."

전문가시스템 구축자는 "진정한 규칙" 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의해서 끊임없이 그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전문가는 실수를 저지를 때 어떻게 하는가? 전문가가 "어어 ! 규칙 356 에서 문제가 있네. 그 규칙을 바꾸어야겠는데" 라고 말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실수를 저지른 경험을 저장하고는, 다음 번에 유사한 상황에 직면할 때 실수를 기억해 내서는 더 잘 해낼 수 있기를 기대할 것이다. 진정한 전문가가 수행하는 사례기반 추리에는 규칙이 전혀 수반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언급한 바와 같이 적재적소에서 그 경험을 인출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경험을 특정짓는 일이 수반된다.

근본적으로 사례기반 추리 시스템은 학습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 경과에 따라 변하는 이유는 일정한 규칙의 집합이 아니면 과거에도 결코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규칙의 집합일 수가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비의식적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사례기반 추리시스템을 구축하는 사람에게 단지 사례들만을 말해 주면 된다. 사례기반 추리 전문가의 임무는 시스템 구축자가 발견할 수밖에 없는 일련의 표지들을 사용하여 그러한 사례들을 특징짓는 방법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전문가는 합리적으로는  오직 자신의 경험만을 알고 있지만, 비의식적으로는 그 경험을 특징짓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 사실은 필요할 때 전문가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 지지된다.

지능검사의 문제로 되돌아가 보자. 지능검사는 좋지 않은 생각이라는 사실에는 상당히 쉽게 동의가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나쁜 것은 무엇인가? 정치적 정당성이 우선하는 시대에서 우선적으로 마음에 튀어 오르는 것은 성차별이나 문화적 편견의 문제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문제들이 지능검사에 들어있다. 그러나 보다 음흉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지능검사의 문제는 문제해결 자체에 있다.  Robert Sternberg (1991) 는 현재의 지능검사에 대한 대안을 제안하였지만, 여기에도 계속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지능검사를 개혁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능에서 핵심적인 논제는 어떤 문제를 제시할 것이냐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잠시, 심리학자가 아니라 일반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지능을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직장을 구하는 것이든 아니면 대학원 입학을 위한 것이든 사람들을 인터뷰할 때, 나는 그들이 얼마나 지능적으로 보이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문제를 주고 풀도록 하지는 않는다. 그저 이야기를 해볼 뿐이다. 어린 아이를 두고 있는 어머니는 자기 아이가 단지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해서 매우 영리하다고 믿지는 않는다. 각 경우에 지능의 평가는 그 사람이 말하는 것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

내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언어행동은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지식을 사용하여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어떻게 말하고 이해하는 것인지를 모를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에는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각하지도 못한다. 반면에 형식적인 문제 해결은 합리적 지식을 사용한다. 사람들은 형식적 문제를 해결할 때 자신의 추리과정을 자각한다. 유일한 예외가 사례기반 추리과정이다. 어떻게 사례들을 찾는 것인지, 그 사례가 적절한 것인지를 어떻게 결정하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저 비의식적으로 인출해 내는 것이다. 물론 사례기반 문제해결은, 주어진 상황에서 가용한 사례가 어느 것인지를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지능을 측정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경험이 그렇게 광범위하지 않은 사람은 의존할 사례의 범위가 넓은 사람에 비해 문제를 잘 풀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보다 경험이 많은 문제해결자가 보다 우수한 해결책을 내놓는다고 해서 더 지능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사례기반 지능검사는 많은 사례와의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 쪽으로 편향되어 있다. 만일 검사하고 있는 것이 주어진 상황에서 문제를 가장 잘 풀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는 것이라면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렇게되면 지능과 혼입된 경험을 측정하는 것이지 지능 자체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다.

지능검사 설계사에게 있어서의 물음은 비의식적 지식을 어떻게 측정할 것이냐는 것이 된다. 그 방법을 생각해 보려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측정하고 있는지를 고려해 보아야 한다. 예컨대, 교수는 동료와 학생들의 지능을 항상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고 검사를 실시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게 해서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과 대화를 해봄으로써 평가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대화과정에서 사람들은 상대방의 지능을 평가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부모는 자식들의 지능을 수시로 평가한다. 자식들이 학교에서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에 근거하여 평가를 하거나 자기 자식이라는 사실 때문에 편견을 갖지 않는 한에 있어서, 부모들은 실제로 이러한 평가에 상당한 유능성을 보인다. 비록 두 녀석의 학교 성적이 비슷한 경우에도 부모는 한 녀석이 다른 녀석보다 총명하다는 사실을 안다. 도대체 어떻게 부모는 그렇게 평가하는 것인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답은 검사를 하거나 문제를 풀게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는 내가 읽는 것을 배우기도 전에 달력을 스스로 깨우쳐서 이해하는 것을 보고는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매우 총명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한 것이 월스트리트 저널지에 실린 적이 있었다. 이것은 어떤 유형의 평가인가? 달력을 읽는 것은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물론 복잡한 것도 아니다). 실제로 어머니가 알아차린 것은 교수 (또는 누구이든지) 가 대화하고 있는 상대방의 지능에 대해 판단할 때 그 대화 속에서 알아차린 것과 똑같은 종류의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달력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감명받은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명받은 것이다.

사람들은 대화 중에 상대방이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비약을 할 때 그의 지능에 감명 받는다. 그 "비약" 은 신속한 사고, 심오한 이해, 명석한 추리, 또는 일상적 문제에 대한 독창적 조망이나 사용하는 단어의 참신한 선택 등에 대한 증거가 된다. 진짜 논제는 참신성 (novelty) 이다.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든 새롭거나 다른 표현을 들을 때 감명받는다. 왜냐하면 대화하고 있는 상대방이 자신만의 방식대로 사고하였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독창적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 실제로는 다른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라는 사실을 듣게 되면, 감명의 정도가 떨어지게 된다. 참신성을 지능 평가라는 측면에서 고찰할 때 독창성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물음은 사람들이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지식과 스스로 찾을 필요가 있었던 지식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누군가가 "참신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지를 알고 싶어한다. 만일 그가 의식적으로 한 것이라면,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이 그에게 이야기를 하였고 그는 단지 반복한 것이라면, 그 이야기가 흥미로울 수는 있지만 지능을 반영하는 것으로는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생각이 스스로 해낸 것이라면, 그가 의식적으로 그렇게 시도한 것이 아니라고 가정하게 된다. 그 경우에 사람들은 그가 독창적이라는 사실에 감명을 받는 것이지, 독창적이려고 애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명받는 것은 아니다.

위의 진술은 내 딸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1 학년 때 학교를 심각할 정도로 지겨워하였기 때문에, 나는 2학년으로 월반시켜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학교에서 일종의 창의성검사를 실시하였는데, 딸아이가 창의성에서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알려 주면서 실제로 월반을 시켜 주었다. 나중에 나는 그 검사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를 딸아이에게 물어 보았다. 딸아이는 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그리라고 하였다고 말하였다. 딸아이는 북미산 큰 사슴을 그렸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원을 가지고 사람의 얼굴을 그릴 것이 확실하다.

창의성의 논제라는 측면에서 내 딸은 검사자들을 만족시킨 것이다. 나는 그 검사가 실제로 비의식적 지능을 평가하려고 시도한 것이고, 실제로도 좋은 측정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결말은 이상하게 끝이 나고 말았다. 몇 년 후에 나는 딸아이에게 그 검사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아이는 자신이 사슴을 그린 이유는 자기가 할 것이라고 스스로 기대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에 짜증이 났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검사자들이 자기가 "행복한 얼굴" 을 그릴 것이라고 기대하였을 것이 틀림없었으며, 그들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하였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예가 딸아이의 보편적 인생관을 잘 예시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귀찮고 짜증이 나서 사슴을 그린 것이다.

이 이야기에 대한 나 자신의 반응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은 한 가지는 내가 아이의 성취에 덜 감명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는 독창적이라기보다는 옹고집을 부린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나는 그 결과가 창의성을 전혀 반영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반면에 창의성은 예상되는 것에 대항하는 고집스러움에 상당히 의존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그 검사는 어떤 경우에도 멍청한 것일 수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 검사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나는 어떻게 사람들이 지능을 판단하는 것인지에 관심이 있었는데, 학교는 딸아이의 지능을 사슴이라는 측면에서 평가하였던 것이다. 아이가 의식적으로 독창적이려고 하였다는 사실을 보는 순간, 나는 아이의 지능에 덜 감명받은 것이다 (아니면 아이의 교활함에 충격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검사가 무엇을 측정하는 것인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6 세 아동에게는 이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이제 창의성을 검사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어른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창의적이게 보이고 싶어하는 어른은 다르게 보이려고 시도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어른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의 논제는 그가 해낸 것이 흥미를 끄는 방식으로 참신한 것인지의 여부가 된다. 사슴 그리기는 별로 평가받지 못할 것이지만, 현상적으로 볼 때 창의적이며 그 가능성에서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무엇인가를 그리는 것은 높게 평가될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한 가지 가능성은 사람들이 비의식적 창의성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겠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그 어른이 독창적이게 되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던 규칙시스템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독창성은 어떤 면에서든 자발적인 것이라고 기대한다. 독창적이고 참신한 생각은 일종의 "마음에서 튀어나오는 것" 이기를 희망한다. 다시 말해서, 비의식적 능력이 작동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능검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나의 의도가 기존의 검사를 평가하거나 새로운 검사를 제안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단지 형식적 문제해결이 지능에서의 논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사슴을 그릴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거나 대화에서 독창적이려고 하거나 아니면 상대방의 복잡한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수단들은 문제해결과 전혀 관계가 없다. 문제해결은 학교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 학습하는 의식적 기술이다. 문제해결에서의 독창성은 결코 지능검사의 주제가 아니다. 만일 이것이 주제가 되어 버린다면, 독창성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할 가능성은 없다. 왜냐하면 한 사람에게 독창적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두 사례기반 추리자라고 전제한다면, 문제해결 능력은 지금까지 어떤 사례들을 경험하였느냐는 문제로 축소되며, 그것은 지능의 좋은 예언자가 될 수 없다. 한편, 참신한 논제를 이해하는 것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비의식적 과정은 지능의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된다. 모든 사람들이 지능을 검사하거나 모형을 만드는 데 있어서 관심을 기울여온 것은 의식적 추리과정인 반면, 어느 누구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바로 비의식적 추리과정이다. 즉, 진정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비의식적 추리야말로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지능을 평가하기 위해서 그러한 능력을 관찰한다.

지능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려면 지능적인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이 스스로 하는 것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여야 한다. 무엇을 하느냐고 묻게 되면, "체스를 둔다" 거나 "하노이탑 문제를 푼다" 는 등의 답을 얻게 된다. 한편 보통사람들이 일상적인 과제를 수행할 때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게 되면, 전혀 다른 답을 얻게 된다. 첫째, 일상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인지과학자들에 의해서 별로 연구되지 않은 일상적 지식의 유형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둘째, 인지 과학이 그러한 지식에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여 왔으며 과거에 지능을 정의하여왔기에 상당히 가치를 부여받았던 형식적 지식이 이제는 습득하기가 용이 하지 않은 소모품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가장 복잡한 유형의 지식 (예컨대, 정리를 증명하는 방법) 을 찾는 것은 사소한 일이며, 가장 일상적인 유형의 지식 (예컨대, 말하는 방법) 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설계할 때는 일상적 지식의 전달이 아주 쉽게 달성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한다. 누구든지 많은 정보를 강의를 통해서나 책을 통해서나 아니면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 낼 수 있다. 단지 이것만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아니다. 교육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에 대한 보다 심원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어야 한다. 좋은 교육설계는 지능을 측정하는 수단으로 문제해결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데 필요한 비의식적 지식을 암묵적으로 가르치는 수단으로 문제해결을 사용한다,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수단이며, 언어능력 (competence) 이 아니라 언어수행 (performance) 이다. 수량화하거나 세분화하는 적절한 방법을 가지고 있지 못한 과제에 대한 심원한 지식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 과제를 수행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과제 수행에 뒤따르는 학습을 수량화하거나 세분화하는 좋은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교육자로서 그리고 학습자로서 성공하였는지의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 그 답은 간단하다: 학생으로 하여금 성공적으로 과제를 수행하도록 만들며, 자신의 경험적 지식을 다른 문제맥락과 영역에 전이시킬 수 있게 만들면 된다.

우리가 만들려는 새로운 교수방법은 학습자가 할 필요가 있는 일들을 하도록 가르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지, 암기하였다가 내뱉을 수 있는 사실들을 알도록 가르치는 데 중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 교육이 명시적 지식에 관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무엇인가 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물론 이 생각이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학교 시스템이 지금같이 변하기 전까지는 지식이 항상 무엇인가를 하는 것 또는 행위에 근거한 추상화에 대한 것이었다. 자연적인 학습은 항상 행위를 통한 학습이었으며, 자연적인 문제 해결은 항상 사례기반적인 것이었다. 지능과 교육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변경시킨 것이 바로 학교라는 기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