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세대 : 미국의 반응
제 5 세대 : Edward Feigenbaum, Pamela McCorduck 공저, 윤진수 역, 홍익, 1983 (원서 : The Fifth Generation: Artificial Intelligence and Japan's Computer Challenge to the World, Pearson Addison Wesley, 1983), Page 241~276
1981 년 10 월에 열린 제 5 세대 컴퓨터 국제회의에서는 일본의 계획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견이 표명되었다.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 새로운 사회관념이나 습관을 필요로 하는 그런 기계를 굳이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 등 의견이 분분했다.
마지막 회합은 일본ㆍ미국ㆍ영국ㆍ프랑스대표단끼리 모여 진지한 토론을 가짐으로써 장식되었다. 거기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중요한 문제는 다 나올 것같이 생각되었으나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토론회의 의장을 맡고 있던 엔이찌 하꾸가 이렇게 말했다.
「특히 산업계 대표단의 일원으로 오신 분 중에 다른 산업계의 의견은 어떤지 알고 싶다고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여기엔 IBM 을 포함한 미국의 산업계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어떤 분이라도 좋으니 한 말슴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IBM 의 대표였던 허버트 쇼가 일어났다.
「우리들은 일본의 진지한 태도와 계획의 완전성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기초연구에 관한 것이므로 이미 몇 번이나 말씀드린 바와 같이 높은 위험성이 따르고 있습니다. 물론 성공할 확률도 없지 않지만 실패의 확률 또한 높은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1, 2 년 후에 일본의 연구가 어디까지 진척되었는지 알아 보기 위해 이 모임을 다시 주선해주신다면 기꺼이 참석하겠습니다.」
이 말 속에 숨어 있는 내용이 무엇이라는 건 웬만한 참석자는 다 알아차릴 수 있었다. IBM 사는 일본의 제 5 세대 계획에 냉소 비슷한 눈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뒤이어 미국 메사추세츠주에 있는 DEC (Digital Electric Company) 의 대표단으로 온 부르스 딜러가 일어났다.
「파이겐바움 교수께서 말했듯이 우리 회사는 전문가 시스템을 설치하여 이미 생산적인 목적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본의 계획이 갖는 그 완벽한 조직성과 명확한 목표를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엄청난 계획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놀라운 의욕에, 그 상상력의 창조성에 저는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이 목표의 극히 작은 일부가 달성된다고 해도 그것은 큰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코멘트의 차이는 인공지능에 대한 두 회사의 상반된 태도를 잘 보여주었다. DEC 는 그후 인공지능 연구에 열심히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인공지능 연구 그룹 안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지금 담당하고 있다.
IBM 은 인공지능에 대해 공식적으로 의문을 나타내고 있으며 인공지능에 대한 IBM 의 역사 또한 뒤죽박죽이었다.
IBM 의 연구센터는 요크타운에 있는데 과거에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관한한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그것은 노골적인 적의와도 같았다. 「컴퓨터가 지능을 가지면 사람들의 컴퓨터에 대한 인식은 약화될 게 뻔하다. 그렇게 되면 컴퓨터의 판매대책은 복잡해질 것이다.」이것이 IBM 사가 고집하는 컴퓨터판매의 신조였다. 그것은 마치 몇 억 년된 화석만큼이나 굳어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몇 개월인가 지나서 IBM 사는 적은 수의 특별연구팀을 만들어 인공지능에 관해 연구해 보도록 지시했다. 파이겐바움도 그들의 인터뷰에 두 번인가 응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얼마 동안의 특별한 연구를 끝내고 한 장의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인공지능에 관한 보고는 더 이상할 것이 없다고 사료됨. 왜냐하면 실현가능성이 극히 희박하기 때문에.」
옛날 일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같은 일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을 것이다. 성공한 최초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중 몇 개는 바로 IBM 의 지붕 밑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1956 년 한 과학세미나가 열려 새로운 과학분야를 연구하기로 하고 선택했던 과제 중 하나가 인공지능이었고 그 세미나의 핵심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IBM 사의 정보부장 나다니엘 로체스타였다. 로체스타는 이 세미나에서 인공지능의 아이디어를 얻고 돌아와 막 입사한 연구원인 이학박사 허버트 게렌트에게 과제로 내놓았었다. 게렌트는 그것을 평면기하학적 측면에서 진지하게 연구한 끝에 실현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아이디어였다고 그는 회상하고 있다.
그 세미나에 참석했던 사람 중에 아더 사뮤엘도 있었다. 그는 처음엔 IBM 사의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1956 년 당시엔 유럽쪽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체스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선수권에서 우승시킬 정도로 우수한 컴퓨터 전문가였다.
사뮤엘은 IBM 사로부터는 아무 관심도 끌지 못한 이 프로그램을 유럽의 몇몇 연구소에 선물하고 그 자신의 경험과 연구결과를 얘기해주었다. 이런 형편이었으므로 그는 유럽의 컴퓨터 연구 상황을 훤히 알고 있었다.
한편, 그 세미나에는 IBM 의 응용과학부에 근무하는 아리스 번스타인도 참석하고 있었다. 그는 아더 사뮤엘이 만든 체스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로체스타를 설득하여 「우리도 한번 만들어 보자.」고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을 허가할 때, 로체스타를 비롯한 IBM 실무진의 원래 계획은 「번스타인이 새로운 체스 프로그램을 성공한다면 회사경영과 같은 어려운 문제도 컴퓨터로 해결할 수 있다고 회사 중역들을 설득할 수 있는 구실이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후, 번스타인은 강력한 능력을 가진 체스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아더 사뮤엘도 번스타인도 일약 매스컴의 플레쉬 세례를 받는 인물이 되어 《뉴욕 타임즈》, 《라이프》등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이 기사를 썼다.
그러자 IBM 의 주주들과 중역들은 급성소화불량증에 걸린 사람처럼 안절부절, 당장 인공지능 컴퓨터 연구에 관한 일체의 행동을 금지시켰다. 그때 판매부서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거의 매일 세일즈현장에 나가서는 「컴퓨터는 덩치만 큰 물건일 뿐, 저능하고 말썽많은 기계에 불과하다.」라고 널리 알리도록 지시받았다. 1950 년대 말의 IBM 은 이 정도였다.
대회사는 일반적으로 큰 가게와 같다고 볼 수 있다. 큰 회사든 큰 가게든 중류계급과의 효과적인 화합을 목표로 한다. 보통 상황아래서는 둘 다 무척 느릿느릿한 변화밖에 못한다. 개척정신이나 모험심이 강한 사람들 눈에는 답답할 정도로 느리다. 그러나 그들은 그 덕분에 착실히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IBM 사도 설립 이래 지금가지 가슴 섬뜩한 위기와 모험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엄밀히 얘기하자면 IBM 의 주된 고객은 중산층이다. 중류계급의 고객을 상대로 하는 중류계급적인 회사가 바로 IBM 이다. 물론 IBM 도 하드웨어 부문에서 기술적인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런 사소한 업무를 보고 IBM 이 혁신적이고 모험심 강한 회사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IBM 은 실리적인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견실하다. 틀림없는 상품, 틀림없는 사업만 벌이니 자연 안정되어 있다.
신제품 개발에 관한한 IBM 은 언제나 2 등이 되려고 한다. 그들은 신기술 개발의 까다로운 역할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결함이나 어려움이 모두 없어지고나면 그때서야 멋지고 이상적인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그 제품에 뛰어든다.
소프트웨어 부문만 해도 그렇다. 그들은 소프트웨어에 관한 소비자의 문의전화에 확실히 응답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그 제품의 생산을 보류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른 사람들의 계속된 모험에 의해 일이 스므스하게 풀렸을 때 소프트웨어 부문에 손을 대었다. 그들은 언제나 이 모양이다.
그런데 IBM 은 과거에 생산된 소프트웨어의 부품이 새로 개발된 컴퓨터에도 변함없이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여기에 대해 IBM 의 컴퓨터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의 부호를 자세히 살펴보면 최신식 소프트웨어에 1953 년대의 고물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컴퓨터 이용자가 성능이 떨어진 기계를 더 좋은 기계로 바꾸려 할 때 몇 가지 부품이라도 먼저 것에서 갖다 쓴다면 얼마나 많은 이익이 되는지 아는가?」
그 정도까지 소비자를 생각해주는 IBM 에 대해서 이용자들은 감사도 하고 충성을 다짐하기도 한다.
IBM 의 보수성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예가 있다. 초고속 컴퓨터에 관한 그들의 태도이다. 「IBM 이 곧 제 4 세대 컴퓨터, 다시 말해서 초고밀도집적회로에 의한 컴퓨터를 생산할 것이다.」라는 소문이 마치 봄날 꽃가루 날리듯이 퍼진 적이 있다. 그러나 IBM 은 그와같은 컴퓨터를 아직도 내놓지 않고 있다.
그 컴퓨터는 능력에 있어 지금까지의 컴퓨터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 능력의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수많은 계산을 순서대로 하는 직렬방식이 아니고 한꺼번에 해답을 내놓는 병렬방식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1 초간에 1 억 가지 이상의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컴퓨터는 그런 일을 결코 할 수가 없었다.
제 4 세대의 컴퓨터는 대단히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입력 출력을 위한 별도의 컴퓨터를 위성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 대량의 데이터를 가장 빠르고 손쉽게 처리할 수 있게끔 구성된 이 컴퓨터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먼저 생산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콘트롤 데이터 회사는 사이버 205 라고 명명된 기계를 내놓고 있다. 그밖에 일리노이 대학 같은 데서도 이 기계를 시험적으로 만들었다. 일본도 현재 이 컴퓨터를 만들어 팔려고 팔을 걷어올리고 뛰고 있다.
그런데도 세계적인 대회사 IBM 이 뒷짐을 쥔 채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그 이유는 너무도 뚜렷하다. 시장성이 없다는 것이다. 고객이 한정되어 있다고 그들은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1982 년 중반까지 생산 판매된 제 4 세대 컴퓨터는 50 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은 큰 석유회사나 영국의 기상청 같이 컴퓨터가 많이 사용되는 곳에서만 구입됐을 뿐이다.
1980 년대 초의 제 4 세대 컴퓨터는 1950 년대 초의 제 1 세대 컴퓨터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당시 컴퓨터는 대당 1,000 ~ 1,500 만 달러까지 호가했다. 당시로서는 워낙 큰 능력을 가진 기계였기 때문에 당연한 가격이었는지도 모른다. 1953 년까지도 제 1 세대 컴퓨터의 장래는 어둡기만 했다. 13 개사가 9 개 회사로 줄어들었다. 그때 IBM 도 손을 뗀 회사 중의 하나였다.
그로부터 30 년이 지난 오늘, 컴퓨터는 대폭 싼 값에 작아진 규모, 게다가 성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져서 가정의 사사로운 일에까지도 이용되기에 이르렀다. 세계 어느 곳엘 가도 컴퓨터는 지금 날개돋힌 듯 팔리고 있다.
그렇다면 제 4 세대 컴퓨터도 이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 아닌가? 시간적으로도 훨씬 많이 단축될 것이 분명하다. IBM 사의 생각은 뻔하다. 만약 미국 사람들이 제 4 세대 컴퓨터를 좋아하게 되면 그때가서 시장에 참가하면 된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IBM 은 늘 이렇게 시기가 올 때까지는 연구와 상품화를 뒤로 미룬다는 이론을 흡사 사시처럼 내걸고 있다.
초고속 컴퓨터는 누구든지 알고 있고 자랑스럽게 여겨왔던 <폰 노이먼 방식> 의 컴퓨터를 확대한 것 뿐인데도 IBM 의 태도는 보수적이기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제안한 제 5 세대 컴퓨터 계획에 대해서 IBM 이 입으로는 좋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냉담한 것이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일본이 제안한 제 5 세대 컴퓨터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그것은 IBM 이 돈을 벌기 위해 그동안 취해온 방침과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다 일본은 IBM 이 그토록 싫어하고 있는 <인공지능> 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의 전례를 생각해 보면 교훈이 될 것이다. 지난 날, 구형의 기계식 계산기를 만든 대회사들이 새로운 가치를 지닌 컴퓨터를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패배를 맛본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신기술 앞에 여지없이 무릎을 꾼 대회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IBM 의 보수성 때문에 고객들은 돈을 절약하게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처음에 간과하고 있던 시장이 나중 엄청난 황금시장으로 변해버림으로써 오히려 손해를 본 예는 많다. 예를 들면, IBM 은 미니컴퓨터를 경시해 몇 년 동안 DEC 가 하는대로 내 버려 두었었다.
그러나 그 후, DEC 가 미니컴퓨터 부분에서 상당한 이익을 올리자 IBM 은 그제서야 눈을 떴다. 퍼스널컴퓨터도 마찬가지이다. 제일 먼저 애플이 뛰어들자 IBM 은 훨씬 뒤에 슬쩍 끼어들었다. 로봇트판매도 다른 작은 회사들이 시작한 후에야 무거운 허리를 들어올렸다. 모든 게 이 모양이다.
「IBM 은 멋진 아이디어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IBM 의 연구원들과 개인적으로 얘기를 나누면 그들은 한결같이 「IBM 에서 지금 연구하고 있는 것은 굉장한 일들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와같은 굉장한 연구의 90 % 이상이 상품화되지 않고 그냥 사장되고 만다. IBM 은 결국 연구는 하되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데는 문제가 많은 회사이다. 보수주의 사려깊은 판단, 관례의 존중 등이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1982 년 여름, 일본과 미국 사이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 일본의 산업스파이가 암약 중 발각이 된 것이다. 스파이의 표적은 실리콘 밸리가 아니고 IBM 이었다. 그것도 IBM 의 10 년 후의 비밀이 아닌 내주나 내년 정도의 비밀이 그들의 목표였다. 그것을 거액의 돈을 지불할 정도로 값어치 있는 목표일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IBM 의 정보를 얻고자 열심인 사람은 비단 일본인들뿐만이 아니다. 클레몰린, 북경의 사주를 받은 직업 스파이들은 FBI 의 수사관 뺨칠 정도로 일을 해내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이다. 이 거대한 컴퓨터 회사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를 알아내어 그 정보를 손님에게 파는 것이다.
그들은 「나는 범법행위는 하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러자 정보수집을 위해 그들이 부리는 수단은 상상을 초월한다. IBM 은 최고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 신뢰성과 봉사정신은 소비자로 하여금 무한한 안도감을 준다. 누가 IBM 의 정책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
IBM 은 1981 년이 되어서 마침내 퍼스널컴퓨터 분야에 진출할 것을 결정하였다. 바로 그 해에 IBM 은 퍼스널컴퓨터 시장의 17 % 를 장악했다. IBM 의 저력이 거기에 있다. 그래서 IBM 은 자신만만하다.
그러나 지금 IBM 은 그 심볼처럼 여기던 신조를 미국 산업계가 뒤따르려는 빛이 보이자 자못 당황하는 눈치다. IBM 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회사의 기술적 우위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말에 답변하는 것도 이젠 질색이다. 우리 회사의 기술은 누가 뭐래도 세계제일이다. 기술 격차는 날로 커질 뿐이지 좁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일이다.」IBM 이 언제까지 이렇게 소극전법을 펼런지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시대에 늦을수록 그들이 애써 쌓아 놓은 탑은 작은 규모의 회사들에 의해 점차 흔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제 5 세대 컴퓨터회의가 끝나고 얼마 안있어서의 일이다. IBM 은 일본의 계획에 무관심했으나 중소기업들은 일본의 새로운 제안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동경에서 돌아온 파이겐바움은 미국 각지의 회사로부터 초대되어 일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해줄 기회를 가졌다. 한편 맥코덕은 인공지능 문제가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로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동방으로부터 불어온 제 5 세대 바람을 직접 실감하기 위해 파이겐바움의 강의에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출석한 것은 B 클래스의 컴퓨터회사가 주최한 강연회였다. 이 회사가 왜 파이겐바움을 불렀는지 맥코덕은 잘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이미 제 5 세대 컴퓨터 국제회의의 내용들이 모두 소개된 후였고, 제 5 세대 컴퓨터 국제회의의 회장이었던 동경 대학 교수 모도오카가 직접 미국에 건너와 강의도 한 후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데도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다는 것일까?
그런데 모도오카 교수의 강연은 너무나 애매한 것이어서 그것을 들은 기술자들은 「일본인들은 자기들이 말하고 있는 게 뭔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 일부 기술자들은 그 회의의 보고서를 자세히 읽고는, 「그의 얘기는 희미하고 바보스럽기까지 했지만 동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걱정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파이겐바움이 그 회사에 초대된 것은 정보 제공과 함께 기술자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한 경영자의 배려 때문이었다.
파이겐바움은 오전 중에는 전문가 시스템의 설명과 제 5 세대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했다. 매초당 1 억에서 10 억 정도의 논리적 추론을 할 수 있는 기계를 1990 년까지 만드는 것이 일본의 목표라고 그가 힘주어 말했을 때 기술자들은 숨을 죽였다. 지금의 컴퓨터는 매초 1 만 내지 10 만의 추론밖에는 할 수가 없다.
「일본인들은 그와같은 기계가 1990 년대의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는 컴퓨터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은 구식 컴퓨터에서 새 시대의 컴퓨터로 옮겨질 때 될 수 있는대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말자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자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하기만 했다.
강연을 끝내고 파이겐바움은 자기가 언제나 자문자답하고 있는 문제를 제기했다.
「일본이 저렇게 도전해오고 있는데 우리 미국인들은 언제까지고 그렇게 구태의연한 행동만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이내 이렇게 자답했다.
「미국은 경쟁사회입니다. 우리는 뼛속까지 깊이깊이 경쟁으로 단련되어 있습니다. 경쟁은 우리의 도덕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협력이란 게 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미국에서도 아폴로 계획과 같은 협력의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닐 암스트롱은 우리와의 협력을 통해 달에 착륙할 수 있었습니다. 협력, 힘을 합치는 것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기술자 한 사람이 일어나 질문했다.
「미국 정부가 취하고 있는 정책은 그럼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안하고 잇습니다. 정부관리 중에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몇 명 안됩니다.」
「그럼 IBM 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그들도 아무것도 안하고 있습니다.」
순간 장내엔 폭소가 터졌다. 그밖에도 고민스럽다는 듯한 질문, 절망스런 표정의 질문, 호기심어린 질문, 유머러스한 질문 등이 계속되었다. 맥코덕은 그들의 질문이 어쩐지 서글프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끝내 선견적인 현명한 질문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후에는 비공식적인 토론이 준비되어 있었다. 토론장의 여기저기를 돌아보면서 맥코덕은 더욱 기분이 씁쓸했다. 기술자들은 모두 성실하고 머리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문제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만한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소속되어 있는 산업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며 찬스가 여지없이 달아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들은 가야 할 방향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환자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데 의사와 가족은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하며 갑론을박하는 것처럼 느껴져 맥코덕은 내내 우울하기만 했다.
그때 기술자 한 사람이, 「몇 개 회사가 팀을 짜서 추진해 보면 어떨까요?」하고 제안했다. 그러나 옆자리에 앉아 있던 기술부장은 고래를 가로저었다. 회사간의 경쟁과 비밀주의가 아직 미국 기업 내에서는 율법처럼 돼 있는데다가 독점금지법 또한 큰 장벽이라는 것이었다.
파이겐바움은, 「산업계와 학계의 중지를 모으기 위해 스탠포드 대학을 이용하신다면 언제든지 환영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파멜라 맥코덕은 내심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어느 회사도, 심지어 일본의 도전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회사조차도 기업간의 협력문제에 있어서는 거부반응을 보일 것이 뻔했다. 자금염출, 기밀누설 등 산적한 문제가 많은 것이다.
사람들이 멍한 표정으로 먼산만 바라보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미국의 시대는 끝나려는가? 아메리카합중국의 전성시대는 과연 종말을 고할 것인가?…」
「이제부터는 미국의 시대이다!」라고 낙천가 헨리 루즈는 말했었다. 그때는 불과 40 년 전인 1943 년이다. 그로부터 불과 50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종말을 맞이하려는가?
쇠퇴기에 들어선 나라의 국민이 된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우울한 일이다. 누구 말처럼 미국인들의 살 길은 장사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장사가 가장 안되는 시기에 와 있다.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도전을 받고는 빼앗기고 잃고, 그리하여 지금 장사가 안된다. 거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는 하다. 다른 나라가 너무 경쟁적으로 덤비니까 어쩔 수 없이 내주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미국 사회의 구조적 취약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이는 미국의 역사철학을 살펴보고는 「표면적인 일만 강조할 뿐, 깊이가 없고 모든게 불완전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미국은 지금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중요한 경쟁에 끼어들려고 한다. 이 경쟁에 미국은 질지도 모른다.
과거 10 년 동안의 신문 경제면을 훑어보면 흡사 스포츠면을 보는 기분이 든다. 어느 게임에서든지 빼앗기고 지고 잃어왔다. 최하위로의 전락은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았다. TV, 오디오, 소형승용차, VTR, 가전제품 등 어느 경기에서든지 미국은 다른 나라 팀에게 백전백패였던 것이다.
철강산업이나 자동차 게임에 이르러 미국이 굴복하게 되었을 때 그 스포츠를 보고 즐겁게 느낄 수만은 없게 되었다. 20 년 전, 미국에서 판매되는 외국산 자동차는 불과 4.1 % 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은 30 % 에 육박하고 있다. 외국산 철강 14 % 에 달한다.
그렇다고 미국의 일반소비자들이 미국의 철강업이나 자동차업계에 미안한 생각을 갖지는 않는다. 「우리는 일제 승용차를 산다. 그차가 우리에게 꼭 알맞기 때문이다. 쾌적하게 운전할 수 있고 유지비도 훨씬 적게 먹는다. 몇 년을 타도 새로 산 것처럼 견고하고 녹이 스는 일도 없다.」소비자들은 일제 승용차를 산 것이 당연하다는 투로 말한다.
미국 철강업계는 어떤가? 그들은 철강은 놔두고 석유로 한 판 벌어 보려다가 거듭거듭 실패만 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시 한번 분발하면 이번엔 꼭 잘 될테지…」하는 의욕도 용기도 없다. 그러니 백전백패이다.
월요일판 조간신문인 스포츠면을 보면 일요일 벌어졌던 각 게임을 자세히 해설해 놓고 있다. 해설자는 어느 팀이 왜 이기고, 어느 팀은 왜 지게 되었는지 그대로 재현해 보인다. 미국 경제의 패배상황을 재현해 보자.
1. 다른 나라 팀들은 미국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흉내가 먹혀 들어갔다. 그들은 거기에다 판매에 필사적인 작전을 쓰고 있다.
2. 미국 회사들은 단기적인 목표에 집착한 나머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다. 그러나 외국 팀들은 복안을 갖고 있다. 즉 단기적인 목표와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3. 미국 기업들은 어떤 결정을 할 때 양적인 데이터에 의한다. 그러나 너무나 정확한 분석을 기하는 나머지 창조성, 판단력하고는 담을 쌓고 있다.
4. 외국 팀들은 경영자와 관리자, 노동자가 흡사 하나의 끈에 연결된 것처럼 일한다. 그러나 미국 팀들은 노사간에 깊은 적대감정, 서로 백안시하는 풍조를 갖고 있다. 이것을 전통처럼 중히 여긴다.
5. 미국정부의 규제는 엄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자유로운 시장형성이 어렵고 그에 대한 적절한 참여 또한 힘이 든다.
6. 외국 팀들은 모든 트러블은 선의로, 또는 우호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곧장 법정으로 달려간다.
7. 인플레가 미국경제를 좀먹고 있다.
혹시 이 일곱 가지의 패배요인 속에 관세, 무역의 장애요소, 보호무역주의 등이 끼어 있지 않은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보호무역주의야말로 근시안적이고 바보스러운 정책 중의 하나이긴 하다. 그러나 일곱 가지의 패배요인으로서도 알 수 있듯이 보다 큰 문제는 바로 미국기업들의 소극적이고도 안일무사주의적인 정신자세에 있는 것이다.
미국인은 지난날, 실력자 중의 실력자였다.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인가? 여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확실한 대답을 못하고 있다. 안개 속에 가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생각해 보자. 무역문제로 일본인 한 사람이 미국에 왔다. 처음엔 약간 겁을 먹고 있는데 막상 미국인들을 대하고 보니 웬걸 그렇게 허약할 수가 없다. 호텔 방에 돌아와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던 시절의 그 참담함을 생각해내고, 또 오늘날 일본인 앞에서 여지없이 허약함을 드러내는 미국인들을 보고 그 세월의 무상함에 소리높여 웃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일본의 교육정책을 보면, 근면ㆍ면학ㆍ응용력ㆍ의무ㆍ책임감ㆍ유연성ㆍ애국심 등을 강조하는 교육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런 교육을 하지 않는다.
어느 장군인가가 이런 말을 했다. 「승리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그러나 여기에 한 마디 더 추가해야 할 것이다. 「승리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이기려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이다.」미국 교육은 이제 학생들에게 이기려고 하는 정신자세를 심어 줄 때가 되었다.
일본은 아직도 일 잘하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미국인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었다. 격언이나 싯귀를 보면 이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천재는 1 % 의 영감과 99 % 이 노력이다.」라고 토머스 에디슨은 말했다. 또 가장 흔한 인용문 중의 하나지만, 근래에 와서는 미국이 낳은 최저의 시인이라고 불리우는 에드가 게스트 같은 사람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기도 했다.
그것은 할 수가 없어요.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웃으며 그는 대답했다.
그래 그것은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한번 해 보자.
되는지,
안되는지.
그것은 해 보면 알 수 있을 테니까.
미국인들은 이 시에 감동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조금씩 감동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옛날처럼 이 시를 읽고 자기 인생에서 용기를 낼만큼 큰 감동을 받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약간의 실패는 용서받을 수 있다. 또 용서해야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실패를 두 번, 세 번 저질러서는 용서받을 수 없다. 용서해서도 안된다. 무섭게 질책해서라도 그의 앞길을 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세계가 변하고 있다. 그러나 그 변화에 따라서 새롭게 처신하는 유연성, 창조적 사고방식 등이 미국인들에겐 결여되어 있다. 미국의 장래를 위해 이보다 더 큰 불행이 어디 있단 말인가? 더구나 산업계의 사람들이 그렇다면 더욱 문제는 심각하다. 미국인들은 무엇인가 극적인 상황이나, 당장 급박한 위협, 돌연한 파국에 직면했을 때에야 비로소 행동하려고 한다.
IBM 사의 사장인 존 R. 오펠은 1982 년 늦은 봄, 미국 어린이들의 학력저하가 심각하다고 개탄한 적이 있다. 미국 대학수험생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학력고사 결과 국어와 수학의 평균점은 과거 20 년 사이에 90 점이나 하락했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보고를 그는 예로 들었다. 미국 고교생의 반 이상이 2 학년이 되면 아예 수학과목을 선택하지 않고 있다. 2, 3 학년 학생으로 이과의 과목을 선택하는 수험생은 겨우 17 % 에 지나지 않는다. 물리학을 선택하는 학생은 겨우 0.07 % 이다. 그는 미국 국민들의 태만을 탄식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우리는 지금 긴박한 국가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 문제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 미국대륙 전역에 이 의지의 불꽃이 타오르도록 해야 합니다. 국가의 장래가 바로 여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추세는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금은 그야말로 새로운 의지의 불꽃을 피워야 할 바로 그 때이다.
더구나 미국은 새로운 쇼크를 받고 더욱 진퇴양난이다. 그 쇼크란 새로운 세대의 컴퓨터라는 형태로 찾아왔다. 그것은 우연히도 존 R. 오펠의 전문분야에서 닥친 쇼크이다.
일본의 도전에 대응하려면 활력과 상상력이 필요한데 이런 소양을 가진 사람은 좋은 교육을 받고서 만이 가능한 것이다. 미국의 교육 자체가 개혁의 시점에 지금 와 있다. 그러지 않고는 도저히 이 경쟁에 이길 수 없다. 그러나 그 꿈을 실현하기 전에 미국은 몇 개의 보다 중요한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일에 대해서 알아 보자.
과거 10 년에 걸쳐 2 년에 한 번씩 미국과 캐나다 대학들의 컴퓨터과학부교수들이 유타주에 모여 각 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한다. 마침 회의장소로 채택되고 있는 곳은 유타주에서도 고산지대여서 혈압이 오르고 심장은 뛰는 곳이다. 그런 육체적 고통과 함께, 회의를 끝내고 내려오는 사람들은 미국의 컴퓨터과학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어떤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면서 고민에 빠진다.
이제는 국립공원에서 미장원에 이르기까지 위기에 처하지 않은 곳이 없어 이 말은 또 하나의 흔히 있는 얘기구나 하고 보아넘길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과학자들의 이런 우려는 분명히 근거가 있다. 만약 일본인들이 말하고 있듯이 컴퓨터과학이 다른 분야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이 상태는 <위기> 라고 불러 조금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특히 이 문제는 인간관계ㆍ환경설비ㆍ투자ㆍ철학 등에 관계하고 있다.
우선 철학문제를 보자. 컴퓨터를 둘러싸고 있는 현상의 연구가 물리학처럼 자연과학인가, 아니면 수학과 같은 순수과학인가, 그것도 아니면 심리학인가, 그도저도 아니면 아직 소속이 불투명한 혼혈학문인가, 이런 것을 따지는 것이 철학인데 그런 문제는 여기서 다룰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컴퓨터과학 자체에 있어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 일이 학생을 어떻게 지도하느냐, 연구를 어떻게 발전시키느냐 하는 중요한 문제와 관계하기 때문이다.
1970 년대와 1980 년대에는 많은 대학들이 학생의 부족으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컴퓨터과학부의 경우, 오히려 파도처럼 몰려드는 학생 때문에 그야말로 처치곤란이었다. 컴퓨터를 전공하는 학생수는 1975 년에서 1981 년 사이에 거의 두 배 이상 증가되었다. 그 수는 대강 보아도 1987 년까지는 60 % 이상 증가될 추세이다. 만약 장래의 생활보장을 이유로 컴퓨터학과를 선택했다면 그들은 참으로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
1980 년에는 대학졸업생이 자기의 취직회사를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었다. 더구나 첫 봉급이 연봉 2 만 달러 이상의 호조건으로 기업들이 손을 뻗쳐왔다. 그리고 이것은 날로 상승세이다. 컴퓨터전공의 이학박사인 경우는 더욱 대단한 조건이었다. 80 년에, 컴퓨터전공 학생이 12 개 회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이학박사들은 34 개 회사 중 하나를 선택하여 취직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학박사가 학교에 그대로 남아 연구를 하게 되면 대학졸업생의 초임금만도 못한 급료에 만족해야 한다. 컴퓨터 전문가이며 컴퓨터학회의 회장까지 지낸 한 분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대학졸업생의 급료가 컴퓨터교수 월급과 맞먹는다면 대학에 남아 연구에만 정진한다는 일은 분명 매력을 잃게 된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비단 컴퓨터전공 학생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어떤 학교에 다니든지, 또 무엇을 전공하든지 만약 그 학생이 현실을 보는 현명한 머리의 소유자라고 하면, 현실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컴퓨터혁명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조만간 자기 분야에도 컴퓨터의 손길이 밀어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학생들이 컴퓨터 프로그래밍 입문 코스에 모여들고 컴퓨터 단말기 앞에서 사생결단을 내려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컴퓨터과학부가 없는 대학은 펀치카드식의 고물기계를 들여 놓고 학생들에게 일단 배워두라고 권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 결과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컴퓨터 전문가가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있는 단말기나 컴퓨터로는 수요를 채울 수 없을 것이다. 연구실의 설비는 턱도 없이 부족하고 학생들은 컴퓨터, 컴퓨터를 외치며 풍선처럼 부풀어 있고, 대학의 교수들은 기업체로 옮기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게 될 것이다. 아니, 지금 그런 추세이다.」
대학에 남는 것이 현실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몇몇 학생들은 그대로 대학에 머물러 학문에의 의지를 불태우겠다고 한다. 그들은 진실로 학문을 사랑하고 무엇보다 자기의 일을 사랑하고 있다. 그들은 탐구를 즐기며 한 분야의 최첨단에 서서 발견하고 증명하고 성취하려고 한다. 그들은 그것으로 충분히 삶의 보람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얼마 못가 자신의 본래 계획을 포기해 버려야 할 시점에 다다른다. 산업계에 근무하는 그 똑똑한 사람들이 그냥 연구에만 정진하도록 내 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헐리우드의 영화사까지도 컴퓨터전공의 이학박사를 탐낼 정도이다.
1974 년부터 1978 년까지 1,227 명의 학생이 온갖 유혹을 다 물리치고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러나 그 중 대학에 남아 대학교수가 된 사람은 0.02 % 인 32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비단 컴퓨터과학 분야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 물리학이나 공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지난 10 년 동안 평균 25 % 가 감소되었다. 그것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 급성장한 까닭에 학위가 없는 사람이라도 쉽게 취직할 수 있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학생들이 마음놓고 학업에 정진할 수 없게 만드는 미국의 산업계 풍토 때문인 것이다.
「국민의 공통적 이익이 되기 때문에…」
이런 이유만으로 정부가 대규모의 국가 계획을 세운다고 하면 많은 국민들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의구심을 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의 방위에 필요한 일이라고 납득이 되어지면 미국인들은 도움이 되거나 안되거나 상관없이 거액의 돈을 몇 번이나 지출해왔다.
인공지능에도 그와 같은 데가 있다. 미국의 어느 기업, 재단, 혹은 재벌도 인공지능을 위해 돈을 내놓은 적이 없는데도 국방성은 실패할 확률이 높은 이 연구를 지난 20 여년 동안 꾸준히 지원해왔다.
국방성은 그간 미국인한테 세금을 거두어서는 인류 전체를 위해 큰 이익이 되는 일에 곧잘 투자하곤 했었다. 심지어 미국인하고는 전혀 상관도 없는 나라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름을 선뜻 내놓는가 하면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집안싸움에 끼어들어 수천만 달러를 소비하곤 했다. 그런 국방성이 정말 인류를 위해 좋은 일 한번 한다는 소식을 전하게 된 것은 필자로서도 여간 기분좋은 일이 아니다.
1970 년대 말에는 인공지능의 기술 중 일부는 연구단계에서 개발단계로 옮겨가게 되었었다. 그때 국방성은 놀랍게도 이 개발이 시대를 앞질러가는, 실현성이 불확실한 것이긴 해도 미국으로서 한 번 시도해 볼만 한 일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 당시 어느 자본가나, 경영자도 이 계획을 추진하는 데 있어 긍정적이거나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 주지 않았었다.
이제 인공지능은 「좋은가, 나쁜가?」, 「산업용인가, 군사용인가?」 따위의 논쟁이야 어쨌든 세상에 나와 있다. 일본의 제 5 세대 계획은 그 아이를 완전한 성인으로, 그것도 하나의 상품가치가 있는 성인으로 육성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스스로 잉태하여 탄생시켰던 그 아이를 완전히 성인으로 만들, 독자적이고도 집중적인, 그리고 대규모적인 계획을 세워야 할 때이다. 그것은 미국에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미국의 국방에 있어서도 불가결한 것이다.
1990 년대가 되어서 지능적인 정보처리 시스템이 방위에 응용되면 병기는 대폭 진보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극히 정교한 전자기기를 사용하여 첨단기술의 극치라고까지 격찬받던 1982 년대의 각종 무기는 복잡하고도 조잡스런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1981 년 여름, 파이겐바움은 <국방과학위원회> 에서 인공지능의 연구개발현황에 대해 증언해줄 것을 부탁받았었다. 국방과학위원회는 잘 알다시피 국방성의 각종 시책에 자문하고 조언하는 최고 레벨의 과학자 그룹으로, 그 임무는 수많은 최신기술이 미국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하는가를 분석하는 일이었다.
당시 이 위원회의 보고서 중에는 인공지능의 중요성, 방위상의 의의, 개발에서의 실패확률 등을 따진 결과 당시 검토하고 있던 7, 80 개의 기술 중 우선순위 7 위였다고 한다. 그리고 방위상의 의의만 가지고는 당당 2 위를 차지했다.
따라서 국방성 연구개발 담당 차관 리처드 D. 델라우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방성은 이 기술의 개발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그 누구도 연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일본은 정부기관, 대학, 산업계 등이 힘을 합쳐 하나의 연구소를 만들고 인공지능 컴퓨터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같은 리처드 D. 델라우어의 말을 우리는 다음의 다섯 가지 이유로서 지지한다.
첫째 이유는, 현대 전쟁에서는 기술적으로 조금이라도 앞서는 편이 유리한 법인데 전자분야에서 기선을 잡는다면 압도적으로 우위에 서게 될 것이다.
1982 년 레바논사태 당시의 상황을 보자. 시리아는 소련제 미그전투기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에 반해 이스라엘은 미국 젯트전투기의 전자기기를 개량해서 미그기 이상의 성능을 가진 전투기를 만들었다. 또한,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지대공 미사일기지의 유도용 전파를 탐지해서 모조리 해독하고 미사일비행을 방해할 수가 있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시리아 공군기의 피격 및 추락이 79 기였는데 반해 이스라엘 공군기의 피해는 제로였던 것이다.
이와같은 놀라운 성과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전자적인 싸움을 인간이 관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인간이 해냈던 이러한 일들을 컴퓨터가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해치울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미국은 인공지능의 연구에 있어 일본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어느 나라에게도 뒤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일본이 동맹국으로서 아무리 충실하다고 해도 미국의 중요한 방위기술을 일본에 의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일본에서는 기술정보가 자루에 물을 붓는 것처럼 쉽게 새 버리고 만다. 서방측의 기술정보가 일본을 통해서 무차별하게 다른 나라의 손에 넘어간다는 사실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 번째 이유는, 미국의 국방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전문가 시스템을 병기에 응용할 경우, 목표는 오차의 확률을 제로로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병기에 활용되면 이제까지와는 달리 최소한의 무기로서 최대의 효과를 낼 뿐만 아니라, 각종 비용을 절감함으로써도 큰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특히 이것은 과잉낭비의 분야에서 큰 효과를 올리게 될 것이다.
네 번째 이유는, 첨단기술의 성과를 의심하는 나머지 일본이 상품화해서 팔려고 내놓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최신의 기술을 국방성 스스로 개발하여 금방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다섯 번째 이유는, 아메리카합중국의 국방성은 스스로의 군사체계에 맞는 기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일본의 히다찌 제작소가 취하는 방법은 미국의 로크웰이나 로키드가 하는 방법과는 다르다. 미국의 방위산업은 미국에 맞는 최신의 컴퓨터기술이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까지 미국은 정보혁명을 이끌어왔다. 미국의 반도체 공업은 세계에서 제일의 것으로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1971 년 초부터 시작된 칩 생산 전쟁의 최종적인 승패는 아직 결판나지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일본쪽이 앞서고 있다. 일본이 생산한 초고속 컴퓨터는 미국의 그것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우수하다. 하드웨어건 소프트웨어건 미국을 쫓으려고 그들은 몸부림이라고 부를 만큼 노력하고 있다.
이제부터 10 년간, 근면하고 창조적인 일본인들이 지능기계에 관해서 어느 정도의 일을 해낼 것인가? 이 일에 관해 의문을 갖는 사람은 10 년 전의 일본을 돌이켜보면 될 것이다. 그때 일본은 문제될 정도의 컴퓨터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국방력은 군인과 병기의 수로서 전력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잘 읽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전력은 완력으로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력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 즉 국방에서의 지력의 역할을 갈수록 증대하고 있다. 최고의 지력을 갖는 것은 미국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다.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일이지만, 진주만에 대한 일본의 공격은 미국측이 정보수집활동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은 진주만 피습 5 개월 후에 동경 공습을 감행했다. 그것은 마치 동키호테의 행위와도 같은 공격으로 일본측에 어떤 피해도 주지 못했다. 대부분의 미국 국민들은 이 공습이 미국인들에 대한 선전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 당시 미국 국민들에겐 사기진작이 무엇보다 필요했었다. 일본한테 기습을 받았다는 사실에 모든 미국인들이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공습은 뜻하지 않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동경 공습으로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는데도 일본인들은 본토를 공격당했다는 사실에 큰 쇼크를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 해군은 과잉반응을 일으켜 연합함대의 군함 거의 대부분을 태평양에 내보냈다. 그 결과, 대량의 정보는 미국으로 유출되고 그 때문에 미해군은 중대한 암호 해독으로 전혀 예기치 않은 승리의 기회를 포착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불행한 일이지만 미해군은 일본의 해군에 필적할 만한 힘을 갖지 못했지만 비밀이 전자전에 있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자 상황은 바뀌었다. 그것은 결국 태평양의 넓은 전장에 있어서 전술적 우위를 획득할 수 있는 열쇠가 되었다.
그와 같이 해서 얻어진 정보에 의하면 <전쟁병> 에 걸린 일본은 모처럼의 압도적인 전력을 수많은 전장에 분산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미국은 일본측의 그같은 약점을 재빨리 간파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적을 공격할 수가 있었고, 일본의 침략야욕을 초전에 분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쟁에 있어 정보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는 우리 미국인이 이처럼 피부로 직접 느꼈던 것이다. 이와같은 추세는 갈수록 더할 것이 분명하다.
어디 국방분야뿐이랴. 지능과 지식의 기술은 산업의 각종 공정에도 대규모로 채용되어야 한다. 국방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식기반 시스템이 산업분야에 채용되지 않는다면 미국의 성공은 생각도 할 수가 없다.
국방성 고등연구계획국의 정보처리기술부 관리인 로버트 칸은 얼마 전, 이렇게 말했다.
「고등연구계획국은 미국의 정보처리 연구에 있어 양심적으로 그 동안 행동해왔습니다. 우리의 노력은 미국의 컴퓨터산업계에 큰 영향을 주어왔었습니다. 그래서 IBM 이든지 미국전화전신공사 (ATT) 는 우수한 기술을 우리한테 얻어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들은 몇 년이 걸리더라도 우리의 자문을 기다려주었습니다. 그만큼 자신에 넘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의 산업은 그렇게 자신에 차 있지도 않으며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도 훨씬 약화되어 있습니다. 미국 기업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한 예로 제너럴 모터스를 보십시요. 그 회사는 지금 경쟁력 약화로 인해 고민에 싸여 있죠. 옛날에 그 누가 GMC 의 오늘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까? 세계 시장은 미국의 기대대로 되어주질 않습니다. 미국이 자랑하던 고도의 기술, 우아한 생산품은 이제 옛날 얘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 그 누구도 모르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별로 없습니다. 지난날은 산업계와 정부가 한 덩어리가 되어 기준을 정할 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지금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것입니다. 눈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일을 정부 안의 조그마한 부서에 맡길 수는 없습니다. 그 부서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제아무리 선견지명이 있고 능력이 넘친다 해도 그들의 힘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시험삼아 계산을 해 보면, 미국정부나 민간기업이 1982 년에 인공지능 연구에 투자한 돈은 총액 5 천만 달러 정도이다. 그것은 일본 정부가 이제부터 10 년간 제 5 세대 컴퓨터의 개발을 위해 매년 사용하려고 책정하고 있는 금액과 엇비슷한 금액이다. 단지 일본의 경우에는, 정부가 아닌 민간기업이 내놓은 돈이 따로 있으므로 그 총액에서는 미국보다 2, 3 배 가량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일본과 같은 방법으로 인공지능 연구에 돈을 사용해 나간다면, 일본과 미국은 계획된 연구개발과 계획되지 않는 연구개발 중 어느 쪽이 좋은지 비교하는데 좋은 방법을 잡아갈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옛날 써 먹었던 방법을 현대경제나 국방에 그대로 응용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 방법이란, 경제법칙에 따라 가장 좋은 품질의 상품이 반드시 이긴다는 <경쟁> 우선주의이다. 그래서 유수한 기업끼리 마구 경쟁을 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다르다. 물론 일본도, 「연구개발의 최후단계에서는 경제적인 경쟁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구개발의 최초단계는 그렇지만도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제 5 세대 컴퓨터 프로젝트의 경우, 일본 내 기업의 개별적인 연구는 계약에 의해 민간회사에 위탁되지만, 그 연구는 신세대 개발기구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 「인간의 지능은 귀중한 자원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되죠!」하고 그들은 말한다. 돈도 또한 귀중하므로 낭비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일본인들은 한 두 푼의 연구개발비도 사전조정에 의해 지불되고 있다.
그에 비해 미국인들은 제멋대로 계획하고 행동하고, 그리고 돈도 제멋대로 쓴다. 그같은 호사스러운 연구로 무엇을 해내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미국인들은 그러나 이런 사치를 전혀 이상스럽지 않게 여기고 있다.
「돈을 내놓는 사람이야 많이 있으므로 중요한 계획이든, 그렇지 않은 계획이든 다 해볼 때까지 해봐야지요!」하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돈에 관한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펑펑 쏟아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미국의 국방이, 산업이, 사회가 바로 이런 가정 위에 구축되어 있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부분들이 말이다.
1982 년 1 월말 맥코덕은 남편과 함께 DEC 의 기술담당 부사장인 고든 벨의 집을 방문했다. 맥코덕의 남편은 컴퓨터과학자였다. 그리고 벨의 아내는 컴퓨터박물관의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 박물관은, 내일의 미국 자연과학박물관이 되려는 꿈을 가진 미국 유수의 컴퓨터박물관이었다.
컴퓨터에 관심을 가진 네 사람이 모였으니 자연 화제는 컴퓨터에 관한 것이 되었다. 맥코덕은 일본의 제 5 세대 컴퓨터 프로젝트를 화제의 식탁 위에 끄집어냈다. 그때까지 그녀의 말상대가 되었던 많은 사람들은 대개 일본의 제 5 세대 계획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고든 벨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의외로 벨은 맥코덕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 회사에서도 다섯 명의 대표가 동경에서 열린 제 5 세대 컴퓨터 국제회의에 나가 있답니다.」하고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고든 벨은 일본의 계획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곧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때로는 일본의 계획을 칭찬하고, 또 때로는 비판하며 열을 올렸다.
「일본인들은 대단한 선견력을 갖고 있습니다. 일본의 계획에 미국이 바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10 년 후에는 미국 컴퓨터산업계가 모두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 대목에 이르러 그의 표정은 어둡게 변했다. 미국의 장래를 걱정하는 듯한 표정에서 미국의 컴퓨터산업계가 안고 있는 문제가 그대로 나타나는 것만 같았다.
잠시 후 그는 맥코덕을 자기 서재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일본의 컴퓨터에 관해 메모해둔 여러 장의 종이를 그녀에게 내보였다.
「나는 일본의 계획을 맨처음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맥코덕은 그가 놀랐다는 고백에 심상치 않은 그 무엇을 느꼈다. 고든 벨은 미국 내의 컴퓨터 설계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톱클래스이다. 그는 DEC 에서 과학계산용 PDP 4 형. 5 형, 6 형, 10 형을 설계한 장본인이다. 그것들은 모두 미니컴퓨터, 또는 중형컴퓨터의 선구적인 모델이며 그 덕분에 전세계의 수많은 연구실에서도 용이하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창조력 덕분에 DEC 는 기계의 성능면이나 가격면에서 언제나 시장을 제패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공로는 지대하다.
1960 년대 말에는 그는 DEC 를 그만두고 카네기메론 대학의 컴퓨터과학부 교수가 되었다. 그때 그는 DEC 의 간청에 못이겨 기술고문으로 계속 근부하면서 PDP 11 형의 주임설계자가 되기도 했었다. 그때는 아직 초 LSI 컴퓨터는 나와 있지도 않을 때인데 벨은 컴퓨터의 구성과 소프트웨어의 연관관계를 따져 소형컴퓨터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는 탁월한 컴퓨터 전문가로 지금도 손꼽히고 있는 거물이다. 그후, 그는 DEC 의 부사장으로 되돌아갔으나 대학의 동료들과는 여전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일본의 계획은 미국의 컴퓨터산업에 대한 장기적이고도 위협적인 것이라고 벨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합니다. 일본의 위협이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몇 개 회사가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공동체를 어떤 형태로 하면 좋을런지 아직 결정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자못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맥코덕을 바라보았다.
그 즈음, 미국의 컴퓨터산업계는 두 개의 그룹을 결성해 놓고 있었다. 하나는 <반도체연구회> 였다. 그것은 대학의 전문가들이 기업의 자금을 받아 새로운 기계를 개발해주기를 바라면서 출발된 단체이다. 그것은 대학의 연구개발 결과가 되는 특허상품에 대해 사용료를 선불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1982 년 가을까지 ATT 를 제외한 거의 모든 반도체 메이커들이 이 단체에 가입했는데 그 핵심멤버 중에는 IBM 도 있었다.
두 번째 그룹은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 컴퓨터> 로서 MCC 로 약칭되고 있다. 이 그룹은 참가자도 적고 장래성 또한 불투명했다.
1982 년 늦은 봄에 벨은 새로 설립될 MCC 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DEC 의 전략계획부장 부르스 델러그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부르스는 동경에서의 제 5 세대 컴퓨터 국제회의에 출석하고 온 후, 벨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비행기 안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다른 회사의 경영자들은 자사 제품의 사소한 개량에 정신을 쏟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이들에게 먼 장래에 관심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의논하기도 했다.
「MCC 의 창설과 함께 미국은 일본의 계획과 같은 공동체 계획을 세울 기회가 왔다」고 벨은 생각했다. 그것은 단지 제품개발에 그치는 모임이 아니라 먼 장래를 내다보는 개발계획이어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한 회사에서 그와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부담이 들고 대학의 연구실에서의 그와같은 일은 기술적으로 너무나 곤란한 점이 많다. MCC 는 그와같은 모든 부담을 떠맡아야 한다.」고 벨은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주사위를 던진거야!」라고 벨은 덧붙였다.
MCC 는 1982 년 8 월 12 일에 야심적인 목적을 갖고 설립되었다. MCC 는 우선 4 개의 첨단기술에 전념하기로 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마이크로 엘릭트로닉스나 컴퓨터의 구성, 컴퓨터에 의한 설계와 제조, 소프트웨어의 개량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컴퓨터의 구성에 있어서는 지식기반 시스템이나 인공지능, 또는 그것들의 응용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컴퓨터를 8 년에서 10 년 사이에 개발한다는 계획도 거기에는 포함도어 있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부문도 효율성과 응용면의 향상을 극대화시킬 것을 목표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이같은 웅대한 계획을 위해 MCC 의 연간 예산은 5000 만 달러에서 1 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책정되고 있었다. 이 계획에 참가를 희망하는 회사는 주주가 되어 몇 개의 기술개발 계획에 자금을 내든지 또는 찬조금을 내어 무엇인가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그러나 정열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해 말까지 MCC 에 참여를 결정한 회사는 DEC 를 비롯하여 겨우 3 개 회사에 지나지 않았다. 과거, 그 숱한 공적을 쌓은 벨의 아이디어가 최초로 좌절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는 몹시 실망했다. IBM 을 포함한 미국 내의 유수한 컴퓨터 기업들이 MCC 의 순조로운 출발을 외면했다.
그들의 의문점은 이러했다.
「그와같은 거액의 돈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단 말인가? 지금 수많은 기업들이 재정난을 겪으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연구팀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그와같은 인재를 어디서 모은단 말인가?」
「그같은 회사는 독점금지법에 위배되는 게 아닌가?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할지 아직 모르지 않는가?」
「아무리 계획이 좋다고 해도, 도대체 어떤 성과가 있을지도 모르면서 섣불리 모험을 할 수는 없다.」
MCC 는 온갖 장애와 먼저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 장애는 일본에서는 두더지가 만든 흙무더기만큼 밖에 안되는데 미국에서는 로키산맥의 높이만큼이나 대단한 것이었다.
MCC 의 조사위원회는 지금까지의 폰 노이만 방식이 아닌 컴퓨터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소를 캘리포니아의 팔로알토에 설치하기로 결의한 적이 있다. 그곳은 스탠포드 대학에서 가깝고, 컴퓨터분야에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이 상호 협조하기에 용이한 곳이었다. 그런데도 MCC 의 간부회의에서 이 결정은 당장 부결되고 말았다. 그 부결 이유란 미국 동부나 중서부에 있는 컴퓨터회사 기술자들이 팔로알토에 가서 그 따뜻하고 쾌적한 기후 아래 2 년 이상 생활을 하면 원래 회사로 돌아가지 않으려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1983 년 1 월 말에 MCC 는 사장으로 보비 R. 인맨 예비역 해군대장이 취임하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는 19 세에 대학을 졸업할 정도로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었으며 국가안전국 국장이 되었을 때, 특히 세인의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국가안전국 국장이 되었을 때, 특히 세인의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국가안전국은 미국 최대의 첩보기관이기 때문에 미국 정부기관 내에서는 가장 정교한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가 특히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사건은, 국가안전국이 암호해독의 연구를 하는 컴퓨터과학자를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으며, 국가안전에 위배된다고 판단될 때 과학자의 연구결과를 발표금지시킬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다고 말해 기업경영자와 과학자들을 놀라게 한 일이었다. 그러자 기업경영자들은 대노하여 하원에 청원을 하는가 하면, 과학자들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중대한 위협이며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공박하기도 했다.
그후부터, 국가안전국과 대학과의 협의가 긴밀해져 과학자들 스스로 자중해 나가기로 결정했는데 인맨 국장은 이 암호해독 사건은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는 미국 과학진흥회에서의 연설에서 자기 생각을 더욱 밀고나가는 말을 했었다. 「미국의 기술은 해외에 유출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출혈입니다. 국가안보라는 측면에서도 이 출혈을 당장 멈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인맨을 사장으로 모신 MCC 는 과거 그가 국가안전국에서 했던 것처럼 국가정책을 제안하거나 의회에 영향을 주는 힘을 얻을 수는 없었다. 자금도 기대대로 모아지지 않았다. 다만 인맨의 사장 취임과 함께 MCC 의 취지에 찬동하고 참여를 결정한 회사는 10 여개 회사로 증가되었다.
그러나 미국에는 일본의 통산성과 같이 선뜻 돈을 내놓거나 계획을 조정하는 기관이 없다. 더구나 미국인들은 그와같은 일을 해 본 경험도 없다. 연구를 지휘하고, 계획을 추진하는 신세대 개발기구와 같은 기관도 미국에는 물론 없다.
인맨이 일본의 엔이찌 하꾸과 같은 교조적 지도자로서 스스로의 에너지와 꿈을 갖고 밀고나갈 수 있을 것인가? 장기적인 공동의 이익을 위해 상업상의 위험도 무릅써야 하며 큰 희생도 치르지 않으면 안된다. 그가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또 MCC 나 제 5 세대 컴퓨터 프로젝트를 원칙적으로 환영하면서도 아직 참여를 주저하고 있는 회사들을 설득하여 불확실하고 위험성이 큰 이 계획에 돈을 내놓을 수 있게 할 것인가? 일본에서처럼 40 명 이상의 우수한 젊은이를 이 계획에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인가? 예를 들어, 급료가 만족스럽지 못해도 자신의 젊음과 미래를 이 계획에 쏟아 넣어 인생의 승부를 걸려고 하는 젊은 사람들을 인맨은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인가?
이 계획은 자기 자신에 있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므로 어떤 희생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다고 자부할 수 있게끔 그는 해낼 수 있을까?
인맨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인 수완이나 기술적인 능력이 아니다. 일본의 엔이찌 하꾸 소장은 인맨처럼 노련한 관료가 아니다. 그러나 엔이찌 소장은 기술적인 식견과 역량을 갖고 있다. 그는 신세대 개발기구의 깨끗하고 드넓은 소장실에 틀어박혀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현장으로 뛰어나가 젊은이들을 이끌고 그들과 함께 일한다. 지금 미국은 그와같은 새시대의 새로운 영웅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일본은 10 년 이내에 지식정보처리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에 대한 미국의 대책은 무엇인가? 그와같은 대책을 검토해 보자.
1. 현상을 유지한다
시장에서 즉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단기적인 연구개발을 계속하는 것이다. 장기적인 것에 대해 거론하거나 생각하는 사람들은 산업계든, 정계든 어디서든지 떠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즉각적인 만족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독점금지법을 확고부동한 법률로 신봉하고, 문제가 생기면 곧장 법정으로까지 몰고가 다투고 물고 뜯는다. 이런 행위는 결국 국가 붕괴를 획책하는 우행이다. 계획을 조정하지 않고, 쓸모없는 계획에 돈을 낭비하고 그러면서 진정한 문제에는 몸을 도사린다면 미국의 장래는 암담하기만 하다.
2. 일본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산업계가 공동체를 만든다
그를 위해 민간기업이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하지 않으면 안되게 해야 한다. 우선 사법부나 의회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비록 지금까지 그런 경험이 전혀 없다고 해도 이 일은 밀고나가야 한다.
3. 일본과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한다
일본은 제 5 세대 컴퓨터 프로젝트를 입으로만 지껄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해냈으며 지금도 해내고 있다. 그들은 또한 국제협력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본의 본심이 어떠한지 알 수는 없지만 미국으로서는 그들의 본심을 테스트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그 계획을 수행함에 있어, 기술적이거나 재정적이거나 그밖의 다른 이유 때문에 난관에 봉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미국의 협력을 환영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과 일본은 보완 관계가 될수록 좋다. 일본을 위해서도, 미국을 위해서도 이 관계는 바람직하다.
4. 소프트웨어만 생산한다
지식정보처리 시스템의 경제적 가치는 소프트웨어, 즉 <지식> 에 있다. 소프트웨어의 아이디어면에서 미국은 많은 전문가와 실적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제 하드웨어는 그만두고 소프트웨어만 만들기로 한다.
면도날 메이커는 면도날 판매를 원활히 하기 위해 면도기도 생산 판매하고 있는데 그같은 방법을 따르면 좋을 것이다. 칩은 값이 싸고 하드웨어는 경쟁이 심하고 이익은 박하다. 따라서 자질구레한 부문은 과감히 버리고 소프트웨어에만 매달린다. 소프트웨어는 투하 자본은 적은데 비해 그 이익은 크다.
5. 지식기술을 위한 국립연구소를 신설한다
그것은 지식기술의 모든 분야를 포함한 범국민적 연구기관이면 더욱 좋다. 몇 개의 대학이 협력해서 운영해도 좋고 각 기업의 연구소가 힘을 모아도 좋다.
또는 스탠포드 대학의 과학연구소처럼 기업과 대학이 계약을 맺는 연구소도 좋고, 아뫃든 어떤 형태를 취한다해도 그와같은 국립연구소를 새로 설치하여 이 계획을 떠맡도록 해야 한다.
기존의 연구소는 지식기술연구소가 해야 할 혁신적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할뿐더러 전통이나 관료주의에 얽매어 있어 새로운 힘을 내기엔 여간 미흡하지 않다. 새로 설립될 연구소는 타성이나 자기 만족에 빠지지 않고 오직 하나의 목표, 국가 발전이라는 목표를 향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6. 새로이 농업회사를 설립한다
미국은 탈공업화 사회에 있어서 최초의 대농업국이 될 수가 있다. 미국은 풍요롭고도 드넓은 농지 혜택을 받고 있다. 거기서는 농업기술의 진보나 응용같은 어떤 일도 가능하다. 미국인들은 어떤 일을 육성 발전시키는 데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 자동차 메이커인 GMC 나 전기메이커인 DEC 가 설령 쇠퇴한다 해도 새로운 농업회사를 설립해서 무역수지의 밸런스를 잡아나가면 된다.
비록 현실이 아무리 냉엄하다 해도, 미국이 취할 수 있는 방안은 있다. 그러나 다음 장, <지식기술센터> 의 구상에 대해 살펴보자. 그것은 우리가 최상이라고 믿는 방안이다.
미국은 일본과는 다르다. 미국의 상무장관은 일본의 통산상이 아니다. 만약 미국의 국방성 고위관리가 통산성 고위관리였다면 그것은 직무태만이 되는 것이리라.
높은 교육을 받은 연구자들을 확보하고 실리적인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뭔가 공동작업이 필요하겠다고 지식정보처리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단기적이고도 근시안적인 연구를 위해 자원이 낭비당하고 있는데 그같은 연구로 득을 보는 쪽은 그저 약간의 사람들뿐이다. 그같은 낭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도 무엇인가 공동작업이 필요하다.
세상의 어떤 자원도 분명 한계가 있다. 인재도, 자금도, 시간도, 모든 것이 다 유한하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은 미래를 향해서 활동을 개시했다. 미국도 좋건 싫건 그 뒤를 따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것은 미국인들이 해야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능히 해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어떤 종류의 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업계가 스스로 그룹을 만들려고 노력한 적이 서너 번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좋은 의도도 미국에서 팽배하고 있는 상업상의 경쟁주의라는 전통과 독점금지법에 의해 그때마다 좌절되어왔던 것이다. 거기다 공동작업을 위한 적당한 구실도 없었고, 국민에게 공통의 목표라는 것도 미국에서는 줄 수가 없었다. 그것도 좌절의 한 요인이었다. 그래서 어떤 저명한 과학자는 대단히 심각하게 이렇게 말했었다.
「일본의 제 5 세대 컴퓨터 프로젝트에 대해 걱정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제라도 모두 힘을 합쳐서 미국 최대의 자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IBM 은 설득하고 그로 하여금 일본과 경쟁에 맞서게 해야 될 것이다. IBM 이야말로 미국 최대의 희망이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IBM 의 경영방침과도 상반될뿐더러 많은 회사가 공통으로 가질 수 있는 기술을 한 기업만이 독식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일본은 보다 많은 회사가 많은 참여로 신기술을 가질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다. 그들에겐 미래를 보는 눈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제안을 하고 싶다. 그것은 미국 내에 <국립지식기술센터> 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기술에는 물론 컴퓨터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밖에도 도서관과 같은 지식보급에 관련된 분야도 포함된다. 도서관은 기술적으로 보아서 중요한 수요를 담당할 수 있고 또 그곳에서는 흥분할 만한 기술개발의 기회가 많다.
이 <국립 지식기술센터> 는 우리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아니다. 산업계도, 대학도, 정부관리도 이와 흡사한 다른 계획을 제안하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정부의 과학행정에 관계하는 한 고위관리가 최근에 <국립 정보처리 기술센터> 의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 계획의 주요내용으로는, 정부가 연구비용을 어느 단계까지는 대며 계획을 조정해주고는, 그 성과에 대해서는 산업계가 사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센터의 목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성과에 있는 것이지 단기적 이익이 아니다. 지식기술의 의미를 좁게 해석한다면 이 센터는, 일본의 제 5 세대 컴퓨터 프로젝트와 같은 시험적인 계획을 추진하는 것이 된다.
미국은 선구적으로 추진해왔던 연구를 스스로 개발단계에까지 밀어올리고 그 이익을 스스로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나 이 센터의 역할을 넓게 본다면, 정보와 지식의 기술에 관한 대단히 복잡한 연구까지도 담당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각종 통신에서부터 신문발행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컴퓨터의 설계로부터 학교에서의 교육상황까지 모두 포함하게 된다.
결국 이 센터는 국가의 연구에 우선 순위를 매기고 또 표준화하는 어려운 일을 떠맡지 않으면 안된다. 그 표준화에다 새로운 기술을 포함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해야 하며, 불확실한 미래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해야 한다.
이 센터의 자금은 우선 정부가 내놓게 되는데, 그렇다고 이 센터가 정부기관이 되어서는 안된다. 공무원의 급여 체계 아래서는 이와같은 연구의 필요성에 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정부기관과 같이 움직임이 둔한 조직은 스피드와 경쾌함을 요구하는 이 센터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
이 센터를 설립함에 있어, 여러 가지 곤란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특허권과 같은 지적 재산권에 있어 어떻게 배분하고 어떻게 보수를 지불할 것인가? 법률은 부동산에 관한한 오랜 전통을 갖고 있었지만 지적 재산권에 대한 취급은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인공지능이나 컴퓨터 분야에서는 우수한 인재가 부족하기만 하다. 이와같은 센터가 설립되면 대학이나 연구소의 그렇지 않아도 수효가 부족한 인재를 다 빼앗기고 말 것이다. 그것은 지적 재산의 문제와 같이 미국 사회가 직면하지 않으면 안될 과제 중 하나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센터의 연구결과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게 될 것이다.
연구소에서 개발된 기술을 어떤 모양으로 이전하는가, 어떻게 높은 레벨의 혁신을 계속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그밖에도 이와 비슷한 중요한 문제는 많다.
그러나 이와같은 센터의 설립 외에 미국의 컴퓨터과학이 선택할 다른 길은 없다. 이 센터는 미국의 국가적 의지의 표현이며 그것을 조직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그것은 케네디 대통령과 미국항공우주국 (NASA) 의 유인 우주비행센터를 닮고 있다. 미국이 우주개발에 쏟았던 정열만큼 이 센터에 의욕과 용기와 정열을 쏟아야 한다. 그것이 미국이 나아갈 길이다.
지금, 우리는 큰 기쁨을 맛볼 기회를 잡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미국의 역사건 세계의 역사건 일찍이 없었던 찬스이다. 그것은 신문의 발행이나 제조업, 의료업, 교육, 오락, 뉴스의 취재 등 갖가지의 사회적 기능을 한 데로 통합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것들의 사회적 기능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강력한 기술로 인해 통합되어 보다 효율적으로, 보다 정확하게 그리고 보다 편리한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18 세기의 프랑스 계몽철학가들처럼 새시대에 맞는 백과사전을 편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백과사전에는 학문적 지식뿐만 아니라 비공식이거나 경험적인 지식까지도 포함되게 된다. 그 지식들은 하나로 융합되고 증폭되고 분배된다. 그 경비, 스피드, 질, 양, 편리성 등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백과사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있는 한 권의 책 속에는 중요한 정보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찾아간 도서관에 원하는 책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옛날 책이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인쇄물로 된 정보는 세월이 지나면 너덜너덜 쓸모가 없기 일쑤이다. 그것은 책 속에 있는 정보의 사멸을 뜻한다.
또 정보의 홍수 속에서 매몰된 지식을 찾기 위해 소비해야 하는 시간과 정력은 어떠한가? 인내력이 없는 사람에게 있어 그런 정보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1803 년에 프랑스로부터 미국대륙의 광대한 토지를 샀다. 그같은 일이 미래에는 컴퓨터에 의해 수없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그와같은 일이다. 우리는 무한한 미래를 선택할 기회를 갖고 있는 것이다.
최초에 지불되는 비용에 비하면, 그에 대한 대가는 엄청나다.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은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미래의 무한한 토지, 그 토지에서 생산될 곡물, 그 가능성에 이미 주사위를 던졌다. 그들은 그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 미국인이라고 이것을 할 수 없는가? 아니다. 할 수 있다. 우리는 해왔고, 그럼으로써 세계의 1 등국이 되어왔다.
국가의 안전은 다면적인 요소로 구성되는 법이다. 건전하고 생산적인 공업, 농업, 교육, 상업, 정부 등에 서로 의존하고 있다. 그것들은 어느 것이나 지식의 급속한 창조, 보급, 이용에 의해 재창조되는 것이기도 하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지식> 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리라는 사실을 재빨리 인식하고 다른 나라들은 이미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들이 <국립 지식기술센터> 를 세우자고 제안하는 것은 보험에 드는 것과 비슷한 일로, 결코 그 이상의 일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