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News : 2004 년 4 월

 

 

[문학예술]SF속 어딘가에 미래의 과학이… : 동아일보, 권기태 기자, 2004.04.30 : ◇21세기 SF도서관 1, 2/어슐러 르귄 외 지음 이수현 외 옮김/552쪽, 584쪽 각각 1만4000원 시공사 펴냄 ◇오늘의 SF 걸작선/브루스 스털링 외 지음 정은영 외 옮김/662쪽 1만8000원 황금가지 펴냄. 국내에서 그간 과학소설(SF)은 외면받아 왔다. 이름난 작가도, 두꺼운 독자층도, 두드러진 문학상도 없다. 과학소설이라기보다는 “황당하다”는 뜻에서 주로 ‘공상’ 과학소설이라고 불렸다. 과학적 상상력에 몰두하기에는 한국의 역사와 현실이 너무 무거웠다. 그러나 최근 천리안의 과학소설 동호회 ‘멋진 신세계’나 정크SF(junksf.net), SF리더스(sfreader.org) 등 SF 사이트들의 활동이 서서히 탄력을 받고 있다. 발간되는 과학서적 종수와 독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해에는 프랑스 과학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나무’ ‘뇌’를 통해 과학소설도 국내에서 얼마든지 밀리언셀러가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줬다. ‘21세기 SF 도서관’(이하 ‘도서관’)과 ‘오늘의 SF 걸작선’(이하 ‘걸작선’)은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출간된 미국의 대표적인 과학소설 선집 번역서들이다. 이 선집들은 전년도 발표작을 대상으로 1년마다 새로 발간된다. 전자는 2000년 발표 작품들, 후자는 2001년 발표 작품들 가운데 뽑아 모은 것이다. 현재의 과학 발달 수준으로 보아 미래에 실현가능할 것 같은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다룬 작품들이 우선 눈에 띈다. 사람이 숨지기 전에 두뇌 속의 기억들을 모두 스캐닝해서 인터넷에 업로드시킨다는 아이디어가 그 하나다(‘도서관’ 중 루셔스 셰퍼드의 ‘빛나는 초록 별’). 그러면 고인(故人)의 정신이 아직 살아있는 것으로 봐야 할까? 뇌에 특수한 컴퓨터 칩을 이식해서 전신의 신경과 통(通)할 수 있게 한다는 아이디어도 있다. 이 덕분에 가까운 사람들끼리 카를 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에 걸린 사람들처럼 집단적으로 사이버 도서관이나 사이버 밀림 같은 가상환경으로 들어갈 수 있다. 화성의 컨조이너(Conjoiner·접속자) 종족이 삭막한 환경을 견디기 위해 만든 것이다(‘도서관’ 중 앨러스테어 레이놀스의 ‘화성의 거대한 벽’). 우주선의 악질 항법사 다린의 거짓 사랑에 배신감을 느낀 젊은 여성 치나는 어느 날 과거와 미래를 가로지르는 우주의 웜홀에서 난파해 돌아온 우주선에서 다린의 시신을 확인한다. 그러나 얼마 후 치나는 살아있는 또 다른 다린을 보고는 깜짝 놀란다(다린의 시신을 실은 우주선은 웜홀의 작용 덕분에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 살아있는 다린은 자기가 곧 죽게 될 운명인지도 모른 채 우주선에 탑승한다. 치나는 다린의 운명을 말해줘야 할지, 입을 닫은 채 그와 그야말로 ‘죽음의 키스’를 나눠야 할지 고민한다(‘걸작선’ 중 제프리 랜디스의 ‘도라도에서’). 두 선집 모두 ‘인공지능 로봇’이나 ‘유전자조작 인간’을 과연 인간이라고 봐야 할까 질문하는 작품들을 실었다. 그렉 이건의 ‘단일체’(‘걸작선’ 중), 브라이언 스테이블포드의 ‘지옥의 스노볼’(‘도서관’ 중) 등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인공지능)’가 다룬 주제이자 ‘피노키오’가 원형인 이야기다. ‘노예를 인간으로 봐야 할까’ 하던 19세기 고민과 비슷하다. 과거 과학소설은 로봇을 로봇이라고만 봤고, 유전자조작 인간은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이라고 봤을 뿐이다. 과학이 진화하자 과학소설도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성과학고 르포" - 왜 공부하냐고요?”(까르르) (일제히) “재미있으니까요” : 조선일보, 김승범 주간조선 기자, 김지윤 주간조선 인턴기자, 2004.04.01 : 지난 3월 12일 오전 9시20분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한성과학고등학교 2학년 1반. 1교시 화학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자유에너지(G)의 변화량은 온도(T)에 엔트로피(S) 변화량을 곱한 것을 엔탈피(H) 변화량에서 빼면 됩니다. G의 변화량이 작아지는 것은 자발적인 방향입니다.” 김영호 교사는 학생들에게 ‘에너지는 크기가 작은 상태로 향한다’는 내용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 학급 학생 22명은 일제히 머리를 끄덕였다. 수업 시간에 사용하고 있는 ‘일반 화학’ 교과서는 대학교 1~2학년 때 배우는 내용이다. 이 학교 학생들은 1학년에 입학하자마자 이 교과서로 수업을 시작해 2학년에 끝낸다. 김 교사는 “학생들의 90% 이상이 적극적으로 수업을 따라온다”며 “대학교 2~3학년 수준의 질문을 해오는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오후 2시10분 5교시 1학년 2반 물리 수업 시간. 칠판에 적힌 ‘가속도 운동’ 관련 응용 문제를 풀고 있던 정우철군이 전영석 교사와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 배우지 않은 방법으로 문제를 풀었기 때문. 전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제 곧 배울 건데 우철이가 먼저 공식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5시쯤 복도를 지나가던 2학년 학생 2명의 대화. “우리 0.85다.” “겨우? 우리는 0.99야.” 무슨 뜻이냐고 묻자 “화학 실험의 오차 범위를 말한다”고 했다. 1에 가까울수록 오차 범위가 적어지고 그만큼 오차가 없는 완벽한 실험이라는 것. 일반 고등학교 복도에서는 듣기 힘든 대화 내용이다. 실험실은 점심 시간이면 급히 식사를 끝내고 모여드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실험에 열중하는 학생도 있다. “대학교 2~3학년 수준의 질문도” 한성과학고에 불이 꺼져 있는 시간은 밤 12시부터 6시간 동안뿐이다. 이 학교 학생 339명 중 1명을 제외한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학생들은 보통 오전 6시에 기상해 7시30분까지 교실에 들어가 오전 자율학습을 시작한다. 오후 4시30분 수업이 끝나면 저녁 식사를 한 다음 오후 6시30분부터 자습을 하고 기숙사로 간다. 자정이 되면 사감이 기숙사 복도를 돌기 시작한다. 학생들의 다음날 수업에 지장이 있을 것을 우려, 수면을 재촉하지만 “공부를 더 하겠다”며 불을 켜고 잠을 자지 않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공부에 대한 재미도 재미지만, 중학교 때 전교에서 1등을 한 수재들이 많이 모여 경쟁은 치열하다. 한성과학고는 올해로 개교 12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졸업생이 모두 1500명. 1회 졸업생이 현재 29세로 서서히 사회에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궁금한 게 있으면 확인하지 않고는 못 배겼어요. 5살 때 고양이가 균형을 잡는지 보려고 위에서 떨어뜨리기도 했고, 라디오를 분해하다가 혼난 적도 많습니다. 생화학을 전공할 생각입니다.”(유호연·2년) “수학·과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어 과학고에 왔어요. 생명공학을 공부할 거예요.”(오윤지·2년) “왜 과학고에 왔느냐”는 질문에 대해 취재진이 만난 학생 20명의 공통적인 대답은 “과학·수학이 재미있어서”였다. 학교 측이 올해 초 신입생을 대상으로 지원 동기를 물어본 결과 58.3%가 “수학·과학을 더 많이 배울 수 있어서”라고 대답했다. 한성과학고의 수업은 일반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일주일 37교시, 50분 수업이다. 하지만 전체 시간표의 절반 이상이 수학·과학 수업이다. 수학 수업은 매일 있다. 한성과학고의 경우, 3년 동안 이수해야 하는 216단위(1단위는 한 주당 1교시 수업 기준) 중 120단위가 수학·과학·컴퓨터 관련 수업이다. 일반 고등학교 자연계열 학생들은 80단위 내외다. 과학고에서는 2학년이 되면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실험 수업이 일주일에 각각 3교시씩 있다. 교과 자체에도 차이가 있다. 일반계 교육과정에 없는 고급수학·고급물리·고급화학·고급생물 등 ‘전문 교과’가 운영된다. 물리·화학 등의 경우 일반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물리1’ ‘화학1’ ‘생물1’ ‘지구과학1’을 배우지 않고 곧바로 ‘물리2’ ‘화학2’ 등으로 넘어간다. 특히 물리·화학 교과서는 대학교 수준의 내용이다. 이처럼 일반 고등학교보다 몇 년을 앞질러가는 것은 우선 학생들이 소화를 해내기 때문이지만 학생의 60% 정도가 2학년 때 조기 졸업을 하기 때문에 일반 학교에서 3년 걸리는 내용을 빨리 끝내야 한다. 1년에 논문 2편씩 써야 학생들은 1년에 자유 주제로 논문 2편을 써야 한다. 실험은 기본이다. ‘오존을 이용한 폐수 속의 기름 제거’ ‘역제곱 형태의 중심력을 받는 물체의 운동의 고찰’ ‘마늘의 중금속 흡착 능력 고찰’…. 대학생 수준의 논문도 여러 편 나온다고 한다. 실험 기자재는 대학교 연구실 수준이다. 한성과학고는 지난해부터 학생들을 대학교·연구소와 연결시켜 한 단계 높은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유호연군은 지난해 동기 3명과 함께 팀을 이뤄 서울대에서 화학과 양철학 교수의 지도로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한 생활효소의 연구’를 했다. 유전자를 조작해 효소의 작용을 활성화함으로써 세제를 다량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학생들이 실험과 수업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신세대답게 재즈반·애니메이션반 등 22개 동아리가 있다. 매주 목요일 특활 시간이나 식사 시간을 이용해 모인다. 발명반·물리반 등 ‘과학고다운’ 동아리도 있다. 발명반에서는 서로 맞물리는 톱니를 빼야 밖에서 들어올 수 있는 방범창, 앉는 부분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변기 등 발명품 수상자도 나왔다. 달걀에 구조물을 설치해 5층 높이에서 떨어뜨려 깨지지 않는 달걀을 뽑는 ‘스턴트 달걀 선발대회’, 주사기·고무관을 이용해 로봇팔을 만들어 종이컵을 주어진 시간에 얼마나 많이 옮기는지를 겨루는 종목 등이 펼쳐지는 ‘한성 과학의 날’은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행사다. 학생의 절반 이상이 과학기술대학교(KAIST)에 진학한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117명 중 62명(53.0%)이 KAIST에 합격했으며 연세대 23명(19.7%), 서울대 15명(12.8%) 등 순이다. 지난해에는 대학 진학자의 51.7%가 KAIST에 합격했다. 학교 측이 올해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 진학 희망 대학은 과기대가 62%로 가장 높았다. 한국 과학의 산실이라 할 과학고에도 ‘이공계 기피’라는 그림자는 짙게 깔려 있다. “과학고 출신 선배들에 대한 대우가 그리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황찬성·2년) “일반고에 갔다면 다른 꿈도 꿀 수 있었을 텐데…. 과학고에 오니 선택할 수 있는 진로가 많지 않아요.”(홍유경·2년) 나이 어린 학생들이 벌써부터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인 것이다. 진로담당 교사에 따르면 학생들의 상담 주제 1순위는 ‘이공계로 갈까, 의대로 갈까’이다. 그 다음은 유학 관련 상담이라고 한다. ‘고급물리’ ‘고급화학’ 등 심화학습에 매달려야 할 3학년 때 학생들은 수능 시험을 위해 1학년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실험과 연구로 밤을 지새야 할 학생들이 객관식 수능문제집을 붙잡고 있으니….”(진로담당 하화주 교사) 한 교사는 “과학영재들을 평준화 논리에 묶어놓고 과학자로서의 꿈을 접게 만드는 게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손실인지 다들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1세기 과학 기술 영재’ 앞에는 ‘대입’이라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우등생들이 모인 과학고에서 학생들은 내신에 불리하다. 비교내신이 시행되던 1996년 3학년 164명 중 116명(70.7%)이 서울대에 합격하는 등 한성과학고의 서울대 합격률은 70%를 웃돌았다. ‘과학고=서울대’ 공식이 적용되던 때다. 하지만 1999년 입시부터 ‘비교 내신’이 폐지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비교 내신 폐지 방침이 발표된 1997년부터 자퇴 파동이 벌어졌다. 1997년 75명에 이르렀던 자퇴생은 1998년 65명, 1999년 61명 등 줄어들 줄을 몰랐다. 서울대 진학률은 1999년 이후 10%대로 급락했다. 2002년 국제정보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수상하고 그해 서울대 2학기 수시모집 전기·컴퓨터공학부에 지원했던 김형설씨(당시 2년)가 1차 전형에 탈락했다. 동상을 수상했던 정헌·김진호씨 역시 수시 1차 모집에서 떨어졌다. 모두 내신이 문제였다. 한성과학고 배희병 교장은 “실력만 따져보면 과학고에 오지 않아도 충분히 일류대에 갈 수 있는 학생들인데 일반고와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적 입시제도’에 좌절도 - 학생들이 의대에 관심을 갖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주요 이공계 대학(KAIST·포항공대·한국정보통신대)의 과학고생 정원(약 660명)이 전국의 과학고 졸업생(1100여명)을 다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실제 진학 상황을 보면 절대 다수가 이공계로 진학한다. 올해 대입 응시자 119명 중 의대에 진학한 학생은 10명뿐이었다. 한성과학고는 20~30년 전 학교로 사용되던 건물을 개조해 쓰고 있다. 교장실 벽 페인트는 2001년 이 학교에 부임한 배희병 교장이 손수 칠했다. 커튼은 배 교장이 부인과 직접 동대문시장을 돌며 재단했다. 이공계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그나마 ‘이공계 위기론’이 불거지자 서울시에서 돈을 내놓아 보수 공사를 할 수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과학고를 향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것에 대해 과학고 학생들과 교사 모두 억울하다고 했다. 이공계 위기가 제기되자 일단 과학고에 대한 지원은 늘었다. 지난해 한성과학고 학생 138명은 서울시교육청 지원으로 미국 프린스턴·예일·하버드대 등으로 ‘이공계대 체험연수’를 다녀왔다. 최근 입시가 수능 비중이 커지고 있는 데다 심층 면접 및 구술고사 비중과 수시모집이 확대되는 것도 과학고 학생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서울대 2005년 입시에서는 수학·과학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지원 자격을 부여하는 등 과학고 학생들의 지원 기회를 확대했다. 이공계의 경우 특기자 전형으로 정원의 20%를 뽑기로 했다. 지난해 한성과학고 자퇴생은 1명이었다. 한성과학고 장광영 교사는 “이같은 관심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 정부 차원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이공계 위기’라고 하지만 다시 뜰 거예요. 과학이 없으면 나라가 발전할 수 없잖아요.”(이종미·2년) 종미 같은 믿음을 가진 과학 영재들은 밤늦은 시간까지 실험실과 자습실에 불을 밝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