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로봇의 행진 : Kevin Warwick 지음, KAIST 시스템 제어 연구실 옮김, 변증남 감수, 한승 (청문각), 1999 (원서 : March of the Machines, 1997), Page 35~62
앞 장에서는 기계가 지구를 지배할 가능성과 그 해답의 열쇠라고 할 수 있는 지능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런데 만약 기계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다면 그때 기계의 생김새나 역할은 어떠할 것이며, 또한 자신들 간의 의사 소통이나 인간과의 대화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이 장에서는 잠시 지능에 대한 논의는 제쳐놓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물리적, 외부적 형태에 대하여 좀더 살펴보도록 하자.
생물학 개론서들을 펼쳐보면 지구상의 생명체들 간에는 공통된 특성이 상당히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특별한 우선 순위 없이 열거해보면 성장, 재생산, 호흡, 영양 섭취 (먹고 마시기), 배설, 움직임 그리고 자극에 대한 반응성 등이 있다. 어떤 경우에는 그 환경에 따라 몇 가지 다른 요소들이 포함되기도 하고, 한두 가지는 제외되기도 한다. 특히 움직임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가 상당히 애매하다. 여기서는 현재 지능에 대한 언급이 없음을 인지하기 바란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기계 안에서 생명의 어떤 특성을 관찰하고자 한다면, 앞서 말한 생명의 공통적인 요소들을 기계에 적용하고 거기에서 얻어진 결과를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이 기계임을 명심하고 각 요소들이 기계에 적용될 때 갖게 될 의미를 알아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나로 하여금 다른 행성에서 생명체를 찾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했던 학창 시절의 한 과목을 떠올리게 한다.
그 과목에서 배운 것은, 다른 행성에서 우리 스스로에게 적용되는 생명체로서의 요구 사항이 비슷하게 적용되는 그 어떤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곳에도 생명체가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을 여행하는 것은 쉽지 않을 뿐더러, 지구상에서 정의한 생명에 대한 정의를 모두 만족할 외계의 생명체를 찾는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을 듯하기 때문에 문제를 좀 바꾸어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말하면 외계인들이 지구에 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 같았다. 외계인들은 그들이 본 것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아마 어떠한 생명의 형태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구는 대략 3분의 2가 물로 덮여 있기 때문에 외계인들은 우선 물 위에서 생명체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처음 발견하게 될 '생명체' 는 항해하고 있는 배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배를 하나의 생명체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외계인들도 배를 무생물로 여길까? 만약 외계인들이 위에서 열거한 생명체의 7가지 요소를 배에 적용한다면, 몇 개나 되는 항목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낼까?
먼저 배에 움직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영양 섭취 (연료) 나 배설 (배기) 도 마찬가지이다. 외계인들이 배에 힘을 가하면 그로 인해서 배의 움직임이 변할 것이고, 따라서 자극에 대한 반응성도 있다고 생각될 수 있으며, 엔진으로 공기가 들어가고 결과적으로 가스가 분출되는 과정을 통해서 호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성장이나 재생산 같은 요소는 없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외계인들은 배나 기계가 미개하기는 하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라고 결론지을 수도 있고, 또 지구상에는 아무런 생명체가 없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다.
물에서 눈을 돌려 외계인들이 땅 위를 본다면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아마도 건물이나 다리는 생명체의 범주에서 확실히 제외될 것이다. 나는 앞에서 말했던 그 과목에서, 외계인들이 '1970년대말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전화망을 보았따면 그들이 지구상에서 생명체를 발견했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또한 그러한 전화망은 자신을 보살피는 많은 작은 생명체 (인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의 이 의견은 많은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관심거리는 생명체이므로 외계인들이 전화선을 생명체로 간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우선, 간단한 전화망보다는 통신망을 생각해보자. 생명체의 7개 요소 중에서 몇 개의 항목이 긍정적으로 평가될까? 성장, 분명하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통신망의 성장은 엄청났다. 움직임, 이 또한 분명하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통신망 내 스위치의 움직임 같은 것이 있다. 자극에 대한 반응, 확실하다. 자극에 대한 반응은 통신망의 기본 역할이다. 영양 섭취, 그 또한 분명하다. 각종 메시지가 망으로 입력된다. 배설도 맞다. 망에서 나가는 메시지들도 있으니까. 호흡은 판단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역시 긍정적이다. 망 주변을 흐르는 수많은 전자 펄스를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판단하기 어려운 재생산의 경우를 보자. 재생산은 언제나 기존에 있는 통신망에서 새로운 통신망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근거할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외계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통신망이 기존에 설치된 통신망에 의존해 시작된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것은 재생산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 같다. 사실상 통신망은 재생산보다는 성장에 의해서 확장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선
여기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나 동물, 혹은 어떤 식물들의 일반적인
특징들을 기준으로 어떤 대상이 생명체인지 아닌지를 정의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편협된 판단 기준으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기계도 생물체적인
특성을 나타낼 수 없지만,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이 본다면 지구상의 한 생명체로
보여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러한 맹점을 피하면서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동물의 입장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기계의 입장으로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해 기계에게
음식이란 햄버거나 포테이토 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키보드의 입력이나 음성
명령, 배터리로부터의 전력 공급을 의미하게 되고, 배설물은 대소변이 아니라 모니터
화면이나 팩스의 출력을 뜻하게 된다.
기계라는 생명체를 다루게 될 때 우리는 동물이나 식물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측면을 보게 될 것이다. 재생산 (Reproduction) 이라는 말은 똑같은 것을 다시 생산한다는 의미로, 여기서 같은 것이란 '같은 종에서 나온 새로운 개체'를 일컫는 사전적 의미이다. 그러나 기계의 경우는, 공장이라는 한 개체가 자동차라는 다른 종의 개체를 생산하는 예처럼, 자신과 같은 종의 개체를 '재생산' 한다기보다 보통의 생산이라는 의미가 더 어울린다.
그러나 재생산이라는 말이 기계에게 쓰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특별한 타입의 기계는 아주 소수만 필요하기 때문에 몇 대 생산하고 나서 더 이상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경우 같은 것을 끊임없이 '재생산' 한다는 의미는 더 이상 기계에서 적합하지 않다. 기계에게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생산 (Production) 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사람과 동물에게서 공통의 관심사로 가질 만한 것들이 기계에게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또한 특별히 기계의 모습이나 행동 방식은 동물과는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기계는 생각보다 더 큰 것이 될 수 있고, 통신망의 경우처럼 전 세계에 걸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능적인 기계라고 하면 반드시 금속으로 만든 인간이라든지, 아니면 인간의 모습과 흡사한 '사람과 같은 존재' 를 떠올리곤 한다.
1장 '2050년대에' 를 읽으면서, 여러분은 그 기계가 어떻게 생겼을 것이라고 상상했는가? 금속으로 된 복제 인간처럼 전부 인간을 닮았을 것이라고 상상하지는 않았나? 글쎄, 그것은 저자의 생각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사실 저자는 기계가 그저 기계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사실 기계가 인간을 닮을 특별한 이유는 아무것도 없는데, 독자들이 기계를 생각할 때면 주로 인간을 닮은 로봇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현상은 수많은 세월 동안 인간이 겪어온 것이다.
역사적으로 인간들이 인위적인 수단을 이용하여 인간을 재창조하거나,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인간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한 이야기들이 숱하게 많이 발견된다. 그 중 한 가지로 아시아에는 「생명의 서사시 Epic Gesar of Living」라는 시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한 대장장이가 왕에게 많은 양의 금과 은, 청동, 구리를 달라고 했다. 왕으로부터 이것들을 받자 대장장이는 며칠동안 분주히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궁궐에서 그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금으로 보통 사람 크기의 라마승과 천 명의 작은 승려들을 만들었고, 은으로는 달콤하게 노래하는 백 명의 아름다운 소녀를 만들었다. 청동으로는 700명의 관료들과 한 명의 왕을 만들었다. 더군다나 구리로는 만 명의 군인들과 장군들을 만들었다. 그들은 모두 신비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는 듯했지만 정상적인 사람처럼 움직이고 행동했다. 불행히도 그 시에는 '당신만의 인조 인간 만드는 법' 과 같은 자세한 내용은 씌여 있지 않다.
특히 지난 세기에 큰 영향을 미친 피그말리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원래 피그말리온은 사이프러스 (Cyprus) 섬의 왕이자 조각가였다. 그는 상아로 아주 정교한 여인상을 조각했다. 그리고 그 조각상을 가라티 (Garatea) 라고 불렀다. 그는 거친 시골 여자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고, 한편으로는 여신 아프로디테로부터 받은 벌로 인해…….' 그 후 피그말리온은 가라티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아프로디테에게 가라티만큼 아름다운 여자가 자기의 아내가 되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고, 아프로디테는 가라티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조지 버나드 쇼의 개작 <피그말리온의 음모 the Pygmalien plot> 은 신화나 전설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인생에서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한 인간의 존재성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특히 1 장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감지되어지는 사람의 지능 수준과 인간과 기계들이 어떻게 주어진 문제들을 잘 해결해 나가는지를 다루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여기에서 보면 꽃처럼 아름다운 소녀 엘리자 듀리틀은 말을 더듬는 문제 때문에 히긴스 교수로부터 6개월 동안 공주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교육받는다. 그리고 그녀는 왕궁의 무도회에 참석하여 참석한 손님들을 속여서 그녀가 모든 면에 있어서 진짜 공주임을 믿게 한다.
인간을 닮은 로봇은 중세에 쓰여진 소설 「프라하의 두목 랍비 The Chief Rabbi of Prague」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소설에서 한 랍비는 유태인 대학살로부터 유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진흙으로 사람의 형태를 만든다. 진흙 사람 고렘은 자신의 이마에 박힌 보석 (혹은 돌) 에 의해서 조종되며, 보석이 이마에서 빠져 나가면 단지 사람 형태의 진흙에 불과하다. 그러나 보석이 랍비에 의해서 제자리로 놓여지게 되면, 고렘은 초인적인 힘을 갖는 것을 제외하고는 인간과 같이 행동하게 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한번은 고렘이 통제 불능이 되어 유대인들을 위협하게 되었을 때 그 랍비가 간신히 고렘의 이마에 박힌 보석을 빼내어 유대인들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대목이 있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면에서 흥미롭다. 첫째는 그것이 프라하라는 점이다. 현재 우리가 쓰는 '로봇' 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었던 카렐 카펙의 희곡 <로섬의 만능 로봇들 Rossum's Universal Robots> 역시 프라하가 고향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기계를 켜고 끄는 스위치 개념을 낳았다는 점, 즉 라비는 조종 장치를 가지고 고렘을 조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 최근의 이야기는 말로우의 조용히 흐르는 템즈강 둑에서 쓰여진 매리 셜리의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이 있다. 프랑켄슈타인은 인간 육체의 각 부분들이 정확하게 맞추어진 살아 있는 인간으로 창조되었다. 한 세트의 부품들이 살아난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생각해 보았던 인간을 닮은 로봇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 다른 대부분의 소설들에서는 다루지 않은 소위 창조물의 정체성, 자아 인식과 자각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그래서 사람들은 프랑켄슈타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또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좋아한다. 즉, 프랑켄슈타인도 사람이라는 사실에 공감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상과학소설에서조차 인간들은 모든 주인공 기계들에게 인간으로서는 불완전한 특징들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렘도 완전한 인간이 아니었으므로 그렇게 영리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모든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그저 소설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인간인 우리들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즉 우리가 인간으로서 우리보다 더 지능적인 어떤 사물 또는 피조물을 알아내는 데에 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이 살아났을 때, 피그말리온이 키스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은 가라티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녀가 그를 싫어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공상과학소설 속의 대부분의 피조물들은 굉장히 건장한 체격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낮은 수준의 지능을 지닌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그들이 인간만큼 지능적이지 못해서 결국 우리 인간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약간 지능이 모자란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어 종종 육체적으로 건장한 사람들이 평균 이하의 지능을 가졌다든지, 혹은 약간 정신이 이상하다는 식의 사고방식으로 연결되어 버렸다. 인간들은 지상에서 자신이 가장 강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물론 알고 있다.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 보면 인간은 그렇게 빠르지도, 힘이 세지도 않다. 어떤 기구의 도움 없이는 날지도 못하고, 움직이는 것도 상대적으로 느리다. 단 한 가지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월등한 것은 추상적인 생각들이나 창조력, 자각 등을 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들 속에서 우리 인간들은 여러 방면에서 지능적인 창조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일이다. <2001년 우주여행 2001 : A Space Odyssey>을 한번보자. 여기서 할 (HAL) 은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고, 분위기 파악도 할 줄 아는 말하는 두뇌에 불과하다. 할은 인간들이 자신을 원하므로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상당한 수준의 지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물리적인 상태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없다. 여러분이 듣기 좋게 말하자면, 그는 지능은 있지만 물리적인 힘은 없는 말 그대로 네모난 두뇌 상자인 것이다. 또다른 형태의 창조물은 지능과 물리적인 상태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없다. 여러분이 듣기 좋게 말하자면, 그는 지능은 있지만 물리적인 힘은 없는 말 그대로 네모난 두뇌 상자인 것이다. 또다른 형태의 창조물은 지능과 물리적인 힘까지도 갖추었지만, 아킬레스의 발꿈치와 같은 인간에게는 없는 어떤 약한 부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러한 H. G. 웰의 <세계의 전쟁 The War of the Worlds> 에서처럼, 외계 침입자들이 결국 지구상의 미생물들에 감염되어 죽어가는 것을 통해 볼 수 있다. 소설이나 신화, 전설 속에서 보면, 인간들은 괴물들과 싸우는 것을 즐기고 있다. 왜냐하면, 결국 인간들은 지능을 이용하여 괴물들을 무찌를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아주 지능이 높은 생명체에게 인간이 위협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생명체는 반드시 하나의 약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간이 그 약점을 찾아내기만 하면 모든 일은 끝이 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어떤 것보다도 인간이 더 월등하고 우위에 있다는 인간의 사고방식은 심지어 오늘날의 과학적인 사고에도 따라다닌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아담과 이브는 창조주가 유전인자로 프로그래밍한 로봇이라는 의견이 제시된 적이 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유전인자 프로그램이 이들이 갖고 있는 생물학적 토대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밝힌 리처드 도킨스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런 의미가 영혼이나 정신적인 측면과는 사뭇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생각은 "자아 실현의 가장 우선적인 것은 자신의 육체로부터 분리된 자아를 깨닫는 것이다" 라고 말한 크리슈나의 가르침과 육체와 자아는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도킨스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들은 본질적으로 유전자를 운반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돌보고, 다른 인간의 유전자와 결합함으로써 이를 후손에게 전해 준다. 인간이 전해주는 유전자는 후손에게는 그들이 가지고 태어난 설치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보면, 인간사의 모든 것은 신이 아담과 이브에게 유전자 프로그램을 설치했을 때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이어져 오는 인간의 세대들은 아담과 이브의 것과 유사하기는 하지만, 유전자들의 조합으로 구성된 자신들만의 독특한 유전자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약 70년이 지나면 각 인간들은 사라지지만, 수백 년간 그들의 유전자는 이어져 오고 있고, 또한 그들이 자식을 낳기만 한다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개개인은 일시적인 유전자 운반체인 것이다.
나의 생각은 도킨스의 의견과 비슷하다.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 직접적으로는 우리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 설치 프로그램을 가지고 인생을 시작한다는 의견에는 동감이다. 이것은 우리의 외모와 육체적인 특징들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본질적으로 우리의 초기의 정신 또는 뇌의 형성에 있어서도 또한 초기 시작 프로그램이 있다. 물론 호흡과 같은 프로그램은 가장 기본적인 행동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도, 태어남과 동시에 경험들로부터 이를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
인간으로서 우리가 배우고 경험하게 되는 것들은 확실히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인지, 어떻게 배우는 것을 시작할 것인지를 지시해 주는 초기 프로그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한 우리가 무엇을 배우는 것이 허락되어 있는지, 사회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취급되는지,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와도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환경이란 우리의 부모나 스승, 어른들의 도움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과 우리가 태어나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곳으로 볼 수 있다. 경제적인 도움이 전체적인 학습환경을 더 풍요롭게는 하겠지만 이 환경에서 각 개인이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그의 학습의 정도가 달려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환경은 학습속도가 다른 시기에 비하여 매우 빠른 유년기에 더욱 중요하다.
인간들이 매순간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하는가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 요소에 의해 파악될 수 있다. 그 하나는 유전인자에 의해 결정된, 즉 원래 가지고 태어난 초기의 설치 프로그램에 의한 것이고, 나머지는 그들이 태어난 이후 경험에 의해 배운 것들에 의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특정 사람의 초기 프로그램을 정확하게 알고 있고 그가 어떤 경험들을 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그 사람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 사람의 초기 프로그램을 모르고, 더욱이 그들의 눈과 귀로 목격하고 감지한 것들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낸다는 것은 매우 힘드는 일이다.
바꿔 말하면, 전체적인 학교 교육의 개념은 학생들에게 선택된 이전의 경험들의 몇 가지를 소개하여 이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태도를 보이거나, 혹은 그러한 상황을 특별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 그러고는 각 학생들은 그들이 배운 똑같은 상황에 대해 적절한 방법으로 대응하는지, 혹은 그들이 이전에 본 것과 비슷한 상황에 대해서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시험받게 된다.
학교에 다니는 시기에 학생들은 분명하게 이러한 특정 경험들을 배울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중에 어떤 학생들은 이러한 교육을 따라가기가 매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 능력 혹은 능력의 부족은 그 학생의 초기의 유전자 조직 프로그램과 지금까지의 경험에 크게 연관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잘 짜여진 학교 교육을 통해 배우면, 이론적 성격이 짙은 과목들이라도 그 과목에 대해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 열한두 살 먹은 학생이 대개 18세 정도의 학생들 대상의 수학 시험에서 아주 높은 점수를 받아 대학에 진학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또 어떤 학생에게는 같은 또래와 비슷한 교육을 받았어도, 근본적으로 그의 초기 유전자 프로그램에 그 교육 형태가 적절치 못하기 때문에, 25세 수준의 사고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다른 학생의 경우에는 유전자 프로그램이 사실상 대학생과 같지만, 적절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여 결코 대학생들과 비슷한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반복학습 현상 (training phenomenon) 은 가족, 혹은 친밀한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집단 내에서 한 개인이 다른 사람과 오랫동안 같이 지내면서 나타나기도 한다. 하나의 훌륭한 예는 한 결혼한 부부가 40년 혹은 50년을 함께 살아온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 각 개인은 그렇게 많이 상대방을 가르치거나 훈련시키지는 않지만, 어떤 상황이 닥치면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힘 안 들이고 알아차릴 수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어떤 상황에서 상대방이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관해서 알 게 되었기 때문에, 상대방이 화를 내거나 싫어할 것 같은 특정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상대방이 어떤 특정한 일에 대해서는 좋아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일은 아주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의 아내도 서로가 싫어하고, 짜증내는 것임을 알면서도 때때로 그런 것들을 일부러라도 말하거나 행동으로 표현하려고 한다고 지적한 적이 있는데, 나는 결코 그렇게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서 이 사람이 어떤 유전인자를 갖고 태어났는지, 혹은 저 사람은 어떤 경험을 해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오랫 동안 지내다 보면 대충 그 사람이 여러 가지 상황에서 하는 행동들이 파악되고, 나중에는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가 어떻게 행동하리라 추측이 가능해진다. 그러면서 그에 대해서 잘 아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행동이 평소의 생각과는 다르게 행동에서 놀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의 행동에 대해서 여전히 알아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전형적인 산업 로봇과 같은 기계들은 대부분 주어진 일들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그리고 그 로봇을 원래 프로그램한 사람, 혹은 사람들은 로봇에 이상이 없는 한, 그 로봇이 무엇을 하려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들이 아니고서는 일정 시간 동안 로봇이 하는 일을 관측해야만 로봇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로봇의 작업이 단순하다면, 로봇과 관계없는 사람이라도 조금만 관찰하면 그것의 특성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그 로봇 프로그래머들이 프로그램의 정확한 성격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줄 수가 있다. 물론 이것은 그 로봇이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특징을 배우거나 수정하지 않고, 원래 자신의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 가능하다. 본질적으로, 일반 로봇 팔에 초기의 유전자 프로그램이 주어지고 이것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프로그램에 대해 알고 있고, 예기치 못한 문제들은 없다고 가정하는 한 매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확신할 수 있다. 어떤 기계들은 초기 프로그램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인간과 비슷하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학습하게 된다면, 우리의 초기 프로그램과 이전에 배웠던 경험을 토대로 학습하게 된다. 두 경우에 대해서 보면, 우리가 다양한 방법으로 학습할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학습하는지는 모두 초기 유전자 프로그램에 기인한다.
최근까지 기계들은 전혀 학습 기능이 없거나, 설사 있더라도 기능이 매우 세세하게 통제되어 왔다. 그래서 기계에 학습 능력의 도입이라는 점이 주목되지도 않은 채 1970년대 후반까지 이러한 개념은 확장되어 왔지만, 로봇이 프로그램되었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기계의 학습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인간이나 동물에서의 학습과 비슷하다. 초기 프로그램이나 명령어가 기계를 움직이게 하며, 이때 실행되는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학습 알고리즘을 실행시키고, 거기에서 나오는 피드백 정보를 다시 제공한다. 이 학습을 담당하는 프로그램은 성공할 경우, 그만큼 보상해 주는 시행착오 방식으로 동작할 수 있고, 아니면 직접 반복 학습시키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기계의 학습에는 여러 가지 접근 방법들이 있다. 한 예로 처음에는 무작위로 초기 값을 설정하여 시작하지만, 그 기계가 점차 학습되어짐에 따라 어떤 하나의 형태로 서서히 수렴해가는 것을 들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간단한 규칙들로 초기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단지 각 규칙들이 정의된 범위 내에서 학습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경우 기계는 자신의 초기 프로그램과 그 동안 배운 것을 기초로 하여 실제 동작을 하게 된다.
편지 봉투들을 각기 다른 상자에 분류해 넣는 로봇을 생각해 보자. 이 로봇은 봉투더미로부터 하나를 집어들어야만 하고, 검사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동작한다.
1. 만약 그것이 큰 봉투이면 A 상자에 넣어라.
2.
만약 그것이 중간 크기의 봉투면 B 상자에 넣어라.
3. 만약 그것이 작은 크기의
봉투면 C 상자에 넣어라.
로봇은 봉투의 크기를 검사하고, 검사 결과에 따라서 각기 다른 상자에 넣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로봇은 단지 하나의 프로그램이 있는 장치이다. 이것은 학습 형태는 아니지만, 로봇은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고 각 상황에 대하여 지극히 빠르고 신뢰성 있게 적절한 과정을 수행한다. 어떤 봉투가 크고 작은지는, 초기에 인간 전문가가 그의 다년간에 걸친 분류 작업에 관한 경험을 바탕으로 크기를 설정해두면, 기계가 전문가의 지식을 가지고 그 일을 대신 수행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러한 최종적인 시스템을 우리는 '전문가 시스템' 이라고 부르며, 여기서 로봇은 단순히 인간 전문가에 의해 이전에 수행되어 왔던 일을 하게 된다.
일반적인 경우처럼, 봉투 분류 로봇은 단지 봉투를 정리하는 하나의 특정 작업만을 한다. 우리가 이 로봇에게 학습 기능을 부여하지만, 이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봉투를 정리하는 것뿐이기에, 실질적으로 배우는 것 또한 그 일 외에는 그 이상도 이하도 없을 것이다. 이 경우에 우리가 바라는 것은 로봇이 봉투를 정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프로그래밍한 대로 정확하게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 인간이 수 년에 걸쳐서 그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실질적으로 배워 왔기 때문에 우리의 기술적인 노하우를 그대로 로봇에게 입력시킬 수 있고,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로봇에게 있을 수 있는 예측 불허의 문제점들을 방지하면서, 우리가 로봇이 했으면 바라는 바대로 일을 잘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봉투 분류기와 같이 괘 잘 정의된 로봇에서도 인간을 왜, 그리고 어떻게 로봇이 의사 결정을 내리는지 알지 못한다. 적어도 우리가 그 로봇을 초기에 프로그래밍한 전문가가 아니거나, 혹은 그 일에 대해서 나름대로 노하우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위의 예에 있어서는, 단지 세 개의 규칙만을 기계가 검사하도록 하였지만, 만일 규칙들이 3,000개 혹은 3,000,000개라면 어떻까? 이 경우 그 기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까? 봉투를 분류하는 로봇의 경우에는 이렇게 많은 규칙들이 사실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많은 규칙들을 필요로 하는 작업들은 얼마든지 있다. 또한 그 규칙들이 서로 연관성을 갖고 있다면, 외부에서는 내부적으로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 규칙 1을 확장한 다음의 예를 보자.
만약 그것이 큰 봉투이고, 주소가 쓰여 있으며, 주소지가 벅셔이거나 옥스퍼드셔이고, 토요일자 소인일 경우, 그 봉투를 D 상자에 넣어라.
문제가 더 복잡해짐에 따라, 인간은 매번 그 일을 잘 수행할 수는 없을 것이고, 인간 전문가가 여러 해 동안 그 일을 했다손 치더라도 최적의 방법으로 그 일을 처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대해서는 기계에게 그 일을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매우 이득이 되며 그 전에 누가 한 것보다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몇 가지의 일, 특히 서로 연관되어 있는 일들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아마 우리는 두세 가지 일은 동시에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이상의 일에 대해서는 아주 곤란을 겪을 것이고 한 번에 한 가지씩 처리하거나, 한 가지 일을 다할 때까지 다른 일들은 뒤로 미뤄둘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2차원이나 3차원에 한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계들은 확실히 어떤 차원에 제한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상 기계들은 다차원의 관계들을 발견하는데 적당해서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최근의 많은 기계들이 사람을 도와서 비행기가 뜨도록 하는 복잡한 작업들을 해주거나 전화 교환소 같은 데서 사람을 대신하여 사용되고 있다. 사람들은 하나의 기계가 전문가의 간단한 판단 근거에 의하여 특정한 작업들을 수행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일상생활에서 많은 일들을 한다. 오전 7시면 일어나야 한다. 오전 10시면 커피를 마셔야 한다. 오후 5시면 집으로 가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한다' 라고 말하는 것은 다른 많은 일들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우선 한 가지 일을 먼저 끝내야만 했다면, 커피보다는 차 한잔을 마셔도 좋다든지, 오전 10시가 아니라 오전 10시 10분이라고 했을 테니까.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이 꽤 간단한 판단들에 의해 소리 없이 흘러간다.
우리는 종종 이전에 배웠던 판단들에 기초해서 다른 판단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배웠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이 일을 위해서는 오전 7시에 일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오전 7시면 나는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어디에서 이런 것들이 시작되었을까? 이것이 살아가기 위한 것일까? 그것은 우리의 유전자, 초기 프로그램, 우리의 본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각 개인의 본능과 기본적인 성격의 시작은 유전자에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유전자를 선택할 수는 없다. 유전자들은 우리의 생물학적인 부모들에 의해 정해진 것이며, 그 부모들의 유전자는 또한 그들의 부모들에 의해서 정해진 것이다. 우리의 초기의 육체적, 정신적인 조건들은 우리들의 유전자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보이고, 나이가 얼마이며, 병에 걸리기 쉽다면 등등이 우리의 유전자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유전자를 운동이나 어떤 화학 약품이나 약들을 복용함으로써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각자 바꾸기 힘든 기본적인 경향은 가지고 있다. 사실상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자연적인 능력이나,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힘 또는 어떤 병에 저항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전에 나의 동료였던 카람은 - 그때 그는 27세이었다 - 한 번도 치아 치료를 위해 치과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금도금을 한 치아도, 충치도 없고, 그때까지 한 번도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또한 치아를 청소하느라 귀찮아할 필요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를 돌보는 방법은 배우지 않았다. 그는 단지 나보다는 훌륭한 치아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었다. 하루에 규칙적으로 몇 번씩 닦는 데도 불구하고 나는 치아를 치료하는라 꽤 오랫동안 정규적으로 치과에 다녀야 했다.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육체적인 상태 뿐만 아니라, 유전자들은 우리의 정신 상태와 기본적인 본능에까지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그래서 우는 방법, 숨쉬는 방법, 잠자는 방법, 말하는 방법, 학습을 시작하는 방법 등을 알 게 한다. 유전자들은 또한 행복이나 우울과 같은 기본적인 특징들이 일어나게 한다. 물론 어떤 개인이 얼마만큼 그의 유전자와 경험에 영향을 받았는지 말하는 것은, 아주 어린 시절이라고 하더라도 굉장히 어렵다.
우리의 초기 프로그램인 유전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부분에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한 개인에게 그것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사람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태어났는가를 '정확히' 는 모르고, 또한 경험에 의해서 어떤 영향을 받아 왔는지도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태어나면서 떨어져 살 게 되었다가 몇 년이 지난 후에 다시 만난 쌍둥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짐 스프링거와 짐 루이스 쌍둥이 형제가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그들은 태어난 지 몇 주 후에 오하이오 집안에 입양되어 그들이 39세에 다시 만날 때까지 각기 다른 도시에서 완전히 독립적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그들이 재회했을 때, 자신들이 같은 상표의 맥주를 마시고 똑같은 담배를 피운다는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 모두 지하실에서 작업하고 있었고, 나무 트렁크 주위에 흰색으로 칠한 원형 벤치를 만들어 두고 있었다. 그들은 어렸을 때 글쓰기를 아주 싫어하고 셈하기를 즐겼다. 또한 그들은 모두 '토이' 라고 부르는 개를 기르고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두 사람 다 경찰이 되었고, 군 보안관의 부관으로 승진되었다. 그리고 7년 동안 일했다. 두 사람은 '린다' 라는 여자와 결혼하고는 이혼했으며, 두 사람 모두 '베티' 라는 여자와 재혼하여 아들을 두고 있었다. 짐 루이스의 아들 이름은 제임스 앨런 (James Alan) 이었지만 짐 스프링거의 아들 이름은 제임스 앨란 (James Allan) 이었다. 두 사람은 정기 휴가를 플로리다 해안의 같은 장소에서 보냈었다 - 그들이 결코 만나지는 못했지만, 최근에 그들은 다중 선택 지능 검사에서 거의 같은 대답을 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단지 희귀한 우스갯소리로 보든지, 아니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전부는 아니라도 확실히 개인의 유전자의 형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태어날 때 가지게 된 유전자들에 의해 우리 인생의 많은 부분들이 이미 정해져 있지만, 우리는 모른다는 사실이 그저 재미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유전자가 가진 어떤 영향에 의해서 미리 정해진다는 것이다.
현재 유전자들에 의존하는 특징들을 점점 더 파헤쳐내는 연구를 하고 있다. 어디에서 멈추게 될까?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우리는 그저 우연히 생긴 일로 여겨 버린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자주 발생한다면, 우리는 결국 그 일들을 다르게 처리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므로써 우리는 우리의 미래뿐 아니라 우리와 접촉하는 다른 사람들의 미래까지도 영향을 주게 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말을 할 것인지 예측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단지 우리가 그들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면, 심지어 그가 거의 모든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까지 알고 있다면 우리는 그의 행동에 놀라지 않을 것이며, 그의 행동이 우연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우리가 그의 행동으로부터 배운다고는 느끼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의 행동들은 우리가 이전에 배운 것들을 더 견고하게 만들 것이다.
만약 같은 방법으로 우리가 어떤 사람의 유전자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우리는 그의 기본적인 본능과 새로운 행동들을 어떻게 배우게 될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정확히' 그의 모든 경험들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는 그가 하는 일을 항상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특정한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대처할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하루 동안 대하게 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똑같이 다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하게 될 일을 생각해 본다면 그 하루 전체는 완전히 예측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유전자 형태도 모를 뿐더러, 그들 삶의 정확한 경험도 모른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결국 오랜 기간 밀접한 관계를 통해서 그 사람을 알 게 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행동을 가장 잘 알 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이것이 전부인가? 우리 인간의 뇌는 단지 결정적이고 예측 가능한가? 만약 내가 나의 유전자 형태와 모든 인생의 경험들을 정확히 안다면, 내가 하려고 했던 일들을 수행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도록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또는 그 결정 또한 계획의 일부였던가? 현실적으로 우리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4장에서 뇌의 역할에 대해 더 자세히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이 질문을 남겨 둘 것이다.
사람의 인생에서 모든 경험들은 각 개인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독특하다. 다시 보면, 어떻게 특정한 사건이 우리의 유전자 조직 프로그램에 의존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축적된 경험에 의존하는지를 알아낼 수 있을까? 두 팀간의 축구 시합은 그 사람이 어떤 팀을 응원하느냐에 따라 훌륭하고 좋은 시합으로도, 나쁘고 형편없는 시합으로도 보여질 수 있다. 개인이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정말 그들 개인의 것이고, 그들이 육체적으로 어떻게 인지하느냐라는 것은 그들의 원래 유전자 조직과 경험에 관련 있다.
수직으로 매달린 우주선이 이륙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마 그렇게 깊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이전에 여러번 그런 장면을 보았거나, 원래 그들의 유전자 조직이 그러한 일에 귀찮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나보다도 훨씬 더 감명받았을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에게 주입과 위협으로 어떤 습관을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자연스레 누군가가 무엇을 줄 때 '고맙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우리가 요구하는 반응을 보이게 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결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반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아이가 단 한 번 들었는데도 나쁜 말을 배우는 경우도 있다. 명백히 아이가 배운 방법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아이가 '고맙습니다' 라고 말할 때 우리가 킬킬 웃거나 아이의 얼굴을 잡아 당긴다면, 아이는 누군가 고맙다고 말할 때에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은 응답 방법이라고 아주 빨리 배우게 된다.
때때로 어린이들이 폭력 영화를 보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런 영화를 봄으로써 폭력적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사실이다. 특히 어른들에게 어떤 영화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면 어린이들에게는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러한 호기심이 일어나는 것은 매우 본능적이며, 근본적으로 광고가 추구하는 모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유전자 조직안에 있는 폭력과 파괴에 대한 어떤 경향이나 폭력에 대한 경험과 학습을 통해 우리의 삶에서 폭력이 얼마나 많이 차지하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처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결정하게 된다. 폭력적인 영화는 폭력적인 아이가 새로운 일을 하도록 잘 가르친다. 하지만 그에 따르는 긍정적인 보상이 없다면 그 아이는 특정한 폭력적인 행동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훨씬 더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폭력을 보도하는 뉴스들이다. 같은 나라에서 한 명의 시청자로서 특히 시청자 자신이 폭력을 행사한 사람들과 꽤 깊이 관계할 때 더욱 그러하다. 이 경우에는 자명하다. 내가 보고 있는 저 사람은 나와 비슷하다. 그는 폭력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그는 텔레비전에 비워졌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를 지켜보고 있다. 만약 내가 똑같은 폭력을 저지른다면, 아마도 수백만의 사람들 역시 나를 주시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여러 성인이나 어린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환경을 정의하고 나서, 그 속에서 이들이 무엇을 배우는지 결정하려고 한다. 여기서 말한 상황을 고려하여 우리는 어떤 텔레비젼 프로그램들이 방영되고 방영되지 말아야 되는지를 결정한다.
하나의 협조적인 언급은 만약 어린이들이 특정한 폭력 행위나 약물 복용 따위의 일에 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면, 그들 스스로는 그것을 배울 수 없다는 것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약 어떤 개인이 특정 행동에 대하여 무지하다면, 그의 유전 조직이나 경험을 통해 그 행동이 가능하다고 별도로 결정을 내리지 않는 한, 그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어떤 일들이 왜 일어나서는 안 되는지를 설명하는, 다시 말해 사람들이 그 일들을 하지 않도록 종용하는 텔레비젼 프로그램들은 불행히도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첫째로, 그것은 이전에 그런 일에 대해서는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 일의 실체를 알려주게 된다. 둘째로, 시청자들이 그들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이러한 일을 아무리 말하더라도, 인간의 호기심에 대한 원초적 본능은 그 일을 하게 만들고,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은 문제의 그 일을 더 잘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약 복용 문제가 좋은 예이다.
뉴스에서는 마약 복용이 얼마나 해로운가를 보도하면서, 그들이 어디서 마약을 구입했으며 어떻게 복용하는지와 같은 마약에 대한 모든 정보를 함께 설명해야만 하는가? 특히 현재 혹은 과거에 마약을 복용했던 자들이 마약이 얼마나 나쁜 것이며, 왜 다시는 복용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하는 내용은 소개하면서, 뉴스들은 마약 복용으로 인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실제 병적 증세들이나 무엇이 주요 쟁점으로 토론돼야 하는지 등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보도는 지금까지 마약 복용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마약 복용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 장에서의 한 가지 요지는 어떤 개인의 학습 환경에 관하여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만, 정확하게 이를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잘 모르는 사람이 어떤 주어진 환경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로봇과 같은 기계에 대해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다른 결론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기계들은 특정 일을 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으며, 만약 일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아는 것 이상의 경험들이나, 미리 정해준 일 이상의 것들을 배울 수는 없다.
카렐 카펙의 작품을 통하여 현재 널리 쓰이게 된 로봇이라는 말은 원래 들에서 일하는 노예와 같은 일꾼을 부르는 말로 쓰였다. 일꾼들은 소위 그들 주인이 요구하는 일만 하려고 했다. 그들의 존재는 그들 소유자의 의도에 달려 있었다. 그런 점으로 보면, 인간 일꾼 로봇들과 기계 로봇 사이에 커다란 공통점이 나타난다. 아마도 둘 다 좋지 못한 환경과 그들보다 상위 존재의 감독 하에서 단 하나, 혹은 몇 가지 일들을 하도록 계획되어 졌고 반복적으로 그 일을 하도록 명령받았다. 실제로 그 둘은 학습 능력은 있었지만, 상위 존재가 그들이 배우는 것을 엄격히 감독하고 배움에 대한 기회 또한 심하게 통제하였다. 다른 점은 인간 로봇들은 거의 같은 형태지만, 심지어 그들 주인과도 비슷하지만, 기계 로봇들은 그들의 작업이나 역할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기계 로봇의 정신적 형태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겠다. 하지만 물질적인 차이점은 조금 더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
앞 장에서 지적했듯이, 확실히 소설 속에서 여러 해 동안 인간들은 인간과 같은 기계 로봇을 상상하는 데 매우 열중해 오고 있다. 사실 공상과학소설뿐 아니라 과학 단체에까지도 미치고 있으며, 다음 장에서 그 가능성에 대해서 더 고려해 볼 것이다. 지금껏 과학자들은 동물이나 인간을 닮은 로봇 기계들을 만드는 데 상당한 열정을 보여왔다.
나의 좋은 친구인, 나고야 대학의 토시오 후쿠다는 각기 다른 형태로 나무를 타는 침팬지와 흡사한 로봇을 완성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침팬지의 팔운동이 육체적으로 자연스럽다는 점과 로봇이 한 가지를 잡은 뒤 다른 가지로 옮겨가는 능력이다. 또다른 종류의 로봇은 동경공대에서 뱀의 생물학적인 움직임을 흉내내고자 다중으로 연결된 관절들을 같고 있는 뱀 같은 로봇으로 이 기계에 관해서 연구하고 있는 시게오 히로세의 연구에서 또다른 로봇 연구 추세를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그는 뱀이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방법과 땅에서 기어 가는 동작을 모방하였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기술했듯이, 레딩 대학의 우리 팀은 여섯 개의 다리로 걸어다니는 로봇들을 만들었다. 이것은 그들의 움직임이나 몸의 각 부분들 사이의 신호까지도 곤충들의 것을 많이 닮았다. 크기는 다르지만, 특히 여섯 개의 다리는 바퀴벌레의 움직임을 흉내내었다. 그 의도는 바퀴벌레의 걷는 동작을 단순히 흉내내려한 것이 아니라 걸어다니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 바퀴벌레의 움직임에 관하여 차츰 배우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 기계는 바퀴벌레와 비교될 수 있는 점이 있고 그것으로부터 얻은 몇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설계되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떼어 버릴 수 없는 장단점을 가진 하나의 걸어다니는 로봇에 불과하다.
아키야마가 지적했듯이, 로봇이 동물 모양이거나 작고 친절한 장치로 보이면 '우리는 그것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한번 건드려 보기도 하고, 기계로서가 아닌 인간에 가까운 존재로 대한다' 라는 점은 참 재미있는 부분이다. 내 자신의 경험도 존재로 대한다' 라는 점은 참 재미있는 부분이다. 내 자신의 경험도 이와 비슷하다. 다만 '인간에 가까운 존재' 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존재' 가 더 나은 표현일 것 같지만, 이 책의 뒷부분에도 적었지만, 우리의 '일곱 난쟁이' 로봇에 대한 어린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의 반응이 '귀엽고, 달콤하고, 재미있다' 라는 것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이 기억난다.
"아니! 그들이 지금 뭘 하고 있지?"
"그들은
휴식이 필요해!"
확실히 인간들은 무거운 산업 로봇에게 이름은 붙여 주지만, 동물과 같은 친근한 태도를 취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로봇 기계들이 더 작고, 집안의 애완 동물처럼 우리의 도움과 안내, 봉사가 필요한 것처럼 보이며, 그들이 우리 자신들보다는 덜 영리하게 느껴지고, 육체적인 어떤 위협도 드러내지 않는다면, 인간으로서 우리가 얼마나 빨리 그들을 동물처럼 생각하게 되는가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하나의 로봇 기계가 그처럼 보인다면 우리는 안심하게 된다. 하나의 로봇 크기가 자그마하고 큰 소음을 내지 않으며, 인공적이지만 부드러운 털을 지니고, 실제 동물과 같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주위를 움직여 다닌다면 우리는 그것을 동물로 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우리는 그 로봇이 우리의 주위에 있을 때 그것이 달아나거나 우리를 향해 걸어오거나 하는 것과 같은 어떤 반응을 보이기를 원할 것이다. 심지어 그 로봇이 우리의 말을 들을 수도, 들었다 하더라도 대답할 수도 없는데 우리는 로봇에게 말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로봇이 더 작게 만들어져 우리의 존재에 반응하지 않고 동물과 같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일반적인 로봇 기계나 장난감으로 대할 것이다.
이런 경향은 대부분 우리 삶에서의 경험과 배움의 덕택으로 지속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꽤 작고, 눈을 가졌으며 부드러운 털이 있는 피조물은 귀엽고 함께 있으면 재미있다고 배운다면, 그와 같은 물체가 로봇일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견해를 즉시 바꾸지는 않는다.
이 장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프로그램된 로봇 기계라도 어떤 적응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봉투를 분류하는 로봇에서의 적응능력은 크게 유용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만약 적응 능력이 작은 동물 같은 로봇에 주어진다면, 우리는 그 반응이 아주 멋있고 재미있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심지어 산업용 로봇 팔 경우에도 그 로봇이 단지 주위 환경에 적응하여 자신의 기능을 바꾸도록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봉투 분류기처럼 작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로봇 기계가 작고 동물을 닮았거나, 우리를 위해 어떤 작업을 반복적으로 한다면 이것은 좋은 양상으로 여겨진다. 그 로봇이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서 그 행동을 바꾸더라도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좋은 양상으로 비춰지는 로봇이 있는 반면, 사람을 해치도록 만들어진 로봇이나 군사용 로봇같이 우리에게 친밀하게 느껴지지 않는 로봇들도 있다.
미 육군과 해군이 공동으로 개발한 사지 (SARGE : The surveillance and Reconnaissance Ground Equipment) 운반 로봇은 네 개의 바퀴가 달린 구조로 되어 있다. 이 로봇은 작고 정밀하게 조정할 수 있는 원거리 정찰용 로봇이다. 이 로봇에는 열 영상과 낮과 밤의 영상을 찍어 저장하는 기능과 확대 감시용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다.
더군다나 이것의 자매격인 '딕시' (DIXIE) 는 먼저 어디로 갈 것인가를 계산하고, 그곳을 향해 가는 추측항법을 사용한다. 위치를 알기 위하여 비디오 카메라를 사방으로 움직이면서 3각 측량으로 항해한다. 이러한 운반 로봇들은 사람을 태우지 않고 주위를 돌아다닌다. 그리고 로봇의 눈을 통해 비워진 주위의 영상을 멀리 떨어진 곳에서 군 관계자가 지켜본다.
같은 맥락에서, 무인 비행체인 '파이어니어' 는 SS - 21 스카랩미사일의 배터리를 장착하는 일을 한다. 이 로봇의 손에는 특별히 제작된 센서들이 부착되어 있다. PAC - 3 (the Loval Systems Patriot Advanced Capability) 미사일도 마찬가지이며, 스커드미사일을 맞추기 위하여 밀리미터 전파 레이더를 탑재하고 있다. 일단 발사되면, PAC - 3 는 적 미사일을 선택하고, 이를 따라가서 충돌에 의해 폭발할 것이다. 그러므로 PAC - 3 는 계산을 하여 목표물을 따라가고, 레이더의 영상들을 기초로 미사일 교란 작전을 수행할 것이다.
이제 완전히 자동화된 '프라울러' (Programmable Robot Observer with Logical Enemy Response) 를 보자. 프라울러는 미국 회사 로봇 방어 시스템의 부산물이며 사실 1950년대에 처음 만들어졌다. 키는 탱크만하고 원래는 컴퓨터에 의해 제어되어 임무를 수행하도록 설계되었다. 세기말까지의 가능한 실제 목표는 프라울러가 적을 관찰할 수 있고, 자신의 적응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적을 방어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프라울러는 105 mm 대포와 스팅거 대공포와 M60 기관총들을 장착하고 있으며, 필요하면 센서들을 이용하여 전쟁 시나리오에서 사람의 형태를 알아보고 엔진의 열과 움직이는 사물을 감지할 수 있고, 적군인지 아군인지를 결정하여 그에 따라 동작을 취한다. 간단히 말해 '만약 적이면 공격하라' 는 것이다.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라는 결정들이 부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방법으로 프라울러는 낮게 비행하는 적비행기나 헬리곱터를 공격할 수도 있다.
이 사실이 놀라운가? 물론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잘 알려진 기술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가장 복잡한 것은 능동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프라울러는 봉투 분류기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했던 장치들 모두를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다. 탱크인 프라울러는 전쟁터에서만 사용되도록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기술은 지난 몇 년간 훨씬 발전되어 왔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는 군사 시스템 중에서 현재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현재 우리가 대하는 로봇은 적 표적들을 선택하고 파괴하도록 프로그램된 자율적인 군사적 사냥꾼이다. 우리가 서로 같은 편이고 그 사냥꾼을 프로그래밍했으며, 동작하도록 스위치를 작동시킬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우리가 적군이라면, 우리가 공격을 당하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한 사냥꾼, 아니 여러 사냥꾼이 우리를 찾으러 온다. 일단 일을 시작했으면 사람처럼 휴식이 필요 없으므로 그들이 정지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그들은 아마 인간처럼 똑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보다 더 빨리 반응할 것이다. 그러므로 적들이 그들을 만들기 전에 우리가 먼저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단지 공상과학일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이것은 현재의 기술도 아니며 벌써 몇 년 전 기술이다. 적응 행위나 판단 행위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이 장에서는 대부분 육체적으로 인간을 닮은 것 같지만 인간만큼 지능적이지 못하며, 인간의 조종하에 있는 로봇과 이와 비슷한 창조물들의 공상적인 개념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껏 인간과 같지도 않고 지능적이지도 않지만, 인간보다는 더 뚜렷한 장점을 지닌 기계들을 사용해 오고 있다. 그것들은 사라지지도 않을뿐더러 시간이 지날수록 장점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