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생성

요술베틀 : Robert Jastrow 저, 최광복 역, 범양사 출판부, 1986 (원서 : THE ENCHANTED LOOM: Mind in the Universe, Simon & Schuster, 1981), Page 35 ~ 51.

포유동물 (젖먹이 동물) 의 직계 조상을 "포유류형 파충류"라고 하는데, 이것은 파충류에서 포유류로 진화하는 과정에 있는 중간 단계의 과도기적 형태이다.  이 동물은 매우 사납고 생존 경쟁력이 강하여 2억 5천만 년 전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5천만 년 동안 동물계의 왕좌로 군림하였다.  포유류형 파충류의 화석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본래 파충류 (악어나 도마뱀 같은 것들) 의 네 다리는 몸통의 밑에 붙어 있던 것이 아니고, 몸통 옆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몸을 떠받치는 힘이 약하였다.  따라서 파충류는 배를 땅에 대고서 배 옆으로 삐져나온 나리로 엉거주춤 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에 반하여 포유류형 파충류는, 다리가 몸통 밑에 위치하여 몸을 가뿐하게 떠받치기 때문에 상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있었다.  즉 빠른 걸음으로 달릴 수 있었으며 네 발로 기어다니는 파충류들을 쉽게 따라 잡을 수가 있었다.

포유류형 파충류는 네 다리를 땅에 받치고 꼿꼿이 서 있을 수 있었기 때문에 행동 양태가 파충류와 달랐다. 본래 파충류는 먹이를 찾거나 적을 피하는 위급한 경우가 아니면 하루종일 배를 땅에 대고 꼼짝하지 않는다.  파충류는 냉혈 동물이어서 하루종일 끊임없이 움직일 만한 에너지 (열량) 가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즉 에너지를 절약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포유류형 파충류는 하루 종일 먹이를 찾아 움직였으므로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였다.  사실 움직이지 않고 그냥 네 발로 몸체를 받치고 서 있는 자세라 하더라도 배를 땅에 대고 가만히 있는 자세에 비하면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서 있는 자세가 되기 위해서는 몸체와 다리의 근육이 항상 긴장되어 있어야 하고, 상체를 꼿꼿이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몸의 내부 구조가 계속적으로 많은 열량을 공급하는 동물 (온혈 동물) 이 아니면 땅을 발로 딛고 하루종일 꼿꼿이 서 있을 수가 없으며, 특히 몸을 재빨리 움직이는 것은 더욱이나 불가능하다.  이와같이 포유류형 파충류는 항상 몸을 움직였고 또한 가만히 서 있는 자세에서도 열량의 소비가 필요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체온이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즉 몸의 내부 구조가 냉혈에서 온혈의 상태로 옮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냉혈 동물인 파충류에서 온혈 동물인 포유류에로 진화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온혈 동물이 냉혈 동물보다 생존 경쟁상 유리하다는 것은 매우 명백한 사실이다.  밤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면 냉혈 동물인 파충류는 체온이 내려가서 움직일 힘 (열량) 이 없으므로 꼼짝없이 수면이나 반죽음 (동면) 의 부동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온혈 동물에로의 진화 과정에 있었던 포유류형 파충류는 계속적인 열량 공급으로 인하여 밤의 낮은 기온에서도 활동이 가능하였으므로 무기력한 파충류들은 이들의 밥이 될 수밖에 없었다.

포유류형 파충류는 또한 포유류의 특성이 모성애를 어느 정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오늘날 남아 있는 화석 자료에서 포유류형 파충류의 새끼가 어미의 옆에 누워 있는 뼈의 잔해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미의 모성애 즉 자손 보호의 본능은 지능이 낮은 상태의 파충류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새롭고 혁신적인 행동이었다.  대부분의 파충류는 모성애나 자손 보호의 본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  파충류가 알을 낳으면 그것으로 끝이며,  어미는 알을 버려둔 채 자기 갈 곳으로 떠나 버린다.  새끼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 혼자서 살아가는 자생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만일 어미 파충류가 자기가 낳은 새끼를 만나게 되면 이를 잡아먹는 경우가 많다.  (주석 : 악어는 예외이다.  그러나 뱀, 도마뱀, 거북 등 대부분의 파충류는 새끼에 대한 보호 본능이 없다.)  어떤 동물이든 자기가 낳은 새끼를 잡아먹으면 곧 멸종되어 버리겠지만 파충류는 한번에 매우 많은 알을 낳기 때문에 이런 악습 가운데서도 종의 번식을 계속하고 있다.

포유류형 파충류에게는 자손 보호의 본능이 있었다는 것을 현재 생존하고 있는 호주의 오리너구리 (platypus) 의 행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오리의 주둥이를 하고 있는 이 기이한 동물은 반은 포유류이고 반은 파충류로서 원시적인 포유류형 파충류의 살아 있는 화석이다.  오리너구리는 약 2억 년 전에 포유류에로의 진화 과정중에 있던 동물로서, 그 원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현재까지 살아 내려온 포유류형 파충류의 유일한 직계 후손으로 보인다.  오리너구리는 파충류처럼 알을 낳고 파충류처럼 걷지만, 포유류의 털가죽 (모피) 을 가지고 있으며 포유류처럼 온혈 동물이다.  그리고 오리너구리는 포유류같이 새끼를 보호하고 양육한다.

포유류가 자손 보호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포유류가 낳은 새끼의 수가 다른 생물에 비해 훨씬 적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출산하는 자손의 수가 적은 대신에 출산된 자손을 정성들여 기르는 것은 확실히 새롭고 혁신적인 종족 번식의 방법이다.  파충류는 한번에 수십 개의 알을 낳지만 포유류는 한번에 새끼를 몇 마리밖에 낳지 않는다.  그러나 포유류의 새끼는 스스로 자생하여 살 수 있을 대까지 어미의 극진한 보호가 뒤따른다.  수십개의 알을 낳고 이를 그대로 방치하거나 심지어 잡아먹기까지 하는 파충류의 습성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만치 발전된 자손 번식 전략이 아닐 수 없다.  포유류의 이 혁신적 종족 보존의 방법에서 자웅의 결합과 가족의 형성이라는 인간적 행동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포유류가 자손 보호의 본능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포유류가 온혈 동물이라는 점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온혈 동물은 항상 일정한 체온은 유지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갓 태어난 젖먹이 새끼는 연약하기 때문에 어미의 따뜻한 체온으로 감싸 주지 않으면 추위로 금방 얼어죽는다.  따라서 젖먹이 동물은 갓난 새끼를 따뜻하게 감싸 주고 보호해 주어야만 종족을 번식할 수가 있다.

어미의 따뜻한 보호를 받고 살아난 새끼는 유전의 법칙에 따라 자기의 새끼에게도 같은 보호를 제공해 준다.  포유류형 파충류 중에서도 자손 보호에 무관심한 종류는 자손이 살아 남을 확률이 낮아지므로 멸종을 당할 확률이 높았다.  따라서 자손 보호의 본능과 온혈성은 진화 과정에서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특성이다.  이 특성이야말로 냉혈 동물인 파충류에서 온혈 동물인 포유류에로 넘어가는 진화의 중요한 추진력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포유류의 여러 가지 특성 (온혈성, 일생 동안 낳는 새끼의 수, 자손 보호의 본능 등) 들은 상호 긍정적 효과를 통하여 더욱 심화되었고 발전되었다.  그러나 이런 특성의 발전 과정은 미리 짜여진 여정을 그대로 밟는 계획되어진 여행이 아니라, 가다 보니 그렇게 되었고, 하다 보니 그렇게 하였다는 식으로 자연발생적인 발전이었고 진화였다는 점이다.   즉 계획적이 아니라 실험적이었으며, 이 실험은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미지의 실험이었다.  다시 말해서 파충류의 특성에서 포유류의 특성에로 옮아간 것은 계획되어진 일정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 새로운 환경에 접하여 새로운 실험을 하다 보니 예상 밖의 좋은 결과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포유류형 파충류는 날로 번성하였고 수천만 년 동안 지구의 정복자로 군림하였다.  포유류형 파충류는 종류가 다양하며 다람쥐처럼 작은 것에서부터 소만큼 큰 것까지 있었으며, 초식만 하는 종류도 있었고 육식만 하는 동물도 있었다.

포유류형 파충류가 전성기를 맞이하였을 즈음 새로운 형태의 동물이 나타났다.  이 동물은 포유류형 파충류와 마찬가지로 배로 기어다녔던 초기 파충류의 후손이지만 새로운 형태로 진화한 것이었다.  이 특종의 동물이 바로 공룡이었다.

공룡은 2억 2천 5백만 년 전에 이 지구상에 나타났다.  공룡은 포유류형 파충류와 마찬가지로 다리가 몸체를 아래에서 받치고 있어 상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두 개의 뒷발로 설 수도 있었기 때문에 네 발로 서야 하는 다른 동물에 비하여 생존 경쟁상 유리한 장점을 보유하였다.  공룡도 처음에는 다른 파충류와 마찬가지로 네 발로 걸었으나 서서히 두 발로 설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하였다.  공룡은 새나 인간처럼 두 발로 걷거나 뛸 수 있었기 때문에 동작이 빨랐으며, 앞발로는 먹이를 낚아채거나 적을 격퇴하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었다.

초기의 공룡은 덩치가 크지 않았다.  도마뱀 같은 긴 꼬리에다 털이 없는 수탉같이 생겼다고 할까.  그러나 큰 일과 날카로운 이빨을 소유한 사나운 동물이었다.

공룡은 냉혈 동물이었을까 아니면 온혈 동물이었을까.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많지만 몸이 빠르고 덩치가 작은 공룡들은 온혈 동물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몸집이 작고 동작이 빠른 동물은 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많은 열량을 소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고, 많은 열량을 소비하는 동물이면 온혈 동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집이 큰 대형 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 (Tyrannosaurus rex) 의 화석화된 이빨을 보면, 나무의 나이테와 같은 이빨의 나이테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 이빨 나이테는 냉혈 동물의 특징으로서 계절에 따른 체온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냉혈 동물은 외부의 온도 변화에 따라 체온이 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티라노사우루스는 냉혈 동물이었을 것이다.

공룡의 조상.  공룡의 조상 동물은 몸집이 작은 파충류로서 2억 2천 5백만 년 전에 이 지구상에 살았다.

그러나 중형 내지 대형 공룡은 냉혈도 온혈도 아닌, 그들 특유의 생태를 지녔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고생물학자들도 많다.  공룡의 심장 구조를 볼 수 있다면 냉혈인지 온혈인지를 금방 알 수 있겠지만 공룡의 심장이 화석으로 남아 있는 예가 없기 때문에 확실한 해답을 얻을 수가 없다.  포유류와 새 등 온혈 동물의 심장은 모두 4개의 방 (4심방) 으로 되어 있어서 혈액의 이중적 순환이 가능하므로 많은 열량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냉혈 동물인 파충류는 2 심방의 심장 구조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공룡의 심장이 2심방으로 되어 있다면 공룡은 냉혈 동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룡의 심장은 너무 부드러운 조직으로 되어 있어 한번도 화석화된 적이 없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게 될는지도 모른다.

공룡의 이빨.  육식 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 (왼쪽) 와 초식 공룡 (오른쪽) 의 이빨에는 나이테가 있다.  나이테는 계절의 기온 변화에 따른 체온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이 공룡들은 냉혈 동물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공룡을 거대한 동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모두 덩치가 작았던 공룡이었으나 생물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번성하면서 점차로 덩치가 커졌다.  진화 과정에 있는 동물은 진화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덩치가 커졌다.  진화 과정에 있는 동물은 진화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덩치가 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몸집의 거대화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기 때문에 개체의 생존 경쟁력이 더욱 강화된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몸집이 큰 놈이 번성할 확률이 높으며, 또한 이들의 후손들도 유전의 법칙에 따라 평균 이상으로 몸집이 크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개체의 거대화는 먹이의 공급이 딸리지 않는 한 계속된다.

공룡이 지구상에 존재하였던 생물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동물로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럴 만한 특별한 자연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공룡이 이 지구상에 출현하여 번성하기 시작하였을 때, 지구 전체는 매우 따뜻한 기온이 계속되었으므로 먹이 (식물 및 동물) 가 풍부하였다.  더욱이 이 자연적 호조건이 예상 외로 오랫동안 지속됨으로써 공룡의 무리들은 1 억 년 이상이나 되는 긴 세월 동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복자로서 지구의 역사를 주름잡았다.  동물계가 지구를 점령한 이후로 1억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따뜻한 기온이 중단 없이 계속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 땅의 거인 (공룡) 은 이와 같은 전대 미문의 기나긴 시간 동안 자연의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공룡은 초기의 싸움닭과 같은 왜소한 모양을 벗어 버리고 수백만 번의 세대 교체를 하는 동안에 점점 몸집이 커졌다.  공룡 가운데서도 초식하는 놈이 육식하는 놈보다 몸집이 더 컸는데, 초식하는 공룡들은 몸이 너무 무거워져서 두 개의 뒷발로 서서 다니는 진보된 자세를 지탱하지 못하고 다시 네 발로 걸어다닐 수밖에 없는 파충류의 자세로 퇴행하였다.  초식 공룡 중에서 가장 큰 놈은 수퍼사우루스 (Supersaurus) 인데 몸무게가 100톤이나 되었으며, 육지에서 생존한 동물 중에서 가장 큰 동물이었다.  육지 포유동물 중에서 가장 몸집이 큰 코끼리에 비하면, 수퍼사우루스는 코끼리 수십 마리를 합친 것과 같았다.

육식을 하는 공룡들도 몸집이 상당히 컸다.  티라노사우루스는 높이가 8미터, 다리의 둘레가 4미터, 턱의 길이가 1.2미터에 60개의 날카로운 톱니이빨을 가진 괴물로서 지구상에 존재한 생물 중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이었다.

포유류형 파충류는 공룡의 무서운 횡포에 밀려 멸종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한때 이 땅의 왕좌를 차지했던 포유류형 파충류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살아 남은 것은 모두 몸집이 작은 것들뿐이었다.  덩치가 큰 놈은 눈에 잘 띄어 손쉽게 공룡의 밥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곰이나 늑대의 크기만큼 되었던 포유류형 파충류의 후손은 점점 왜소해져서 쥐처럼 소형화하고 말았다.  지금으로부터 1억 8천만 년 전에 포유류형 파충류로서 살아 남은 종류는 쥐의 크기밖에 안 되는 동물이었다.

그러나 이 쥐같이 생긴 작은 동물은 더 이상 포유류형 파충류가 아니었다.  이것은 최초의 포유동물로 진화하였던 것이다.  몸집은 작았으나 위대한 씨앗이 그 속에서 깊은 잠을 깨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