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는 기계
나의뇌 뇌의나1 : Richard M. Restak 지음, 김현택. 류재욱. 이강준 옮김, 학지사, 1997 (원서 : The Brain), Page 15~69
자세한 이야기에 앞서, 뇌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뇌란 무엇인가?' 놀랍게도 뇌에 대해 간단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뇌에 관한 교과서들에서조차 정확한 정의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뇌는 신경세포와 신경교 (glia) 와 같은 개개의 독립적 단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라고 시작하는 정의도 있는데, 이런 식의 정의는 순환론일 뿐이다. 왜냐하면 뇌는 신경세포의 집합이고, 다시 그 신경세포가 뇌를 이룬다는 식으로 되풀이되는 설명이기 때문이다.
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좀더 정확하고 포괄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고와 신경통합의 기관이 되는 척추동물의 중추신경계 일부로서, 고차적 신경중추들을 포함하며, 감각기관에서 자극을 받아들이고, 그 자극을 해석하고, 저장되어 있던 심상 (impression) 과 연관시켜, 궁극적으로 중요한 행동을 통제하는 운동추진력을 일으킨다. 뇌는 뉴런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뉴런의 가지는 지지조직, 영양조직과 함께 피질층, 회백질의 핵, 섬유로, 교차, 백질의 섬유다발 등을 조직한다. 뇌는 두개골로 덮여 있으며, 후두대공 (foramen magnum) 을 통해 척수로 이어지며, 여러 개방된 곳을 통하여 뇌신경들과 이어져 있다.
이러한 정의는 포괄적이기는 하지만,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질리게 만든다. 이책의 취지에 따라 뇌란 두개골에 싸여 있는 중추신경계의 일부라고 간단히 정의하자. 그 나머지 부분은 척수이다.
단단한 덮개인 두개골을
뜯어내면 우선 3 개의 막이 나타나는데, 이들은 라틴어 이름을 가지고 있다 : 가장
바깥쪽 막이 경막 (dura mater ; hard mother) 이며, 두번째 막이 지주막 (the arachnoid
; cobweb), 세번째 막이 유막 (pia mater ; tender mother) 이다.
경막은 두개골
바로 밑에 있는 섬유질의 질긴 막이다. 지주 (거미집) 막은 초기의 신경과학자들이
거미집의 모습에 비유하여 붙인 기발한 이름으로서 뇌의 많은 틈새를 연결하고 있다.
유막은 불규칙한 뇌표면을 구석구석 덮고 있는 견고하고 빈틈없는 막이다.
유막과
지주막 사이에는 뇌척수액이 차 있으며, 마치 여러 강줄기가 흘러가듯이, 뇌표면의
모든 도랑 사이를 채우고 있다. 그래도 뇌에 있는 전체 뇌척수액의 양은 120 ml 정도
박에 되지 않는다. 보통 크기의 찻잔을 겨우 채울 수 있는 정도의 양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지주막하강
(subarachnoid space) 에 채워진 뇌척수액이 모여서 조그만 호수를 이루고 있다.
또 어떤 곳은 좁아져서 운하처럼 되어 있다. 이 물줄기를 따라 흘러가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해 보라. 베니스의 축소판과 같은 꼬불꼬불한 수로들이 뇌표면의 경계지표가
된다. 이들을 회 (gyri ; 이랑) 와 구 (sulci ; 도랑) 라 일컬으며, 이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두 개의 뇌를 가지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 두개골 중앙에 거울을 밀어넣은 것처럼 두 개의
대뇌반구 (cerebral hemispheres) 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자세히 보면 두 개의 반구가
정확히 같지는 않지만, 이들은 아주 비슷해서 '이렇게 배열된 목적이 무엇일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뇌의 중앙을 따라 앞에서 뒤까지 깊은 홈 (longitudinal sulcus) 이 있다. 두번째 구인 실비아열 (the Sylvian fissure) 은 각 반구의 바깥쪽을 지난다. 중심열 (central fissure) 은 다소 불분명한 고랑인데 반구의 바깥쪽 위에서부터 아래로 지나며, 실비아열쪽으로 굽어진다. 이들은 대뇌반구를 개개 영역으로 구분하는데 중요하다.
지주막 하강의 뇌척수액은 뒤로는 후두엽으로, 아래로는 측두엽으로, 앞으로는 전두엽으로, 위로는 두정엽으로 흘러간다. 이들 4 개의 큰 덩어리들은 마치 대륙과 같이 고유한 영역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중심구 앞쪽 전두엽에는 중심전회 (precentral gyrus) 가 있으며, 이는 주로 신체의 반대편 움직임을 맡고 있는 영역이다. 이 부위가 손상되면 마비증상이 생긴다. 이보다 앞쪽은 운동전 피질 (premotor cortex) 로서, 이곳은 좀더 복잡한 운동기능을 담당한다. 그리고 이보다 더 앞쪽은 전전두 섬유 (prefrontal fibers) 로서, 이곳은 테니스 경기관람중에는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처럼, 우리의 활동에 억제적 통제를 가한다. 전전두엽이 손상된다면, 행동을 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이 말리기 전까지 그 행동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두정엽에는 일차 감각피질 (primary sensory cortex) 이 있으며, 이곳은 뇌가 '느끼는' 부위로서, 모든 감각수용기로부터 정보를 받는다. 두정엽은 매우 엄밀하게 배열되어 있어서, 중심후회 (postcentral gyrus) 의 각 영역은 신체의 특정부위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느끼는' 기능이 두정엽에만 한정된다는 것은 아니다. 뇌의 아래쪽에 있는 뇌간에서도 촉각, 통각, 압각 등을 경험할 수 있다. 두정엽을 다친 환자는 바늘에 손이 찔리면 반응을 하긴 하지만, 그 손이 어느 손인지는 알지 못한다. 찔린 손이 어느 손인지 알 수 있으려면 두정엽이 온전해야만 한다.
중심구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측두엽과 만난다. 이곳은 청각과 기억에 관련된 부위이다. 시간과 개별성 (individuality) 에 대한 감각도 이곳에서 담당한다. 측두엽을 전기자극하면, 과거를 되돌린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예에서는 자극이 반대 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즉 친숙한 사물이나 사람들이 낯설고 이상하게 보이는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측두엽은 다른 어느 종의 동물이나 모두 다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뇌부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대뇌반구 중 가장 흥미로운 부위이다. 측두엽이 동물적인 뇌 (변연계 : limbic system) 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공포, 분노, 욕망, 질투심과 같은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측두엽에서 약간 뒤쪽으로 시각중추가 있으며, 이는 눈에서부터 시신경을 타고온 정보가 복잡하게 변형되는 후두엽부위이다. 머리 뒤쪽을 다쳐서 후두엽 일부를 상실한다면, 그 환자는 앞을 못 보게될 것이다.
두 개의 반구와 세
개의 열로 구분되는 네 개의 엽은 대뇌의 기본구성이 된다. 그런데 대륙마다 다양한
관습과 문화가 있다하더라도 이들의 구분이 지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듯이, 신경과학자들도 너무 독단적이어서는 안 된다. 즉 실험동물의
후두엽을 절개하여 시각을 박탈시키는 것이, 우리의 뇌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를 어떻게 감상하는지 이해하는 방법은 되지 못한다. 이책 전반에 걸친 여러 가지
입장을 통하여, 대뇌반구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넓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
우리가 '지도가 실재의 영역을 충실히 다 나타내 주지는 못한다' 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설명한 대뇌의 지형학은 유용할 것이다.
우리의 뇌는 두 대뇌반구를
단순히 합친 것은 아니다. 암내난 고양이나 사납게 날뛰는 황소, 정글의 육식동물들도
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대뇌반구는 제대로 발달되지 못하였다. 많은 생물체의
경우 대뇌반구의 발달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약 인간에게 (두 개의) 대뇌반구가
발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완전히 본능에 따라서만 행동하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인간의 대뇌반구의 윗부분을 제거하고 보면, 고양이나 비둘기의 뇌와 비슷한 일련의
구조들이 나타난다.
척수는 뇌간 (brain stem) 으로 들어가면서 중요한 부위인 연수 (medulla) 로 이어진다. 삼키기, 토하기, 숨쉬기, 말하기, 노래하기, 혈압, 호흡, 심박률의 조절 등과 같은 역할이 이곳에서 행해진다. 연수수준 이하에서 뇌간을 절단하면, 혈압이 0 으로 떨어지고, 호흡이 멈춰지며, 수분 내에 죽게 된다. 대뇌반구에서부터 나오는 모든 신경섬유들이 척수로 내려가는 데에는 반드시 연수를 거친다. 이들 섬유들은 연수에서 교차하기 때문에, 두 개의 대뇌반구는 각각 신체의 반대편을 통제하게 되어 있다. 몰핀과 니코틴은 연수 내에서 작용한다. 소아마비 바이러스 또한 이곳을 침범한다. 1950 년대 소아마비 환자들은 호흡보조기가 있어야만 했는데, 연수가 호흡기능을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수 바로 위에 뇌간의 두번째 부위인 교 (pons) 가 자리하고 있다. 교란 '다리' 를 듯하는 말로, 이 부위에는 대뇌피질과 소뇌를 연결해 주는 섬유들이 많이 있다.
교 위로는 계속해서 중뇌 (midbrain) 가 이어진다. 중뇌는 교나 연수보다 작으며, 뇌간에서 가장 작은 부분이다. 중뇌는 대뇌반구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연수나 교보다는 훨씬 복잡하다. 기본적으로 보고 듣는 것이 중뇌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중뇌의 뒤쪽에 위치한 사구체 (colliculi ; 4 개의 작은 언덕) 의 기능이다.
위로 계속해서 몇 cm 정도 더 올라가면, 간뇌 (diencephalon) 와 만나게 돈다. 간뇌에는 시상하부 (hypothalamus) 와 시상 (thalamus) 이 포함된다. 'Thalamus' 란 그리스 말로 '소파' 란 뜻이며, 대뇌반구는 시상 위에 편안히 놓여 있는 셈이다. 위대한 분석기기인 대뇌반구로 가는 모든 정보는 시상을 거치게 되어 있다. 후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시상을 거쳐서 전달된다.
시상 바로 아래에 시상하부가
있으며, 이는 음식섭취, 내분비활동, 수분상태, 성주기, 그리고 자율신경계를 통제하는
중추이다. 수술중에 시상하부를 부드러운 스폰지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급격한
체온상승과 긴 혼수상태를 불러올 수 있다. 시상하부는 또한 피로, 배고픔, 분노,
침착함과 복잡한 동기 상태를 담당하는 중추이기도 한다. 고양이의 시상하부중 한
부위를 전기 자극하면 고양이를 화나게 만들 수도 있다. 다른 부위를 자극하면 아주
온순한 고양이로 만들 수 있다. 결국 시상하부는 정서를 동반하는 행동에 대하여
관현악 작곡가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시상하부 자극으로 으르렁거리고
할퀴고 했던 고양이가 진짜로 화가 났던 것일까? 시상하부에 관련된 실험들은 그렇지
않다고 제안한다. 시상하부의 전기자극으로 인한 분노는 '악어의 눈물' 과 같다.
즉 그것은 '가짜 분노 (sham rage)' 이다. 왜냐하면 전기자극을 주자마자 다른 이유가
없어도 즉시 분노를 그치기 때문이다. 시상하부에서 내려오는 섬유로에 종양이 있는
환자들이 보이는 공격행동도 이러한 '가짜 분노' 인 셈이다.
시상하부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그 무게는 4 g 정도로 전체 뇌 무게의 1/300 도 못 된다. 시상하부의
표면적은 전체 뇌용량의 1 % 도 채 안 된다. 그러나 이처럼 작은 구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시상하부는 신체의 극히 중요한 활동들을 조절하는데 관련된다. 시상하부의 경우를
보면 뇌란 그 크기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다.
시상하부 위에 있으면서, 시상하부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 변연계 (limbic system : 'limbus' 란 라틴어로 변두리, 경계라는 뜻이다) 인데, 이는 대뇌피질 구조물들의 경계가 된다. 변연계는 시상하부와 마찬가지로 정서적 사건에 관련된다. 변연계는 시상하부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것은 캔버스 없이 그림을 액자에 걸려는 것과 같다. 페입스 (James Papez) 는 변연계에 정서를 담당하는 신경회로가 형성되어 있다고 처음 제안한 사람으로서 다음과 같이 이 회로를 설명하고 있다.
대뇌피질과 시상하부 사이에 연결이 있어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정서가 의식에 이르기도 하고 사고가 정서에 영향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설명을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자. 관리인이 보일러를 꺼뜨려서 아파트가 매우 추워지면, 우선 여러분의 시상하부는 피부의 혈관을 수축시켜 신체의 열을 보존하려고 할 것이다. 동시에 대뇌반구는 논리적 추리를 시작할 것이다. 이 건물의 난방은 관리인 책임이며, 관리인이 일을 제대로 못해서 아파트의 난방이 안 되서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동시에 변연계는 이 상황에 대한 정서적 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관리인의 부주의에 대한 분노와 일을 발로잡기 위한 결심). 대뇌피질과 변연계의 상호작용은 열이 다시 들어오게 하려는 행위를 일으킬 것이다. 즉 관리인 사무실에 내려가서 그를 혼내줄 것이다.
이전에는 인간 뇌의 기능에 대한 비유로 군대식 위계질서가 주로 이용되었었다. 전뇌 (혹은 대뇌반구) 는 전략과 목표를 세우는 기관으로 여겨졌다. 변연계는 시상하부와의 연결을 통해 목표달성에 필요한 정서적 활력을 일으키는 곳으로 생각했다. 이들은 함께 뇌간 (중뇌, 교, 연수) 으로 자신의 명령을 전달하며, 이는 다시 뇌의 보병인 척수로 전해진다. 척수가 할 일은 단순히 복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비유는 당시의 사회적 가치관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2 차 대전 당시 군대식 비유가 가장 유행했기에 이러한 비유가 생긴 것이다. 요즘의 우리는 좀더 평화주의자들이어서, 우리의 머리 속에 작은 군대가 있다는 생각은 전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서로 맞물리고, 상호의존적인 위계를 가진 관료조직의 개념을 더 좋아한다. 어떤 조직에 비유하든지간에, 모든 조직에는 구성원들끼리 연결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군대에서는 부관이 이러한 일을 하며, 시민사회에서는 공보활동 전문가가 이러한 일을 한다.
뇌에서 이러한 지원역할을
하는 것은 기저핵 (basal ganglia) 이라고 하는 구조로서, 몇 개의 중추들이 모여
있는 구조물이다. 공보활동가가 그렇듯이, 기저핵도 뭔가가 잘못된 경우에만 드러난다.
즉 잘 작동하고 있다고 믿는 기계에 돌연한 사고가 생겼다면 이는 기저핵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경험이 없는 배우에게 여든살된 노인스러운 역을 해보라고 하면,
서투른 연기를 하게 될 것이다. 꾸부정한 자세, 부자연스러운 동작, 얼굴과 손의
떨림, 힘들어하는 느린 말투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상적 노인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 배우는 정상 노인이 아니라, 병든 노인, 즉 기저핵에 문제가
있는 노인을 표현한 것이다.
독일어로 소뇌 (cerebellum) 를 'kleinhirn' 이라 한다. 이는 작은 뇌라는 뜻이다. 소뇌의 무게는 전체 뇌무게의 1/8 정도이다. 시상하부처럼 크기로 그 기능을 가늠할 수 없는 중요한 뇌부위가 바로 이 소뇌이다. 소뇌가 없다면, 지금 종이에 이글을 쓰고 있는 나의 동작을 조절할 수 없을 것이다. 책을 읽는 여러분은 책을 들고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소뇌의 훌륭한 기능을 알아보고 싶다면, 발레공연을 가보거나, 테니스 선수의 경기를 보거나, 피아니스트의 손놀림을 관찰해 보라. 껌을 씹으면서 걸을 수 없었던 전직 미국 대통령이 있었다고들 하는데, 만일 그것이 정말이라면 그의 소뇌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인간 뇌의 주요부위에 대한 대략적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17 세기 이후 지금까지 많은 신경과학자들이 되도록 자세히 인간의 뇌를 그려보고자 노력해 왔다. 그러나 완전한 전체 모습을 그려낸 사람은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려보도록 하자. 지금까지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땅위에서 활동하면서부터 중추신경계는 척수, 뇌간 (연수, 교, 중뇌, 간뇌), 소뇌, 대뇌반구로 이루어졌다. 척수는 연수로 이어지며, 연수는 교로, 교는 중뇌로 중뇌는 간뇌로 이어진다. 교와 중뇌를 뒤에서 감싸고 있는 것이 소뇌이다. 기저핵은 대뇌반구 아래에 묻혀 있으며, 모든 다른 구조물들과 복잡하게 상호연결하고 있다. 그리고 뇌간 위쪽을 싸고 있으면서 뇌간과 대뇌반구를 구분해 주는 것이 변연계이다.
기능적 측면에서 설명해 보면, 뇌는 다음과 같이 배열되어 있다.
척수는 피부와 근육으로부터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며, 움직이기 위한 운동명령을 내보낸다. 뇌간은 척수의 연장으로서,
머리와 목의 피부, 근육으로부터 정보를 받고, 머리, 목의 근육을 움직이게 한다.
그밖에 뇌간에는 후각과 시각을 제외한 청각, 균형감각 등 우리의 모든 감각에 대한
중추들이 자리하고 있다. 후각과 시각은 각각 변연계와 대뇌피질로 직접 연결되며,
그렇기 때문에 후각과 시각은 인간에게 보다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사령관에게
직접 보고하는 셈이다.
소뇌와 기저핵은 신체 움직임을 통합하고 조절한다. 간뇌
(시상, 시상하부, 그밖의 구조물들) 는 위로 전달하는 감각정보와 운동의 중계소이다.
여기 (시상하부 내) 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체온, 혈압, 심박율, 호흡 등의
신체적 과정들을 통합하는 중요한 영역이 있다.
대뇌반구는 고도의 사고기능과
운동기능에 관여한다.
이책에서 논하게 될 모든 내용과 인간의 뇌에 대하여 신경과학자들이 배우게 될 모든 내용은 이상의 기본적 배열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인간 뇌의 특징에 대한
통찰 (insight) 은 그리스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중 뛰어난 관찰자였던 갈렌
(Galen) 은 서기 2 세기의 그리스 의사로서, 가축과 원숭이의 머리를 해부하여 뇌의
구조물들을 연구하였다. 그는 말년에 고향 페르가몬에서 검투사들을 돌보는 의사로
지냈는데, 이것이 그에게 뇌의 손상에 따른 결과를 알아볼 수 있게 해준 기회가 되었다.
저서와
가르침을 통해서, 그는 뇌가 아니라 심장이 사고와 감정의 중추라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공격하였다.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갈렌은 원시적 실험을
행하였다. 그는 뇌에 압력을 가하면, 동물을 마비시킬 수 있지만, 심장에 압력을
가하는 것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의 호기심은 다른 그리스 사람에게
전해지지는 못했다. 뇌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의 생각은 그와 함께 매장되어 버렸다.
이후 수천년 동안 뇌에 대한 이해는 거의 진전이 없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모든 생명체가 우주의 공기 (대기 : pneuma) 로부터 생명력을 얻는다고 믿었었다.
성장, 움직임, 사고까지 이 공기의 변화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에 있어서
이러한 변화는 어떤 정교한 체제에 의해 일어난다고 여겼다. 음식을 섭취하여 장에서
흡수된 후 간으로 가서, 그곳에서 자연의 혼 (natural spirit) 이 불어 넣어진다고
생각했다. 혼은 거기에서 마음으로 옮겨지고, 마음에서 생명의 혼 (vital spirit)
을 얻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것이 뇌로 들어가서, 뇌실 내에서 동물의 혼 (animal
spirit) 으로 바뀌게 된다고 생각했다.
동물의 혼이라는 것이 뇌 안에 존재하며,
속이 빈 신경섬유들의 거대한 연결망을 통하여 신체 전체로 퍼져간다는 생각은 16
세기까지 계속되었다. 각 뇌실은 한 가지 이상의 뇌기능을 저장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14 세기초부터, 이탈리아의
의학교들은 인간의 신체를 해부할 수 있도록 허가받았다. 처음에는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 소수의 유능한 해부학자에게만 허용되었다. 한 예로 볼로냐대학에서는 매년
남자 1 명과 여자 1 명을 해부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이후 사정이 차츰 자유로워졌으며,
마침내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이 의사가 아닌 사람들도 해부를 할 만큼 널리 보편화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00 구 이상의 시체를 해부했다고 한다).
다 빈치는
1504 년 황소의 뇌를 밀랍으로 형을 떠본 후, 제 1 뇌실은 상상력과 상식에 관련되며
제 2 뇌실은 추리를, 그리고 제 3 뇌실은 기억을 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이들은 제 1 뇌실이 5 개의 감각기관과 가까이 있으므로,
공통감각 (common sense, sensus communis) 의 뇌실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7 세기까지는 뇌구조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볼 수 있도록, 자세한 뇌해부 자료들이 조금씩 수집되었다. 처음에는 뇌를 포도주통에 담가둠으로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화학물질을 이용하여, 다른 부분은 단단하게 하면서 일부분만 부드럽게 만드는 방법도 개발되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대뇌피질에서 시작하여 척수로 내려가는 섬유들을 추적해 볼 수 있었다. 또한 뇌는 동질적인 하나의 구조물로 된 것이 아니라, 그 표면위를 회백질의 층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회백질 밑에는 거대한 백질 덩어리 (신경섬유들) 가 있으며, 그 안쪽 깊숙이에는 피질하 회백질 구조 (기저핵) 가 섬과 같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진보에도 불구하고, 정신활동에 있어서 뇌의 지대한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었다. 일부에서는 심장이 더 우월한 기관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이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심장이 멈추면 몸이 차가와진다. 즉 심장이 열을 만드는 셈이라는 것이다. 심장에서 나오는 혈관들의 배열 또한 심장이 영혼을 담고 있는 곳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듯이 보였다. 요컨대 생명 (anima) 이란 라틴어로 '영혼 (soul)' 을 뜻하는 말이며, 심장은 신체에 생명을 주는 것 (animator) 으로 여겨졌다.
1616 년까지도, 혈액순환을 발견한 하비 (William Harvey) 조차 심장과 뇌의 어느 것이 더 '고귀한 (honorable) 기관' 이냐 하는 문제에 대하여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못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뇌는 모든 부위의 왕자가 되는 듯하다. 그러나 심장의 영향력은 매우 커서 심장의 중요성을 반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럴 듯한 뇌가 없는 생물이라도 심장은 있기 때문이다.
1664 년 윌리스 (Thomas Willis) 는 《뇌의 해부학 (Cerebri Anatome)》이라는 저서를 출판하였으며, 책의 그림은 런던의 성 바울 성당을 건축한 렌 경 (Sir Christopher Wren) 이 맡았었다.. 윌리스와 렌은 인간뇌를 연구하는 사람들 중 가장 뛰어난 한 팀이었을 것이다. 윌리스는 뛰어난 해부솜씨와 뇌를 연구하려는 열망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정밀하게 해부하여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뇌간에 대한 지식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옥스포드에서 'Sheldonian' 극장의 설계에 착수하고 있던 렌은 당시 동물의 혈류에 물질을 주입시키는 방법을 개발해 내었다. 이 혁신적 방법은 인간에서 최초의 성공적 수혈을 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뇌에서의 혈액공급을 밝히는 유용한 방법이 되었다. 윌리스와 렌은 인디아 잉크롤 섞은 보존액 (대개는 포도주) 을 뇌로 올라가는 혈관에 주입하였다. 그 결과 혈관의 모습이 놀랍도록 잘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 알아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윌리스가 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던 부위를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1664 년 윌리스는 뇌구조물 자체보다 뇌실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주장을 제압시켜 버렸다.
우리가 뇌실에 대해 언급한 것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이들은 바깥쪽 경계가 접히면서 생긴 공간에 불과하므로, 빈 우주공간을 헤매는 천문학자처럼 이 빈공간을 너무 많이 논할 필요는 없다.
윌리스가 액체로 찬 뇌실보다 뇌구조물을 더 강조한 것은 현대 신경과학이 발달할 수 있게 해준 중요한 계기였다. 《뇌의 해부학》에 실린 렌의 그림들은 오늘날에도 표준이 될 만큼 매우 정확하다. 그러나 렌의 그림에 대한 윌리스의 설명과 해석은 역사적으로 그만큼 칭찬받지 못했다. 두 개의 대뇌반구와 같은 뇌구조물이 윌리스에게 군대적 비유를 떠올리게 하였다.
뇌는 성과 같아서 많은 탑과 방어장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매우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져 있다.
또다른 비유는 지리학적인 것으로, 그는 뇌가 동맥에 의해 둘로 나뉘어져 있다고 설명하였다.
강줄기가 두 지방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뇌도 그렇게 되어 있다.
윌리스를 비판해 보기 전에, 우선 각 시대마다 뇌에 대한 비유가 어떻게 발달되어 왔는지 알아 두는 게 좋겠다. 1930 년대와 40 년대에 뇌는 전화교환대에 비유되었다 (그 당시 전화는 가장 첨단의 통신수단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뇌를 컴퓨터로 설명한다. 이제 살펴볼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뇌는 성도 아니고, 동물의 혼을 나르는 통로도 아니며, 컴퓨터도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에서 뇌와 닮은 것은 없다. 뇌는 그냥 뇌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단순한 비유와 유추를 이용하여 뇌에 대한 이해를 제한시켜서는 안 된다. 그 대표적 예로 뇌의 이해에 해를 끼쳤던 것으로 18 세기 후반 신경과학자인 골 (Franz Josef Gall) 의 비유를 들 수 있다.
골은 뇌를 마음 (mind)
의 기계라고 믿었으며, 그래서 뇌에는 타고난 기능들을 담당하는 중추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두개골의 불룩불룩한 부분들에 이러한 중추들이 많이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그가 어렸을 때 본 바에 의해 기억력이 좋은 아이들이
대개 눈이 튀어나와 있었던 기억과도 연관시키려 하였다. 그는 정신적 기능을 신체적
특징으로 알아볼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고자
병원, 학교, 교도소, 수용소 등을 찾아 다녔다. 어느 곳에서건 그는 예외적인 재능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형인 두개골을 가진 사람들이 그에게
특히 중요했다. 그는 평생동안 두개골을 보고 뇌를 이해할 수 있다는 신념에 몰두하였다.
수많은 '두개골의 융기 (skull bumps)' 를 관찰하면서, 골은 골상학 (phrenology)
이라고 하는 사이비 과학을 확신하였다. 그는 정신의 모든 기능, 지능과 도덕적인
것까지 모두 뇌에 있는 개별적인 '기관' 혹은 '중추' 에 의해 통제된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오늘날의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엉터리라는 것을 안다. 두개골만 만져보는 것은 뇌를
이해하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많은 정신지체 환자들이 큰 뇌를 가지고 있기도
하며, 천재성이 뇌의 크기나 모양과 상관될 수는 없다. 그러나 윌리스가 뇌실에 비해
뇌 구조물의 중요함을 인식한 이후, 골이야말로 인간의 뇌를 바라보는 입장에 지대한
변화를 불러일으킨 사람이다. 그가 골상학을 신봉한 이후로, 많은 신경과학자들이
그의 생각을 취했으며, 뇌구조에 대한 현재 우리의 지식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뇌의 기본단위인 뉴런을 연구해야만 했다.
신체를 이루는 것들 중 귀족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것은 문어의 발과 같은 외부세계로 뻗어 있는 거대한 팔들을 가지고 있어서, 항상 숨어 있는 물리적, 화학적 힘들을 감시한다.
이것은 19 세기 스페인의 화가이자 신경과학자인 까할 (Santiago Ramón y Cajal) 이 신경세포를 묘사한 것이다. 이런 시적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은 뉴런을 특수한 은 처리에 의해 선택적으로 염색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방법으로는 뉴런 100 개 중 한 개 정도밖에 관찰할 수 없었지만 뉴런 전체의 모습을 그 돌기들과 함께 알아볼 수 있었다.
초기의 신경조직학 (뇌의 미시적 구조를 연구하는 학문) 에서는, 신경세포들이 서로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는지 아니면 뇌의 모든 세포들이 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 열띤 논쟁이 있었다. 또다른 유명한 신경해부학자인 골지 (Camillo Golgi) 는 후자의 이론을 지지하였다. 까할은 뉴런들이 따로 분리되어 있다는 입장쪽이었다. 그는 밤새도록 현미경을 들여다본 후, 침대곁에 두었던 그림판에다 자기가 본 뉴런을 그렸다.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그의 그림은 뉴런이 독립적 구조로서 '신체조직 중 귀족' 임을 보여 주고 있다. 마침내 까할은 신경세포들 간에 간격 (시냅스) 이 존재함을 실증해 보임으로써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해답을 제공하였으며, 망이론을 영원히 축출해 버렸다.
신경세포는 핵 (nucleus) 을 가진 세포체와 축색이라는 긴 섬유, 그리고 다른 신경세포를 향해 뻗어 있는 많은 수상돌기 (dendrite) 로 이루어져 있다. 수상돌기의 기능은 그 뉴런의 표면을 늘려서 그 뉴런이 다른 세포들의 영향을 더 잘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신경충동은 세포체에서부터
긴 축색을 따라 전해지며, 다른 신경세포의 수상돌기나 세포체에서 종결한다. 인간의
뇌에는 최소한 100 억 개의 뉴런이 있으며, 그 각각은 천 개 이상의 시냅스를 형성하고
있다. 시냅스는 신경세포들이 접촉하는 지점이다. 대뇌피질에 있는 일부 세포에서만도
약 20 만 개의 연결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뇌 뉴런 시스템의 광대한 네트워크
내의 전체 연결 갯수는 실로 천문학적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내 입자들보다도
더 많다.
그러나 신경세포들간의 해부적 연결로는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신경섬유를 따라 전달되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뇌에서
정보가 어떻게 이동되는가? 역사적으로 두 가지 견해가 있었다. '동물 전기' 라는
형태로 전기적 충격에 의해서 뉴런들이 통신한다고 믿는 부류와 화학적 전달자를
통해 연락한다고 믿는 부류가 있었다. 현재 우리가 알기로는 부분적으로는 양자 모두가
옳다. 뇌에서의 통신은 그러므로 전기화학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통찰은
옛날에 '성스러운 병' 으로 일컬었던 간질을 관찰함으로써 얻어졌다.
간질발작의 모습을
처음본 사람은 그 장면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한순간 모든 것이 조용해진다.
그리고 갑자기 모든 것이 와해된다. 혼란과 공포와 전율이 계속된다. 어떤 사람들은
얼굴을 돌려 버리고, 어떤 사람들은 도와 주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
또 어떤 사람들은 꼼짝않고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바닥에 쓰러져서는 비명을 지르면서
갑자기 무의식 상태가 되며, 경련이 일어나면서 심하게 몸이 뒤틀린다. 더 심하게
경련하다가 갑자기 시작한 것처럼 갑자기 발작이 끝난다. 전형적인 간질발작은 수초
동안 지속되며, 1 분을 지나는 법은 거의 없다.
오늘날까지 신경과학자들은 왜
어떤 사람들에게는 발작이 일어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 간질의 원인이 뇌 깊숙히 묻혀 있으며, 뇌구조의 이상한 변화가 그 원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간질이 영웅이 지닌 중요한 특성으로 간주되었던 재미있는 역사적
실화도 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도 이 병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그가
카리스마적 존재가 될 수 있는데 일조를 했다. 대부분의 그리스 사람들은 간질이
신이 주는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또다른 그리스 사람들은 좀더 냉소적이었다.
이 질병은 신성한 것이 아닐 것이다.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이 병도 자연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은 신성하다고 생각해 버린다. 만약 알지 못하는 것을 모두 신성하다고 한다면, 신성한 것의 끝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의 말이다.
그 이후시대에도 간질에 대한 이상한 생각들이 있었다. 한 예로 달이 발작의 재발에 영향을 줘서 많은 간질발작이 보름때 일어난다고 믿었었다.
인간의 피는 효과적인 해독제라고 여겨졌다. 역사가 대 플리니 (Pliny the Elder)
는 간질병자들이 죽어가는 검투사의 입에서 피를 빨아먹음으로써 자신들의 고통을
없애고자 했다고 적고 있다.
그리스 의사였던 갈렌은 뇌실 내에 차가운 체액 (냉담과
우울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이 고여 있기 때문에 간질이 생긴다고 믿었었다. 간질환자들이
바닥에 갑자기 쓰러지는 경향 때문에 그걸 본 어떤 사람이 스러짐 (caducus) 이라는
말을 떠올렸으며, 그후 간질병을 쓰러지는 병 (passio caduca)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관찰들에 근거하여 한 가지 특별한 치료가 소개되었는데, 그것은 그 병을
겨우살이로서 치료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치료법의 근거로는 그 나뭇잎의 성질에
있었는데, 가을에 겨우살이 잎들은 다른 잎들처럼 땅에 떨어져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후 1000 년 동안 간질에 대한 이해는 거의 이런 식으로 진전되었다.
르네상스 시기에 간질환자들은 마법사들처럼 화형에 처해졌다. 수백년 후에도 메사츄세츠주
'Salem' 에서 간질환자들에게 '악인' 이라는 이름이 다시 붙여졌으며, 이때에도 간질환자들은
마녀나 악마와 연결되어 있다는 근거없는 주장 때문에 화형에 처해졌다. 17 세기
중엽이나 되서야 오늘날 우리가 간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 근접한 생각이 소개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인류는 그 전에 전기와 생물학에서 전기의 역할을 알아야만 했었다.
전기를 내는 동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집트 시대부터 알고 있었다. 이집트 무덤 벽에 그려진 낚시하는 장면에는 나일 전기 메기가 나타나 있으며, 이들은 450V 이상의 쇼크를 일으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전기 물고기의 힘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수필가 몽테뉴는 전기 물고기의 방전에 의해 '감전된 경험' 을 최초로 언급한 사람이다.
메기는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만지는 사람을 기절시킬 뿐 아니라 그물을 통해서 그물을 잡고 있는 사람의 손까지도 전달되어 손을 저리게 만든다 ... 이것은 놀라운 힘이다.
살아 있는 조직이 전기에
반응한다는 사실이 18 세기 후반 이탈리아 해부학자 갈바니 (Luigi Galvani) 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전해오는 얘기에 의하면, 그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이를 발견하였는데,
그중 일부는 엉뚱하게도 그의 아내 루치아가 준비한 저녁 파티에서 수행되었다. 만찬
후, '실험' 은 식탁 위에 놓인 해부된 개구리를 가지고 했는데, 개구리의 머리에서부터
발코니의 철막대까지 전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개구리의 다리에서 근처 우물로 연결된
전선도 있었다. 이처럼 괴상한 전선연결은 천둥번개가 있기 바로 전에 서둘러 마련되어야
한다. 번개가 치면 개구리의 근육은 홱하며 움직였다. 이를 본 갈바니와 손님들은
경탄해마지 않았다!
또다른 실험에서 갈바니는 개구리의 다리근육을 잘라내서
절단된 다른 근육에 연결시켰다. 그러자 두번째 근육이 움직였다. 그는 번개의 전기와
같은 것이 신경조직에 담겨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이것을 '동물전기' 라고 불렀다.
그는 신체 내 전기력의 원천이 뇌이며, 후에 퍼져 나가기 위하여 신경에 이 힘이
저장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생각은 그 당시의 사고와 어울리는 것이었다.
즉 전기란 흘러가는 미묘한 액체라는 것이다. 1820 년대 전류계가 처음 만들어지고
나서야 뇌조직에 약한 전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전류의 발생과 전달은 대서양에서 잡히는 오징어를 연구함으로써 1930 년대 자세히 밝혀지게 되었다. 이 오징어의 헤엄치는 구조인 거대한 관통형의 기관은 인간의 가장 큰 신경섬유보다 몇 배나 굵은 거대 축색을 가지고 있다. 이 축색에 전극을 삽입하여 안정시에 뉴런의 막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이 다르게 전기충전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즉 바깥쪽이 +, 안쪽이 - 로 충전되어 있다. 신경세포들 간의 모든 의사소통은 이와 같은 기본적 안정전위를 변화시킴으로써 일어난다. 예를 들면 접촉은 피부수용기에 의해서 다음과 같은 식으로 변형된다. 피부수용기의 압박은 전기 에너지를 일으키며, 이것은 수용기를 따라 전달된다. 이것이 발생기전위 (generator potential) 로서 이는 순전히 국소적 사건이며 멀리 갈수록 쇠퇴해진다. 발생기전위는 원래 자극의 강도에 따라 그 크기와 전달거리가 다르다. 가벼운 접촉은 약한 신호를 일으키며, 좀더 넓은 피부영역을 좀더 강하게 누르면 더 강한 발생기전위가 일어난다. 그렇게 생긴 전위가 충분히 크다면 활동전위 (action potential) 가 격발된다. 활동전위는 빠르게 진행되며, 신경섬유를 따라 진행되어도 그 전기적 에너지가 감소하지 않는다. 뇌에서 통신의 기본기제가 되는 이 활동전위는 전기적 충동이 빠른 속도로 멀리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한다. 국소적 발생기전위가 활동전위를 일으킬 수 있는지의 여부는 적당한 흥분수준에 도달했는지에 달려 있다.
정확히 꼭 같은 뉴런은 없다. 이들은 모양도 다르며 발화하는데 필요한 역치수준에 있어서도 다르다. 뉴런은 자신의 안정역치를 넘을 때에만 스스로 전기적으로 동작한다. 자극이 너무 약하다면 그 뉴런은 활동전위를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뉴런의 수상돌기 중 일부는 활성화를 더욱 일으키기 어렵도록 하지만, 다른 수상돌기 접합들은 '흥분적 (excitatiory)' 이어서 활동전위를 일으키기 쉽도록 한다. 어떤 경우에는 많은 흥분성 영향들과 억제성 영향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그 뉴런이 그대로 안정수준에 머물러 있기도 한다.
이제까지 살펴본 뇌에서의
정보전달은 컴퓨터 내부에서의 연결들과 매우 흡사해 보인다. 여러 세포는 전선과
같이 상호연결된 섬유들의 네트워크를 통하여 서로서로 얽혀 있다. 그러나 컴퓨터와의
비유는 곧 허물어진다. 신경신호는 시냅스 간격이라고 하는 100 만분의 2 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틈을 건너가야만 한다. 어떤 신경세포로부터의 메시지가 전기적 신호에서
화학적 신호로 바뀌는 곳이 바로 시냅스 간격이다.
뇌에는 10 조 내지 100 조의
시냅스가 있으며 이들 하나하나는 전기적 충동으로 도착한 신호들을 셈하는 작은
계산기처럼 작동한다. 첫번째 뉴런을 따라 충분한 신호가 도착하면 이것이 소낭의
형태로 시냅스 전막에 저장되어 있던 화학적 신경전달물질 (neurotransmitter) 을
방출시킨다. 신경전달의 구조적 단위인 소낭 (vesicle) 들은 작은 무더기를 이루어
방출된다.
거의 불규칙한 방식으로 떠다니는 소낭들로 점점이 채워진 시냅스 전막 (presynaptic membrane) 을 상상해 보라. 활동전위가 도달하면 소낭들은 저장하고 있던 신경전달물질들을 시냅스 간격으로 방출한다. 그러면 신경전달물질들은 두번째 세포의 세포막 즉, 시냅스 후막에 있는 해당 수용기로 건너간다. 거기에서 또다른 계산이 수행된다. 건너온 신경전달물질 무리는 시냅스 후막에 있는 특정 수용기 (receptor) 에 배정된다. 신경전달물질은 각각 자신의 고유한 수용기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세틸콜린에는 아세틸콜린성 수용기가 있고, 노어에피네프린에는 노어에피네프린성 수용기가 있다. 이런 식으로 뇌에서의 메시지 부호가 변화되며, 하나의 신경세포에서 다른 신경세포로 이동함에 따라 전기적 신호에서 화학적 신호로, 그리고 다시 전기적 신호로 바뀌어간다.
신경전달 (neurotransmission)
은 단순한 신경 '자극' 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이다. 시냅스를 건너 다른 세포로 전해지는
모든 신호가 다발화명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신호에는 두번째 세포를 좀처럼
발화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억제적 신경전달물질도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흥분보다는
억제가 고등생물의 뇌가 보이는 특징이다. 만약에 수십억 개 정도의 일부 뉴런들이
동시에 발화 (firing) 한다면, 우리는 장시간 간질발작으로 고통받게 될 것이다.
간질을 다루는 방법 중 하나는 뇌에서의 억제의 양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신경전달을
복잡하게 하는 또다른 이유는 신경계에는 많은 중복연결이 있다는 것이다. 많은 세포들이
특정 신호를 처리하기 위해 협업한다. 이들 뉴런 중 적은 일부가 없어진다 해도 별
영향은 없을 것이다. 그보다 좀 많은 일부가 없어지더라도 미미한 변화만 일어날
것이다. 결국 어떤 특정한 수이상의 뉴런이 상실되어야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능력에 손상을 주게 될 것이다.
뉴런들은 여러 가지
과정들에 관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뉴런들은 종종 스스로 발화하여 신경전달물질을
시냅스 간격으로 예상치 않게 방출한다. 이러한 우연한 사건은 뇌전체 기능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지만 뇌에는 섬세한 균형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의
결과는 신경충동들의 통행이 예상할 수 있는 것과 예상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안정적인
것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섞여 버린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감각의 세계는 고전
물리학에서 설명하는 규칙에 잘 맞아 떨어진다. 그러나 분자 이하의 수준에서는 분자
이하 입자들의 본래의 임의성 때문에 예측성이 떨어진다. 뇌에서 전반적인 기능은
최소한 기본감각과 같은 일부 간단한 과정에 대하여는 상당히 잘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수백만 혹은 수십억의 뉴런들이 동시에 참여하는 과정을 밝히고자 한다면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뇌구조는 우리의 복잡한 정신기능과 충실히 상응하고 있다. 우리의 행동중 일부는 매우 순간적인 반응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면 방바닥에 떨어진 압정을 밟는 즉시 발을 움츠리는 것과 같은 행동이 그것이다. 또 어떤 행위들은 평생동안 생각해야 하는 것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통일장 이론을 알아내기 위하여 30 년 이상을 씨름하였다. 이 둘 사이에는 힘과 정확함과 임기응변성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변이가 있는 것이다. 이중에는 태권도 유단자의 걷어차기와 같은 동작도 있으며, 시계 수리공의 세밀하고 정확한 기술도 있다. 우리의 뇌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범위의 다양한 반응들을 수행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 시작하고 언제 멈추는지를 알아야 하며,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적은지 얼마나 빈번한지 얼마나 강한지 얼마나 약한지를 재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장 큰 신경섬유는 초당 100 m 의 속도로, 즉 시속 360 km 에 가까운 속도로 신경충동을 전도시킨다. 다른 신경들은 좀더 느려서 초당 25 ~ 30 m 의 전도속도를 보이며 시속 100 km 정도 (이는 고속도로 제한속도 정도) 를 넘지는 않는다. 그러나 뇌에서의 전도중 가장 빠른 것도 제트 비행기나 전자의 이동보다는 느리다. 이들과 비교해 보면 뇌 그 자체는 놀랄만큼 느린 셈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우리보다 너무 앞서 있지 않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의 근육이 수축할 시간도 없이 발을 내디뎌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뇌의 반응성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평균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환경' 에 맞춰진다. 따라서 뇌는 언덕에서 뛰어내려와 달려들려고 하는 호랑이를 대처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봉급과 함께 날아온 '유감스럽지만 당신의 수고가 더이상 필요치 않습니다' 라는 해고통지에 대하여도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 분노, 유머, 때에 맞는 반응들 - 이 모든 것들은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상황들이기 때문에 뇌가 그것들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환경이 요구하는 광대한 범위의 상황들이 우리 뇌구조와 상관될 것이라는 기대는 불합리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전도가 빠른 섬유들, 느린 섬유들, 흥분시키는 신경화학물, 억제시키는 신경화학물, 촉진자로 작용하는 다른 신경화학물들, 그리고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는 화학물들도 있을 것이다.
뇌와 같이 100 억에서 1000 억 개나 되는 세포들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 단세포로부터 어떻게 발달될 수 있었을까?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이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쉽게 대답해 버린다. 이들은 프로그래머없이는 프로그램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다. 뇌의 발달에 대하여 '모든 것이 유전자에 있다' 하는 식의 설명은 또다른 문제점을 야기시킨다.
인간의 뇌에서 신경연결의 수는 1015 개 정도이다. 반면에 전체 유전정보는 약 105 개 정도이다. 이를 보건대, 분명히 내적 환경뿐만 아니라 외적 환경으로부터의 기여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의 인식은, 곧 우리의 모든 사고에 따라다니는 성가신 이원론인 유전과 환경의 문제 (nature-nurture problem) 를 불러온다. 유전 대 환경 ; 자유의지 대 결정론 ; 데카르트 이후, 마음 대 뇌. 이처럼 어려운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임신되는 순간부터 다른 신체기관의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주는 과정과 동일한 과정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임신 약 3 주가 될 때까지는 태아에게서 뇌 비슷한 것도 찾아볼 수 없다. 그후로 뇌는 중추신경계의 나머지 부분과 함께 태아를 싸고 있는 세포층에서부터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 층이 신경판으로서,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생긴 원래의 한 세포에서 도약하여 125,000 개나 되는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100 억이나 1000 억이 되려면 125,000 개의 세포로는 어림도 없다. 그렇다고 성급히 판단해서는 안 된다. 만리장성도 돌 한 개를 얹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았는가!
신경판 (neural plate) 은 접혀들어가서 속이 빈 관 모양의 신경관 (neural tube) 이 된다. 이 구조의 끝에서 뇌의 영역 중 가장 중요한 3 개의 부분이 부풀어오르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전뇌 (대뇌반구), 중뇌, 후뇌 (교와 연수) 가 될 부분들이다. 신경관 (중심관 central canal 이라고도 한다) 은 일생동안 남아 있게 되며, 이것이 뇌의 뇌실계 (ventricular system) 를 이루게 된다.
바람을 불어넣으면 토끼모양이나 어린이가 좋아하는 동물모습이 되는 부풀려진 풍선을 생각해 보자. 풍선에 바람을 넣기 전에는 그 평편한 표면이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다. 뇌의 형성을 이러한 풍선과 같이 생각해 보자. 물론 뇌의 경우 그 최종적인 모습은 중심관의 팽창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신경세포와 지지세포의 성장에 달려 있는 것이 다르긴 하지만, 풍선의 비유에서, 바깐쪽 막은 두꺼워지기 시작하며 내부공간보다 훨씬 커져서 결국에는 안의 공간이 풍선의 바깥벽에 비하여 매우 작아지게 될 것이다. 벽을 이루고 있는 뇌세포들은 계속 증식하여 위로 바깥으로 아래로 팽창한다. 그리고 중심관은 단순히 새로운 영역의 안쪽을 형성하면서 남아 있을 것이다.
뇌의 성장과 최종적인 형태는 뇌세포 증식에 달려 있는데, 이는 태어나기 전 9 개월 동안 매분 250,000 개의 새로운 뉴런이 만들어진다.
초기 발달단계에서 태아의 세포들은 피부가 될지, 근육이 될지, 혹은 다른 신체 부위가 될지 정해져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뇌세포가 될 부위의 세포를 떼어내어 다른 태아의 다른 부위에 이식시키면 그 이식된 곳에 맞게 변형된다. 일단 뉴런이 되기로 되어 있던 것도 내장 내벽이 될 세포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술은 단 며칠만 늦어져도 안 된다. 즉 며칠만 늦게 이식해도 이식된 신경세포는 어느 부위로 옮겨지든간에 신경세포로만 성장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임무수행 과정은 태아 초기의 한 층에서 방출되는 몇 가지 화학물들에 의해 일어난다.
신경생물학자인 켄델 (Eric Kandel) 은 인간 뇌에서의 세포성장과 발달에 대하여 경쟁적인 두 개의 이론을 언급하고 있다. 그중 한쪽은 '엄격한 구성주의자' 들로서, 이들은 '시냅스 형성을 관장하는 광범위한 유전적, 발달적 프로그램' 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들에게는 인간 뇌의 복잡함이나 정교한 신경연결들, 그리고 뇌발달의 놀라운 신속함 등이 모두 유전적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던 이유 - 신경세포 연결의 수가 유전자의 수보다 많다는 사실 - 때문에 '엄격한 구성주의' 의 입장은 인간의 뇌가 어떻게 발달하는지에 대한 많은 질문에 대하여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다른 한쪽은 '허용적 구성주의자들' 로서, 이들은 제한된 발달 프로그램만이 있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이 이론은 50 년전, 심리학자들이 뇌발달을 자극하는데 있어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입장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매우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이론인 것 같지만 세계 여러 곳의 다양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뇌가 똑같이 잘 발달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잘 답하지 못하고 있다. 극한적인 환경 (기아, 중독, 산소 결핍 등) 을 제외하고는, 인도의 뉴델리에서 시체해부를 하고 있는 신경병리학자나 뉴욕 5 번가에서 시체해부를 하는 사람들이나 자신의 해부용 시체에서 동일한 뇌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환경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모든 뇌가 아주 비슷하게 만들어져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뇌발달에 대한 '엄격한' 구성주의자와 '허용적' 구성주의자들의 입장은 인간이 뇌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관하여 처음 의문을 가진 이후로 수세기 동안 논쟁거리가 되었던 것 중 한 예에 불과하다. 한때는 신경과학자들이 뇌와 심장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에 대해서 다투기도 했었지 않은가. 그 얼마 후에는 뉴런이 하나의 세포인지 아니면 광대한 네트워크의 일부인지에 대하여 의견이 갈라지기도 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이러한 지식의 논쟁들은 보기에 따라서 둘다 옳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해결될 수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뇌가 '마음 (mind)' 의 자리라고 하더라도 어느 시간 이상 심장박동이 멈춘 경우 뇌, 심장 어느 것을 기준으로 사망을 판정해야 하느냐하는 문제는 학문적으로 중요한 것인데, 이는 특히 시체를 해부하는 병리학자들에게 관심있는 문제였다. 뉴런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서로서로 얽혀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신경과학자들은 과거든 현재든 반대편을 공격하면서 나중에는 너무 단순한 설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그 이론 하나만을 고집하게 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우리가 쉽게 길을 잃고 노벨상이니, 연구비니, 의장직이니, 자만이니, 권력욕이니 하는 것들의 가시밭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데에 있다. 뇌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다르진 않다. 그들은 자신이 옳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다르진 않다. 그들은 자신이 옳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하며, 선두가 되고자하며, 사람들 특히 동표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한다.
1906 년 까할 (Santiago Ramón y Cajal) 과 골지 (Gamillo Golgi) 는 생리학과 의학부문에서 노벨상을 공동수상하였다. 골지의 수상 연설은 까할에 대한 빈정거림과 함께 까할의 개별 뉴런 이론 (individual-neuron theory) 에 반대한다는 장황한 것이었다. 까할과 골지, 그리고 다른 '주창자들' 에게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면, 뇌에 관하여 논쟁이 있을 때 진리란 대개 양쪽 모두를 조화시켜서 얻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뇌발달에 대한 통합된 이론, 즉 허용적 구성주의와 엄격한 구성주의의 입장을 모두
포함하는 이론이다. 이러한 통합이 없이는 신경과학자들이 뇌가 성장하는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되도록 정확히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뇌발달 단계에서 첫단계는 신경관으로부터
세포들이 증식하는 것이다. 이들은 뉴런 또는 뇌세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지조직인
신경교 (glia) 들이다. 성장하면 신경교는 영양을 공급하고 뉴런들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뇌의 뉴런들은 원래 위치인 신경관 (후에 뇌실이 된다) 안쪽벽에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최종 자리로 옮겨간다. 때로는 굉장히 멀리까지 이동하기도 한다. 뉴런들은 세포체의 일부인 성장추를 주변으로 뻗음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이 추들은 방해되는 장애물들을 밀어내면서 그 세포가 자기 길을 가도록 한다. 대뇌피질에 있는 세포들은 신경관을 따라 있는 증식영역에서부터 피질면의 최종 목적지까지 뻗어 있는 특수 방사섬유들에 이끌려서 이동한다. 이러한 이동은 정확히 시간이 정해져 있으며 정밀하게 통제된다. 예를 들어 처음 도착한 섬유들은 한 층을 형성하며, 한편 나중에 도착한 것들은 피질표면 더 가까이에 자리를 잡는다.
이동 후에 뉴런들은 다음 단계 (발달과 성장단계) 로 들어간다. 일부 뉴런은 운동세포가 되며, 다른 일부는 감각세포가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일부 - 대부분을 차지하는 - 는 임무가 정해지지 않은 세포들로, 운동 뉴런과 감각 뉴런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기능적인 차이를 보이는 세포들은 성장율에서도 차이가 있다.
대뇌피질에 있는 큰 운동세포가 먼저 성숙하고, 다음에 국소 회로에 있는 뉴런들, 즉 개재 뉴런 (interneuron) 들이 성숙한다. 신경세포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비교적 짧은 기간 (인간의 뇌에서 약 100 일) 이 필요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 성숙은 평생동안 계속된다. 피질 뉴런의 성숙은 피질회로의 형성과 연관된다. 이들 시냅스 연결의 형성은 경쟁적 과정이다.
예일대학의 신경과학 교수인 쉐퍼드 (Gordon M. Shepherd) 에 의하면,
외부세계에 살아남기 위한 생물들의 경쟁은 내부세계에서 일어나는 뉴런들의 경쟁을 반영해 준다. 뉴런들은 외부세계에서의 경쟁에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 회로를 만들기 위해 내부에서 경쟁한다.
시냅스의 형성과 함께 뇌의 구성은 앞서 언급한 '허용적 구성주의자들' 의 입장과 일치하는 식으로 변해간다. 시냅스의 수가 증가하는 것은 더 복잡해짐을 반영하는 것이며 수상돌기 가시의 수가 증가하는 것과도 연관된다. 이 과정은 환경적 자극에 의존한다. 뇌로 들어가는 환경적 자극을 박탈한다면 가시의 수와 시냅스 연결의 복잡성이 감소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둠 속에서 동물을 기르면 그 동물의 시각영역에서 시냅스의 수가 감소한다. 박탈된 환경과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동물들의 뇌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더욱 극적이다. 장난감이나 미로를 만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대뇌피질을 두껍게 하고 시냅스 연결의 수를 늘릴 수 있다. 야생의 세계에서도 이러한 관계성을 찾아볼 수 있다.
사육된 동물들은 숲에서 자란 동물들보다 피질층이 얇다는 것은 찰스 다윈이 처음 관찰한 사실이다.
뇌발달의 환경적 영향에 대한 의존성은 놀랄 것이 못 된다. 동물과 인간에 대한 일상적인 관찰로도, 풍요롭고 자극적인 환경이 정신능력을 활발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각의 시냅스란 뇌의 발달 역사에 따라, 그리고 경험과 외부환경의 풍요로움, 감각경험의 다양함과 복잡함에 따라 뉴런들이 서로 연결하고 있는 내부 세계의 한 요소로 볼 수 있다. 일생에 걸쳐서 - 처음 몇 달 동안만이 아니라 - 뇌의 시냅스 조직은 외부환경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
출생시 인간 뇌의 무게 - 사산된 아기의 두개골에서 뇌를 꺼내어 저울에 달아보면 - 는 약 350 g 이다. 한 달 후에는 420 g 이 된다. 일년 후에는 어른 뇌의 무게인 1,400 g 의 반정도가 된다. 7 살이 될 때까지 뇌는 무게와 크기에 있어서 거의 어른과 같아지게 된다. 이때부터 뇌의 발달이란 뇌크기의 증가나 뉴런 갯수의 증가가 아니다. 더이상의 증가는 없다. 뉴런은 출생 후에는 더이상 분열하지 않는다. 뉴런들은 일생에 걸쳐 죽어가기 때문에 삶이란 어떤 면에서 점점 많아질수록 점점 줄어드는 것을 포함하기도 한다.
뇌의 발달과 성장은 여러 단계로 나누어질 수 있다. 이러한 '단계별 특징에 대한 연구' 를 통해 신경과학자들은 정상적 발달 동안 일어나는 과정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몽고증 (다운 증후군 : Down's syndrome) 의 경우, 수상돌기 가시들이 작고 가늘며, 그 수가 적다. 이는 수상돌기 가시의 모습이 시냅스 조직의 복잡성에 대한 지표가 될 수 있다는 단서이기도 하다.
보다 효율적인 뇌란, 뉴런간의 상호작용이 풍부하고 시냅스 연결이 증가된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렇다면 천재의 뇌를 뉴런 조직으로 구별해 낼 수 있을까? 현재로서 그 대답은 확실히 '아니오' 이다. 현재의 기술로는 그러한 구별을 할 수 없다. 단순히 뇌를 검사하는 것으로써 천재와 범인을 구분할 수 없는 이유가 몇가지 있다. 빈센트 반 고호의 '천재성' 은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천재성' 과 매우 다르다. 그림 그리는 데에는 고등수학과 물리학에서 요구되는 것과는 다른 뇌영역이 관련된다.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뇌에 구조적 차이가 존재한다면 이는 특정영역에서 피질의 상호작용이 다르다는 것과 관련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삼차원적 공간을 시각화하는 능력은 시각경험과 관련된 뇌영역 내에 시냅스의 복잡성이 증가된 것과 상관이 있을 것이다. '천재성' 을 다릴 설명한다면, 연합영역 - 감각기능이나 운동기능과 직접 관련되지 않는 대뇌피질의 일부 - 의 구성에 있어서의 변화에 촛점을 두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천재성' 이란 피질에서의 구조적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화학물질의 전달과 관계된 요인에 달려 있을 수도 있다.
바이올린 협주곡의 매력과 장엄함은 바이올린에 달려 있다기보다는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달려 있다. 제대로 선택되고 잘 조율된 바이올린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환경) 이라면 연주자가 최종적으로 음악작품의 질을 결정한다. 우리는 인간의 뇌를 공부하면서 반복해서 엄청나게 복잡한 신체구조물이다. 또한 뇌는 복잡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전기적 부호들, 신경화학 메세지들, 작지만 강력한 전자기장. 이중 어느 것이 뇌의 조직화와 발달에 가장 중요한 것일까? 이런 식으로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브란덴브르그 협주곡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 바하,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아니면 바이올리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