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도 꿈을 꾼다 - 인공 지능의 세계

 

타고난 지능 만들어지는 지능 : Scientific American 편집, 이한음.표정훈 옮김, 궁리 출판사, 2001 (원서 : Exploring Intelligence, A Search in the Human, Animal, Machine and Extraterrestrial Domains, 1998), Page 215~231

Turing Test Considered Harmful, Proceedings of IJCAII-95, Montreal

Kenneth Ford . Patrick Hayes

 

튜링 검사

모방인가, 이해인가

과학을 기다리며

인공 지능 과학

뇌는 정말 생물학적 컴퓨터인가

 

 

많은 철학자들과 인문 사상가들은 인공 지능 탐구가 실패했다고 확신한다. 저명한 비평가들은 진정한 지적 기계는 만들어질 수 없다고 주장해왔으며, 심지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수학적 증명까지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인공 지능 분야는 여전히 번창하고 있다. '영리한' 장치는 사회의 정보 처리 조직의 일부이며, 뇌가 '생물학적 컴퓨터' 라는 생각도 대부분의 심리학과 신경 과학 분야에서 표준적인 관점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일부에서의 비판과 이 분야에서 이루어진 상당한 성취 사이의 불일치를 고찰하던 중에, 이것에 버금가는 원대한 목표를 추구했던 과거의 노력이 인간 오만의 상징으로 수세기 동안 공격받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인공 비행이었다. 인공 지능과 인공 비행의 비유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한가지 예를 들면, 그것은 인공 지능의 기존 목표, 즉 인간의 행동을 성공적으로 모방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늘을 난다는 것은 인간이 수천 년 동안 품어왔던 가장 원대한 꿈이었다. 항공학이 출현하기 전에는 대중과 학자 모두 새의 비행을 모방한다는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사람의 몸에 펄럭거리는 날개 같은 것을 달거나 한 사람이 착용할 수 있는 날틀이 그렇다. 새가 쉽게 난다는 것은 인간에게 좌절을 안겨줄 만큼 문명했으므로, 새의 비밀을 알아내려 애쓰는 것은 당연했다. 몇몇 관찰자들은 새의 깃털이 본래 '가벼움' 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간도 날 수 있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인간과 새가 근본적으로 유사하다고 주장한 반면,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런 비교는 모욕이며 비도덕적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양 진영은 모두 비행이 새의 모방을 의미한다고 가정하고 있었다. 비교적 정교하게 설계된 비행 장치에는 새의 특징들이 포함되곤 했으며, 심지어 영국 예술가인 토머스 워커가 1810 년에 설계한 나무 글라이더에는 부리까지 달려 있었다.

새의 모방이라는 이런 비행관은 그 후에도 계속 유지되었다. 1900 년 <영국 역학> 지에 실린 한 기사는 "진정한 비행 장치는 의도와 목적 면에서 인공 새가 되어야 할 것" 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19 세기 후반에는 날개로 뒤덮인 '비행복' 이 특허를 받았으며, 20 세기 초에는 날개를 펄럭거리는 방법들이 항공 개론서에 논의되곤 했다.

튜링 검사

지능은 비행보다 추상적이긴 하지만, 인공 지능이라는 장기적인 목표도 전통적으로 볼 때 생물의 모방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은 1950 년에 인공 지능의 가능성을 처음 언급하면서, 인공 지능 연구는 현 시점에서 이용 가능한 최고의 인간 지능 검사, 즉 경쟁적 면접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튜링은 인공 지능에 적합한 검사는 인간 판정자가 컴퓨터 및 제 3 자가 대화를 하면서 그들을 구별하려 시도하는 '모방 게임' 이라고 주장했다. 판정자는 아무 주제나 자유롭게 대화할 것이고, 성공적인 기계라면 그런 주제에 대해 인간만큼 설득력 있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게임에 참가한 기계가 언어와 대화 관습을 이해하고 일반적인 추론 능력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도 판정자가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면, 그 기계는 검사를 통과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인간다운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튜링 모방 게임이 정확한 규칙에 관해서는 일부 논란이 있다. 또한 그는 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튜링 검사' 는 인공 지능 분야 안팎에서 인공 지능의 최종 목표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지금도 대다수의 교과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비행에 관한 초기의 생각들처럼, 성공은 자연 모델의 모방으로 정의된다. 즉 비행은 새, 지능은 인간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튜링 검사는 많은 분석과 비판을 받아왔지만, 우리는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나쁠 때가 종종 있다고 생각한다. 튜링 검사는 이 분야의 목표에 관해 대중들에게 잘못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그것은 제대로 설계된 실험이 아니며 (판정자의 주관에 너무 많이 의존한다). 기술 혁신의 목표가 의심스럽고 (우리는 이미 많은 인간 지능을 갖고 있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문화에 얽매여 있다 (영국인 판정자에게는 통과할 수 있는 대화가 일본인이나 멕시코인 판정자에게는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튜링 자신이 쓴 것처럼, 너무 똑똑하면 그 검사를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암산 능력이 너무 빠른 경우가 그렇다. 언론 기사에 따르면, 1991 년에 열린 첫 뢰브너 경기에서 몇몇 판정자들은 한 여성이 내놓은 길고 유려한 교육적 문장을 근거로 삼아 그녀를 기계라고 판정했다. 이 경기는 보스턴의 컴퓨터 박물관에서 열리는 일종의 튜링 검사 경기이다 (지금은 이런 비인간적 능력도 우리 문화의 일부라고 여겨지고 있다).

사후 평가 결과, 이 검사의 핵심적인 결함은 그것이 종 중심적이라는 데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 검사는 인간의 사유가 다른 모든 것을 판정하는 데 쓰이는 사유의 궁극적인 형태라고 가정한다. 튜링 검사는 인간의 지능보다 더 뒤떨어지거나 더 나은 형태의 지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현재의 인공 지능 연구자들은 대부분 튜링 검사의 목적을 명백히 거부한다. 그 대신 그들은 대상이 사람이든, 개이든, 컴퓨터이든, 외계인이든 신경쓰지 않고, 지능 자체의 작동 양식을 탐구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인공 지능 연구의 과학적 목표는 지능을 계산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며, 공학적 목표는 어떤 유용한 방향으로 인간의 정신 능력을 초월하거나 확장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다. 인간의 대화 (그것이 아무리 '지적' 이라고 해도) 를 모방하려는 시도는 이런 목표 중 어느쪽에도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

사실 튜링 검사를 통과하는 일에 전념하는 인공 지능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인공 지능 연구는 어떻게 기계의 학습과 미래가 개선될 수 있는가, 스스로 행동 계획을 세우는 자동 우주선을 어떻게 설계할 수 있는가 같은 부분에 더 관심을 둔다. 인공 지능의 발전은 인간 판정자의 신뢰 수준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낡은 목표에 비추어 발전이 없다고 비판하는 비평가들도 많다.

우리는 튜링 검사가 과학사에서 퇴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의 모방이라는 목표가 비행의 개척자들에 의해 결국 축출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튜링 검사로 시작하는 인공 지능 교과서들 (아직도 그런 책이 많다) 은 항공학의 목표가 비둘기들이 놀라 자빠질 정도로 비둘기와 완전히 똑같은 비행을 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라는 설명으로 시작하는 항공학 입문서와 같다.

모방인가, 이해인가

인공 지능 분야의 연구자들은 인공 비행의 역사에서 유용한 단서를 찾아낼지도 모른다. 항공기의 개발은 사람들이 새를 모방하려는 시도를 그만두고 새로운 방식으로, 예를 들면 공기의 흐름과 기압 같은 것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접근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상공을 선회하는 갈매기를 바라보면서 라이트 형제는 날개를 휘게 하면 어떨까 하는, 즉 날개를 휨으로써 비행기를 회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영감을 얻었지만, 그들은 갈매기의 날개를 모방하려 하지 않았다. 상자 모양의 연으로 시작해서, 그들은 처음으로 충분한 부양력을 얻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곧 수직 및 수평 안정성을 얻어냈으며, 그 다음에는 조종 능력을, 그리고 마침내 엔진을 설계하고 추진력을 얻어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문제를 하나씩 차례차례 풀어 나갔던 것이다.

그 뒤로 어떤 항공기도 형태나 비행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새와 혼동되는 일은 없어졌다. 어떤 의미에서 항공기는 새의 놀라운 정확성을 결코 따라가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의미에서 보면 항공기는 새보다 훨씬 더 훌륭한 능력을 보여준다. 항공기는 나무에 앉지도 못하고,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지도 못하고 자연적으로 부는 산들바람을 타고 가만히 공중에 떠 있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 어떤 새도 1 만 미터 상공에서 날 수 없고 음속보다 빠른 속도로 날 수 없다.

어떻게 인간의 행동을 모방할까 연구하기 위해 인공 지능의 범위를 제한하기보다, 지능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시스템이 어떻게 구축되어야 하는가를 연구한다면 우리는 인공 지능을 더 유용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 지능 프로그램은 '지적' 이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은 더 규모가 큰 시스템의 한 구성 요소가 되기도 한다. 투자할 기업을 추천하고, 의료 진단을 하며, 전쟁에서 군대와 장비 이동 전략을 짜고, 우주 왕복선의 정비 시간표를 짜며, 신용 카드의 부정 사용을 찾아내는 시스템을 비롯하여, 오늘날 그런 시스템은 수백 가지가 쓰이고 있다. 이런 시스템들은 전문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고, 복잡한 자료들 속에서 의미있는 패턴을 찾아내고, 학습을 통해 자신의 성능을 개선한다. 이 모든 행동들은 인간이 해왔던 올바른 판단, 전문가의 의견, 책임을 떠맡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업 중 인간이 해낼 수 없는 부분도 많다. 인간은 너무나 느리고 쉽게 지치며 신뢰성도 떨어진다. 인공 지능 기계는 이미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의 능력을 초월해 있다. 인공 지능 응용 분야를 포함하여, 가장 유용한 컴퓨터 시스템들은 인간성이 부족하다는 점 때문에 가치가 있다. 진정한 인간적인 프로그램은 진정한 비둘기적인 항공기와 마찬가지로 쓸모가 없을 것이다.

과학을 기다리며

비행과의 비유는 또 다른 깨달음을 준다. 기술 발전은 종종 과학 지식의 발전보다 앞서기도 한다. 초기의 비행기 설계자들은 새의 해부 구조를 연구하여 공기 역학의 원리를 배운 것이 아니었다. 진화는 잡학 공학자이다. 생체 시스템은 원래 다른 이유로 진화해온 구조들을 임시 변통하거나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도록 한 가변 장치들이 많아지는 쪽으로 발달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 메커니즘을 모방하여 기본 원리를 밝힌다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실험 공기 역학은 인공 날개를 풍동 (빠르고 센 기류를 일으키는 장치로 항공기 따위의 공기 역학적인 성질을 실험하는 데 쓰인다 : 옮긴이) 에서 체계적으로 조사할 수 있게 된, 금세기 초가 되어서야 가능해졌다. 그것은 자연의 비행 사례 연구를 통해서는 알아내지 못했다. 갈매기의 날개가 항공기의 외장이라는 것은 이제 명백하지만, 그 외장은 새의 해부 구조를 조사하여 발견한 것이 아니다. 라이트 형제도 왜 그들의 날틀이 나는지 진짜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외장의 공기 역학적 원리는 1909 년 프랑스 공학자인 알렉산드로 구스타브 에펠의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그는 풍동과 다양한 기기가 장착된 인공 날개를 이용했다. 외장은 공학자들이 두꺼운 외장이 저항을 더 높이지 않고 부양력을 높인다는 것을 규명해낸 뒤로 더 두꺼워졌으며, 이런 '현대적' 외장을 장착한 최초의 항공기는 제 1 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등장했다. 많은 다른 분야에서도 그랬듯이, 탄탄한 이론적 이해는 그 시스템을 고립시켜 통제된 실험을 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공기 역학은 실험실에서 발견되었다.

인간의 지능 연구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새의 날개를 연구하여 공기 역학의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처럼, 인간 사유의 복잡성을 연구하여 지적 사유의 작동 원리를 발견하는 것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라이트 형제의 성공은 주로 부양력, 조종, 동력을 통해 비행을 인식했다는 점에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능 과학은 기억, 탐구, 적응처럼 사유의 특정 측면을 고립시켜야 하며, 인공 시스템을 이용하여 이것들을 한 번에 하나씩 실험할 수 있어야 한다. 사유의 기능적 변수들을 체계적으로 변화시켜 봄으로써, 우리는 어떻게 다양한 정신 과정들이 서로 상호 작용하고 보완하여 지적 행동을 산출할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지난 10 여 년 동안 진보가 측정 가능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몇몇 인공 지능 연구 분야는 변화를 겪었고, 그 결과 서로 다른 기술들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탐구 기술이나 추론 방법의 효율을 평가하려면 대규모의 경험적 연구가 수행되어야 한다. 이런 인공 지능 연구에서, 컴퓨터는 사유를 위한 최초의 풍동이 된다.

인공 지능 과학

튜링 검사를 거부한다는 것은 '인간을 닮은' 기계적 지능을 창조한다는 오래된 거대한 목표에서 후퇴하는 것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인공 지능의 목표가 단순히 인간 행동을 모방하는 것보다는 훨씬 크다고 믿는다. 인공 지능의 목표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기계이든 간에, 지능 자체의 컴퓨터 과학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인공 지능의 개척자인 앨런 뉴얼과 허버트 시몬, 인지 심리학자인 제논 필리신 및 철학자인 대니얼 데넷 등이 주장했던 내용이다.

그러나 인공 비행과 비유하고 나서야, 우리는 인간의 능력을 모방하는 데 초점을 맞춘 튜링 검사가 인공 지능의 목표와 직접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의 몇몇 동료들은 자신들의 궁극적 목표가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비록 이런 제한된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우리가 여기에서 개괄한 관점이 튜링이 제시한 방법보다 그 목표를 달성할 전망이 훨씬 더 밝다. 비행이라는 비유를 다시 생각해보자. 공기 역학 원리가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모든 날개에 균일하게 적용되는 것처럼, 지능 혹은 좀더 넓게 말해 지성의 컴퓨터적 관점은 자연적인 사상가뿐 아니라 인공적인 사상가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된다. 만일 인지 심리학이나 언어 심리학이 복잡하다는 측면에서 새의 비행과 같은 것이라면, 인공 지능의 응용은 항공 공학과 같다. 컴퓨터 과학은 그 공학의 기본 원리를 제공하며, 계산 자체는 사유의 날개를 떠받치는 공기가 된다.

대부분의 컴퓨터 과학과 마찬가지로 인공 지능 연구도 본래 경험적이다.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은 구조와 행동 사이의 관련 법칙을 발견하기 위해 규모가 크고 복잡한 장치 (금속과 실리콘 그리고 기호로 만들어진) 를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과 같다. 인공 날개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인공 지능 시스템도 이 관계의 한 측면을 고립시킬 수 있도록 설계하고 구축할 수 있다. 뒤엉켜 있는 본성의 복잡함 속에서 행동의 적절한 측면을 파악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통계 분석을 행하는 심리학의 연구 방법과 달리, 인공 지능 시스템 연구는 직접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컴퓨터를 이용해, 우리는 뉴얼과 시몬이 '정성적 구조의 법칙' 이라고 부른 것을 발견하고 직접 실험할 수 있다.

이런 설명은 튜링이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유용하고 성숙한 방식으로 인공 지능을 정의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인공 지능은 현재의 인지 과학을 관통하고 알리는 계산적 이해에 바탕을 둔 인지적 인공물에 관한 공학이다. 튜링은 자신의 검사가 지능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고 맞게 주장했다. 이러한 성공을 향한 주춧돌을 놓았으면서도, 그는 인간의 지능을 우리의 목표로 선택했다. 사실 그 지능은 파티 게임을 하는 교양 있는 영국 중산층의 토론 실력을 의미했다. 그러나 튜링이 우리를 이끌어왔던 바로 그 과학은 지능에 대한 훨씬 폭넓고 더 만족스러운 설명을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제공한다.

뇌는 정말 생물학적 컴퓨터인가

인공 지능과 인공 비행은 그들이 직면한 비판적 측면에서도 비슷하다. 저명한 미국 천문학자인 사이먼 뉴컴은 1900 년대 초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을 한다는 생각을 격렬히 반대하였다. 뉴컴의 맹공은 지금 보면 우습게 여겨지지만, 그의 논증은 매우 감명적이었고, 당시의 박학한 지식인들의 관점을 반영한 것이었다. 괴델의 정리를 사용하여 인공 지능이 불가능함을 '증명한' 영국의 수리 물리학자인 로저 펜로즈처럼, 뉴컴도 수학적 논증을 펼쳤다. 그는 새의 크기가 더 클수록 날개 면적은 크기의 제곱에 비례하여 증가하지만, 체중은 크기의 세제곱에 비례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인간만한 크기의 새는 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라이트 형제가 노스캐롤라이나 주 키티호크에서 비행에 성공한 지 몇 년이 지나 비행기가 몇 시간 동안 정기적으로 운항을 하고 있을 때에도, 이와 똑같은 논증을 사용하여 유인 비행의 가능성을 반대했다. 사실 그것은 꽤 훌륭한 논증이지만 - 항공기의 이륙 질량은 사실 날개 길이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 뉴컴은 풍속에 비례하여 외장의 부양력이 급속히 증가한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 않았다. 그는 날개가 단순히 납작하고 편평한 표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 뉴컴은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사고 실험과 수사법을 조합했다. 철학자 존 시얼도 이 방법을 써서 인공 지능에 반대하는 유명한 '중국 방' 논증을 펼쳤다. 뉴컴은 비꼬듯이 말했다. "초당 수백 미터의 속도로 쏜살같이 허공을 날아가는 비행기를 소유한 거만한 사람을 상상해보라. 그를 지탱하는 것은 속도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멈출 것인가?" 에너지, 열정, 설득력, 잘못된 방향을 놀라울 만큼 잘 조합한 뉴컴의 논증은 인공 지능에 반대하는 현대의 논증과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우리는 몇 년 동안 인공 지능을 공격하는 가장 어리석은 새로운 논증에 매년 사이먼 뉴컴상을 수여해왔다. 우리는 지명권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인공 지능과 인공 비행이라는 우리의 비유에 대한 공통적인 반응은 인공 지능의 키티호크는 어디가 될 것이며, 언제 그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대답 대신에 허버트 사이먼의 말을 인용한다. "그것은 이미 일어났다." 컴퓨터는 규칙적으로 지적 과업을 수행하며, 오래 전부터 그런 일을 해왔다. 인공 지능은 우리 주변에서 항상 떠돌고 있다. 단지 그것을 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뿐이다.

오늘날 사용되는 수천 가지의 응용 사례 중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현재 인공 지능 시스템은 세계적 수준의 체스, 체커, 브리지, 백개먼을 하며, 음악을 작곡하고, 수학 이론을 증명하며, 활화산을 탐험하고, 월스트리트에서 스톡옵션과 파생 상품들을 다루고, 신용 상태를 판단하며, 모터 펌프를 진단하고, 제강 공장에서 유화 정도를 제어하며, 기술 지침서를 번역하고, 초등학생의 독서 교사 역할을 한다. 가까운 장래에 인공 지능 장비는 심해 탐사를 안내하고, 다른 행성을 탐사하고, 고속 도로에서 트럭을 몰 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정말로 '지적' 이라는 범주에 포함되어야 할까? 항공기의 속도나 고도처럼, 인공 지능 시스템의 성능도 의심의 여지는 없지만, 그것을 '지적' 이라고 부를 것이냐 여부는 객관적인 그 무엇보다 사회적 태도에 의해 결정되는 측면이 강하다. 어떤 특정 능력이 기계화하면, 그것은 더 이상 정신 능력의 징표가 아니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튜링이 글을 썼던 당시에는 '컴퓨터' 란 생계를 위해 계산을 해야 했던 인간이었고, 계산이 지능을 필요로 한다는 거싱 모든 사람에게 명백했던 시대였다는 것을 지금은 잊어 버리기가 쉽다. 그 용어는 이제 기계를 의미하는 쪽으로 변했고, '비행' 의 의미가 구름의 훨씬 위쪽에서 시간당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동안 좌석에 앉아 날아간다는 것도 잊은 채 조용히 졸고 있는 것으로 바뀐 것처럼, 빠른 처리와 정확한 계산은 더 이상 정신 능력의 징표로 여겨지지 않는다. 당시의 가장 뛰어난 컴퓨터 중 하나였던 뉴컴은 초기의 항공기를 '비행한다' 고 불러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채 세상을 떴다.

튜링은 자신의 검사가 특정한 과업이 진정 지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한 쓸모없는 논쟁을 피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상당한 선견지명이 있었던 그는 대개 인간에게 붙이는 꼬리표인 '지적' 이라는 말을 기계의 활동에 붙일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초기의 비행기들이 특정한 고도와 속도로 대기 속을 이동했다는 것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컴퓨터가 실제로 계산을 하고, 계획을 세우고, 설명을 하고, 체스를 둔다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요한 것은 꼬리표가 아니라 현실이다.

사회적 꼬리표의 임의성은 기계를 신비하지만 자연적인 그 무엇으로 대체시킨 사고 실험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개는 결코 튜링 검사를 통과할 수 없겠지만, 철학자를 제외한 그 누구도 개가 어느 정도의 지능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 중에서 그런 주장을 할 사람은 분명히 없을 것이다. 가끔 체스 챔피언인 게리 카스파로프를 이기니 컴퓨터인 딥블루 (Deep Blue) 가 실제로는 지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어왔다. 그러나 체스를 두는 개를 상상해보라. 카스파로프를 이길 수 있는 체스 선수 개는 놀라울 정도로 영리한 개라는 칭찬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

자연적 지능이 복잡한 형태의 계산이라는 생각은 현재 가설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왜 정신 현상이 이런 식으로 설명될 수 없는지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일부는 컴퓨터 전문가의 관점이 의식의 현상학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 의식의 본성에 관한 현재의 이론을 조사한다면, 컴퓨터 전문가의 서명이 가장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다른 관점들은 의식이 어떤 신비로운 물리적 특성을 지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뇌가 중력에 영향을 받는 양자 효과로 일어나는 어떤 것이거나 과학이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것으로 말이다. 이런 관점들 중 어느 것도 신체의 뇌 같은 물리적 실재가 어떻게 세계와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지 설명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정신 생활을 계산의 산물로 보는 인공 지능 관점은 어떻게 내부의 상징이 기계를 위한 의미를 지닐 수 있고 어떻게 이런 의미가 기계와 주변 환경 사이의 우연한 관계에 영향을 받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상세한 설명을 제공한다.

인공 지능의 과학적 목표는 단순히 인간 정신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지능, 아니 더 넓게 말해 정신 능력 자체의 컴퓨터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다. 성공한다면 이런 이해 자체는 틀림없이 인간 사유의 유일무이함을 부정할 것이며, 그 사유를 연장하고 증폭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튜링의 궁극적 목적은 생각하는 인간과 생각하지 않는 기계의 차이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쾌히 동의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성을 얕보거나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위협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기류의 복잡성을 이해하면 새들이 어떻게 그렇게 잘 나는지 우리의 관심도 높아질 것이다. 아마 그것은 덜 신비하겠지만, 그것의 복잡성과 미묘함은 놀라울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지능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뇌가 정말 생물학적 컴퓨터라면,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컴퓨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