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적 뇌와 새로운 뇌

요술베틀 : Robert Jastrow 저, 최광복 역, 범양사 출판부, 1986 (원서 : THE ENCHANTED LOOM: Mind in the Universe, Simon & Schuster, 1981), Page 132 ~ 143.

인간의 뇌는 여러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분은 진화의 과정에서 그 형성된 시기가 다르다.  뇌의 진화 과정에서 후기에 생겨난 뇌가 초기에 형성된 뇌보다 기능이 뛰어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초기에 형성된 뇌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그대로 남아 있다.  가장 뒤늦게 형성된 대뇌 피질은 인간의 뇌에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는데 대뇌 피질은 초기에 형성된 원시적인 뇌의 위를 덮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원시적인 뇌가 압사당한 것은 아니고 그 나름대로 자기의 역할을 열심히 한다.  원시적인 뇌는 머나먼 과거의 파충류의 뇌와 포유류의 뇌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인간의 행동 중에서 적지 않은 부분이 이 원시적인 뇌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즉 인간의 뇌는 대뇌 피질 이외에도 파충류의 뇌와 포유류의 뇌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원초적 조상이 되는 파충류의 뇌는 후각 기능을 맡는 앞부분, 시각 기능을 맡는 중간 부분, 그리고 몸의 평형과 조정 기능을 맡는 뒷부분의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세 가지 부분은 척추 위에 있는 뇌간이라고 하는 보다 원시적인 뇌에서 생긴 것이다.

이와 같은 뇌의 구조는 물고기의 단순한 뇌에서 유래되었다.  후각적인 뇌 (후각 센타) 와 시각적인 뇌 (시각 센타) 의 사이에는 간뇌 [주석 : 간뇌 (diencephalon) 는 thalamencephalon 이라고 하여 "뇌가 쉬는 장소" 라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이것이 나중에 시상 (thalamus) 과 시상하부 (hypothalamus) 로 발전된다.] 라고 하는 시각과 후각을 종합하는 통제소가 있는데 이곳에서 여러 가지 정보가 분석되고 종합된다. 즉 이곳에는 번식하고 먹이를 찾고 도망가는 가장 기본적 본능이 프로그램으로 짜여져 있어 파충류는 이 본능에 따라서 자동반사적으로 행동한다.  아직 대뇌 피질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본능을 벗어난 사고 즉,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는 융통성이 전연 없었다.

파충류 이후에 출현한 포유류의 뇌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점진적으로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첫째, 먹고 번식하는 가장 기본적 본능 이외에도 포유동물의 특징이 되는 모성애를 가지게 된다.  이것은 먹을 것이 없으면 갓 태어난 새끼들이라도 바로 잡아먹는 파충류의 습성에 비하면 장족의 진보인 셈이다.  물론 파충류의 새끼는 태어난 순간부터 본능적 프로그램이 다 짜여져 있는 뇌를 가지고 있어서 어미의 도움이 없이도 스스로 살아갈 수가 있는 이점이 있다.  파충류는 태어난 순간부터 어른이 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젖먹이 동물은 태어난 후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어미가 보살펴 주지 않으면 혼자서 살아갈 수가 없다.  만약 포유동물의 어미에게 모성애가 없었다면 살아 남을 새끼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결과 모성애가 없는 포유동물은 멸종의 길을 걷게 되었고 모성애를 가진 종류만이 번성하였다.

그러나 모성애라는 새로운 본능이 파충류의 원시적 본능을 대체한 것은 아니다.  먹이를 찾고 번식을 하고 천적을 피하는 기본 본능은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본능의 수가 늘었고 따라서 본능적 행동을 통제하는 뇌 기능도 그만큼 발달하게 된 것이다.  모성애라는 새로운 임무를 수행해야 하였기 때문이다.

포유류의 뇌의 진화에서 또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야행성에서 생겨난 것이다.  밤에만 활동하는 야행성 습성이 1억 년 동안 진행되면서 뇌의 시각 기능 대신에 후각 기능을 맡은 뇌 부분 (후각 센타) 이 혹처럼 부풀었다.  부푼 부분이 더욱 확대되어 나중에는 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뇌의 다른 부분 (파충류의 뇌) 은 그 중요성이 줄어들었다.

후각 기능의 확대로 인하여 본래의 기본적인 뇌 위쪽에 혹처럼 부풀어 오른 것이 바로 대뇌 (큰골) 이다.  처음 후각이 대뇌의 주요 기능이었을 때에는 대뇌가 별로 크지 않아서 주름이 잡히지 않았었다.  단단한 뼈로 된 두개골 안에 들어 있는 뇌가 갑자기 커지면 커진 부분이 바가지같이 생긴 고정된 두개골 안에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주름이 잡히는 것이 당연하다.  작은 병 속에 큰 실타래를 집어 넣으려면 구겨 넣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초기 야행성 포유동물의 대뇌는 아직 그다지 크지 않아서 주름은 잡히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공룡이 완전히 멸종한 후에 살았던 후기의 포유동물은 다시 대낮의 세상으로 나와서 살게 되었으므로 후각 기능뿐만 아니라 시각 기능도 다시 중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뇌는 후각적 정보와 시각적 정보를 동시에 종합 분석해야 하였으므로 대뇌가 더 커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각의 발달, 특히 입체적 시각의 발달은 대뇌의 확대를 가중시켰다.  이제 대뇌의 표면에는 주름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 크기가 한정되어 있는 두개골 속에 밀어 넣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뇌에 주름이 잡히는 현상은 대뇌가 큰 동물에게만 볼 수 있으며 고등 동물일수록 주름이 많이 잡혀 있다.  라틴어로 주름이 많은 열매 (호두알 따위) 의 껍질 부분을 코텍스 (cortex, 피질) 라고 하는데, 대뇌를 보통 대뇌 피질 (cerebral cortex) 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뇌 (즉 대뇌 피질) 가 가장 급속히 성장한 것은 원숭이와 유인원에게서 였다.  인간의 직계 조상이 되는 호모 에렉투스  (직립 인류) 의 시대에도 뇌의 성장은 가속화되었고, 그 후 지난 백만 년 동안 성장의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되어 결국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 현생 인류) 의 탄생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제 파충류와 포유류의 본능적 행동을 통할하는 원시적인 뇌는 대뇌 피질의 위용에 짓눌려 잘 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인류에게 있어서는 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뇌 피질이 태고의 원시적인 뇌를 뒤덮고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그러나 태고적인 인간의 원조상 (파충류나 포유류) 의 행동을 지배하였던 원시적인 뇌는 과거의 유물로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고 현재에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동물적 본능을 지배하는 뇌 (원시적인 뇌) 는 인간적 이성을 지배하는 뇌 (대뇌 피질) 와 지금도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고정적 프로그램으로 짜여져 있는 과거의 뇌와 유동적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현재의 뇌는 끊임 없는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모성애는 인간의 고귀한 감정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1억 년 전 포유동물의 뇌에 입력된 원시적인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암놈의 새끼 새앙쥐의 뇌에서 대뇌 피질을 제거하면 이놈이 자라서 어미가 되면 정상적으로 휼륭한 어미 노릇을 한다.  이와는 반대로 새앙쥐의 대뇌 피질은 손을 대지 않고 포유류 고유의 원시적인 뇌 부분만을 제거할 경우에는 새끼에 대해 전혀 무관심하게 된다.

인간의 원시적인 뇌에는 시상하부 (hypothalamus) 라고 하는 호두 크기만한 부분이 있는데, 이곳을 약한 전류로 자극하면 사람은 갑자기 화를 내거나 심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  이곳의 바로 옆 (0.1내지 0.2센티미터 정도) 에 자극을 가하면 성욕을 느끼거나 배고픔 또는 갈증을 느낀다.

시상하부에는 이외에도 공격성,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잔인성, 맞수가 만만하면 싸우고 강하면 도망가는 등 몇몇 가지의 본능적인 행동을 통제하는 기능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정상적으로 쥐를 잘 잡아먹는 고양이라도 시상하부를 없애면 코앞에다 쥐를 갖다 주어도 공격을 하지 않는다.  시상하부는 성격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시상하부의 어떤 부분을 전극으로 자극하면 성격이 온순한 집고양이가 갑자기 사나워져서 아무에게나 가리지 않고 무섭게 달려든다.  그러나 자극을 중지하면 그 순간에 다시 온순한 고양이로 돌아오고 만다.

이상의 실험으로 시상하부가 분노와 공격성의 성향을 통제하는 기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시상하부에 분노의 봇이 터져나오는 수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시에는 이 수문이 잠겨 있지만 자기의 짝을 뺏거나, 먹이를 훔쳐가는 등 생존에 위협적인 사태가 벌어질 때에는 뇌의 본능적 프로그램에 따라 시상하부가 자동적으로 자극을 받도록 되어 있다.  분노의 수문이 터지고마는 것이다.  물론 이때에 이성이 자리잡고 있는 대뇌 피질에서 원시적인 뇌 (시상하부) 에 가해진 자극을 무효화시키는 지령이 내려지면 수문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위협의 정도가 매우 크면 전기적 자극이 너무 심하여 분노가 터지게 된다.  그리고 실험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실제로 외부의 위협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위적인 방법으로 시상하부를 자극하면 화를 내게 된다.

우리의 몸에는 두 개의 성격이 동시에 상주하고 있는 것같이 생각된다.  하나는 생존에 관계된 본능적 프로그램으로서 대뇌 피질의 밑에 위치한 동물적 뇌에 상주하고, 다른 하나는 이성에 의하여 통제되는 것으로 대뇌 피질에 상주하는 것이다.  때때로 이성을 잃고 극도의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은 자기 안에 두 개의 자아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극도의 분노를 느끼게 되면 이성으로는 참으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고, 자기도 모르게 감정에 휘말려 폭발을 하게 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이 경우는 대뇌 피질에 자리잡고 있는 이성이 뇌의 하부에 깊숙이 묻혀 있는 원시적 본능을 통제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이성이 눈을 뜨고 있어도 본능이 통수권을 휘두르는 것을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극도의 분노에 휘말려 있는 사람을 보고 "이성을 잃었다" 거나 "제정신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데 이런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대뇌 피질 즉, 새로운 뇌가 원시적인 뇌를 통제할 수 있은 것이 일반적이다. 이성적인 인간은 무절제한 식욕, 성욕 등의 본능을 억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충류와 포유류의 뇌는 여전히 남아 있다.  때로는 이성적인 뇌와 협조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에 반발을 하기도 한다.  이성의 힘이 순간적으로 약해질 때에는 원시적인 뇌가 주도권을 잡게 되는 경우도 때때로 있는 것이다.

인간의 뇌가 이중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과거 원시적인 뇌에 대뇌 피질로 된 새로운 뇌가 추가되었다면, 앞으로의 인간 이후의 진화 과정에서는 현재의 뇌보다 월등한 제 3의 뇌가 현재의 대뇌 피질 위에 추가로 생기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현재의 인류가 과거 숲속에서 살았던 파충류나 포유류보다 뛰어났듯이, 앞으로 제 3의 새로운 뇌를 가지게 될 미래의 인간은 지금보다 훨씬 월등한 삶을 살 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