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습득을 위한 본능

(An Instinct to Acquire an Art)

 

언어본능 : Steven Pinker 저, 김한영.문미선.신효식 옮김, 그린비, 1998 (원서 : The Language Instinct, 1994)

 

이 글을 읽을 때 여러분은 자연세계에서 일어나는 경이로운 일 중 하나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여러분과 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종(種)에 속해 있으므로 사건들을 서로의 머릿속에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게 형상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텔레파시나 마인드 컨트롤, 아니면 어떤 사이비 과학의 망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것들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설명을 들어보더라도, 그것들은 우리 모두가 틀림없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능력과 비교할 때 단지 무딘 도구에 불과하다. 그 능력은 바로 언어이다. 우리는 단지 입으로 소리를 만들어냄으로써 머릿속의 생각이 서로의 마음속에 명확히 떠오르게 할 수 있다. 이 능력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생기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쉽게 잊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몇 가지 간단한 증거를 들어 이 사실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여러분이 단 몇 분만 내 말에 상상력을 맡겨준다면 나는 여러 분이 아주 특정한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다.

수문어가 암문어를 발견하면, 일반적으로 희끄무레한 색을 띠는 몸통에 갑자기 줄무늬가 생긴다. 수문어는 암문어의 위쪽으로 헤엄쳐 가서 일곱 개의 팔을 이용해 암문어를 애무하기 시작한다. 암문어가 이를 받아들이면 재빨리 여덟번째 팔을 암문어의 호흡관에 살짝 밀어넣는다. 이때 일련의 정충 덩어리들이 수문어의 팔에 있는 홈을 통해 느리게 이동하여 마침내 암문어의 외피강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흰색 정장에 체리 주빌레가 묻었습니까? 제대포에 와인이 묻었다구요? 즉시 클럽 소다를 이용해 보십시오. 천에 묻은 얼룩을 제거하는 데 아주 좋습니다.

문을 연 딕시는 태드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한다. 딕시는 태드가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문을 거칠게 닫은 후 도망치려 한다. 그러나 태드가 "사랑하오"라고 말하자 그녀는 그를 들어오게 한다. 태드가 그녀를 위로하자 두 사람 사이에는 격한 감정이 흐른다. 브라이언이 끼어들고 딕시가 그날 아침에 브라이언과 결혼했다고 말히지 태드는 놀란다. 딕시는 브라이언에게 아주 힘겹게 자신과 태드의 사이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제이미가 태드의 아들임을 털어놓는다. "뭐라고?" 충격을 받은 태드가 외친다.

이 단어들이 어떤 작용을 했는지 생각해 보자. 나는 여러분에게 단순히 문어를 상기시킨 것이 아니다. 혹여 여러분이 문어의 몸에 줄무늬가 생기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면, 그 다음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여러분은 다음에 슈퍼마켓에 갔을 때 수만 가지의 구입 가능한 물품 가운데 클럽 소다를 찾을 것이고, 아마도 특정 물질이 특정 대상에 우연히 닿게 되는 몇 달 후에나 비로소 그것을 건드리게 될 것이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사람의 상상의 산물인 주간 드라마 「올 마이 칠드런(All My Children)」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비밀을 수백만의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 앞에 예시한 증거들은 인간의 읽고 쓰는 능력에 의존하는 것인데, 이 능력은 시간과 공간, 친숙의 틈새를 연결해 줌으로써 우리의 의사소통을 훨씬 더 인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준다. 그러나 글은 수의적인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다. 언어적 의사소통의 진정한 동력은 우리가 어렸을 때 습득한 구어 (spoken language) 이다.

어떤 박물학이든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면, 언어는 두드러진 특성으로 드러날 것이다. 홀로 고립된 인간이라도 문제를 해결하고 도구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로빈슨 크루소류의 사람들에게는 외계의 관찰자들에게 언급할 만한 주제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바벨탑의 이야기는 우리 종(種)의 경이로운 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있다. 여기에서 인간은 단 하나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신이 위협을 느낄 정도로 하늘에 근접한다. 이렇듯 공통의 언어는 대단한 결집력을 가지고 한 사회의 구성원들을 정보 공유의 그물 속에 결합시킨다. 누구든 현재나 과거의 타인들이 축적해 놓은 모든 천재적인 업적과 우연한 행운 또는 시행착오를 거친 지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은 팀을 짜서 일을 할 수 있고, 그 노력은 협의된 결과를 통해 조정될 수 있다. 그 결과, 호모 사피엔스는 남조식물이나 지렁이처럼 하나의 조이면서도 지구상에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왔다. 고고학자들은 프랑스의 한 절벽 밑에서 1만 마리나 되는 야생마의 뼈를 발견했다. 이 잔해는 1만 7000년 전인 구석기시대에 사냥꾼들에게 쫓겨 절벽 아래로 떨어진 야생마들의 것이다. 고대의 협동과 단합된 재주를 보여주는 이 화석들을 통해 검치(劍齒)호랑이와 마스토돈(신생대 제3기의 대형 코끼리), 거대하고 털이 많은 무소 그리고 다른 수십 종의 커다란 포유동물들이 어째서 오늘날의 인간들이 그들의 거주지에 도착했을 무렵에 멸종되어 갔는지 밝힐 수 있다. 분명히 우리의 조상이 그들으 죽여 없앴을 것이다.

언어는 인간의 경험 속에 아주 단단히 짜여져 있어서 언어없는 생활이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아마도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든 두 명 이상의 인간이 모이면 그들은 곧 말을 주고받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화할 상대가 없으면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기르는 개에게, 심지어는 자신이 기르는 식물에게까지 말을 건다. 우리의 사회관계 속에서 승리는 재빠른 자의 것이 아니라 언어적인 자의 것이다. 즉, 승리는 매혹적인 변사와 달변의 바람둥이 그리고 완력으로는 상대가 안되는 부모와의 싸움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 마는 설득력 있는 아이에게 돌아간다. 때문에 뇌 손상의 결과로 발생하는 실어증은 어떤 병보다도 참혹하게 느껴지는데, 심한 경우 가족들은 그 사람이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사라졌다고 여기기도 한다.

이 책은 인간의 언어에 관한 것이다. 제목에 '언어' 라는 단어가 들어간 대부분의 책들과는 달리 여기에서는 용법을 문제삼거나 숙어와 은어의 기원을 추적하지 않을 것이고, 회문 (palindromes, eye나 madam 처럼 거꾸로 읽어도 같은 말이 되는 말)이나 글자 수수께끼 (anagrams, 예를 들어 emit-time, item-mite 등), 이름의 시조 (eponyms, 예를 들어 Rome의 시조는 Romulus) 혹은 '종다리 떼 (exaltation of larks)' 와 같은 고상한 이름을 들면서 기분전환을 제공하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은 영어나 그밖의 구체적인 언어에 관해서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기본적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언어를 학습하고 말하고 이해하는 본능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그 본능에 관해 쓸 내용이 생겼다. 약 35년전에 새로운 과학이 탄생했다. 현재 '인지과학' 이라 불리는 그것은 심리학, 컴퓨터과학, 언어학, 철학, 신경생물학에서 도구들을 모아 인간 지능의 활동을 설명한다. 특히 언어에 관한 과학은 그후 몇 년 간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카메라가 어떻게 작동하고 비장(脾臟)의 기능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만큼 우리는 수많은 언어적 현상 또한 잘 이해해 나가고 있다. 나는 이 흥미로운 발견들을 전달하고자 한다. 그 일부는 현대과학의 어떤 것 못지않게 훌륭한 것들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또 하나의 목적이 있다.

언어적 능력에 대한 최근의 해명은 언어와 그것이 인간생활속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 그리고  인류 자체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에 대해 혁명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교육을 받은 대부분의사람들은 언어에 대해 다음같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언어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창조물이고,상징을 이용할 줄 아는 인간 능력의 전형적인 예이며, 인간과 다른 동물들을 결정적으로 구분짓는 미증유의 생물학적 사건이다. 또한 언어는 생각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므로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해석한다. 아이들은 주위의 어른들을 모델삼아 말하는 법을 배운다. 과거에는 정교한 문법의 자양분이 학교에서 공급되곤 했지만, 나태한 교육과 타락한 대중문화로 인해 문법적 문장을 구성하는 일반인들의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버렸다. 영어는  parkway (공원 내의 도로) 에서는 drive 하고 driveway (도로가의 주차구역) 에서는 park 하며, recital 에서는 play 하고 play 에서는 recite (낭송) 한다고 말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논리를 무시하는 어릿광대의 언어이다. 조지 버나드 쇼 (George Bernard Shaw) 가 fish 는 ghoti 로 써도 매한가지 (tough 에서의 gh, women 에서의 o, nation 에서의 ti 처럼) 라고 고집은 것처럼, 영어의 철자는 훨씬 더 괴팍스럽다. 그리고 단지 제도적 타성 때문에 철자와 발음이 일치하는 훨신 더 합리적인 체계가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

이후의 지면에서 내가 여러분을 설득하고자 하는 바는 이 모든 일반적 견해들이 틀렸다는 것이다. 이 일반적 견해들이 틀린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언어는 우리가 시간을 알거나 연방정부가 어떤 일을 하는가를 배우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학습하는 문화적 가공품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두뇌의 생물학적 구성에 관여하는 명백한 본능이다. 언어라는 복잡하고 특별한 기술은 의식적인 노력이나 정식 교육 없이 어린 시절에 자생적으로 발전하고, 그 기초에 놓인 논리에 대한 인식 없이 전개되며, 모든 개인에게 질적으로 동등하다는 점에서 정보를 처리하거나 현명하게 처신하는 데 필요한 더 일반적인 능력들과 구분된다. 이런 이유로 일부 인지과학자들은 언어를 하나의 심리적 능력으로, 정신기관으로, 신경계로, 컴퓨터적모듈로 설명했다. 그러나 나는 매우 색다른 용어인 '본능 (instinct)' 이라는 말을 사용하고자 한다. 이 단어는 사람들이 말하는 법을 습득하는 것은 거미가 집 짓는 법을 아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임을 보여준다. 거미의 집짓기는 어떤 천개 거미가 발명한 것도 아니고, 적절한 교육이나 건축 혹은 건설에 대한 적성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거미가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은 거미가 두뇌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으로부터 실을 짜는 충동과 완성의 능력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거미집과 언어에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나는 여러분들에게 언어를 이런 방식으로 보도록 권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탐구할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언어를 본능으로 간주하는 것은 보편적인 상식, 특히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규범 속에 전수되어 온 일반적 사고를 거스르는 일이다. 언어는 직립보행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발명품이 아니다. 그리고 상징 사용이 일반적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물도 아니다. 예를 들어 세 살바기 아이는 문법에는 천재지만, 시각예술이나 종교적 상징물, 교통신호나 기호학 교과과정의 주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다. 언어는 살아 있는 종 중에서 호모 사피엔스만 가지고 있는 독특하면서도 위대한 능력이다. 그렇다고 해서 언어에 대한 연구를 생물학의 영역에서 격리할 필요는 없다. 현존하는 특정한 종에서만 볼 수 있는 어떤 위대한 능력이 있다는 것은 '동물의 왕국' 에서는 결코 독특한 일이 아니다. 어떤 박쥐 종은 도플러 효과를 이용하여 날아다니는 곤충을 추적한다. 어떤 철새 종들은 시간에 다른 별자리의 위치를 측정하여 수천 마일을 이동한다. 자연의 다재다능한 모습에 비추어볼때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의 고유한 행동, 즉 숨을 내쉴때 나오는 소리를 조절하여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영장류의 한 종일 뿐이다.

일단 언어를 해명 불가능한 인간 고유의 본질로서가 아니라 정보를 전달하려는 생물학적 적응방식으로 보기 시작하면, 언어를 사고의 교활한 조정자로 보는 것은 더 이상 매력 없는 일이 될 것이고, 실제로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게다가 언어를 자연이 관할하는 경이 가운데 하나로ㅡ다윈에 따르면 "우리의 찬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완벽한 구조와 (자연선택에 위한) 상호순응성" 을 지닌 하나의 기관으로ㅡ본다면, 평범하기만 한 사람들이나 비방의 표적이 되어온 영어에 대해 (혹은 어떤 언어에 대해서든) 우리는 새로운 존경심을 갖게 될 것이다. 다윈의 관점에서 볼 때 언어의 복잡성은 인간의 생물학적 생득구건의 일부이다. "교육은 찬양할 만한 것이긴 하지만, 알 가치가 있는 것은 하나도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을 때때로 기억하는 것이 좋다" 고 한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의 말처럼, 그것은 부모가 가르쳐주거나 학교에서 갈고 닦는 어떤 것이 아니다. 취학 전 아동의 때묻지 않은 문법지식은 아주 두꺼운 인쇄편람이나 최첨단의 컴퓨터 언어체계보다 더 정교하다. 모든 정상인들, 심지어는 문법을 무시하기로 악명높은 프로 운동선수와 스케이트보드에 바진 말을 더듬거리는 10대 청소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언어는 훌륭한 작용체계를 갖춘 생물학적 본능의 산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연예란의 특별 기고가들이 얼빠진 멍청이들이 무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모국어인 영어의 존엄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심지어는 철자법에 대해서도도 좋은 점들을 지적할 것이다.

언어가 일종의 본능이라는 개념은 1871년 다위넹 의해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언어를 인간에게 국한시키는 것이 자신의 이론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한 그는 「인류의 기원 (The Descent of Man)」에서 언어에 대한 논쟁을 전개시켰다. 모든 문제에 대해서처럼 그의 언급은 대단히 현대적이이다.

언어학이라는 고상한 과학을 정립한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언어를 양조술이나 제과술과 같은 일종의 기술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언어가 아니라)글이라고 했다면 좀더 훌륭한 비유가 되었을 것이다. 언어는 순수한 본능이 아니다. 모든 언어는 학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술과는 크게 다르다. 어린아이에게는 술을 빚고 빵을 만들고 글을 쓰고자 하는 본능적 경향이 없는 반면, 그들이 지껌임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에게는 말하고자 하는 본능적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어가 의도적으로 발명되었다고 가정하는 언어학자는 한 명도 없다. 언어는 여러 단계를 거쳐 천천히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발전해 왔다.

다윈은 언어능력이 '기술을 습득하려는 본능적 경향' 이며,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노래를 배우는 새들처럼 다른 종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언어본능이라는 말은 언어를 인간 지성의 정점으로 생각하고, 본능을 털이나 깃털 달린 얼간이들이 댐을 쌓거나 남쪽으로 날아가도록 자극하는 야만적인 충동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귀에 거슬릴 수도 있다. 그러나 다위의 추종자인 윌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 는 본능을 소유한 존재라고 해서 반드시 '숙명에 따라 움직이는 자동인형' 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지적했다. 또 그는 인간에게는 동물이 가지고 있는 본능 외에도 많은 본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유연한 지능은 서로 경쟁하는 여러 본능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 사실, 인간의 사고를 본능으로 보기 어려운 것은 사고의 본능적 특성 때문이다.

정신은.......자연스러운 것을 이상하게 여기도록 만들어 본능적인 행위조차도  그 이유를 묻게 만드는 학습과정을 거침으로써 타락하게 된다. 단지 형이상학자들에게만 이런 의문이 발생한다. "왜 우리는 미소를 짓는가?" "우리는 언제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즐거움을 느끼는가?" " 왜 우리는 한 명의 친구 앞에서 말하는 것처럼 군중 앞에서 말하지 못하는가?" "왜 특정한 소녀는 우리의 지성을 그토록 혼란스럽게 만드는가?" 평범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미소짓는 것은 당연하고, 군중 앞에서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도 당연하며, 완벽한 형상에 깃든 아름다움 영혼, 영원히 사랑하기에 충분한 그 소녀를 우리가 사랑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아마도 각각의 동물들은 특정한 대상이 있는 자리에서 특정한 행동을 취하는 경향을 느낄 것이다......... 수사자는 암사자를, 수곰은 암곰을 사랑하게 마련이다. 또 암탉에게는 둥지에 가득한 알이 오랜 시간 따뜻하게 품어주어야 하는 더없이 소중한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지 않는 생물이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일부 동물들의 본능이 우리에게 제 아무리 신비롭게 보일지라도 우리의 본능도 그들에게는 그만큼 신비롭게 보이리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본능에 순응하는 동물에게 모든 자극과 본능의 모든 단계는 나름대로의 빛을 충분히 발하며, 그 순간에는 영원히 옳고 타당한 단 하나의 일로 여겨질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파리가 세상의 모든 것들 중에서 자신의 산란관을 자극하여 알을 낳을 수 있는 특별한 나뭇잎 하나 또는 썩은 고기나 똥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강한 관능적 전율로 몸을 떨겠는가? 그때 파리에게는 산란이야말로 단 하나의 적절한 일로 여겨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파리가 미래의 구더기나 구더기의 음식에 대해 걱정하거나 알아냐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이것이 나의 주된 목적을 드러내는 가장 적절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산란의 근본적인 이유가 파리의 인식과 전혀 무관한 것처럼 언어의 작용도 우리의 인식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의 생각들은 정신의 검열을 피해 아주 쉽게 입 밖으로 놔와 우리를 황하게 만든다. 우리가 문장을 이해할 때 전개되는 어들은 아주 투명하다. 우리는 의 반사적으로 그 의미에 도달해서 영화가 외국어로 되어 있고 자막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도 한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이 어머니를 방함으로써 모국어를 득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린이가 "간지럼 태우지마!" 라거나 "우린 아기 토끼를 잡았어" 라고 말할때 이는 도저히 모방행동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학습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혼란에 빠뜨려 이 선천적 재능을 이상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외관상으로는 보잘것없는이 능력의 '이유' 와 '방식' 에 의문을 갖도록 만들 것이다. 외국어를 습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민자나 모국어로 고생하는 뇌일혈 환자를 보라. 혹은 아기가 하는 단편적이 말을 해체해 보거나 영어를 이해하기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보라. 그러면 일상의 언어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언어의 용이함, 투명함, 자명성은 대단히 풍부하고 아름다움 체계를 가리고 있는 환영들이다.

현세기에 들어와서, 언어가 본능과 흡사하다는 가장 유명한 주장을 한 사람은 복잡한 언어체계의 베일을 벗긴 최초의 언어학자이자 언어와 인지과학 분야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노엄 촘스키 (Noam Chomsky) 이다. 1950년대에 사회과학은 존 왓슨 (John Watson) 과 스키너 (B.F.Skinner) 에 의해 대중화된 행동주의학파의 지배하에 있엇다. '안다', '생각한다' 같은 정신과 관련된 용어들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낙인 찍혔고, '마음(mind)' 이나 '선천적인 (innate)' 이란 용어는 불결한 말이 되었다. 행동은 쥐가 막대를 누르거나 개가 소리를 듣고 침을 흘리는 것과 같은 자극반응이론의 몇 가지 법칙들로 설명되었다. 그러나 촘스키는 언어에 관한 두 가지 근본적인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첫째는 사람이 말하거나 이해하는 모든 문장은 사실상 우주 역사상 최초로 출현하는 완전히 새로운 단어조합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어는 반응의 집합이 될 수 없다. 분명히 우리의 두뇌에는 한정된 단어의 목록으로부터 무한한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비책이나 프로그램이 담겨 있다. 우리는 그 프로그램(산문의 예법을 가르쳐줄 뿐인 교육상의 '문법' 또는 문체상의 '문법' 과 혼동되어서는 안된다)을 정신적 문법이라 부를 수 있다. 두번째 근본적인 사실은 어린아이들이 이 복잡한 문법을 재빨리 그리고 공식적인 교육 없이 습득한 뒤에는 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설 속의 문장구조들을 모순 없이 해석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어린아이들은 모든 언어의 문법에 공통적인 하나의 설계도, 즉 부모의 말에서 통사적 유형을 여과해 낼 수 있게 해주는 보편문법 (Universal Grammar) 을 선천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촘스키는 주장했다. 그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지난 수세기에 걸친 지식의 역사에서 신체적 발달과 정신적 발달에 접근하는 방식이 아주 달랐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인간이 경험을 통해 날개가 아닌 팔을 갖게 되었다거나, 특정 기관들의 기본구조가 우연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면, 아무도 이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물론 크기나 성장 속도 같은 규모적 특성들은 부분적으로 외적 요인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는 해도, 유기체의 신체구조는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고등생물의 인성, 동양식 및 인지구조의 발달에 대해서는 이와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왔다. 이들 영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환경을 지배적 요인으로 가정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하는 정신적 구조물들은 임의적이고 우연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결국 특정한 역사적 산물로서 발전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인간적 본성' 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지하게 탐구해 보면 인간의 인지체계는 인간 유기체가 사는 동안 발전하는 신체구조만큼이나 경이롭고 복잡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왜 복잡한 신체기관을 연구하는 것처럼 언어와 같은 인지구조물의 습득을 연구해서는 안된단 말인가?

단지 처음 얼핏 보았을 때 인간의 언어가 너무 다양하다는 이유 때문이라면, 이 제안은 불합리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그러한 의구심은 사라진다. 언어학적 보편성과 관련된 내용을 거의 몰라도 우리는 언어의 다양성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개개인이 습득하는 언어는 풍부하고 복잡한 구조물로서(아이들이)이용할 수 있는 파편적인 증거로는 도저히 완성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언어집단에  속한 개인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언어를 발전시켜 왔다. 이 사실을 설명하자면, 이들 개인들이 문법의 구성을 이끄는 지극히 제한된 원리들을 사용하고 있다고 가정할 수 밖에 없다.

촘스키와 기타 언어학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모국어의 일부로 수용하는 문장에 성실한 기술적 분석을 가함으로써 개별 언어에 대한 사람들의 지식의 토대를 이루는 정신문법의 이론과 개별 문법의 토대를 이루는 보편문법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초기부터 촘스키의 작업을 다른 과학자들을 자극했다. 특히 에릭 레니버그 (Eric Lenneberg), 조지 밀러 (George Miller), 로저 브라운 (Roger Brown), 모리스 할레 (Morris Halle) 그리고 알빈 리버만 (Alvin Liberman) 등을 포함한 과학자들은 아동 발달과 언어인지에서부터 신경학과 유전학에 이르기가지 완전히 새로운 언어연구의 영역들을 개척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가 제기한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의 수는 수천에 이른다. 촘스키는 현재 전인류를 통틀어 가장 많이 인용되는 10명의 저자 중 하나이며(헤겔과 시저보다 앞서고 마르크스, 레닌,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프로이트 다음으로 많다), 상위 10명 중 유일한 생존 인물이기도 하다.

그 인용문들의 내용이 무엇인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촘스키는 사람들의 반응을 자극한다. 그 반응은 불가사의한 종교의식의 지도자들에게 바쳐질 법한 경외와 존경에서부터 고도의 기술로 발전한 학자들의 위압적인 독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부분적으로  이것은 아직도 20세기 지식의 기초로 작용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정신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에 의해 형성된다고 설명하는 '표준 사회과학 모델' 을 촘스키가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사상가도 그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를 혹독하게 비판한 사람 중 한 명인 철학자 힐러리 푸트넘 (Hilary Putnam) 도 이 점을 인정했다.

촘스키를 읽으면 엄청난 지적 능력에 충격을 받는다. 우리는 특별한 정신과 마주치고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이것은 그의 강한 개성에서 비롯되는 마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가 가진 명백한 지적 장점들, 즉 독창성(다시 말해 변덕스러운 것들과 피상적인 것들에 대한 경멸)과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견해들(예를 들어 '본유관념의 강령')을 기꺼이 회복시키려는 적극성(그리고 그렇게 해내는 능력), 핵심적이고 영구적인 중요성을 띠는 주제들(예를 들어 인간의 정신구조)에 대한 관심 등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내가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촘스키의 영향을 깊이 받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이야기와 똑같지 않으며, 그의 방식을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촘스키는 (다른 진화의 과정과 반대되는)다윈의 자연선택이론으로는 자신이 주장하는 언어기관의 기원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여 많은 독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나는 각각의 부분들이 각기 중요한 기능을 하도록 설계된 눈과 마찬가지로, 언어를 하나의 진화적 적응이 결과로 간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리고 언어 능력의 본질에 관한 촘스키의 주장은 단어와 문장구조에 대한 기술적 분석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는 종종 난해한 형식주의의 성격을 띤다. 살아 있는 인간 화자에 대한 그의 논의는 다분히 기계적이며 고도로 이상화되어 있다. 그의 많은 주장에 동의한다 할지라도 나는 정신에 대한 결론은 여러 가지 종류의 증거가 집중되는 경우에만 설득력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DNA가 뇌를 형성하는 방식에서부터 언어 칼럼니스트의 거드름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포괄적이다.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은, 왜 인간의 언어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의 일부인 본능일 수 밖에 없는가를 묻는 것이다.