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경쟁을 벌이는 슈퍼컴퓨터
두뇌에 도전하는 미래 컴퓨터 : 지학사 기획, 과학세대 편저, 도서출판 벽호, 2000, Page 89~117
오늘날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특히 우주론이나 유전 공학, 컴퓨터와 같은 첨단 과학은 하루가 다르게 진보를 거듭하고 있다. 그래서 첨단 과학 분야의 논문이 한 편 발표되고 책으로 나올 쯤이면 이미 낡은 이론이 되어 버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지구의 역사를 46억 년이라고 했을 때 인류가 처음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약1백만 년 전이었다. 최초의 인간이 동물로부터 진화한 이래 문명은 아주 더디게 발전했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구석기 시대는 백만 년의 인류 역사의 10분의 7에 해당하는 70만 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 후 신석기 시대가 약 1만 년 전까지 차지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속해 있는 철기 시대는 겨우 3500년 전인 B.C. 1500년 에야 시작되었다.(그림 p90) 그래서 어떤 학자는 최근 10년 동안의 발전 속도가 과거의 수백 년, 수천 년에 해당할 만큼 엄청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는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꿈꿀 수 없었던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신문에 블랙홀로 보이는 은하 물체의 촬영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나오고 빅뱅 이론, 우주 팽창설 등 우주의 기원을 밝히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또한 '게놈 계획'이라는 전세계적 연구 계획은 21세기 초까지 인간 유전자의 비밀을 모두 풀기 위해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연구 계획들이 성공을 거둔다면 지구 상에 최초의 인간이 태어난 이래 품어왔던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 대한 의문이 풀릴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암을 비롯해서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지게 했던 많은 질병도 치료의 길이 열릴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빠른 발전을 가져오게 해 준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새로운 이론이 발견되면 전세계의 신문과 방송들이 떠들썩하고 매년 공로가 큰 과학자들에게는 노벨상이 수상된다. 그런데 이런 발견의 큰 공로자가 컴퓨터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별의 나이와 행성들의 궤도를 계산하는 일에서부터 전자 현미경을 이용해도 관찰할 수 없는 원자와 분자의 작은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일까지 과학 연구에서 컴퓨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만약 컴퓨터의 발전이 없었다면, 그래서 슈퍼 컴퓨터가 과학 연구에 이용될 수 없었다면 오늘날의 과학 발전은 상상할 수 조차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가장 빠른 슈퍼 컴퓨터는 사람이 연필과 종이만 사용해서 평생 동안 계산해야 할 양을 단 1초만에 끝낸다. 사람이라면 계산이 틀릴 수도 있지만 커퓨터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답을 순식간에 내 놓는다. 이렇게 정확하고 빠른 컴퓨터야말로 과학 혁명을 이끌어온 원동력인 것이다.
슈퍼 컴퓨터라고 하면 아주 최근에 나온 것 같은 느낌이든다. 하지만 실은 컴퓨터가 처음 등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슈퍼 컴퓨터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1946년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 에니악이 탄생한 이래 미국에는 많은 컴퓨터 회사들이 생겨났다. 사무기기 회사로 출발해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아이비엠 (IBM) 을 비롯해서 대부부의 회사들은 군, 기업, 연구소들을 대상으로 여러 종류의 상업용 컴퓨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1951년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인 유니백이 등장한 이후 대형 컴퓨터의 속도는 매년 2배꼴로 빨라졌다. 이처럼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속도에 대한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기업의 회계, 우편물처리, 복잡한 수학 공식, 석유 탐사 등등 점점 더 많은 일에 컴퓨터가 사용되자 '더 빨리, 더 강력하게'라는 요구가 계속 되었다. 따라서 말 그대로 '슈퍼'의 힘과 속도를 가진 컴퓨터에 대한 기대는 점차 높아졌다.
하지만 컴퓨터를 만드는 기업으로서는 슈퍼 컴퓨터를 만드는 일이 상당한 모험이었다. 물리학자와 엔지니어들은 고급 기술을 개발하고 슈퍼 컴퓨터에 들어갈 부품이 더 빠른 속도를 내도록 많은 연구를 해야 했다. 또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은 슈퍼 컴퓨터의 하드웨어가 제 성능을 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자니 자연 컴퓨터의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제일 큰 문제는 이렇게 고생 끝에 만들어놓은 컴퓨터를 살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슈퍼 컴퓨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비싼 가격의 슈퍼 컴퓨터를 살 만한 능력을 가진 곳은 정부 기관과 대학의 연구소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컴퓨터 회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눈치만 볼 뿐 선뜻 슈퍼 컴퓨터 개발에 나서려 들지 않았다.
그런데 1950년대 말엽 설립된 지 얼마 안 되는 한 회사가 과학용 컴퓨터 분야에 뛰어들었다. '컨트롤데이터'라는 이름의 이 회사는 1957년 해군의 퇴역 장교들에 의해 세워졌다. 제2차 대전이 끝나자 그 동안 군대에서 암호를 해독하고 컴퓨터를 다루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왔다. 컨트롤데이터를 차린 사람들도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 회사의 사장을 맡은 윌리엄 노리스는 컨트롤데이터를 차리기 전부터 해군과 공군의 요청으로 과학 계산용 컴퓨터를 여럿 만든 경험이 풍부한 엔지니어였다. 그가 처음 만들었던 대형 과학용 컴퓨터는 '아틀라스 (거인)'라는 별명으로 불린 ERA 1101이었는데 1950년 완성된 직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이후 노리스는 좀더 빠른 과학 계산용 계산기를 만들기 위해 컨트롤데이터라는 회사를 차리게 되었다.
그런데 컨트롤데이터사에는 노리스와 함께 일하던 기술 담당 부사장으로 세이머 크레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과학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사람들 치고 외곬의 인생을 살지 않은 사람은 드물지만 크레이만큼 고속 컴퓨터라는 한 분야에 집착한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크레이는 '더 빠르고 정확한 컴퓨터'의 제작 이외에 다른 문제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부사장이라는 직책이 주어졌지만 그는 회사 운영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연구 이외에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싫어할 정도였다. 결국 크레이는 당시 사장이었던 노리스에게 자기 고향 근처로 가서 조용히 연구에 몰두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의 천재성을 잘 파악하고 있던 사장은 쾌히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만약 이때 사장 노리스가 크레이의 엉뚱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면 슈퍼 컴퓨터의 탄생은 그만큼 늦어졌을 것이다.
새로운 연구소는 크레이의 고향인 치피와폴스라는 지방에 세워졌다. 그는 자기 집 근처 울창한 숲이 우거진 절벽 위에 단층으로 세워진 연구소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오직 연구에만 몰두했다. 컨트롤데이터사와 크레이가 연구하던 컴퓨터는 6600이라는 모델명이었다. 그 컴퓨터가 완성되면 당시로서는 가장 빠른 컴퓨터가 되는 셈이었다. 치피와폴스연구소는 크레이와 30여 명의 기술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들어 갈 수 없었다. 크레이는 아예 연구소에서 식사를 하고 잠도 잘 정도였다. 컨트롤데이터사의 사장 노리스는 연구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일 년에 두 번만 이곳을 찾아왔고 크레이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본사를 찾아갔다. 이렇게 숲 속에 파묻혀 연구에만 몰두한 그에게는 '은둔자', '치피와폴스의 마술사' 같은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1년 가량이 지난 1963년 8월에 6600이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기자들은 울창한 숲 한가운데에세 세계 최고의 컴퓨터를 발견했다. 모델 6600의 위용은 대단했다. 높이 180센티미터, 길이는 4미터에 컴퓨터에 들어간 전선을 한 줄로 연결시키면 무려 128킬로미터나 되었다. 이 컴퓨터에 들어간 트랜지스터의 숫자는 무려 35만 개, 심장에 해당하는 중앙 처리기는 1초에 3백만 개의 명령어를 처리할 수 있었다. 이 기계의 속도는 같은 회사의 모델 1604보다 20배, IBM의 스트레치보다 3배나 빠른 놀라운 속도였다. 당시 이 컴퓨터를 구경한 사람들은 "이 컴퓨터로 처리할 수 없는 문제는 하나도 없다"라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오늘날 '크레이'는 슈퍼 컴퓨터의 대명사처럼 불리고 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하는 원통 모양의 슈퍼 컴퓨터는 대개 크레이가 만든 슈퍼 컴퓨터이다. 컴퓨터의 역사를 이끌어 온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세이머 크레이 역시 대단한 고집쟁이에 기인이라고 할 만큼 괴팍한 성격을 가졌다. 미국 위스콘신주 치피와폴스라는 작은 고장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하교 시절부터 과학상을 휩쓸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미네소타 주립 대학을 졸업한 그는 곧 컴퓨터 설계 분야에 뛰어들었다. 이 무렵부터 그는 "가장 빠른 컴퓨터"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컨트롤데이터사의 노리스 사장을 만나게 된 것은 상당한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크레이는 사람을 만나기 싫어하는 은둔벽으로 아주 유명했다. 기자들은 물론 사업상 꼭 필요한 고객이나 같은 연구자들과의 만남도 병적으로 꺼렸다. 혼자 연구실에 틀어박혀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컴퓨터의 설계에 몰두했고 일에 지치면 돛단배나 커다란 모형을 만들기도 했다.
모델 6600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던 1972년 어느 날 지방 신문에 "크레이, 컨트롤데이터사를 나오라"라는 큼직한 기사가 실렸다. 그 회사의 공동 설립자이자 6600을 제작한 장본인인 크레이가 회사를 떠난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은 놀랐다. 하지만 그를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당시 노리스 사장은 빠른 컴퓨터를 연구하기보다 이미 개발된 컴퓨터들을 상업용으로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회사의 방침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크레이는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연구소에서 약 100미터 떨어진 곳에 새 연구소를 차리기 시작했다. 몇몇 동료들이 그와 함께 참여했다. 크레이는 새로운 회사를 자신의 이름을 따서 '크레이 리서치'라고 불렀다. 크레이가 컨트롤데이터사를 나와 새로 회사를 차릴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얼마 못가 망할 것이다'는 예측을 했다. 그건 너무도 뻔한 결과처럼 보였다. '보다 크로 강력한 컴퓨터'를 원하는 고객은 미국을 통틀어도 기껏 몇십 군데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크레이는 세상에서 제일 빠른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오직 한가지 목표를 향해 외곬로 연구에 매진했다.
그런데 당시 크레이 혼자서 슈퍼컴퓨터를 연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버로즈 등 쟁쟁한 회사들이 상당히 오래 전부터 슈퍼 컴퓨터를 연구하고 있었고크레이가 그만둔 컨트롤데이터사도 부분적이긴 하지만 새로운 고속 컴퓨터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크레이는 1976년에야최초의 컴퓨터를 내놓았다. 거기에 자기 이름을 따서 "크레이 Ⅰ"이라고 붙였다. 크레이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독창성과 함께 실용적인 사고를 꼽았다. 실제로 완성된 크레이 Ⅰ의 구조는 기존의 컴퓨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컴퓨터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원인은 배선의 길이를 줄였기 때문이었다. 전기 신호를 전달되는 데이터나 명령이 아무리 빨라도 배선이 몇 킬로미터씩 이어진다면 슈퍼 컴퓨터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크레이는 어떤 배선도 1.2미터를 넘지 못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컴퓨터의 모습은 둥근 원통 모양이 되었다. 오늘날 슈퍼 컴퓨터의 모습이 한결같이 원통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원통의 가운데 부분이 비어있는 까닭은 조립 과정에서 사람이 들어가 작업할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비어있는 공간은 작을수록 좋기 때문에 안에 들어가서 납땜을 한 사람은 몸집이 작은 여자였다. 크레이는 컴퓨터 안에 들어가 작업한 여자를 '조립 걸'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76년에 완성된 크레이 Ⅰ은 지름이 1.3미터, 높이가 2미터 정도되는 아담한 크기였다. 옆에는 컴퓨터에서 나오는 엄청난 열을 식히기 위한 냉각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크레이 Ⅰ의 속도는 1초에 1600만 번의 연산을 가능하게 했고 당시 가장 빠른 컴퓨터보다 4배 이상 빨랐다.
크레이 리서치사가 새로운 컴퓨터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동안 컨트롤데이터를 비롯한 몇몇 회사들도 계속 고속 컴퓨터를 개발하고 있었다. 당시 컴퓨터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술적 진보는 컴퓨터의 구조 있었다. 그때 까지 모든 컴퓨터는 폰 노이만이 정리한 몇 가지 원칙을 표준 구조로 삼고 있었다. 헝가지 출신의 세계적인 과학자 폰노이만이라는 사람이 처음 만든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컴퓨터는 기계식이 아닌 전자식이어야 한다.
둘째, 2진수를 사용해야 한다.
셋째, 컴퓨터는 한 번에 하나씩 순서대로 정보나 데이터를 처리해야 한다.
이 밖에도 노이만은 컴퓨터의 기본 구조가 기억 장치, 중앙 처리 장치, 입출력 장치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원칙도 세워 놓았다. 그런데 이런 원칙은 컴퓨터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서서히 도전을 받게 되었다. 특히 세 번째'한 번에 하나씩 순서대로 처리한다'는 원칙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컴퓨터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컴퓨터의 심장이라 할 수 잇는 중앙 처리 장치를 보다 빠른 컴퓨터 칩으로 바꾸는 것이다. 두 번째는 컴퓨터의 중앙 처리 장치와 주변 장치들을 연결시키는 배선을 가능한 짧게 줄여서 전기 신호가 오가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이다. 세 번째는 컴퓨터의 구조 자체를 근본적을 바꾸는 방법이다. 크레이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주로 첫째와 둘째의 두가지 방법을 사용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크레이가 떠난 후의 CDC나 뷰로우,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같은 회사들은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어 컴퓨터의 설계 자체를 바꾸어 보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바로 병렬처리 기술이라는 새로운 방법에 대한 도전이었다. 병렬 처리 기술을 처음 시험한 컴퓨터는 컨트롤데이터사의 스타 100이었다. 병렬 처리 기술을 가장 간단하게 설명 하자면 다음과 같다. 가령 '1+2+3+4+5+6은 얼마인가?'라는 문제를 순차적 컴퓨터와 병렬 처리식 컴퓨터가 푸는 모습을 생각해 보자. 그림 (p102)
순차식 컴퓨터는 하나의 처리기에서 1부터 6까지를 모두 더해 21이라는 결과를 얻지만 병렬식 컴퓨터는 여러 개의 처리기에서 나누어 덧셈을 하고 그 결과를 모두 더해 최종적으로 21이라는 답을 낸다. 답으로 나온 21은 똑같지만 이 답을 내는 과정은 아주 다르다. 그런데 정작 이런 방식을 개발해낸 회사들은 참담한 실패를 맛보고 말았다. 버로즈사라는 컴퓨터 회사에서 만든 '일리악'이란 컴퓨터가 최초로 병렬 처리를 채택한 제품이었는데 속도는 빨랐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4천만 달러라는 엄청난 가격 때문에 미 항공 우주국 (NASA) 과 같은 특수한 곳 이외에서는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스타 100의 경우에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성능 시험을 휘해 특별히 마련한 문제에는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지만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가장 큰 원인은 주어진 문제를 효율적으로 나누어 병렬 처리 하는 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여러 개의 처리기들에 문제를 나누어주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 문제를 푸는 데 아무리 빨라도 전체적으로는 성능이 떨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하지만 버로즈사에서 만든 일리악 컴퓨터는 놀라운 성능을 가진 작품이었다. 일리악 Ⅳ 컴퓨터는 무려 64개나 되는 독립적인 처리기들을 갖추고 잇었고 그 속도도 다른 컴퓨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병렬 처리 기술이 얼마나 빠른 속도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준 컴퓨터는 바로 이 일리악 컴퓨터였다.
크레이 Ⅰ을 발표한 이후에도 크레이는 연구를 계속했다. 크레이 Ⅰ이 성공을 거두자 크레이는 돌연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경영에서 손을 떼고 더 빠른 컴퓨터 연구에 몰두하고 싶었던 것이다. 크레이가 물러난 다음 회사의 신진 연구원인 스티브 챈에 의해 크레이 Ⅰ의 후속타가 등장했다. 그는 배선 길이를 줄이는 크레이의 방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는 병렬 처리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시켜 크레이X-MP라는 모델을 개발했다.
한편 손을 뗀 크레이도 1985년 여름 마침내 크레이 Ⅱ의 개발에 성공했다. 크레이 Ⅱ는 크레이 Ⅰ보다 6~12배나 빨랐다. 이처럼빠른 속도에도 불구하고 크기는 크레이 Ⅰ보다 훨씬 작았다. 크레이 Ⅱ를 완성하는 순간 크레이는 이미 다음 단계의 컴퓨터를 구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갈륨-비소(GaAs)로 만든 새로운 마이크로 칩을 토대로 한 상자 크기 만한 슈퍼 컴퓨터였다. 이 칩은 실리콘 칩고 비교할 수 없는 속도를 가지면서 동시에 낮은 전업에서도 훌륭히 작동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칩을 이용한 컴퓨터는 특별한 냉각 시설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실제로 슈퍼 컴퓨터의 커다란 덩치는 대부분 냉각 장치가 차지하기 때문에 냉각 장치만 없다며 그 크기가 훨씬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태평양 건너 일본도 만만치 않은 준비를 갖추어 나가고 있었다. 반도체 왕국 일본은 1981년 전세계를 놀라게 만든 두 가지 계획을 발표햇다. 하나는 전일본이 일치 단결해서 추진해 나가겠다는 '슈퍼 스피드' 계획와 지능을 가진 컴퓨터인 '제5세대 컴퓨터'계획이었다. 우선 첫 번째로 슈퍼 스피드 계획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였던 크레이 Ⅰ보다 무려 60여 배나 빠른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이었다. 일본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두 가지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지원했다.
80년대는 아직까지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던 무렵이라 세계 모든 나라들은 저마다 무기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새롭고 강력한 첨단 무기를 개발하려면 무엇보다 강력한 성능의 컴퓨터를 가져야 한다. 미국, 일본을 비롯해 많은 나라들이 슈퍼 컴퓨터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된 데에는 그런 이유도 깔려 있었다. 더군다나 점차 기술력이 국력을 좌우하게 되자 모든 기술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컴퓨터 분야는 가장 뜨거운 경쟁장이 되었다. 슈퍼 컴퓨터의 경우 그 자체로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슈퍼 컴퓨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산물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슈퍼 컴퓨터를 개발하려면 그와 관련된 여러 산업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제 5세대 컴퓨터와 함께 슈퍼 컴퓨터를 전국가적 차원으로 발전시킬 중요한 분야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히다치, 후지쯔, NEC(일본전기) 3개사가 이 계획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985년 NEC는 SX-2라는 슈퍼 컴퓨터의 제작에 성공했다. 이 컴퓨터는 컴퓨터의 본고장 미국으로 수출될 만큼 성공작이었다. 물론 SX-2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어떤 사람은 기술적인 진보를 찾아볼 수 없고 오직 낮은 가격으로 미국 시장을 두드렸다고 혹평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측은 SX-2가 기본적으로는 기존의 구조를 사용했지만 그 배열 방식에서 독특한 특징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은 크레이 Ⅱ라는 최신형 슈퍼 컴퓨터를 만들어 일본에 맞대응했다. 같은 해 미국에서는 FPS라는 이름의 과학 계산용 컴퓨터 전문 제조 회사가 IBM의 컴퓨터와 자기 회사의 컴퓨터를 결합해 크레이 Ⅱ정도의 성능을 가지는 새로운 슈퍼 컴퓨터를 만들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의 슈퍼 컴퓨터 경쟁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여러 회사에서 선전하는 슈퍼 컴퓨터의 속도는 과연 믿을 만한 것일까? 어떤 과학자는 슈퍼 컴퓨터의 지나친 속도 경쟁을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하는 자동차의 속도 선전에 비유하기도 한다. 자동차가 단순히 시속 몇 킬로미터를 낼 수 있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동차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선전에서처럼 시속 180킬로미터를 낼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특히 대도시처럼 교통 체증에 시달리는 곳에서는 180킬로는커녕 80킬로를 낼 기회도 많지 않을 지경이다. 따라서 컴퓨턷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경우에 따라 어느 정도의 성능을 발휘 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다루게 될 미래의 컴퓨터들에서 병렬처리 기술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공 지능이나 뉴로 컴퓨터 등은 모두 병렬 처리 방법을 이용해 정보나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지능을 가지려면 현재의 순차식 처리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사람의 뇌가 컴퓨터와는 달리 고도의 지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 병렬 처리 방법이다.
최근에는 수만 개의 독립적인 처리기를 가진 병렬 컴퓨터도 등장하고 있다. 1983년에는 무려 6만45천여 개의 처리기를 갖춘 '커넥션 머신'이라는 병렬식 컴퓨터가 제작되어 슈퍼 컴퓨터 못지않은 성능을 자랑하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00만 개 이상의 처리기가 모여있는 병렬식 컴퓨터도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재 이 기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고 있다. 병렬 처리 기술의 문제는 주어진 과제를 나누어서 여러 개의 처리기들에 효율적으로 분배해 주는 문제와 서로 독립해 있는 처리기들을 효과적으로 연결시킬 구조를 찾는 문제이다. 아무리 많은 숫자의 처리기를 가진 고성능 병렬 처리 컴퓨터라 할지라도 두 가지 과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문제를 나누고 배열하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슈퍼 컴퓨터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주어진 문제를 빠른 속도로 분배하고 다시 종합할 수 잇는 구조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면 병렬 처리 소프트 웨어를 만들기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소프트웨어란 컴퓨터의 처리 장치, 즉 CPU가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도록 순서대로 지시를 내린 명령어의 모임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컴퓨터처럼 처리 장치가 하나밖에 없는 경우에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한 컴퓨터에 처리 장치가 둘 이상 심지어는 수 만개가 있다고 했을 때 그 많은 숫자의 처리 장치에 일일이 명령을 내리는 일은 굉장히 복잡해진다. 더군다나 병렬처리의 장점을 살려서 속도를 빨리 내려면 처리 장치등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치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과정은 공사장에서 여러 명의 인부들이 나누어 일을 맡고 감독이 모든 과정을 지시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열 사람의 인부가 벽을 쌓는다고 하자. 벽을 쌓는 일에는 벽돌 쌓기,벽 바르기,그리고 마지막으로 완성된 벽면에 페인트 칠하기의 세 종류 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벽돌을 쌓아 올리는 일이 제일 먼저 시작되어야 하며 이 일에 시간도 가장 많이 걸린다. 반면 페인트 칠하는 일은 가장 나중에 시작되어야 하고 시간도 제일 적게 걸린다. 따라서 5명의 인부가 벽 쌓기에 동원 되었다고 했을 때 감독 (소프트웨어) 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림1 (p110)
그림 1은 감독이 한 사람에세 벽돌 쌓기를 시키고, 벽 바르기와 페이트 칠하기에 두 사람씩 나누어 놓은 경우이다. 벽돌을 쌓는 사람은 열심히 일하지만 나머지 네 사람은 할 일이 없어 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일은 가장 늦게, 가장 비효율적으로 진행된다. 그림2 (p111)
그림 2는 두 사람에게 벽돌 쌓는 일을 시키고 두 사람에게 벽 바르기 나머지 한 사람에게 페인트 칠하기를 시킨 경우이다 1번 보다 빠르긴 하지만 페인트 칠하는 사람은 앞의 두 과정이 끝날 때까지 할 일이 없어 기다리게 된다.
그림3 (p112)
그림 3은 세사람에게 벽돌 쌓기, 두 사람에게 벽 바르기를 시키고 벽돌 쌓기가 제일 먼저 긑난 사람에게 다시 페인트 칠하기를 시킨경우이다. 그러자 아무도 노는 사람이 없어지고 일도 가장 빨리 끝났다.
이처럼 같은 숫자의 처리기를 갖춘 병렬식 컴퓨터라 해도 소프트웨어에 따라 그 성능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또한 아무리 정확하게 만든다 해도 버그 (오류) 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아직까지 단순한 계산이 아닌 고도의 지적 능력을 필요로하는 병렬 처리 기술은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이 정도 수준이 되려면 단순한 병렬처리가 아닌 인간의 두뇌를 모방하는 뉴로 컴퓨터나 바이오 컴퓨터의 수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인간의 두뇌가 복잡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은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진정한 병렬처리 컴퓨터는 지적 능력을 가진 컴퓨터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