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세대 : 에필로그

 

제 5 세대 : Edward Feigenbaum, Pamela McCorduck 공저, 윤진수 역, 홍익, 1983  (원서 : The Fifth Generation: Artificial Intelligence and Japan's Computer Challenge to the World, Pearson Addison Wesley, 1983), Page 279~289

 

1. 쉽지 않은 미래예측

     (1) 안개 속에 미래사회

     (2) 지식의 기술을 진화시킴

     (3) 불가사의한 일들

2. 빛과, 그리고 그림자

     (1) 예상을 초월하는 미래

     (2) 「생각하는 기계」의 시대로

     (3) 빛이 머무는 곳으로

 

1. 쉽지 않은 미래예측

(1) 안개 속에 미래사회

「어떤 일이든 예상하기란 어렵다. 미래를 예상한다는 것은 더더구나 어려운 노릇이다.」덴마크의 물리학자 뉠스 보아의 말이다. 사실 누구나 다 그렇다고 수긍하게 될 것이다.

서력 기원전 4 천년 경, 사해의 북쪽에 자리한 팔레스티나의 고도 제리코에서 농업혁명이 한창 일고 있을 때, 혁명의 결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 사람들이 예언자에게 물어 보았다고 하자. 예언자는 「인간은 앞으로 자기들의 식량을 구하기 위해 채집이나 수렵과 같은 단순한 방법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했음직하다. 또 놀라운 예견력을 가지고 「식량은 남아돌고 노동력은 분업화되리라.」고 예언했을지도 모른다. 농업혁명은 이에 그치지 않고 도시의 발전과 국제무역을 일으켰고 각종 공산품의 원료로서 농산물을 사용하게끔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예언자는 여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으리라.

예언자는 또 인간의 정신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농경에 얽힌 여러 가지 전설이 생겨나리라고 예측했으리라. 그러나 그가 아무리 미래세계를 꿰뚫어보는 초능력의 소유자였다고 해도 미국 중서부에서 과수원을 처음 한 것으로 유명한 죠니 애플시드와 같은 이름까지 들춰내는 예언자는 설마하니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른바 정보혁명을 다루어 보려는 것이다. 지능기계의 대량생산은 곧 시작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혁명> 이라는 말이 그렇게 적절하다고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지적 역사를 말하기 위해서는 <진화> 라는 말을 사용함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현재의 이론에 따르면 생물의 진화는 서서히 변화하여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빠른 속도로 변화를 일으키다가 다시 변화가 거의 없는 시기를 오랫동안 계속 하기도 했다. 인간의 지적 발전도 이와같은 이치로 진화되어온 것이다.

(2) 지식의 기술을 진화시킴

인간 상호간의 주고받는 말의 발명은 지식의 교환에 있어 획기적인 것이 되었다. 인류학자 중에는 이를 가족의 발생과 결부시켜 논하는 이도 있다.

그러다 인류는 그것을 그리기에 이른다. 그들은 자기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렸다. 이같은 그림에 의한 통신은 놀라운 발명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정보는 인간의 짧은 생명을 초월하고 희미한 기억력을 초월하여 보존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상형문자는 어려웠기 때문에 그것을 그리고 쓰고 하는 것은 존경받는 전문가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에 있어서, 가령 영어는 잘 구사하면서도 일본어나 일본을 잘모르는 사람이 동경 한복판에 서 있다 하자. 여기서 길을 찾고자 함은 마치 타임머쉰에 올라탄 기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지도를 가지고 있지만 지도에는 거리 이름이 로마자로 되어 있는데 반해 거리 이름의 표지는 일본어로 쓰여져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로마자를 일본어로 옮길 능력이 없을진대, 지도에 그려진 유명한 빌딩 그림에 의존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을 것이다. 자기가 어디 서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눈앞에 보이는 빌딩과 그림을 견주어 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지도의 축척에서도 가끔 틀린 데가 있지만 그림이란 어느 정도의 틀에 맞춘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추리도 필요하고 희망적 관측도 따르게 마련이다. 그 결과로 차질이 생기고 오해도 생길터이지만 여기서는 그러한 것은 논외하기로 한다.

어쨌든 기원전 1 천년 무렵, 페니시아인 (Pheonician) 은 상형문자의 난해성을 해소한 이른바 알파벳이라 불려지는 문자를 발명하였다. 상형문자를 추상화한 것으로는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이었다. 페니시아인이 이같은 문자를 만들 게 된 것은 무역을 위한 필요에서였다. 하지만 상형문자만으로는 상거래에 있어 무척이나 많은 시간을 빼앗겼다. 그들은 그 문자로 사회혁명을 조장시키고자 하는 의지는 없었다. 다만 그들은 당면한 이익을 위해 문자를 발명했던 것뿐이었다.

일찍이 지중해 연안에서 살아온 페니시아인은 하나의 문자를 하나의 음으로 나타내는 놀라운 아이디어를 누가 처음 생산해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를 못한다. 그러나 이 문자는 강력한 도구가 되고 지식의 기록과 보급을 극적으로 가속시켰으며 끝내는 우리들의 사고력을 변혁시켰다.

그 뒤 지식의 기술은 휴지기를 맞이하고 있다. 작은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희랍인이나 로마인들이 페니시아인의 알파벳 위에 얼마간의 문자를 보태었다. 또 종이나 피지 등이 돌에 문자를 조각한 것만큼이나 오래도록 보존되며 운반하기에도 편리함을 알 게 되면서부터 그 인기는 대단하였다. 그리하여 두루마리에서 책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 뒤 놀라운 일이 등장된 것은 아니지만 작은 변화가 쌓이고 쌓이고 하는 가운데서 서서히, 그러면서도 착실하게 인류사회는 변화되어 갔다.

여기서 구텐베르그가 등장한다. 활자는 원래 13 세기에 한국인에 의해 발명되어 중국인이 개발하였지만 이 아이디어를 수출하는 데까지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실크 로드 (Silk Road) 를 여행한 상인들이 그 활자나 인쇄술의 효능을 재빨리 인정은 했지만 그것을 중동으로해서 서쪽으로 이르게 하지를 못하였다. 이것은 실은 종교상의 이유로 짓밟은 것이기도 하다.

구텐베르그의 발명은 커다란 성공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까지 유럽에는 손으로 쓴 책자는 10 만권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 발명으로부터 50 년이 지나면서부터 무려 1 천만 권에 이르는 경이적인 증가를 낳았다. 그것이 어떠한 상황이든간에 놀라운 급증이고 원시적인 수송수단에 의지하던 당시로 보아 기적이 아닐 수 없는 대사건이었다.

오하네스 구텐베르그가 자신이 일으킨 혁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로서는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내과진단의 실제≫ 라든가,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영국의 작가 죠이스의 소설 ≪율리시즈≫ 라든가, 손쉽게 구해지는 잡지 등 인쇄물 같은 것을 구텐베르그 자신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히 그가 빠뜨린 것은 앞에서 거듭 말했지만 <규모의 효과> 이다. 또 한번 반복하지만 유럽에는 10 만 권 미만의 책밖에 없었는데 그로부터 50 년이 지나서는 1 천만 권으로 늘어났다. 말할 나위도 없이 구텐베르그의 신기술에 힘입은 것이다. 책이 불어남에 따라 글자를 익히는 사람이 늘어나고 사람들의 지식수준 또한 따라서 급성장되었다. 이것은 사회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3) 불가사의한 일들

컴퓨터의 발전은 정보처리의 분야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이같은 커다란 변화에 대한 예언의 대부분은 기계장치와 같은 것에 치우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언되고 있는 사실은 놀랍다. 가령, 예언은 전자우편으로부터 시작되어 휴대용 전문가 시스템으로까지 미치었다. 그 휴대용 전문가 시스템은 도회지의 의사와 산간벽지의 어떤 마을이 연결되어 있다. 이리하여 벽촌의 주민은 그 전문가 시스템에 의하여 세계 최고의 의료혜택을 입게 되는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대해서도 예언되고 있다. 지금은 우리들은 사람 손으로 배달되거나 신문팔이 아이들로부터 사서 신문을 읽고 있다. 그것은 제 1 면에서 끝까지 한 묶음이 되어 배달되어 읽게 된다. 그러나 이제 신문은 가정의 단말기에 의해 받아보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읽고 싶은 것만을 골라서 읽을 수가 있게 될 것이다. 여러 장의 신문과 일일이 씨름을 할 필요는 없다. 실로 중대한 변화임에 틀림없다.

책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제본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닌 제본되지 않은 책의 시대로 접어들 게 된다. 그것은 낱장으로 되어 있어서 속 내용은 필요에 응하여 언제든지 새로운 것으로 바꿀 수가 있으며 개정되거나 설명이 붙어서 나오게 된다. 단편적인 지식이 쉽게 저장되고 또 필요에 의해 쉽게 호출할 수가 있다. 그것은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나 이용되는 장점이 따른다. 희망에 따라 단말기는 호출된 지식을 종이 위에 인쇄하여 우리들 앞에 내놓게도 된다.

이같은 일들이 실현되기까지는 시간이 좀더 소요되겠지만 실로 놀라운 변혁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것은 에너지와 종이와 시간의 대폭적인 절약을 약속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지적 활동을 크게 도울 것이다. 손끝으로 보턴만 누르면 몇 톤 무게의 정보라도 쉽게 골라낼 수 있게 되며 그것은 잘 설계된 지식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런 것은 일시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많은 산업이나 직업에 일대 혼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큰 위험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사려깊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허둥지둥 하다가는 역사상 일찍이 겪지 못한 변화의 물결에 참담한 희생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아무튼 우리는 불가사의한 일들을 목전에 둔 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것들은 인류가 일찍이 겪어 보지 못한 일들임에는 틀림없지만 거기에 대한 예측은 거의 무의미하다 하겠다. 왜냐하면 예측이란 원래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에서의 추리이기 때문이다. 생가하는 기계의 등장이라고 하는 불가사의한 일은 우리의 예상을 훨씬 초월하는 변화를 우리에게 안겨주리라.

미국의 유명한 경제지 ≪포츈 (Fortune)≫ 은 최근의 연재기사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인간의 사고력을 위협하고 나아가 그것을 초월하는 능력을 갖는 <생각하는 기계> 의 등장은 인간의 역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이 갖는 의미는 인간이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것은 기술과학ㆍ산업ㆍ문명 또는 인류의 지적, 사회적 모든 면에 미치는 영향에서 의심할 나위도 없이 중대한 것이 되리라.」

지금 이 책을 쓰는 우리들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인간이다. 따라서 지식정보처리 시스템을 사용하게 된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 예상하기란 어렵다. 지극히 일반적인 애기만 할 수 있을 뿐이다.

2. 빛과, 그리고 그림자

(1) 예상을 초월하는 미래

인간문명의 큰 변화는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만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농업혁명 뒤에 다시 채집과 수렵의 시대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이는 없었지만 그러나 그 혁명에는 뜻하지 않는 부작용이 수없이 뒤따랐다. 최근의 것으로는, 의약품의 대대적인 보급으로 급기야 세계의 인구를 컨트롤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사람들이 의약품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윤리적, 감정적으로 용납되지 않으므로 다른 방법으로 세계의 인구과잉을 방지하는 노력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 이미 <규모의 효과> 라는 말을 거듭하였지만 빗나간 지식의 홍수는 농업혁명이나 의약혁명과 마찬가지로 많은 부작용을 수반하였다. 그리하여 「옛 시대의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잖이 있게끔 되었다.

지식이 자동으로 창조된다는 말은 우리들의 상상력을 초월한 생각이다. 인간이 기계에 지식을 공여하면, 기계는 그것을 잘 구사하여 도리어 우리들보다도 더 조직적으로 그 지식을 이용하고 보다 깊이 있게 추리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계는 인간이 받아야 하는 수많은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기계가 그같은 일을 하게 될 때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우리로서는 예상하기 어렵다.

인간은 무슨 일이든 곧잘 잊어 버린다. 가령 중학생시절에 친구에게 얻어맞은 일 따위를 기억하는 어른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포켓속의 컴퓨터는 그러한 일들을 차곡차곡 쌓아두게 된다.

인간들보다도 더 빠르고 깊이 있게 생각해내는 기계에 대해 우리가 흔히 쓰는 상식적인 준칙을 제공했다고 하자. 그럴 때 그 기계는 우리들과 같은 추리대로 밟게 될 것인가는 알 수가 없다. 만약 기계가 다른 어떤 길을 밟는다고 할 때 거기에 무슨 작용이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것도 역시 알 수가 없다. 또한 기계는 새로운 지식을 발견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그 초보적인 실례를 가지고 있지만, 본격적인 지식의 발견을 기계가 해낼지 어떨지는 알지 못한다.

일본인이 그러한 지식의 윤곽을 아는 데 있어서는 선구적이라 예상되지만, 그러나 만약 그것이 국내에 국한된 것일 때 정부나 무법자들에 의해 악용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게 될 것인지 아닌지도 속단하기 어렵다. 지금은 과도기이니만치 누구도 컴퓨터에 의존할지언정 그런데 대한 책임은 회피할 것이다. 이런 일이야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까?

법체계에 의해 지적 재산권이나 프라이버시나 그밖에 예상되지 않는 문제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지금 말한 것과 같은 새로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법체계는 이루어질 것인가? 우리는 놀라운 힘을 손에 넣고자 하고 있지만 간혹 실패되었을 때 자신을 수호할 시스템까지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자기들이 제공하는 지식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을 기계가 인간에게 심어줄 수 있을까. 문자를 읽는 사람으로서도 그것은 이미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생각하는 기계에 대해 질문하고 기계가 스스로 한 일에 대해 설명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할 때 그것이 지금까지 말한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까, 아니면 문제를 악화시킬 것인가도 우리는 말할 수 없다.

지식의 가치를 인정하는 이에게 있어 지식에 심취돼 있는 세계란 어떤 것일까. 우리들은 이 역시 설명하기 어렵다. 지식정보처리 시스템으로 얻어지는 풍부한 여가의 즐거움이 지금 지식이 없어 지식인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을 진정시킬 것이라는 예상도 있고 도리어 자극을 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지식이 마약이라는 생각은 우리에게 있어 그렇게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지식정보처리 시스템은 전화나 TV 와 같이 누구나 쉽게 작동하도록 만들어질 것이다. 미국에서 TV 가 처음 6 백 대에 지나지 않았지만 불과 5 년 동안에 1,550 만대라는 놀라운 숫자로 늘어났다. 이런 전례를 생각하면서 용기를 갖게 된다. 지식정보처리 시스템 역시 그같은 성공이 기대되는 것이다.

(2) 「생각하는 기계」의 시대로

앞서 나온 이야기이지만, 파이겐바움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자 하는데 마침 구식 비행기였다. 그것은 겹날개의 비행기로서 토머스 왈트 항공회사에서 처음 사용한 것 중의 하나였다. 그것을 본 파이겐바움은, 「지식공학과 전문가 시스템이란 지금 이 낡은 비행기와 같은 자리에 있다.」라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잠재적 힘 속에 내재한 신기술인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 생활 속에서 파고들려고 애쓰는 것이기도 하다.

비행기는 아직 완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때로는 늦어지고 추락사고마저 일으킨다. 그러나 이미 그것이 우리 모두의 것이 되어 있으니 어찌하랴. 우리는 비행기가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와 있다.

기호적 추론의 기계는 지금 파이겐바움 앞에 놓여진 토마스 왈트사의 비행기와 다를 바 없다. 생각하는 기계에도 놀라운 미래가 찾아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대로 현재에 머물러 있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 우리는 생활을 크게 변화시킬 새로운 기술에 대해 논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다른 어떠한 것도 찾아내기 어렵다.

지식기술의 우위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 회색의 그림자를 흑백으로 분해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것이 개인적인 능력에 있어서나 국가적으로나 또는 전쟁에 처해서도 분명히 이익이 될 것이다.

일본은 이러한 이치를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신기술로써 구체화하고자 한다. 이것은 적어도 1990 년대 중엽에는 실현될 것이지만 이럴 때 일본은 확실히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그때가면 다른 나라들도 일본의 전략이 옳았고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 선견지명에 대항하여 많은 나라들이 야심적인 국가계획의 중요한 하나로 삼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그러한 계획에 있어 다른 나라에 대한 리더의 입장을 취해야 할 터이지만 지금껏 이렇다 하게 결정된 바 없는 듯 다만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고만 있다.

우리는 이를 가리켜 <아메리카의 위기> 라고 부르기를 유보하여왔다. 우리로 하여금 우울한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기술이 미국의 손에서 빠진 경우를 상상해 보자. 그것은 미국의 산업과 생활수준, 그리고 국가안보에 있어 격심한 영향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일본의 도전이 하나의 기회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이 다시 활력을 돌이켜 모든 공업선진국과 더불어 <생각하는 기계의 시대> 를 열어야 할 당위 앞에 서기를 바랄 뿐이다. 일찍이 어느 역사학자는 미국을 가리켜 <이성의 왕국> 이라 했는데, 이 왕국을 생각하는 기계의 시대로 전진케 하는 일은 모험일까?

(3) 빛이 머무는 곳으로

끝으로 부연하는 말이 되겠지만, 미국인에 있어 선택의 여지는 없다. 하느냐 않는냐가 아니라 언제 참가하느냐를 정하는 일뿐이다. <언제> 가 결정되면 다음에는 <어떻게> 라는 물음이 나올 것이다. 언제라고 하는 처음 물음에 대해서는 「지금 곧바로!」라고 우리는 말하고 싶다. <어떻게> 에 대한 문제는 가령 어떠한 방법이 취해지건 적어도 미국의 혁신적인 세대들이 가진 것, 즉 낙천주의 에너지, 권위, 실용주의, 솔직함, 대담함, 성공에의 의지 등과 같은 것으로 구체화될 것이리라.

이 책의 머리 부문에서 우리는 「지식은 힘이다.」라고 주장했다. 가령 정밀한 미사일은 아무리 둔중한 전함일지라도 능히 격침시킬 수 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지능적인 기능을 갖춘 과학기구는 돈만을 쳐바른 어떤 기구보다도 성능이 좋을 것이다. 이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 인공지능의 예로서 우리가 예거하고 또 예상되는 것은 거의 예외없이 물질적인 것이다. 그것은 설명하기 쉽다는 것이 제 1 의 이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 2 의 이유는 서구인의 물질선호적 경향 탓이다.

그러나 지식이 지배하는 사회는 보다 높은 차원의 것이다. 곧 비물직적인 측면이다. 동양인들은 그들의 오랜 역사를 통해 물질적인 것은 꼭 있어야 할 곳에 있게 했다. 물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비물질적인 것보다 낮은 장소에 위치하게 했던 것이다. 오늘날 비록 선구사회가 현대문명에서 앞서 있다 하지만 지식사회에 수반하는 정신적 변화를 체득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동양인이 그들보다 우위에 있다해서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미래학자 한 사람은 이렇게 술회한 바 있다.

「지식이 풍부한 미래사회는 우리들이 본래부터 고집하는 바에서 벗어나 비물질적인 것이 중요시되는 방향으로 인도될 것이다. 개개의 인간은 충분한 자유를 누리면서, 자기완성을 목표로 하는 세계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종교의 르네상스는 시작될 것이다. 그 종교 르네상스의 특징은 초자연적인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의 집단적 정신이나 지혜나 인간성에 대한 외경과 겸손으로써 성립될 것이다. 우리들은 이 지구라고 하는 흑성 위에 평온하게 공생하며 새로운 지구적 윤리에 의해 규제될 것이리라.」

그것은 내세를 생각하는 종교와는 분명히 다르다. 그것은 또한 과거의 종교적 정열과 다른 것이다. 반대로 말해서 그것은 이 현세와 예리하게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모든 것에 대해 열심히, 직접적으로, 계속해서 발언하는 뜻이 된다. 그러나 그 발언이 인간사회에서 흔히 보는 「내가 먼저」라고 하는 태도가 아니라 공통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상부상조의 정신에 기저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상주의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이상주의라 함은 인간이 미치지 못하는 어찌할 바없는 비현실적인 것을 곧잘 의미한다. 분명히 우리는 일본의 미래학자가 예언간 바를 씨앗으로 삼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일본이라고 하는 번영되고 균질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점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일본에서는 그러한 생활 방법이 씨앗으로 심어졌고, 눈도 터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환경에서의 예언임을 주목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이상주의란 또 인간들로 하여금 오랜 역사 속에서 몇 번이고 모습을 달리하며 거듭 되풀이한 것이었다. 즉, 그것은 인간의 이익이 되는 것으로서 우리들이 마음 속으로 바라보는 세계이기도 하다. 일본의 미래학자는 또 이렇게 부연하고 있다.

「우리가 예언하는 사회는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묘사한 꿈과 일치된다. 아담 스미스는 전지구적인 풍요한 사회를 그렸다. 그는 풍요가 인간들을 지배와 복종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율적인 행동을 하게 될 독립 정신을 사람들에게 부연한다고 생각하였다.」

기술의 진보에 의해 머지 않아 지구상의 모든 곳에서 그러한 사회가 실현될 것이라는 의미에 상통된다고 일본의 미래학자는 보고 있다.

생각하는 동물은 생각하는 기계를 생각해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필연> 이기도 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저기를 보지 말라.」고 하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마치 <피안의 저 언덕> 을 그리워하듯 지금 막 성지를 향해 대담하게 출발하였다. 도중에 위험도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전진을 하였다. 우리는 모든 문화의, 모든 시대의 현인들이 부르짓는 다음과 같은 말을 굳게 믿으며 떠나고 있다.

「그림자는 그지없이 어둡고 두렵기까지 하다. 그러나 어찌 빛이 머무는 것을 막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