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세대 : 다른 나라들의 경우
제 5 세대 : Edward Feigenbaum, Pamela McCorduck 공저, 윤진수 역, 홍익, 1983 (원서 : The Fifth Generation: Artificial Intelligence and Japan's Computer Challenge to the World, Pearson Addison Wesley, 1983), Page 217~238
뭔가 좋은 것을 갖고 있을 때, 「이것은 참 좋다.」라고 이해하는 능력은 지혜의 일부이다. 또한 뭔가 나쁜 것을 갖고 있을 때, 「이것은 좋지 않다.」하고 이해하고 더 이상 망서릴 필요없이 버리는 능력도 지혜의 일부이다. 또한 그러한 지혜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능력도 지혜의 일부이다. 편견을 버리고 장해에 구애받지 않고 좋은 일을 이룩해 내는 능력도 지혜의 일부이다.
제 5 세대 컴퓨터 계획은 과학적으로 보아서 아주 적당한 시기에 세워진 적절한 도전이다. 일본인을 위해서도 이 계획은 시의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심리적으로 이 계획은 일본인 과학자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혜의 산물이다.
통산성은 「일본인은 끊임없이 창조정신을 발휘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신세대 컴퓨터 개발기구> 는 그들의 창조정신을 나타내는 가장 훌륭한 견본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 개발의 결과가 국가 목적에 일치되는 것이라면 더욱 만족스런 일이 될 것이다.
동경의 <신세대 컴퓨터 개발기구> 를 방문하게 되면 누구든지 그들의 정열과 활기를 쉽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일본의 컴퓨터과학자들은 뭔가 중요한 일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신념과 의지로 흥분하고 있다. 그런 정신은 그들의 보고서에도 잘 드러난다. 「정보처리 시스템은 모든 기업의 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제 5 세대 컴퓨터를 기초로 해서 전문가 시스템에까지 성공을 거두려 한다면, 그들은 정기적으로 사려깊게 분석을 하고 다음 단계의 과학적 재정적 투자방향을 결정해야만 한다. 제 5 세대 컴퓨터 계획은 일본인들 자신의 손에 의해 국가적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 예상되는데 그 징조는 이미 수없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 미국인들은 크나큰 국가적 성공으로 얻었던 기쁨, 그리고 그 기쁨에 도취되었던 순간을 이미 완전히 잊어 버린 것 같다. 인류 최초로 달착륙이 성공되었을 때, 미국인들은 국가적 성공으로 얻은 기쁨에 마냥 들떠 있었다. 이란에 억류되었던 인질들이 마침내 귀국했을 때도 그들은 국가적 성공을 자축했다. 그것들은 분명 순수한 기쁨이었으며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은 기쁨이었지만, 그러나 그 기억들은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인간이 달에 착륙했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달에 사람을 보낼 수 있는데, 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뒷골목은 깨끗이 정비할 수 없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물론 이 두가지는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주장했다. 이란의 인질들이 돌아왔을 때는 「어째서 베트남에 종군했던 젊은이들은 환영을 받지 못하는가?」하고 분노를 터뜨린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질문에 비극적인 대답밖에는 들을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 물었다.
1982 년, 포클랜드의 영유권 쟁탈을 놓고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전쟁을 벌일 때, 그들 두 나라는 시시각각 들려오는 소식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었다. 마침내 포클랜드 분쟁이 영국의 승리로 끝났을 때, 영국인들 중에는 그 분쟁이 다이애너비의 황태자 분만과 함께 영국왕실의 새로운 계승자 탄생과 겹친 국가적 성공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제 3 자의 눈에는 그들이 느끼는 행복감이나 국가적인 성공이라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식민지 쟁탈과 아슬아슬한 예산낭비라고 밖엔 생각되지 않았다. 그해 10 월 마가렛트 대처 영국수상은 하원에서 이렇게 말했다. 「포클랜드의 분쟁으로 우리는 전후 복구에 필요한 비용 1700 만 달러를 포함해서 모두 11 억 9000 만 달러를 소비했다. 그밖에 군함과 항공기의 손실은 14 억 달러 정도 된다.」만약 영국의 마가렛트 대처 정부가 포크랜드 분쟁 때문에 버린 돈으로 제 5 세대 컴퓨터 프로젝트에 투자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현실적으로 영국은 제 5 세대 컴퓨터 계획을 추진할 수 있는 자금을 국가적 성공이라는 기쁨을 얻기 위해 모두 써 버렸다.
민족주의 (Nationalism) 의 지나침을 비판하는 것은 쉽다. 물론 내셔널리즘에는 그 나름의 만족감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계엄령이 선포되어 완전히 발이 묶여진 상태에서 겨우 탈출해온 폴란드인들은 온갖 고통을 당한 것 같은 데도 그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고 국가 안위에 대한 걱정, 친구에 대한 염려로 탈출담을 대신했다. 억압당했던 환경에 대해서는 절대 말이 없고 오직 폴란드인임을 내세우는 그 강렬한 내셔널리즘, 포클랜드에서의 혈투도 물론 민족주의의 소산일 것이다.
그에 반하여 일본인들은 어떤가? 일본은 세계 정상으로 밀어 올리려는 이 계획에 그들 자신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
제 5 세대 컴퓨터 프로젝트에 대해서 일본인들과 이성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이 계획에 관계하고 있는 과학자 중 한 사람인 구로까와 도시아끼는 이 계획을 둘러싼 국민의 감정을 <흥분ㆍ무관심ㆍ찬성ㆍ분노ㆍ적의> 로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우리들의 일을 미친 짓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야심이란 말로 표현하고 싶어요. 우리 젊은 컴퓨터과학자들은 사실 이 계획에 미치다시피 되어 있거든요.」
그러나 특히 연로한 경영자들은 이 계획에 있어서의 성과에 의문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들의 의문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들은 일본인이 이러한 어렵고도 엄청난 일을 해낸 경험이 없으며, 계획의 목적이 애매하고 이루기 곤란한 문제가 많다는 말을 한다. 그에 대한 구로까와의 답변은 이렇다.
「이 점에 대해 통산성은 신세대 개발기구의 연구원을 모집할 때 응시자격을 35 세 이하로 못박은 바 있습니다. 이 제한은 엄밀히 적용되진 않았지만 그러나 큰 효과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제 5 세대 컴퓨터 계획은 과학적 기술적인 계획이며 「한번 해보자.」는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즐거운 계획이 되었다고 그는 덧붙인다. 미국에서 이와 유사한 경우를 찾는다면 캘리포니아주의 실리콘 밸리 (Silicon Valley) 의 신진회사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리콘 밸리의 회사들은 모두 개인적인 이익을 목표로 삼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별로 나쁠 게 없지만, 그것은 일본의 젊은 과학자들이 제 5 세대 컴퓨터의 탄생을 위해 느끼고 있는 것과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미국의 회사들이 개인의 이익에서 기쁨을 느낀다면, 일본인들은 나라를 위하고 나라를 구제할 수 있다는 멋진 목표를 갖고 있다는 기쁨이 있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자기 자신을 최대한 살려낼 수 있는 데 온갖 정열을 쏟은 경험 중 하나로는 <뉴딜 정책 (New Deal)> 이 있다. 그때 그 정책의 핵심을 이룬 사람들은 지금의 일본 과학자들처럼 젊은 사람들이었다.
죠지 볼은 그의 회상록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뉴딜 정책은 따지고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구세대를 몰아내고 젊은 세대가 들어서는 운동이었다. 그것은 30 세 전후의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운동이었다. 묵은 질서가 붕괴되면서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는 데 있어 젊은이들의 역할은 무한 대로 컸다. 그와 함께 모든 젊은이들이 무한 대의 기대를 갖게 되었다. 그 당시 우리들의 기본적인 신조는 하려고 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안될 게 없다는 것이었다.」
뉴딜 정책에는 지나친 것도 있고 실패도 있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신명을 다해 일했다. 그 결과 미국은 보다 좋은 시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제 5 세대 컴퓨터 계획은 미국의 뉴딜 정책과도 같은 의미가 다분하다. 물론 일본인들은 이와 같은 광범위하고도 대규모적인 계획을 실행한 경험이 없지만 그것은 선견력과 의지로서 충분히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보다 풍요롭고 평화롭게 할 수 있는 선견력인 동시에 모든 나라 사이에 이해와 협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의지인 것이다.
그들은 또한 경쟁과 변화를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지식정보처리 시스템이 그러한 경쟁과 변화를 통해서 스스로의 생활을 극적으로 향상시킬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와 같은 변화를 오히려 즐거워하고 있다.
「변화한다 해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일본은 이미 2 차 세계대전 이후 생활의 패턴을 완전히 바꿔 본 경험이 있으니까요.」구로까와는 다가올 엄청난 변화까지도 국가적 성공을 이룩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여러번 말한 바와 같이 정보처리 시스템의 미래는 밝다. 지식시스템은 우리들이 조만간 탐험하지 않으면 안될 대륙이다. 누군가에 의해서 그 미지의 대륙은 꼭 탐험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을 젖혀 놓고 일본이 이미 마차에 짐을 싣고 덜컹덜컹 소리를 내면서 길을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탐험 의욕은 정말 대단하다.
나폴레옹에 관한 괴테의 말을 상기해 본다. 「나폴레옹은 덕을 구했다. 그러나 그것을 찾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자 힘을 택했다.」일본인들도 덕과 힘 중에 하나를 손에 넣는다면 기뻐할 것이다. 물론 두 개 다 손에 넣는다면 더욱 기뻐하겠지만.
1953 년 7 월초 어느날이었다. 옥스포드 대학의 여름학기가 끝날 무렵의 쾌청한 날, 두 척으 작은 배가 템즈강가에 유유히 떠 있었다. 두 배에는 젊은 사람 10 여명이 타고 있었는데 그들은 페레스트 패렛의 21 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패렛은 나중에 캘리포니아 대학에 입학하여 컴퓨터를 전공하고 교수까지 된 사람이다. 그는 미국인 친구와도 교제가 잦은 편이어서 그 배에는 몇 명의 미국인들도 타고 있었다. 그들은 경제학과 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로 그 중엔 알렌이란 젊은이도 있었는데 그는 나중에 스탠포드 대학의 경제학 교수가 되었다.
알렌은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지 앞서 가는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다른 친구들과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다른 배에 탄 패렛의 영국 친구들은 옥스퍼드 대학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머리좋은 친구들로 그리이스ㆍ로마의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었다.
알렌이 앞서 가는 배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영국의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다!」
파멜라 맥코덕은 영국의 인공지능 역사를 생각할 때마다 이 일을 회상하며 가슴 아파한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옥스퍼드에서도 가장 뛰어난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기껏해야 고대문명이나 공부하며 거기에 매달림으로써 장래를 대비하지 못한 어리석음은 차라리 비극이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릴없이 템즈강을 부유하며 낭만을 찾는 젊은이가 나라의 장래를 어떻게 떠맡을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그들이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임에랴.
영국은 인공지능에 관해 몇 번이나 눈앞에 나타난 기회를 스스로 거부해왔다. 동양의 한 작은 나라는 없는 기회를 찾아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는데 영국은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트로이 (Troi) 의 흥망성쇠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것만이 보다 지성적이고 과학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생각을 가진 젊은이가 많은 나라라면 결코 새 역사를 창조할 수가 없지 않는가? 새 시대의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데 있어 과연 무엇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인가? 파멜라 맥코덕은 단연코 그것은 <과학> 이라고 믿었다. 과학에 의해 역사는 창조되며 과학을 지배하는 나라가 역사를 지배한다고 맥코덕은 믿고 있다.
물론 어느 한가한 날, 희랍의 시인 킨다로스의 서정시를 읊는다는 것도 멋지고 기분좋은 일이다. 그러나 희랍의 격언에도 있듯이 모든 일은 적당해야 하는 것이다. 똑똑한 젊은이들이 희랍이나 로마의 고전에 지나친 관심을 가진 나머지 과학을 등한히 했기 때문에 영국은 인공지능에 있어서의 좋은 기회를 여러번 놓쳤고 그때마다 틀린 결정만 되풀이했던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몰락에 책임이 있는 것은 고전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선호하는 경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들 자체에 있는 것이라는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영국에서는 보다 머리좋은 사람들이 과학에 눈을 돌리지 못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러나 그것도 정확한 이유는 아니다. 영국에서도 머리좋은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전공하고 있긴 하다.
그렇다면 비극과 희극의 차이는 그 극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에서 생겨나는 것도 된다. 차라리 영국의 인공지능의 역사는 비극도 아니고 희극도 아니고 멜로드라마라고 하는 편이 나올 듯싶다. 일본이나 미국보다는 영국이 <역사> 에 있어서만은 굉장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한 계단씩 한 계단씩 자리를 빼앗겨 이제는 마침내 강가를 서성이며 멀리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는 신세가 되었으니 멜로드라마치곤 굉장한 멜로드라마인 셈이다.
영국 내의 일부 과학자들은 일본의 제 5 세대 컴퓨터 프로젝트를 대단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로 의견이 분분하다. 영국이라는 나라가 비극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아니면 희극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그도 아니면 멜로드라마의 한 부분이 되어 그냥 흐지부지되고 말 것인가? 그러나 결말이 어찌되었든지간에 영국에 머리좋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은 아니라는 사실이 인공지능 세대에 나올 영국인들의 넋두리가 될 것이다.
컴퓨터가 지능적인 행동을 하게 될지 어떨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인류사상 최초로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은 놀랍게도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뛰어난 논리학자 알렌 츄링이었다. 그는 1930 년대 초기에 캠브리지 대학에 입학하여 수학을 배웠는데 무척 수재이긴 했지만 약간 변덕스러웠다고 한다. 졸업할 때 2 등을 했는데 그래도 수재의 자질을 인정받아 22 세에 캠브리지 대학의 킹스 칼리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1937 년에 그가 논문 하나를 발표했다. 그 논문은 그가 후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이름이 수학사에 길이 남을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논문이었다. 이 논문에는 <추상기계> 의 제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은 몇 년 뒤 실험이 되었는데 일반적인 컴퓨터보다 놀랍도록 복잡한 것이었다.
그가 논문을 쓸 때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그와같은 기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비상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기계에 대한 모양을 그리고 하나의 개념까지도 완성하였던 것이다.
그후 그는 제 2 차 세계대전 중에 암호해독 컴퓨터분야에 관계하여 일을 하다가 종전 후에는 국립물리학연구소로 옮겨 컴퓨터분야에서의 일을 계속했다. 이런 일을 계속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썼던 논문에 대한 보완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1947 년 어느날, 그가 다시 논문 하나를 발표하게 되었다. 그것은 지능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용, 바로 그것이었다.
이 논문에 쓰여진 아이디어를 현대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많은 부분이 불완전하고 유치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지능기계를 개발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가 제안한 내용 중의 일부분은 놀랍게도 10 년 후 지능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방법과 동일했다. 그후에도 그는 <계산기와 지능> 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 논문에서도 그는 다시 한번 기계가 생각할 능력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의 논문 중에 이런 내용도 있었다. 「텔레타이프에 질문해서 그 대답이 돌아왔을 때, 상대가 인간이냐 기계냐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라면 그 기계를 생각의 능력이 있는 기계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렌 츄링은 인공지능이라는 분명한 용어를 사용하진 않았지만 아마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을 것이다. 우수한 영국인 중에서도 특히 우수한 영국인임에 틀림없다.
이외에도 인공지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한 영국 사람들도 더러는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알렌 츄링이 사람들로부터 무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처럼 한결같이 백안시 당했다. 그와 함께 영국은 현대 과학의 첨단기술에 관한한 대단한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영국의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랴?
1973 년이 되어서 또 하나의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정부에 과학 연구비 예산을 제출하는 과학연구심의회가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 인공지능을 평가하는 내용도 수록되어 있었다. 그 보고서는 영국이 자랑하는 유명한 응용수학자 제임스 라이트 힐경이 쓴 것으로 그는 인공지능에 대해,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이 이상의 재정지원은 가치가 없는 쓸모없는 짓.」이라고 말했다.
많은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이 보고서가 과학 이외의 다른 동기에서 쓰여진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른 동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공지능에 대한 개인적인 편견이거나 무관심일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인공지능 연구자들에 대한 반감 때문일까? 아무튼 그 보고서는 영국의 인공지능 연구작업에 큰 타격을 주었다. 당연히 영연방국가들, 즉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등지의 인공지능 연구에도 여파가 미쳤다.
에딘버러 대학의 로봇트 연구는 다른 나라의 어느 연구소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는데 이 보고서 한 장으로 그만 해체되고 말았으며 젊고 유능한 과학도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일본에서는 지금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 로봇트 공학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그에 비해 영국의 산업은 생산성에 관한한 말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비참한 상태에 있다. 영국은 라이트 힐의 보고서 한 장으로 값비싸고도 치명적인 대가를 치룬 셈이다.
라이트 힐경은 전문가 시스템의 잠재적 능력도 간과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로봇트 공학에서의 실수에 비하면 어느 정도 구제받을 수 있다. 그가 보고서를 쓴 1973 년에는 전문가 시스템의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을 가진 과학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예산삭감에 혈안이 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최대의 지원자가 된 나머지 중요한 기회를 스스로 방해한 셈이 되었다.
페트릭 헤이즈의 경우를 보면 영국의 과학에 대한 편견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 수 있다. 에딘버러 대학의 선임연구자 중 한 사람이었던 그는 영국의 상황이 아무리 변변치 않더라도 묵묵히 연구에 최선을 다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겐 늘 문제가 뒤따랐다. 제일 큰 문제는 대학교육 자체가 공학분야를 소홀히 취급하는 것이었다. 연구원으로 머무르는한 승진한다거나 생활대책이 선다는 것은 엄두조차 못낼 정도였다. 윗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별달리 연구도 하지 않으면서 그 자리에서 움직이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아랫 사람은 언제까지고 아랫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어야 했다. 페트릭 헤이즈는 다른 몇 사람의 연구원들과 함께 결국 미국의 유혹을 부리치지 못했다.
그때 함께 떠났던 사람 중에 마이클 브래디는 지금 MIT 의 인공지능연구소 부소장이 되어 있고, 에딘버러 대학의 프롤로그 시스템 설계자였던 데이비드 워렌은 스탠포드 대학 선임연구원이 되어 있다. 그리고 헤릭스 리먼은 스탠포드 대학 컴퓨터과학과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들 모두는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컴퓨터 과학자가 되어 인공지능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만약 영국이 그들이 계속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의욕적으로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분명히 세계 컴퓨터산업의 판도는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인공지능 컴퓨터에 대한 연구 결과에 따라 미래의 세계 정치기상도도 달라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영국의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과 영국은 많은 공통점을 안고 있다. 똑같이 인구가 과밀한 섬나라라는 점이 그 첫째이다. 필요한 만큼의 천연자원도 태부족이라는 점도 같다. 그분인가? 제 2 차세계대전에 일본은 패망했는데, 영국은 그 많던 식민지를 대부분 잃어 버리고 말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영국과 일본은 신문이나 방송 등의 매스컴 분야가 발달되어 있어 국민들의 관심을 한 곳으로 모으는 데 용이하다. 이것은 현대생활에서 꽤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국가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 매스미디아는 국민의 힘을 한곳으로 모으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밖에도 공통점은 또 있다. 예를 들면, 두 나라 모두 의례적으로 왕실을 섬기고 있다. 또한 두 나라 모두 좌측통행을 하고 생선요리를 즐기며 집안에 정원을 가꾸길 좋아한다.
그러나 두 나라 사이에는 전혀 다른 점도 있다. 일본의 교육에 대한 정열은 대단한데 비해 영국은 그렇지 못하다. 반면 영국은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쉽게 통하는 언어를 갖고 있다. 그리하여 두 나라는 지식과 문화를 중시하는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일본은 제 5 세대 컴퓨터 계획에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데 그와같은 인식의 근거가 되고 있는 모든 점이 영국에서도 통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영국 안에서도 이와같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적지 않다.
일단의 영국과학자들이 1983 년 이러한 인식을 근거로 하여 연구소 시설을 제안했다. 그 연구소는 1954 년에 세상을 떠난 알렌 츄링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알렌연구소로 명명하기로 되어 있었다. 연구원들은 가까운 장래에 3 대의 정보처리 시스템을 설계하는 국립연구기관으로서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되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돈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이 계획에 호의를 나타내지 않았다. 1973 년 라이트 힐경의 경우처럼 냉담하게 그들의 제안을 묵살했던 것이다.
1981 년 가을, 동경에서 열린 제 5 세대 컴퓨터 국제회의에는 영국의 대표단도 참석했다. 그들 중 일부가 영국에 돌아와 인공지능에 대한 세계의 관심과 추세를 말했다. 곧 토론회가 열리고 뭔가 이뤄질 듯 싶은 분위기가 되었다. 1982 년 1 월, 드디어 산업성 후원으로 대책회의가 열렸다. 여기에는 80 여 명의 산업계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이 회의는 대외비라기보다는 차라리 배타적인 회의라고 하는 편이 나을 정도로 두터운 장막 속에서 실시되었던 것이다. 신문기자들의 출입이 봉쇄되고, 더구나 영국 내에서 인공지능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과학자들은 한 사람도 참석시키지 않은 우스꽝스런 회의가 되었다.
초대되지 않은 사람들 중엔 인공지능 컴퓨터의 선구자일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 최초로 전문가 시스템을 만든 도널드 미키도 있었다. 그는 영국의 컴퓨터학회 안에서도 전문가 시스템 특별위원회의 초대 의장까지 지낸 사람이었다. 명식이 영국에서는 컴퓨터의 최고 권위자인데 컴퓨터산업의 장래를 위한 회의를 하는 마당에 초대장 한 장 보내지 않다니 그 회의는 이미 결론을 정해 놓고 토론을 하는 셈이었다.
그는 후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회의에 초대받지 못한 모욕은 참을 수 있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영국의 의지가 미숙하고 무지스러운 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한편 이 회의에 참석한 한 실업가는 이렇게 변명했다. 「도널드 미키가 회의에 초대받지 못한 것은 의도적인 것이었다. 그는 잘 알다시피 대단한 트러블메이커가 아닌가?」
얼마 후 몇몇 일간지가 라이트 힐경의 실수와 지도적인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미국으로 빠져나간 사실을 예로 들면서 영국도 이제는 제 5 세대 컴퓨터 계획에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일 때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기사 말미에 지식기반 시스템의 전문가 몇 명이 「일본의 제 5 세대 컴퓨터 기술에 대한 정보를 장기적인 안목에서 얻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사실을 실었다.
이런 공허한 논의가 계속되던 어느날, 런던에서 발행되는 경제지들이 일면 톱기사로 아주 충격적인 글을 실었다. 그것은, 「영국 정보는 독자적인 제 5 세대 컴퓨터를 개발하기 위해 향후 5 년간 2 억 5 천만 파운드의 예산을 지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는 내용이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액수는 일본 정부가 지출할 예산과 거의 맞먹는 것이 된다. 개발기간도 일본의 반밖에 안된다. 이제서야 영국정부는 첨단과학에 눈을 돌려 정열을 쏟으려는가?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다. 많은 과학자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면서도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어리둥절해 했다.
사실 그것은 믿을 수 있는 것이 못 되었다. 희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내용 그 뒤에는 이런 단서가 붙어 있었다. 「실현 가능성이 있나 없나 진지하게 연구를 해 본 다음에 지출하겠다.」거액의 예산은 그림의 떡인 셈이었다.
1982 년 7 월 영국의 과학주간지 《뉴 사이언티스트》가 이런 글을 실었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공상과학소설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이 60 년대초부터 이룩해온 과학적 성과를 우리는 볼 필요가 있다. 가전제품이나 소형승용차에서 이룩한 그들의 성공을 우리는 거울삼아야 하는 것이다. 모든 나라가 다 떠나고 난 뒤 영국만이 홀로 남아 다음 차를 기다리고 있는 꼴이 도기 쉽다. 과학이든 예술이든 어떤 시도에 있어 늦는다는 것은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 창조냐, 모방이냐, 어느 나라가 과연 앞서가는 것이냐 하는 문제는 예상외로 빨리 결판이 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본과 대항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이미 대항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늦어 버렸다. 우수한 두뇌가 수도 없이 유출되고, 관심을 쏟고 앞장서야 할 정부관리들이 수수방관만 하는 오늘의 상황 아래서 영국에 과학기술의 꽃이 피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영국으로서는 지금이 기회이다.」
이런 비탄조의 글을 읽노라면 영국의과학자들이 느끼는 애수에 가까운 비애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뉴 사이언티스트》에 인용되었던 영국관리들의 무관심과는 달리 동경에서 열린 <제 5 세대 컴퓨터 국제회의> 에 대해서는 영국에서도 설득력 있는 몇 개의 보고서가 과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져, 1982 년 중반에 여기저기서 발표되었다. 그와같은 보고서는 산업계와 학계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하고 있었다. 내용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영국도 독자적인 제 5 세대 컴퓨터 계획을 출발시켜야 한다. 지금 영국 내에 있는 전문가를 총동원해야 되는 것은 물론이고 외국에 유출되어 있는 과학자들도 모두 불러들여야 할 것이다. 만약 진지하고 잘 조직된 계획과 충분한 재정지원 아래서 수행된다고 하면 그들은 모두 돌아올 것으로 믿어진다. 대학에서 우수한 학생을 찾아내어 조기교육하고 최대한 지원하는 체제를 세운다면 우리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보고서와 함께 여러 위원회가 「일본의 생각이 옳았다. 지금은 이 분야를 밀고나가는데 아주 좋은 시기이며 모든 분위기는 이미 성숙되어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일본인 뿐만 아니라 미국인이나 유럽인들로부터도 우리는 따돌림을 받고 있다. 분발하자. 지금이 그때이다!」라는 비분강개형의 주장도 나왔다.
알베이위원회는 영국의 정보기술 연구에 자문하는 공식적ㅇ린 기구인데 이 단체가 1982 년 중반에 성명을 발표했다.
「만일 우리가 정보기술 분야에서 능력과 경쟁력을 보유하고 강화하려고 생각한다면 바로 지금부터 필요한 연구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서 이 위원회는 고도정보기술의 국가계획을 5 년간에 2 억 5 천만 파운드의 자금을 들여서 추진한다는 국가계획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 계획의 직접경비 중 70 % 는 정부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산업계가 내는데, 계획을 수행하면서 들어가는 모든 비용도 이러한 비율에 따라 염출하도록 하자. 이 계획은 산업계나 대학, 그밖의 연구기관의 협력 아래 추진되어야 하지만 역시 가장 강력한 추진력은 정부에 의해서 나와야 할 것이다.」라고 이 위원회는 말했다.
아무튼 1982 년 중반부터 일기 시작한 영국의 각성은 영국인 자신들에게도 하나의 경종이 되었다. 영국정부도 뭔가 이젠 움직이려는 기색을 보이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다.
영국은 과거 수백년 동안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왔다. 그래서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해왔다. 그러나 거듭되는 어긋난 정책, 잘못된 인식, 과대망상, 환상 등에 의해서 승자로부터 패자로 전락했다. 패자로서의 영국이 취할 길은 한 가지 뿐이다. 정확한 판단, 현실을 직시하는 눈, 행동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영국인들이 아직도 「그까짓 일본쯤이야!」하는 자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영국인들이 그런 자만에 빠져 국가 발전에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그리이스ㆍ로마 문학 따위의 낭만에 젖어 있을 때, 산업 혁명시대의 기계로 만족하고 있을 때, 2 차대전의 승리자로서 그런 진부한 긍지로 버티고 있을 때, 동양의 작은 나라 일본은 세계 최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비극을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는 타산지석으로 배울 필요가 있다.
새로운 정보시대에 돌입하기 위한 가장 정밀한 계획들이 프랑스인으로 스스로의 노력으로 입안되어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과학연구와 개발 전반에 대해서 정부보조금을 물가상승률에 따라 6 ~ 8 % 씩 증가시켜주기로 이미 법제화되었다. 프랑스산업의 여러 분야에 있어서 그들의 능력을 높이기 위해 취한 이러한 조처는 프랑스인들을 고무시켰다.
그중에서도 전자공학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우리의 주의를 끈다. 전자공학에 대한 중점지원 정책은 이미 지스카르 데스텡 정권 때부터 이룩되어 미테랑 정권에 이르러 더욱 가속화되었다. 프랑스 전역의 전자공학 분야 산업체를 통합조정하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것도 주목을 끈다. 칩의 생산에서부터 소프트웨어 분야, 로봇트 공학,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잘 나타내는 이 정책은 프랑스 과학자들에게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계획의 궁극적인 목표는 물론 지식정보처리 분야에서 프랑스를 세계의 리더로 만들려는 데 있다.
1982 년 6 월 초, 벨사이유 궁전에서 선진국 정상회담을 위해 7 개국의 수뇌들이 모였다. 그때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이렇게 인사했다.
「우리가 협의하지 않으면 안될 많은 문제는 전혀 새로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전에도 수없이 일어났던 문제들입니다. 돌이켜보면, 서양에서 일어난 두 번의 산업혁명의 초기에도 실업률, 보호무역주의의 팽창, 인플레이션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정부의 정책입안자도 기술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미테랑의 발언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미테랑은, 「과학기술이 실업자를 양산하는 사태, 즉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과학에 의해 인간이 소외되는 사태를 우리는 막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1990 년대에는 대량생산되는 제품의 20 % 가 로봇트에 의해 만들어질 전망입니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영향, 이러한 변화를 관리하는 능력을 갖는 데 있어 인간이 과학보다 뒤지는 사태입니다. 물론 기술혁신과 과학의 진보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처도 중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여 협의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로 이러한 문제가 포함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라고 미테랑은 말했다.
현재 프랑스의 국영 전화공사는 전자공학시대의 첨단기술을 이미 일반 가정에까지 보급하고 있다. 가입자의 가정에 단말기를 달아 놓고 정보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1982 년 9 월, 전화공사는 프랑스 북서부의 중소도시 렌시에 이러한 단말기를 설치하고 시험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가입자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단말기가 하는 일은, 가까운 상점은 어디 있는가, 그리고 그 상점의 개점시간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인가 등등을 알려 준다.
또한 이 단말기는 이용자가 전화를 걸고 싶은 곳의 이름이나 번호를 정확히 알지 못할 때도 전략 이러이러한 곳이라고만 말하면 어느 정도 추리를 해서 정확한 이름을 찾아주고 있다. 곧 이러한 전화 시스템은 다른 도시에서도 채용되어 살 물건의 안내, 항공회사의 발착 안내 같은 것도 서비스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농촌지역에서는 각종 농업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전자장치도 사용되고 있다. 프랑스 정부의 전자정보산업부는 앞으로 다른 도시에서도 이같은 계획이 확대 실시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정보기술은 국가시책의 최우선이다. 우리는 공업성과의 충분하고도 정확한 의논 아래 이것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우리의 계획은 분명하다. 그것은 세계의 모든 나라를 젖혀 놓고 1 등국이 되는 것이다.」
프랑스는 정보기술 분야에서 세계 제 1 국이 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의 제 5 세대 컴퓨터 프로젝트에 대단한 관심을 기울이고 그에 대처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본의 도전에 대처하는 프랑스의 계획은 <지식정보 시스템 그룹> 이라는 연구기관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 기구는 프랑스 국립정보과학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관리, 민간인 학자, 산업계 인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그룹은 영국의 알베이위원회가 보고서를 내놓을 때와 비슷한 시기에 몇 개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보고서 중에는 컴퓨터개발을 위해 미국산 컴퓨터와 각종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구입하여 연구하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정부의 국산품 애용정책에 위배되어 실현되지는 않았다.
그 보고서의 제안 중에는, 특히 지식기반 시스템에 관해서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설계와 제작을 통일된 국가계획으로 진행시켜야 한다는 것도 있었다. 당시 프랑스 내의 2 대 회사가 지식기반 시스템을 설계, 개발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이런 활동을 보면, 프랑스가 영국과는 달리 단지 입으로만 첨단기술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심지어 정부의 열렬한 지원을 받고 있는 <세계 정보기술 인재센타> 라는 것도 생겨 인공지능 컴퓨터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프랑스인들은 미국과 일본이 첨단기술의 개발에 혈투를 벌이는 경쟁의 사이에서 결코 뒤지지 않으려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세계 정보기술 인재센타는 프랑스인들 뿐만 아니라 제 3 세계의 과학도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여 이러한 의지를 내외에 과시하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에도 문제는 있다. 그것은 미테랑 정부의 긴축재정 정책이다. 프랑스가 컴퓨터와 전자공업 분야에 세계의 리더가 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예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미테랑 정부는 과학자들의 게속된 지원요구에 우선순위를 내세우며 달래고 있다. 원대한 계획만큼 현실이 따라주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프랑스의 대계획은 기술상으로 일본의 제 5 세대 계획을 닮아갈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 계획 속엔 흥미로운 것도 포함되어 있다. 자동화와 컴퓨터에 의해 노동시간이 단축되었을 때 새로운 경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자못 프랑스인다운 낭만적인 계획이다. 공업화된 사회에서는 지루하기만 한 생활에 스트레스가 쌓여 고민한다. 알콜 중독자가 격증하고 범죄는 이곳저곳에서 발생된다. 마약이 범람하기도 한다. 이때를 대비하여 국민의 관심을 건설적인 곳으로 모으기 위한 대책이 바로 이 계획의 핵심이다.
프랑스인들은 행동력에 있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몇 가지 깊이 깨닫고 있는 것이 있다. 첫째는 과거의 일등국이 언제까지고 일등국이 될 수는 없다는 자각이다. 과거의 찬연한 영광을 오늘 되살리기 위해 분투 노력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자각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들이 첨단기술에 매달리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또 하나 큰 자각의 물결이 그들의 의식 사이에 흐르고 있다. 그것은 현대에 있어 최강대국의 의미는 인구나 국토에 비례하거나 우아한 언어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자각이다. 드골에 의해 거듭 확인된 일등국의 자부심이 상처를 받은 것은 미국ㆍ소련 등의 우주개발 경쟁이었다. 그들이 우주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정상 경쟁을 벌이고 있을 때 프랑스는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제삼자가 되어 있다는 생각에 체면을 손상당했다고까지 여겼었다. 그래서 그들은 인공지능 컴퓨터의 개발에 관한한 더 이상 뒤질 수 없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프랑스인들이 과연 해낼 수 있을지 어떨지는 더 두고볼 일이다.
많은 나라의 국민이나 정부가 한 가지 중대한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정보기술이 경제성장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 싱가폴은 국민을 위해서 뭐 재미있는 장사거리가 없을까 하고 언제나 눈을 부릅뜨고 있다. 그래서 이 작은 나라는 국가 번영과 발전을 위해 필요하고 인정되는 새로운 사업이 발견되면 과감히 예산을 편성하고 밀고나가는 모험을 한다.
싱가폴은 이미 여러 해 전에 컴퓨터산업의 부가가치의 대부분은 소프트웨어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소프트웨어 분야에 진출한 바 있다. 싱가폴은 물마저도 수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라이지만 소프트웨어 부문은 소프트웨어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소프트웨어 분야에 진출한 바 있다. 싱가폴은 물마저도 수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라이지만 소프트웨어 부문은 수입원자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은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공장은 사람의 두뇌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경우 맨처음 정부 출자의 3 개 회사가 설립되고 우수한 젊은이들을 미국으로 유학시켰다. 그들이 돌아오면 다시 엄한 현장교육을 시켰다. 그런 다음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사업에 투입시켜 업무능률의 극대화와 신속 정확을 기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도록 했으며 그와 함께 국가적 시책을 국민생활의 번역으로까지 연결시켰던 것이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거둬 싱가폴은 지금 개발도상국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나라가 된 것이다.
아일랜드 역시 일찍이 정보기술의 중요성을 깨닫고 컴퓨터 관계회사는 낮은 세율을 적용하여 지원하고 있다. 또한 젊은 기술자를 채용하는데 있어 각종 혜택을 주어 배려하고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정부지원으로 젊은 기술자의 해외유학을 도와주고 현장교육을 받는 데 있어서도 편의를 돌봐주고 있다. 장래 산업의 중핵이 되는 신기술의 역군으로 다른 생각없이 안정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잇도록 배려하는 것도 그들의 정책 중 하나이다.
아일랜드 정부로서도 충분히 본전을 건질 수 있는 정책으로 그들은 그런 투자를 하는데 있어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다.
이런 투자의 결과 아일랜드는 숱한 정치 경제적 곤란을 극복하고 지속적인 경제안정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일랜드의 장래 또한 이런 장기 안목의 정책을 펴는 한 밝다고 믿어진다.
인공위성 개발로 한창 소란스러울 때, 소련 내의 각 대학으로부터 배출되는 수많은 기술자들을 생각하고 서구인들은 어떤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소련의 기술자들은 훌륭한 공학자가 되어 빨리 신분보장을 받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이상 서방의 공학도들 보다 훨씬 열심히 공부하는 풍조가 있다. 서구인들은 그런 그들이 무슨 엄청난 기계를 만들어 엉뚱한 짓을 또 저지를지 몰라 몹시 불안해 했던 것이다.
그런데 1982 년 레바논 사태 당시, 소련에서 설계 제작된 미사일이 정말로 형편없는 성능밖에는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했다. 또한 유럽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에서도 여러 기술적인 문제가 제기될 때 속수무책인 그들의 과학기술을 보고도 마찬가지였다.
몰론 그들도 노력은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예견했던 것보다 훨씬 못미치는 그들의 과학인 것이 사실이다. 소련에도 역시 우수한 두뇌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직된 정치ㆍ경제ㆍ사회처럼 빠르게 인간의 두뇌를 마비시키는 것도 없다. 소련의 정치 경제체제 아래서는 국민의 복지를 위해 불가결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생각도 실현되지 않는다. 컴퓨터 역시 그런 생각 중의 하나일 뿐이다.
지난날 소련의 컴퓨터과학자의 노력은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여겨졌었다. 하드웨어건, 소프트웨어건 서방 어느 나라에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인공지능 연구에서 거들은 막히기 시작했다.
파이겐바움도 이미 오래 전부터 소련의 컴퓨터과학에 대해 주목해 왔다. 특히 그는 그들의 인공지능 연구를 관심있게 보아왔다. 1960 년대에는 두 번이나 소련을 방문하여 그들의 연구활동을 보기도 했다. 파이겐바움이 지금까지의 소련에 대한 관심으로 얻은 결론은, 소련이 컴퓨터과학에 관한한 걸음마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단지 소홀히 취급되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소련에서의 과학은 추상적인 길을 걷고 있었다. 공업계의 사람들은 과학자가 말하는 것에는 귀도 기울이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소비에트의 과학계는 예나 지금이나 정치상의 배려에 큰 영향을 받는다. 권력자의 기호에 따라 어떤 분야는 급성장하는가 하면 다른 한 분야는 낙후성을 면치 못한다. 예를 들어 유전공학이나 이와 비슷한 다른 분야는 과거에는 반 마르크스주의적이라 해서 철저히 금지되어 있었다.
소련의 과학계가 안고 있는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자기들의 생활 위에서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는 정치적 위협 앞에 눈치를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폴란드의 유명한 수학자는 과학에 대한 흥미와 취미를 무시하고 굳이 수학을 택한 것은 정부의 참견이 심한 분야에는 결코 끼어들지 말라는 부친의 엄명 때문이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소련의 한 유명한 컴퓨터연구소가 공업생산품의 자동화를 위해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얘기를 듣고 서구의 많은 과학자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소련 내의 공장에서 24 시간 풀 가동되는 기계라는 것은 대단히 구식이어서 컴퓨터로 콘트롤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소련 과학자들도, 컴퓨터가 공업계에 널리 보급될 수 있는 것은 아마 1990 년대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털어 놓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것은 보다 더 지연될 전망이다.
소련에서는 모든 면에서 사상이 위라는 이유 때문에 어떤 일을 하나 벌이는데도 사상성을 따진다. 그래서 공장에서 컴퓨터 시스템을 채용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소련과 같은 중앙집권적이고 계획경제인 체제 아래서는 정보의 흐름이 매우 빠르고 정확하기 때문에 최대의 이익이 얻어질 것으로 여겨지지만 현실적으로는 합리적인 계획을 가능케 하기 위한 기계 하나 장치하는데도 대단히 늦고 있다. 소련경제의 허구가 여기 있는 것이다.
「소련인들은 기술 개발에 있어서 가장 빠르기는 하지만 가장 위험한 짓을 곧잘 한다. 특히 무기생산 분야에 있어서는 더욱 그런데 이 방법은 다름 아닌 다른 나라로부터 훔쳐오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스파이짓이란 한계가 있다. 더구나 복잡하기만한 컴퓨터 산업분야에서는 스파이짓은 최후의 수단일 뿐이다.
일본도 한때는 그런 적이 있었다. 일본 내의 유수한 컴퓨터 메이커가 IBM 의 비밀을 몰래 사려다가 실패한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이때부터 세계는 첨단기술의 비밀보호가 새로운 과제로 등장했던 것이다. 미국의 한 컴퓨터회사 대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비밀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항상 선두에 서는 것, 그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는.」
지금까지 일본의 제 5 세대 컴퓨터 프로젝트가 제기한 도전과 여러 나라의 대처상황을 살펴보았다.
이 경쟁에 참가하려면, 단지 우수한 기술만 가지고는 안된다. 거기에는 지혜와 의지, 선견력과 신념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있으면 어떤 실수도 극복할 수 있고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도 보다 미래지향적인 태도로 그것을 뛰어넘을 수가 있다. 지금까지 보아온 여러 나라의 경우에서도 나타났다시피 문제는 기술적인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장기적인 이익이 어디에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식견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가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근시안적인 권력자에도 보다 큰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다. 그들은 우수한 민족들이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영국같은 나라는 이렇게 환상에만 사로잡혀 있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자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인공지능 컴퓨터를 제일 먼저 생각한 나라답게 한번 해봄직도 하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한 것 같다.
미국의 정부 내에서도 인공지능 문제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자기도취와 근시안적인 정책, 그리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타성에만 젖어 있는 한 미국은 소형승용차에서, 가전제품에서, 제철분야에서 일본에게 당했던 전철을 또한번 밟게 될 것이다. 일본은 이제 무서운 아이들이 아니라 무서운 강대국이 돼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