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연구의 발자취

 

뇌 : 학습과 기억의 구조 : 박찬웅,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Page 199 ~ 214.

사람들이 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매우 오래되었다. 서양의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히포크라테스 (B.C. 460~379) 는 우리의 감각과 지능이 뇌에 자리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을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인 것은 아니어서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B.C. 384 ~ 322) 는 지능이 심장에 자리하고 뇌는 혈액을 식히는 방열기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스의 의학자 갈렌 (A.D. 130 ~ 200) 은 히포크라테스의 견해를 지지하면서 대뇌는 감각을 받아들이고 소뇌는 근육운동을 지배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갈렌의 생각이 1,500년 동안 학계를 지배하다가 르네상스기의 유명한 해부학자 베사리우스 (1514 ~ 1564) 가 뇌실을 포함한 자세한 뇌의 구조를 밝히면서 뇌기능의 체액-기계설이 대두된다. 즉, 뇌는 기계 같은 것이며 체액이 이를 구동한다는 생각이다. 이 생각을 지지했던 대표적인 학자는 데카르트 (1596 ~ 1650) 였다.

마음과 신체, 형상과 구조라는 이분법이 시작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시절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보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은 데카르트로부터라고 하겠다. 그는 신체와 영을 물질로 보았고 신체의 속성은 연장 (extended) 이라 보았고 영, 즉 마음의 속성은 연장을 갖지 않는 것 (unextended), 즉 사유라고 생각하였다.

"물론 실체는 임의의 속성에 의해 인식되기도 하지만 실체에는 각각의 본성과 본질을 이루는 하나의 주요 속성이 있어 다른 모든 속성은 그것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물체에 속하는 모든 일체의 것은 연장을 예상하고 있고 연장인 어떤 양태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정신 가운데 발견되는 모든 것은 사유라는 양태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기본을 세운 철학자이면서 현대적인 기하학을 창시한 뛰어난 수학자이다. 신경계에 대한 그의 생각은 매우 유치한 수준이기는 하였으나 뇌는 어떻게 말초신경계를 통하여 신체와 상호 작용하는가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주목할 만한 것이다. 물론 데카르트는 관찰할 수 있는 기계와 같은 신체가 어떻게 관찰할 수 없는 마음과 교신하는가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뇌라는 기관이 영 그리고 의식적 경험에 관계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주장하였다. 데카르트는 마음과 신체에 생기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동물정기라는 가상의 기구를 생각했다 (그림 1). 즉, 신경의 전달작용은 동물정기가 신경 속을 운동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미량의 정기가 신경을 통해 근육에 열려 있는 작은 통로를 열고 닫는다. 그렇게 되면 근육 안의 다량의 정기가 급격히 운동하므로 근육은 이완과 수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철학과 경험과학에 대한 이중적 관심은 라이프니츠 (1646 ~ 1716) 로 이어졌다.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라이프니츠도 훌륭한 수학자였다. 그는 뉴턴과 함께 미적분학 창시에 기여하였다. 다만 뉴턴이 물리학에 관심을 집중한데 반해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관찰자와 관찰된 것 사이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철학을 심리학의 영역으로 향하게 하였고 물리학적 관점에서 심리학적 문제를 다루었으며 사고과정 자체에 대한 새로운 분석법을 생각하였다. 라이프니츠는 연관기억의 인식에 관해 주의 깊게 생각하였다. 즉, 연관기억 속의 모든 사건은 모나드 (monad) 라고 하는 물리적 단위들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였다. 물질들이 모여 화합물을 이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식과정에 모나드가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기억, 인식 그리고 느낌을 구별하려고 시도하였다.

19 세기와 20 세기 초의 실험심리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을 라이프니츠가 18세기 초에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그는 파브로브의 조건화의 기본성질을 이해하고 있었다. "기억은 일종의 연속성을 영에 마련함으로써 이성을 자극한다. 그러나 기억과 이성은 구별되어야 한다. 동물이 자신을 때리는 어떤 물건을 인식하고 비슷한 인식이 이전에 있었으면 그 이전의 인식과 연관된 상황을 기억에서 되살려 이전에 경험했던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개에게 막대기를 보여 주면 개는 막대기에 의한 동통을 기억하고 낑낑거리거나 도망치게 된다." 라고 하였다. 라이프니츠는 한 발 더 나아가 전형적인 학습심리현상을 기술하였다. 학습은 반복 연습으로 개선된다. 그러나 충분히 강한 자극을 이용하면 단번에 학습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또 그는 신체와 마음의 통일된 자연적 틀을 찾으려고 하였다. 즉, 마음과 신체는 비슷한 기초물질로 이루어졌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19세기 과학발전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업적을 남긴 과학자로는 헬름홀츠 (1821 ~ 1894) 를 들 수 있다. 그는 철학을 심리학에, 심리학을 생물학에 그리고 생물학을 물리학과 수학에 접목시켰다. 헬름홀츠는 에너지 보존의 물리학적 법칙을 수식화하였고 이는 뒤에 쥴에 의하여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 그는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자연계의 모든 구성요소는 동일한 보편적 화학물질과 물리법칙에 따르는 성분으로 구성되었다는 학설을 견지한 가장 유명한 학자이다. 헬름홀츠에 따르면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성질에 '생명력' 이라는 것이 따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생물과 무생물을 규정짓는 생명력 또는 에너지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결국 마음과 신체도 동일한 자연법칙에 따라 운영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헬름홀츠는 의사수업을 받는 동안 시각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색깔의 기원, 눈으로 들어가는 빛의 궤도, 시각적 지각을 연구하기 위해 지금도 안과에서 망막을 들여다 보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검안경을 발명하였다. 뇌를 들여다 보기 위한 간접적 수단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또 그는 신경의 전기적 신호전달속도를 측정하였다. 단순히 신호 전달속도를 알아보기 위해 측정한 것은 아니다. 사람의 정신기능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보려는 시도의 하나였다. 감각을 자극하는 것 또는 환각의 생리학적 기초를 이루는 것은 에너지라고 하는 인간 지각의 물리학적 기본 원리를 주장하였다. 그래서 시각적 환각도 학습된 경험에서 오는 것이지 인간 뇌의 내재적 성질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신경섬유의 전기적 성질에 관한 헬름홀츠의 업적은 갈바니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1751 년 벤저민 프랭클린이 전기현상을 발표하고 18세기 말에 갈바니와 에밀 듀보아 레이몬드가 신경을 전기적으로 자극하여 근수축이 일어남을 관찰하여 신경은 뇌로부터의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는 도선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정립되었다. 1791 년 루이지 갈바니는 동물조직이 전기를 생성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라이던병 (일종의 축전지) 에서 발생하는 전기자극에 의해 개구리 다리가 수축하는 것을 관찰하고 개구리 다리로 가는 신경에 전극을 대어 개구리 다리가 수축하는 현상으로 이를 증명하였다. 헬름홀츠와 절친한 친구였던 듀보아 레이몬드, 두 사람은 함께 갈바니의 발견을 발전시켜 신경전달과정의 새로운 생각을 제시하였다. 물론 그들의 이론은 대부분 잘못된 것으로 뒤에 수정이 가해지나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신경임펄스의 개념이었던 것이다. 신경의 전기적 신호전달과정의 이론을 처음으로 정립한 사람은 1866 년 번스타인이며 오스왈드는 이를 물리화학적으로 표현하였다. 물론 이 이론은 카츠, 호지킨, 헉슬리 등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수정이 가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과학자가 한 번쯤 철학적으로 생각한다거나 철학자도 한 번쯤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20 세기에 이루어진 수많은 획기적 발견과 개혁적 통찰의 결과인 지나친 기술적 풍요는 오히려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현대의 측정기술은 대단히 강력하고 다양해서 의심없이 그 기술에 쉽게 빠져들 게 한다. 천문학이건 핵물리학이건 전기생리학이건 분자생물학이건 배워야 할 기술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 물론 발명가나 기술 지향적 연구자는 필요하다. 그러나 전망이 불투명하거나 심지어 단순한 호기심까지도 용기를 북돋을 수 있는 고도의 특수 지식과 숙달된 과학적 감각도 필요하다. 자연현상의 수학적 기술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실망시킬 수도 있다. 자연현상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려면 자연현상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수학적으로 기술할 만큼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한 자연현상은 아직도 많다. 심리학이 이 중의 하나일 수 있다. 심리학에서 사용되는 실험방법이나 분석방법은 그 어느 분야보다도 더 복잡하고 철저할 수 있다. 다만 다루어지는 대상의 성질 때문에 모든 변수를 계량화하고 수식으로 나타내기 힘들 뿐이다.

데카르트에서 시작하여 17, 18, 19 세기를 거치는 동안 마음과 신체에 관한 문제는 분명하게 획을 그을 수 있는 발전을 거듭하였다. 데카르트는 마음이 신체의 일부라고 보았다. 정확하게 신체의 일부는 아니더라도 신체의 연장이라고 생각하였다. 물리학의 대두로 전기신호 현상이 밝혀지면서 마음의 기능에서는 전기적 신호가 기본언어일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어서 감각, 기억, 지각, 행동 그리고 정서 등 전신 기능을 연구하는 과학의 새로운 분야로서 심리학이 생겨났다. 심리학이 대두되었을 당시에는 학계의 공통된 의견은 아니었으나 일부 학자들은 심리학이 생물학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였다. 과거 백 년 동안에 물리학, 생물학 및 심리학을 통합한 신경과학 또는 신경생물학이라는 학문분야가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물론 오늘날까지도 정신활동의 모든 현상을 물리학적 현상으로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유형인식, 추상적 사고, 복잡한 결정과정과 같은 고위 정신기능에 속하는 심리현상은 물리화학적 과정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19 세기에 마음과 몸의 문제에 크게 영향을 미친 두 가지 흐름이 있었다. 그 하나는 신경계의 전기적 성질에 관한 물리학자들의 연구였다. 또 하나는 뇌의 구조에 관한 연구로 신경망을 밝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마음을 신경과학에서 취급할 수 있는가 하는 철학적 문제가 제기되었다. 몇 사람의 과학자들에 의해 정신물리학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이 개발되었다.
페치너는 헬름홀츠나 카할과 마찬가지로 의사수업을 받았다. 동시에 그들과 마찬가지로 보고 만질 수 있는 경험세계와 마음과 감지 같은 무형의 현상에 관심을 가졌다. 페치너는 감각의 감지 정도는 자극의 강도에 관계된다는 웨버의 생각을 수학적으로 공식화하였다. 즉, 자극의 감지를 계량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들의 생각은 당시로서는 믿기 힘든 것이었다. 페치너는 "마음은 몸의 일부이고 그 기능의 일부이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마음, 즉 감각은 물리적 성질을 갖는 자극과 측정 가능한 관계를 가진다고 하였다. 페치너는 오늘날의 정신물리학의 창시자이며 마음과 몸의 이원론에 종지부를 찍는 돌파구의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뇌신경과학의 역사는 이같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신경과학이라는 학문분야가 성립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여기에는 신경과학의 발전을 가져오게 한 여러 학문분야 즉 의학, 생물학, 심리학, 화학, 물리학의 발달이 계기가 되었고 이들 모든 학문분야를 망라한 다학제적 학문분야로서의 신경과학을 낳게 하였다.

금세기 신경과학의 발달과정은 노벨 의학상 수상업적들을 살펴봄으로써 대강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을 것이다.

20 세기에 접어들 무렵 신경과학의 돌파구를 마련했던 위대한 업적으로는 파브로브 (1904) 의 조건반사 생리학을 들 수 있다. 그의 이론은 현재에 이르러서는 많은 수정이 가해졌으나 자율신경계의 신경조절 이해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을 뿐 아니라 학습과정과 대뇌피질의 분석적 및 통합적 기능을 객관적으로 해석하는 개념적 기틀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특히 현재 고전적 조건반사라고 하는 학습기전은 전적으로 파브로브의 실험적 관찰에 의한 것이다.

신경과학에 있어 또 하나의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학자로는 카멜리오 골지 (1834 ~ 1926) 와 라몬 이 카할 (1852 ~ 1934) 을 들 수 있다. 우리의 몸이 각종 세포로 구성되어 있듯이 뇌를 구성하는 세포를 신경세포라고 한다. 그런데 신경세포는 다른 체세포들과는 특이하게 2 개의 돌기를 가지고 있다. 즉, 축삭과 수상돌기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경세포는 흔히 뉴련이라고 부른다. 이 같은 신경계의 세포형태학의 기틀은 골지와 카할 (1906) 이 신경세포의 특이적 염색법을 개발한 데서 비롯되었다. 골지는 각각의 신경세포, 즉 뉴런을 염색하는 놀라운 방법을 발견하였다. 이전의 염색방법으로는 뇌 조직에 세포들이 너무나 조밀하게 채워져 있어서 하나의 세포가 어디서 시작되고 끝나는가를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골지의 방법은 아직도 자세한 원인을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뇌 조직내의 여러 신경세포 중에서 하나의 신경세포만을 집어서 염색함으로써 개별적인 신경세포 전체의 자세한 구조를 관찰할 수 있게 하였다. 이 방법을 이용하여 골지는 여러 가지 신경조직을 검사하였다. 골지의 이 같은 획기적인 업적은 라몬 이 카할에 의하여 상당히 희석되었다.

카할은 어릴 때부터 투쟁심이 강했다고 한다. 카할은 헬름홀츠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장래 결정에 아버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한다. 카할은 의사 수업을 받고 병리학자가 되었지만 예술적 소질도 있었다. 그는 주로 세포와 조직의 구조에 관심을 가지고 신경계를 해부학적으로 연구하였다. 염색된 신경세포와 신경망을 그린 그의 그림은 과학적이면서 뛰어난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골지의 방법을 이용하여 카할은 뇌에 관한 개념을 혁신하였고 마음이 무엇인가를 암시할 수 있었다. 뇌는 무수히 많은 신경세포가 모여 질서 있게 신경망을 이루고 전기적 신호라는 언어를 이용하여 서로 교신한다. 이들 신경망의 활동 또는 처리에 의하여 사람은 감지하고 기억하며 느끼고 계획하고 결정하며 행동할 수 있다. 마음의 생물학적 및 물리학적 기초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카할은 하나의 뉴런이 가지를 뻗어서 그 끝은 다른 뉴런의 특정 부위와 접촉하고 있음을 관찰하였다. 이것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신경접합 또는 시냅스라고 하는 것이다. 카할은 이 접합부를 통하여 신호가 전달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골지는 이와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였다. 그는 이 접점이 단지 영양분을 주고받는 장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지난 100 년 동안에 뉴런의 성질에 관하여는 비교적 상세하게 많은 사실들이 알려졌다. 즉, 신경계는 외적 또는 내적 환경으로부터의 자극을 뇌로 전달하고 뇌에서 발생되는 신호를 말초장기로 전달하는 신호전달 도선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하나의 뉴런에서의 신호 전달방식은 일종의 전기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는 활동전압이라는 수단을 이용한다. 이는 어느 뉴런에서나 예외 없이 똑같다. 쉐링톤과 아드리안은 이 같은 뉴런의 활동에 관한 업적으로 1932 년에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에르랑게르와 가쎄르는 활동전압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방법을 고안함으로써 1944 년에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이 같은 뉴런들이 여러 개 연결되어 말초에서 중추에 이르는 신경계를 이룬다. 이 뉴런과 뉴런 사이의 연결부를 접합부 또는 시냅스라고 한다. 이 접합부에서의 신호전달방식을 시냅스 전달이라고 하는데 화학물질이 전달자 역할을 한다. 이 같은 화학물질을 신경전달물질이라고 한다. 오토 뢰비와 헨리데일은 이를 실험적으로 분명하게 증명함으로써 1936 년에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엑클스와 호지킨 및 헉스리 (1963) 는 활동전압의 발생과 전도에 있어서의 이온의 역할을 밝혔다. 말초 및 중추신경계에서의 전기적 전도 및 화학적 자극전달의 이온적 기전이 확실해짐에 따라 많은 신경전달물질이 증명되었다. 아세틸콜린, 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신경전달물질에 의한 신호전달과정 또한 비교적 상세하게 밝혀졌다. 즉, 합성되어 저장되고 세포의 유출이라는 현상으로 유리되어 특이적인 수용체와 상호 작용함으로써 신호가 전달되는 것이다. 이는 악셀로드, 폰 율러 및 카츠 (1970) 의 업적이다. 그러면 뇌는 신경세포가 모여서 구성된다고 하였는데 신경세포 즉 뉴런의 활동을 그렇게 상세하게 알고 있다면 뇌의 무엇이 문제인가? 이 같은 뉴런이 모여 뇌의 어디서 어떻게 생각하고 기억하며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슬퍼하며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최근 신경과학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두 가지 발전이 있었다. 한 가지는 여러 가지 새로운 신경전달물질 또는 조절물질의 발견이다. 특히 신경펩티드의 발견이다. 둘째는 감각 및 운동행동에 관계되는 뇌의 세포생리학이다. 폰 율러의 섭스탄스 피 발견으로 비롯되는 '펩티드혁명' 은 길만과 솰리 그리고 얄로우 (1977) 의 성장 호르몬 등 뇌내 펩티드 호르몬 업적으로 이어졌다. 20년 전에 미세전극기술이 도입되면서 뇌의 세포조직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즉, 단순하였거나 복잡한 운동행동에 관계되는 해부학적으로 구별되는 단일세포의 활동을 뇌의 모든 부위에 걸쳐 기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휴벨과 비젤 그리고 스페리는 시각 계통에 있어서의 피질세포의 원주상 조절구조를 밝히고 이들 구조가 초기 시각경험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는가를 밝힌 공로로 1981 에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이들의 미세생리학적 연구결과는 최근의 해부학적 기법 발달에 의해 확인되어 학습, 기억, 의식에 관계되는 뇌의 세포구성에 대한 연구가 급속하게 발전되고 있다. 이와 관련된 가장 최근의 생리학분야에서 노벨 의학상 수상자로는 1991 년 자크만과 네허가 이들은 미세전극을 이용한 팻치크램프 방법으로 세포막에 존재하는 단일 이온 통로에 흐르는 미세전류의 측정을 가능하게 함으로 이온 통로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그림 2).

최근 인지과학에도 몇 가지 주목할 발전이 있었다. 첫째, 복잡한 행동의 저변에는 뇌의 회로가 깔려 있다는 생각이다. 인지과학연구 초기에 대부분의 신경과학자들은 뇌의 각 부위들에 있어서의 반응을 개별적으로 연구하였다. 예를 들면 시각에 대한 연구는 주로 시각피질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시각은 물론이거니와 학습, 기억 등 복잡한 행동에는 뇌의 여러 부위가 복합적으로 관여하는 상호 협동과정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둘째는 이들 회로망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는 시간차를 단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직도 완벽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기능적 자기공명영상기술로 자극과 반응 사이의 시간을 2초까지 단축할 수 있게 되었다. 머지 않아 뇌의 기능을 실제시간에 관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신병에 관한 뇌연구도 인지과학의 개념적 및 실험기법적 발전에 힘입어 최근 많은 진전이 있었다. 정신분열병이나 우울증의 뇌에 기초하는 인지과학적 모델이 여러 가지 기법으로 검증되었다. 그 기법에는 병변기법, 신경로 추적기법, 신경영상기법, 동물모델기법, 단세포기록법, 전기생리학적 기법, 신경심리학적 기법, 실험적 인지심리학기법 등이 있다.

뇌의 정상 또는 비정상적인 기능을 이해하기 위한 여러 가지 학문분야도 발전하였다. 신경회로의 해부학적 및 컴퓨터 모델 연구, 동물 및 사람에 있어서의 병변연구, 신경생리학, 신경심리학, 신경약리학 등이다.

최근 신경과학자들은 작업기억 또는 단기기억을 생성하기 위하여 뇌의 여러 부위들이 어떻게 협동하는가를 밝히기 시작하였다. 부분적으로는 전두엽피질이 그 협동을 통제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기술이 더 정교해짐에 따라 새로운 신경과학적 지식들이 이론에 추가되고 컴퓨터 모델을 통하여 그 이론들이 검증됨으로써 머지 않아 기억의 기전이 현실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의식이라는 것은 뇌의 엄청난 성취이며 또 신비라는 것에는 별로 이의가 없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에 신경생리학자들은 진지하게 의식의 신경적 기초를 찾기 시작하였다. 의식의 신경적 기초를 밝히려는 수단으로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는 것은 시각이다. 시각계통에 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의 양은 엄청나다. 시각의 심리학, 예를 들면 영사스크린에 빠른 속도로 이어지는 정지화면들이 만들어 내는 움직임이 단속적이 아니고 매끄럽게 보이는 조건, 시각의 생리학, 즉 눈 및 그에 관련되는 구조와 활동, 시각의 분자 및 세포생리학, 즉 신경세포의 구성분자들이 사람 또는 동물실험을 통하여 상세하게 알려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많은 연구업적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떻게 사물을 보게 되는가, 즉 어떻게 시각적 인식이 이루어지는가는 거의 알고 있지 못한다. 예전에는 호문쿨루스라는 난쟁이가 뇌 안에 있어서 그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대뇌의 역할 분담론을 주장했던 사람으로는 갈 (Gall) 을 들 수 있다(그림 3). 1827년에 출판된 그의 골상학 책은 10만 권이나 팔렸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가 본다는 것을 어떻게 뉴런의 활동으로 설명할 것인가이다. 인식뉴런이라는 것이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뇌의 어느 특정 부위에 국한하는가 아니면 뇌 전체에 퍼져 있는가? 시각적 인식에 관계되는 뉴런을 어떻게 찾아 낼 것인가? 그들 뉴런은 특수한 신호발생기전이 있는가? 문제를 단순화하기 위해 설명하지는 않았으나 우리가 본다고 하는 것에는 주의기전과 기억 특히 단기기억이라는 과정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물에 따라 그에 해당하는 각각의 뉴런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여러 뉴런으로 이루어진 세트가 고도의 병렬적 처리과정으로 합쳐서 시각인식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인식뉴런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뉴런이 인식뉴런이 될 수 있는 잠재 능력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어느 것도 아직은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 이 복잡한 실마리를 풀어 갈 단서조차도 애매한 상태이다. 그래서 뇌연구를 새로운 학문이라고 하며 이제 시작이라고 하는 것이다.

현재 컴퓨터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컴퓨터가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 컴퓨터가 무어의 법칙에 따라 성장을 계속한다면 인간의 두뇌와 유사한 정도의 복잡성을 지니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지능도 가지게 될 것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은 물리학에 기초한 것이고 20세기 실리콘 혁명은 수학에 기초한 것이라면 21세기에는 뇌의 활동이 철학이나 심리학이 아닌 과학의 탐구영역으로 진입할 것이다.

과학적 연구에는 어느 정도의 선입견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믿음에 빠진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맹목적으로 믿음에 빠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디어의 잘못을 증명함으로써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새로운 체계를 구축려면 영감과 상상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불완전한 기초 위에 세워진 상상은 결국 충족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인간의 가치를 오직 과학적인 사실들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밝혀져야 할 숙제이다. 때로는 종교에 가까운 견해가 더 그럴 듯해 보일 수도 있다. 뇌의 문제는 종교적인 견해나 오늘날 신경과학자들의 유물론적 견해와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직 과학적 연구를 통한 합리적인 방법만이 이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