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의 여러 측면

 

컴퓨터와 인간지능 : Donald G. Fink 저, 이기호 역, 이화여대 출판부, 1986, Page 184~204

 

인간 대 기계

선천적 지능

실제 지능에 대 외관상의 지능

장수말벌의 외관상 지능

적응 가능한 지능시험

창조적인 지능

인공 지능의 정의

 

인공 지능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선천적인 지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합리적인 답변을 찾지 못한다면 이 글을 쓰는 필자나 독자 여러분들이나 모두 원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 이 문제들은 쉬운 것이 아니다. 일부 철학자들은 "지능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완전한 대답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자신의 행동을 주관적으로 경험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밖에 서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있는 소사전에는 지능을 "논리하고 이해하는 능력" 이라고 간단히 정의하고 있다. 이 몇 마디로는 그 개념을 표현하는 데 충분치 못하다. 대사전에서도 인간 지능, 즉 의식 속에 잠재하고 있는 개인적인 속성에 대해서는 회피하고 있다. 우리는 지식을 배우고 반성하며 사용할 때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적과 욕구를 나타내기 위해 지능을 항상 사용한다. 대부분의 이런 활동은 내부에서 통제되고, 자아의 내적 성찰에 의해 지배된다. 그러므로 지능에 대한 지식 - 그들 모두의 첫 번째 개념 - 은 지능의 생각 속에 강하게 들어가게 된다.

"인공 지능" 의 어려움의 시작은 바로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컴퓨터는 구조상으로 강력하고 프로그램면에서도 훌륭하지만 그 자체의 의식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만약 지능이 자기 의식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지금 단계로선 어떠한 기계도 지능적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지능적인 작용을 관찰함으로써 객관적인 입장에서 지능을 정의한다면 또 다른 각도에서 논의할 수 있다. 기계가 인간이 전달하고 경쟁하는 지적인 기능을 갖는다면 (체스 게임에서 챔피언 닐리와 상대한 모델 7094 컴퓨터처럼) "지능적" 이라는 형용사를 붙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이때 컴퓨터 7904 가 "지능적" (즉 잘 프로그램화된) 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요점을 벗어나는 것이다. 컴퓨터가 지능적인 방법으로 수행하였다는 것이 아마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가? 이 책 앞장에서 밝혔듯이 우리는 일반적으로 컴퓨터 7094 가 어떠한 일을 하였는지 알았으며, 다음 장에서는 서양 장기에 관해 더욱 상세히 알 수 있다. 이러한 작용으로 어떠한 컴퓨터도 지능적인 세계에 속할 권리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현재 철학자와 기술자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로서 대단한 논의를 일으켰다.

이 장에서는 논쟁을 일으켰던 여러 형태의 행위 (인간, 동물, 기계에 의한 것) 에 관해 고찰하겠다. 특히, 배우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가르치는 과정과의 관계에서 다른 두 가지의 중요한 지능의 면을 동일하게 취급하겠다 전자, 즉 적응하는 지능은 교사와 다른 경험에 의해 터득한 것만을 익히는 학생에게 나타난다. 후자 즉, 창조적인 지능은 교사가 가르쳐 준 것과 자기가 발견한 세계를 인정하고 스스로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학생에게 볼 수 있다. 창조적인 지능의 행위는 샐운 지식과 예술가, 철학자들에게서 나타난다. 기계가 비판적인 지능을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 이 책 (제 12 장) 이 목적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다루기 전에 우리는 용어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 정의를 내리는 데에는 지난 수십 년간 만연했던 인간 대 기계에 관한 논쟁을 다시 검토해 보는 것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것이다.

인간 대 기계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천부적인 재능 가운데 우수한 지능의 선물이야말로 가장 가치있고 방어적이다. 확실히 "인간" 이 지구를 지배하는 데 특별한 설명이 필요없다. 다른 문화에 대한 한 문화의 정복, 전쟁의 승리, 이 모든 것은 승리자의 우월한 지능 탓이다. 호머시대에서부터 어젯 밤 텔레비전 기록에까지, 즉 모든 기록된 역사시대를 통해 인간 정신의 이상과 우수성이 시대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또한 원시시대부터 지속되어 내려오는 것은 인간의 지능보다 우월한 것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다. 거의 모든 원시 신앙의 하느님들은 전지전능하며 복수심으로 불타 있었다. 도구의 첫 발명은 이러한 초자연적인 끊임없는 염려를 더욱 증가시켰다. 즉 언젠가 인간은 그가 만들어낸 창조물에 의해 정복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염려는 도구의 힘이 더욱 더 막강해짐에 따라 (특히 산업혁명 시대의 기계가 더욱 더 막강해짐에 따라 (특히 산업혁명 시대의 기계가 더욱 더 복잡해짐에 따라) 인간의 지능 발달과 더불어 병행하여 왔다. 고리타분하고 단순했던 미신은 더욱 복잡 미묘한 두려움으로 바뀌어 갔다.

이와 똑같은 염려가 오늘날 컴퓨터 과학의 지능적인 기계류에 집중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다지 심하게 위협을 받고 있지는 않다. 결국 사람들은 항상 컴퓨터의 전원 플러그를 뽑을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컴퓨터가 그 자신의 의지를 개발하여 전원 플러그를 다시 꼽을 수 있다는 부담스러운 생각이 옛부터 전해오는 현대관 미신이다. 인간 대 기계의 논쟁은 지난 1 세기 동안 치열하게 증대되었다. 지난 세기에 버틀러 (Samuel Butler) 는 "현재 약간의 의식을 소유하고 있을 뿐인 기계의 의식이 극단적으로 발달하는 것에 대한 방어책은 없다" 라고 썼다. 버틀러는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가 말이나 개와 인간과의 관계와 흡사한 시대가 오리라는 상상으로 그 문제를 자세히 표현하고 있다. 버틀러 생존시대에 사용 가능한 기계만 하더라도 그의 이론을 뒷받침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34 년 경 (주석 : 바베지 (Charles Babbage, 1792 - 1871) 는 "Analytical Engine" 에서 현대의 전자 컴퓨터 기술의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컴퓨터와 같은 방법으로 수를 다루고 저장할 수 있도록 고안된 복잡한 기계였다. 영국 정부는 그의 연구를 지지하였으나 그 시대의 기술로는 완성되지 못했다. 보덴 (B.V. Bouden) 이 편집한 Faster than Thought (Sir Issac Pitman & Sons, London, 1957, PP. 6 - 23) 에 이 연구 실적이 있다.) 계수형 전자 컴퓨터가 나왔다. 거의 20 년 동안 이러한 기계의 디자인과 프로그램에 관해 집중적으로 작업을 하면서 사람들은 최초로 논리적인 사고를 모방하는 수단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문제는 모두 허사가 되었다.

1950 년대의 "인공 지능" 이라는 새로운 말은 특히 대립적인 개념에 대한 신랄한 표현이었다. 지능적인 기계에 대한 옹호자들은 지능적인 컴퓨터의 프로그램에 대한 획득에 대해 급격한 진보를 예언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지적" 인 단어는 어떠한 기계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과거에도 가능했다는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하였다.

논쟁이 격화됨에 따라 원로 수학자나 철학자들의 조그마한 그룹은 대부분 그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로 기계 지능의 궁극적인 한계를 정의하는 일반적인 원리를 발견하고자 계속 연구에 몰두해 왔다. 그들은 500 년 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얘기한 "새는 자연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기구인데, 이 기구는 그것의 모든 운동에서 재현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내에 존재한다" 라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비록 제트 비행기가 새의 모든 "운동 (movement)" 을 이용하지는 못하지만 위로 뜨는 것과 공중에서 뜨는 것의 똑같은 결합이 비행기와 갈매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확실히 비행기는 운동력에 있어서 인간이 자연의 기계를 조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천부적인 정신 (mind) 의 우월성에 대해 완벽하게 지속 되어온 확신이 도전받을 때 비로소 불신과 두려움을 알 게 된다.

인공 지능의 연구자들은 또한 얼토당토않은 표현으로 성급하게 프로그래밍의 새로운 발전에 관한 내용이 보도되고 설명되기 때문에 이를 불신하는 사람들은 더욱 후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논쟁에서 이러한 기계의 업적에 대한 진보적 제거는 최초의 디지털 전자 컴퓨터 ENIAC 의 머클리 (J.W. Mauchly) 와 공동 고안자인 에커트 (J.P. Eckert) 에 의해 인정되었다. 에커트는 "컴퓨터는 17 년 후의 나를 생각할 수 없다는 정의를 내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정의는 실현성이 많다. 왜냐하면 컴퓨터의 발전에 따라 이 정의는 해마다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에커트 박사는 궁극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컴퓨터는 어느 정도 발전할 것인가? 초기에 몇 차례의 답보 상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기간은 불과 10 년 안팎이었으며 발전은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최근의 추세를 받아들인다면 사람들의 상상을 예측할 수 있다. 제작상의 지능적인 혁명은 가능한가? 계산과 논리의 기계가 산업혁명을 가져온 동력 기계와 같이 사회에 최대한이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선천적 지능

기계 지능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지능" 이라는 단어의 한계를 규정짓는 것이다. 우선 『웹스터 사전 (Webster's New International Dictionary)』에 보이는 지능 (intelligence) 에 대한 적합한 정의를 그대로 인용하겠다. "(a) 경험에서 배우고 이해하는 능력 ; 지식을 획득하고 보유하는 능력 ; 정신적 능력 ; (b) 새로운 상황에 빠르고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 ; 문제를 풀거나 행동을 지배하는 등 이런 것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이성적 자질의 사용 ; (c) 심리학에서 어떤 일을 행하기 위해 이러한 능력을 행사할 때 측정된 성공." (주석 : 웹스터사전에 있는 5 가지의 다른 정의로는 "정보" 즉, 지적인 능력보다는 지적 행동의 내용을 다룬다. 이 개념은 주제의 명확성에 대해서는 기본적이나 우리가 알고 있는 관심과는 거리가 멀다.)

사전에 있는 단어들은 신중하게 채택된 것이므로 이것들을 기준으로 지적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측정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굉장히 우수하다고 여겨졌던 어떤 친구를, 왜 그가 "정말 머리가 좋다" 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분석해 보자. (a) 의 정의에 의하면 그는 (안다는 것, 즉) 정보를 인정하고 저장하며 조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그가 갖고 있는 지식과 그의 세계관이나 사실들과 연관시킬 수 있어야 한다. (b) 에 의한다면, 그는 정신적인 적응성을 나타내야 한다. 즉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롭게 요구되는 방식을 발견하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그는 그의 두뇌를 효과적이고 능동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이러한 능력은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문제를 풀고 다른 사람들의 규범을 보여주며 이끌어 나간다. (c) 에 의한다면, 그는 평균치보다 높은 정신 연령 (지능검사에 의한) 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즉 그는 거의 확실하게 지능지수가 120 이상일 것이다.

이러한 모든 특성은 관찰에 의해 측정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라. 우리는 사람의 지능을 그의 말과 행동에 의해 판단한다. 인공 지능에 관한 논쟁의 핵심은 컴퓨터의 말과 행동에 의해 컴퓨터 시스템이 비슷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기계는 배울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새로운 상황에 (충분히 복잡하게 프로그램화될 때) 대처할 수 있다. 문제를 풀 수 있다. 그것은 행동을 지배할 수 있다 (석유정제소와 우주 탐험에서처럼 모든 우주 비행사는 먼저 우주차량의 궤도를 조사하여 바로잡아 주는 컴퓨터에 의해 이륙의 정확한 궤도를 안내받는다). 그것은 어떠한 표준화된 지능 시험의 질문에도 답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에서 컴퓨터와 사람의 관찰된 행동은 종류가 다른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가 있다는 것이다.

인공 지능의 개념을 수긍하지 않는 사람들도 비슷한 행동에 대한 이러한 관찰의 타당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유사한 문제에서의 결과에 한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즉 그들은 정신과 기계의 방법을 진정으로 비교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의식을 갖고 노력하는 인간의 지력과 컴퓨터 프로그램 내에서의 맹목적인 기계의 기호 조작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컴퓨터는 인간 정신에 굉장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지능적인 도구라고 믿는다. 그러나 컴퓨터 자체가 스스로 지적 존재로서의 일장을 갖고 가령 축구시합 같은 데서 인간의 정신과 경쟁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오라는 답변이다. 7094 컴퓨터가 챔피언 닐리를 패배시킨 표면상의 반대 증거조차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서양 장기 게임을 위해 프로그램을 고안한 훌륭한 사람을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사무엘 박사 자신은 게임에서 프로그램이 자신의 정신을 계속해서 패배시킬 수는 있다고 믿지만 프로그램의 굉장한 전략을 계획하는 데는 컴퓨터가 결코 자신을 능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프로그래머는 항상 프로그램으로 표현한 것 이상으로 더 훌륭한 상상력을 가지고 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격은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확실히 필요한 것이며 또한 이 시대의 다른 어떠한 훌륭한 프로그래머라면 모두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컴퓨터에 의해 개발된 각종 새로운 방법이 아무리 정교하고 훌륭하다 하더라도 인간의 마음 속에서 더욱 정교하고 훌륭한 방법이 개발되고 사용되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컴퓨터 철학가들은 사무엘 박사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사실의 진실성에 항상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컴퓨터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실증철학자" 들은 사무엘 박사의 연구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프로그램된 특별한 작업에서 기계의 우월성을 증명했다고 지적했다. 즉 그들은 컴퓨터가 왜 더 훌륭한 상상력을 그 자신의 프로그램에 사용할 수 없는지 의아해 한다. 이 분야의 저명한 연구팀의 일원인 뉴웰 (Allen Newell), 쇼 (Show), 사이몬 (Herbert Simon) 등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즉 그들의 연구는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보여주는 정도까지 진전했다. 그들은 기술을 발견한 당사자들이며 그들의 프로그램은 일반적인 문제 해결 (제 12 장) 을 위한 기계 지능 발전과정의 커다란 이정표로서 사무엘 박사의 연구를 평가한다.

이제 이 논쟁을 떠나 본래의 문제로 되돌아가자. 제작의 지적 혁명은 가능한가? 기계가 사용자를 능가할 때까지는 프로그래머가 그의 기계를 능가한다 (아마 그러리라) 는 사실이 별로 중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이 문제의 서광이 보일 것이다. 디트로이트는 자동차가 디자이너의 창작품이지만 주부들은 그것의 디자인에 대해 아무 것도 알 필요가 없다. 주부들은 다만 그것이 아니면 안 되는 기동력의 장점 때문에 그것을 사용한다. 때문에 이것이 산업혁명의 업적이다.

같은 의미로 체스 챔피언 닐리는 그 자신이 (어떻든 이렇게 되면 스포츠맨답지 않겠지만) 패배시킬 수 없었던 또 다른 적수를 패배시키기 위해 7094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 또 다른 의미로는 뉴웰과 사이몬의 논리적 이론 프로그램이 (상징적 논리로서의 단순한 정리를 증명하는) 52 번의 시행을 거쳐 『수학원리 (Principia Mathematica)』라는 고전적인 문헌보다 훨씬 간단하고 훌륭한 하나의 증명을 발견함으로써 경쟁에 의한 지능의 승리를 획득했다. 간결성과 우수성이 수학 선수권 대회가 획득하는 점수이기 때문에 이러한 독보적 예는 굉장한 여론을 일으킨다. 다른 예들도 있지만 이러한 예들이 지적 혁명의 초창기 작업이다.

실제 지능에 대 외관상의 지능

인공 지능을 정의하기에 앞서 우리는 어떠한 실행 가능한 정의도 기계의 수행이 관찰된 후라야 쓰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대부분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피상적인 관찰은 자칫 상당한 오도의 가능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능의 "실제면" 과 "외관상의 차이점" 을 구별할 수 있는 명확한 테스트를 생각하여야 한다.

흔히 인용되는 정의를 예로 들어보자. "인공 지능 : 인간에 의해 나타난다면 기계에 의한 행동은 지능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이상의 조건이 없다면 이렇게 간단하고 추상적인 정의는 굉장한 혼란을 초래하기가 쉽다. 가령 우리가 성능이 좋은 축음기의 작동과정에 대해 알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고도의 지적인 인간 행동, 즉 의미깊게 이야기하는 능력으로 판단, 그것을 지능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축음기는 그 레코드의 흠에 지워진 말의 파형을 불변의 형태로 단순히 재생시키고 있는 데 불과하다. 그것은 기록된 내용의 형식이다. 내용에 어떠한 공헌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입력된 자료를 변화 없이 재생시키는 데 될 수 있는 한 충실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기계적인 암기는 그것이 비록 형식상으로는 "인간적" 이라고 할지라도 지능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약 축음기가 그것의 전달 내용 (예컨대, 만약 산문을 시로 번역하는 데서 관찰되듯이) 에 중요한 공헌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창조적인 지능 (creatively intelligent)" 을 갖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계가 러시아어를 영어로 번역할 때 우리는 그것에 "지능" 을 부여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후에 생각할 어떤 점에서는 최소한 우리는 실수할 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기계의 지능을 시험할 수 있을까? 기계의 적응 여부를 알아내는 하나의 방법으로는, 즉 다시 말하면 그것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입력된 자료에 어떤 예기치 않은 변화를 주는 것이다. 우리는 선천적 지능에 대한 웹스터 사전의 정의에서 경험으로부터의 배움이라는 단어를 채택하여 인위적인 지능을 정의하고 있다.

물론 기계에 적용하는 의미에서 "경험으로부터의 배움" 이 뜻하는 것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두뇌의 기능을 상기해 보자 (제 9 장). 배우는 과정에서 인간은 반복되는 노출을 통해 우리의 환경 속에 있는 방식을 인정하고 기억한다. 우리는 이러한 방식에 의미를 부여하고 유사성과 차이점에 주의하여 논리적인 관계는 받아들이고 비논리적인 것은 배제하면서 더욱 이해하기 쉬운 의미를 갖도록 새로운 것으로 조직한다. 결국 논리적인 조직과 일반화된 정보 방식을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논리 추론과 행동에서 사용하는 저장된 지식 체계를 세운다. 기계의 학습은 비록 세세한 사용방법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거의 같다. 정보의 방식을 인지하고 더욱 더 이해하기 쉽고 의미있는 방식으로 조직하고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기계를 정의한다면 환경으로부터 배우는 기계라고 한다.

그러므로 기계 지능을 위한 테스트의 첫 번째 열쇠는 정보를 조직하는 능력을 위한 테스트이다. 축음기는 이 시험의 관문을 통과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정보를 반복할 뿐이기 때문이다. 컴퓨터 π 에 관한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로 불합격이다. 모든 조직이 프로그램에서 주어진다. 즉 225 컴퓨터는 그 자체가 내부에서 프로그램을 변경하지 못한다. 그것은 배우도록 프로그램화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컴퓨터 프로그램은 - 특히 게임이나 문제를 풀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들은 - 배우는 시험을 통과할 것이다. 가장 확실한 실마리의 하나는 프로그래머가 정확하게 예언하지 못하는 입력된 정보 방식 (서양 장기에서처럼 정리를 증명하거나 그림을 인지하는 지시) 을 처리할 수 있을 때 나타난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기계는 그것이 프로그램된 문제 영역의 비교적 일반적인 기본틀 내에서 적용된 특별한 방식에 프로그램을 적응시켜야 한다. 그것은 자체 내의 자료를 조직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환경의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쉬운 개념이 아니다. 그리고 아마 이러한 개념을 몇 개의 예를 통해 확장시킬 것이다. 우선 외관상의 지능, 즉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외관상으로만 배움을 포함하는 작용을 처리해 보자. 우리는 동물 세계에서 첫 번째 예를 유도할 수 있다.

장수말벌의 외관상 지능

인간을 제외한 생물 가운데 표면상으로 지능이 가장 좋은 예는 곤충에서 볼 수 있다. 개미, 장수말벌, 벌들이 그들의 사회를 구성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음식의 원천지를 알리고, 적에 대항하여 일제히 행동하는 능력은 매우 인상적이다. 여러 세기에 걸쳐 곤충들은 배우고 논리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졌다. 그러나 동물심리학자의 끊임없는 실험은 이러한 믿음이 환상에 불과하다고 증명되었다. 사회적인 곤충은 배울 수 있는 능력이 매우 한정되어 있으며, 그들의 복잡한 행동은 거의 본능, 즉 헤아릴 수 없는 수 백만 세대를 거쳐 누적된 적응의 유전질에 의해 성충은 어떠한 복잡한 방법으로도 새롭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 적응할 수 없다.

이러한 적응에의 무능성에 대한 확실한 설명은 암컷 성충인 스펙스 장수말벌 (Sphex wasp) 의 실험에서 볼 수 있다. 말벌은 알을 낳으려고 할 때마다 고통을 잊기 위해 귀뚜라미를 쏘아 마비시키는 습관이 있는데 그렇다고 그것을 죽이지는 않는다. 말벌은 귀뚜라미를 굴 속에 넣고 그 옆에 알을 낳고 떠난다. 알이 부화할 때 유충은 아직도 살아 있는 귀뚜라미를 먹는다. 피상적으로 본다면 매우 지능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적응에 대한 실험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단순히 외관상의 지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말벌은 실험에 나타난대로 다른 방법으로는 작용할 수 없다 말벌은 머릿속에 고정된 프로그램에 따라 영원 불멸하고 변하지 않는 방식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엄격한 실험은 말벌의 행동에서부터 부수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진다. 귀뚜라미를 굴 속으로 끌고 간다. 만약 방해를 받는다면 중지하고 다시 돌아가서 중지된 곳에서부터 새로 시작한다. 실험자가 말벌을 관찰하기 위해 내부에 들어가 있는 동안 귀뚜라미를 굴 입구에서 몇 인치 떨어진 곳으로 이동시켰다고 하자. 굴에서 나오자마자 말벌은 귀뚜라미를 새로운 장소에서 안으로 데리고 가지 않는다. 말벌은 단지 귀뚜라미를 입구로 데리고 와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 조사를 한다. 말벌은 이미 자기가 한 것을 망각하고 있다. 입구에서 귀뚜라미를 발견한 경우에만 습관적으로 나아간다.

적응력에 관한 약간의 증거를 찾으려고 했던 심리학자들은 40 차례나 입구에서 귀뚜라미를 떨어뜨려 놓았지만 말벌은 이 모든 헛수고를 멈추고 (40 차례의 반복된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와는 반대로 쥐는 짧은 시간에 이러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쥐는 이러한 상황에서 배울 수 있다. 원송이, 개, 말, 돌고래 등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가장 유능한 학습자와 적응자들 속에 끼어 있다. 그들의 뇌에 있는 프로그램은 영원히 확고 부동한 것이 아니라 적응성을 갖고 있어 적응력 시험에 쉽게 통과할 수 있다.

기계류 중에서도 컴퓨터 시스템이 러시아어를 자동적으로 영어를 번역하는 외관상의 지능을 가진 흥미있고 놀라운 경우를 발견한다. 이 시스템은 프로그램된 방법을 알기 전 처음 검사했을 경우 매우 지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그것을 통과하는 정보의 (만약 내용이 아니라면) 형식에 뚜렷한 공헌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참으로 컴퓨터 기술의 복잡한 예이며 최상의 바람직한 기계류는 결국 바벨탑을 무너뜨릴 것이다. 그것은 잠재적으로 인간의 지능에 가장 중요한 보조자인 것이다.

그렇지만 기계의 지능은 외관상으로 대체로 다양하다. 다음 장에서 설명되겠지만 기계의 내부 작용을 관찰해 보면 우리는 그것이 어떤 방법으로 정보를 조직하기는 하지만 적응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 게 된다. 그것은 입력된 어구를 인지하고 그것을 저장되어 번역된 어구와 비교하는 프로그램에 따른다. 그것은 스펙스 말벌보다는 덜 지적이고 자동적인 사전 읽기 정도의 "표 읽는" 기계이다.

번역하는 컴퓨터를 시험하기 위해 우리는 언어적으로 의미있는 방법으로 러시아어로 입력된 문장의 순서를 바꾸고 그 언어적 실마리가 발견되어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영어 번역을 검사한다. 그 과정은 변화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즉 번역과정은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도록 프로그램되지 않았다.

훌륭한 의미로 구별할 수 있도록 의뢰받은 인간 번역자는 새 단어와 문장을 다시 분류하고 적절한 말을 소개한다. 번역하는 기계는 그 번역 재질이 보여주는 대로 매우 제한된 방법에 의해서만 이 작업을 할 수 있다. 인간적 소질을 가진 기계 번역이 이루어지려면 우선 적응할 수 있는 번역 프로그램이 고안되어야만 한다.

적응 가능한 지능시험

실험자가 마비된 귀뚜라미를 움직였을 때 스펙스 말벌에게 소개된 도전은 우리들에게 기계의 적응력 여부를 알아보는 "심리적인 시험방법" 에 실마리가 된다. 그 시험은 컴퓨터의 입력된 자료 속에서 예기치 않은 어떤 변화를 적응시켜야 한다. 그때의 기계의 반응을 관찰하며 자료 방식을 "성공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을 기록한다. 이때 "성공" 은 어떤 기준에 의해 측정된다. 그 기준은 무엇인가? 이러한 기계는 인간의 지적 작업을 모조하여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똑같은 자료 방식을 예고 없이 했을 경우 인간의 반응과 비교하여 얼마나 더 우수한 표준이 될 것인가?

이 기준은 스스로의 능력을 행사하는 인간과 기계를 직접적인 경쟁에 놓은 것을 의미한다. 만약 기계가 아주 우연이라도 인간의 능력에 맞설 수 있다면, 그 지능은 적응성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 증거가 잘못 유도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컴퓨터 프로그램에 관한 정밀한 검토에 의해서만 자기 조직성과 적응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본래의 컴퓨터 프로그램의 시험이 또 다른 방법으로 증명될 때까지는 그럴 듯하게 보일 것이다. 사무엘 박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인간 적수에 대항하여 프로그램이 경기를 하는 능력은 그것에 대한 연구에 의욕을 돋구어 주며 우연히 기계가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증거를 제공해 준다."

이러한 인간 대 기계의 경쟁은 현재의 기술상태로는 특별한 게임에 한정되거나 특정한 문제 (단순 기하, 상징논리, 또는 상징적 통합 - 그러나 동시에 하나가 아닌) 에 한정되어 있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원리를 분류하게 될 경쟁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사실상 우리는 인간과 경쟁하는 기계가 어떠한 분야, 어떠한 질문에라도 답변할 수 있도록 요구되는 시험을 상상할 수 있다.

기계 계산 이론의 최초의 공헌자 중의 한 사람인 고 투링 (A. M. Turing) 은 이러한 시험을 위한 규칙을 세웠다. 투링의 시험에서는 고도의 지능을 가진 사람 (시험자) 이 질문을 하고 텔리타이프의 회로에 답변을 받는다. 회로의 다른 끝에서 인간의 지능을 갖고 질문에 답변하는 사람은 그와 동시에 텔리타이프를 작동한다. 그러나, 남는 시간 동안 기계는 질문에 답한다. 시험자는 그 답변이 사람이나 기계 중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어느 쪽에서 나왔는지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어느 쪽에서 나왔는지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그의 임무는 각 답변에 대한 근거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으로부터 나왔을까, 아니면 기계에서 나왔을까?

시험자는 자유롭게 질문을 선택한다. 그는 어떠한 기계에 의해서도 답변할 수 없다고 확실시되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약간의 준비로 그는 거의 모든 문제에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부정확한 확인 점수는 기계의 "지능" 척도로서 간주된다. 시험자가 실수를 저지를수록 기계의 지능은 줄어든다. 그때까지는 어떠한 사람도 이런 무리한 게임을 하지 않는다. 철학에서 사용되는 방법과 거의 마찬가지로 흔히 이것의 목적은 척도 방법을 정의하고 그것의 한계를 정하는 것이다.

시험자가 만약 "당신은 나에게 각의 이등분선은 그 각을 이루는 두 변에서 같은 거리에 있다는 정리를 증명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고 하자. 이에 답변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두 개의 직각 삼각형을 형성하면서 이등분선에 인접한 두 변에 수직선을 세운다. 직각 삼각형은 한 변을 공통으로 갖고 꼭지점에서 두 각이 똑같기 때문에 합동이다. 합동삼각형의 대응되는 요소는 같기 때문에 두 수직선은 같다. 증명 끝."

만약 15 분 동안에도 답변하지 못한다고 하자. 이 시간은 간단한 증명에 비해서 다소 긴 시간이다. 그래서 시험자는 컴퓨터나 기하학에는 매우 서투른 사람이라고 추측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답변에 20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는 합리적으로 매우 빠르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그때, 그는 그의 추측이 "인간의 대답" 이어야 한다고 거의 확신할 것이다. 그러나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정리에 대한 증명은 겔런터 (Gelernter) 기하학 정리 증명 프로그램에 의해서 IBM 704 컴퓨터는 0.32 분만에 행해지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노력한 시험자는 컴퓨터가 이것을 작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문제에서 주저할 것이다. 그러나 부주의한 시험자, 특히 문제 해결 컴퓨터 프로그램의 최근 발전상에 어두운 사람은 어리석은 것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투링의 시험은 일반적인 조사의 영역에서 제출된 특별한 문제에 답변하는 능력을 강조함으로써 인공 지능의 정의를 더욱 세밀하게 할 수 있다. 가령 컴퓨터가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는 문제의 정보를 조직하고 그것의 프로그램이 행동할 수 있도록 적응시킴으로써 이 게임에서 답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지적인 행동에 대한 점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창조적인 지능

비교적 일반적인 조사 영역 내에서 제기된 특별한 질문에 답변하는 능력 내에서 인공 지능에의 적응력을 인정했기 때문에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이미 알려진 답변이 세워진 기본틀을 벗어나 지적하고 있는 중요한 질문에 대한 능력은 어떠한가? 여기서 적응할 수 있는 것을 배웠다는 전제하에 비판적 지적인 발견의 세계로 들어간다.

배우기 위해서 우리는 배웠던 것을 이해할 ("수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는 것을 구체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그것이 그렇습니까?" "왜?" 그리고 가장 권위적 질문인 "~라면 어떨까요?"

가치있는 질문을 하는 사람은 단순한 배움의 상태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일단 졸업을 한 것이며 단계를 밟아 그 자신의 모험을 시작한 것이다. 모든 위대한 교사, 예술가, 발견자, 발명가, 연구자들은 그들의 예술과 과학의 한계를 깨닫고 만약 답변이 주어진다면 그들의 한계를 극복할 질문을 한다.

인간의 호기심이 없다면 창조적인 일이 존재할 수 없으며 적당한 호기심의 주관과 객관의 토론은 컴퓨터 과학 용어로는 불가능하다. 한 가지 이유, 즉 발명과 발견, 예술적 수행 욕구는 강력한 의지를 밑바탕으로 한다. 이미 지적했듯이 어떠한 기계도 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다. 의식 없이는 호기심의 감정을 소유할 수 없다. 이것은 기계가 비창조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새롭고 중요한 방식, 가령 과거에는 몰랐던 미지의 방식을 발견하는 탐험심을 - 지적인 창조 영역 내에서 - 갖고 있다면, 참으로 기계는 가치있는 질문의 문답에 인간과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기계가 이러한 창조 능력을 갖고 있더라도 투링의 시험은 그것을 밝힐 수 없을 것이다. 기계에 관해서 알 게 되면 과거에 밝혀지지 않았던 질문에 답변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창조적인 능력에 대한 시험을 하려면 기계에 묻는 작업을 할당해야 한다. 투링의 시험의 짝형을 고안하여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마도 대안과 모형을 제시해 줄 것이다.

만약 텔리타이프 회로의 한 쪽 끝에 일반적으로 창조적 생각에 대해 훌륭한 판단을 내리는 시험자가 있으며 다른 한 쪽 끝에는 창조적인 지능 (과학적 발견이나 예술작품에 뚜렷이 나타나는) 을 소유한 사람과 창조적인 지능에 대한 시험을 하고 싶어하는 기계가 있다고 하자.

시험자는 다음과 같은 지시문을 타이프친다. "나에게 질문을 제출하고 답을 찾는 방법을 제출하라." 그는 질문과 해결 책에 관한 방법이 인간과 기계의 어느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시험자는 몇 개의 정보를 갖는다. 그는 다른 한 쪽에 있는 사람이 경쟁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시험자에게 깊은 학식과 지적 호기심으로 인상을 심어줄 문제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것을 알고 있다. 만약 시험자는 그 문제가 시시하게 나왔다면 그것이 기계에서 나온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 있는 창조적인 사람이 기계의 창조력을 과소 평가하고 게을러서 쉬운 문제로 점수를 획득하려고 했다는 위험을 치른다. 그래서 투링의 시험에서 자칫 오류를 저지르기 쉽다. 만약 문제와 도출된 해결 방도에 관해 여러 가지 판단을 하는 도중 시험자가 하나의 오류라도 저지른다면 그 실수는 객관적으로 측정된 기계의 창조적 지능의 점수로 평가될 것이다.

만약 투링의 시험에 무리가 생긴다면 이에 수반되는 시험에 더욱 무리가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창조적인 지능의 측정에 따르는 어려움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 예에서 그 방법이 나타나 있는 한 예를 들어보자. 만약 시험자에게 문제와 해결 방법에 관해 이러한 답이 주어졌다고 하자. "질문 ; x" + y" = z", (x, y, z 는 정수) 라는 방정식이 주어졌을 때 n 이 2 보다 더 큰 정수일 경우 이 방정식에 만족한 x, y, z 값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이것은 페르마 (Pierre de Fermat, 1601 - 65 ; 프랑스의 수학자) 의 마지막 정리이며, 1637 년에 최초로 제안된 이래 숫자 정리에 의한 줄기찬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증명되지 못한 (주석 : 이 정리를 증명하려는 노력은 페르마가 이 책의 여백에 쓴 사실 "이 여백이 너무 작아 내가 발견한 뚜렷한 증명을 쓸 수 없다" 로 줄어들지 않았다. 부분적인 증명 (예를 들어 n 의 값) 은 충분하지만 완전한 증명은 없다는 사실이 Encyclopaædia Britanica 에 "수학에서 아주 놀라운 사실이 있다" 라고 씌여 있다.) 수학에서 가장 유명한 정리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숫자 정리에서 우수하고 "창조적인" 질문으로서의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교육받은 사람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계산기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문제이다.

이제 두 가지의 가능한 해결 방도를 생각해 보자. 이 답이 다음과 같다고 하자. "나는 n 값에 3, 4, 5…… 를 대입하고 x, y, z 에는 0 이 아닌 모든 정수를 대입함으로써 모든 가능한 경우를 시험하기 위한 컴퓨터를 사용할 것이다." 이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왜냐하면 컴퓨터가 아무리 큰 정수를 사용한다고 해도 간단한 방법으로는 다음에 있는 더 큰 숫자가 방정식의 양변을 같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지적인 사람은 이것을 깨닫고 이러한 접근 방법을 피한다. 그러므로 시험자는 이러한 제안이 "기계에서 나온" 것으로 의심없이 추측할 것이다.

그렇지만 답변이 숫자 이론가들이 사용한 기본적 접근 방식인 소수의 성질을 분석함으로써 부분적인 증명을 하였다고 가정하자. 시험자는 어느 기계가 이와같은 훌륭한 질문을 하고 지적인 접근 방식을 가질 수 있도록 프로그램될 수 있는지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 상태로서는 오로지 인간만이 이러한 답을 할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만약 기계 (주석 : 물론 이 연습에서 창조적인, 즉 기계적인 암기로 반복하는 의문과 해결책을 저장하고 있는 기계를 제외시켜야 한다.) 가 이렇게 답변한다면 그의 잘못된 추측은 그것의 창조적인 지능의 정도가 될 것이다.

인공 지능의 정의

이제 우리는 앞에서의 시험과 관찰을 참고로 인공 지능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인공 지능 : (a) 정보를 의미있는 방식으로 조직하는 기계의 능력 ; 게임을 하거나 문제를 풀거나 질문에 답변할 때 다른 기계의 작용을 조절하는 방식을 인지하고 저장하고 기억하고 조작하는 능력 ; (b) 환경에 적응하고 특히 그것의 구조 내에서는 명백하게 예측하지 못하는 자극의 방식에 대응하는 기계의 능력 ; (c) 인간 지능과 비교되거나 경쟁하여 측정된 기계의 관찰된 수행."

다음 장에서는 이와 같이 어렵게 얻어진 정의가 여러 층으로 포괄하고 있는 여러 기계들이 기술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재난을 만나게 된 것이다. 거의 모든 컴퓨터의 응용이 정의 (a) 와 (b) 에 의해서는 "지능적" 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에커트와 머클리가 좋아하는 꿈을 넘어서서 유용하고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게 되었다. 컴퓨터는 거의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을 절약해 주고, 귀찮은 일을 줄여주지만 분명하게 예견할 수 없는 질문에 답변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지능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들의 대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입증되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